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科學과 新(神)의 만남|新東亞

科學과 新(神)의 만남

科學의 窮極 目標는 神을 아는 것, 神의 本質은 自由와 사랑

  • 社會·整理 組成式 동아일보 新東亞 記者

    入力 2007-10-08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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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外界人, 神일 수는 있지만 創造主는 될 수 없어”
    • “科學은 神의 偉大함 證明하는 道具”
    • “神은 時空間의 次元 너머에 있는 超越的 存在”
    • “宇宙 生成時 6日은 오늘날 時計로 160億年”
    • “神은 다양한 모습… 科學의 틀에 끼워 넣지 말아야”
    • “方向性과 目的性 가진 宇宙法則이 곧 神”
    • “携擧나 天地開闢은 한 次元 높은 世界로의 進入”
    神의 立證은 科學의 오랜 宿題다. 不可知論(不可知論)에서 理神論(理神論), 汎神論(汎神論), 知的設計론(知的設計論), 新科學(新科學)運動에 이르기까지 神에 對한 科學的 探究와 論爭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科學이 發展할수록 神에 對한 論爭은 더욱 다양해지고 그 水準도 높아진다. 近著(近著) ‘만들어진 新(THE GOD DELUSION)’을 통해 神의 虛構性을 指摘하고 科學과 信義 關係 斷絶을 要求한 進化生物學者 리처드 도킨스의 强力한 無神論까지 包含해서.

    이처럼 神에 對한 論爭이 뜨거운 것은 宗敎的이든 非宗敎的이든 그것이 人間과 宇宙의 根源的인 祕密을 풀 열쇠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平素 神의 問題에 對해 깊이 硏究해온 것으로 알려진 科學者 6名을 招請해 ‘科學과 神의 만남’이라는 主題로 座談會를 열었다.

    一時 2007年 9月11日 午後 2~5時
    場所 동아일보 忠正路 社屋 6層 會議室
    參席者 김재수(韓國科學技術硏究院 敎授·金屬工學), 임성빈(명지대 敎授·交通工學),

    임종록(漢陽大 敎授·應用數學), 임종호(을지대 醫大 敎授·藥理學),

    우희종(서울大 敎授·獸醫學), 제원호(서울大 敎授·物理學)
    社會·整理 組成式 동아일보 新東亞 記者




    과학과 신(神)의 만남

    座談會에 參席한 6名의 科學者는 平素 ‘科學과 新’의 問題에 對해 깊은 關心을 갖고 硏究해왔다. 가운데 앉은 두 사람은 司會者(앞쪽)와 速記士.

    社會 : 오늘 모인 敎授님들은 平素 專攻과 關係없이 ‘科學과 新(神)’의 問題에 깊은 關心을 갖고 硏究해오신 분들입니다. 司會者는 되도록 介入하지 않고 參席者들의 프리토킹으로 進行하겠습니다. 오늘 座談에서 말하는 神은 宗敎的 神에 局限되지 않습니다. 絶對者, 超自然的인 存在, 宇宙의 根源, 次元의 끝에 있는 存在 等 다양한 槪念의 神입니다.

    最近 리처드 도킨스(케냐 出身 英國의 進化生物學者, 옥스퍼드大 敎授)의 ‘만들어진 新’이라는 冊이 論難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挑發的인 問題 提起로 오늘 座談會의 韻을 떼면 어떨까 싶은데요. 이런 主張을 했더라고요.

    “物理學者들이 比喩的 意味로 神이라는 單語를 使用하지 말았으면 한다. 物理學者들의 比喩的 或은 汎神論的 신은 聖書에 나오는 神, 人間事에 干涉하고 奇跡을 일으키고 우리의 생각을 읽고 罪를 벌하고 祈禱에 答하는 神과 아득히 멀다. 둘을 일부러 混同시키는 것은 知的인 反逆行爲다.”

    임성빈 : 먼저 神의 定義부터 얘기했으면 합니다. 사람마다 槪念이 다른 것 같아서요. 어떤 學者들은 外界人을 神과 連結시킵니다. 이를테면 오래前에 外界人이 (地球에) 와서 生命科學的인 方法으로 人間을 創造했다는 겁니다. 萬若 그게 事實이라면 外界人이 神이겠지요. 우리가 通常 말하는 創造主와는 全혀 다른 槪念이겠지만.

    프리초프 카프라(오스트리아 出身 美國의 物理學者, 新科學(新科學)運動의 先導者)는 리처드 도킨스와는 正反對의 생각을 갖고 있어요. 確實한 有神論者이거든요. 그래서 科學과 神이 함께 가는데 아무런 問題가 없다고 얘기하지요. 萬一 神이 참다운 存在라면 宗敎에 따라 다를 수 없다는 거죠. 科學과 分離될 수도 없고. 참다운 신이라면 科學에서는 存在하지 않고 宗敎에서만 存在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結局 宗敎의 統合, 그리고 科學과 宗敎의 統合을 얘기하고 있어요.

    에너지 뒤엔 뭐가 있나

    제원호 : 科學은 客觀性이 있고 反復性이 있는 現象을 얘기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神은, 마치 사랑이 實體가 있지만 이거다 저거다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五感으로는 알 수 없는, 때로는 六感으로 어느 程度 알 수도 있겠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 部分的으로는 理解할 수 있겠지만 全體的인 모습을 把握하기란 不可能한 存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神과 科學은 兩立할 수 없는 平行線을 달려왔습니다.

    과학과 신(神)의 만남
    하지만 科學이 發展할수록 神의 領域에 對한 理解가 깊어지고 相互補完的인 面이 發見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科學과 神이 矛盾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생각엔 둘 中의 하나입니다. 科學에 對한 理解가 없거나 不足하든가, 아니면 神에 對한 理解가 없든가. 제 境遇 聖書와 科學을 통해 하늘과 땅의 理致를 깨달아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게는 科學과 神이 矛盾이 아니라 相互補完的이죠. 科學이 보이는 것에서 始作해 보이지 않는 것을 理性의 方法으로 찾아가는 것이라면 神 또는 宗敎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出發해 보이는 것으로 連結되는 것입니다.

    現代科學이 始作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모든 物質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構成돼 있다는 事實이 밝혀진 게 1905年, 기껏해야 100年이 지났습니다. 그럼 에너지만 모아두면 物質이 되느냐, 그렇지 않지요. 그럼 에너지 뒤엔 뭐가 있는가. 神學者들은 그것을 神의 智慧, 創造의 智慧라 얘기하고 科學者들은 複雜한 情報가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情報는 보이지 않지요. 그러니까 科學이 物質에서 에너지, 卽 보이지 않는 領域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에너지다, 波動이다 하는 것은 形而上學的인 槪念이지요. 따라서 科學과 神은 只今 相互補完的인 關係를 찾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성빈 : 제 敎授께서는 創造科學에 對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원호 : 저는 創造科學會 會員은 아닙니다만, 요즘은 創造科學이라는 말 代身 知的設計라는 用語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요. 相當히 首肯이 가는 點이 있지만, 客觀的으로 (神의 存在를) 說明하는 데는 限界나 無理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反省해야 할 點도 있고.

    임성빈 : 創造科學會 사람들과 얘기할 機會가 있었는데, 거기선 現代科學을 完全히 無視해요. 그러니까 빅뱅(宇宙 大爆發)도 無視하죠. 聖經에 나오는 年代로만 計算해 宇宙의 歷史가 2萬年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進化論도 無視하고. 그거는 조금 問題가 있지 않나요.

    김재수 : 改新敎의 根本主義者들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創造科學會는 宗敎性이 너무 强해 客觀性이 없죠.

    제원호 : 人間의 觀點이냐 神의 觀點이냐에 따라 見解가 다르다고 봅니다. 科學에서는 宇宙의 連帶를 150億年으로 봅니다. 聖書에서는 6日 동안에 모든 게 創造됐습니다. 저는 둘 사이에 全혀 矛盾이 없다고 봅니다.

    김재수 : 宗敎的인 觀點에서 神에 接近할 때는 現代科學의 패러다임을 반드시 考慮해야 합니다. 宗敎의 核心 或은 本質은 靈性(靈性)입니다. 요즘 스피리추얼 사이언스(spiritual science·靈性科學)라는 表現을 씁니다. 靈性과 科學이 만난다는 거죠. 저는 喜怒哀樂을 가진 基督敎의 人格神이나 佛敎의 佛性이나 다르지 않다고 봐요. 相對性理論과 量子力學 德分에 世界의 本質과 根本을 理解하게 되면서 우리가 窮極的으로 하나로 連結돼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처럼 科學과 靈性이 만나면서 神의 一般的인 槪念도 바뀌어간다고 봐요. 패러다임이 바뀐 거죠. 저도 어릴 적엔 人格神의 槪念을 갖고 있다가 차츰 宇宙의 本質, 純粹意識에 關心을 가지면서 모든 可能性을 가진 그 무엇이 있는데 거기에 어떤 知性이 있다고 神에 對한 認識이 바뀌었습니다. 그 다음엔 모든 存在는 神의 하나라고, 科學的 推論 또는 그 推論에 따른 體驗으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科學과 신은 손바닥과 손등

    과학과 신(神)의 만남

    빅뱅 後 物質과 反物質의 變化.

    우희종 : 科學과 宗敎는 言語나 範圍가 다른 것 같아요. 科學은 事物의 理致, 事理를 다루는 데 비해 宗敎는 眞理를 다룬다고 봅니다. 舍利와 眞理는 相衝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點에서 科學과 宗敎는 對立할 까닭이 없지요. 그런데 왜 矛盾된 것으로 보이느냐. 科學이 事物의 理致를 探究하는 方法에 問題가 있기 때문입니다. 科學은 事物의 모든 關係를 끊고 分析的으로 接近하거든요. 흔히 말하는 分析的 還元論이죠. 世上이 總體的 덩어리로 이뤄진 만큼 科學의 限界가 分明히 있죠.

    眞理를 나타내는 것이 神이라고 할 때 그것이 반드시 動物이나 事物, 或은 人格的인 形態로만 存在한다는 데 對해 저는 否定的입니다. 反對로 知性이나 智慧의 形態로만 表現되느냐. 그것도 人間이 붙인 觀念일 겁니다. 제원호 博士님은 神에 對해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저는 알되 表現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神을 모른다면 事實은 얘기할 것도 없거든요. 神을 眞理요 生命이요 或은 純粹理性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式으로 神을 우리가 가진 槪念으로 表現하는 건 危險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종호 : 神은 쉽게 생각하면 質的으로는 完全이고요, 量的으로는 모두여야겠지요. 그런데 이 完全하고 모두인 것을 科學的으로 觀察하기 위해선 반드시 對象으로 삼아야 하거든요. 對象化해야 理性으로 알 수가 있으니. 또 하나는 直觀으로 神을 아는 方法입니다. 이 境遇는 科學이 아니기 때문에 理性의 道具인 言語로 表現할 수 없죠. 理性과 直觀이 均衡을 이뤄야 完成된 人間인 것처럼 科學을 통해 神의 偉大함을 알 수 있죠. 저는 醫師로서 每日 患者를 돌보는데, 患者들에게 우리가 進化를 통해 이렇게 됐다고 하면 失望하고 病勢가 좋아지지 않아요. 反對로 巨大한 存在가 우리 뒤에 있다고 말하는 게 治療에 훨씬 더 效果的입니다. 人間 理性의 不完全性은 이미 證明이 돼 있기 때문에 科學과 신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作用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수 : 그건 아니죠. 於此彼 말이 나왔으니 次元 變異를 얘기해보죠. 2012~2013年에 地球에 次元 變異가 일어난다고 해요. 2012年에 地球의 磁氣場이 最低點에 達하고 太陽의 爆發에 따른 磁氣暴風은 가장 剛해진다고 해요. 只今 太陽系가 亂離예요. 錦城은 30年 만에 25倍 밝아졌고, 天王星과 海王星이 40% 以上 밝아졌고, 木星度 두 倍 以上 밝아졌대요. 最近 資料를 보니 그래요. 都大體 이게 뭘 의미하느냐. 바로 次元 變異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人間이 次元 變異에 便乘해 進化를 하니 마니 하는 論難이 있죠. 歷史 全體를 두고 다른 視角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社會 : 김재수 博士께선 그런 一連의 過程에 必然的인 法則과 方向性이 있다고 보십니까.

    김재수 : 그렇죠. 地球 自體의 進化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죠. 그것을 神이라 規定하지 않더라도 分明히 이 宇宙法則에는 方向性이 있어서 그 方向性대로 創造되고 한 치의 誤差도 없이 움직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임종호 : 저는 地球의 終末이나 携擧를 멈출 수 있는 게 뭔지를 얘기하는 것이 더 生産的이고 重要하다고 봐요. 事實 醫學이 이만큼 發展했으면 患者가 덜 아파야 하는데 더 아프단 말이에요. 終末이 온다면, 外的 要因보다는 內部的인 要因, 卽 人間의 本性이 자꾸 썩어가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스스로 創造하라

    김재수 : 그래서 스스로의 神聖을 깨닫는 게 重要하죠. ‘시크릿’의 核心은 ‘너 自身이 神이라는 걸 알라’는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創造하라.

    제원호 : 우리가 신이라면, 神처럼 穩全하다면 왜 이 世上이 惡하고 罪가 있고 서로 죽이고 할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神이 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치 바벨塔을 쌓아올리듯이 우리가 하늘에 到達할 수 있다, 神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봐요. 그런 것이 도리어 世上을 더 惡하게 만들죠. 人間이라면 不足함을 느낄 텐데, 自身을 無所不在(無所不在)의 全知全能한 神으로 여기면 다른 사람을 包容하는 領域이 좁아지죠. 自己 假面을 쓰는 것이죠.

    司會者께서 提起한 問題에 對해선 이렇게 생각합니다. 世上이 자꾸 惡해지고 우리의 意志와 다른 方向으로 進行되는 것은 人間에게 自由意志가 있기 때문입니다. 神이 附與한 自由意志로 神을 否定한 탓이죠. 聖經的인 表現으로는 善惡果를 따먹었기 때문인데, 모든 것을 善惡으로 재서 나와 안 맞는 것을 怨讐로 여기고 사랑하지 않게 되면서 罪와 죽음과 苦痛이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 只今까지는 제 敎授님과 저의 생각이 相當히 비슷했는데, 只今 하신 말씀에 對해선 正反對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神的인 存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各自의 役割이 있거든요. 現在의 人間社會는 아직 누구나 다 幸福하고 사랑이 充滿한 段階에 이르지 못했어요. 저는 戰爭을 싫어하지만 國家의 命令으로 戰爭터에 나간다면 할 수 없이 銃을 잡고 싸워야 할 겁니다. 제게 다른 役割이 주어진다면 또 그 役割대로 살아야 할 거고요. 各自 自身의 役割을 하면서 宇宙가 어떤 方向으로 나아가는 데 寄與하는 거죠.

    김재수 : 제 敎授님이 얘기하는 罪, 선, 惡, 죽음은 相對的인 거예요. 絶對的인 罪가 없고 絶對的인 線도 없습니다. 우리는 於此彼 二元性의 게임을 하고 있어요. 神이 우리에게 世上을 맡겨둔 거지요. 支持件 볶건 미워하건 사랑하건. 죽음? 죽음도 於此彼 幻想이에요. 죽음이 있다는 幻想이죠. 時間도 空間도 홀로그래피的인 거예요. 瞬間이지만 永遠이고 티끌이지만 그 안에 森羅萬象이 있는. 내가 只今 瞬間에 살지만 永遠性이 있다면 나에겐 죽음이 없는 거죠. 罪? 이것처럼 웃기는 것도 없어요. 이건 神이 벌이는 게임이야. 우리가 地球라는 데 와서 노는 데 必要한 게임의 方式이지. 즐기러 와서는 죄니 永遠한 地獄불이니 할 必要가 없다는 거죠.

    라이얼 왓슨(모잠비크 出身의 英國 生物學者)의 ‘生命潮流’라는 冊이 크게 히트했어요. 1960年代 初盤에 600萬部나 팔렸지요. 이 사람이 죽음이 뭔지를 規定하려고 硏究해보니 生命體의 죽음이라는 건 定義할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量子物理學이나 現代物理學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죽음의 實體가 없다는 거예요.

    絶對善과 絶對惡을 버려라

    임종호 : 그래도 跳躍이지요.

    김재수 : 아니, 現實的으로 그렇다니까. 時間도 에너지고 空間도 하나의 物體라는 것. 色卽是空(色卽是空)은 부처님이 科學을 알고 나서 하신 말씀이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건 예수가 홀로그래피敵으로 이야기한 거죠. 於此彼 宇宙가 홀로그래피라면 나는 瞬間을 살지만 永遠을 사는 것이고 나의 存在가 宇宙에서 티끌이지만 내 안에 無限의 宇宙가 있는 거죠.

    임종호 : 이런 나는 죽겠죠, 何如튼.

    김재수 : 그렇죠. 나라고 규정지어진 나는 죽어. 그러나 規定되지 않은 그 무엇은 죽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면 神의 槪念도 확 바꿔버려야 해. 우리가 죄니 絶對善이니 絶對惡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을 認定하는 限 人間的 限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人格的 槪念의 神에 짓눌려 살 수밖에 없어요. 21世紀엔 패러다임이 本質的으로 바뀌어야 해요.

    임종호 : 하나 여쭤볼게요. 相對性理論이 證明되면 絶對性이 證明되는 거죠. 왜냐하면 相對論은 絶對論과 相對的인 關係니까. 모든 것이 相對的이라면 相對論은 絶對論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相對性이니까.

    김재수 : 아니, 絶對論은 아래 次元이죠. 無極이에요.

    임종호 : 그러면 相對性이 안 되겠네요.

    김재수 : 林 敎授님, 조금 異常하네. 그건 잘못된 거죠. 相對論은 우리 게임의 모든 것에는 中心이 없다는 겁니다. 나 中心으로 보면 내가 線인데 너 中心으로 보면 惡이 되고….

    임성빈 : 金 博士님, 林 敎授가 얘기하는 건 鐵則은 없다는 거지. 맞아요?

    임종호 : 不可(佛家)에서는 相對的인 話頭를 打破하면서 絶對的인 境地로 나아가잖아요. 涅槃이라는 것도 그런 意味이고. 그래서 絶對와 相對를 말씀드린 건데. 罪悚합니다. 웃기려고 하면 웃지를 않네. (웃음)

    김재수 : 제가 말하는 신은 前近代的인 宗敎로 彩色되거나 加工되거나 强要되지 않은 神이에요. 神은 絶對自由예요. 絶對사랑이고.

    제원호 : 金 博士님이 基督敎 敎理는 잘 아시는 것 같은데 核心 部分에 對해선 誤解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聖經의 하나님은 사랑이죠. 그런데 그 사랑은 너무 큽니다. 神的인 사랑은 3萬볼트인데 우리에게 必要한 것은 100볼트의 電氣죠. 神的인 사랑이 變壓器의 作用처럼 낮춰져 우리에게 찾아온 게 바로 하늘과 땅이 만들어진 理由라 생각해요. 그냥 쇼 하려고, 즐기려고 創造한 게 아니라는 거죠. 神의 사랑이 우리가 皮膚로 느낄 수 있는 水準으로 다운되어 우리에게 찾아오는 過程이 바로 創造라고 생각합니다.

    人間의 몸은 父母를 통해 分明히 흙으로 태어납니다. 우리의 始作은 分明히 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땅에 屬한 者가 아니라 宇宙的인 神의 사랑을 통해 하늘에 屬한 者로 바뀌어 人間의 形象을 回復하게 됩니다. 그 사랑은 義人에게나 惡人에게나 비처럼 똑같이 내리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結局 남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흙으로 다시 돌아갈 때 남는 것이 뭐냐. 哲學이 남는 것도 아니고 페이퍼가 남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 남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랑은 人間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밖에서 주어진다는 거죠.

    임성빈 : 아까 司會者께서 말씀했듯이 여기 모인 분들은 大體로 神의 存在를 認定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冊의 讀者 中에는 神의 存在를 認定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거라고요. 아쉬운 것은 現代科學을 비롯해 어떤 科學이라도 神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야, 봐라. 이러니까 神이 있는 거야’라고 證明할 方法이 없다는 거죠. 그렇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方法을 통해 神의 存在를 느낄 겁니다. 또 죽을 때까지 神은 存在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테고. 앞으로 神學과 科學이 자주 만나 神의 存在에 對해 虛心坦懷하게 討論하는 게 必要하다고 봅니다.

    科學은 神을 바르게 理解하는 道具

    임종록 : 우리가 에고라는 틀에서 世上을 바라보면 相對系가 열리면서 神의 領域과 合一하는 것이 아니라 分離됩니다. 에고를 탈(脫)에고로 바꾸면 神의 領域에 近接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차츰 脫에고 쪽으로 進行되면 내가 全體이고 全體가 나인 世界가 열리고 科學과 神이 合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希望을 느꼈습니다.

    임종호 : 오늘 제가 부드럽게 하려고 좀 웃기려 했는데 못 웃겨서 마지막으로 한 番 더 웃기겠습니다. (웃음) 아까 宇宙의 나이와 關聯해 뭐가 잘못됐는지 제가 알아냈어요. 宇宙가 태어나면서 出生申告를 안 해 이런 混亂이 생겼구나…. (웃음) 出生申告를 했더라면 140億年이든 뭐든 좀 분명해졌을 텐데.

    神과 科學은 손등과 손바닥이지요. 둘은 分離될 수 없어요. 白紙를 아무리 흔들어도 兩面인 것처럼. 그렇지만 손바닥이 손등은 아니잖아요. 그러므로 科學으로 神을 알 수는 없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이, 第一學院度 안 다니고 象牙塔學院도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랑을 배워 子息한테 사랑을 베푸는지 神奇하다는 거죠. 사랑은 新星이에요. 남한테 주면서 내가 즐겁다는 것이 新星의 本質이라면, 내 속에 있는 사랑은 漸次 進化하면서 確率的으로 좋아진 結果라는 도킨스의 主張과는 달리 正말 神이 주신 거죠.

    임종록 : 本來 가지고 있는 것이죠.

    임종호 : 예. 이 사랑은 우리가 다 갖고 있는 겁니다. 그걸 쓰지 않아서 그렇지.

    김재수 : 科學의 窮極的인 目標는 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믿지 않으면 地獄이고 믿으면 天堂이라는 얘기는 神의 槪念이 아니에요. 科學을 통해 普遍的이고 妥當한 宇宙法則, 사랑의 法則을 깨닫고, 그것이 바로 創造主이자 神이라는 事實을 깨우쳐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宏壯한 差異가 있어요. 믿는 것은 詐欺 칠 수 있거든요. 怯을 주면 돈 내야 하고. 그렇지만 科學은 아는 거예요. 1 더하기 1은 2라는 것을. 正確하게 神을 알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科學의 目的이지 않을까요.

    임성빈 : 그게 新科學이지요.

    임종호 : 歷代 神父님이나 스님 等 여러 宗敎人과 現代의 物理學者와 數學者들이 우리가 靈性을 찾아가는 데 크게 寄與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綜合膳物세트?

    제원호 : 科學이 人間 文明 發展에 크게 寄與한 것은 事實입니다. 저도 科學이 神을 찾아가고 이 땅에서는 알 수 없는 큰 사랑을 알아가는 方法이고 神을 바르게 理解하는 데 必要한 道具라고 생각합니다. 基督敎의 副作用은 고쳐야겠지만, 穩全하지 못한 存在인 人間이 스스로 사랑을 만들어내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神의 도움이 必要한 겁니다. 學問을 하는 것도 結局 學問 그 自體보다는 우리가 不完全한 人間이니만큼 創造過程에 나타난 神的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서로 사랑하는 者들로 變化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點에서 오늘의 主題인 ‘科學과 宗敎의 만남’은 무척 큰 意味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社會 : 大略 다 말씀했나요? 좀 더 말하실 게 있는 분은 더 하시고….

    김재수 : 司會者께서 質問을 하시죠.

    社會: 整理하는 次元에서 다시 한 番 묻고 싶군요. 내가 생각하는 神은 이러이러하다고. 要約해서. 제 敎授님은 더 言及할 必要가 없을 것 같고요. 人格神이고 創造主라고 確固하게 믿고 계시니.

    김재수 : 사랑이라는 느낌도 있고 法則이라는 느낌도 있고 智慧라는 느낌도 있고. 生命, 그냥 살아 있음이라고 느끼기도 하고요. 創造라는 느낌도 있고 平和라는 느낌도 있고 조화로움도 기쁨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

    社會 : 좋은 건 다 있네요.

    김재수 : 神의 槪念을 어떻게 한마디로 整理하겠습니까.

    임종호 : 膳物세트.

    임성빈 : 綜合膳物세트.(웃음)

    김재수 : 아니, 신은 뭐라 규정지을 수 없지만 屬性은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어느 瞬間에 神을 느끼느냐면 正말 기쁠 때, 正말 아름다움을 느낄 때, 내가 뭔가를 創造했을 때, 뭔가를 깨달았을 때, 眞짜 사랑을 느낄 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때…. 그리고 正말 自由를 느낄 때 나는 神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종호 : 저는 實用的인 神을 말씀드려야겠네요. 治療할 때 神을 자주 모셔오기 때문에. 醫師로서 저는 神의 存在와 그에 對한 信念이 患者를 治療하는 데 매우 有用하다는 事實을 種種 經驗합니다. 제가 얘기하는 神은 제 敎授님이 말하는 神과 다릅니다. 呼吸을 길게 오래 하다 보면 神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떤 段階에 이르면 神을 迎接할 수 있는 狀態가 되는데, 患者에게 이런 體驗을 겪게 하면 病이 낫습니다.

    임성빈 : 神에 對한 저의 體驗을 얘기해볼까요. 10餘 年 前 가을이었어요. 親舊 셋과 江原道에 있는 山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山莊에 묵은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저는 마당에 나가 꽃밭의 꽃과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瞬間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은 昆蟲을 誘惑하기 위한 것이지 人間과는 全혀 관계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自然의 경이로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그러면서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과 함께 周圍 風光이 달라져 보이는데, 꽃과 나비 같은 生命體는 勿論 돌과 바위 같은 無生物조차 生動感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꽃밭에서 발길을 돌려 30~40分 距離에 있는 藥水터로 向했는데 그런 느낌이 繼續 되면서 宇宙 全體가 무엇인가로 가득 찬 느낌, 나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 存在 自體에 對한 경이로움과 더불어 모든 것에 感謝하는 마음이 온몸에 充滿해지더라고요. 事實 이런 느낌은 偶然히 온 것이 아니라 1970年代 初부터 始作한 修鍊의 뒤끝에 온 것이라 아! 나에게 어떤 變化가 일어나고 있구나 생각했죠. 그後 이 世上의 일들이 이 世上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다른 次元의 世界와도 얽혀 있다는 느낌, 그 속에서 누군가 저를 돌보아주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제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相對的이면서 相補的

    社會: 오늘 3時間 동안 座談을 進行했습니다. 座談에 參席하신 敎授님들 모두 어떤 形態의 神이든 神의 存在를 認定하고 그 意味를 肯定的으로 解釋하셨습니다. 宗敎的 神과 非宗敎的 神을 두고 論爭은 있었지만. 아인슈타인이 “宗敎 없는 科學은 不具이고 科學 없는 宗敎는 盲人”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宗敎는 신으로 바꿔도 無妨하겠지요. 오늘 말씀을 들어보니 科學과 神의 領域은 相衝하는 게 아니라 서로 包容이 可能하고 補完的인 關係인 것 같습니다.

    임성빈 : 다시 한 番 整理하면, 神이라는 것은 神을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습니다. 아직은 科學이 神을 否定하는 사람에게 神의 存在를 立證하는 水準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죠.

    社會 : 이만 마치겠습니다.

    임종호 : 아까 아인슈타인 얘기를 하셨는데, 科學과 신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대로 相對的이지만 또한 相補的이지요. 不確定性 原理이기도 하고요.

    社會 : 아니, 다시 始作하는 겁니까. (웃음)

    임종호 : 갑자기 생각나서요. 不確定性 原理란 어떤 것이든 한 存在로 떼어 存在할 수 없고 兩面의 作用으로 存在한다는 거죠. 相補的 相對性을 좀더 物理學的으로 表現한 것이 不確定性 原理입니다. 서로 싸우는 相對가 아니라 하나가 되는.

    김재수 : 그러니까 二元性의 槪念이에요. 地球에 즐기러 왔는데 너무 深刻해져서 神聖을 잊어버린 거예요. 分離意識 속에서.

    社會 :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왜 存在의 目的이 있어야 하나

    과학과 신(神)의 만남

    <b>임성빈(명지대·交通工學)</b> ”나머지 일곱 次元 中에 神의 領域이 있기 때문에 只今은 不確實하지만 우리가 高次元으로 進化하면 자연스럽게 그 存在가 드러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희종 : 神이 完全하다, 世上이 完全하다는 말은 誤解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完全’이라는 것도 하나의 槪念이기 때문에 굳이 表現하자면 ‘穩全’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임종호 : 그렇네요. ‘完全’보다 훨씬 좋네요.

    임종록 : 全體를 움직이는 巨大한 그 무엇을 찾아가는 過程에 科學도 存在하고 宗敎도 存在한다고 봅니다. 신은, 數學 쪽에서 본다면 超越의 槪念이 아닐까 싶습니다. 時間과 空間, 五感에 制約받지 않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한마디로 表現할 수 없는 그 무엇―그게 에너지 形態인지는 모르겠습니만―이라고 봅니다. 어떤 規定된 次元 너머의 次元에 들어설 때야 神의 槪念이 어느 程度 理解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人間은 到底히 接近할 수 없는가. 아닙니다. 接近할 수 있습니다. 方法論의 段階를 높이면. 어쨌든 저는 (신을) 只今의 次元보다 한 次元 높은 槪念으로 理解하고 싶지 그 무엇이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습니다.

    우희종 : 超越도 하나의 槪念이 아닐까요.

    임종록 : 時間과 空間에 잡히지 않고 形態에 매이지 않는 것, 人間이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그 너머의 次元이라는 생각입니다.

    김재수 : 老子(老子) 말마따나 度(道)를 道라 할 때 이미 道가 아니라는 것과 똑같아요. 神은 바로 只今 여기서 움직이고 있어요. 어떤 固定된 觀念을 갖고 言語로 表現하는 瞬間 신은 거기에 없죠.

    임성빈 : 그래도 神은 如前히 있을지 몰라요. (웃음) 萬一 宇宙와 나를 있게 한 創造主가 계시다면 어떤 目的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내가 이 世上에 存在하는 目的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잘 모르겠어요. 남보다 잘 먹고 잘살고 조금이라도 더 즐기다 죽는 게 人生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模樣인데,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우희종 : 그런데 왜 目的이 있어야 하나요.

    임성빈 : 存在하는 目的이, 理由가 없다면 저는 (人生을) 納得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우희종 : 그것은 내가 納得하는 것만 받아들이겠다는…

    임성빈 : 그래도 何如튼 그게 알고 싶은 거예요.

    김재수 : 存在는 目的 없이 ‘그냥 있음’ 아닐까요.

    임성빈 : 洗濯機는 빨래를 시키려고 만든 것이지 괜히 만든 것은 아니거든요.

    우희종 : 人間은 다르지요.

    내 水準을 높이면 神이 보여

    임성빈 : 人間이 이 世上에 存在할 때는 理由가 있을 것 아닌가요.

    임종호 : 太初에 말씀이 있는 거네요.

    임성빈 : 萬若 創造主가 계시다면 내가 뭘 해주기를 바라고 나를 創造했을까 하는 疑問이죠.

    임종호 : 太初에 말씀이 있었다는 건 神이 어떤 目的을 갖고 創造했다는 거지요.

    우희종 : 말씀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目的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임종호 : 저는 太初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빅뱅 理論과 관련지어 이렇게 比喩합니다. 뻥튀기 장사하시는 분이 빅뱅을 일으키기 前에 恒常 말씀을 합니다. “귀 막아!” 別로 안 웃기는 弄談 같은데…. (웃음) 創造論이나 佛敎의 延期論(緣起論)이나 비슷하죠. 演技의 最初가 무엇이냐죠. 그런데 부처님은 물어보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우리는 패러다임을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物質科學 次元에서 神을 物理的인 屬性으로 理解하려 합니다. 리처드 도킨스度, 그런 態度가 저는 不滿이라는 거죠. 내 水準이 높아지면 神을 理解할 수 있는데, 내 水準을 그대로 둔 채 物質 次元으로만…

    과학과 신(神)의 만남

    <b>제원호(서울大·物理學)</b> ”科學과 宗敎가 矛盾이 아니라 두 가지 主張이 矛盾인 것처럼 보인 것은 人間의 科學的 知識이, 或은 神에 對한 理解가 不足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김재수 : 그 안에다 집어넣으려 하지요.

    임종호 : 因果關係를 巧妙하게 表現해 遺傳子가 어떻고 바람 피우는 理由가 뭐다 하면서 神을 없애버리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한 거죠. 때로 그런 努力도 必要하겠지만, 우리가 패러다임이나 次元을 높이면 그때야말로 우리가 神이라는 것을…

    임성빈 : 제가 할 얘기를 다 말씀해버렸네요. 제가 最近 펴낸 冊(‘빛의 환타지아’)은 現代科學으로 宇宙의 始作과 人類의 歷史를 整理한 겁니다. 이 冊을 쓰면서 生物의 進化 問題를 많이 생각했어요. 人類 歷史에서 神의 問題, 宗敎가 登場한 것은 現代人類, 卽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時節이거든요. 네안데르탈人 時節에는 宗敎의 痕跡이 남아 있지 않아요. 네안데르탈人까지는 靈魂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微弱한 水準이었던 것 같아요. 現生人類에 이르러 비로소 若干이나마 靈性을 갖게 된 거죠. 제 생각엔 人類에게 아직도 神을 充分히 理解하고 論할 만한 툴이 없는 것 같습니다. 數學的으로 얘기하면 非유클리드幾何學을 論할 段階가 아니라 아직 臺數나 山水의 段階라는 거죠. 그 程度밖에 進化하지 못했기 때문에 確實한 것을 가지고도 있느니 없느니 摩擦을 빚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M理論(宇宙의 모든 物質과 힘이 Membrane(幕)으로 構成되어 있다는 理論)이나 11次元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西洋 科學者들은 그것을 空間 次元으로 보고 熱心히 硏究하고 있는데 저는 空間이 아닌 靈的인 次元으로 봅니다. 임종호 敎授님 말씀대로 進化가 좀더 이뤄지면 얼마든지 그것을 느끼고 알 수 있다고 보는 거죠. 世上엔 숱한 電磁波가 있는데, 19世紀까지만 해도 우리는 可視光線밖에 모르고 살았거든요. 只今 11次元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4次元의 時空間 속에서만 삽니다. 나머지 일곱 次元 中에 神의 領域이 있기 때문에 只今은 不確實하지만 우리가 高次元으로 進化하면 자연스럽게 그 存在가 드러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안데르탈人 滅種의 祕密

    제원호 : 저에겐 神을 알지 못한다는 것과 안다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神을 모른다는 것은 人間이 情報를 貯藏하는 데에 限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時間과 空間 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情報를 짜깁기하고 맞춘다 해도 우리보다 더 큰 存在를 알 수는 없습니다. 反面 神을 안다는 것은 啓示를 통한 智慧가 있기 때문입니다. 人格的인 神, 슬픈 사람에게 慰勞와 사랑을 주는 하나의 人格體인 神의 存在를 啓示를 통해 조금씩 理解하게 되지 않는가. 그런 點에서 神을 알지 못하지만 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神的인 存在지만 創造主는 아니다

    임성빈 : 科學과 神을 論하면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더 월드(세계론)’라는 冊을 執筆했다가 (地動說을 主張한) 갈릴레이가 處罰을 받자 出刊을 中止하고 물심이원론을 主張했는데, 그것이 바로 現代科學과 宗敎가 갈리는 契機입니다. 物質的인 것과 靈的인 것은 別個니 너희(宗敎)는 신하고만 놀고 物質學問에는 손대지 말라고 領域을 나눈 거지요. 그러다 보니 靈性이나 精神이나 마음이 빠진, 物質만 다루는 學問이 發展해왔지요.

    그런데 로마나 그리스 時代로 거슬러 올라가면 科學과 神의 領域이 只今처럼 區分되지 않았어요. 말씀하신 대로 科學은 客觀的이고 蓋然性이 있어야 하고 因果律을 따라야 하는데,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粒子物理學에서는 다 깨지지 않습니까. 客觀性이나 蓋然性이 存在하려면 반드시 絶對空間과 絶對時間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다 깨졌지요.

    이제는 科學이 神을 硏究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어요. 어떤 恩惠나 특정한 宗敎를 통해서가 아니라 客觀的으로 神의 存在가 뭔지, 人類와 信義 關係가 어떤 건지. 萬若 外界人이 地球에 와서 人類가 태어나는 데 關與했다면 그도 神的인 存在지요. 創造主 神과는 距離가 멀겠지만. 聖經에 나오는 여호와度 제가 보기엔 神的인 存在일지는 모르지만 創造主와는 距離가 먼 것 같아요. 聖經 內容으로 봐서.

    여호와가 만든 아담과 이브가 카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쫓겨날 때 다른 사람들이 自身을 죽일까봐 걱정해요. 그렇다면 그들 外에 다른 사람들이 存在했다는 얘기잖아요. 또 여호와가 唯一하게 人類를 만든 存在도 아닌 것 같아요. 創世記에 보면 天地創造를 하는데, 여섯째 날 人間을 創造하면서 ‘우리의 形象대로’ 만든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우리’라는 건 創造主가 여러 분이라는 걸 뜻하죠.

    과학과 신(神)의 만남

    <b>김재수(韓國科學技術硏究院·金屬工學)</b> ”우리가 조심스럽게 接近해야 할 點은 神의 槪念 中 人格과 知性입니다. 제가 말한 지성은 宇宙의 法則이에요. 그 法則으로 創造한 겁니다. 그것은 次元에 따라 다릅니다.”

    김재수 : 復讐를 쓰지요.

    임성빈 : 復讐를 쓰고 形象도 人間과 같고. 그러면 天地創造가 이뤄지기 前부터 여러 分의 創造主가 人間의 모습으로 계셨을까, 그래서 宇宙를 만든 創造主와 人間을 만든 創造主는 서로 다른 神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김재수 : 저도 한때 그런 疑問을 가졌어요. 神이 復讐더라고요. 異常하잖아요. 이거, 다른 視角으로 봐야겠구나. 絶對的이라 생각했던 時間과 空間이 量子物理學에 依해 무너지면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幻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에너지가 幻想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그 幻想 속에서 게임을 하는 거죠. 周波數를 맞추고 있다고 錯覺하면서. 그렇다면 神의 槪念은? 絶對的인 時間과 空間과 物質 속에 確固히 固定돼 있던 것인데, 다 사라졌어요.

    임종호 : 데카르트 時代를 말씀하니 하는 얘긴데, 저는 그때부터 只今까지 안 풀리는 問題가 있어요. 생각이 먼저냐, 뉴런(神經 單位)李 먼저냐. 뉴런을 다치면 생각을 못하지요. 생각이 먼저 일어나 뉴런이 따라갈 수도 있겠고요. 300年 前에 提起된 問題인데 아직도 풀기 어려워요.

    우희종 : 어떤 神 或은 創造主를 想定하고 거기서 우리가 啓示를 받는 것으로 보면 科學과 宗敎의 接點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科學이 知的設計의 手段이 되기 때문이죠. 科學과 宗敎가 만난다는 것은 他者가 된 神이나 對象이 된 神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內在해 이미 發現돼 있는 神, 안과 밖이 하나인 統合的인 神의 存在를 科學的인 方法으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反對로 創世記의 神이 復讐라는 點을 問題 삼는 것은 科學的인 觀點에서 聖經을 보는 것이거든요. 이 境遇도 接點이 없어진다고 봅니다. 저는 神이 宗敎的 神으로 表現돼도 問題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神을 그 틀에 局限하는 게 問題지. 神은 다양한 言語와 모습으로 表現되고 聖經이나 佛經은 象徵과 隱喩라고 봐요.

    外界人의 生命 造作

    重要한 것은 거기에 담긴 메시지죠. 그런데 科學에 길든 사람은 그것을 分析합니다. 그러한 分析的 還元論으로 聖經의 創世記를 읽는다면 答이 나올 수 없어요. 創造에 目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自體가 人間的 생각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비에 어떤 目的이 있을까요. 풀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떤 現象이 펼쳐지는데 그 役割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 거지 存在의 目的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봐요.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近代科學에서는 進化를 發展의 槪念으로 봤어요. 헤겔도 그렇고요. 하지만 近代 生命科學에서는 그것이 다윈의 進化論이든 뭐든, 진화란 適切하게 周圍環境에 適應하는 것으로 좀 複雜해질 뿐이지 高等이니 何等이니 하는 槪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 그렇게 말씀하면 도킨스와 비슷한데…

    우희종 : 그렇지 않습니다. 큰 差異가 뭐냐면요…

    임성빈 : 創造主를 믿는 有神論者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가 維新論的 進化論이에요. 빅뱅論이나 進化論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偶然이 아니라 어떤 方向性, 創造主의 意志에 따라 進行된다고 믿는 거죠. 다른 하나는 只今 말씀한 것처럼 創造는 科學的인 原理로 偶然히 일어났으며 方向도 없고 人類가 特別히 進化된 生物도 아니라는 見解죠. 環境 適應性으로 보면 박테리아만도 못한 게 人間이라고. 昆蟲보다도 못하고.

    우희종 : 그 다음이 다른 겁니다. 도킨스 같은 사람은 거기서 멈추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러한 原理로 作用하는 것을 宗敎的 神으로 봐도 問題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否定할 必要도 없고. 一般的인 社會生物學者는 그것이 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認定해야 합니다.

    임성빈 : 그렇죠. 바로 그 얘기입니다.

    우희종 : 社會生物學의 視角만으로 이것은 神이 아니고 만들어진 存在라고 말하는 건 傲慢이죠.

    160億年과 6日은 같아

    과학과 신(神)의 만남

    <b>임종호(을지대 醫大·藥理學)</b> ”저는 科學이 神의 存在를 證明하는 手段이 아니라 神의 偉大함을 發見하고 活用하는 手段이어야 한다고 봐요. ”

    임성빈 : 神과 宗敎도 區分해야 해요. 아까 聖經 內容을 比喩라고 하셨는데, 저는 宏壯히 事實的인 記錄이라고 봅니다. 假說이긴 합니다만, 조셉 데니케르(러시아 出身 프랑스의 人類學者) 같은 學者들은 分明히 地球上에 外界人이 많이 왔었다고 主張합니다. 그들 얘기대로라면 外界人이 찾아와서 地球人을 生命複製나 遺傳子 造作 等으로 만들거나 改造했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여호와라는 存在가 유대人을 生命科學的으로 造作한 어떤 外界人 集團의 代表라는 推論이 可能한 거죠. 한동안 外界人이 被造物인 人類와 같이 살면서 結婚도 하고. 마찬가지로 無理 3000名을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온 國調(國祖) 桓雄 千制度 韓民族을 生命科學的으로 造作한 外界人 代表라고 推論할 수도 있지요.

    우희종 : 創造와 造作은 다르죠.

    임성빈 : 다르죠. 그들은 神은 아니죠. 造作 程度이지, 無에서 人間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우희종 : 外界人은 여기서 論할 必要가 없다고 봅니다. 外界人의 存在를 假定한 論理이기 때문이죠.

    김재수 : 아니요, 짚고 넘어갈 問題입니다.

    임성빈 : 南美에도 그런 神話가 많은데, 거기서 描寫된 神들은 外界人 水準이지 創造主는 아닌 것 같거든요.

    우희종 : 저의 問題 提起는 왜 外界人을 想定하느냐는 거죠.

    김재수 : 어떤 次元에서 보느냐의 問題입니다. 只今의 次元에서는 偶然이라도 한 段階 위 次元에서는 必然이 되거든요. 콜럼버스가 到着할 때 처음엔 인디언들에게 배가 안 보였어요. 머릿속에 배에 對한 觀念이 없으니까 對象이 보여도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神的인 槪念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觀念과 槪念에 따라 體驗하는 內容이 다른 거죠.

    임종호 : 좁게 보면 偶然이고 넓게 보면 必然이죠. 外界人 問題도 그 外界人은 또 누가 만든 것이냐는 疑問이 提起되기 때문에 꼭대기로 가면 必然이겠지요. 밥 먹으면 소화시키는 우리 몸의 奧妙함은 神이 아니고야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갖게 해요. 저는 그中 一部를 밝히는 免許證을 따서 사람을 고치고 있지만, 너무나 些少한 知識이죠. 우리 안에 신이 안 계시면 神이라는 槪念이 안 생겼을 거예요.

    (이때 우희종 敎授가 急한 事情이 생겨 먼저 退場-編輯者)

    제원호 : 啓示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까 (임성빈 敎授께서) 現代科學으로 오면서 客觀性, 反復性이 깨진다고 말씀했는데, 그렇지는 않고요. 量子力學은 보이지 않는 微細한 世界를 說明하는 것이지만, 檢證이 잘된 理論입니다. 勿論 M理論같이 宇宙를 再創造하는 理論은 實驗的으로 檢證할 수 없지만.

    저에겐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疑問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宇宙의 나이입니다. 現代科學에서는 大略 160億年이나 150億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聖書에 따르면 6日이라는 짧은 期間에 (宇宙 創造가) 다 이뤄졌습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神과 科學은 矛盾이고 信仰이 非科學的이고 非理性的인 領域이 아닌지 苦悶해왔습니다. 그런데 몇 年 前 科學的인 接近方法을 通해 이 패러독스를 새롭게 解釋하고 神과 科學을 相互補完的으로 理解하게 됐습니다. 神의 奧妙하고 깊은 宇宙創造 攝理를 理解했고 거기에 客觀性과 合理性이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160億年과 6日은 서로 다른 觀點에서 보기 때문에 다른 얘기로 들릴 뿐이지 같은 內容이라는 거죠.

    宇宙 生成時 1秒는 오늘날 9萬年

    이 패러독스를 理解하는 데 가장 重要한 科學的인 原理는, 時間의 槪念은 觀察者에 따라 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相對性理論입니다. 이 理論에 따르면 움직이는 觀察者의 時計는 停止해 있는 觀察者의 時計보다 相對的으로 더 천천히 움직입니다. 事件이란 時空間의 한 點과 다른 한 點 사이의 距離를 말합니다. 同一한 事件이라도 停止해 있는 觀察者의 時計로 재면 宏壯히 오랜 時間이고 빨리 움직이는 觀察者의 時計로는 찰라나 1秒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宇宙의 始作을 알리는 빅뱅 以後 첫 物質이 생겼을 때 宇宙의 溫度는 只今보다 約 3朝拜 높았습니다. 이는 宇宙時計의 周波數가 只今보다 3朝拜 높았음을 뜻합니다. 卽 太初에 宇宙時計가 한 番 똑딱거린 週期는 現在보다 3朝拜 짧았던 것입니다.

    과학과 신(神)의 만남

    <b>우희종(서울大·獸醫學)</b> ”저는 神이 宗敎的 神으로 表現돼도 問題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神을 그 틀에 局限하는 게 問題지. ”

    따라서 宇宙 生成 以後 첫 物質이 생겼을 때의 1秒는 오늘날 地球上 時間으로 換算하면 3조초, 卽 9萬年假量 됩니다. 이 數値를 代入하면 太初의 첫 하루 24時間은 오늘날 時間으로 80億年에 該當합니다. 그리고 宇宙가 急速히 膨脹하면서 溫度가 急激히 낮아지는데, 이런 冷却 效果를 考慮하면 둘째 날의 24時間은 約 40億年이 됩니다.

    이렇게 計算하면 宇宙 生成 當時의 첫 6日은 오늘날의 時計로 大略 160億年입니다. 勿論 저는 이것으로 聖書의 內容이 證明됐다고 主張하지는 않습니다. 科學과 宗敎가 矛盾인 것처럼 보인 것은 人間의 科學的 知識이, 或은 神에 對한 理解가 不足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리고 빛에 對해 말씀했는데, 저도 光學과 原子物理를 專攻한 사람으로서 빛에 對해 關心이 많았습니다. 빛의 性質을 더 알게 되면서 우리 周圍에는 時間과 空間을 超越하는 絶對的인 領域이 存在하는데 그中 하나가 바로 빛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卽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事件은 時間의 相對性에 갇혀 있지만 빛 안에서는 時間의 絶對性만이 存在한다는 거죠.

    例를 들면, 1987年 2月23日 칠레의 한 天文臺에서 宇宙에서 날아온 밝은 빛이 觀測됐습니다. 슈퍼노바(超新星)가 爆發하면서 發生한 빛이었죠. 測定해보니 地球에서 17萬光年 떨어진 별이었습니다. 卽 이 超新星에서 出發한 빛이 地球에 到着하는 데 地球時計로 17萬年 걸렸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萬一 빛의 速度로 움직이는 觀察者가 있었다면 그에게는 그 時間이 0.1秒도 아니고 0初였을 겁니다. 빛의 速度로 움직이는 世界에서는 時間이 멈춰 있고 永遠한 現在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은 次元엔 永遠한 現在만

    17萬年과 0秒의 差異는 時間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時間 안의 世界와 時間 밖 世界의 差異입니다. 時間 안의 世上에서는 時間이 過去와 現在, 未來로 分離돼 存在하지만 時間 밖의 빛의 世界에서는 모든 것이 永遠한 現在일 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每日 經驗하는 빛은 時間의 領域을 벗어난 世界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빛의 存在를 통해 人間의 삶 에 臨하는, 時間 밖의 보이지 않는 創造主를 조금이나마 理解하고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저에겐 이것이 萬物 안에 나타나는 神的인 特性, 卽 創造主의 神聖을 내 人格의 知的 作用을 통해 理解하고 鑑賞하는 좋은 接觸點입니다.

    임성빈 : 저도 그 點엔 同意합니다. 時間이 멈춘 次元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次元마다 時間이 다르다는 거죠. 高次元으로 갈수록 漸漸 느려져 가장 높은 次元인 神의 자리에 가면 永遠한 現在만 있죠. 제가 冊을 쓰면서 宇宙 創造 瞬間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니, 宇宙에 存在하는 모든 物質이나 힘이나 에너지는 빛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빛의 變化일 뿐이라는 結論을 얻게 됐어요. 그럼 이것이 偶然히 아무도 없는 데서 갑자기 이뤄진 것이냐. 많은 科學者가 疑問을 던졌죠. 이노마打 슈지라는 日本 學者가 생각이나 神, 人間, 意志도 에너지가 되고 物質이 될 수 있다는 걸 證明하는 論文을 냈더라고요. 萬一 創造主가 계시고 創造主의 意志가 있다면 그것이 에너지와 物質로 바뀔 수 있다는 거죠. 創造主가 없다면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엄청난 에너지와 物質이 나타났는지 說明이 안 되는 거죠.

    김재수 : 제 敎授님 말씀 中에 우리가 조심스럽게 接近해야 할 點은 神의 槪念 中 人格과 知性입니다. 聖經에 나오는 神의 人格은 人間과 다를 바 없어요. 自己가 創造해놓고도 미워하고 嫉妬하는 神이죠. 제가 말한 지성은 宇宙의 法則이에요. 그 法則으로 創造한 겁니다. 그것은 次元에 따라 다릅니다.

    임종록 : 말하자면 定型化된 무엇이 아니라 어떤 흐름에 對한 法則 自體를 神이라고…

    김재수 : 그렇죠. 그것이 人格과는 다른 知性人 거죠.

    임종호 : 큰 差異가 없는 것 같은데요.

    제원호 : 저도 差異를 잘 못 느끼겠는데요. 創造主의 智慧를 찾아가는 것을 物理學者들은 法則이라 말하는데, 그것은 知性이라기보다는 全體의 一部分을 본다는 뜻입니다. 저도, 비록 임성빈 博士님이 생각하는 方向成果는 조금 差異가 있지만 宇宙의 生命 現象에는 分明히 어떤 智慧나 方向性이 있다고 봅니다. 偶然이 아니라는 거죠.

    임종호 : 김재수 博士님, 좀 前에 도킨스 같은 말씀을 하신 거죠?

    김재수 : 그것과는 또 다른데…. 그 法則에 方向性이 있었기 때문에 創造가 이뤄진 거예요.

    과학과 신(神)의 만남

    <b>임종록(漢陽大·應用數學)</b> ”神은, 數學 쪽에서 본다면 超越의 槪念이 아닐까 싶습니다. 時間과 空間, 五感에 制約받지 않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한마디로 表現할 수 없는 그 무엇―그게 에너지 形態인지는 모르겠습니만―이라고 봅니다.”

    社會 : 잠깐 中間 整理를 해보겠습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여기선 설 자리가 없군요.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宗敎的이든 非宗敎的이든 神이 어떤 式으로든 存在한다고 認定하는 것 같아서요. 特히 原子物理學을 專攻하신 제 敎授님이 人格神, 創造主로서의 神을 主張하는 게 興味롭습니다. 金 博士님은 宇宙의 法則을 말씀했는데, 그것은 칼 세이건이 말한 神의 槪念과 비슷해 보이네요. 宇宙를 支配하는 法則이 있다면 그것을 神이라고 부르겠다고 했지요. 도킨스는 物理學者들이 그런 槪念으로 神을 認定하면 안 된다고 主張했지만. 어쨌든 그런 宇宙 法則에 意志가 있는지는 또 다른 問題죠. 그건 知的設計論과도 差異가 있는 것 같은데…

    김재수 : 法則의 方向性이 바로 神이겠지요.

    社會 : 임성빈 敎授님은 外界人의 槪念까지 包含한 包括的인 神의 槪念을 말씀하셨고요.

    抵抗할 수 없는 에너지

    임성빈 : 도킨스 같은 사람이 登場하는 것은 宗敎에 問題가 있기 때문입니다. 宗敎의 신은 만들어진 神이거든요. 宗敎의 神을 問題 삼는 것이라면 저도 같은 見解예요, 도킨스하고. 基督敎든 佛敎든 宗敎에는 否定的인 要素가 너무 많아요.

    제원호 : 저도 同意합니다.

    임성빈 : 제 敎授님은 創造主나 신은 完璧한 存在이고 人間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치는 存在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地球上에 存在하는 生命體 中에서 神에게 가장 近接한 것이 人間이고 神의 意志가 있다면 人間을 통해 表現된다는 거죠. 말하자면 人間이 神의 一部인데, 部分 속에 全體가 있을 수도 있으니 제가 神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社會 : 論議 方向을 좁혀보면, 宇宙 法則이나 生命 現象이 偶然이냐 必然이냐, 必然이라면 어떤 意志가 作用했느냐가 되겠죠. 知的設計論까지 包含해서요.

    김재수 : 創造의 意圖, 方向性이 바로 新星이겠죠. 그 方向性을 어떻게 解釋하느냐에 따라 神의 槪念이 좁아질 수도 넓어질 수도 있습니다. 神의 人格을 얘기하다가는 자칫 神을 人間的 次元에서만 헤아리게 된다는 거죠.

    임종호 : 個別的인 現象들도 實際 次元에서는 다 連結돼 있지요. 네트워크가 그런 얘기죠. 어떤 것들이 서로 連結되려면 必然的 意志가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自己組織化가 안 됩니다. 따라서 法則은 意志를 同伴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巨大한 意志를 只今의 내가 理解하기란 不可能합니다. 내가 머무는 次元의 水準만큼 아는 것이기 때문에.

    임종록 : 저는 그 意志가 어떤 絶對的인 存在가 펼치는 것일 수도, 어떤 法則으로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科學的인 觀點에서는 抵抗할 수 없는 에너지가 自然現象을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것이 意志가 아닌가 싶어요. 어떤 巨大한 存在에 그 意志를 附與하는 것이 宗敎이고요.

    제원호 : 宇宙의 歷史는 카오스에서 始作해 코스모스로 바뀌어가는 過程입니다. 저도 여기에 意志나 目的, 方向이 分明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聖貧) 先生님이 얘기하신, 神이 存在한다면 人間을 통해 깨닫게 되고 人間을 통해 理解할 수 있다는 것에 저도 同意합니다. 掌匣 속에 손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 것처럼 人間 안에 創造主가 들어설 空間이 있습니다. 개나 돼지에게는 없지만. 그 안에 들어오는 方向性이 뭔가. 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神은 無限한 사랑과 智慧의 存在입니다.

    神은 어디에나 깃들여 있다

    임종호 : 도킨스처럼 科學的으로 보면 創造主가 存在하지 않는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어야 討論이 더 재미있을 텐데…. 科學으로 裁斷하면 神이 나올 理 없죠. 神이 주신 科學이라는 理性의 道具는 사람 治療에도 쓰이는 等 좋은 點이 많아요. 그런데 患者가 낫는 건 意志 때문이에요. 리처드 파인만(美國의 理論物理學者)李 얘기한 대로 科學은 現象을 잘 理解하는 戰略이지 眞理를 찾는 手段은 아니죠. 저는 科學이 神의 存在를 證明하는 手段이 아니라 神의 偉大함을 發見하고 活用하는 手段이어야 한다고 봐요. 道가 어디에든 있는 것처럼 神도 어디에든 깃들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원호 : 自然의 法則 속에 나타난 神에는 主觀的 要素와 客觀的 要素가 다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接近하든 全體가 아닌 一部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임종호 : 神이 여러 군데 遍在하시는 거죠.

    임성빈 : 카프라 博士처럼 新科學에 접어든 사람들 中에는 神이나 靈性을 否定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런데 生物學 쪽에선 아직도 近代科學的인 思考方式으로 神을 否定하는 것 같아요.

    제원호 : 개나 돼지에게는 過去나 未來, 歷史나 文化라는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人間이 創造의 方向性에서 頂點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終着驛이 人間의 몸이라는 생각입니다. 時空間의 接點을 天國과 地獄이라 할 수 있을까요. 人間의 몸 안과 밖은 全혀 다르죠. 속은 靈의 世界이고 밖은 物質의 世界입니다. 靈이 없는 動物과 흙이 없는 天使와는 다르게 人間 몸에는 靈魂의 接點이 있습니다.

    임종록 : 제 敎授님 말씀 中에 靈魂과 몸이 나왔는데요. 理解도를 높이기 위해 그 中間에 마음을 넣으면 어떻겠습니까. 靈魂은 마음의 上位 槪念으로 理解되거든요. 그러니까 몸의 次元을 包含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時空間을 넘어서는 道具가 마음인 셈이죠.

    제원호 : 저는 宇宙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綜合 狀況이라고 봅니다. 人間은 小宇宙이고. 보이는 흙과 보이지 않는 靈魂이 합쳐진 것이죠. 몸을 통해 意識이나 靈이―그것을 마음이라 해도 좋고요―TV스크린처럼 나타납니다.

    天使와 動物

    임종록 : 임종호 敎授님 말씀 中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神的인 領域 아래 科學의 領域이 있다며 科學이 神을 알아가는 過程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反對意見을 갖고 있어요. 科學의 領域을 어디까지 認定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科學의 方法論을 통해 神을 理解하는 것이지 科學이 新 밑에서 뭘 한다는 槪念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多次元의 科學은 神과 같은 次元에서 理解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임종호: 여기 物理學 하는 분이 계셔서 좀 꺼림칙하긴 한데… 아까 얘기가 나왔듯 現代物理學에서는 11次元이나 그것이 말려 있는 7次元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現實的으로 物理學에서 認定하는 것은 公示 4次元이지요. 그런데 實際로는 3次元의 存在만 認識할 수밖에 없어요. 感覺器官을 통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 次元 내려와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리처드 도킨스는 그런 點은 考慮하지 않는단 말이죠. 感覺의 對象化 問題로 한 次元 밑에 내려와 生活하는데도 그게 全部인 줄 알고 거기서만 因果關係를 찾는 거죠. 우리가 實際로 存在하는 公示 4次元을 硏究하는 것이 아니라 한 次元 낮은 곳에서 感覺의 斷面圖를 끼워 맞추려니 맞을 理가 없지요.

    김재수 : 아까 제 敎授님 말씀 中에 人間과 動物의 差異를 둔 것에 對해 拒否感이 들었어요. 그것은 分離意識에서 비롯된 것이고 神的이지 않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宗敎的 觀念과 어떤 槪念으로 억지로 쥐어짜는 게 아닌가. 화이트헤드(英國의 數學者, 理論物理學者, 哲學者)가 왜 哲學者가 되었나. 量子物理學을 工夫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단 말이에요. 있다는 건 實際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現象일 뿐이라는 거죠. 우리 모두 幻想을 보고 있는 거예요. 事實 動物도 우리가 動物이라고 規定하고 이름 지었기 때문에 存在하는 것일 뿐 그것도 錯覺이에요. 神의 槪念에서는 分離意識이 없어져야 돼요. 神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하나죠.

    임성빈 : 어떤 觀點에서 보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죠. 내가 보기엔 重要한 差異 같지는 않은데.

    김재수 : 神의 槪念을 人格化하고 限定하면 矛盾이 생겨요. 敎育받아온 宗敎的인 觀念으로 神을 加工하려는 느낌을 받았어요. 科學을 통해 느끼는 신은 가슴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神이에요. 아까 제 敎授님이 자꾸 神을 宗敎的 觀念으로 묶고 天使와 動物 얘기가 나오는 瞬間 神과 멀리 떨어진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어요.

    제원호 : 쥐어짜는 게 아니고요. 人間의 몸이 神的인 것을 理解하는 通路라는 거죠. 그럼 神이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人格을 통해서죠. 그런 點에서 人格을 言及한 겁니다.

    임종호 : 科學은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이에요. 科學의 ‘科’가 나눌 과(科)자이기 때문에 科學으로 神의 存在를 證明할 수는 없다고 봐요. 反面 신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지요. 目的이 있어서 내려오는 겁니다. 科學의 發見 中에는 直觀에 依한 發見이 많아요. 따라서 저는 도킨스가 그런 式으로 生命을 理解하는 것을 容納할 수 없어요.

    宇宙로부터 끌어오는 祕密

    임성빈 : 科學萬能主義에 따른 誤謬죠. 神은 어디에도 있을 자리가 없다든지 하면서….

    김재수 : 只今 우리가 科學이라고 하는 것은 3次元, 또는 4次元의 時空間 속에 있는 것 中에 極히 一部를 說明할 뿐이죠.

    임종록 : 그게 묶어놓은 科學이라는 거죠.

    김재수 : 얼마 前 世界的으로 ‘시크릿(Secret·著名한 著述家, 科學者, 哲學者, 聖職者 等이 들려주는 富와 成功의 祕密을 담은 DVD와 冊)’ 烈風이 불었잖아요. ‘시크릿’의 核心은 Law of Attraction, 卽 誘引(誘引)의 法則입니다. 그 法則으로 스스로 創造主가 되는 거죠. 스스로 創造하자는 거죠. 이런 생각이 바로 神의 資格인지 몰라요. 宇宙로부터 끌어오는 祕密, 神의 本質이 뭐냐. 神은 사랑이라는 거죠. 人格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러브’ 하나로 끝날지도 몰라요.

    임성빈 : 神을 論할 때 神의 레벨을 생각지 않으면 안 돼요. 예수가 外界에서 왔다고 믿는 라엘리안 무브먼트 追從者들은 6~8次元까지 進化한 外界人과 채널링이 된다고 主張하죠. 自身들이 얼마나 神과 가까운 存在인지 强調합니다. 心靈師度 能力은 좀 不足하지만 우리보다 한 次元을 더 내다보는 것 같아요. 中國의 期工事가 가장 쉽게 배우는 재주 中 하나가 密封된 藥甁에서 藥을 꺼냈다 넣는 것입니다. 現 次元에서는 不可能하지만 한 段階 높은 次元에서는 아주 쉽게 되는 일입니다. 이처럼 只今보다 한 段階 높은 次元을 利用하는 것을 神的인 現象이라고 하죠. 種種 神格化되기도 하고요.

    제원호 : 神과 神的인 要素는 區別하고 싶어요. 人間은 누구에게나 神的인 要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 우리도 熟鍊 程度에 따라 좀 더 높은 次元을 接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특별한 宗敎를 갖고 있지 않지만 佛經이나 道德經을 보면 現代物理學을 工夫하지 않고 어떻게 그런 글이 나올 수 있었는지 참 놀랍습니다. 11次元論에 따르면 人間이 進化를 거듭하면 神的인 또는 神의 境地에 오를 수 있죠.

    社會 : 座談者들께서 人格神이든 法則의 神이든 大體로 神의 存在를 認定하는 雰圍氣인데, 그 背景엔 人間 中心, 地球 中心의 思考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基督敎的인 觀點에서는 審判의 날 或은 世界의 終末을 얘기하고, 科學的으로는 彗星과의 衝突 等에 따른 地球의 終末을 推定합니다. 甚至於 外界人과의 宇宙戰爭까지 얘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假說을 想定한다면 神의 意志나 宇宙의 法則을 어떻게 理解해야 할까요.

    携擧는 次元 變異

    임성빈 : 저는 基督敎에서 말하는 携擧나 甑山敎의 天地開闢이나 비슷한 槪念이라 보는데, 곧 宇宙의 秩序가 바뀔 거라는 거죠. 人類學에서는 얼마 前까지만 해도 人類의 祖上을 네안데르탈人으로 여겼습니다. 네안데르탈人은 30萬年 前에 나타나 3萬年 前까지 存在했습니다. 現代人類가 유럽에 나타난 게 4萬年 前이니 두 人類는 約 1萬年 동안 같이 지냈다고 봐야죠. 그 期間에 네안데르탈人은 完全히 消滅해버렸어요. 그런데 現代人類와 戰爭을 벌여 죽었다면 屍體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遺骨이라도. 그런데 아무런 痕跡도 없이 사라졌어요. 유럽 全 地域에서. 거의 同時에.

    그래서 저는 네안데르탈人까지는 靈魂이 없었고, 靈魂을 가진 현대人類가 登場하면서 4次元의 世上이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次元이 높아지면 그 아래 次元은 그냥 그림자가 되지요. 그런 次元의 變化 때문에 네안데르탈人이 消滅하지 않았나 싶어요. 萬一 그렇다면 携擧니 天地開闢이니 하는 것은 또 한 次例의 人間 進化를 뜻하는 것이고, 只今은 한 段階 더 進化한 人類와 進化하지 않은 人類가 共存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죠. 한 段階 더 높은 次元의 世上이 오면 進化하지 못한 人間에게는 携擧나 天地開闢 같은 現象이 나타나지 않겠나 싶어요.

    김재수 : 只今이 그때라고 보지요.

    임종호 : 生物의 進化過程을 보면 進化의 段階가 높은 高等生物일수록 사랑이 더 커지죠. 外界人이 人間보다 進化한 存在라면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저는 UFO가 없다는 것을 證明할 수 있어요. 外界人이 우리보다 뛰어난 存在라면 只今 地球에 環境汚染 같은 問題가 없어야겠죠.

    김재수 : 왜요? 宇宙엔 不干涉의 法則이 있어요. 우리의 問題는 우리가 解決해야지 왜 남에게…

    임종호 : 우리보다 靈惡했다면 우리를 支配했을 테고요. 우리보다 더 進化했다면 사랑이 넘칠 테니 우리에게 得이 되는 쪽으로 地球를 이끌었을 거예요. 그러지 않은 것으로 봐 없는 거죠.

    김재수 : 너무 單純한 論理로…

    임종호 : 아까 더 進化한 人類가 그렇지 못한 人類를 죽였다고 말씀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사랑이 더 커지고 靈性이 더 깊어졌을 텐데….

    임성빈 : 그건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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