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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法服 벗은 部長判事가 金命洙 大法院長에게 보낸 便紙|新東亞

갓 法服 벗은 部長判事가 金命洙 大法院長에게 보낸 便紙

“大統領이 判事 앞에서 ‘촛불精神’ 말하던 날, 난 辭表를 썼다”

  • 김태규 前 釜山地法 部長判事

    taekyuster@gmail.com

    入力 2021-02-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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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法官으로 일하며 가장 不快했던 날

    • 大統領의 自信感과 法院의 卑屈함

    • 政權이 司法府 全體를 차지하는 方法

    • 法院 안에서 法院을 허무는 者들

    • 政權 獨走에 스스로 무릎 낮춘 司法府

    김태규 前 釜山地法 部長判事는 現職 判事 時節 法曹界 안팎 懸案에 對한 所信을 거침없이 밝혀 ‘Mr. 쓴소리’로 불렸다. 2月 22日子로 法服을 벗은 그가 司法府를 떠나며 느끼는 所懷를 ‘신동아’에 보내왔다. <編輯者 週>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文在寅 大統領이 2018年 9月 13日 서울 瑞草區 大法院에서 열린 司法府 70周年 記念式에서 祝辭를 하고 있다. [靑瓦臺寫眞記者團]

    2018年 9月 13日 大韓民國 司法府 70周年 記念式이 열렸다. 司法府뿐 아니라 大韓民國 모든 國民에게 경사스러운 날이 될 수 있었지만, 나는 法官으로 勤務하던 中 가장 不快했던 날로 記憶한다. 大統領이 大法院 中央홀에서 ‘司法 70周年 記念辭’를 하면서 한 말 때문이다. 

    “1700萬 個의 촛불이 憲法 精神을 회복시켰고, 그렇게 回復된 憲法을 통해 國民主權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中略) 저는 촛불 精神을 받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切感하고 있습니다. 그 무게가 司法府 (中略) 라고 다를 理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엇이 잘못인지 覺醒하기 어렵고, 또 어떤 사람은 名門에 깊은 感銘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날 興奮한 나머지 혼자 辭職書를 作成하고는 鬱憤에 차서 平素 交流하는 先輩 法官에게 電話해 激情을 吐露했다. 興奮이 가라앉은 뒤 辭職書는 없앴지만, 그날의 侮蔑感은 只今까지 殘香으로 남아 있다. 

    大統領이 自身의 政治的 支持基盤을 形象化한 이미지를 國家 最高 價値로 추어올리고, 그것을 憲法 精神과 등치(等値)한 것은 憲法을 至極히 無禮하고 恣意的으로 評價한 行爲다. 또 이러한 評價를 法院이 받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法院을 自身이 얼마든지 香徒(向導)할 수 있는 組織으로 본 것으로 理解됐다. 이런 侮辱的 表現에 오히려 和答하며 “國民主權을 回復했다”고 踏査하는 大法院長 記念辭에 아마 相當數 法官은 더 큰 絶望感을 느꼈을 것이다. 



    假定해 보자. 後날 촛불示威를 主導하던 勢力이 衰退하고, 太極旗 示威를 主導하던 勢力이 浮上했다. 그들이 支持하는 大統領이 大法院 中央홀에 와서 “太極旗 精神을 司法府가 받들어야 한다”라고 말하면, 果然 現 政權 構成員과 그 極烈 支持者들은 首肯하고 가만히 있을까. 촛불 示威든 太極旗 示威든 이미 政治化돼 굳어진 이미지를 大法院 안마당에 들이면 안 된다. 조금만 생각하고 立場을 바꿔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을 大統領이 아무 問題意識 없이 말했다.
     
    大統領의 이런 自信感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생각해 보면 結局 司法府에 對한 自信感에서 비롯된 것이다. 大法院에서 그런 程度 言辭를 해도 누구 하나 自身의 不適切한 行動에 對해 指摘하지 않을 것이라는 餘裕와 司法府에 對한 無視가 背景에 있었다고 본다. 

    나는 그날 ‘大韓民國 法院’李 새겨진 冊子 위에 촛불을 얹은 寫眞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大韓民國 法院 위에 올라탄 촛불의 傲慢함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얼마 後 法曹人 後輩 한 名이 多急하게 電話를 걸어와 “先輩님, 그 寫眞을 빨리 내리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勸誘했다. 많은 法曹人이 그렇게 촛불로 形象化된 權力에 對한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 當時 政權은 司法府를 一介 行政部處에도 못 미치는 位相으로 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大法院長은 이런 大統領의 司法府 獨立에 對한 沒理解를 指摘할 意志가 全혀 없었다. 

    政權이 찍은 者들에 對한 拘束令狀은 마치 自動販賣機가 物件을 내놓듯 發付됐고, 政權이 지키려는 者들에 對한 拘束令狀은 마치 自動販賣機에 不良 鑄貨를 넣은 듯 棄却되는 事例가 頻繁했다. 判事끼리 私席(私席)에 모여 拘束令狀 發付 可能性을 가늠하면서, 該當 事案 內容이나 疏明資料 具備 與否를 따지는 게 아니라, 令狀擔當 判事 性向을 參酌해 意見을 내놓았다.

    政權이 大法院 全體를 차지하는 方法

    政權을 가진 者가 司法府를 掌握하려 하는 것은, 옳지는 않지만 當然한 心情의 發露일 수 있다. 勿論 法院이 檢察처럼 能動的으로 搜査하는 權力은 아니다. 하지만 結局 最終 判斷이 이뤄지는 곳이니, 法院을 掌握하면 그 判斷으로 政權의 敵을 斷罪하고, 政權의 同志에겐 免罪符를 줄 수 있다. 誘惑을 느끼는 게 當然하다. 

    法院을 掌握하는 方法으로는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强壓으로 政權 要求에 忠實하도록 要求하는 方法, 다른 하나는 政權 要求에 充實할 것 같은 者를 司法府에 심는 方法이다. 電子는 直接的이고 當場 效果가 있을 듯 보이지만, 實狀은 法官들의 抵抗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大衆은 그런 司法府를 同情하는 態度를 보이게 된다. 들이는 費用에 비해 副作用이 크고 效果가 작다. 反面 司法府 內에 同志를 심는 건 效果的인 方法이다. 抵抗이 없을 뿐 아니라 個別 事案別로 每番 具體的인 要求를 할 必要가 없다. 모든 事件에서 該當 同志들이 自發的으로 政權에 유리한 判斷을 내려줄 것이다. 

    여기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客觀的으로 確認할 수 있는 領域이 아니다. 그러니 家庭(假定)의 領域에서 苦悶해 보자. 文在寅 政權은 出帆 後 司法府 內에서 ‘트로이 木馬’가 돼 自己들에게 助力해 줄 內應者(內應者)를 찾았을 수 있다. 그 適任者로 金命洙 當時 春川地方法院腸이 物望에 올랐을 可能性이 있다. 前例에 비춰보면 대단히 破格的이고 無理한 人事가 될 수 있지만, 政權 處地에서는 相當한 安全瓣을 갖게 되는 長點이 있다. 

    金命洙 大法院長은 大韓民國 第16代 大法院長이다. 過去 조진만 大法院長이 3代 및 4代, 민복기 大法院長이 5代 및 6臺를 各各 在任했으니, 前職 大法院長 數는 모두 合해 13名이다. 이 中 金炳魯 初代 大法院長은 史上 첫 大法院長으로, 當然히 大法官 經歷을 가질 수 없다. 그 外 大法院長 12名 가운데 조진만 大法院長을 除外한 全員이 任命 前 大法官 經歷을 갖고 있었다. 조진만 大法院長은 法務部 長官을 지냈다. 

    1968年 就任한 민복기 大法院長부터 2017年 任期를 마친 梁承泰 大法院長까지, 約 50年의 歲月 동안 大法官을 지내지 않은 사람이 大法院長이 된 前例가 없다. 大法官이 長官級인 點을 勘案하면, 長官級 職位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大法院長이 된 境遇는 金命洙 大法院長이 처음이자 唯一하다. 

    이런 破格 人事를 통해 政權이 노린 수가 무엇인지 推測해 보면 이렇다. 金命洙 大法院長은 우리法硏究會 會長 出身이다. 이처럼 政權과 共感帶가 큰 人物을 승진시킬 必要性이 充分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를 大法官에 任命하면 大法院에서 차지할 比重이 全體 大法官 14名 가운데 1名, 卽 14分의 1에 그친다. 前例를 깨고 無理라는 批判을 甘受하며 그를 大法院長으로 임명할 境遇, 比重이 14分의 14街 될 蓋然性이 크다. 大法院長에게는 大法官에 對한 任命提請權이 있다. 大法院長이 政權과 코드가 같다면, 그가 提請할 것으로 豫想되는 大法官의 코드는 充分히 期待할 만하다. 비록 모든 大法官 交替까지 當時로서는 6年의 歲月이 必要하긴 했지만 말이다. 

    2017年과 2018年 무렵 世間에는 ‘司法自殺’이라는 말이 膾炙됐다. 法院을 떠난 先輩들을 만나면 많은 사람이 “只今 狀況을 都大體 理解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며 “大法院長이 왜 스스로 法院을 죽이려드느냐”고 말하곤 했다.

    司法府 안에서 司法府를 허무는 者들

    우리 歷史에서 過去 대여섯 次例의 司法波動이 있었지만, 大槪 政權이 司法府에 壓力을 加하거나, 司法府 首腦部가 一般 法官을 干涉하는 데 對한 抵抗이었다. 그런데 2017~2018年에는 前職 大法院長과 前職 法院行政處 所屬 法官 等 法院 內에서 더는 影響力을 行使할 수 없는 사람들을 주된 攻擊 對象으로 삼은 司法波動이 일어났다. 이들을 批判하는 쪽이 오히려 法院 內에서 더 큰 힘을 가진 主流에 該當했다. 形勢는 마치 힘이 빠진 前 大法院 首腦部에게 ‘淸算’이라는 날카로운 칼로 報復하는 듯 보였다. 

    勿論 同僚 法官의 罪를 감싸서는 안 된다. 同時에 분명하지도 않은 疑惑으로 同僚 法官에 對한 搜査를 督促하며 몰아붙여서도 안 된다. 그런데 當時 司法波動 主役들은 世間에 提起된 疑惑이 當然히 眞實일 거라 믿고 調査를 거듭 要求했다. 法院 밖에서 ‘司法自殺’이라는 表現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웠다. 

    當時 司法府를 허무는 데 큰 구실을 한 건 法院 內 會議體들이다. 그中에서도 全國法官代表會議 役割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애初 全國法官代表會議는, 文在寅 政權이 들어서고 梁承泰 大法院長은 任期 末로 影響力을 잃은 狀態에서, 特定 性向 法官들이 주동해 만든 組織이다. 이들은 梁承泰 大法院長을 壓迫해 機構를 常設化했다. 그리고 徹底하게 文在寅 政權과 金命洙 大法院長에게 親和的인 態度를 보였다. 

    이들은 梁承泰 大法院長 時節 法院行政處에 勤務하던 法官들 컴퓨터 파일을 열어보려고 可能한 모든 壓迫을 加했다. 또 그 內容을 公開하고자 努力했다. 該當 資料를 檢察에 提供하는 데도 지나치게 積極的이었다. 그 過程에서 지켜야 할 適法節次나 令狀主義는 그리 重要하게 여기지 않았다. 法官 彈劾도 當時 이들이 積極的으로 推進하던 事案 가운데 하나다. 아직 누구 하나 有罪判決을 받지 않았는데, 漠然한 疑惑과 偏向된 一部 言論의 推測性 記事만으로 法官을 彈劾하려 했다. 

    또한 이들은 金命洙 大法院에서 重點的으로 推進하는 事案들에는 積極的으로 힘을 실어줬다. 皇帝勞役 論難으로 廢止됐던 地域法官制의 事實上 復活, 法院長 選擧制 乃至 推薦制 導入, 司法行政委員會 導入 等 많은 事案을 全國法官代表會議 內 特定 性向 判事들이 主導해 提案했다. 그 內容이나 提出된 資料 水準이 法院行政處 審議官들이 直接 準備했다고 해도 손색없을 程度로 忠實했다. 놀라운 한便으로 疑心의 눈초리를 둔 적이 많다. 이러한 案件은 하나같이 全國法官代表會議에서 壓倒的인 贊成으로 可決됐다. 反面 政權이나 法院 首腦部에 不便한 案件은 或如 非主流 判事들에 依해 提案된다 해도 時間 不足 等을 理由로 上程 自體가 안 되거나, 上程되더라도 壓倒的인 票差로 否決됐다.

    ‘判事 多數 意見’이라는 허울

    2018년 11월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광경. 이날 모인 전국 법관 대표들은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법관에 대한 탄핵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2018年 11月 19日 京畿 高陽市 司法硏修院에서 열린 全國法官代表會議 光景. 이날 모인 全國 法官 代表들은 司法壟斷 連累 疑惑을 받는 法官에 對한 彈劾 必要性에 對해 論議했다. [박영대 동아일보 記者]

    2018年 2月 靑瓦臺 國民請願 揭示板에 “三星電子 李在鎔 副會長에 對해 執行猶豫를 宣告한 裁判長을 罷免하라”는 請願이 올라온 일이 있다. 이 主張에 同意한 사람 數가 23萬 名을 넘어서자 靑瓦臺는 그 內容을 法院行政處에 通報했다. 비슷한 時期 “國會議員 給與를 最低時給으로 策定하라”는 內容의 靑瓦臺 請願에 對해서는, 支持者가 27萬 名을 넘겼음에도, ‘權力分立 原則’에 반한다는 理由로 國會에 通報하지 않은 터였다. 그래놓고 同意者 數가 오히려 적은 司法府 關聯 請願은 法院行政處에 通報했다. 大韓辯護士協會조차 問題가 深刻하다고 봤다. 協會 名義로 ‘再發을 防止하라’는 內容의 聲明을 發表했다. 

    反面 法官들 代表機關인 全國法官代表會議는 沈默했다. 그것이 當事者인 法官의 義務를 放棄(放棄)하는 것으로 비친다는 생각에, 나는 司法權 獨立 侵害에 對한 憂慮를 담은 聲明서 草案을 作成해 全國法官代表會議 議案으로 提案했다. 全國法官代表會議를 掌握한 酒類 法官들 性向을 알기 때문에 文章 數를 可能한 限 줄이고 表現도 消極的으로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點을 考慮하지 않았다. 議案 上程 自體를 미루려 했다. 내가 議案 上程을 强力히 要求하자 會議를 參觀하던 法院行政處 審議官까지 나서서 靑瓦臺 立場을 辯護했다. 以後 酒類 判事 多數의 靑瓦臺 擁護 發言이 이어졌다. 結局 聲明書 採擇 議案은 壓倒的 票差로 否決됐다. 辯護士團體度 要求하는 司法府 獨立 要求를 拒否한 것이다. 그런 全國法官代表會議가 이番 金命洙 大法院長 거짓말 波紋에 沈默하는 것은 當然한 일이다. 

    金命洙 大法院長은 지난해 5月 林成根 釜山高法 部長判事가 낸 辭表를 ‘國會 彈劾 論議’를 理由로 拒否해 놓고 國會와 言論에는 “그런 적 없다”고 거짓 解明을 했다. 그 事實이 뒤늦게 드러난 뒤에도 全國法官代表會議가 沈默하는 것에 對해 言論 等이 疑訝하다는 反應을 보였지만, 나는 全혀 異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或者는 林成根 部長判事 彈劾 名分으로 2018年 全國法官代表會議가 法官 彈劾 要求 聲明을 採擇한 것을 擧論한다. 그러나 當時 全國法官代表會議에 參席한 非主流 法官들이 이 會議를 ‘法院 內 政治勞組’라고 表現하고, 全國法官代表會議 主流 判事들이 活動하는 國際人權法硏究會를 ‘法院 內 하나會’라고 말한 事情을 勘案하면, 이 會議體의 公正性을 全혀 받아들일 수 없다. 

    全國法官代表會議는 憲法이나 法律에 根據가 없다. 但只 大法院規則에 根據를 두고 있을 뿐이다. 그 位相이 大法官會議와 比較할 수 없고, ‘諮問機構’인 法院長會議에도 못 미친다. 單純한 ‘建議機構’일 뿐이다. 그런데도 法院을 쥐고 흔들며 모든 處分에 關한 正當性을 가진 듯 處身한다. 

    金命洙 大法院長 體制가 들어선 뒤 司法府에는 會議나 委員會가 많이 생겼다. 一見 多數 意中을 反映하는 듯해 바람직하고 公正害 보이나, 實狀은 그리 單純하지 않다. 過去 法院 人士나 意思決定에는 慣行이 支配하는 領域이 많았다. 자칫 固陋해 보일 수도 있지만, 法官이 自己 人事를 豫測할 수 있어 人事上 不利益을 憂慮할 必要가 없었다. 自然스레 所信껏 일할 수 있는 環境이 造成됐다. 

    이를 허물기에 ‘多數의 意思’라는 名分처럼 좋은 게 없다. 特定 委員會를 만들고 그 안에 목소리 큰 사람을 몇 名 심으면, 그들의 推動으로 全體 醫師를 만들어낼 수 있다. 委員會 內에서 强하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國際人權法硏究會 等에서 活動하는 組織化된 사람들이다. 法官이 普通 消極的이고 나서기 싫어하는 品性을 갖고 있는 點을 勘案하면, 實狀 沈默하는 多數 法官의 意中은 묻히고, 組織化된 一部 勢力의 影響力만 法院을 덮게 된다. 이런 組織을 통해 全體 法官들 意中을 歪曲하고, 事實上 法院 內 政黨처럼 움직이는 國際人權法硏究會 解散을 希望한다.

    政權 獨走에 스스로 무릎 낮춘 司法府

    最近 文在寅 政權의 獨走는 깊이를 더해 간다. 國會 常任委員會 大部分을 掌握하고, 法의 根本原理를 無視한 立法을 마구잡이로 한다. 最惡으로 치닫는 北韓 人權 狀況에 對해서는 말도 못 꺼내면서, 北韓 前提 權力者의 要求에는 限없이 무너진다. 그러면서 自由主義 政治體制를 지키는 同盟國은 無視하는 態度를 보인다. 住宅去來許可制, 1家口 1住宅 原則, 土地共有制, 利益共有制 等 私有財産權의 本質的 內容을 侵害하는 政策이 語塞하지 않게 言及된다. 그런 政權 앞에 金命洙 大法院長과 一部 政治 法官이 自發的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제 ‘司法府 獨立’ 같은 말은 皮膚로 느낄 수 없는 稀貴한 用語가 돼간다. 그런 渦中에 政權 心氣를 건드릴 만한 몇몇 判決이 나오자 2年 前 論議가 사라졌던 法官 彈劾을 갑자기 다시 推進해 國會에서 可決한다. 本人들은 偶然이라고 할지 몰라도 보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李承晩 大統領은 1956年 初代 大法院長 김병로로 인해 國政이 事事件件 妨害받는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나라 法官은 世界에서 類例가 없는 權利를 行使한다”며 不便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때 初代 大法院長은 大統領에게 “異議 있으면 抗訴하시오”라고 一喝했다. 

    1891年 러시아 니콜라이 皇太子가 日本 市價(滋賀)縣 오쓰(大津)를 訪問했을 때 皇太子를 暗殺하려는 試圖가 있었다. 日本은 深刻한 外交的 威脅에 逢着했고, 이를 풀고자 內閣 首腦部는 該當 暗殺 試圖를 日本 皇族에 對한 暗殺 試圖로 봐 大逆罪를 適用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當時 日本 대심원長이던 고지마 이켄은 罪刑法定主義를 내세우며 死因(私人) 間 謀殺 未遂罪를 適用하려 했다. 司法을 政治로부터 지켜낸 例로 자주 言及되는 이른바 ‘오쓰 事件’ 이야기다. 

    그 옛날에도 司法府 首長들은 司法府를 政治로부터 지키고자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21世紀 民主主義와 權力分立의 말잔치가 豐盛한 이 時期에 우리는 大韓民國 大法院長의 痕跡을 찾는다.


    김태규
    ● 1967年生
    ● 연세대 法學科 및 同 大學院, 美國 인디애나대 로스쿨 卒業
    ● 한국해양대 法學博士
    ● 前 憲法硏究官, 釜山地法 部長判事
    ● 著書: ‘法服은 유니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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