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末期에 지어진 住宅으로 高宗의 內侍로 지내던 분이 內侍에서 물러나면서 黃의 下賜金을 받아 이 家屋을 建立. 안채와 行廊채가 全體的으로 ㅁ字形을 이루고 있는데 안채는 ㄱ字形으로 東南向을 하고 있다.
안채의 맞은便에 行廊채가 있고 行廊채에서 다시 直角으로 꺾어서 大門間이 있다.
建物의 뒤로는 앞쪽으로 낮아지면서 人家가 이어지고 四方이 낮은 野山으로 둘러 싸여 있는 地形이다. 안채의 平面 構成이 京妓地方의 典型的인 모습을 이루면서도 집안에서 必要로 하는 또다른 機能을 잘 살린 獨特한 形態를 이루고 있다.
ㄱ字形의 本채가 되는 部分은 한칸 半의 幅을 갖고 있는데 中心이 되는 大廳마루는 두칸으로 이어지고 前面에 單칸의 退마루 두칸이 있다. 大廳마루 右側으로는 안房 두칸이 있고 안房에서 直角으로 꺾어서 부엌 두칸이 東南쪽으로 ㄱ字形을 이룬다.
大廳마루의 左側으로는 1칸半 크기의 건너방이 있다. 一般的으로 京妓地方의 小規模 살림집의 안채는 大槪 이程度의 構成으로 完成된다. 그런데 이집의 境遇는 이 건너방에서 다시 左側으로 두칸이 더 延長되어 各各 1칸의 房이 마련되고 各方의 前面에는 半칸 크기의 退마루가 놓이고 있다. 特히 第一 끝의 房에는 北쪽壁 上部에 祖上의 神位를 모신 龕室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건너방 左側의 2칸은 一種의 舍廊房 役割을 하고 있는데 大廳마루의 退마루와 사랑部分의 退마루는 1칸半 크기로 나와있는 건너방에 依해 自然스럽게 遮斷되고 있다.
典型的인 5量집의 構造를 取하고 있으며 大廳마루와 退마루 사이에는 빗살門의 門이 設置되어 있고 그 위 窓에도 빗살門의 窓을 달았으며 부엌에서는 마당쪽을 向하여 採光窓이 깊게 나 있어서 朝鮮末期의 發達된 建築技術이 먼 地方의 살림집에까지 擴散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行廊채는 6.25事變으로 破壞되었던 것을 後에 옛터에 맞추어 다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