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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를 바꾼 월드컵 70年 飛火|新東亞

歷史를 바꾼 월드컵 70年 飛火

  • 기영노·스포츠評論家 kisports@hanmail.net

    入力 2004-11-12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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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年 7月14日 엘살바도르 陸軍과 空軍이 不時에 탱크와 戰鬪機로 온두라스를 攻擊하자, 온두라스度 엘살바도르의 여러 都市를 爆擊했다. 蹴球 때문에 兩國 國民이 憾情싸움을 벌이고, 外交關係를 斷絶하더니, 及其也 戰爭을 일으킨 것이다.
    2001年 12月1日 釜山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있었던 2002 한·日월드컵 組抽籤에서 韓國은 포르투갈, 폴란드, 美國과 함께 D組에 配定됐다. 2001年 11月 現在 FIFA(國際蹴球聯盟) 랭킹 4位인 포르투갈은 美國(20位) 폴란드(33位) 韓國(43位)보다 分明히 한 手 위다. 韓國으로서는 豫選 마지막 競技로 벌어질 포르투갈戰 結果에 따라 월드컵 16强進出 與否가 決定될 可能性이 높다. 포르투갈은 1966年 잉글랜드월드컵 때 突風의 팀 北韓에 3臺0으로 밀리다가 5代3으로 逆轉勝을 거둔 팀이다. 萬若 北韓이 포르투갈을 꺾었다면 北韓은 ‘월드컵 4强’이라는 엄청난 記錄을 남길 뻔했다. 그런데 北韓은 왜 3代0으로 리드하던 게임을 망치고 말았을까.

    北韓은 當時 4條에서 蘇聯, 칠레, 이탈리아와 만났다. 그러자 蹴球專門家들은 이탈리아와 蘇聯이 8强에 오를 것이며 칠레가 伏兵이라고 評價했다. 北韓을 言及한 專門家는 單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北韓 選手들은 全員이 100m를 11秒臺에 뛰는 駿足이었으며, 2年餘 동안 軍部隊에서 特殊訓鍊을 받아 90分을 뛰고도 남을 만큼의 體力을 갖추고 있었다.

    北韓은 첫 競技에서 蘇聯의 말리페에프 選手를 막지 못해 0對3으로 무너졌다. 그러나 두番째 競技인 칠레戰에서 後半 43分 박승진 選手가 南北韓 選手로는 最初로 골을 터뜨려 1對1로 비겼다. 自信感을 얻은 北韓은 豫選 마지막 競技인 이탈리아戰에서 前半 41分 ‘東洋의 眞珠’ 박두익 選手가 決勝골을 터뜨린 데 힘입어 1對0으로 勝利하며 월드컵 歷史上 最大의 異變을 일으켰다. 巨艦 ‘이탈리아號’를 擊沈시킨 北韓 選手들은 미들즈브러 스타디움에 모인 1萬8000餘 名의 觀衆 앞에서 ‘김일성 首領 萬歲’를 목이 터져라 외쳤고, 觀衆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祝祭를 벌였다. 그때가 1966年 7月19日이었다. 그런데!

    들뜬 雰圍氣가 하루 이틀 지나자 ‘이제 우리는 目標를 達成했지 않냐’는 自慢感이 澎湃해진 選手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英國의 뒷골목을 團體로 찾게 되었다. 이들은 다음날 브라질을 꺾은 포르투갈과 8强戰을 치러야 한다는 事實도 잊은 채 밤늦도록 하얀 皮膚를 耽溺했다.

    北韓과 포르투갈의 準準決勝이 열린 리버풀 스타디움에는 5萬1780名의 觀衆이 모여들었다. 豫選이 벌어졌던 미들즈브러 球場의 1∼2萬 觀衆과는 次元이 달랐다. 滿員 觀衆을 본 北韓 選手들은 없던 힘까지 솟는 듯했다. 스페인 主審 가르데아자발이 휘슬을 불기가 무섭게 23秒 만에 박승진이 포르투갈 골문을 갈랐다. 선제골을 얻어맞은 포르투갈 選手들은 ‘어! 이거 普通내기가 아니네’라며 反擊했다. 그러나 機械처럼 돌아가는 北韓의 組織力을 制壓하지 못했다. 21分頃 이동운이 追加골을 터뜨렸고, 1分 뒤 陽性國이 세番째 골을 성공시켰다.



    前半戰 中盤이 지나지 않아 3代0 스코어라면 相對팀은 抛棄할 만한 口實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北韓 選手들은 거기까지가 限界였다. 英國의 뒷골목만 가지 않았어도 90分이 아니라 120分 延長戰까지 消化할 수 있었을텐데….

    北韓이 지친 모습을 보이자 포르투갈 選手들은 ‘검은 豹범’ 에우세비오를 내세워 總反擊에 나섰다. 에우세비오는 前半 27分부터 後半 14分까지 32分 동안 無慮 4골을 넣어 4代3으로 競技를 뒤집었다. 그리고 後半 33分 호세 아우구스吐 選手의 다섯番째 골이 터지면서 北韓은 追擊할 意志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北韓 突風이 사그라진 理由

    軍人 出身 전두환 大統領이 스포츠界에 남긴 에피소드가 많다. 오죽하면 ‘스포츠大統領’이라는 말을 들었을까? 전두환 大統領은 프로복싱 世界타이틀매치를 보다가 電話를 걸어 코치(選手)에게 作戰을 指示하고, 텔레비전으로 스포츠中繼를 視聽하다가 재미있다고 생각되면 느닷없이 競技現場으로 달려갔다.

    월드컵 舞臺에서도 軍人 出身의 極盛(?)은 유별났다. 1974年 西獨월드컵 2條에는 자이레, 브라질, 스코틀랜드, 유고가 屬해 있었다. 當時 軍事 쿠데타를 일으킨 모부투 將軍이 政權을 掌握한 자이레는 豫選 첫 競技에서 스코틀랜드에 0對2로 敗했다. 이제 유고와의 2次戰에서도 敗하면 脫落이 確定的이었다. 最終 3次戰 相對는 브라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자이레는 遺稿展에 總力을 기울이기로 했다. 그런데 何必이면 자이레 監督이 유고 出身의 비디値였다. 모부투 將軍은 或是 비디値가 最善을 다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몇 날을 苦心하던 모부투는 代表팀에 “비디치를 解雇하라”는 緊急電文을 내려보냈다. 代身 現地에 가있던 體育部長官한테 監督職을 맡으라고 指示했다. 그야말로 蹴球의 ‘軸’자도 모르는 體育部長官이 猝地에 월드컵代表팀 司令塔에 앉게 된 것이다.

    結果는 뻔했다. 자이레는 유고에 0對9로 大敗했다. 모부투는 브라질戰을 앞두고 또다시 專門을 보냈다. ‘體育部 長官으로는 안된다’는 判斷이 섰기 때문이다. 다시 監督을 바꾼 자이레는 브라질에도 0對3으로 敗해 3競技에서 14골을 許容하며 單 한 골도 넣지 못하고 豫選 탈락했다.

    韓國도 98프랑스월드컵 때 멕시코에 1代3, 네덜란드에 0臺5로 잇따라 敗하자 차범근 監督을 中途 解任한 바 있다. 아마 전두환 大統領이 그때까지 執權하고 있었더라면, 車監督에게 電話를 걸어 “마지막 벨기에 戰에서는 自信感을 잃은 金秉址 골키퍼를 빼고 서동명 골키퍼를 넣고, 홍명보를 미드필드에 配置하라”는 ‘特命’을 내리지 않았을까.

    最近 外信은 蹴球英雄 디에고 마라도나가 2003年 아르헨티나 大統領選擧에 出馬할 카를로스 메넴(71) 前大統領의 러닝메이트가 되고 싶어한다는 消息을 傳했다. 마라도나는 政治(副統領)를 하고 싶은 것이다. 마라도나는 自身의 永遠한 라이벌 펠레가 브라질에서 體育部長官을 지냈으니 自身은 그보다 높은 벼슬을 願하는지도 모른다. 마라도나 하면 ‘神의 손’을 빼놓을 수 없다. 1986年 멕시코월드컵이 열릴 무렵 마라도나의 蹴球實力은 絶頂에 達해 있었다.

    마라도나는 A組 豫選에서 韓國의 허정무 等 찰거머리 같은 守備手들에게 差異고 넘어지면서도 自己實力을 十分 發揮했다. 월드컵 歷史의 한 페이지를 裝飾한 問題의 8强戰. 相對팀 잉글랜드도 아르헨티나 攻擊의 核 마라도나를 徹底히 마크했다. 後半 6分頃까지 0代0이었다.

    그 무렵 아르헨티나의 발다노가 잉글랜드 守備의 한 軸을 무너뜨리더니 골문 앞으로 길게 센터링했다. 잉글랜드 골키퍼 쉴턴은 높이 뜬 공을 向해 치솟았고, 그 앞에서 알짱거리던 마라도나도 함께 점프했다. 方向이 바뀐 공이 잉글랜드 門前으로 빨려 들어가자 마라도나가 두 손을 들어 歡呼했다.

    神의 손, 神의 발

    쉴턴 골키퍼의 伸張은 181cm이고 마라도나는 쉴턴보다 16cm나 작은 165cm였다. 게다가 골키퍼는 점프하면서 손을 使用할 수 있으니 마라도나보다는 적어도 50cm 以上 有利하다. 그런데 땅딸보 마라도나에게 當했으니 쉴턴은 어처구니 없었다. 아즈테카競技場에 모인 12萬 名에 가까운 觀衆들도 마라도나의 妙技에 아낌없는 拍手를 보내주었다. 主審 튀니지의 알리 베歲나우르는 卽時 아르헨티나의 得點을 宣言했다. 그러나 뒤늦게 마라도나의 핸들링을 알아차린 쉴턴이 主審에 强力하게 抗議했다.

    “마라도나의 머리를 맞고 들어간 게 아니라 손으로 처넣었다.”

    잉글랜드의 强力한 抗議에도 主審은 한番 내린 判定을 飜覆하지 않았다. 競技 後 寫眞과 TV畵面을 分析한 結果 마라도나가 왼손으로 처넣은 것이 確認되었다. 그러자 마라도나는 妙한 말로 反則을 認定했다.

    “내 손이 아니라 ‘神의 손’李 골을 넣은 것이다.”

    아닌 밤中에 ‘神의 손’이라니. 正말 기막힌 表現이다. 하긴 골키퍼 쉴턴이 손을 뻗으면 2m가 넘을 것이다. 그러나 키 작고 八道 짧은 마라도나는 아무리 손을 뻗는다 해도 180cm 程度일 것이다. 그런데 主審도 가리지 못할 만큼 빠르고 才致있게 손으로 쳐 넣었으니 確實히 ‘神의 힘’을 빌렸는지도 모른다. ‘神의 손’이 아니라 ‘神의 힘을 빌린 장난’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不過 3分 後 마라도나는 ‘神의 발’로 잉글랜드 守備陣을 蹂躪했다. 월드컵 史上 가장 ‘華麗한 골’을 터뜨린 것이다.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은 마라도나는 40餘m를 혼자 드리블해가며 無慮 5名을 제치고 골을 성공시켰다.

    얼떨결에 두 골을 許容한 잉글랜드는 戰列을 가다듬어 猛反擊을 폈으나 後半 36分 리네커가 한 골을 挽回하는 데 그쳤다. 蹴球 宗主國 잉글랜드가 마라도나 한 名에게 籠絡당한 것이다. 以後 마라도나는 벨기에와의 準決勝戰에서 혼자 2골을 터뜨려 아르헨티나를 決勝戰에 올려놓았고, 西獨과의 決勝戰에서는 西獨 守備陣營의 魂을 뺀 絶妙한 前進패스로 브라운, 발다노, 부르차가의 得點을 도왔다. 3代2. 아르헨티나가 두番째로 월드컵을 制霸한 것이다.

    2002年 한·日월드컵 公認球 피버노바는 歷代 蹴球공 가운데 가장 彈力이 뛰어나고 스피드가 좋아 벌써부터 골키퍼 受難時代를 豫告하고 있다. 월드컵에서는 1970年 멕시코大會부터 公認球를 使用해왔다. 以前까지는 개최국이 提供하는 공을 쓰는 것이 慣例였다.

    1930年 우루과이월드컵에서는 全般과 後半에 各各 다른 公認球를 使用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決勝戰에 오른 아르헨티나가 自己네 공을 使用하자고 提議하자, 개최국으로 決勝까지 進出한 우루과이가 反撥한 것이다. 結局 토스를 통해 아르헨티나側이 이겨 前半戰은 아르헨티나 공으로, 後半戰은 우루과이 공으로 競技를 벌였다. 偶然인지는 몰라도 아르헨티나 공으로 競技를 한 前半戰은 아르헨티나가 앞섰고(2대1), 우루과이 공을 使用한 後半戰에서는 우루과이가 一方的으로 優勢했다(3대0).

    1930年 우루과이大會는 첫 월드컵이라 그런지 해프닝이 많았다. 優勝候補인 아르헨티나의 센터포드 페레이라가 學期末 試驗을 치르기 위해 歸國했고, 페레이라 代身 出戰한 18살 高校生 스타빌레가 데뷔前인 멕시코戰에서 월드컵 史上 最初로 해트트릭을 記錄했는가 하면, 得點王(8골)까지 차지했다.

    1970年代 輕微한 小兒痲痹를 앓은 브라질의 자갈로 選手가 話題가 되기도 했지만, 1930年 우루과이大會에서는 優勝팀 우루과이에 한쪽 팔이 없는 카스트로 選手가 있었다. 오른팔이 없는 카스트로는 팔의 힘이 다리에 몰렸는지 大砲알 같은 오른발 슈팅으로 페루戰에서 決勝골, 아르헨티나와의 決勝戰에서 쐐기골을 터뜨렸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1兆 豫選에서는 後半 36分 아르헨티나의 몬티 選手가 한 골을 넣어 4代2街 된 뒤 프랑스의 猛烈한 反擊이 이어졌다. 드디어 39分頃 프랑스의 란第예르 選手가 疾風같이 아르헨티나 陣營으로 들어갔다. 골키퍼와 1對1 狀況. 그런데 란제예르가 슛을 날리는 瞬間 브라질의 길베르토 레고 主心이 휘슬을 불어버렸다. 時間이 6分이나 남았을 뿐만 아니라 設使 時間이 다 됐더라도 슈팅까지는 許容하는 게 慣例인데 그야말로 越權行爲를 한 셈이다. 프랑스 選手들과 벤치에 있던 프랑스 코칭스태프까지 加勢해 主審에게 抗議하자 主審은 善心과 相議한 뒤 自身의 잘못을 認定하고 6分間 競技를 延長했다. 그러나 프랑스 選手들은 이미 리듬이 깨진 데다 땀까지 식어 勝負를 뒤집지 못했다.

    엘살바도르는 1970年 멕시코월드컵에 出戰하기 위해 온두라스와 戰爭까지 치른 나라다. 엘살바도르는 戰爭의 後遺症으로 數千 名이 목숨을 잃고 本選에 進出했으나 홈팀 멕시코에 골을 도둑 맞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엘살바도르는 1條에서 멕시코, 蘇聯, 벨기에와 한 組를 이뤘다. 엘살바도르는 첫 競技에서 벨기에에 0對3으로 敗한 뒤, 2次戰 相對인 멕시코戰을 별렀다. 그러나 멕시코는 만만치 않은 相對였다. 두 팀은 前半 終了 直前까지 0對0 無勝負를 이루고 있었다.

    終了 휘슬이 울릴 무렵 멕시코가 自己 陣營에서 파울을 犯했다. 이집트 主審은 엘살바도르의 프리킥을 宣言했다. 絶好의 機會를 맞은 엘살바도르 選手들이 프리킥을 어떻게 찰 것인가 熟議하는 사이에 멕시코의 페레스가 그 공을 재빨리 同僚選手에게 連結해주는 게 아닌가.

    엘살바도르 選手들은 ‘主心이 휘슬을 불어 페레스에게 警告를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서있었다. 한便 페레스로부터 공을 건네받은 발디비아는 밑져야 本錢인 셈치고 그 功을 엘살바도르 골문에 차 넣었고, 엘살바도르 골키퍼는 어처구니없는 狀況을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집트 主審 칸딜은 當然하다는 듯이 골을 宣言했다. 어리둥절한 것은 엘살바도르 選手들뿐만이 아니었다. 골을 성공시킨 멕시코 選手들도 좋아하기는커녕 어안이 벙벙했다. 아즈테카 스타디움에 모인 10萬3000餘 觀衆들의 反應은 웃음, 喊聲, 揶揄로 갈라졌다.

    월드컵 初有의 도둑 骨

    엘살바도르 選手들은 곧바로 主審에게 달려가 抗議했다. 그러나 主審은 判定을 飜覆하지 않았다. 온두라스와의 蹴球戰爭은 勿論 實際 戰爭에서도 이긴 엘살바도르 觀衆들은 살기가 騰騰했다. 곧 暴發할 것 같은 雰圍氣였다. 그때 한 발의 銃聲이 울렸다. 主審에게 揶揄를 보낸 멕시코 觀衆을 向해 멕시코의 ‘愛國者’가 拳銃을 쏜 것이다. 이 한 발의 銃聲 때문에 엘살바도르 觀衆들의 喊聲이 잦아들었다.

    只今도 蹴球에서 美國이 잉글랜드를 이기기는 어렵다. 勿論 過去에는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1950年 브라질월드컵에서 美國은 잉글랜드를 꺾었다. 이것은 1966年 잉글랜드월드컵에서 北韓이 이탈리아를 누른 것과 함께 ‘월드컵 2代 異變’으로 불리고 있다.

    當時 2條에는 美國, 잉글랜드, 스페인, 칠레가 屬해 있었다. 잉글랜드는 비록 월드컵 舞臺에 첫선을 보였지만 蹴球 宗主國이었고, 올림픽에서도 威力을 發揮한 강팀이었다. 더구나 첫 競技에서 美國은 잉글랜드보다 한 수 아래인 스페인에 0對1로 졌고, 잉글랜드는 칠레에 2對0으로 이겼다.

    競技가 열리는 인디펜덴시아 스타디움에는 뻔한 勝負 탓인지 1萬5000名의 觀衆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휘슬이 울리면서 잉글랜드가 數十 次例의 찬스를 맞았지만 美國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時間이 지날수록 잉글랜드는 焦燥해졌고, 美國 選手들은 士氣가 올랐다. 드디어 運命의 前半 37分. 美國의 레디 게티엔스가 잉글랜드의 골문을 갈랐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前半戰을 0對1로 마친 잉글랜드 選手들은 後半戰에 들어가자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美國 보르機 골키퍼의 신들린 듯한 防禦壁을 뚫지 못했다. 다른 競技場에서 美國의 競技結果를 기다리던 記者들은 美國이 잉글랜드를 1對0으로 이겼다는 消息에 唐慌했다. 當時 ‘잘못 들었겠지’라고 지레 斟酌하고 잉글랜드가 美國을 1對0으로 이겼다는 記事를 送稿한 記者들도 많았다.

    2002 한·日월드컵에서는 개최국 韓國, 폴란드, 포르투갈과 함께 D組에 屬해 있는데 果然 1950年 브라질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擊破했던 것처럼 D組 最强 포르투갈을 꺾는 異變을 일으킬 수 있을까.

    蹴球는 어느 程度의 몸싸움이 許容되고 또 발을 使用하기 때문에 主審이 競技運營을 잘못하거나 兩팀 選手의 感情이 極에 達하면 事故가 생기게 마련이다.

    1954年 스위스월드컵에서 맞붙은 헝가리와 브라질은 兩팀 選手들이 얼마나 激烈하게 싸웠는지 只今도 ‘베른의 亂鬪劇’이라 불리고 있다. 當時 世界 最高의 攻擊手 푸스카스를 保有한 헝가리는 無敵이었다. 그리고 브라질은 홈에서 열린 지난 大會에서 우루과이에 덜미를 잡혀 이番에는 반드시 優勝을 차지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헝가리와 브라질의 準準決勝戰은 3萬 名을 收容하는 베른의 반크 도르프 競技場에서 열렸다.

    伯仲勢로 豫想했지만 前半戰이 始作되자마자 3分 만에 헝가리의 히데구치 選手가 첫 골을 터뜨렸다. 그런데 히데구치 選手가 슛을 하려는 瞬間 브라질 守備手가 히데구치의 팬티를 잡아챘다. 공은 이미 골문을 갈랐으나 히데구치는 下半身이 그대로 드러나는 우스운 꼴이 됐다. 蹴球에서 競技 途中에 유니폼을 살짝 잡아당기거나 손가락으로 허리를 쿡 찌를 境遇는 種種 있으나 아예 옷을 벗기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히데구치가 侮辱을 當했다고 생각한 헝가리 選手들은 理性을 잃었다. 그리고 한 골을 먼저 빼앗긴 브라질 選手들은 그들대로 火가 나 兩팀 選手들은 亂鬪劇을 벌였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고 했던가. 選手들 싸움에 觀衆들까지 加勢해 서로 치고받는 亂場판이 되었다. 警備警察이 호루라기를 불어 겨우 진정시켰지만, 이미 競技는 蹴球가 아니라 蹴球를 假裝한 格鬪技였다. 그래도 골은 繼續 터져 前半戰은 2代1로 헝가리가 앞섰다. 後半戰 들어 헝가리의 란토스 選手가 다시 한 골을 追加해 3代1이 되자 브라질이 理性을 찾기 始作했다.

    後半 20分頃 브라질의 디디가 헝가리 門前에서 決定的인 찬스를 잡아 슛을 하려는 瞬間 180cm가 넘는 長身 守備手 브盞스즈키가 디디를 온몸으로 덮쳤다. 디디는 슛은 고사하고 브盞스즈키의 肉重한 몸에 깔려 負傷을 當했다. 이를 본 브라질 選手들이 브盞스즈키에게 달려들었고 헝가리 選手들도 이에 맞섰다.

    한바탕 亂鬪劇은 먼저 주먹질을 한 브라질의 土地 選手가 退場당하는 것으로 鎭靜됐다. 競技는 다시 續行되었으나 이건 차라리 싸움박질이었다. 한番 패스할 때마다 주먹질하는 場面이 벌어졌다. 어쩌다 審判이 反則을 宣言하면 누구랄 것도 없이 몰려가 審判을 聲討했다. 審判은 또다시 브라질의 산토스와 헝가리의 콕시스를 退場시켰다.

    迂餘曲折 끝에 競技는 헝가리의 4對2 勝利로 끝났다. 그러나 勝利의 기쁨에 醉해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고 있는 헝가리 選手들을 向해 아직도 憤이 풀리지 않은 브라질 選手들이 달려들었다. 샤워場과 라커룸으로 亂鬪劇이 이어진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줄리메 컵

    2002 한·日월드컵에서 優勝하면 FIFA 컵을 받는다. 그러나 1970年 멕시코大會까지는 줄리메컵을 授與했다. 줄리메컵은 월드컵을 만드는 데 産婆役을 했던 프랑스人 줄리메 氏의 業績을 기리고 그 뜻을 받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1966年 월드컵 개최국인 잉글랜드는 大會 開幕 3個月을 앞두고 이 컵을 全 大會 優勝國인 브라질에서 잉글랜드로 옮겨와 一般人에게 公開했다.

    그런데 줄리메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寺院 展示室에 곱게 모셔둔 줄리메컵이 없어진 것은 1966年 7月3日, 大會 開幕을 不過 一週日 앞두고서였다. 런던 警視廳에 非常이 걸린 것은 勿論 大會 組織委員會도 어쩔 줄을 몰랐다. 마침 大會 當日 런던으로 遠征 가서 줄리메컵을 훔치겠다고 큰소리 치던 브라질 出身 소매치기 반더 산토스가 變死體로 發見되자 브라질은 브라질臺로 어수선했다.

    盜難 消息이 全世界로 퍼져나가면서 英國政府의 體面도 말이 아니었다. 及其也 警察이 總動員되었다. 言論을 통해 國民에게 呼訴하고 懸賞金까지 내걸었으나 사라진 컵은 돌아오지 않았다. 大會組織委員會는 優勝컵 없이 大會를 强行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 만들 것인가를 놓고 深刻한 苦悶에 빠졌다.

    그런데 奇跡 같은 일이 일어났다. 前 英國人, 아니 全世界가 애타게 찾던 黃金의 줄리메컵을 엉뚱하게도 개가 입에 물고 나타난 것이다. 런던 近郊 노우두 山 속에 사는 코베트라는 農夫의 個人 ‘피클스’가 뒷山에서 發見하고 물고 나온 것이다. 아마 어떤 도둑이 큰돈이 될 줄 알고 컵을 훔쳤다가 世上이 너무 시끄럽자 아무데나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以後 줄리메컵은 30萬파운드(韓貨 約 27億원)의 保險에 들었다.

    그後 줄리메컵은 브라질이 가장 먼저 3番 월드컵 優勝을 차지하면서 永久 所有權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브라질 蹴球協會의 失手로 또다시 盜難을 當했다. 只今 브라질이 保有하고 있는 줄리메컵은 模造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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