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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姓은 적게 가진 것보다 不均等을 걱정” | 經營一般 |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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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이 묻고 臣下가 答하다: 哲宗과 김윤식

“百姓은 적게 가진 것보다 不均等을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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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世紀 朝鮮 곳곳에서 民亂이 發生하자 哲宗은 對策을 묻는다. 朝鮮 末期 學者이자 政治家인 金允植은 哲宗과 朝廷 大臣들이 本質 解決 代身 겉으로 드러난 現象만 緩和하려 든다고 批判한다. 自身들의 사사로운 欲心 때문에 果敢한 租稅 改革을 沮止하려 드는 朝廷의 態度를 指摘한 것이다. 리더가 全社的인 改革을 注文했지만 任員陣이 旣存 方式을 固守하고 狀況 탓만 하며 問題 克服의 意志를 보이지 않는다면 改革은 成功할 수 없을 것이다.



    1862年(哲宗 13年) 한 해 동안, 慶南 晉州를 中心으로 慶尙道 19個 고을, 全羅道 38個 고을, 忠淸道 11個 고을(그 外 地域은 3곳)에서 民亂이 發生했다. 朝廷의 無能과 社會 矛盾의 深化로 苦痛받던 百姓들이 참다못해 蹶起한 것이다. 이때 가장 큰 이슈가 剪定(田政, 土地 租稅 收取 行政), 軍政(軍政, 軍役 行政), 1 還政(還政, 還穀 行政) 2 세 가지여서 이른바 ‘三政의 紊亂’으로 民亂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에 朝廷의 움직임도 緊迫했다. 全國에 걸쳐 百姓이 同時多發로 蜂起한 것은 朝鮮王朝가 創業한 以來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놀란 調整은 三政釐正廳(三政釐正廳)을 設置해 이 問題를 바로잡을 方法을 論議했고 6月에는 全國의 벼슬아치와 儒生을 對象으로 對策(對策)을 묻는 特別 試驗을 施行했다. 이番 禍에서 살펴볼 金允植(金允植, 1835∼1922) 3 의 詩卷(試券, 答案紙)은 이때 作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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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金允植의 對策은 哲宗의 策文을 批判하는 것에서부터 始作한다. 그는 “責問이 내려오자 이 消息을 들은 사람들은 下人이나 兒女子들조차도 形式的인 겉치레라고 指摘하지 않는 이가 없고, 識者(識者)들은 도리어 이 때문에 百姓의 信賴를 喪失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比喩하자면 배고파 우는 아이를 달래놓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아 속을 더욱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했다.

    金允植이 이렇게 말한 理由는 當時 哲宗과 朝廷 大臣들이 本質을 解決하려 들지 않고 末端에만 焦點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4 病의 뿌리를 뽑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病症만 緩和하려 든다는 것이다. 金允植이 보기에 問題解決의 核心은 ‘前程(田政)’에 있었다. 百姓이 安定된 生活을 營爲하려면 最小限의 所得이 必要하고, 이를 위해서는 財産稅이자 所得稅에 該當하는 傳貰(田稅)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더욱이 朝鮮 後期에 大同法(大同法)李 導入되면서 公納(貢納) 5 이 傳貰化하는 等 傳貰의 比重이 더욱 높아졌다. 萬若 傳貰價 透明하지 못하고 過重하게 賦課되거나 或은 中間에 누가 着服이라도 하게 되면 百姓이 곧바로 苦痛받는 構造다. 바로 哲宗 代의 狀況이 그러했는데 甚至於 銀漏結(隱漏結) 6
    이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缺損分을 百姓에게 떠넘기는 일도 非一非再했다.

    ‘剪定’ 改革은 緋緞 百姓에게만 도움 되는 일이 아니었다. 租稅 收入의 絶對的인 比重을 차지했던 典正의 混亂을 바로잡아야 國家 財政을 透明하고 豫測 可能하게 運用할 수가 있다. 量田(量田, 土地 調査) 事業을 통해 隱漏결을 빠짐없이 찾아내 稅金을 賦課한다면 百姓의 負擔을 줄여줄 뿐 아니라 國家의 財政 輸入도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哲宗은 말로만 剪定 改革의 必要性을 이야기할 뿐 그에 對한 意志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冊文에서도 “眞實로 量田을 다시 하고자 한다면 먼저 適任者를 얻는 데 힘써야 하고, 그다음으로 費用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人材는 이미 옛날에 미치지 못하고, 財力은 또 어디에서 마련하겠는가?”라고 歎息할 뿐이었다. “王室과 朝廷의 經常費用을 줄이기도 어렵고 百姓을 驅除하기도 어려우니 어찌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金允植이 보기에 이는 無責任한 態度였다. 그는 “나라를 지니고 집안을 지닌 사람은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均等하지 않음을 걱정하며,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고 不安함을 걱정한다”라고 말한다. 只今 切實하게 必要한 것은 첫째, 租稅를 均等하고 公平하게 賦課하는 일이며, 둘째, 百姓이 나라의 政策을 信賴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되면 百姓은 비록 豐足하지 못해도 自身의 앞날을 걱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只今은 “均等하게 하는 方法이 그 마땅함을 얻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를 最優先으로 解決해 百姓의 信賴를 얻어야 한다고 强調했다. 이를 위해 그는 宋나라 때 租稅 不均衡을 解消하기 위해 施行됐던 ‘放電法(方田法)’을 代案으로 提示했다.

    그런데 代案의 內容이 適切한지도 勿論 重要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代案이 있더라도 王과 朝廷의 態度가 달라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 金允植의 생각이었다. 그는 朝廷 一角에서 “요사이 百姓의 風速이 무너져 새 法을 施行하면 騷擾와 激變을 불러오기 쉽다”라고 主張하는 것을 剛하게 批判했다. 自身들의 사사로운 欲心 때문에 改革을 沮止하려 들면서 百姓 핑계를 댄다는 것이다. 金允植은 百姓의 風速이 무너진 것이 都大體 누구 탓이냐고 묻는다. 爲政者들이 百姓의 항산(恒産), 卽 일정한 所得을 마련해주지 못했기 때문으로 正말로 百姓을 사랑한다면 只今 當場 剪定을 果敢히 改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金允植은 哲宗이 人材가 없다고 恨歎한 것을 指摘했다. “人材를 얻는다는 것이 殷나라의 部熱이나 周나라의 女商 같은 사람을 말함입니까? 그래야만 量田(量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묻는다. 部熱이나 여상은 몇百 年에 한 番 나타날까 말까 하는 名宰相들이다. 그런 人材가 없어서 只今의 課業을 行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에 不過하다. 金允植은 前庭이나 量田 業務는 사사로운 欲心이 없고 공정한 사람만으로도 充分히 堪當케 할 수 있다며 只今도 그런 人材가 分明히 存在하지만 王이 뽑겠다는 意志가 없을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金允植은 哲宗이 王室과 朝廷의 費用을 줄이기 어렵다고 말한 것도 잘못이라고 指摘했다. 金允植은 只今은 賃金 혼자서만 奢侈하지 않을 뿐 王室과 朝廷에는 賂物이 橫行하고 奢侈가 蔓延하다고 診斷한다. 예전보다 輸入은 줄었지만 消費는 더 커졌으니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 것은 當然하다고 主張한다. 金允植은 옛날 英祖가 財政 支出 基準을 바로잡고 國家에서 使用하는 費用을 體系的으로 節減해 數十萬 前을 節約한 것을 例로 들며 “쓸모없는 官廳을 줄이고, 쓸모없는 管理를 도태시키고, 奢侈를 禁하고, 慶弔事費를 節制하고, 나라에서 專賣하고 있는 商品에 稅金을 賦課해 經費에 補充하라”고 建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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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서 무엇보다 賃金이 意志를 다져야 한다고 懇曲하게 注文했다. 그는 “賃金이 뜻을 세움이 確固해야” 한다며 “게을러서는 나라 꼴을 이룰 수 없고, 흐릿해서는 百姓에게 내보일 수 없으며, 公明正大夏至 않고서는 제대로 完成할 수 없다”라고 主張했다. 더욱이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實踐하는 것이 어렵다”라면서 “實踐했는데도 마땅함을 얻지 못했다면 아는 것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다”라고 强調했다. 金允植은 삼정은 數千 年, 數百 年 前부터 施行돼 온 制度인데 唯獨 只今 이 時代에 弊端이 甚한 까닭이 무엇이겠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結局 國家에서 이 制度를 運用함에 節度가 없고, 王이 그 中心을 잡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金允植이 ‘모든 일은 賃金이 修養에 힘쓰고 마음가짐을 바로 하면 自然스레 모두 잘 解決된다’는 式의 抽象的인 對策만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는 田政, 軍政, 歡情에 關해 各各 具體的인 數値를 擧論하면서 實踐이 可能한 政策的 代案을 提示했다. 다만, 이러한 代案도 賃金이 달라지지 않고 政治가 바뀌지 않으면 所用이 없음을 强調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構成員을 괴롭히고 나아가 企業의 存立마저 威脅할 수도 있는 커다란 問題가 發生했다고 치자. 그래서 最高經營者(CEO)가 全社的인 解決策을 注文했다고 假定해보자. 하지만 CEO를 비롯한 任員陣이 旣存의 方式을 바꾸지 않고 狀況 탓만 하며 問題를 克服하려는 意志를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具體的이고 卓越한 代案이 提示된다 한들 效果를 發揮하지 못할 것이다. 問題解決을 위해서는 經營陣의 올바른 狀況 認識과 積極的인 態度, 實踐이 무엇보다 重要하다는 것이 金允植의 對策이 주는 敎訓이다.


    김준태 성균관대 幼學東洋學과 招聘敎授 akademie@skku.edu
    筆者는 성균관대에서 韓國 哲學으로 博士 學位를 받았고 同 大學 儒敎文化硏究所, 留學大學 硏究敎授를 거치며 우리 歷史 속 政治家들의 리더십과 哲學을 硏究하고 있다. 特히 現實 政治에서 朝鮮 時代를 이끌었던 君主와 宰相들에 集中해 多數의 論文을 썼다. 著書로는 『王意經營』 『王의 工夫』 『卓越한 調整者들』 『다시는 神을 부르지 마옵소서』 等이 있다.
    • 김준태 | 성균관대 幼學東洋學과 招聘敎授

      筆者는 성균관대에서 韓國 哲學으로 博士學位를 받았고 同 大學 儒敎文化硏究所, 留學大學 硏究敎授를 거치며 우리 歷史 속 政治家들의 리더십과 哲學을 硏究하고 있다. 特히 現實 政治에서 朝鮮 時代를 이끌었던 君主와 宰相들에 集中해 多數의 論文을 썼다. 著書로는 『王의 經營』 『王의 工夫』 『卓越한 調整者들』 等이 있다.
      akademie@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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