漣川 전곡리 舊石器 祝祭가 걸어온 길
世界 구석技士에 重要한 發見으로 說明되는 전곡리 遺跡
1978年 전곡리遺跡 發見 다음해에 發掘調査가 始作되면서, 곧바로 約 80萬㎡(24萬餘 坪)의 遺跡 一帶가 國家史跡 第268號로 指定되었다. 우리나라는 勿論 世界의 舊石器學社에서 重要한 發見임은 疑心의 餘地가 없었으며, 考古學者와 地質學者들의 持續的인 學術調査硏究와 함께 世界的인 考古學者들의 訪問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大衆들에게 微弱했던 전곡리 遺跡에 對한 認識
그러나 當時 전곡리遺跡에 對한 大衆의 認識은 낮았고, 地域開發의 障礙物로 取扱받는 形便이었다. 멀리까지 전곡리遺跡을 찾아온 이들에게 遺跡의 荒凉한 風景이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舊石器遺跡은 다른 時期의 考古學 遺跡들과는 달리 舊石器遺物을 품고 있는 地層 自體가 重要한 遺構이다. 그러나 發掘調査의 境遇를 除外하고는 一般大衆들에게 舊石器遺跡을 보여주고 紹介할 機會는 거의 없는 狀況이었다.
전곡리 遺跡과 先史文化를 알리기 위한 努力
이에 發掘調査를 進行하던 한양대학교(1992年 9次 調査團長 배기동 敎授)는 조그마한 遺跡觀을 準備하기에 이르렀다. 1979年 以來 發掘調査團의 現場事務室로 쓰던 컨테이너(故 朴正熙 大統領의 配慮로 마련됨)에 展示空間을 構成한 것이다. 學界와 뜻있는 篤志家들의 도움을 얻은 素朴한 試圖였으며, 어린이와 靑少年을 中心으로 한 一般大衆에게 볼거리를 提供하여 전곡리遺跡과 先史文化를 알리고자 하였다.
전곡리 舊石器 遺跡館의 建立과 전곡리 舊石器 祝祭
이리하여 1993年 4月 11日 전곡리 舊石器 遺跡館(現在 遺跡管理事務所)李 建立되었으며, 開館式을 記念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짐승人間들의 現代나들이”라는 테마로 공연되었다. 前衛藝術家 무세中 先生과 한양대學校 文化人類學科 學生들의 원시인 퍼포먼스는 전곡리遺跡의 保存을 原始의 魂에 비는 祭祀로 始作되었으며, 開館을 祝賀하기 위해 멀리서부터 모인 손님들과 田穀住民들, 어린이들을 위해 石器를 만들어보는 이벤트 等이 있었다. 이것이 當時의 參加者에게 깊은 印象을 남겼고, 特히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하여 이듬해인 1994年부터 5月 5日 어린이날을 公式的인 祝祭日로 指定하게 되었다.
전곡리 舊石器 祝祭의 成長과 全曲膳賜博物館의 建立
2000年 第 8回 전곡리舊石器祝祭를 起點으로 漣川郡은 그間 學界와 民間次元에서 主導하던 祝祭를 多方面으로 支援하는 立場에서, 마침내 漣川郡 次元의 地域祝祭로 包容하게 된다. 以後 전곡리舊石器祝祭는 눈부신 成長을 보이며 全國的으로 손꼽히는 地域先史文化 祝祭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活動의 延長으로 2011年 全曲膳賜博物館이 開館하여 世界 船社文化硏究와 地域社會 그리고 全谷里舊石器遺跡의 價値를 빛내는데 큰 몫을 擔當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