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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學校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敎師들의 挫折과 希望|新東亞

“어느 學校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敎師들의 挫折과 希望

‘스승’은 못 돼도 ‘先生’은 되고 싶은데…

  • 이 說 동아일보 新東亞 記者 snow@donga.com

    入力 2008-07-09 1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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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映畫 ‘말죽거리 殘酷史’를 보고 旣成世代들은 “그래!”하고 무릎을 쳤다. “只今 같았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왜 當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憤痛을 터뜨렸다. 軍靴발과 몽둥이질이 亂舞하던 學校風景. 啞然失色할 일이지만 그때는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몰랐다. 요즘? 世上 많이 變했다. 敎師가 아이들 눈치를 본다. 매를 들기는커녕 꾸지람도 아이의 결을 봐가며 가려 한다. 敎師들은 每日 絶望하고 每日 다짐한다. 그래도, 來日은 더 좋아질 거라고.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平生職場, 餘裕, 新婦감 人氣 1位, 放學….

    敎師 하면 떠오르는 單語들이다. 이 單語들은 ‘安定’ ‘웰빙’ ‘信望’이라는 共通의 키워드로도 엮인다. 하나도 갖추기 힘든 3가지 美德을 골고루 갖춘 敎師는 ‘괜찮은 職業’으로 통한다. 그러나 요즘 敎師들은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過去에 비해 精神的 肉體的 疲勞가 極度로 심해졌다는 것이다. 여러 理由가 있으나 哀歡은 弟子들로부터 始作된다.

    中學校에서 敎師生活을 한 지 5年째인 女敎師 金某氏. 2學年 授業을 하던 中 그는 文字 메시지 보내기에 餘念이 없는 아이를 發見했다. 눈짓으로 몇 次例 警告를 보내도 繼續되는 ‘文字질’. 참다못해 아이를 불러내 “授業에 集中하라”고 나무랐다.

    “X발, 지가 뭔데….”

    뜻밖의 反擊에 “方今 뭐라고 했냐”며 도끼눈을 떴지만 아이는 堂堂하기만 했다. 敎室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金氏는 唐慌하고 猖披한 마음에 아이를 자리로 돌려보낸 뒤 授業을 이어갔다. 그는 “平素 態度가 模範的인 學生은 아니었으나 敎師에게 대놓고 辱說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며 “아이들 앞에서 自尊心이 짓밟힌 것 같아 敎室에 들어서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敎員評價制를 示範 實施 中인 景氣도 A中學校. 이 學校에서 女敎師 李某氏는 評價表를 받아들고는 숨어서 펑펑 울었다. “XX年. 븅신. 가슴은 없는 主題에 뽕브라만 껴요.ㅋㅋ.” 철없는 中學生이라지만 장난으로 흘려듣기엔 甚한 말들이었다. 女學生이 적은 글이라곤 믿기 힘든 性的 險談도 가득했다. “先生님, 사랑해요” “잘 가르쳐주셔서 感謝합니다”라는 글도 있었지만 辱說과 暴言은 가슴의 멍으로 남았다.

    서울 江西區 B初等學校 敎師 柳某氏는 얼마 前 5學年 學生의 컴퓨터 모니터를 보다가 驚愕했다. 인터넷 揭示板에는 自身을 侮辱한 글들이 가득했다. 同僚 敎師들에 對한 險談도 있었다. 아예 敎師別로 揭示板 폴더가 따로 區分돼 있었다. 雪上加霜 올려진 글의 大部分은 事實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敎師들을 戱畫化해 이야기를 꾸며대거나 各種 漫畫나 映畫 포스터의 패러디 對象으로 삼고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묻자 아이는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라고 시큰둥하게 答했다.

    理由 없는 敎室暴力

    지난 5月 서울 江西區 C初等學校의 女敎師는 꾸중에 反抗하는 男子 初等學生 2名의 팔에 맞아 입 周圍가 찢어졌다. 서울 D中學校에서는 學生들의 싸움을 仲裁하는 過程에 不滿을 품은 學父母가 敎師를 暴行해 全治4週의 傷害를 입혔다. 이달에 알려진 敎師 暴行事件만 여러 件. 그間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學父母가 敎師를 暴行한 事件도 間間이 있었다.

    過去 ‘敎室暴力’은 敎師의 過剩體罰을 일컫는 單語였다. 하지만 只今은 敎師에 對한 學父母와 學生의 暴力을 가리킨다. 敎室暴力의 加害者와 被害者가 바뀐 것이다. 實際 毆打로 이어지는 敎室暴力 事件은 件數로만 보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시끄러워지는 것을 꺼리는 學校社會 雰圍氣를 考慮하면 알려지지 않은 事件이 더 많을 것이라는 게 敎員 들의 意見이다.

    辱說과 暴言은 茶飯事다. 지난해 韓國敎員團體總聯合會(韓國교총)가 全國 敎員 705名을 對象으로 敎權侵害 實態에 對한 設問調査를 實施한 結果, 應答者의 38.4%가 學生에게 甚한 辱說 또는 反抗을 겪었다고 答했다. 同僚 敎員이 學生에게 暴行당하거나 辱說을 듣는 것을 봤다는 答辯은 62.3%나 됐다. 一線 敎師들은 “初·中·高를 網羅해 辱說 한番 들어보지 않은 敎師는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敎室暴力은 敎師가 敎室을 統制할 수 없는 狀況을 뜻하는 ‘敎室崩壞’와 脈을 같이한다. 學生과 授業을 統制하지 못하는 學校는 人性指導는 勿論 敎科授業의 機能도 잃게 된다. 敎室崩壞는 이제 地域과 學校를 超越한 一般的인 現象이 됐다. 相當數 敎師가 學生들의 言語暴力과 物理的 暴力에 몸과 마음을 다치고 있다.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敎師의 過剩體罰을 일컫던 ‘敎室暴力’은 이제 敎師에 對한 學父母와 學生의 暴力을 뜻한다. 學生 生活指導法을 討論하는 初等學校 敎師들.

    “아무리 얘기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아이들, 理由도 모르게 무시당하는 雰圍氣, 幼稚하지만 傷處로 남는 辱說과 落書, 集團으로 班 雰圍氣를 險惡하게 만드는 ‘報復’…. 卒業하고 바로 任用考査에 通過했으니 아주 어린 나이였죠. 첫 授業 때 學生들은 想像外로 제멋대로였고, 敎室은 그때 이미 崩壞狀況이었어요. 처음에는 新參敎師라 그런가 보다 했지만 10年次인 只今도 如前히 힘듭니다.”

    1999年부터 公立中學校에서 勤務해온 女敎師 柳某氏. 그는 넉넉한 家庭에서 中高等學校 내내 1等을 하며 順坦하게 자랐다. 일찍부터 女性으로 堂堂하게 설 수 있는 專門職을 생각하던 次, 報酬는 많지 않지만 餘裕를 즐길 수 있는 敎師가 돼야겠다고 決心했다. 柳氏는 “착하고 溫柔한 心性이 敎職에서는 無能하고 無視 받는 短點이 됐다”며 “親切하고 따뜻한, 무엇보다 幸福한 敎師가 되고 싶은데 每日이 憂鬱하다”고 말했다.

    學生들의 言語, 物理的 暴力은 젊은 女敎師들이 主要 타깃이다. 그래서 막 敎壇에 선 女敎師들은 異口同聲 “初場에 無條件 學生들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性質’ 없이는 敎室 雰圍氣를 主導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京畿道 E中學校에서 外國語를 가르치는 2年次 女敎師의 말이다.

    “敎師가 되기 前부터 ‘아이들은 嚴한 敎師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한다’는 얘기를 累累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潑剌한 性格을 意圖的으로 드러내지 않았죠. ‘어떻게 가르칠까’보다 ‘어떻게 制壓할까’ 하는 밀고 당기기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現實이 처음에는 서글펐지만, 只今은 잘 對應했다고 생각합니다.”

    ‘媤어머니보다 더한 學父母’

    江南區 F中學校에서 科學을 가르치는 女敎師 韓某氏. 지난해 한 私立大 敎授라는 學父母로부터 電話가 걸려왔다. 그는 “지난番 試驗問題의 提示文이 不分明하다”며 “앞으로 問題를 똑바로 내라”고 韓氏를 叱責했다.

    脂肪 交代 出身으로 서울 江南區 G初等學校에 勤務하는 敎師 金某氏. 그는 얼마 前 學父母와 面談하다 言聲이 높아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아이들끼리의 다툼 때문에 만난 面談 자리에서 한 學父母가 “그런 交代가 있는 줄 몰랐다”며 金氏의 出身 大學을 비웃은 것. 金氏는 “敎師의 私生活에 關心을 보이는 一部 學父母는, 어디서 알았는지 敎師의 學閥, 옷차림, 家庭事까지 들먹이며 敎師의 마음을 뒤흔든다”며 “家庭에서 父母가 세워주지 않는 位相을 아이들 앞에서 스스로 세우려니 더 힘이 든다”고 어려움을 吐露했다.

    ‘子息 맡긴 罪人’은 옛말이 됐다. 過去 學父母들은 學校에서 呼出하면 가슴부터 철렁했었다. 學校 敎育에 對한 全權을 敎師에게 委任하고 敎師의 指導에 支持를 보내는 게 一般的이었다. 地域마다 雰圍氣가 다르지만, 요즘 學父母들은 子女가 꾸중을 듣거나 授業內容에 不滿이 있으면 隨時로 異議를 提起한다. 敎師의 專門性을 認定하기보다 自身의 意見을 積極的으로 開陳하려는 傾向도 强하다. 서울 江南區 中學校에 在職하다가 동작구로 자리를 옮긴 한 男敎師는 “相當數 學父母가 高學歷인데다 敎育에 對한 社會的 關心도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變化의 背景을 分析했다.

    “學父母의 不滿은 大槪 生活指導와 學習에 對한 것으로 나뉩니다. 非江南 地域 學父母들은 生活指導 部分에 主로 不滿을 表示하는 反面 江南地域 學父母들은 宿題, 試驗問題 等 學習에 對한 建議를 많이 합니다. 다른 學校나 學院과 比較해 學習量, 試驗, 英語敎育 等에 對한 改善을 要求하거나 따지는 式이지요.”

    서울 江西區 백석초등학교 利得稅 校監에 따르면 요즘 學父母들은 敎科課程, 內容, 給食, 謄下校 指導, 學校 運營 全般에 意見을 提示한다. 父母의 處地에서만 發見할 수 있는 問題點도 있기에 이런 關心은 學校環境 改善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校監은 “가끔은 學父母의 干與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새 學期 擔任敎師가 決定된 뒤 ‘다른 敎師로 바꾸라’는 電話가 빗발치거나, 些少한 일에 對한 억지主張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校長, 校監은 勿論 敎育廳에 歎願을 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애들 敎室에는 에어컨이 없으니 敎務室에 있는 에어컨도 없애라’는 式으로요.”

    ‘열린 敎育’의 硬着陸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敎師 暴行 事件이 發生해도 仲裁할 만한 法的 機構나 裝置가 없다.

    敎室崩壞는 언제, 왜 始作된 걸까. 교총의 設問調査에서 映畫·드라마·娛樂프로 等 大衆媒體의 影響(33%)李 敎師의 權威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原因으로 꼽혔다. 學父母의 過剩保護(25.1%)와 公敎育에 對한 不信(22.5%)이 그 뒤를 이었다. 學生들의 反抗과 敎師暴行이 2000年代 들어 深化됐다는 意見이 多數를 차지했다. 서울地域 中學校에서 23年째 勤務해온 서울 江西區 수名中 敎師 김창학氏의 말이다.

    “제가 느끼기에는 2000年代 初를 起點으로 敎師들이 急激히 無氣力해졌습니다. 이는 이해찬 長官 時節 主唱한 ‘열린 時代 열린 敎育’理念 탓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工夫만 重要한 게 아니며, 한 가지만 잘해도 大學을 가도록 한다는 趣旨였지요. 不可避한 事由가 없는 限 體罰을 禁止하라는 指針도 내려졌습니다.”

    아이들의 숨筒을 죄는 抑壓的인 雰圍氣를 解消하려는 ‘열린 敎育’李 軟着陸에 失敗, 오히려 副作用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一線 敎師들에 따르면 實際 아이를 꾸중하거나 體罰할 때 “人權委에 提訴하겠다” “이러면 動映像 찍어 올리겠다”는 等의 反應은 흔한 일이다.

    지난 政權의 人權을 强調하는 雰圍氣도 이에 한몫했다. 人權에 對한 社會的 關心이 높아지면서 頭髮 自由化, 校服 自律化, 體罰 禁止 等의 學校人權 問題도 水面으로 떠올랐다. 매스컴에서는 過剩體罰의 問題點과 非理敎師 實態를 連이어 報道했고, 學生과 學父母는 市民團體를 만들어 積極的으로 對應했다.

    改善의 움직임은 좋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意見들이 衝突하는 過渡期를 겪으며 學校 構成員들은 서로 생채기를 냈다. 學校 全般에 걸친 問題였지만 責任의 화살은 敎師에게 돌아왔다. 實際로 問題의 相當 部分은 敎師의 變化에 解決의 실마리가 있었다. 이런 複合的인 要因으로 敎師의 權威가 急激히 墜落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狀況을 淨化해서 받아들이는 能力이 不足합니다. 아직은 感受性이 銳敏하기 때문이지요. 頭髮自由, 體罰 等 매스컴에서 이슈化하는 學校 問題에 對해 極端的으로 유리한 部分만 聚合하는 傾向이 있습니다. 그래서 學校生活에서 學生에 對한 規制와 體罰 等이 조금이라도 不合理하다는 생각이 들면 ‘이 程度면 申告해도 되겠네’라고 여깁니다.”

    學校人權에 對한 構成員들의 自覺이 敎室崩壞로 이어진 狀況에 對한 김창학氏의 分析이다.

    核家族과 低出産 時代를 맞아 變化限 家庭環境度 主要한 原因으로 꼽힌다. 兄弟姊妹 없이 貴하게 자란 아이들이 ‘열린 敎育’의 特性인 自由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家庭에서 크게 制裁를 받지 않고 자랐습니다. 혼자, 또는 둘인데다가 父母가 함께 일하는 境遇가 많아 싫은 소리를 들은 經驗도 적었고요. 反面 學校環境은 아직 過去에 머물러 있습니다. 變化한 家庭環境을 學校環境이 따라잡지 못해 學生과 敎師 間의 摩擦로 이어진 것이지요.”

    學院, 인터넷 等 學校 外에 知識을 求할 곳이 많아진 點도 原因으로 指摘된다. 仁川의 한 中學校 女敎師는 “過去에는 손으로 오리고 붙이던 것들이 只今은 컴퓨터로 資料를 찾아 內容을 構成해 印刷하면 끝이다. 아이들 亦是 各種 情報機器와 인터넷에 친숙해서 모르는 게 없다. 요즘 아이들은 學習과 關聯된 것은 勿論 敎育界 이슈에도 훤하다. 中學校는 最高 處罰이 勸告轉學인데, 여러 經路로 얻은 處罰 關聯 情報를 통해 그 水準에 미치지 않을 程度로만 나쁜 짓을 하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기죽은 敎師들

    서울 H中의 女敎師 林某氏는 授業 途中 冊床에 코를 박고 딴 짓을 하는 學生을 發見했다. 다가가서 보니 아이는 구멍 난 冊床 아래에 携帶電話를 놓고 DMB를 보는 데 熱中해 있었다. 冊床까지 뚫고 授業時間에 娛樂프로를 보다니 氣가 찰 노릇이었다. 아이를 일으켜 세워 싫은 소리를 했더니 아이는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辱說을 했다. 울컥 火가 치밀었지만 林氏는 꾹 참았다. 過去에 學父母가 學校와 敎育廳에 體罰에 對한 抗議電話를 한 일이 떠올라서다.

    “體罰이 問題가 되면 學校에서는 事實關係를 따지기보다 ‘좀 참지’ 하는 눈치를 줍니다. 理由와 過程을 不問하고 言論 報道는 ‘敎師가 學生을 暴行했다’는 式으로 나오고요. 結果的으로 叱咤의 對象은 敎師라는 걸 알기에 葛藤狀況은 可能한 限 避하고자 합니다.”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敎室崩壞는 “敎師가 時代를 따라 가지 못해 學生으로부터 소외당한 것”이라는 意見도 있다.

    學生 또는 學父母와 紛亂이 있을 때 곤란한 쪽은 敎師이지 學生·學父母가 아니다. 한국교총 김동석 代辯人에 따르면 敎權侵害를 다룬 敎育科學技術部 次元의 對應 매뉴얼은 없다. 現在 ‘敎員禮遇에관한규정’ 第6條에 學校紛爭이 發生하면 ‘學校敎育紛爭調停委員會’를 열도록 돼 있으나, 이는 義務事項度 아니고 委員會는 仲裁權度 없다. 事實上 仲裁할 만한 法的 裝置가 없다. 退學 等 罰點制가 活性化돼 있는 高等學校는 그래도 事情이 낫다. 最高 處罰이 勸告전학인 初·中學校는 아무런 處罰 없이 넘어가는 境遇도 많다. 仁川地域 한 中學校 女敎師는 “學生에게서 辱說을 듣거나 暴行을 當해도 保護받을 方法이 없다. 敎員團體 相談所에 얘기해도 ‘그냥 참아라’는 式의 答辯이 돌아올 뿐이다”고 말했다.

    “學父母나 學生에게서 辱說이나 暴力을 겪어도 大部分의 敎師는 問題 삼길 願하지 않습니다. 規定에 따라 處分하려 해도 敎師로서 敎育的 責務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지요. 學生部로 넘겨도 마땅한 方法이 없고요. 이런 일을 한番 겪으면 敎育者로서 自尊感을 잃게 됩니다.”

    仁川 三量高等學校 황영남 校監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約 5年 前부터 敎職을 그만두겠다며 힘들어하는 敎師들을 달래는 일이 잦아졌다. 學生簿를 서로 맡으려 하지 않아 敎師들을 督勵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고 했다.

    事情이 이렇다 보니 많은 敎師가 最小限의 本分에만 忠實하자는 消極的인 姿勢로 돌아선다. 紛亂을 일으키지 않기 爲해 꾸중을 받아들일 만한 아이에게만 生活指導를 한다는 것. 京畿道 一山의 한 中學校 女敎師는 “처음에는 授業準備는 勿論 아이 하나하나의 人性指導에도 熱誠을 기울였지만, 努力해도 먹혀들지 않자 차츰 지쳐갔다”며 “只今은 건드려서 시끄러워질 反抗아들은 아예 못 본 척 지낸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代案은 뭘까. 現行法上 體罰은 原則的으로 禁止돼 있다. 法院도 體罰 敎師를 司法處理한다. 하지만 初中等敎育法과 施行令 規定은 ‘不可避한 境遇’를 提示하고 있다. 때에 따라 體罰指導가 可能한 것이다. 그러나 現場 雰圍氣는 體罰을 禁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現場 敎師들에 따르면 地域에 따라 다르지만 暴力的인 體罰은 大部分 사라졌다. 暴力的 體罰이란 大槪 매를 드는 體罰을 뜻한다고 한다. 문주현 바른교육실천행동 事務局長은 “視角에 따라 같은 體罰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뜀뛰기, 서있기와 같은 苦行的 體罰 外에 매로 때리는 行爲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中學校 敎師는 “體罰을 禁한다면 이를 代替할 强力한 處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體罰 없이 敎師 個人이 敎室崩壞 狀況을 解決하기에는 力不足이라는 것이다.

    “敎師의 말에 不服從하는 境遇에는 學校 次元, 或은 敎育廳 次元에서 學生들을 强勁하게 處罰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敎師는 溫和하게 學生들을 對할 수 있고, 學生들은 敎師의 말을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生活指導는 專門敎師에게 맡겨야 한다는 意見도 있다. 敎師는 敎科指導에만 忠實하고 相談과 같은 生活指導 職員을 따로 둬야 한다는 것.

    “外國에선 生活, 相談, 保健 地圖를 敎師와 專門 職員이 6:4 程度로 나눠 맡습니다. 敎師가 生活指導를 하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專門職員에게 넘기는 式입니다. 저희 學校는 最近 分野別로 生活指導 敎師를 따로 두는 方案을 苦悶하고 있습니다. 家出擔當, 缺損擔當, 吸煙擔當 式으로 各 敎師가 領域을 나눠 指導한다는 構想입니다. 學生部의 機能이 縮小된 만큼 다른 對策이 必要하다고 봅니다.”

    三量高 황영남 校監은 “私立學校는 따로 規定을 만들어 對應策을 마련할 수 있지만 公立學校는 그마저도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나이 지긋한 平敎師는 더 만만”

    지난해 京畿道 一山의 한 中學校에 赴任한 敎師 姜某氏. 敎育大學院 出身의 그는 다양한 將來 計劃을 갖고 있다. 博士課程을 밟아 다른 일에 挑戰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 學校에 남는다면 管理職을 經驗하고 싶은 欲心도 있다. 처음부터 管理職을 念頭에 둔 것은 아니다.

    “現場에서 보니 아이들이 主要 科目 敎師가 아니거나 나이가 많은 敎師를 더 깔보는 傾向이 있더군요. 그래서 先輩 敎師들의 悲哀感이 컸습니다. 昇進을 못한 年歲 지긋한 數學先生님은 自激之心에서 더 權威的으로 아이들을 對하시죠. 아이들이 워낙 靈惡해서 敎師의 學歷, 經歷에 따라 待遇가 달라집니다. 學父母도 마찬가지고요.”

    姜氏는 “放課 後 補充授業 申請을 받으면 實力이 없거나 評判이 좋지 않은 敎師들은 受講生이 아예 없는 境遇도 있다”며 “스스로 堂堂해지려면 自己啓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IMF 外換危機 以後 安定的인 敎師職에 優秀한 人材들이 몰리면서 過去 敎師에 비해 自己啓發에 對한 欲求와 昇進에 對한 關心이 越等히 높아졌다. 授業의 質을 높이기 위한 義務 硏修 過程도 많아졌다. 그러나 現場 敎師들은 “自己啓發 붐은 非效率的인 昇進制度와 맞물려 있다”고 指摘했다. 수名中 敎師 김창학氏의 말이다.

    “現在 昇進構造는 點數를 위한 點數 따기 競爭입니다. 經歷 70點, 近坪 100點, 硏究點數 3點, 補職 2.5點, 示範 硏究學校에는 加算點이 주어집니다. 敎育大學院에 進學하는 건 80%以上 硏究點數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敎育大學院에 進學하는 私立學校 敎師는 드물지요. 點數를 많이 따기 위해 大學院 두 곳을 卒業한 敎師도 있습니다. 週末이나 放學 때 授業을 듣고 論文 없이 卒業狀만 받는 ‘눈 가리고 아웅’式 敎育大學院들도 활개를 치고요.

    연수도 非效率的이긴 마찬가지입니다. 活用度가 全혀 없는 敎育에 學校當 敎師 1名씩 오라가라하는 硏修課程이 수두룩합니다. 敎育廳 課程 外에는 모두 有料인데, 硏修點數가 評價에 反映돼 無視할 수도 없습니다. 昇進點數에 硏修點數가 包含된 1998年부터 敎師들은 ‘硏修疲勞症’을 앓고 있습니다.”

    “敎師 스스로 소외당한 것”

    昇進點數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硏修와 大學院에 時間과 돈을 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實力을 向上시키기 위해 自己啓發에 힘쓰는 敎師도 적지 않다. 서울 H中學校에서 物理를 가르치는 4年次 女敎師 金某氏는 週末마다 物理敎師 스터디 모임에 나간다. 별, 宇宙船, 植物, 動物과 關聯된 硏究와 記事들을 授業에 活用하기 위해서다. 視聽覺에 適應이 된 아이들의 興味를 끌기 위해 코믹 UCC를 製作하기도 한다. 金氏는 “世代에 相關 없이 우리 學校 敎師들은 敎授法 開發에 매우 積極的이다. 오히려 오랜 經歷의 先輩 敎師들이 젊은 敎師들에게 ‘새로운 實驗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먼저 要請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2007年 한국교총은 敎員, 高等學生, 學父母, 校·師大 學生 1249名을 對象으로 敎員의 社會·經濟的 地位에 對한 綜合的인 設問調査를 實施했다. 이 調査에서 敎師의 80%가 過去에 비해 敎員 尊重 風土가 低下됐다고 答했다. 特히 中·高等學校 敎師는 83%가 低下됐다고 應答했다. 反面 高校生 大部分은 敎員 尊重 風土가 變함이 없거나 向上됐다고 答해 敎師와 學生 間 認識差가 컸다. 學父母는 低下됐다는 意見과 變化가 없다는 意見이 各各 47%, 35%를 차지했다.

    “敎師라는 職業이 安定的이라 大衆的인 人氣는 있지만 尊敬받는 職業은 아닙니다. 社會 經濟的 影響力도 크지 않고요. 物質萬能 敎育으로 社會의 敎職에 對한 尊重感은 漸漸 낮아지는 趨勢입니다. 最近에는 敎室崩壞로 인한 無氣力症까지 더해 懷疑를 느끼는 敎師가 많습니다.”(교총 김동석 代辯人)

    “職業에 對한 滿足度는 높지만 尊重받는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地域에 따라 差異가 있겠지만, 學父母 입김이 센 곳에서는 學閥과 나이를 들먹여 敎師를 無視하기 十常입니다. 敎職에 對한 使命感이 아닌 安定性에 魅力을 느껴 優秀 人材가 많이 몰리고 있는데, 學校에 들어와서 剝奪感을 갖게 되죠. 요즘은 쉬는 放學 日數도 얼마 되지 않아 放學이라는 長點도 예전만 못하고요. 優秀한 人材들이 딱 3年 지나면 똑같아집니다. 이런저런 努力을 하다 스스로 지치는 것이지요.”(황영남 交感)

    그러나 學校가 急變하는 社會에 適應하지 못한 責任이 크다는 指摘도 있다. 權威主義에 젖은 一部 學校는 體罰이 禁止되면 學校 統制 自體가 不可能하다고 判斷, 自暴自棄해서 새로운 敎授法을 開發할 努力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高等學校 敎師는 “敎師들이 ‘남 탓’만 하는 傾向도 없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一喝했다.

    “時代가 變했는데 敎師가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敎師가 學生으로부터 소외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것은 虎狼이 담배 피던 時節부터 있던 얘기입니다. 時代가 그렇게 變했다면 받아들이고 適應하는 게 옳은 方向입니다. 이를테면 學生들의 文化나 그들의 자유로운 思考方式부터 勤務學校, 地域에 對한 雰圍氣까지 學生들의 環境에 關心을 갖는 式으로요. 19世紀 建物에서 20世紀 敎師가 21世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참고, 또 參考…

    敎師만큼 忍耐心이 必要한 職業도 없다. 철이 없어 제멋대로 구는 아이와 부대끼며 ‘울컥’ 하는 瞬間을 몇 番이고 참아내야 한다. 顧客을 相對하는 서비스業만큼이나 精神的인 苦痛이 따른다. 아니, 그보다 더하다. 부나비처럼 오가는 顧客들과 달리 敎師로 인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는 아이들의 人性과 未來를 책임져야 하니까.

    最近 敎育界는 學校崩壞, 學校自律化, 學校情報公開, 敎員評價制 等 수많은 懸案을 떠안고 있다. 바람 잘 날 없는 게 敎育界라지만, 學習指導는 私敎育이, 人性指導는 大衆媒體가 代身하는 오늘날 學校의 모습은 더 쓸쓸해 보인다. 한 初等學校 盧敎師는 “그럼에도 學校 울타리에 있는 幸福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26年 前이나 只今이나 나는 늘 우스갯소리로 敎師 親舊들에게 너와 나는 ‘겨레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巨創한 單語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나의 첫째 所任도 마지막 所任도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은 참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가르친 아이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成果가 딱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調和로운 人性을 기르는 初等學校에서 成績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많은 面에서 사람들의 欲求를 채워주지 못하는 敎師다. 學父母들은 敎師가 다 해주기를 바란다. 敎師 本然의 일보다 些少한 要求가 크게 浮刻되고, 그로 인한 是非가 생기면 모두 敎師 탓이 된다. 敎育當局者 및 社會構成員들은 보이지 않는 敎育이라는 行爲를 두고 鋪裝하고 實績을 쌓으란다.(…)

    그러나 나는 겨레의 스승이다. 흙먼지 날리는 運動場에서 一週日 3番씩 授業을 해도, 거칠고 비뚤어진 心性으로 親舊와 先生님을 힘들게 하는 아이로 하루가 무거워도, 內 하루하루가 3D業種과 別般 差異가 없어도, 想像 以下의 薄俸을 받아도 나는 괜찮다. 나는 좋다. 왜냐하면 새筍과 같은 아이들과 같이 자라는 삶을 許諾받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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