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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得하기 前에 먼저 共感하라” 李舜臣은 알고 최만리는 몰랐다 | 自己啓發 |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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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槪念化

“說得하기 前에 먼저 共感하라” 李舜臣은 알고 최만리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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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槪念化된 文章은 論理的인 部分이 조금 不足하다 할지라도 共存하는 사람들의 삶과 連結된 것이어야 한다. 兵士들의 恐怖心을 容器로 바꾸어 鳴梁海戰에서 勝利한 李舜臣과 世宗의 한글 創製를 反對하는 上疏文을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최만리는 그를 如實히 보여주는 事例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며 直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선 李舜臣의 文章은 論理的으로는 崔萬理의 文章보다 못했을지 모르지만 兵士들의 삶에 對한 ‘共感(共感)’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反面 中國을 섬겨야 하는 朝鮮에서 새로운 文字를 만드는 일은 不當하다고 主張한 崔萬理의 文章에는 旣得權을 代辯하는 知識人들의 論理만 있었다. 삶과 連結되지 않는 文章은 世上을 바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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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槪念化하고 그 槪念을 商品化한 것이 世上을 바꾼다

    暫時 걸어보라. 그리고 뒤돌아보라. 나의 발자국들이 보이는가? 그것이 나의 人文(人文)이다. 人文이란 人間이 그리는 무늬이기 때문이다. 1

    每日每日 일에 치여서, 앞만 보고 걸으면서 나의 人文을 돌아볼 餘裕가 不足하지 않는가? 가끔은 뒤돌아서서 나의 人文을 가만히 느껴봐야 한다. 그리고 느낀 것을 말 또는 글로 整理해 봐야 한다. 그리고 整理된 말 또는 글을 同僚들에게 說得할 目的으로 說明해 보라. 整理하고 說明하는 過程을 反復하는 것이 나의 人文에 基盤한 ‘생각의 槪念化’ 過程이다.

    槪念은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가지 생각(觀念)을 一般化한 結果物이다. 동그라미를 例를 들면 ‘指定된 한 點과 同一한 距離에 있는 點들의 모임’, 이것이 동그라미의 槪念이다. 생각의 槪念化는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생각을 文章으로 整理하는 過程이다. 槪念化가 世上을 바꾸는 始作인 理由는 이 過程을 거치며 머릿속 나만의 생각이 비로소 누구나 理解하고 同意할 수 있는 最小限의 條件을 갖추기 때문이다. 槪念化하지 않은 ‘생각’만으로는 疏通과 說得에 失敗할 確率이 높다.

    그런데 우리의 日常에는 大部分 이러한 생각의 槪念化 過程이 省略돼 있다. 새로운 것을 보면 그것을 따라만 하려 하고, 따라 하지 않으면 淘汰되는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그 結果 내 안의 人文과 充分히 交感하는 槪念化 過程 없이 無理하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겪지 않아도 되는 여러 施行錯誤를 겪게 된다. 또 方向을 急激하게 바꾸어 몸에 無理를 주기도 한다. 萬若에 가던 方向을 바꾸어야 한다면 먼저 나의 人文과 얼마나 方向이 다른지 苦悶하고 그 方向과 速度를 決定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人文에 基盤한 삶이고, 이 過程이 反復 訓鍊돼 習慣이 되면 世上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붙게 된다.

    애플의 最高經營者였던 스티브 잡스는 생각의 槪念化가 갖는 힘을 잘 보여준다. 그는 每日 아침 거울 앞에서 “萬若 오늘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오늘 하려던 일을 하고 싶은가”라고 反復해서 自身에게 묻고 答했다고 한다. 이 過程을 통해 自身의 삶과 일에 對한 생각을 槪念化했기 때문에 그 槪念과 技術을 結合하는 過程을 거쳐 아이패드와 같이 世上을 바꾼 商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質問을 던지는 方法은 自己 認識을 통해 생각을 槪念化하는 오래된 人文的인 訓鍊 方法이다. 거울 앞에 서는 것은 뒤를 돌아 나의 발자국을 보는 것과 같다. 잡스는 끊임없이 自身의 삶과 일을 認識하는 過程을 통해 생각을 槪念化하고 意思決定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自己의 人文을 省察했고 그 結果를 개념화함으로써 그는 놀라운 成果를 거뒀다. 事實 이 過程에서 잡스가 活用한 道具와 技術은 補助 手段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自己 省察에 根據한 槪念化, 人文的 삶의 態度가 當代의 道具와 技術이 만들어 낼 수 있는 價値를 最高 水準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됐다. 實際로 아이패드를 公開하던 날 마지막 슬라이드에는 애플의 象徵처럼 남아 있는 人文學과 技術이 交叉하는 標識板 寫眞이 띄워져 있었다. “애플이 아이패드와 같은 商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人文學과 技術의 交叉點에 서려고 努力했기 때문이다”라는 잡스의 말에서 우리가 技術이 아닌 人文에 注目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이패드의 誕生 過程에서도 人文의 힘을 確認할 수 있다. 成均館大 哲學科 이종관 敎授에 따르면 아이패드(2010年)는 제록스파크硏究所에 勤務하던 마크 와이低價 創案한 ‘유비쿼터스 컴퓨터’(1988年) 槪念에 基盤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비쿼터스 컴퓨터 槪念’에는 더 거슬러 올라가 獨逸 哲學者 마르틴 하이데거가 <存在와 時間(1927年)>에서 言及한 사람과 道具의 根源에 關한 實存主義的 存在論이 담겨 있다.

    冊床 위에 종이 한 張을 놓고 펜으로 글씨를 써보자. 우리는 冊床, 종이, 펜이라는 道具는 認識하지 않고 그 道具가 만든 글씨에 集中한다. 우리 눈에서 道具는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이 道具 中 어느 하나가 故障이 나야 우리는 그때 道具를 보게 된다. 쓸모가 없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道具가 우리 눈에 띄는 것이다. 또 펜은 글을 쓸 종이와, 종이는 올려놓을 冊床과, 冊床은 자리할 바닥과 서로 連結돼 機能을 遂行하고 있다. 이렇듯 道具는 서로 連結돼 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提示한 “道具는 서로 連結돼 있고, 사람에게 눈에 띄지 않는 方式으로 存在한다”라는 道具의 實存主義的 存在論의 核心이다.

    마크 와이저는 위와 같은 하이데거의 人文學을 바탕으로 世上에 없는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고자 했다. 그 過程에서 “컴퓨터는 눈에 띄지 않아야 하고, 技術이 스며들어 있고, 뒤로 물러서 있을 때 可能해진다. 그리고 패드, 탭, 보드와 같은 디바이스로 具現된다”라는 人文的 理解 없이 多少 理解하기 어려운 槪念을 提示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存在한다’라는 라틴語에 着眼해 이 槪念을 ‘유비쿼터스 컴퓨터’라고 명명했다. 마크 와이저는 이 槪念을 適用한 파크패드(1991年)라는 商品을 만들었으나 商用化하지는 못했다. 外觀은 아이패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나 當時 技術의 限界로 펜으로 메뉴를 造作해야 했고 有線 인터넷을 使用했기 때문이었다. 애플은 이 槪念을 商品化하기 위해서는 旣存 컴퓨터 畵面의 가장자리에 있는 수많은 메뉴부터 없애야 한다고 解釋했다. 곧 畵面에서 메뉴가 사라졌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대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機能이 作動하는 技術을 發展시켰다. 메뉴는 칩에 貯藏돼 있을 뿐 눈에 보이지 않고 터치스크린과 손가락이 連結되면서 機能이 作動하는 商品을 만든 것이다. 마우스와 키보드도 사라지고 畵面만 남았다. 하이데거가 提示한 人文學이 마크 와이저에 依해 槪念化됐고 애플은 이를 아이패드라는 새로운 컴퓨팅 디바이스로 世上에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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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當時 大部分의 企業들은 모든 事物에 半導體 칩을 심고, 性能을 向上하되 작고 가볍게 만들고, 언제 어디서나 使用 可能한 네트워킹 컴퓨팅 環境을 만드는 것으로 理解했다. 特히 日本은 政府 主導로 네트워킹 中心의 유비쿼터스 戰略을 樹立해 美國을 앞지르겠다는 覺悟를 다졌다. 3 그랬기에 아이패드가 出市되자 大部分의 사람들은 失敗할 것이라고 豫想했다. 왜냐하면 當時의 넷북보다 性能이 떨어졌고 키보드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畵面을 손으로 만진다는 것은 너무도 낯선 것이었다. 技術과 트렌드를 重視하는 世上에 사람과 ‘道具의 根源’을 反映한 商品이 出市됐으니 當然한 反應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豫想을 깨고 出市 2個月 만에 200萬 臺 販賣라는 大成功을 거뒀고 結局 携帶用 컴퓨팅 디바이스의 槪念을 바꾸었다.

    아이패드는 明瞭한 自己 認識, 생각의 槪念化라는 人文的 省察과 道具와 技術의 根源的 意味에 對한 苦悶을 거치며 誕生한 商品이다. 이 點에서 아이패드는 人文과 技術의 交叉點에서 登場했으며 人文의 힘을 技術이 具現한 事例라 하겠다. 技術力에서 애플을 앞섰던 當代 有數의 企業들이 아이패드를 만들 수 없었던 理由 中 하나는 그들이 人文과 技術의 交叉點에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槪念化는 어떤 段階를 거쳐 만들어지며 힘을 가지는가

    1. 槪念은 自己를 認識하는 過程에서 만들어진다.

    잡스의 아이패드 事例에서 보듯 自己 認識에 成功한 狀態에서의 槪念化와 意思決定은 世上을 바꾼다. 그러나 自己認識이 失敗한 狀態에서의 그것은 도리어 自身과 世上을 混亂에 빠트린다. 童話 ‘白雪公主’의 새엄마(王妃)는 每日같이 魔術거울에게 “거울아, 거울아, 世上에서 누가 第一 예쁘지”라고 물었고, 魔術거울은 언제나 “王妃님입니다”라고 對答했다. 그러던 어느 날 白雪公主가 7살이 되던 해에 魔術거울은 “王妃님도 아름답지만 白雪公主가 더∼ 아름답습니다”라고 答했다. 그날 以後 새엄마는 自己도 充分히 아름답다는 事實을 잊고 白雪公主를 죽이려 하던 끝에 結局 王妃 自身이 不幸해지는 結果를 招來했다. 王妃와 같이 自身이 充分히 가지고 있지만 남을 앞서려는 마음이 가득한 狀態에서 거울 앞에 서는 사람은 自己 認識에도, 槪念化에도 失敗한다. 槪念은 自己를 認識하는 過程에서 만들어진다. 스티브 잡스는 “그래도 오늘 하려던 일을 하고 싶은가”라며 自身이 바라는 것을 내려놓겠다는 態度로 自身과 對話했기에 사람들과 共感하는 槪念을 만들 수 있었다. 平安한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서보라.

    2. 槪念은 說得할 目的을 가져야 힘을 지닌다.

    質問을 하나 던지겠다. “自身에게 주어진 일이나 工夫를 할 때 얼마만큼 ‘自己의 問題’로 바꾼 後에 그 일이나 工夫를 하는가?” 생각을 槪念化한 結果物은 그 일이나 工夫와 關聯해 自身의 삶을 苦悶하고 사람들과 反復해서 이야기한 後 整理한, 問題 解決 方案이 담긴 文章이다. 槪念化 過程에서 우리는 自然스레 自身이 處한 狀況과 周邊 사람들의 삶을 連結하게 된다. 이렇게 文章이 만들어졌을 때 神奇하게도 傳達 過程에서 自然스럽게 聽衆과 눈을 맞추고, 그들이 理解하는 言語를 使用하고, 그들과 共感하는 表情을 짓게 된다. 그리고 그 文章이 聽衆들을 움직이는 힘으로 바뀐다. 自身이 意圖했든, 意圖하지 않았든 ‘說得하려는 目的’으로 說明했기 때문에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와 反對로 사람들의 삶과 連結되지 않은 文章은 世上을 바꾸지 못한다. 兵士들의 ‘恐怖心’을 ‘勇氣’로 바꾸어 鳴梁海戰에서 勝利한 成功한 李舜臣과 世宗의 한글 創製를 反對하는 上疏文을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최만리, 두 事例를 들어 說明해보겠다.

    욧카이치臺 名譽敎授 기타지마 기신 敎授의 ‘日本人이 본 映畫 ‘鳴梁’의 魅力’에 依하면(<개벽신문> 2017年 8月 號 揭載 豫定) 當時 日本軍이 노린 것은 朝鮮 兵士들에게 恐怖心을 일으켜 戰鬪意志를 꺾는 것이었다. 敵陣에서 가까스로 도망쳐온 映畫 ‘鳴梁’ 속 兵士 오상구의 臺詞는 敵의 意圖가 的中했음을 보여준다.



    “漆川梁에서 6年 동안을 같이 한 同僚들이 모두 죽었습니다요. 오늘 제 손으로 그들의 需給들을 묻고 왔습니다요. 正말 두렵습니다요. 이제 틀림없이 제 次例 같습니다. 이제 속절없이 이렇게 다 죽어야 합니까?”

    -映畫 ‘鳴梁’ 中 兵士 오상구의 臺詞



    이에 對해 李舜臣은 兵士들에게 蔓延해 있는 ‘恐怖心’을 ‘勇氣’로 전환시킨다면 日本을 이길 수 있다고 確信했다. 過去 量的으로 充分한 戰艦을 保有하고도 日本에 頑悖한 것은 元均, 李億祺와 같은 指揮官부터 ‘恐怖心’에 사로잡힌 채 戰鬪에 臨했기 때문이라고 봤던 것이다. 그래서 李舜臣은 部下들의 恐怖心을 容器로 바꾸기 위해 “목숨에 기대지 말라”고 槪念化하고 이를 앞장서 說明한 後 電線基地(前線基地)를 불태워 兵士들의 退路를 遮斷한다. 그리고는 戰鬪의 先頭에 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兵士들의 恐怖를 容器로 바꿔 不過 12隻의 배로 戰鬪에서 勝利했다. 鳴梁海峽의 ‘巨大한 소용돌이’는 戰術的 道具였다. 勝利를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戰場에서 장수의 생각을 槪念化한 말과 共感된 行動이었다.



    “아직도 살고자 하는 者가 있다니 痛歎을 禁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避할 수 없다. 丁寧 싸움을 避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냐? 陸地라고 無事할 듯싶으냐? 똑똑히 보아라!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더 以上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必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兵法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千 名의 赤道 떨게 할 수 있다’ 하였다. 바로 只今! 우리가 處한 形局을 두고 하는 말 아니더냐!”

    -映畫 ‘鳴梁’ 中 李舜臣의 臺詞



    이와 對照되는 崔萬理의 事例를 살펴보자. 최만리는 祕密裏에 進行되던 世宗의 한글 創製 事實을 알고 난 後 이의 不當함을 알리는 上疏文을 올린다. 上疏文에는 1) 朝鮮은 中國을 섬겨야 하고 2) 文字를 만든 事例가 있다면 오직 오랑캐들의 事例일 뿐이며 3) 朝鮮에는 이두라는 오래된 補助文字가 있고 4) 새로운 文字를 만들어도 百姓의 抑鬱함이 解決되는 것이 아니라며 한글 創製를 反對하는 事由를 緻密하게 적었다.



    “우리 朝鮮은 操縱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大國(大國)을 섬기어 한결같이 中華(中華)의 制度를 準行(遵行)하였는데, 이제 글을 같이하고 法度를 같이하는 때를 當하여 諺文을 創作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中略) 萬一 中國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或是라도 非難하여 말하는 者가 있사오면, 어찌 大國을 섬기고 中和를 思慕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世宗實錄> 在位 26年(1444年) 2月20日 記事 中,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602020_001)




    그리고 自身의 主張을 貫徹할 目的으로 意思決定權者人 世宗 앞에서 發表했다. 그는 醫師決定權者와 눈높이를 맞추지도, 世宗乙 理解하지도, 共存하는 一般 百姓들과 共感하지도 않았다. 崔萬理의 上疏文은 當時 中國에 기대었던 知識人들의 旣得權을 代辯할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 緻密함이 世宗乙 窮地로 몰기는 했으나 世宗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以上의 두 事例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 위에 오랜 時間 동안 工夫를 쌓은 사람과, 오랜 時間 知識을 쌓고 그 知識을 使用하며 살아온 사람의 差異를 보여준다. 李舜臣의 文章이 決코 崔萬理의 文章보다 論理的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槪念化된 文章은 論理的인 部分이 조금 不足하더라도 共存하는 사람들의 삶과 連結된 것이어야 한다. 說得하기 위해서는 먼저 共感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槪念化된 文章은 최만리와 같이 發表하는 것이 아니라 李舜臣과 같이 說得하기 위한 目的으로 說明해야 한다. 그 過程에서 힘이 생긴다. 이것이 ‘槪念化의 힘’이다.

    萬若 當時 최만리가 自身이 包含된 旣得權層을 代辯하지 않고 共存하는 一般 百姓을 위한 槪念을 담은 反對 上疏文을 올렸다면 世宗의 마음이 흔들리고 한글 創製를 멈췄을까? 筆者는 中國에 기댄 思想을 가지고 있었던 최만리가 百姓을 위한 槪念을 包含하면서 穩全히 自身을 담은 上疏文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人文學은 分明 삶과 일의 方向을 提示해주고 그 解決 方法을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人文學을 團地 敎養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의 槪念化 過程을 看過한 것이다. 會社 內에서 力量이 優秀한 사람이 退職 後 創業에 成功하지 못하는 理由에는 여러 理由가 있겠지만 槪念化 力量이 不足했을 可能性이 높다. 組織 안에서는 槪念化 力量이 不足하더라도 組織의 도움으로 不足한 槪念化 力量을 補完하는 것이 可能하지만 創業 後에는 더 以上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解決해야 할 課題와 마주하게 된다면 躁急하게 그것을 商品化(表現)하려 하지 말고 먼저 가만히 뒤돌아 서보길 勸한다. 그리고 찬찬히 보고 느낀 것을 말 또는 글로 記錄하라. 처음에는 語塞하겠지만 이것이 나의 問題로 바꾸는 槪念化의 始作이다. 그리고 어느 程度 槪念化되면 周邊 사람이나 同僚들과 이야기 나누고 整理하는 過程을 反復해야 한다. 느리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지만 槪念이 發展하는 過程이다. 이 지루한 反復 過程에서 槪念이 完成될 것이고, 이때 아이디어와 靈感을 덤으로 얻게 된다. 나의 생각을 穩全히 말 또는 글로 풀어내는 訓鍊을 함으로써 人文學에 基盤한 소프트한 創意 力量을 기를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이 會社나 學校에서 品評이나 提案 時에 上司나 先生님이 다른 案을 選擇해도 自身의 主張을 차근히 說明해 自身이 提案한 안으로 說得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3. 價値 創出의 方法이 뒤집힌 世上에는 반드시 마음工夫를 해야 한다.

    오늘날의 急進的인 變化를 우리 社會는 ‘4次 産業革命’이라고 槪念化하고 있다. 4次 産業革命이라는 槪念을 理解하기 위해서는 ‘革命’과 ‘産業革命’, 그리고 ‘4次 産業革命’ 順으로 言語의 構造를 풀어봐야 한다. 우리가 日常的으로 使用 中인 境界가 頂點에 이를 때 急進的인 變化가 찾아오고 새로운 警戒가 登場한다. 이 境界가 바뀌는 過程이 革命이라고 할 수 있다. 過去의 産業革命은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의 領域에서 일어나는 革命이었다. 蒸氣와 轉機라는 새로운 에너지가 登場하고 커뮤니케이션 手段이 發展했던 過去의 産業革命과 달리 4次 産業革命은 커뮤니케이션의 急進的인 變化가 먼저 일어나고 있다. 이 過程에서 企業의 價値創出 方法이 뒤집혔고 우버, 페이스북, 에어비앤비와 같이 뒤집힌 價値 創出 方法을 槪念化하고 商品化한 企業이 登場해서 世上을 바꾸고 있다.



    全 世界에서 가장 큰 택시會社인 우버는 택시를 所有하고 있지 않다. 全 世界에서 가장 큰 미디어 會社인 페이스북은 自體 콘텐츠를 가진 것이 없다. 全 世界에서 가장 큰 小賣業體인 알리바바는 在庫가 없다. 그리고 全 世界에서 가장 큰 宿泊業所인 에어비앤비는 自身의 不動産이 없다. 뭔가 異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4

    -美國의 技術專門誌 中



    더 나아가 人工知能(AI)이라는 槪念이 登場하며 사람을 排除하고 機械끼리 커뮤니케이션하려는 試圖가 이뤄지고 있다. 人工知能은 稅務, 法律, 醫療와 같이 領域의 區分이 明確하고 빅데이터가 蓄積된 分野에서 急進的인 變化를 일으키고 있다. 그 結果 사람 사이에 維持되는 公共性과 多樣性이 急速히 破壞되고 있고 只今 이 時間에도 機械가 사람의 일자리를 代替하는 等 想像이 現實로 다가오고 있다. 急進的인 變化가 더 以上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4次 産業革命이 가져온 公共性과 多樣性의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서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創意性’을 갖출 것이 要求되고 있다. 여기서 디자인과 創意性을 簡略히 說明하자면 디자인은 創意性이라는 目的을 達成하기 위해 오랫동안 檢證된 手段이다. 創意性을 達成하는 具體的인 手段이 디자인인 셈이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創意 力量은 생각을 槪念化하는 反復過程 속에서 길러진다. ‘디(De=designare, decode)’와 ‘死因(Sign)’의 合成語인 디자인에는 ‘私人의 方向을 가리켜 주고(designare), 풀어준다(decode)’는 人文學的 槪念이 담겨 있다.

    더불어 歷史를 되돌아봤을 때 內在된 創意性을 갖춘 사람은 ‘반드시 마음工夫(必有心上功夫)’價 돼 있는 사람이었다. ‘마음工夫’란 “사람을 向한다”는 意識을 가지고 知識과 經驗을 쌓는 것이라고 解釋할 수 있다. 世宗의 말처럼 반드시 마음 위에 工夫를 쌓은 사람이 世上을 바꾸는 商品을 만들 可能性이 높다.



    競演에서 同志競演 이지강이 <大學衍義(大學衍義)>를 進講(進講)하고, 또 아뢰기를, “임금의 學問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根本이 되옵나니, 마음이 바른 然後에야 百官이 바르게 되고, 百官이 바른 然後에야 萬民이 바르게 되옵는데, 마음을 바르게 하는 要旨는 오로지 이 冊에 있사옵니다” 하매, 賃金(世宗)李 말하기를, “經書를 글句로만 풀이하는 것은 學問에 도움이 없으니, 반드시 마음의 工夫가 있어야만 이에 有益할 것이다” 하였다.

    -<世宗實錄> 卽位年(1418年) 10月12日 中



    冊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冊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冊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自身의 눈을 잃는다. 冊을 많이 읽었으면서 콕 막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冊을 통해서 自己 自身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世上도 함께 읽을 수 있다. 冊에 얽매이지 않고 冊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冊 속에는 分明 길이 있다.

    -法廷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中



    (正祖가) 下敎하기를, “讀書는 體驗(體驗)을 하는 것이 가장 重要하니, 참으로 情密히 살피고 밝게 糞便하여 心身(心身)으로 體得하지 않는다면 날마다 수레 다섯 臺에 실을 分量의 冊을 暗誦한다 한들 自身과 무슨 相關이 있겠는가. 문청공(文淸公) 雪線(薛瑄)李 말하기를 ‘讀書를 함에 있어서 着實히 마음속으로 깊이 認定하면 道理(道理)가 躍動하는 듯이 마음과 눈 사이에 들어와 文字와 言語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하고, 또 말하기를, ‘讀書를 오래도록 하여 깨달은 글 속의 理致가 自身의 몸속의 理致와 하나하나 符合돼야만 비로소 참으로 攄得하는 것이 있게 된다’ 하였다. 나는 일찍부터 이 말을 사랑하였으니, 眞實로 참다운 마음과 참다운 學問이 없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였다.

    -正祖, <弘齋全書> 162卷 日得錄



    只今 當場 생각의 槪念化를 始作하자

    “成功하고 싶은가?” “世上을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自身의 생각을 槪念化하길 勸한다. 筆者는 1992年 겨울, 大學을 卒業할 무렵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고 ‘디자이너로서 가지 않은 길을 갈 것’이라는 漠然한 삶의 目的을 定했다. 그리고 20餘 年 동안 퍼시스, 三星電子 等 企業에서 디자이너로서 生活하며 틈틈이 <朝鮮王朝實錄>과 哲學을 工夫하면서 三星, 애플, 無印良品과 같은 先進企業과 李舜臣, 世宗과 같은 爲人들이 世上을 바꾸는 過程에 共通된 要素가 있다는 事實을 發見했다.

    그것은 自身의 생각을 말 또는 글로 槪念化하고, 그 槪念을 說得하려는 目的을 가지고 說明하는 反復 過程을 통해 사람들과 共感하고, 그 共感된 槪念을 商品化하는 過程을 거쳤다는 것이었다. 筆者는 이 過程을 ‘人文디자인’이라 槪念化하고, 이것을 平生의 業(業)으로 定하고 그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讀者들도 우리에게 익숙한 技術과 트렌드 中心의 漸進的인 變化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과 道具의 根源을 먼저 생각하고, 槪念化하고, 說得할 目的으로 說明함으로써 變化의 時代를 主導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希望한다.



    김경묵 ㈔韓國組織經營開發學會·人文디자인經營硏究院 院長 formook@naver.com

    김경묵 은 社團法人 韓國組織經營開發學會 人文디자인經營硏究院 副會長 兼 院長, 人文學工場 代表이다. 삼성전자 首席디자이너로 일했으며 洞 會社 디자인哲學 諮問委員을 맡고 있다.



    생각해볼 問題

    1 아이패드의 事例에서 보듯 人間과 道具에 對한 ‘槪念’을 담는 데 成功한 製品이 世上을 바꾼다.
    當身 會社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製品은 어떤 槪念을,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가.

    2 아무리 論理的인 文章이라도 共存하는 사람들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힘을 지닐 수 없다. 最近에 當身이 提示한 아이디어 中 사람들을 說得하는 데 失敗한 것이 있는가.
    그 아이디어에 ‘共感(共感)’을 더해 업그레이드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 김경묵 김경묵 | -(現)성균관대 招聘敎授, 社團法人 韓國組織經營開發學會 人文디자인經營硏究院 副會長 兼 院長, 人文學工場 代表, 디자인哲學 諮問委員
      -(前)삼성전자 首席디자이너
      form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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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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