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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들처럼! 籠球스타 박정은,그리고 그女의 男子 俳優 한상진|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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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들처럼! 籠球스타 박정은,그리고 그女의 男子 俳優 한상진

우먼東亞日報

2014. 02. 28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농구스타 박정은,그리고 그녀의 남자 배우 한상진

 박정은 選手가 隱退하던 날 펑펑 울고 萬 한상진.



暴風 嗚咽을 하고 있는 男子와 꽃다발을 한 가득 안고 서 있는 女子. 女子의 얼굴을 보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은데, 男子는 왜 눈물을 쏟고 있는 걸까. 籠球를 運命처럼 사랑하는 女子 박정은, 그女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男子 한상진 그들의 러브 스토리.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농구스타 박정은,그리고 그녀의 남자 배우 한상진

&nbsp;아내의 寫眞 撮影이 끝나자 準備했던 커피를 건네는 한상진.<br>그는 아내가 選手 生活을 하는 동안에도 늘 이렇게 仔詳하게 外助를 했다.


運動選手 男便을 뒷바라지하는 아내는 많아도 男便의 外助를 받는 女子 스포츠 스타는 드물다. 그런 面에서 지난해 11月 11日 隱退한 삼성생명 블루밍스 박정은(37) 選手는 運이 좋았다. 撮影 스케줄까지 調整해가며 코트에 나와 應援해주는 든든한 男便 한상진(37) 德에 技倆을 맘껏 發揮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박정은은 釜山 동주女商 卒業 後 1995年부터 19年間 三星生命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通算 4百86競技에서 6千5百40點을 記錄하고, 韓國 女子 籠球 史上 처음으로 3點 슛 1千 個를 達成했다. 또한 2000年 시드니 올림픽과 2002年 中國 世界選手權大會에서 韓國 팀을 4强에 올려놓으며 女子 籠球의 全盛期를 이끌어온 主役이다. 이에 球團 側은 박정은의 等 番號 11番을 永久 缺番시키기로 했다.
1月 初 박정은을 만나 特別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늘 競技場에 나와 아내를 應援했던 한상진은 이날도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이 當然하다는 듯 따라왔다. 間食까지 사들고 寫眞 撮影 中인 스튜디오를 訪問한 것. 민낯에 유니폼 입은 아내의 모습만 봐왔던 한상진은 메이크업을 하고 모델처럼 차려입은 박정은을 보는 瞬間 “우와, 누구세요? 내가 알던 박정은이 맞나요?”라며 웃으며 좋아했다.  
“事實 女性誌에 저희 夫婦가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에요. 아내가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撮影하는 모습을 보시면 父母님들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이런 날 제가 안 올 수가 있나요?(웃음)”
하지만 그는 막상 撮影이 始作되자 或如 아내가 神經을 쓸까 봐 구석에 숨어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亦是 所聞난 ‘外助의 王’이 분명했다. 撮影을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두 사람. 박정은이 “찐~ 커피 좀 줘”라고 하자 “아메리카노로 사왔어”라며 살갑게 커피盞을 건네는 한상진의 모습이 아직도 달콤한 新婚 같다. 隱退式 때 펑펑 울며 꽃다발을 건네던 모습이 찍힌 寫眞 이야기를 꺼내자 한상진은 부끄럽다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저희 所屬社 食口들이 그걸 보고 2013年 가장 웃겼던 寫眞이라고 하더라고요. 甚至於 같이 있던 매니저는 우는 제 모습에 猖披하다고 도망갔어요(웃음). 눈물을 글썽인 것도 아니고 大聲痛哭을 했잖아요. 아휴, 저도 只今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男便이 아내의 隱退式에 와서 왜 그렇게 嗚咽을 할까 궁금해하는 게 當然했다. 하지만 한상진에게 그날 隱退式의 主人公은 아내가 아니라 自身이었다. 2002年 박정은을 처음 만나서부터 只今까지 코트 밖에서 아내와 함께 뛰어왔기 때문이다.
“아내가 恒常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는데, 뭐랄까… 믿기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요? 그만큼 저도 아내의 籠球를 사랑했나 봐요.”
한상진이 박정은을 처음 본 것은 1994~95年 籠球大잔치 때였다. 李尙玟·우지원 같은 男子 選手들이 오빠 팬을 몰고 다니던 時節, 한상진 亦是 籠球에 푹 빠져 있었고 籠球大잔치에서 당차게 3點 슛을 던지던 얼짱 選手 박정은을 눈여겨보게 됐다. 그리고 時間이 흘러 2002年 大學路에서 演劇을 하던 그의 앞에 運命처럼 박정은이 나타났다.  
“公演을 하는데 觀客席에 박정은 選手가 앉아 있는 거예요. 제 눈을 疑心하며 後輩에게 ‘헛것을 본 것 같다’고 했더니 그 親舊가 自身이 招待했다고 하더라고요. 切親이라면서요. ‘그럼 當場 來日 자리 한番 마련하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正말 다음 날 아내가 이미선 選手와 함께 나타났더라고요.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몰라요(웃음).”
박정은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한상진의 속내와는 달리, 박정은이 받은 그의 첫印象은 別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飮食 때문이었어요. 普通 運動選手들은 食堂에 가면 여러 가지 飮食을 다양하게 시켜놓고 같이 먹거든요. 그런데 男便은 혼자 ‘저는 生果일 주스 주세요. 雪糖은 빼고~’라고 말하더라고요. 다이어트 때문이라고는 했지만, 男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농구스타 박정은,그리고 그녀의 남자 배우 한상진

“男便은 아버지가 보내준 사람 같았어요”
첫印象은 別로였지만 以後 보여준 한상진의 仔詳한 모습은 박정은의 마음을 활짝 열리게 만들었다. 宿所 生活을 하던 그女를 위해 떡볶이 같은 飮食을 配達시켜주거나, 집밥을 그리워하는 팀 同僚들을 집으로 招待해 直接 料理를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을 키워가던 2003年 어느 날, 두 사람은 生涯 最初로 스캔들에 直面했다.
“3代 스포츠 日刊紙 1面에 저희 記事가 나온 거예요. ‘美女 籠球 스타 박정은, 俳優와 熱愛 中’이라는 타이틀로요. 當時 아내는 스타였고, 저는 無名 俳優였기 때문에 아내 寫眞이 大門짝만 하게 실리고, 저는 구석에 작게 나왔어요. 兩쪽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죠. 父母님들은 저희가 만나는 事實을 모르고 계셨거든요.”
하지만 스캔들 記事를 契機로 두 사람의 사이는 더욱 깊어졌다. 兩家에 人事를 드린 後, 公式的인 만남을 이어갔고 2004年 자연스럽게 結婚 手順을 밟게 된 것. 條件만으로 보면 한상진이 한참 기울었지만 박정은은 結婚을 決心하기까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한다.
“제가 中學校 3學年 때부터 태릉選手村에 있었거든요. 저희 엄마는 일찍 出家(?)해 있는 딸을 늘 信賴하셨어요. 그래서 ‘結婚할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도 ‘그래? 빨리 집에 데리고 와봐~’라고 믿어주셨어요. 周圍에서 가난한 演劇俳優와 結婚하는 것이 不安하지 않느냐고 많이 물어보셨지만, 全혀 그렇지 않았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確信이 있었거든요. 제가 籠球를 하는 동안 男便도 좋아하는 演技로 꿈을 펼치도록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박정은이 이렇게 한상진을 믿었던 데는 다 그럴 만한 理由가 있었다. 籠球 選手 出身인 박정은의 아버지는 그에게 精神的인 支柱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한 男子가 나타나 아버지가 하던 모든 것을 똑같이 해주고 있었다. 박정은의 오빠는 그런 한상진을 두고 “아버지가 보내준 사람 같다”고 했다.  
“男便은 저희 팀 同僚들을 家族들보다 더 熱心히 챙겼어요. 相對便 監督님과 選手들, 팬과 記者에게도 늘 깍듯하게 人事를 했고요.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왔을까’ 神奇할 程度였어요.”
이 때문에 放送街에서는 한상진과 作品을 하려면 박정은의 競技 日程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多幸히 只今까지는 放送 關係者들 모두 그가 아내의 競技를 보러 갈 수 있도록 配慮해줬다. 한상진 本人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放送街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可能했는지 感謝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는 왜 꼭! 아내의 競技를 直接 觀覽해야 했을까.
“籠球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아내가 다칠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을 거예요. 戀愛를 始作하고 처음으로 보러 간 날, 相對方 選手의 팔꿈치에 맞아서 아내의 눈가가 찢어지는 事故가 있었어요. 病院에 데리고 가서 20바늘이나 꿰매는 것을 봤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아무리 運動選手라도 女子잖아요. 只今까지 눈가만 4番 찢어졌고, 손등 뼈와 齒牙도 한 番씩 부러지고, 종아리 筋肉도 破裂됐죠. 언제 어떻게 다칠지 몰라 不安하기 때문에 競技場에 자꾸 가게 돼요.”
男便이 競技를 보러 오는 날이면 박정은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緊張하는 바람에 다치는 境遇가 많았던 것 같다고 한다. 한상진은 2007年부터 드라마 ‘離散’ ‘솔약국집 아들들’ 等에 出演하며 有名稅를 얻은 以後에도 되도록이면 아내의 競技는 直接 觀覽하려고 努力했다.
“아내가 無名 俳優인 저와 結婚할 때 別의別 所聞이 많았어요. 結婚 生活이 3年 以上 못갈 것이라고 色眼鏡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죠. 제가 가난한 俳優일 때나 只今이나 아내에 對한 마음은 똑같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아내의 競技는 꼭 直接 보고 싶어요. 아내가 저를 믿어준 德分에 結婚 後 저는 일이 더 잘 풀렸어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농구스타 박정은,그리고 그녀의 남자 배우 한상진

“2歲 計劃요? 膳物처럼 찾아오겠죠”
서로를 믿고 지켜주며 어느덧 結婚 11年次가 됐지만, 아직까지 남들처럼 平凡한 結婚生活은 해본 적이 없다. 結婚하자마자 박정은이 아테네 올림픽 合宿訓鍊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다음 시즌 準備를 하는 바람에 新婚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박정은은 只今까지도 料理, 빨래, 淸掃 等을 거의 해본 記憶이 없다고 말한다. 한상진은 그런 것은 全혀 重要하지 않다며 웃는다.
“選手로 살아온 아내가 집안일을 못하는 건 當然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내에게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只今의 位置에서 最善을 다하면서 서로 믿으며 사는 것만으로도 感謝하거든요. 아내는 20年이 넘도록 1等만 하면서 살았어요. 그럼에도 不拘하고 周圍에 늘 사람이 많다는 건, 이 사람이 正말 魅力이 넘친다는 證據죠. 同僚들뿐만 아니라 相對便 選手들까지 認定해주는 모습을 보면, 제가 다 가슴 뭉클해질 程度예요. 濃愁 選手가 아니라도, 正말 좋은 사람이죠.”
勿論, 夫婦싸움은 한다. 시시콜콜한 일로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夫婦싸움도 서로의 스타일을 알고 나니까, 理解하고 넘어가면서 漸次 줄어들었다. 한 가지 原則이 있다면, 絶對로 몸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點!
“아내가 100kg이 넘는 黑人 傭兵度 몸으로 막아내던 選手였잖아요. 힘으로도 男子한테 絶對 밀리지 않거든요. 도둑이 들어와도 걱정이 안 돼요. 오히려 그 도둑이 아내에게 혼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박정은은 隱退 後, 選手 이름標 代身 ‘코치’ 타이틀을 달았다. 自身이 選手로 뛰었던 삼성생명에서 指導者로 人生의 第2幕을 始作한 것. 正裝을 차려입고 코치로서 選手들을 가르치다 보니, 不足한 點도 드러나고 反省하게 되는 部分도 많다고.
“코치로서는 新人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제가 받은 사랑을 後輩 選手들에게 돌려줘야 할 時間이 온 거죠. 제가 가진 노하우를 어떻게 하면 後輩들에게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을지 苦悶과 硏究를 많이 하고 있어요.”
박정은의 隱退로 두 사람의 삶에는 많은 變化가 생겼다. 그동안 마음 便히 旅行 한番 가보지 못했던 두 사람은 이제는 다른 커플처럼 平凡하게 살고 싶다고 告白한다. 여기에는 2歲 計劃도 包含된다.  
“躁急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只今처럼 둘만의 時間을 가지면서, 各自의 位置에서 自身의 일을 즐기고 있으면 ‘膳物’처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남들처럼 平凡하게 둘만의 時間을 가져본 적이 別로 없잖아요. 旅行도 다니고, 平凡한 日常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찾아오겠죠?(웃음)”
運命처럼 서로를 向해 올인하는 두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結婚을 할 것이냐”는 質問을 던져봤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機會를 주고 싶다”며 웃는다. 그때 한상진이 “다시 태어나면 籠球 選手 박정은이 아니라, 女子 박정은을 만나고 싶다”고 韻을 뗐다. 籠球 選手 박정은의 男便도 幸福했지만, 다치는 모습을 다시는 지켜보고 싶지 않다는 게 그 理由다. 亦是, 두 사람은 다음에 또 태어나도 서로를 꼭 다시 찾아내지 않을까 싶다.





글·金民主 自由寄稿家 | 寫眞·홍중식 記者, WKBL 提供|스타일리스트·이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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