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個校 100年 맞는 中央高等學校|新東亞

個校 100年 맞는 中央高等學校

民族 自矜 드높인 過去 100年 尖端·傳統 어우러질 未來 100年

  • 송문홍 東亞日報 出版局 專門記者 songmh@donga.com

    入力 2008-06-10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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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央學校는 한 個人이 私財를 털어 만든 私立學校도 아니고, 外國人이 宣敎 目的으로 세운 學校도 아니다. 民族 先覺者들과 民草들의 募金으로 세워진 특별한 學校다. 學校 設立을 위해 全國의 族指導者와 地域 單位 學會들이 하나로 뭉친 例는 全世界的으로 中央學校가 唯一하다.”
    개교 100년 맞는 중앙고등학교

    中央高等學校 全景과 인촌 金性洙 銅像.

    光復 以後 1970年代 中盤 高校平準化가 實施될 때까지 世稱 5代 名門 公立(公立) 高校로는 景氣·서울·경복·용산·경동高等學校가, 5代 名門 私學(私學)으로는 中央·휘문·寶城·楊汀·排除高等學校가 꼽혔다. 이들 學校들은 저마다 오랜 歷史와 傳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이끈 엘리트 集團을 養成했다. 그러나 高校平準化 以後 이들 中 相當數는 敎育 與件이 더 나은 康男으로 學校를 移轉했다. 公立 中에선 경기고와 서울高價 江南으로 옮겨갔고, 私學 中 只今도 江北에 남아 있는 學校는 中央高等學校가 唯一하다.

    바로 그 中央高等學校가 올해 6月로 開校 100周年을 맞는다. ‘中央 100年史(史)’는 國權(國權)을 喪失한 日制(日帝) 强占期부터 光復과 6·25戰爭, 經濟發展 時期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榮辱(榮辱)李 엇갈렸던 韓國 近現代史와 櫃를 같이한다. 特히 日帝 强占期 3·1運動, 6·10萬歲運動 等 重要한 고비마다 中央學校의 人物들이 있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中央 出身들의 自矜心(自矜心)의 源泉이 되고 있다. 中央의 傳統에 씨앗을 뿌리고 키운 人物들과 그들에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이제 個校 100年을 맞는 中央의 靑寫眞을 살펴본다.

    # 唯一한 民族 民立(民立) 敎育機關으로 出發

    中央學校의 歷史는 1908年 1月 京畿道·忠淸道 出身의 憂國之士들을 中心으로 創立된 記號興學會(畿湖興學會)로부터 비롯됐다. 當時는 乙巳勒約(乙巳勒約·1905) 締結로 나라의 命運이 風前燈火처럼 위태롭던 時節이었다. 民族 先覺者들은 이런 狀況에서 그나마 可能한 일은 新敎育, 新文化의 啓蒙을 통해 後學을 養成하고 實力을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런저런 學會와 學校를 組織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었다.

    嗜好興學會는 같은 해 6月 新聞에 學生募集 廣告를 내고 ‘記號學校’라는 看板을 내걸었다. 6月20日 漢城 北部 소격동 學會 建物에서 열린 開校式에는 入學生 90名과 함께 수많은 學會 關係者와 市民들이 參席했다. 그러나 一部 뜻있는 人士들의 出捐金(出捐金)만으로 學校를 運營하는 데에는 限界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記號學校는 1910年 9月 隆熙(隆熙)學校와 合倂한다. 隆熙學校는 開化先覺者 兪吉濬(兪吉濬) 先生이 主軸이 되어 1907年에 組織된 興士團(興士團)이 세운 學校인데, 두 學校 모두 經營難으로 存續이 如意치 않게 되자 합치기로 決定한 것이다. 이와 함께 같은 해 11月 湖南(湖南)學會, 嶠南(嶠南)敎育會, 關東(關東)學會도 嗜好興學會와 합쳐져 中央學會로 改稱(改稱)하고, 學校 이름도 ‘私立中央學校’로 바꾸었다.

    “中央學校는 한 個人이 私財(私財)를 털어 만든 私立學校도 아니고, 外國人이 宣敎 目的으로 세운 學校도 아니다. 民族 先覺者들의 募金(募金)으로 세워진 특별한 學校다. 學校 設立을 위해 全國의 民族指導者와 地域 單位 學會들이 하나로 뭉친 例는 全 世界的으로 中央學校가 唯一하다.”

    學校 胎動期의 歷史와 關聯한 中央校友會(中央校友會) 側의 說明이다.

    # 인촌(仁村)의 中央學校 再建

    개교 100년 맞는 중앙고등학교

    草家집과 日本式 집들이 뒤섞여 있는 季冬 끝에 우뚝 솟은 新式 敎師. 1917年 12月 竣工했으나 1934年 12月 原因 모를 火災로 消失됐다.

    學校는 設立됐지만 敎室 不足으로 많은 學生을 受容하기 어려웠고, 敎職員 俸給조차 제때에 支給하지 못하는 形便이 繼續됐다. 그러나 어려운 事情에도 學校를 어떻게든 維持해야 한다는 意志만큼은 强했다. 中央學會는 1913年 11月 總會를 열어 中央學校를 引繼할 對象을 物色하기로 決定했다.

    1915年 仁村(仁村) 金性洙(金性洙) 先生이 救援者로 떠올랐다. 當時 隣村은 6年間의 日本 留學을 마치고 歸國한 24歲의 젊은이였다. 隣村은 日本 와세다(早稻田)大學에 留學할 때부터 敎育의 重要性을 깨닫고 있었다. 日本이 짧은 期間 內에 發展할 수 있었던 原動力은 敎育에 있으며, 그런 만큼 民族의 實力을 養成해 獨立을 이루어내려면 敎育事業에 힘써야 한다는 自覺(自覺)이 있었다.

    애當初 隣村이 設立하려고 했던 學校의 校名(校名)은 ‘白山(白山)學校’였다. 그러나 學校를 直接 세우려던 隣村의 꿈은 日帝 總督府의 不許로 挫折될 수밖에 없었고, 代身 1915年 4月 中央學校를 引受하게 된다. 隣村은 이를 爲해 養父(養父)인 원파(圓坡) 김기중(金祺中) 功過 生父(生父)인 芝山(芝山) 김경중(金暻中) 공을 說得해 許諾을 얻어냈다.

    中央學校는 비로소 盤石 위에 놓이게 되었다. 1917年 3月 校長에 就任한 隣村은 그해 6月에 現 位置인 종로구 季冬 1番地에 學校敷地 4311坪을 買入했다. 11月에는 建坪 120餘 坪의 2層 建物을 落成해 12月에 學校를 移轉했다.

    # 中央學校와 3·1運動

    草創期 中央學校의 校長 舍宅은 새로 지은 敎師 앞 運動場의 洞男便 구석에 있었다. 조그만 기와집으로 오늘날에는 花崗巖 石造 大講堂이 있는 터였다. 只今은 다른 곳에 옮겨서 옛날의 校長 舍宅을 復元했고, 元來 자리에는 ‘3·1運動 策源地(策源址)라는 記念碑가 서 있다.

    1918年 12月 인촌과 日本 留學時節부터 平生知己이자 中央學校 校長인 古下(古下) 송진우(宋鎭禹), 그리고 中央學校 敎師였던 基當(幾堂) 현상윤(玄相允), 세 사람은 거의 每日 校長 舍宅에 모였다. 이 해 1月 美國 윌슨 大統領은 第1次 世界大戰의 强化 原則인 14個 條項의 하나로 民族自決主義(民族自決主義)를 提唱했다. 한 民族의 運命은 그 民族이 스스로 決定한다는 民族自決 原則은 1次 世界大戰의 敗戰國인 獨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等의 植民地에 局限된 것이었으나 日帝 壓迫에 呻吟하던 朝鮮民族에게도 一帶 曙光이었다.

    理解 워싱턴과 상하이, 도쿄 等地에서 獨立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일기 始作했다. 이 消息을 接한 인촌과 高下, 基當 세 사람은 校長 舍宅에서 國內에서 벌일 獨立運動 方案을 論議했다. 세 사람은 宗敎界가 中心이 되어야 한다는 結論을 내리고 天道敎와 基督敎界의 合作(合作)을 周旋했다. 그리고 그 結果로 이듬해인 1919年 3月1日, 3·1獨立運動이 暴發했다. 中央學校의 조그만 校長 舍宅이 巨大한 民族運動의 産室이 된 것이다.

    勿論 인촌과 高下, 基當 세 사람이 民族代表 33人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니다. 이들은 事前計劃에 따라 2線에서 運動을 支援하고 1線에서 犧牲되는 人士들의 뒷바라지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特히 高下와 基當은 中央學校가 廢校되는 것을 막기 위해 敎主(校主)인 隣村이 前面에 露出되는 것을 積極 挽留했다. 1910年 日帝는 ‘105인 事件’을 造作해 朝鮮의 憂國人事 및 獨立運動 勢力을 大大的으로 彈壓한 일이 있었다. 當時 이 事件에 連累됐던 倒産(島山) 安昌浩(安昌浩) 先生이 設立한 大聲(大成)學校도 廢校됐다. 高下와 基糖이 3·1運動의 背後人物로 指目돼 獄苦를 치르면서도 끝내 인촌을 保護한 것은 이처럼 民族敎育機關인 中央學校가 門을 닫는 悲劇을 막기 위함이었다.

    中央學校 學生들은 3·1運動에 積極 參加했다. 3月 1日 파고다公園에서 始作된 示威는 勿論 3月5日 남대문역 廣場에서 始作된 서울의 第2次 示威에도 全校生이 參加했다. 그 後 서울과 地方에서 몇 달 동안 繼續된 示威에서 檢擧된 中央學校 學生들은 確認된 數만도 30餘 名에 達했다. 結局 3月 中에 열려야 할 理解 卒業式도 치를 수 없었다.

    # 隣村에 얽힌 逸話들

    1993年에 中央校友會가 發刊한 ‘中央80年史(中央八十年史)’에는 隣村에 얽힌 逸話가 여럿 紹介돼 있다. 하나같이 民族主義 精神을 드높이고 日帝에 挑戰하는 中央學校의 意圖를 보여주는 事例들이다. 그中 몇 가지를 紹介한다.

    1. 無名校服

    中央學校를 引受한 後 隣村은 學生들의 옷에 非常한 關心을 기울였다.

    “그 하찮은 걸 뭘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하시오? 다른 學校 學生들처럼 그냥 입히면 되는 거지.”

    보다 못한 安在鴻(安在鴻) 先生이 이렇게 말하자 隣村은 고개를 흔들었다.

    “決코 하찮은 問題가 아니오. 學校 帽子와 學校 옷은 바로 그 學校의 얼굴이며 象徵입니다. 官立 日本學校마냥 一齊 廣木으로 된 옷을 입히고 그들이 씌운 帽子를 그대로 씌울 수는 없는 일이오. 朝鮮學生은 朝鮮學生 티가 나야지요.”

    苦心하던 隣村은 검은 천을 댄 校帽(校帽)에 무명으로 지은 校服을 입히기로 했다. 一部에서는 質 좋고 맵시 나는 日帝 廣木을 두고 왜 何必이면 손으로 짠 그 투박한 무명베로 校服을 하느냐며 못마땅해 했다. 廣木은 開化 以後 日本 商人들이 들고 들어와 가장 재미를 본 生必品이었고 널리 판을 치고 있었다.

    “값싸고 질긴 우리 傳來의 무명베가 있는데 왜 비싼 一齊 廣木을 쓴단 말이오? 우리가 우리 것을 쓰지 않으면 누가 쓴단 말이오?”

    隣村은 國産品을 愛用해야 한다고 强調했다. 그는 ‘産業奬勵’나 ‘國産品 愛用’은 救國運動의 하나라는 信念을 가지고 있었다. 하찮은 校服에까지 神經을 쓴 것은 自己 學校 學生들한테만이라도 그러한 民族의 얼을 심어주겠다는 意圖가 있었던 것이다.

    ‘자랑스러운 中央인’ 歷代 受賞者 名單
    第1回(1988) 인촌 金性洙, 古下 宋鎭禹, 基當 현상윤, 月俸 한기악, 關山 趙喆鎬, 이선호·이동환·박용규·유면희(異常 18回)
    第2回(1989) 동산 윤치영(7回), 一夕 李熙昇(9回), 度山流水 정문기(9回), 탕안 서항석(9回)
    第3回(1990) 春江 조동식(1回), 심강 고재욱(12回), 白綾 채만식(13回), 洞은 김용완(13回)
    第4回(1991) 이종우(16回), 趙洪濟(17回), 金相万(21回), 김용식(22回), 心型筆(前 校長)
    第5回(1992) 국채표(16回), 이성범(25回), 정인회(25回)
    第6回(1993) 변영로(6回), 최복현(17回), 윤택중(24回)
    第7回(1994) 二宇宙(27回), 김봉은(30회), 나운영(30回)
    第8回(1995) 이을호(20回), 李龍熙(25回), 신도성(26回)
    第9回(1996) 백남규(8回. 前 母校 敎師)
    第10回(1997) 이혜복(32回), 변영태(前 母校 敎師), 유경상(前 母校 敎師)
    第11回(1998) 김태현(33回), 채문식(34回)
    第12回(1999) 윤한식(40回), 신영훈(46回)
    第13回(2000) 김각중(33回), 김찬국(36回), 鄭鎭奭(41回), 金炳官(45回)
    第14回(2001) 이원종(33回), 이철배(40回), 박병호(41回)
    第15回(2002) 김창현(36回), 이웅희(40回), 박성용(41回), 민대홍(43回)
    第16回(2003) 조중건(42回), 이상혁(44回), 김학수(47回), 문일평(前 母校 敎師)
    第17回(2004) 한만년(34回)
    第18回(2005) 최창락(41回), 김상기(前 母校 敎師)
    第19回(2006) 고희동(前 母校 敎師), 김수진(48回), 박승희(10回), 석일균(37回), 이기문(40回), 주종훈(2回), 지석영(記號學會 初代 副會長)
    第20回(2007) 정중렬(46回), 김완진(41回), 차하순(41回), 이재기(30回), 송응섭(47回), 최불암(本名 최영한·49回), 이백천(42回), 민경배(43回), 최규식(38回), 한동관(49回), 이인혁(44回), 안병표(48回), 조성옥(41回), 여운홍(3回), 安在烘, 백관수, 최두선, 최순주(9回), 류홍(11回), 리병도, 최남선, 리윤재, 권덕규, 최규익, 尹孝貞, 박승봉, 유성준, 윤치오, 유길준, 권병덕, 남궁훈, 幼根, 함상훈(12回), 이병준(31回), 한종건 (12回), 金榮煥, 이종우, 주재경(19回), 이희준(8回), 徐廷柱, 리尙火, 마해송, 김기팔(本名 金勇男 49回), 한진희, 박명진(16回), 具仁會, 權五卨, 권오상, 림규, 남영희(18回), 유진태, 송내호(6回), 임유동, 이병우(9回), 권원하, 조옥현, 강대성, 심홍택, 남상갑
    ‘設立功勞子’ 김윤식, 남궁억, 서병철, 이희직, 고정주, 리하영, 김기중, 김경중, 장현식, 박용희, 김년수, 이용직
    21回(2008) 전항섭(17回), 江倉거(20回), 이기을(33回), 이태로(41回), 이곤(42回), 홍인근(45回), 임광규(48回), 傳貰權(48回), 소칠섭(49回), 최청림(50回), 신문수(50回), 이준상(52回), 남궁진(52回), 김병일(55回), 이광환(58回), 鄭夢準(61回), 서정호(62回), 장지영(本校 敎師)


    2. 塹城壇(塹星壇) 修學旅行 -兪泓(柳鴻) 前 國會議員(11回) 回顧

    개교 100년 맞는 중앙고등학교

    중앙고 校內에 있는 3·1記念館.

    “나는 1916年 仁村 先生께서 學校를 引受하신 다음 해에 中央學校에 入學했다. 入學 後 첫 逍風을 江華島로 갔는데 그때의 일은 오래도록 나에게 어떤 衝擊처럼 남아 있었다. 全校生이 함께 갔던 것 같다.

    幼根 校長 先生님을 包含한 先生님들 中에는 勿論 仁村 先生님도 包含되어 있었다. 江華島 摩尼山의 塹城壇에 올라갔다. 校長 先生님은 이 檀君 城터에서 學生들에게 檀君說話를 얘기하면서 목이 메었으며, 仁村 先生님께서도 소리 없이 눈물을 짓고 있었다. 學生들도 그제서야 나룻배까지 빌려 타고 江華島에 逍風을 온 까닭을 깨닫고는 모두 함께 울었다. 그때 校長 先生님 바로 옆에서 端正한 姿勢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눈물을 흘리시던 仁村 先生님의 모습은 只今도 잊히지 않는다.”

    3. 隣村의 授業時間 - 신도성(愼道晟) 全 國土統一院 長官(26回) 回顧

    “隣村은 受信時間에 敎材를 뒤로 제쳐놓고 自身의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慇懃히 民族精神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이었다. (…) 3·1運動 때의 말씀도 하셨는데 中央學校에서 謀議하던 얘기를 하셨다. ‘3·1運動이 파고다公園에서 일어난 줄만 알고 있지? 事實은 中央學校에서 始作된 거야. 計劃도 세우고 油印物도 만들고 그랬는데 바로 그거 한 집이 바로 저 집이야!’ 하고 우리 學校 宿直室을 가리켜주셨다. 이렇게 仁村 先生은 中央學校가 民族主義의 本據地임을 일깨워주셨고 우리는 그런 말씀을 들으며 스스로 自負心을 가지게 되었다.”

    4. 退校生들이 모이는 곳 - 서항석(徐恒錫) 演出家(9回) 回顧

    “나는 1918年에 中央學校를 卒業했는데 따지고 보면 1年도 못 다니고 卒業한 셈이다. 나는 寶城學校를 다니다가 退學을 當하여 中央學校로 編入學하게 됐던 것이다. 仁村 先生의 抗日的이며 愛國的인 勇斷을 잊을 수가 없다.

    寶城學校 2學年에서 問題가 생겼다. 體操時間이 되어 모두 웃옷을 벗고 나가게 되었다. 勿論 敎室에는 當番이 지키게 돼 있었다. 그런데 벗어두었던 옷 속에서 時計가 없어졌던 것이다. 마침 寶城學校에는 ‘고마쓰者키’라는 日本人 敎師가 있었는데, 그가 鍾路警察署에 連絡을 했다. 그래서 刑事가 와서는 學生들을 罪人 다루듯했다. 우리는 4學年으로 最高 學年이었는데, 이 같은 事態에 크게 憤慨했다. (…) 事態가 커질 것 같아 2, 3學年들을 누르고 우리 4學年 學生 8名이 모든 責任을 지기로 하고 校長先生께 自退書를 냈다. 校長인 崔麟(崔린) 先生은 挽留하셨지만 우리의 氣勢는 堂堂했다. 崔麟 先生은 안 되겠던지 仁村 先生께 電話를 거셨다.

    ‘요새 우리 學校 事件 생긴 거 아시지요? 正말 進退維谷입니다. 總督府에서 退學을 시키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어 退學을 시켰소만 正말 優秀한 애들인데 가슴이 아프오. 앞길이 九萬里 같은 젊은 애들의 將來를 막아놓을 수는 없지 않소?’

    ‘좋습니다. 그럴 수는 없지요. 退校生 全員을 저희學校로 보내주십시오. 小生이 맡아 가르치겠습니다.’

    그래서 中央學校로 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後에 생각하니 仁村 先生의 愛國者로서의 一面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되었다.”

    5. 日本말 對答에 매질한 英語 先生 - 채문식(蔡汶植) 前 國會議長(34回) 回顧

    “1930年代 末 日帝는 國語常用이라 하여 學校에서는 日本말만 쓰게 했다. (…) 그러나 當時 이 땅에서 오직 한 곳, 중앙고보만은 日本語를 쓰지 않았다. 그 時節에 日本語를 쓰지 않고 工夫를 한다는 것은 想像도 못할 일이다. 大槪 中央學校 先生은 1年은 學校에 계시고, 1年은 監獄에 가 계시는 게 普通이었다.

    中央學校에 入學하면서 매를 많이 맞았다. 入學 첫날부터 英語時間에는 회초리 하나씩을 집에서 準備해오라는데 집에 갈 때에는 그게 다 꺾일 地境이었다. 出席을 부르는데 先生님은 우리말로 ‘채문식!’ 하고 부른다. 그때 初等學校에서는 日本語만 배웠으므로 不知不識間에 ‘하이!’라고 對答하게 되고 그렇게 ‘하이!’라고 하면 또 맞는 것이었다. 勿論 先生님은 理由를 說明해주지 않았다. 自己가 가져간 회초리가 다 부러질 때쯤 되면 뭔가 가슴에 뿌듯한 게 있어서 ‘예’라고 우리말로 對答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敎育을 할 수 있는 것은 隣村이 계신 中央이 아니면 안 됐다.”

    윤시탁 중앙고 校長 인터뷰

    “在學生 學歷 腎臟이 第1의 目標”


    개교 100년 맞는 중앙고등학교
    지난해 3月 第27代 校長에 就任한 윤시탁(尹始鐸) 校長은 學校에 크고 작은 變化를 가져온 主人公이다. 就任 直後 밤 10~11時까지 夜間自律學習을 全面 實施한 것이 端的인 例다.

    “가장 時急한 課題가 在學生의 學歷 增進이다. 財團이 많은 投資를 해주어 學校施設은 現在 國內 最高 水準이다. 그런 만큼 學校를 革新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改革 方案을 꾸준히 硏究하고 導入하고 있다.”

    ▼ 自立型 私立高로 轉換하는 問題는 現在 어떻게 進行되고 있는지.

    “自立型 私立高 問題는 이미 1990年代부터 金炳官(金柄琯) 前 理事長께서 關心을 갖고 準備해온 事案이다. 2000年에도 이 問題가 擡頭되면서 學校와 財團이 힘을 合해 많은 準備를 했다. 自立型 私立高로 轉換하려면 먼저 그것이 可能한 方向으로 敎育政策부터 바뀌어야 한다. 學校로서는 寄宿舍를 마련해야 하고, 現在 1100餘 名 水準인 學生 數를 줄여나가는 等의 準備가 必要하다.”

    ▼ 100周年 記念行事로는 어떤 것들이 準備되고 있나.

    “지난 3月에는 母校 100周年 體育館에서 3·1運動記念式 및 3·1運動 策源記念行事가 열렸고, 韓國보이스카우트 發祥地非 建立食道 가졌다. 6月10日에는 開校 100周年 記念 6·10 萬歲運動 記念式과 함께 獨立運動家 名譽卒業狀 授與式이 있을 豫定이고, 20日에는 100周年 記念式 및 母校 出身인 徐廷柱 是非(詩碑), 李相花 是非(詩碑), 蔡萬植 文學碑, 校歌非 建立 除幕式 等이 開催된다. 이 밖에 올 年末까지 크고 작은 行事들이 연이어 豫定돼 있다.”

    尹 校長은 “于先 江北에서 1等이라는 말을 들으면 自然히 弘報가 된다”며 “2010年부터 居住地域에 相關없이 交叉 支援이 許容되면 江南에 사는 敎友들이 自制를 母校에 보낼 수 있도록 學歷 伸張과 學校 位相을 높이는 데에 最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韓國 보이스카우트 運動의 發祥地

    世界 보이스카우트 運動은 1907年 英國에서 陸軍中將 바덴 포웰에 依해 처음 始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中央學校가 그 發祥地다. 1922年 10月 中央學校 敎師였던 關山(冠山) 趙喆鎬(趙喆鎬) 先生이 學生 8名과 함께 結成한 ‘朝鮮少年軍’이 그 母胎가 됐다. 關山은 學校 뒤便 計算(桂山) 언덕을 舞臺로 學生들을 酷毒하게 훈련시키며 “너희는 이 民族의 畫廊이다. 民族을 求하는 先鋒이 돼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日帝는 이마저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少年軍의 名稱에서부터 單價(團歌)와 行進歌에 內包된 思想이 抗日 獨立思想의 鼓吹이며 不溫한 結社라고 端正한 日帝는 解散을 慫慂했고, 朝鮮少年軍은 끝내 1937年 가을에 解體되는 悲運을 겪었다.

    # 6·10 萬歲運動의 主動

    3·1運動 後 衰微해가는 듯하던 獨立精神에 또다시 기름을 붓고 불을 지핀 學生運動이 1926年 6·10 萬歲運動이다. 이 運動의 主軸 또한 中央學校 學生들이었다. 純宗皇帝의 因山일(因山日)에 勃發한 6·10 萬歲運動의 主動者로 社會主義 運動主體人 勞動界의 權五卨과 권도상이 中央 出身이었고, 中央學校 學生이던 이동환, 박용규, 이선호, 류면희 等을 包含해 모두 11名이었다.

    擧事 날 對與(大輿)가 鍾路 3街를 지날 때 그곳에 있던 이선호, 이동환 等이 萬歲를 先唱하며 檄文과 宣傳文을 撒布하자 學生들과 群衆이 合勢해 ‘大韓獨立萬歲’를 외쳤다. 萬歲의 波濤는 敦化門 앞까지 傳해지고 關修交에 있던 연희전문 學生에게도 이어졌다. 중앙기독교청년회館 學生들은 을지로 5街 附近에서, 경성제대 豫科 學生들은 訓鍊院 鳳缺食腸 뒤에서, 중동學校 學生들은 東大門 밖 東廟 뒤에서 大韓獨立萬歲를 외쳤다. 이 擧事로 中央學校 學生 100餘 明과 연희전문 學生 79~80名, 其他 學生 數十名이 逮捕돼 종로서로 押送됐다.

    6·10 萬歲運動은 背後에 操縱者나 指導者가 없었고 純全히 피 끓는 學生들이 憂國衷情에서 일으킨 獨立運動으로 3·1運動의 延長이요, 光州學生運動의 全圖가 되었다.

    백순지 中央敎友會長 인터뷰

    “21世紀 名門私學으로 거듭나도록 모든 일 다 하겠다”


    개교 100년 맞는 중앙고등학교
    백순지 中央敎友會長(54回 卒業·백순지齒科議員 院長)은 요즘 本業보다도 母校 일로 더 바쁘다. 오래前부터 準備해온 中央 100周年 記念行事가 바로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25年 前부터 野球後援會, 奬學財團 等 母校 事業에 積極 關與해온 그는 校友會 事務總長에 이어 2004年부터 會長職을 맡고 있다.

    ▼ 母校에 對해 자랑할 게 많겠지만, 餘他 名門校와 區別되는 差異를 하나만 든다면 어떤 것인가.

    “民族意識이 누구 못지않게 剛하다는 點이다. 수많은 愛國志士가 母校를 設立하고 또 그 精神을 본받아 獨立運動의 産室이 된 點이다. 그런 탓인지 中央 出身 中 公職에 몸담았던 人物은 相對的으로 적은 便이다. 野黨 系列의 學校였기 때문이다. 한便으론 우리 卒業生 中 예컨대 醫療 系統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어느 分野에 있건 우리 中央 卒業生들은 仁村 先生의 公船事後(公先私後) 精神을 實踐하고 있다.”

    ▼ 中央 出身 中에 우리 現代史를 主導한 人物이 참 많은데.

    “맞다. 우리 學校 歷史와 卒業生 名單이 그대로 近現代史의 全貌를 보여준다고 할 程度다. 이番에 校友會에서 100周年 記念事業의 一環으로 ‘100年史’等 5種의 冊을 發行하는데, 그中 ‘人物로 본 中央 100年’에 들어갈 人物이 너무 많아 選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事實은 이를 위해 1988年부터 每年 ‘자랑스러운 中央인’을 選定해오고 있는데도 그렇다.”

    ▼ 하지만 자랑스러운 歷史에 비해 最近엔 좀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平準化 以後 優秀學生 誘致가 어려워져서 그렇다. 中學校를 男女共學으로 轉換한 것도 그런 理由 때문이었다. 이에 校友會에서 1990年代 中盤에 ‘綜合高等學校’案을 財團에 建議한 일도 있다. 4個 系列別로 英才를 募集해 敎育하자는 안이었는데, 敎育制度가 바뀌면서 흐지부지됐다. 그 後 2000年에는 自立型 私立高로 轉換하는 方案을 構想하기도 했다.

    우리 學校가 校舍(校舍) 等 하드웨어 面에서는 只今 世界的인 水準에 와 있다고 自負한다. 問題는 소프트웨어 面에서의 補完인데, 校友會와 財團, 學校가 모두 한뜻인만큼 앞으로 잘되리라고 본다.”

    ▼ 100周年을 期해 校友會가 準備하고 있는 일은?

    “여러 가지 行事가 많다. 100億원을 目標로 始作한 100周年 基金 募金運動도 그中 하나다. 只今까지 同窓生들이 十匙一飯으로 모은 돈만 25億 程度인데, 앞으로 目標價 채워지면 이 中 70%를 母校發展基金으로 쓸 豫定이다. 이 外에 財團에 맡겨온 34億원의 中央學校 運營基金이 불어나 64億 程度가 있다.”

    百 會長은 旣存의 運營基金 64億에 對해 事緣이 있는 돈이라고 紹介했다. 高校 平準化 以後 學校가 財政難에 處했다. 이에 校友會가 나서 募金運動을 펼쳐 3億8000萬원을 모았는데 이 事實을 안 朴正熙 前 大統領이 2億원을 喜捨했다고 한다. 이것을 種子돈 삼아 김봉은 전 敎友會長(作故·30回)李 잘 運用해 64億원 이라는 巨金이 됐다는 것이다.

    ▼ 財團 側과 協助는 잘 되고 있나.

    “지난 2月 作故하신 花亭(化汀) 金炳官(金柄琯) 前 財團理事長(前 동아일보 名譽會長)께서 中央學校를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하셨다. 200億원 가까운 돈을 들여 얼마 前에 마무리된 學校 리모델링 作業만 해도 花亭 先生이 아니었다면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다.

    花亭 先生은 病苦에 시달리던 마지막 瞬間까지 中央學校를 사랑했던 분이다. 지난해 9月 어느 日曜日이었는데 내가 學校를 訪問했을 때 그분을 偶然히 뵌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분은 鬪病 中에도 看護師를 帶同하고 校庭을 둘러보며 改善할 事項을 글로 써서 祕書에게 傳達하고 계셨다. 花亭 先生의 뜻을 이어받아 中央學校를 21世紀 名門私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 1990年代 以後의 中央高等學校

    高校平準化 以後 中央高等學校의 雄壯한 敎勢(校勢)도 한풀 꺾인 感이 없지 않다. 勿論 民族主義를 드높인 빛나는 傳統의 빛이 바랠 理야 없겠지만, 江南에 비해 江北이 落後한 地域으로 남게 되면서 優秀한 學生들의 入學이 相對的으로 줄어든 탓이다.

    다른 名門 私學들은 江南으로 學校를 옮겨갔지만, 中央은 그러기도 어려웠다. 西關(私的 282號), 동관(私的 283號), 現在의 本館(私的 281號) 等 學校 建物 相當數가 文化財로 指定돼 있기 때문이다. 얄팍한 世態를 좇아 抗日 民族運動의 堡壘 役割을 했던 종로구 季冬 터를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代身 學校法人인 고려중앙학원은 1995年 綜合高等學校안(案), 2000年에는 自立型 私立高案(案)을 檢討했다. 江北地域에서 優秀 學生을 誘致하려는 努力의 一環이었다. 國內 高校로는 처음으로 巨金을 들여 컨설팅 會社에 學校現況 分析을 맡기고, 發展委員會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開校 100周年을 準備하는 2000年代에 들어와 學校는 여러 가지 눈에 띄는 變化를 圖謀했다. 財團 側은 100周年 記念館으로 2005年 12月 情報科學館, 2006年 2月에는 體育館을 完工한 데 이어 旣存 敎師(校舍)도 모두 리모델링했다. 올해 2月에는 仁祖 잔디球場 開場食道 가졌다. 이로써 中央高等學校는 國內 高校는 勿論 先進國과 比較해 遜色이 없는 最尖端 施設을 갖추게 됐다. 傳統과 尖端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배움의 殿堂, 現在의 中央高等學校 모습이다.

    各界에 布陣한 中央 交友(校友)들

    (중앙교우에는 中央 中·高 卒業生뿐 아니라 敎職員도 包含된다.)
    情·官界

    ▶政界(政界)◀

    * 金鍾仁(49回)=민주당 17代 比例代表. 11,12,14代 國會議員

    * 朴成範(50回)=한나라당 17代 서울 中區 國會議員

    * 鄭夢準(61回)=한나라당 最高委員, FIFA 副會長 兼 올림픽組織委員長

    * 柳一鎬(중앙중 62回)=한나라당 18代 當選者

    ▶關係(官界)‘局長級 以上’◀

    * 정중렬(46回)=平安南道知事

    * 김문원(52回)=議政府 市場

    * 장동환(59回)=國土海洋部 龍山公園推進企劃團 副團長 派遣/國務總理室 所屬

    * 김주일(60回)=食品醫藥品安全廳 生物醫藥品 本部長

    * 최광식(62回)=국립중앙박물관長

    * 兆請願(63回)=敎育科學技術部 국립중앙과학관長

    * 고정식(64回)=特許廳長

    * 이동훈(64回)=公正去來委員會 事務處長

    * 沈允肇(64回)=外交通商部 本部, 오스트리아 大使

    * 金宗壎(64回)=法務部 人權局長, 外交通商部 出身

    * 金慶洙(64回)=國土海洋部 國土情報政策官

    * 조태열(65回)=外交通商部 本部, 大使 發令 豫定

    * 손성환(65回)=美國 시카고 總領事

    * 안양호(66回)=京畿道 行政副知事

    * 장기원(66回)=敎育科學技術部 企劃調整室長

    * 이재영(66回)=國土海洋部 住宅土地室長

    * 문하영(66回)=外交通商部 에너지資源大使. 前 우즈베키스탄 大使

    * 이창한(66回)=知識經濟部 情報通信産業政策官

    * 최종현(66回)=外交通商部 情報狀況室長

    * 이인근(66回)=서울市 都市計劃局長

    * 안현호(67回)=知識經濟部 企劃調整室長

    * 김배홍(67回)=知識經濟部 投資政策館

    * 이호철(67回)=企劃財政部 釜山地方調達廳長

    * 이기철(67回)=外交通商部 領事審議官

    * 황순택(67回)=外交通商部 通商交涉本部 審議官

    * 김주현(68回)=金融委員會 金融政策局長

    法曹界

    * 虞祭(愚齊) 김태현(金兌鉉·33回)=前 大法官

    * 이상혁(李相赫·44回)=東亞日報와 母校 財團 相談役

    * 심훈종(沈勳鍾·47回)=前 서울刑事地法 部長 判事

    * 정기용(鄭基用·47回)=前 陸軍 法務監(准將)

    * 임광규(林炚圭·48回)=‘憲法을 생각하는 辯護士’ 모임 共同會長

    * 안동수(安東洙·50回)=前 仁川地檢 檢事. 2001年 法務部長官

    * 권오봉(權五鳳·59回)=現 釜山地法 家庭支院長

    * 심학무(沈學茂·61回)=前 全南警察廳 搜査課長·長興警察署長. 1993年 開業

    * 金 섭(金 燮·61回)=釜山·大邱 地檢 檢査를 거쳐 1991年 開業

    * 조승곤(趙承坤·61回)=前 群山支院長·서울地法 部長判事

    * 김동재(金東宰·61回)=辯護士로 光州地域에서 活動

    * 이윤승(李胤承·62回)=前 서울高法 部長判事·서울 北部支院長. 現 家庭法院長

    * 강신원(姜信源·62回)=辯護士, 江陵에서 活動 中

    * 권오곤(權五坤·63回)=네덜란드 國際刑事裁判所(ICTY) 裁判官

    * 윤승진(尹勝鎭·63回)=前 晉州支院長·서울地法 北部支院 部長判事, 開業

    * 조용호(趙龍鎬·64回)=서울高法 判事

    * 권진웅(權鎭雄·64回)=前 서울南部支院 部長判事. 法務法人 江西 辯護士

    * 정진우(64回)=美國 辯護士, 法務法人 에이스 國際辯護士

    * 양동철(梁東哲·65回)=前 서울地檢 東部支廳 部長檢事, 開業

    * 채정석(蔡晶錫·65回)=韓華그룹 法務擔當 副社長. 行政·司法 量과 合格

    * 임정혁(林正赫·66回)=前 大邱地檢 浦項支廳長. 現 蔚山地檢 次長 檢事

    * 김동윤(金東潤·66回)=前 서울 中央地法 判事

    * 민창환(閔昌煥·66回)=예금보험공사·保險消費者聯盟 辯護士

    * 박용식(朴鏞軾·66回)=法務法人 優性綜合 辯護士

    * 엄도희(嚴道熙·66回)=辯護士

    * 서우정(徐宇正·66回)=前 서울高檢 檢事, 三星그룹 法務室 副社長

    * 조문성(趙文誠·66回)=美國 辯護士, 金&腸 辯護士

    * 강영호(姜永虎·67回)=서울高法 部長判事

    * 김상도(金相道·67回)=前 議政府地檢 次長檢事

    * 송재양(宋在洋·67回)=法務法人 曙光 代表 辯護士. 前 서울中央地檢 部長檢事

    * 오연균(吳沇均·67回)=建交部 民間投資事業審議委員, 金&腸 法律事務所 勤務

    * 이문호(李文鎬·67回)=辯護士, 前 大檢察廳 科學搜査課長

    * 장태규(張太圭·67回)=水原에서 辯護士로 活動 中

    * 조소현(曺沼鉉·67回)=로서브 辯護士, 仁川 유나이티드FC 顧問辯護士

    * 조선환(趙璇煥·67回)=法務法人 ‘사랑’ 辯護士

    * 강병국(姜炳國·67回)=辯護士, 前 京鄕新聞 記者

    (68回 以下 省略)

    宗敎界

    * 김찬국(金燦國·36回)=연세대 敎授, 牧師. 前 上肢帶 總長

    * 鄭鎭奭(鄭鎭奭·41回)=樞機卿, 天主敎 서울大敎區長

    * 민경배(閔庚培·43回)=神學者. 연세대 名譽敎授, 白石大 碩座敎授

    財界

    * 조중건(趙重建·42回)=前 KAL 副會長

    * 이인혁(李仁爀·44回)=先進種畜 그룹 會長

    * 왕기주(王基周·54回)=大賢農水産 社長

    * 이원태(李元泰·55回)=금호고속 代表理事 社長

    * 金鍾浩(金鍾浩·57回)=아시아나 아이디티 社長

    * 김영철(金榮哲·57回)=동국제강 社長

    * 한형석(韓炯錫·58回)=마니커 代表理事 會長

    * 鄭夢準(鄭夢準·61回)=現代重工業 顧問

    * 허진수(許進秀·63回)=GS칼텍스精油 社長

    * 장세주(張世宙·63回)=동국제강 會長

    * 정몽윤(鄭夢允·64回)=현대海上火災 會長

    * 정몽선(鄭夢善·64回)=현대시멘트 會長

    * 김량(金亮·65回)=삼양제넥스 代表理事

    * 권은영(權殷榮·66回)=東明重工業 代表理事

    * 具滋均(具滋均·67回)=LG 산전社長

    * 구본걸(具本杰·67回)=LG패션 代表理事

    * 허태수(許兌秀·67回)=LG 홈쇼핑 社長

    * 김원(金沅·68回)=三養社 代表理事

    * 金孃(金瀁·68回)=현대시멘트 副社長

    ▶製藥業界◀

    * 이철배(李哲培·40回·1926~2007)=大熊製藥 前 社長, 名譽會長

    * 정지석(鄭之碩·51回)=韓美藥品 副會長

    * 金泳鎭(金寧珍·66回)=韓獨藥品 會長

    * 백승호(白承浩·66回)=隊員制約 代表理事

    * 김원규(金元圭·67回)=三星制約 代表理事

    * 윤재승(尹在勝·72回)=大熊製藥 副會長, 辯護士

    ▶專門經營人◀

    * 최홍린(崔洪鱗·41回)=고합 前 社長

    * 이기동(李起東·41回)=선경化學 前 社長·副會長

    * 조항구(趙恒九·45回)=三扶土建 前 代表, 非常任 顧問

    * 백남진(白南珍·49回)=경방 前 副社長·社長, 現在 拷問

    * 김영휘(金英輝·49回)=삼성중공업 前 專務, 스타벅스 社長

    * 김정순(金正淳·49回·1939~2004)=제일제당 社長, 三星 라이온스 會長

    * 김주용(金柱瑢·49回)=현대전자 前 社長, 고려산업개발 前 社長

    * 李大源(李大遠·50回)=제일모직·삼성건설·삼성자동차·삼성항공 前 代表理事

    * 채수삼(蔡洙三·52回)=금강기획 前 社長, 서울新聞 前 社長, 現 그레이프 커뮤니케이션즈 會長

    * 李喆雨(李哲雨·52回)=前 롯데마트 代表, 롯데쇼핑 代表理事

    * 이수호(61回)=현대重工業 副社長

    * 조국필(趙國弼·57回)=(週)쌍용 代表理事

    * 李海珍(李海鎭·58回)=三星BP化學 社長, 前 三星社會奉仕團 招待丹粧

    * 한순현(韓舜鉉·59回)=보르네오가구 社長

    * 이필승(李弼承·60回)=前 大林産業 理事, 풍림산업 社長

    * 조용권(趙容權·60回)=韓國파파존스 社長

    * 정만원(鄭萬源·61回)=SK네트워크 社長

    * 송문섭(宋文燮·61回)=前 펜택&큐리텔 會長, 유니스타컴 總括 社長

    * 박동훈(朴東勳·62回)=폭스바겐 코리아 社長

    * 조진욱(趙鎭旭·62回)=BASF 會長

    * 김양수(金良洙·62回)=碧山엔지니어링 代表理事

    * 최재신(崔在臣·63回)=考慮開發 代表理事 社長

    * 이민화(李珉和·63回)=메디슨 常任顧問

    * 정이만(鄭二萬·63回)=63시티 社長

    * 신용호(愼鏞浩·63回)=금강제화 代表理事

    * 전세호(全世鎬·66回)=심텍 會長

    * 길현창(吉炫昌·67回)=모토로라 코리아 社長

    * 백정호(白正鎬·68回)=동성化學 社長

    金融界 保險業 等

    * 이동훈(李東勳·57回)=제일화재보험 會長

    * 강정원(姜正元·중앙중 57回)=國民銀行長

    * 정용화(鄭庸和·62回)=국민은행 監査

    * 김주윤(62回)=SC 第一銀行 e서비스部 常務

    * 하영구(河永求·중앙중 60回)=씨티銀行長

    * 이철휘(李哲徽·중앙중 60回)=資産管理公社 社長

    * 김명기(64回)=韓國銀行 金融經濟硏究院 副院長

    * 조일래(64回)=韓國銀行 法規室長

    * 윤용로(尹庸老·65回)=중소기업은행長

    * 이강만(65回)=하나금융持株 副社長

    * 임주환(65回)=韓國銀行 大田忠南本部腸

    * 이정원(66回)=新韓銀行 副行長補

    * 黃曙光(黃瑞光·66回)=興國쌍용화재保險 代表理事

    * 固定席(67回)=일신창업투자 代表理事

    言論界(光復 以後를 爲主로)

    * 이웅희(李雄熙·40回)=前 동아일보 編輯局長. 文公部長官, 13·14·15代 國會議員

    * 백승호(白承胡·41回)=前 내외경제 編輯局

    * 오병열(吳炳烈·42回)=한국일보 記者, 前 少年部 次長

    * 홍인근(洪仁根·45回)=前 동아일보 編輯局長. 고려중앙학원 相談役

    * 정덕교(鄭德敎·45回)=中央日報 記者, 社會部 部長待遇. 現在 扞率 PCS 感謝

    * 주명갑(朱明甲·47回)=中央日報 編輯局長, 世界日報 編輯局長

    ▶49回 言論人들◀

    * 공종원(孔鍾源)=中央日報 論說委員, 조선일보 論說委員

    * 송선무(宋善武)=京鄕新聞 特輯企劃部長, 서울放送 審議委員

    * 최택만(崔澤萬)=서울新聞 經濟部長· 外信部長 待遇, 論說委員

    * 조광식(趙光植)=동아일보 社會部長, MBC 스포츠局長, LG 蹴球團長. 蹴球協會 弘報委員長, 現 韓國體育言論人會 副會長

    * 민광성(閔光成)=KBS 政治部·經濟部 記者, 한화그룹 弘報室 理事

    ▶50回 言論人들◀

    * 박경진(朴京鎭)=조선일보 記者, 2002 월드컵組織위弘報室長

    * 송충섭(宋忠燮)=한국경제신문 編輯局 副局長·販賣國葬, 全經聯 理事, 韓美産業技術協力財團 事務局長, 메인컴 會長

    * 최청림(崔靑林)=前 조선일보 編輯局長·論說委員 理事

    * 조연흥(曺然興)=조선일보 社會部長, 專務理事. 現在 獨立記念館 理事

    * 김도진(金道鎭)=KBS 報道局長, 放送硏修院長. 未來敎育放送 代表, 커뮤니케이션戰略硏究所 會長

    * 박인순(朴仁淳)=한국일보 論說委員. 大統領公報祕書室 祕書官, 韓國수출보험공사 副社長, 言論仲裁위 副委員長

    * 조강환(曺康煥)=동아일보 論說委員, 放送委員會 委員. 放送通信政策開發院 院長, 生活經濟TV 共同代表理事

    * 朴成範(朴成範)=KBS 앵커, 報道本部長. 15·17代 서울 中區 國會議員

    * 정규웅(鄭奎雄·51回)= 中央日報 文化部長, 中央經濟 編輯局長代理, 論說委員

    * 고학용(高學用·52回)=조선일보 論說委員, 前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腸. 現 言論仲裁위 讀者不滿處理委員長

    * 채수삼(52回)=서울新聞 社長

    * 鄭 勳(丁 薰·53回)=한국일보 外信部長, 서울經濟 論說委員

    * 이운학(李雲鶴·53回)=KH 새마을 編輯長, 內外經濟 産業部 次長

    * 김진수(58回)=每日經濟 인터넷 副社長

    * 백화종(59回)=國民日報 編輯人, 前 主筆

    * 권일(60回)=前 中央日報 論說委員, 中央日報 情報事業團代表

    * 이명구(60回)=KBS 審議팀長

    * 방민준(60回)=한국일보 前 論說委員室長

    * 강일중(61回)=聯合뉴스 審議委員

    * 이정욱(61回)=디지털타임스 全 社長

    * 김석규(62回)=前 월간조선 理事

    * 양홍모(62回)=KBS 審議委員, 前 統一部長

    * 양봉진(62回)=韓經닷컴 前 社長, INFINITE 前 代表

    * 김형배(63回)=한겨레 論說委員

    * 황창호(64回)=聯合뉴스 審議委員

    * 김성희(64回)=中央日報 高麗大派遣, 前 文化部長

    * 김상수(65回)=MBC 解說委員

    * 李承哲(66回)=京鄕新聞 論說委員

    * 최창영(66回)=MBC 워싱턴特派員

    * 하남신(66回)=SBS 論說委員

    * 김영규(66回)=한국경제신문 編輯局長

    * 이人用(67回)=前 MBC 앵커, 삼성전자 弘報팀 專務

    * 임흥식(67回)=MBC 報道特輯部長

    (68回 以下 省略)

    軍(現役)

    * 신보현(60回)=豫備役 空軍 中將. 國防大 副總長

    * 공승구(61回)=情報化學校 英語敎授

    * 유대우(61回)=陸軍少將, 陸軍大學 總長

    * 金星坤(64回)=國軍情報社 衛星事業團長

    * 윤학수(64回)=空軍少將, 韓美聯合司 情報參謀本部長

    * 김규천(64回)=空軍大領, 駐日本 大使館 武官

    * 이승헌(65回)=陸軍大領, 陸軍敎育史 電力所要 2處長

    * 김웅건(66回)=陸軍大領, 레바논 派遣 東明部隊長

    * 황진환(67回)=陸軍中領, 陸士 政治學 誇張

    * 이제수(68回)=陸軍准將, 陸本 人事運營監室 人事革新팀

    (69回 以下 省略)


    各界에 布陣한 中央 交友(校友)들

    (중앙교우에는 中央 中·高 卒業生뿐 아니라 敎職員도 包含된다.)
    學界

    * 이희승(9回)=國語學者, 서울대 名譽敎授, 前 동아일보 社長

    * 정문기(9回)=어류학자

    * 국채표(16回)=氣象學者

    * 김잉석(金芿石·17回)=佛敎學者, 前 동국대 佛敎大學長

    * 이을호(20回)=東洋哲學者

    * 하기락(河岐洛·24回)=哲學者, 無政府主義 理論價

    * 李龍熙(25回)=政治學者, 國內 最初 美術史學者‘3·1運動 代表 이갑성氏 아들’

    * 이 孃(李 梁·25回)=工學者

    * 박홍규(朴洪奎·31回)=哲學者, 서울대 哲學科 敎授

    * 윤세원(尹世元·31回)=物理學者

    * 정병조(鄭炳祖·31回)=英文學者

    * 이기을(李氣乙·33回)=경영학자, 연세대 名譽敎授

    * 김소인(金素麟·35回)=化學者

    * 최계근(崔桂根·35回)=電子 分野 學術院 會員

    * 윤한식(40回)=纖維工學子, 世界 最初 防彈纖維 開發, 韓國科學翰林院 會員 KIST 前 夕座硏究員, 지난 1月24日 別世

    * 김상기(金庠基)=母校 敎師. 동양사학자

    * 문일평(文一平)=母校 敎師, 言論人이자 歷史學者

    * 이기문(李基文·40回)=國語學者

    * 김완진(金完鎭·41回)=國語學者, 서울대 名譽敎授, 國語學會長

    * 박병호(朴秉濠·41回)=法制史學者, 서울대 名譽敎授, 學術院 會員

    * 이병도(李丙燾)=史學者. 母校 敎師. 서울大 敎授, 문교부長官, 學術院 會長

    * 최남선(崔南善)=母校 敎師, 歷史學者이자 詩人, 중앙고 校歌 作詞者

    * 이윤재(李允宰)=母校 敎師, 國語學者, 朝鮮語學會 事件으로 獄事

    * 李泰珪(李泰圭)=化學者, 國內 最初 理學博士

    * 한배호(韓培浩·41回)=政治學者

    * 차하순(車河淳·41回)=西洋史學者. 서강대 名譽敎授, 學術院 會員

    * 이태로(李泰魯·41回)=租稅 및 會社法 學者. 서울대 名譽敎授

    * 趙潤濟(趙潤濟)=母校 敎師. 國語學者

    * 유봉철(劉奉哲·41回)=經濟學者

    * 최문형(崔文衡·43回)=歷史學者

    * 김수진(金洙鎭·48回)=地質學者

    * 소칠섭(蘇七燮·49回)=地質學者

    * 한우근(韓퍑劤·母校 敎師)=國史學者

    * 김열규(金烈圭)=母校 敎師, 國文學者, 서강대 敎授

    * 손진태(孫晉泰)=母校 中退, 歷史學者

    * 김선기(金善琪)=母校 中退, 國語學者

    * 주시경(周時經)=母校 敎師, 國語學者

    * 김우용(金寓龍·52回)=言論學者, 外大 名譽敎授

    * 권길헌(61回)=韓國科學技術員 應用數學과 敎授

    * 이중화(李重華)=母校 敎師, 數學者

    * 권덕규(權悳奎)=母校 敎師, 朝鮮語學會 事件으로 投獄

    * 손호철(孫浩哲·61回)=서강대 政外科 敎授

    * 유기춘(65回)=연세대 社會學科 敎授

    * 김경화(67回)=서울대 經濟學科 敎授

    * 정덕균(68回)=서울대 半導體硏究所長

    敎育界

    * 이재기(李在幾·30回)=상명대 財團理事長

    * 박양원(朴良元·32回)=前 경희대 總長

    * 조성옥(41回)=前 인하대 總長, 문교부 次官

    * 김중순(48回)=韓國디지털大學校 總長

    * 나종일(羅鍾一·59回)=又石大 總長. 前 駐日大使

    * 金炳哲(金炳喆·59回)=고려대 副總長

    * 유병진(61回)=명지대 總長

    醫療界

    * 박명진(朴明鎭·16回·1903~1958)=서울대 齒科大學長, 財産 全部를 大韓齒科醫學協會에 寄贈

    * 二宇宙(李宇柱·27回)=藥理學者, 연세대 醫療院長, 연세대 7·8代 總長

    * 최규식(崔奎植·38回)=해정醫療財團 理事長

    * 이원종(33回)=淸州 三火耳鼻咽喉科議員 院長

    * 김주완(38回)=放射線科, 서울대 醫大 名譽敎授

    * 남상혁(41回)=남상혁 外科醫院長

    * 李富榮(42回)=神經精神科, 서울醫大 名譽敎授, 韓國융(Jung)硏究院長

    * 민진식(47回)=外科腫瘍學 專攻, 松島病院長, 前 大韓癌協會長

    * 한동관(韓東觀·49回)=現 관동대·總長. 嶺東세브란스 病院長, 관동대 義務副總長 兼 醫療院長

    * 권혁수(51回)=경희한의대, 民生韓醫院長

    * 이준상(李駿商·52回)=고려대 醫大 敎授, 韓國醫療法學會長, 前 國立保健院長

    * 송경섭(53回)=경희한의대, 경희名韓醫院長

    * 백순지(54回)=서울齒大, 백순지齒科委員長. 現 중앙고 敎友會長

    * 장영일(54回)=齒科矯正學 專攻, 現 서울齒大 病院長

    * 이규완(56回)=고려醫大 産婦人科學敎室 主任 敎授, 産婦人科內視鏡學會長

    * 김여갑(57回)=前 경희대 齒大 學長·齒科病院長

    * 최득린(58回)=순천향대病院 放射線科 醫師

    * 강기서(59回)=중앙대 醫大 整形外科學敎室 敎授

    * 정규형(61回)=仁川限吉病院 理事長, 2007年 第19回 牙山上 大賞 受賞

    * 정준기(62回)=서울醫大 核醫學科 課長

    * 조양혁(62回)=가톨릭醫大 生理學 敎室 主任敎授

    * 김우경(63回)=고려醫大 九老病院 成形外科腸

    * 장영운(64回)=경희醫大 消化器內科 課長

    * 노만희(65回)=대한의사협회 常勤副會長, 백제병원長

    * 김명환(66回)=서울峨山病院 膽石센터 所長

    文人

    ▶是認◀

    * 李相花(10回·1901~194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寢室로’

    *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25回·1915~2000)

    * 樹州 卞榮魯(樹州 卞榮魯·3回·1897~1961)

    * 布石 조명희(抱石 趙明熙·1894~1938)=詩人이자 小說家

    * 월하 김달진(月下 金達鎭·1907~1989)=중앙고보 中退

    * 越北作家 정호승(1916~?)=중앙고보 自退

    * 모더니스트 詩人 배인철(裵仁哲·31回·1920~1947)

    * 기형도(1962~1989·70回)=1985年 동아일보 新春文藝에 時 ‘안개’로 登壇

    * 조병준(1960~·70回)

    ▶小說家, 劇作家, 評論家◀

    * 白綾 채만식(白綾 蔡萬植·13回·1902~1950)

    * 越北 文學評論家 김동석(金東錫·24回·1913~?)

    * 小說家 金容益(金溶益·30回·1920~1995)

    * 小說家 金楨漢(金廷漢·1908~1996)=중앙고보 中退 後 東來高普 卒業

    * 兒童文學家 마해송(馬海松·1905~1966)

    * 演出家 서항석(徐恒錫·9回·1900~1985)

    * 劇作家 박승희(朴勝喜·10回·1901~1964)

    * 放送作家 김기팔(金起八·本名 金勇男·49回)

    * 文學評論家 김치수(金治洙·50回)

    * 詩人 兼 文學評論家 異數花(李秀和·51回)

    * 남궁원(本名 홍경일·43回)=映畫俳優

    * 이백천(李白川·42回) 放送 PD, 音樂評論家

    * 傳貰權(全世權·48回)=演出家. 前 東洋放送 TV 프로듀서

    * 최불암(49回)=탤런트

    * 腸 禹(52回·本名 장경진) 팝·재즈界의 巨匠

    * 하명중(56回·本名 하명종)=映畫俳優, 監督

    * 고영수(61回)=개그맨의 元祖, 放送人

    * 김창완(62回)=歌手. 그룹 ‘山울림’ 리더

    * 박건형(87回)=뮤지컬 俳優

    * 김철민(94回)=개그맨, MBC 出演

    音樂界

    * 김병규(金秉奎·37回)=作曲家, 牧園大·청주대 敎授, 淸州市립 交響樂團 指揮者.

    * 김대붕(金大鵬·41回)=作曲家, 성심여대 音大 敎授, 前 중앙고 音樂敎師

    * 조민구(趙珉九·42回·플루트)=LA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指揮者

    * 조정현(曺廷鉉·42回·바순)=서울市響 前 首席團員, 韓國바순協會 名譽會長

    * 김영대(金永大·42回·색소폰)=輕音樂 發展에 獻身

    * 최영삼(崔濚三·42回·호른)=前 서울市響 團員 , 김학태(金學泰·47回·색소폰)

    * 이순택(李淳澤·48回·비올라)=前 서울市響 團員

    * 박인채(朴仁埰·48回·드럼)=‘섬드리 合唱團’ 團長, 前 KBS PD

    * 민춘기(閔椿基·53回·플루트)=前 MBC 輕音樂團腸

    * 전성일(全誠一·53回·더블베이스)=前 서울市響 團員, 첼로의 巨匠 전봉초 아들

    * 신홍균(申弘均·53回·플루트) 상명여대 音樂學科 敎授

    * 이존성(李存誠·54回·클라리넷)

    * 전동혁(全東爀·55回·호른)=前 市響團員·롯데월드 音樂 擔當. 韓國禮銃 副會長

    * 이종환(李鍾桓·55回·트롬본)

    * 정영웅(丁永雄·55回·트럼펫)

    * 이우천(李遇千·56回·트럼펫)=시애틀敎會 牧師

    * 이순희(李淳熙·56回)=淑明女大 聲樂科 敎授

    * 金鍾煥(金宗煥·중앙중 57回·打樂器)=KBS交響樂團 團員

    * 박상연(朴商演·64回·비올리스트)=‘和音 챔버 오케스트라’ 代表 兼 音樂監督

    * 장민수(張敏洙·65回·바이올리니스트) 美國 템플대 音大 敎授

    * 황종석(黃宗奭·66回·클라리넷)=韓國클라리넷協會 副會長

    * 김용환(金容煥·67回·피아노) 한세대 音樂學部腸

    * 朴龍鎬(朴鎔鎬·69回·플루트)=光州大 兼任 敎授

    * 김남진(金南鎭·71回·더블베이스)=淸州市香 團員

    美術界

    * 유준상(劉俊相·42回)=前 ‘現代美術’ 編輯長, 한국미술평론가협회腸

    * 이양원(李良元·중앙중 50回)=동덕여대 繪畫科 敎授, 前 藝術大學長

    * 이건걸(李建傑·43回·1933~2005)=靑田 李象範의 넷째 아들. 상명여대 敎授

    * 구자승(具滋勝·51回)=前 상명여대 敎授, 大韓民國 美術大展 審査委員

    * 최준원(崔俊元·62回)=晋州豫告 敎師, 牧園大 講師, 現在 母校 美術敎師

    ▶畫家들◀

    * 손두옥(孫斗沃·41回)=西洋畫家, 國際化迂廻 理事

    * 性能頃(成能慶·54回)=西洋畫家

    * 홍용남(洪龍男·52回)

    * 장석봉(張錫奉·60回)

    * 김명식(金明植·68回)

    * 박기룡(朴基龍·73回) 向上空間美術學院腸

    * 조병철(曺秉喆·73回)

    * 조구희(趙九熙·74回) 21世紀靑年作家會 常任委員

    * 김형무(金亨茂·74回)

    * 이택희(李宅熙·73回)

    ▶書藝家◀

    * 伯牙 김창현(白牙 金彰顯·35回)=母校 漢文 敎師.

    (兄이 日中 김충현(一中 金忠顯), 동생이 바로 餘草 김응현(如初 金應顯))

    * 이 곤(李 坤·42回)=한글 書藝가, 現在 社團法人 韓國鉏學會 理事長

    * 신문수(申文壽·50回)=漫畫가

    * 심정수(沈貞秀·51回)=彫刻家

    * 윤동구(尹同求·61回)=韓國藝術綜合學校 美術員 造形藝術과 助敎授

    ▶디자인 分野◀

    * 김정필(金禎弼·58回)=朝鮮大 美術大 디자인學部 敎授

    * 류가용(柳嘉鎔·59回)=現 牧園大 디자인學部 敎授

    * 여홍구(呂弘九·60回)=國內 1世代 에디토리얼 多智이너

    * 박천일(朴天一·62回)=경희사이버大 멀티미디어디자인學科 敎授

    * 신現場(申鉉章·56回)=패션 디자이너. 財團法人 國際패션硏究振興院 理事長

    * 윤진호(尹鎭虎·59回)=産業 디자인 博士, 建國大 大學院 敎授

    * 이대일(李大一·61回)=명지대 産業디자인學部 敎授

    * 金 面(金 勉·66回)=성균관대 藝術學部 디자인과 敎授

    * 이성표(李聖杓·68回)=일러스트레이터

    * 김명환(金明煥·69回)=現在 계원조형예술대 展示學科 敎授

    * 金永培(金榮培·71回)=新星大學 産業디자인 系列 敎授

    ▶建築家◀

    * 정인국(鄭寅國·26回)=조흥은행 本店 및 麻布아파트 設計者. 홍익대 大學院長

    * 강기세(47回)=犯 建築 會長

    * 신영훈(48回)=古建築 專門家

    * 박영건(56回)=犯 建築 代表

    體育界

    * 한진희(韓軫熙·母校 敎師)=柔道人, 日帝時代 朝鮮씨름協會 創立

    * 이광환(58回)=프로野球 우리히어로즈 監督

    * 홍수환(60回)=拳鬪選手, 全 世界주니어페더級 챔피언

    * 이종도(61回)=前 高麗大 野球 監督

    * 최종덕(65回)=瑞山市民蹴球團 監督

    * 정해성(69回)=蹴球國家 代表팀 首席 코치, 前 濟州 유나이티드 監督

    * 김주성(74回)=韓國蹴球協會

    * 金承禧(77回)=N리그 所屬 仁川 韓國鐵道팀 蹴球監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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