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언젠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벌이 사라지면 地球는 몇 年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4年, 5年? 벌이 없으면 水分受粉이 不可能하고, 受粉을 못 하면 나무도, 動物도, 사람도 살 수 없다."
그는 親舊들과 있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親舊들은 웃어넘겼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聖書에서 가장 有名한 逸話는 무엇일까? 아담과 이브가 沙果를 먹은 것 아닐까? 그러나 그 이야긴 聖經에 없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有名한 句節을 쓴 적이 없다.
"죽은 者만이 戰爭이 어떻게 끝나는지 볼 수 있었다.
라만차의 돈키호테 亦是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山草野, 그들이 짖는 것은 우리가 말을 타고 있다는 證據다."
볼테르 亦是 가장 널리 알려진 이 句節을 말한 적도 쓴 적도 없다.
"當身이 말한 것에 나는 同意하지 않소. 그러나 當身이 그 말을 할 權利를 나는 죽을 때까지 지켜줄 것이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헤겔 亦是 이런 글을 쓴 적이 없다.
"理論은 灰色이고, 살아 있는 나무는 綠色이다."
셜록 홈스의 名臺詞 亦是 마찬가지이다.
"親愛하는 왓슨, 이건 아주 기초적인 거라네!"
레닌의 冊이나 傳單 어디에도 이런 글은 보이지 않는다.
"目的이 手段을 正當化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그의 代表作이라고 알려진 다음과 같은 詩를 쓴 적이 없다.
"맨 처음 共産主義者들을 데려갔다./ 그러나 나는 介意치 않았다./ 나는 共産主義者가 아니었으니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作品 中 가장 널리 알려진 詩는 보르헤스가 쓴 것이 아니다.
"人生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더 많은 失手를 해볼 거야."
2004年, 과테말라 政府는 權力은 處罰받지 않는다는 傳統을 一擧에 깼으며, 미르나 막13이 自國 大統領의 命令으로 암살당했다는 事實도 公式的으로 認定했다
政府의 威脅에도 아랑곳없이 軍部의 虐殺에서 살아남은, 故鄕 땅에서 추방당한 原住民들이 徘徊하던 密林과 山岳 地域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證言을 蒐集했다.
"우리 나라에선 冊을 내면 죽은 목숨인데."
그런데도 그女는 冊을 냈고, 結局 칼에 맞아 죽었다.
地球가 太陽의 周邊을 돌고 있다는 事實을 보여준 그의 冊 初版이 막 配布되던 해에 世上을 떴다.
敎會는 이 冊이 거짓일 뿐만 아니라, ‘聖書에 반한다’는 理由로 ‘禁書’로 指定했고, 이를 流布시켰다는 罪로 司祭였던 조르다노 브루노를 火刑에 處했다. 그리고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겐 그 冊을 읽고 믿게 된 事實을 否認하라고 强要했다.
3世紀 半이 흐른 뒤, 바티칸은 조르다노 브루노를 산 채로 火刑에 處한 것을 反省했으며 바티칸 庭園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銅像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 異端者들을 容恕함과 同時에 바티칸은 宗敎裁判所의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樞機卿을 成人에 봉했다. 브루노와 갈릴레오를 起訴하고 裁判했던 性 로베르토는 이제 하늘나라에 있을 것이다.
그리스어에서 ‘選擇’을 의미하던 ‘α?ρεσι?’에서 由來한 ‘異端haeresis’이라는 單語가 ‘틀림’을 의미하는 것으로 決定되었다.
다시 말해, 信仰의 週인 하느님을 자유롭게 選擇하거나 하느님에게 服從하지 않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意味였다.
1963年 오늘, 페르난도15街 죽었다.
그는 自由로운 개였다. 모든 사람의 개이지만, 누구의 所有도 아니었다.
廣場에서 고양이를 쫓아다니는 것이 지겨워지면 親舊인 歌手들과 기타 치는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 나섰다. 그리고 祝祭에서 祝祭로, 音樂 소리만 들리면 따라다니며 즐겼다.
가톨릭 敎會의 首長인 敎皇 베네딕토는 폴란드語로 ‘誤是非엥침’이라 불리는 都市의 庭園을 거닐었다.
散策 途中 어느 곳에 이르자 風景이 바뀌었다.
誤是非엥침을 도이칠란트漁撈는 아우슈비츠라 부른다.
아우슈비츠에서 敎皇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世界에서 가장 有名한 죽음의 工場에서 質問을 던진 것이다.
"神이여. 어디 계셨습니까?"
神은 單 한 番도 住所를 바꾼 적이 없다는 事實을 아무도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물었다.
"神이여, 왜 아무 말씀도 없었나요?"
입을 다물었던 것은 敎會였다는 事實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야기해온 가톨릭 敎會였다는 事實을 아무도 그에게 밝히지 않았다.
19歲 少女가 루앙의 오래된 市場에서 산 채로 火刑에 處해졌다.
그女는 커다란 벙거지를 쓰고 火刑臺에 올랐다. 帽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異端者
常習犯
背敎者
偶像崇拜者
사람들은 그女를 火刑에 處한 다음 江물에 멀리 떠내려가라고 다리 위에서 센 江에 던졌다.
그女는 가톨릭 敎會와 프랑스 王國의 裁判을 받았다.
그女의 이름은 잔 다르크였다.
1537年 敎皇 바오로 3世는 勅書 〈至極히 높으신 하느님Sublimis Deus〉을 發表했다.
新大陸의 原住民들을 保護하기 위해, 勅書는 ‘原住民들도 眞正한 意味에서 人間이며 그런 意味에서 自由와 財産에 對한 統制權을 자유롭고 確實하게 所有하고 使用, 享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奴隸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點을 分明히 했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선 아무도 이 勅書에 對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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