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舊가 많은 사람과 比較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 사람들은 둘 中 누구와 親舊가 되고 싶어할까. 이와 같은 質問을 하면 많은 이들이 '親舊가 많은 사람'이라고 答한다.
親舊가 많다는 것은 이 사람의 人性이 大體로 괜찮고 社會的으로 바람직한 特性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 可能性을 內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카오代의 카우 詩 硏究팀에 依하면 現實은 이와 달라서 사람들은 親舊가 '적은' 사람과 더 親舊가 되고 싶어하는 傾向을 보인다.
한 番씩 돌아가면서 짧은 時間 동안 여러 사람과 對話를 하는 스피드 데이팅을 하게 했을 때 사람들은 自身과 趣味가 비슷한 사람 뿐 아니라 親舊 數가 적은 便인 사람들과 더 親舊 關係를 맺고 싶어하는 傾向을 보였다.
이러한 現象이 나타나는 理由는 뭘까. 硏究者들은 親舊가 많다는 事實은 그 사람이 社會性이 좋고 기타 바람직한 特性을 많이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親舊가 많은 만큼 한 사람에게 割當할 수 있는 時間과 關心의 量은 적을 수 있다고 보았다.
反面 親舊가 적은 사람은 마음이 잘 맞는 한 名 한 名에게 親舊가 많은 사람에 비해 더 많은 時間과 關心을 쏟아부을 수 있다.
勿論 親舊가 적다고 해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많은 사랑과 關心을 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親舊가 많아서 時間이 不足한 사람보다는 親舊가 적은 사람이 더 自身에게 많은 時間과 사랑을 줄 수 있으며 따라서 깊은 關係로 發展할 可能性도 크다고 본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外向性이 높은 사람들의 戀人들이 생각보다 關係 滿足度가 낮다는 發見도 있었다. 萬人의 戀人인 사람은 나만의 戀人이 되지 못하는 傾向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쏟을 수 있는 時間이나 精誠의 量은 制限的이어서 表面的인 親舊 關係 말고 서로를 믿고 依支할 수 있는 깊은 關係의 數는 大體로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親舊 數가 적다고 意氣銷沈해 하지 말자. 그런 當身을 必要로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Si, K., Dai, X., & Wyer, R. S., Jr. (2021). The friend number paradox.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20(1), 84–98. https://doi.org/10.1037/pspi0000244
※筆者紹介
朴軫永.
《나, 只今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心理學 硏究를 알기 쉽고 共感 가도록 풀어낸 冊을 통해 讀者와 꾸준히 疏通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筆名으로 活動하고 있다. 現在 美國 듀크대에서 社會心理學 博士 課程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