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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처럼 富의 代물림? 꿈같은 얘기, 10年 以上 準備, 스스로 能力 證明해야” | 經營戰略 |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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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 3世 經營者 3人이 말하는 ‘成敗 갈림길’

“드라마처럼 富의 代물림? 꿈같은 얘기
10年 以上 準備, 스스로 能力 證明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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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家業承繼를 富의 代물림으로 보는 否定的인 認識이 많지만 實際 家業을 물려받은 2, 3世들이 말하는 現實은 다르다. 自身과 運命 共同體인 會社를 이어가는 2, 3世들은 傳統을 지켜내면서 革新을 通해 變化에 適應해야 하는 무거운 課題를 안고 있다. 自手成家한 創業者의 카리스마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오랜 歲月 會社를 지켜온 任職員들의 不信 어린 視線에 맞서 自身을 證明해야 한다. 仙步그룹의 2歲 최영찬 仙步엔젤파트너스 代表와 한放유비스㈜ 3歲 최두찬 代表 亦是 이런 過程을 거치며 成功的인 家業承繼를 이뤄냈고, 이는 會社가 再跳躍하는 契機가 됐다. 反面 充分한 準備 없이 家業承繼와 同時에 莫大한 相續稅를 떠안은 高原니트 2歲 고혜진 前 代表는 失敗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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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은 3壘에서 태어났으면서 自己가 3壘打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 美國의 前 NFL 풋볼 코치 배리 스위처가 한 이 말만큼 家業承繼에 對한 사람들의 생각을 잘 表現한 말도 없다. 平生 月給쟁이 身世를 벗어나기 힘든 職場人이나 事業을 해보고 싶어도 資源이 不足해 抛棄하고 마는 大部分의 사람에게 있어 家業을 承繼한다는 것은 크나큰 特權으로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 온 後繼者를 보면 ‘내가 會社를 물려받는다면 훨씬 잘 해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現實에서의 家業承繼는 드라마에서 그리는 것처럼 華麗한 富의 代물림도 아니고 後繼者 자리는 때로 特權이기보다는 避하고 싶은 宿命이 되기도 한다.

    家業承繼에 對한 否定的인 認識이 많지만 그저 父母로부터 물려받은 資産을 아무런 努力 없이 維持하는 一般 相續과 家業을 이어받아 雇傭과 企業을 維持하는 家業承繼는 크게 다르다. 家業承繼는 安定的인 일자리의 根源이 되고 數十 年을 이어온 家業은 수많은 危機에도 우리 經濟를 일으키게 하는 든든한 버팀木이 된다. 이를 위해 政府에서도 圓滑한 家業承繼를 支援하기 위해 여러 制度를 내놓고 있지만 如前히 家業承繼를 가로막는 障礙物은 많다. 實際 家業承繼를 겪은 이들은 오랜 準備와 社會的 責任을 다하는 姿勢로 家業承繼에 臨해야 하며 現實的인 問題를 解決하기 위한 制度 改善이 必要하다고 입을 모은다. DBR은 家業을 成功的으로 承繼한 이들, 그리고 家業承繼에 失敗한 後 새로운 挑戰을 하고 있는 2, 3世 經營人들과 인터뷰를 進行海承繼 過程에 對한 생생한 現場 이야기를 들었다. 3人의 인터뷰를 各其 따로 進行한 뒤 키워드에 맞춰 再整理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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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企業承繼의 롤모델이 되기까지

    최영찬 仙步엔젤파트너스 代表는 仙步그룹의 2世 經營人이다. 仙步그룹은 朝鮮 海洋플랜트 部品을 만드는 仙步工業을 母胎로 하는 釜山의 代表的인 中堅企業이다. 使命인 仙步(船寶)는 ‘배가 보배’라는 뜻이다. 대우중공업과 현대중공업에서 朝鮮 配管技術者로 일하던 최영찬 代表의 아버지, 최금식 會長은 1986年 갖고 있던 300萬 원을 털어 朝鮮 機資材 製造會社를 세웠다. 남의 事務室 한 구석에 놓은 冊床 두 個와 電話機 한 臺가 仙步그룹의 始作이었다. 40餘 年이 지난 只今, 仙步그룹은 船舶 部品을 集積한 모듈 유닛 分野에서 世界 最高의 技術을 갖춘 企業이 됐다. 최영찬 代表는 2005年 滿 25歲에 仙步工業 生産職 社員으로 入社했다. 美國 위스콘신대 經濟學科를 卒業한 뒤 다시 會社로 돌아왔고 2016年 仙步工業 新事業팀을 스핀오프海 投資會社인 仙步엔젤을 세웠다. 新재생에너지를 비롯한 仙步그룹의 新成長動力을 찾기 爲해서다. 2017年에는 라이트하우스라는 國內 最初의 中堅企業 聯合 VC를 만들기도 했다.

    최두찬 代表는 한放유비스㈜를 이끌고 있는 3世 經營人이다. 한放유비스는 國內 消防防災設計監理 分野 1位 企業으로 解放 直後인 1947年 朝鮮消防記載株式會社로 設立돼 1代 최금성 會長, 2代 최진 會長을 거쳐 2017年부터 3代인 최두찬 代表가 家業을 이어오고 있다. 한放유비스의 업力은 大韓民國의 消防防災社 그 自體라고 해도 過言이 아니다. 過去에는 불이 나면 하늘이 내린 罰이라고 생각하고 손을 쓸 엄두도 내지 못했다. 設立者인 최금성 前 會長은 當時 美軍 部隊에서 使用하던 消火器를 보고 1947年 國內 最初 消防 企業인 朝鮮消防記載를 세웠다. 1970年 政府綜合廳舍에 國內 最初로 스프링클러 設備를 施工했고, 仁川國際空港과 三星電子 半導體工場, 롯데월드타워와 IFC 국제금융센터 等 大規模 建築物의 消防施設 設計·監理를 맡았다. 2020年에는 中小벤처企業部의 ‘名文長壽企業’으로 選定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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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後繼者가 됐나.

    최두찬: 어린 時節부터 家業을 잇겠다는 目標로 차근차근 準備해왔다. 長男인 兄이 法曹人의 길을 選擇하면서 自然스레 次男이었던 내가 會社를 물려받게 됐다. 國民 安全과 直結되는 일을 하는 만큼 祖父와 아버지 모두 남다른 使命感으로 일을 해 오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좋은 意味에서 ‘가스라이팅’을 當한 것 같다. 消防 防災 設計는 크게 돈을 많이 버는 事業도 아니고 자칫 잘못되면 法的인 處罰까지 받을 수 있는 莫重한 責任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只今까지 오랫동안 이어온 企業을 여기에서 접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고, 나 亦是 會社가 存在한 德分에 입고 먹고, 工夫할 수 있었기에 一種의 責任感을 느꼈다.

    최영찬: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國內에서 大學을 卒業한 後 2005年 仙步工業 工場에서 生産職으로 일을 始作했다. 鎔接도 하고, 部品을 만들면서 다른 職員들과 똑같이 일하고 배웠다. 엄청난 意味가 있어서가 아니라 現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設計든 品質이든 잘 돌아가는 經營을 할 수 있어서다. 以後 美國으로 건너가 經濟學을 專攻했지만 承繼를 念頭에 두고 進路를 決定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留學을 하면서 벤처 生態系와 旣存 産業이 만나는 部分 等 새로운 分野를 經驗할 수 있었던 게 承繼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됐던 것 같다.

    家業承繼는 어떤 過程을 거쳤나.

    최영찬: 承繼 準備를 相當히 일찍부터 했다. 다른 企業의 境遇를 보면 大部分 承繼 時點이 닥쳐서 서둘러 하는데 仙步그룹은 아버지가 50代 中盤일 때부터 이미 承繼 準備를 始作해 10年 以上 經營權과 所有權 等에 對한 承繼 作業을 進行했다. 普通 會長이 訂正하게 活動하고 있는데 會社 任職員들이 먼저 나서서 承繼 이야기를 敢히 꺼내지 못하는 境遇가 많다. 하지만 平素 任職員들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듣는 企業 文化 德分에 職員들도 거리낌 없이 承繼 이야기를 꺼내고 論議할 수 있었다.

    特히 承繼 그 自體가 아닌 會社의 未來를 計劃하고 準備하기 위한 하나의 部分으로서 承繼가 이뤄졌다. 造船業은 배처럼 크고 느리게 움직이는 産業이다. 하지만 外部와 끊임없이 疏通하면서 製造産業 全般이 빠르게 變化하고 있다는 危機感을 일찍부터 가졌다. 會社가 持續可能하게 成長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動力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切實했는데 그런 次元에서 承繼도 하게 됐다. 後繼者 한 사람만 있다고 될 일이 아닌 만큼 會社의 未來를 이끌어갈 優秀한 人材도 學緣, 地緣을 따지지 않고 登用해왔다. 이분들이 20年 동안 나와 呼吸을 맞추며 新事業을 함께 苦悶하고 만들어 왔다. 後繼者와 함께 일할 任職員까지도 신중하게 準備해온 것이다.

    최두찬: 持分과 經營權을 넘겨주는 것뿐 아니라 經營者가 되기 위한 準備 過程까지 包含해 家業承繼의 意味를 넓게 본다고 하면 20年 넘게 承繼를 準備한 셈이다. 한放유비스는 技術 會社다. 會計 等 行政 業務를 보는 少數의 職員을 除外하면 前 職員의 99%가 엔지니어다. 技術會社 經營者로서 技術에 對해 가장 깊이 理解하고 있어야 營業도 하고 管理도 할 수 있기 때문에 後繼者로서 專門性을 키우는 데 集中했다. 大學에서 産業工學을 專攻했고 2001年부터 會社에 들어와 設計와 監理 일을 始作했다. 當時 國內外에 消防工學을 專門的으로 工夫할 곳이 많지 않았는데 美國 우스터工科大(Worcester Polytechnic Institutes)에 防災工學 碩士課程이 있어 本格的으로 工夫한 後 碩士學位를 받았다. 以後 消防 先進國에서 技術을 배우고 實務 經驗을 쌓기 위해 글로벌 消防 防災 컨설팅 業體인 RJA(Rolf Jensen & Associates, Inc.)에서 7年間 勤務하며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의 消防엔지니어링 業務를 擔當하기도 했다. 서울市立大에서 災難科學 博士學位를 取得했고 嘉泉大와 경기대에서 消防防災 設計와 災難管理 等에 對해 講義도 하고 있다.

    2, 3世들은 傳統은 지키되 革新을 해야 한다는 어려운 課題를 떠안게 된다.

    최영찬: 1世代 企業人은 保守的이다. 피땀 흘려 會社를 이만큼 일궈 놓았으니 只今처럼 維持만 해라는 式이다. 하지만 現象 維持를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旣存 事業에서 原價節減과 生産性을 向上하기는 過去 級成長期 때만큼 쉽지 않다. 마른걸레를 짜내어 보지만 그런 일도 組織 內에서 數十 年間 施行錯誤를 겪으며 잔뼈가 굵은 職員들보다 後繼者가 잘할 수는 없는 課題일 것이다.

    同時에 革新의 課題도 있다. 하지만 많은 2世 經營人이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말리는 아버지의 壁에 부딪힌다. 內部的으로도 2歲를 ‘뭐만 하면 問題를 일으키는 時限爆彈’처럼 바라본다. 感謝하게도 나는 아버지는 勿論 任職員들도 새로운 挑戰을 支持해줬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前부터 資本과 勞動集約的인 方式의 傳統産業은 끝났다고 判斷하고 다양한 試圖를 해보라며 힘을 보태 주셨다. 그 德分에 脫炭素와 같은 時代的 變化에 빠르게 對處할 수 있었다. 脫炭素는 船舶에도 重大한 問題다. 通商 배는 燃料로 低級 原乳를 쓰다 보니 自動車에 비해 1萬 倍 가까이 많은 炭素를 내뿜는다. 仙步엔젤파트너스는 現在 炭素 包집 및 活用을 專門으로 하는 ‘카본밸류’를 設立하는 等 新成長 動力 發掘에 힘쓰고 있다.

    최두찬: 會社의 核心 力量은 지켜나가되 이를 基盤으로 새로운 未來에 對備할 成長 動力을 多邊化하고자 했다. 2世, 3世들이 새로 組織에 들어오면 存在感을 드러내기 위해 旣存에 하던 事業보다는 새로운 것을 追求하면서 自身을 立證하려는 誘惑이 크다. 하지만 經營者가 바뀌었다고 해서 오래 이어오던 核心 力量까지 바뀌는 건 아니다. 이를 잘 繼承하고 基盤을 단단히 한 以後에 새로운 挑戰도 해볼 수 있다. 最近 人工知能(AI)李 飛躍的으로 發展하고 있는데 消防 防災에 AI를 어떻게 活用할 수 있을지 苦悶하고 있다. 일찍부터 關聯 硏究를 하며 데이터를 쌓아온 德分에 政府로부터 消防 安全 빅데이터 센터로 指定되기도 했다. 消防 엔지니어링 데이터와 火災·避難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AI에 學習시켜 消防 防災 技術을 더 高度化할 수 있을 것으로 期待하고 있다.

    家業承繼 過程에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特히 稅金 負擔을 呼訴하는 企業人들이 많다.

    최두찬: 오랫동안 會社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要件을 充足해 家業의 承繼에 對한 贈與稅 課稅 特例 惠澤을 받았다. 그런데도 實際로 豫想했던 것보다 훨씬 苛酷한 稅金이 賦課됐다. 非上場會社다 보니 여러 基準으로 會社의 價値를 매겨 贈與稅를 算定한다. 그런데 이 過程에서 많은 會社의 資産이 非營業 目的으로 分類돼 큰 稅金을 떠안게 됐다. 正確한 稅額을 公開하긴 어렵지만 稅金을 내려고 집을 擔保로 貸出도 받았고 앞으로도 한참은 稅金을 갚아 나가야 한다. 製造業體가 아닌 技術會社라 會社 資産이 그나마 적은 便인데도 이 程度인데 中小 製造業體들이 왜 稅金 때문에 承繼를 抛棄한다고 하는지 理解가 갔다. 그저 數十 年間 같은 자리에서 工場을 運營했을 뿐인데 不動産 價格이 크게 오르면서 工場 敷地 價格이 높게 策定돼 莫大한 稅金이 賦課되는 境遇도 있다고 한다. 稅金을 내려면 結局 工場을 팔아야 하는 地境이 되는 것이 이런 理由 때문이다.

    家業承繼에 對한 否定的인 認識도 如前하다.

    최두찬: 그렇다. 家業承繼에서 企業을 永續한다는 意味보다는 家族企業이라는 點에 傍點이 찍혀 ‘部를 世襲한다’는 否定的인 認識이 많다. 그래서 産業界에서도 家業承繼라는 用語 自體를 企業承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크다. 家族이 企業을 가지고 있거나 家族 構成員이 經營權과 所有權을 가지는 게 重要한 것이 아니라 企業이 오래 持續하도록 하는 것이 重要하다는 생각에서다.

    흔히들 드라마나 映畫에서 그려지는 財閥家의 모습을 생각하는데 實際 家業을 承繼하는 大部分의 中小·中堅企業은 全혀 그렇지 않다. 오너라고 해서 給與도 많이 받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人力難이 甚한데 오너가 一般 職員들에 비해 말도 안 되는 給與를 받는다면 누가 中小企業에 다니려고 하겠나. 非上場 中小企業은 株主에 對한 賠償 體系도 아직 제대로 돼 있지 않은 境遇가 많다.

    최영찬: 家業承繼를 富의 代물림으로 보고 드라마 속 華麗한 財閥 2世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하지만 現實은 全혀 그렇지 않다. 나 亦是 國産 車 K5를 直接 運轉해서 다니고 있고 周邊에서도 外製 車 타고 번지르르한 2世는 본 적이 없다. 萬若 그런 곳이 있다면 會社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 分明하다. 家業을 이은 2歲, 3歲의 境遇 企業의 運命이 곧 自身의 運命이다 보니 그런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會社가 잘 될지 熾烈하게 苦悶하고 恒常 무거운 責任感을 느낀다.

    家業承繼를 抛棄하는 事例도 늘고 있는데
    家業을 꼭 이어야 하는 理由가 있나.


    최영찬: 周邊에서도 그런 苦悶을 하는 企業이 많다. 家業을 물려주고 싶어도 子女가 싫다고 하거나 아예 父母가 子息 苦生시키기 싫다며 承繼를 抛棄하기도 한다. 稅金 負擔을 안고 家業을 이어 가기보다는 經營權과 所有權을 賣却하고 새로운 길을 開拓하겠다는 이들도 많다. 日本에는 數百 年 된 長壽 企業이 많은데 最近에는 家業을 잇지 않고 整理하는 事例가 늘면서 經濟에 큰 負擔이 되고 있다. 韓國에서도 이 같은 現象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家族이 家業을 반드시 承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時節부터 自然스레 體得해 왔을 企業家精神이 끊어지게 되는 것은 아쉽다. 專門經營人이 더 뛰어난 專門性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2世, 3世는 어린 時節 밥床머리에서부터 좋은 經營人이 되기 위한 敎育을 받아왔다. 例를 들어 職員들을 家族처럼 對하는 마음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生産職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한 生産職 職員이 前날 술을 많이 마셔서 出勤을 못했다. 會長님이 집으로 찾아가자 職員은 아픈 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會長님은 火를 내기는커녕 職員 家族에게 돈封套를 쥐여 주면서 “몸이 아플 때까지 일을 많이 시켜서 未安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職員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組織을 이끌어가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經營者의 役割을 배울 수 있었다.

    家族 後繼者의 境遇 會社에 몸담지 않았을 때도 企業과 한 몸처럼 浮沈을 함께 겪어 왔다는 것도 남다른 點이다. 周邊에 2, 3世들을 만나보면 어린 時節 貰房살이는 勿論 집에 빨간 딱紙도 다 한 番쯤은 붙어봤다고 한다. 그런 經驗에서 體得한 것들이 많다. 只今도 經營者로서 決定的인 瞬間이면 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는지 되새겨보곤 한다.

    최두찬: 新生 企業보다 10年, 20年 꾸준히 業曆을 쌓아온 企業이 더 좋은 實績을 낸다는 것은 밝혀진 事實 1 이다. 外換危機와 같은 危機를 數次例 克服해온 長壽 企業은 只今처럼 不確實한 經濟 狀況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남다른 回復彈力性을 갖고 있다. 나 亦是 77年間 큰 事故 없이 잘 지켜온 會社가 내 世代에 흔들리게 된다면 容納하기가 힘들 것 같다. 오래 이어온 會社의 歷史와 價値, 이 會社에 몸담은 任職員과 그 家族들을 위해서라도 會社를 잘 지켜내야 한다는 莫重한 責任感을 늘 느낀다.

    成功的인 家業承繼를 위한 助言 및 堤堰이 있다면.

    최두찬: 家業承繼는 빛나는 王冠만 물려주는 게 아니라는 點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先代는 企業의 經營權과 所有權을 물려주면서 오랫동안 蓄積한 積弊와 惡習도 함께 물려준다. 先代와 後繼者 모두가 이 點을 銘心해야 고칠 것은 고치고 葛藤은 줄일 수 있다. 또 稅金과 關聯해서도 承繼 時 稅金 問題를 專門的으로 다루는 컨설턴트 等 專門家들이 있지만 이들의 도움을 받되 後繼者가 直接 工夫하고 챙겨야 한다는 點을 꼭 말해주고 싶다.

    최영찬: 後繼者는 스스로의 能力과 資質을 더욱 嚴格하게 證明해야 한다. 家業을 承繼하는 企業은 業力이 오래된 만큼 會社에 오래 몸담은 任職員들이 있다. 이들 立場에서는 後繼者가 不足하게만 보일 것이다. 直接 創業한 仙步엔젤에서는 會社의 始作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보니 職員들도 自然스레 오너인 나를 尊重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會社에서는 全혀 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무리 謙遜한 姿勢로 努力하고 애써도 旣存 任職員들에게 創業者와 같이 인정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나의 境遇에는 組織 內部가 아닌 밖에서 成果를 내고 實力을 證明함으로써 後繼者로서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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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家業承繼의 그늘

    承繼와 關聯해 本보기가 되는 롤모델 企業들도 있지만 事實 家業承繼에 成功하는 企業보다 失敗하는 企業이 더 많은 것이 事實이다. 우리 俗談에 ‘富者는 3臺를 못 간다’는 말이 있는데 東西古今을 莫論하고 類似한 表現이 있을 程度로 家業承繼의 어려움은 時代와 國家를 超越하는 眞理로 通用돼 왔다. 家族企業 硏究者인 존 L.워드(John L. Ward) 노스웨스턴대 켈로그經營大學院 敎授의 有名한 硏究 結果 2 는 이 같은 믿음을 뒷받침한다. 1924年부터 1984年까지 60年 동안 美國 일리노이州에서 活動한 製造業體를 對象으로 調査한 結果 家族企業 中 34%만이 1世代에서 2世代로 繼承됐고, 3世代로 이어진 企業은 13%, 4世代까지 간 企業은 3%에 不過했다. 오래前 이뤄진 硏究인데다 地域的 産業的 偏向도 있어 限界를 지니지만 代를 이어 家業을 維持하는 것이 어렵다는 點은 수많은 事例로도 斟酌할 수 있다.

    家業承繼 失敗는 하나의 會社가 消滅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家業에 死活을 걸었던 家族뿐 아니라 會社에 屬한 任職員과 그 家族, 關聯 會社에 이르기까지 波及은 크다. 中小벤처企業硏究院이 2021年 發表한 硏究 結果에 따르면 圓滑한 家業承繼가 이뤄지지 않을 境遇 向後 10年間 廢業 等으로 消滅할 것으로 豫想되는 事業體는 約 32萬5000個, 失職者 數 307萬 名, 損失 賣出額은 約 794兆 원에 達한다.

    고혜진 前 代表는 家業承繼 失敗로 個人 破産에 이르는 等 큰 試鍊을 겪어야 했다. 家業을 접은 只今은 破産 後 再起하는 過程을 담은 유튜브 채널 ‘波瀾萬丈 高代表’를 運營하고 있다. 또한 다른 이들이 自身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關聯 討論會나 講演에 參與하는 等 家業承繼 制度 改善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現在는 家業承繼와 破産의 經驗을 담은 冊도 執筆하는 等 國內 企業人들에게 承繼와 關聯된 敎訓을 傳하기 위해 努力하고 있다. 그로부터 家業承繼 失敗의 아픔에 對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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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家業承繼를 하게 됐나.


    고혜진: 初等學校 5學年 때인 1996年 아버지가 元旦 製造業體 高原니트를 세웠다. 製造 工程의 노하우가 있었고 積極的으로 營業한 德分에 꾸준히 成長해 年 賣出 100億 원臺 企業으로 커졌다. 家業을 물려받겠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는데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經營會計를 專攻한 後 아버지의 健康 惡化로 急히 歸國해 2009年부터 入社해 일을 돕기 始作했다. 그래도 承繼는 먼 後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2013年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會社를 물려받게 됐다. 會社를 賣却하자니 아버지가 남긴 遺産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 到底히 그럴 수 없었다. 當時 어머니를 비롯해 家族들 모두가 큰 衝擊을 받고 힘들었는데 아버지가 自身처럼 여겼던 會社가 繼續되면 그것만으로도 慰安이 될 것 같았다.

    充分한 準備 없이 家業을 承繼해 經營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고: 아버지가 會社를 經營할 때 일을 같이 해봤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었고 熱心히 했다. 原緞을 製造해 衣類業體에 納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直接 衣類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고, 온라인 去來도 始作하는 等 여러 試圖를 했다. 特히 親環境 元旦 需要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플라스틱 再生 原緞을 直接 開發해서 처음으로 職輸出 販路를 開拓했다. 美國에 있는 요가服 業體에서 關心을 보였는데 샘플을 보내 肯定的인 答辯을 얻었고 年間 10億 원 規模의 契約이 막 成事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發 팬데믹이 터지면서 輸出이 막혔고, 그 요가服 業體마저도 門을 닫았다. 國內 營業도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經營을 할 때는 좋은 關係를 이어오던 去來處들이 於此彼 亡할 會社라며 納品 代金을 주지 않고 버티기도 했다.

    破産에 이른 過程은 어떤가.

    고:
    會社를 물려받으면서 相續稅를 내야 했는데 家業相續控除를 받는 代身 當時 法에 따라 10年間 雇傭 人員을 維持하면서 같은 事業을 持續해야 한다는 條件이 붙었다. 3 팬데믹으로 더 以上 人件費를 堪當하기 어려웠지만 雇傭人員을 維持해야 했고, 다른 事業을 해볼 수도 없었다. 2020年 10月, 結局 破産했다. 控除받은 相續稅에 加算稅까지 붙어 數億 원의 稅金을 한꺼번에 내야 해서 집과 가진 資産을 全部 팔고 빚까지 냈다. 法人이 破産하면서 連帶保證 責任을 지게 돼 個人破産度 宣告됐다.

    家業承繼 關聯 制度가 많이 改善됐지만 如前히 갈 길이 멀다는 指摘도 있다.

    고:
    아버지 會社를 물려받았던 때로 돌아간다면 承繼를 아예 안 할 것이다. 會社를 繼續하더라도 控除를 받느니 相續稅를 내고 事業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當時는 事業이 잘돼 돈이 있었으니까 稅金도 낼 수 있었고 結果的으로 控除 要件을 맞추느라 破産이라는 極端的인 狀況까지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다. 承繼 時點에 相續稅를 내야 하는 것도 不合理하다고 본다. 零細한 中小企業을 承繼하는 건 父母로부터 現金이나 上場 株式과 같은 資産을 相續받는 것과 다르다. 會社를 相續받기는 했지만 通帳에 돈 한 푼도 더 늘어나지 않는다. 國家 經濟를 튼튼히 하기 위해 100年 가는 長壽 企業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只今과 같은 相續制度는 承繼 代身 “會社 팔아서 稅金 내라”고 등 떠미는 꼴이다. 이를 補完하기 위해 家業相續制度 等 支援策을 내놓고는 있지만 나의 境遇처럼 오히려 원활한 企業活動을 막는 足鎖가 되기도 하고 까다로운 條件 탓에 活用度가 떨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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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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