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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習皇帝’가 되려는가 “權力 集中은 더 큰 改革 위한 手段”|新東亞

新東亞-未來硏 年中企劃 中·國·通

시진핑은 ‘習皇帝’가 되려는가 “權力 集中은 더 큰 改革 위한 手段”

자오후지 前 中國共産黨 중앙당교 敎授

  • 李文起|未來戰略硏究院 院長 송홍근 記者|carrot@donga.com

    入力 2017-08-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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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權力 剛해야 政經癒着 깰 수 있어
    • 破裂音 날 만큼 權力鬪爭 甚해
    • 싱가포르式 一黨優位 多黨制로 갈 것
    • 韓國 大選은 學生會長 選擧 같아
    자오후지(趙虎吉·64) 前 中國共産黨 중앙당교 敎授는 헤이룽장(黑龍江)省 우창(五常)時에서 태어난 中國人이다. 韓國人, 北韓人과 正體性 一部를 共有한다. 父母 故鄕이 各各 平安道, 慶尙道다. 韓國式 이름은 조호길.

    중앙당교는 中國共産黨 高位幹部를 敎育하는 機關이다. 시진핑(習近平) 中國 國家主席이 2008年 國家副主席에 오른 後 校長을 맡았다. 마오쩌둥(毛澤東), 후진타오(胡錦濤)도 校長을 지냈다.

    蘇聯, 東유럽 共産主義가 沒落한 것과 달리 中國共産黨은 어떻게 健在함을 誇示하는가. 中國의 黨-國家 體制는 어떻게 變化할까. 一黨制 모델은 持續될 것인가. 시진핑으로의 權力 集中이 의미하는 건 뭘까. 共産黨 黨憲과 憲法에 시진핑 思想을 새겨 넣은 後 마오쩌둥 같은 班列에 올라 ‘始皇帝(習皇帝)’가 되려는가.

    新東亞-未來戰略硏究院 年中企劃 ‘中·國·通’ 8回가 韓國의 中國通이 아닌 韓國, 北韓과 正體性 一部를 共有하는 그를 만난 것은 內部者 視線으로 中國 政治權力의 特徵, 本質을 探究하기 위해서다.





    “一字無識 勞動者처럼 일해”

    ①무엇을 改革하는가 ②왜 改革하는가 ③어떻게 改革하는가 ④改革을 통해 어떤 나라를 志向할 것인가.

    그는 1980年代 末 이 4가지 苦悶을 품고 베이징(北京)大 大學院에 늦깎이로 入學했다. 政治學博士 學位를 받은 後 25年間 중앙당교 敎授로 在職하면서 中國共産黨의 政治哲學, 運營體系를 探究했다.

    젊은 時節엔 農村 生産大隊와 企業所에서 社會를 배웠다. 生産大將, 建築會社 班長 및 施工팀長, 共産主義靑年團 書記로 일했다. 1978年 改革·開放이 始作됐을 때 투먼(圖們)市 黨委員會 宣傳部長이었다.

    “우리 世代는 小學校를 穩全히 다녔으나 6學年 때 文化大革命(1966~1976)李 터집니다. 中學校에 가긴 했는데 工夫를 제대로 못했어요. 마오쩌둥이 中學校를 6年制→4年制로 改編합니다. 4年制 中學校인데 文化大革命 때라 工夫는 하나도 안 했죠. 經濟가 完全히 破産 狀態였습니다. 일자리가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下方이지, 下方.”

    下方(下放)은 中國共産黨이 黨·政·郡 幹部의 官僚主義·宗派主義·主觀主義를 防止한다는 名目으로 高學歷者, 知識分子를 落後된 農村, 變更의 工場으로 보낸 것을 가리킨다.

    “豆滿江邊 月淸香으로 下方했습니다. 5年을 지냈는데 그곳에서 많이 배웠어요. 社會主義가 優越하다는데, 다들 왜 이리 가난한지 疑問이 들더군요. 月淸香에서 투먼시로 옮겨 建築會社에서 5年 일했습니다. 甓돌 쌓고, 시멘트 발랐어요. 一字無識 勞動者처럼 밑바닥 삶을 살았죠.”


    “中國은 西歐와 文明史 달라” ?

    中學校 卒業 學歷(韓國 高卒 學歷)은 1970年代 中國에서 高學歷者였습니다.
    “우리는 知識人이었습니다, 知識人! 學校 工夫는 穩全히 못해도 讀書를 했거든요. 建築會社에 出勤하면 純眞한 勞動者들이 新聞 읽어달라, 그림冊 읽어달라 보챘습니다. 農民, 勞動者와 함께하면서 正말로 많이 배웠어요. 共産主義靑年團 書記로 뽑히면서 6個月 訓鍊받고 農村敎育隊에서 2年 일했습니다. 資本主義 고리를 자른다면서 장사 다니는 사람 敎化할 때죠.”

    그는 투먼시 宣傳部長으로 일할 때가 特히 苦痛스러운 時節이었다고 回顧했다. 中國共産黨에 入黨한 때는 1975年이다.

    “투먼시 宣傳部長으로 4年을 살았어요. 改革·開放을 막 始作해 政策이 내려오는데 밑에서 反撥이 거셌죠. 하루아침에 市場經濟로 履行하는 게 아닙니다. 人民에게 땅을 나눠주는데, 亂離도 그런 生亂離가 없습니다. 뭘 改革하냐, 왜 改革하냐, 어떻게 改革하냐는 質問엔 그 나름 答하겠는데, 改革을 통해 어떤 나라가 되는지는 알 수 없었죠. 世上에는 社會主義, 資本主義밖에 없는데 社會主義는 뜯어고치면서 資本主義는 아니라는데 그게 都大體 뭔지 알 수 없었습니다. 苦悶을 풀어보려 讀書를 많이 했는데 村구석에서 冊 읽은들 答이 나왔겠습니까.”??

    그는 1981~1986年 通信隊를 다니면서 學事 學位를 받았다. 通信隊는 韓國 放送通信隊와 비슷한 形態다.

    “한 달에 한 番씩 授業 듣고 獨學했어요. 卒業狀 따자마자 베이징大 大學院에 入學願書를 넣었죠. 碩·博士 過程 7年을 거치면서 完全히 改變됐어요. 中國이 어디서 왔으며, 어느 곳에 서 있고, 어디로 가는지 보였습니다. 人類文明史에서 中國이 西歐와 어떻게 다른지도 눈에 들어왔고요.”



    “多黨制 亂脈 代案이 一黨制”

    中國共産黨이 生存한 것은 미스터리입니다. 世界 政治史의 獨特한 經驗이고요. 中國은 共産黨 一黨制를 維持하면서 市場經濟 體制로 轉換했으며 世界化 흐름에 便乘한 同時에 編入됐습니다.
    “西歐의 視角으로 中國共産黨을 들여다봐선 안 됩니다. 1950年代 中國을 說明하면서 一黨制, 全體主義 같은 낱말을 쓰던데, 그건 西歐의 視角일 뿐입니다. 1960年代 文化大革命이 터지니 派閥主義나 小集團 理論으로 들여다보더군요. 1990年代 以後엔 權威主義的 發展이니 開發 獨裁라는 말을 갖다 붙였으나 大部分 틀린 얘기입니다. 西歐의 틀로 中國을 들여다보니 빗나갈 수밖에요.”

    韓國 國際政治學界도 西歐의 理論 틀로 中國의 政治體制를 探究하려는 傾向이 强하다.

    “西歐 視角 中 조반니 사르토里의 ‘政黨과 政治體系(Parties And Party Systems)’는 잘 쓴 冊이에요. 사르토理는 一黨制는 多黨制가 失敗한 곳에서, 그 失敗를 收拾하고자 나타난다고 여깁니다.”

    사르토理는 西歐 政黨에 對해 民族國家 形成 以後의 産物로서 ‘全體 속의 部分’이라고 說明한다. 政黨이 ‘全體’ 속 ‘部分’의 利益을 代理하면서 國家를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現代 政黨이 두 가지 陷穽에 直面했다고 본다. 하나는 權力이 過度하게 集中·獨占되면서 全體主義가 나타나는 것, 다른 하나는 權力의 過度한 分散 또는 派閥化로 ‘全體’가 解體되는 것이다.?

    “1912年 靑(淸)李 무너진 後 政黨 乃至 政治組織이 342個에 達합니다. 나라가 散散조각 나요. 各 誠意 軍閥이 混戰을 벌이죠. 國家가 統合되지 않은 狀況에서 多黨制가 登場하니 國家가 그 꼴이 된 겁니다. 多黨制가 全體를 解體하는 狀況에서 國家를 統合하는 手段으로 登場한 게 中國式 一黨制예요.”

    分裂된 中國을 再統合하는 手段으로서 共産黨이 구실을 했다는 거네요.
    “西歐 政黨은 民族國家 樹立 後 産業化가 이뤄지는 過程에서 부르주아지가 王權에 맞서 權利를 찾는 過程에서 登場했습니다. 西歐 政黨의 機能은 利害關係에 따라 나뉜 勢力이 利益을 集團 表出해 政策化하는 것입니다. 中國의 政黨은 달라요. 中國에서 共産黨은 엘리트가 모여 民族國家를 統合해가는 組織입니다. 西歐와는 全혀 다른 背景에서 政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中國에서 왜 이 같은 政黨이 登場했을까요? 歷史濟度注意 視角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歷史濟度注意 視角에서 보면 國家는 抽象的 槪念일 뿐 實際로 組織된 것은 다양한 制度입니다. 歷史濟度注意 核心 槪念을 쉽게 說明하면 앞에 일어난 일이 뒤에 發生한 일의 方向을 決定한다는 것입니다.”


    亂世→小康→大同

    蘇聯, 東유럽과 다르게 共産黨이 살아남은 것은 中國 特有의 歷史·傳統 德分이라는 건가요. ?
    “中國은 2000年 넘게 科擧制와 官僚制를 통해 中國 特色의 엘리트 充員 制度를 維持했습니다. 中國 傳統의 政治哲學이 共産黨에서 具現되고 있습니다. 中國의 政治哲學이 어디에서 비롯합니까? 董仲舒(董仲舒)예요. 董仲舒!”

    董仲舒는 儒敎 國交化의 길을 연 사람으로 紀元前 2世紀 한(漢)나라 때 學者면서 官僚다.
    “秦始皇이 大陸을 席卷한 後 緣坐制 等 强한 處罰을 통해 秩序를 잡았으나 統一 後 14年 만에 陳(秦)李 무너집니다. 한(漢)高祖 劉邦이 再統一한 後 秦始皇이 만든 法制와 油價 傳統이 竝存하면서 어정쩡한 狀態가 이어졌으나 한무제가 董仲舒의 意見을 받아들여 儒敎만 남기면서 統治 異常을 確定합니다. 儒敎의 大同思想(大同思想)을 具現하는 게 國家 目標가 된 거죠.”
    淸代(淸代) 改革家들은 亂世(亂世)→小康(小康)→帶同(大同)으로 發展 段階를 나눴다. 大同思想은 人倫의 具現, 萬民의 身分的 平等, 財貨의 公平한 分配를 强調한다. 中國共産黨의 志向이 한무제 때 確定돼 19世紀 캉유웨이(康有爲)가 變法自彊運動 때 强調한 大同思想에 있다는 게 그의 說明이다.?

    中國共産黨은 溫飽(溫飽·먹는 問題가 解決된 社會)→小康(小康·人間답게 살 수 있는 삶의 質이 保障된 社會)→帶同(大同)을 發展 目標로 提示했다. 1921年 상하이(上海)에서 胎動한 中國共産黨이 100年째 되는 2020年 以前에 ‘全面的 小康社會’를 達成하는 게 베이징의 目標다.

    “小康社會는 衣食住 걱정은 않으나 내 子息만 사랑합니다. 大同社會는 내 子息뿐 아니라 모든 젊은이를 사랑하는 곳이고요.”
    周知하듯 大同思想은 社會主義 理想을 닮았다. 中國 特色의 共産主義를 理解하려면 儒敎 傳統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中國 政治哲學은 董仲舒 以來로 바뀐 게 없습니다. 한무제 때 三綱五常(三綱五常)을 制度化하면서 構成한 政治哲學이 中國共産黨까지 이어집니다. 董仲舒가 强調한 天人合一(天人合一)은 自然法則을 삶의 原理로 解釋한 겁니다. 皇帝가 왜 最高였을까요? 皇帝는 天子(天子), 卽 하늘의 代表예요. 人間은 宇宙의 法則을 따르는데 그 法則을 代表한 게 天子였습니다.”



    “高度化한 官僚社會 形成”

    天人合一 思想은 董仲舒에 依해 對日桶(大一統) 思想으로 展開된다. 하늘의 아들인 天子를 中心으로 世上이 하나로 統一된다는 것이다. 對日通을 이뤄내려면 高度化한 官僚社會가 必要했다.?

    “董仲舒가 統治哲學을 道德化, 理念化韓 後 唐나라 때 若干의 變化와 名·淸代 朱子學으로 인해 또 다른 變化가 있었으나 政治哲學의 基本은 한次例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過去制度 또한 2000年을 對日통했습니다. 秦始皇 때 官僚制가 처음 나타납니다. 한무제 때 試驗을 통해 官僚를 選拔하는 制度가 定着하고요. 아래부터 위까지 官僚行政機構가 皇權을 위해 일한 것은 皇帝가 官僚를 掌握했기 때문이 아니라 儒敎 이데올로기가 强力하게 作用한 德分입니다. 中國의 歷代 王朝는 國家 엘리트를 科擧制를 통해 吸收했습니다. 똑똑한 이들은 하나같이 皇權 안으로 들어간 겁니다. 또한 官僚를 儒敎라는 하나의 理念으로 同一化했습니다. 秦始皇 以來로 戶籍制度를 통해 遺民의 割據를 막았으며 人間에 對한 統制權을 皇帝한테 集中시켰고요. 中國人은 貴族 밑에 奴隸로 산 적이 없습니다. 天子에게만 復屬된 自由民이었죠. 이 같은 歷史的 經驗을 中國共産黨이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中國 特有의 官僚制가 中華人民共和國의 國家 組織 形態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論理다. 中國의 現在 政治體制는 大陸 全體를 ‘極度로 高度化한 官僚社會’로 轉換하는 것을 目標로 삼았다는 것이다.?

    “中國共産黨은 엘리트를 糖으로 빨아들였으며 하나의 理念으로 國家를 統合했습니다. 中國의 産業化는 先進國을 좇는 形態地, 새로운 걸 創造하는 게 아니었죠. 위로부터의 指示에 따라 動員하고 組織해 産業化를 이뤄낸 것이지 民間이 主導한 게 아닙니다. 中央政府가 힘을 가졌기에 國家가 가진 能力을 綜合的으로 活用했습니다. 中國共産黨의 正當性은 産業化 過程에서 보여준 成果에 起因합니다. 權威主義 或은 全體主義라는 指摘이 있겠으나 中國에선 只今과 같은 體制가 먹힙니다.”



    “韓國人 不幸은 貪慾 탓”

    國家 指示에 順從하는 데 不滿이 없다?
    “中國人은 管理를 받지 않으면 마음이 不便해요. 기댈 곳이 必要합니다.”

    투박하게 質問하겠습니다. 中國共産黨과 西歐 政黨 中 누가 最後의 勝者가 될까요.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게 아니에요. 中國, 西歐 體制가 各各 長短點이 있죠. 韓國과 西歐는 公正한 法治와 政府 問責이 이뤄집니다. 朴槿惠 前 大統領을 彈劾한 게 一例죠. 그만큼 法治가 具現됐으나 弱點은 政府가 너무나 弱하다는 거예요. 反對로 中國은 政府는 强力한데 公正한 法治 部分이 未洽합니다. 結局 中國도 公正한 法治를 推進할 수밖에 없습니다.”

    韓國 政治體制를 어떻게 評價합니까.
    “短期的, 中長期的 利益을 아울러 政策을 決定해야 하는데 韓國은 어떻게 할 道理가 없습니다. 國民은 中長期的 利益을 잣대로 투표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短期的 利益을 確實하게 把握해 政策이 樹立되는 것도 아니더군요. ‘우리 地域은 無條件 文在寅’이라는 式으로 투표하는 것은 理性的인 게 아니죠. 大衆은 理性的일 수 없습니다. 理性的이면 大衆이 아니에요. 로베르트 미헬스는 ‘多數는 現在를 代辯하고 少數만이 未來를 代辯한다’고 一喝합니다. 엘리트는 大衆을 이끌고, 大衆은 엘리트를 따라갈 때 均衡이 잡혀요. 大衆에 依해 모든 게 決定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예요.”

    그가 덧붙여 말했다.

    “戀愛, 結婚, 出産을 抛棄한 韓國의 삼포世代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밖에서 보기에 韓國의 全體的 宰夫(財富)는 充分해요. 1人當 國民所得이 3萬 달러假量인데 物價 差異를 考慮해 삶의 品質을 따지면 유럽의 5萬 달러 國家와 비슷합니다만 分配에 問題가 있습니다. 貪慾에 젖어 幸福하지 않은 겁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欲心 탓에 無限競爭이 벌어집니다.”



    “中長期 戰略에 弱한 西歐 모델”

    中國式 거버넌스가 오히려 적합하다는 主張인가요.  
    “西歐 모델로는 中長期 利益을 擔保할 수 없어요. 韓國 大選을 보면서 學生會長 選擧 아닌가 싶더군요. 公共部門 일자리 81萬 個를 만든다는 둥 하는데, 야, 이거 眞짜 大選候補 맞나? 課長, 局長이 할 얘기를 하는 걸 보고 투표한단 말이에요. 어떻게 人氣 끌까, 어떻게 票 받을까만 窮理하는 狀況에선 未來에 注目하지 못합니다. 中國式 體制는 西歐 모델과 달리 中長期 戰略의 連續性이 이어집니다.”

    100年 앞을 내다보고 政策을 짠다?
    “그렇죠. 또 다른 長點은 人材를 早期에 選拔해 臟器 訓鍊한 後 適材適所에 配置한다는 것이고요.”

    短點도 많죠.
    “權力이 集中됐기에 腐敗합니다. 中國은 腐敗를 克服해야 하고 韓國은 中長期 戰略을 짜야 합니다.”

    中國共産黨이 巨大한 나라를 效率的으로 統治하면서 經濟成長을 이끌어냈다는 點에는 疑心의 餘地가 없습니다만 問題는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느냐죠. 腐敗한 데다 競爭이 공정하지 않으며 法治, 人權 問題가 다 弱點입니다.
    “맞아요. 中國共産黨은 歷史的 遺産에서 비롯한 强點을 살려가면서 短點을 補完해야 합니다.”

    中國共産黨이 自己 革新과 變化에 成功하면 世界史的으로 普遍性을 갖춘 새로운 政治 모델이 되겠으나 그러지 못한다면 生命力이 疑問視될 수 있죠.
    “自由, 平等 같은 理念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市場經濟는 全體 中心이 아니라 個人 中心이죠. 自由로운 個個人이 競爭者입니다. 또한 等價交換이 市場經濟의 原則입니다. 等價交換이 이뤄지려면 平等해야 합니다.”


    “經濟도 政治도 無限競爭 안 돼”

    中國式 一黨制의 未來를 어떻게 봅니까.
    “中國에 西歐式 政治體制가 移植된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中國 또한 自由, 平等의 方向으로 가겠으나 西歐式 多黨制는 代案이 아닙니다. 市場經濟라는 完全히 새로운 生産樣式이 中國 文化를 바꾸고 있으므로 中國, 西歐 모델의 接合點을 찾을 겁니다.

    中國은 일黨優位의 多黨制로 갈 겁니다. 法的으로 共産黨 外 8個 黨派가 있어요. 全國人民政治協商會議(精筴)가 共産黨을 包含한 9個 黨派가 協商하는 곳입니다. 精筴이 앞으로 活性化할 겁니다. 全國人民代表者會議(全人代)도 내실화할 것이고요.?

    中國 政治體制는, 共産黨이 全體를 確實히 統合한 狀態에서 다른 黨派의 役割이 커지는 方向으로 나아갈 겁니다. 反對와 批判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면서도 日當優位가 繼續된다는 얘기예요.싱가포르 모델을 떠올리면 됩니다. 人民行動黨이 國家를 絶對的으로 統制하면서 野黨들이 反對 목소리를 내는 게 싱가포르의 政治 構造죠.”

    그는 中國의 政治 發展 段階를 넷으로 나눴다.

    “첫째는 國家 統一 및 國民性 統合 段階입니다. 共産黨이 이 段階를 잘 處理했습니다. 둘째는 中央政府 權威 確立 段階입니다. 中央政府의 權威가 確立되지 않은 狀態에서 普遍的 參與와 選擧가 이뤄지면 混亂이 일어납니다. 中南美 國家와 泰國이 이런 狀況에 處해 있죠. 셋째는 中央政府의 權威가 制度化, 節次化, 法制化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段階가 普遍 參與입니다. 中國은 現在 둘째 段階에서 셋째 段階로 나아가는 中인데, 싱가포르와 비슷한 形態로 中國式 民主化가 이뤄질 거예요.”

    그는 經濟뿐 아니라 政治에서도 無限競爭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經濟는 勿論이고 政治에도 競爭이 없어선 안 됩니다만, 西歐式 無限競爭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中國은 共産黨 優位에서 各 黨派가 各自 意見을 提示하는 有限競爭을 志向해야 합니다. 韓國을 例로 들어봅시다. 韓國의 政黨은 黨(黨)이 아니라 派(派)예요. 親文이니 하면서 사람 中心으로 뭉쳐 死生決斷의 다툼을 벌입니다. 韓國과 같은 甚한 競爭 속에서는 삶의 質을 높이는 데 限界가 있습니다. 韓國도 經濟力이 이만큼 올라왔으니 自信感을 갖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安定되게, 조화롭게 살지 硏究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진핑 體制가 反(反)腐敗運動을 廣範圍하면서도 果敢하게 進行합니다. 制度化·法制化·節次化의 過程으로도 理解하겠으나 最高指導者에게 權力이 지나치게 集中됨으로써 政治 發展이 退行하거나 逆行하는 것 아니냐는 視角이 있습니다. 西歐 言論에서는 시진핑 主席이 21世紀 中國의 皇帝 格이 되려는 것 아니냐는 分析마저 나옵니다.
    “腐敗와 政經癒着이 甚합니다. 旣得權을 깨지 않으면 改革이 더는 못 나아가요. 시진핑으로의 權力 集中을 否定的으로 여길 게 아니라 더 깊은 改革을 위한 準備라고 봐야 합니다. 일을 더 하고자 權力을 集中하는 것이지 權力만을 强化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習仲勳)과 마찬가지로 權力이나 個人的 成就에 執着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旣得權 勢力이 커질수록 그것을 깨는 權力은 剛해야 합니다. 分散된 權力은 旣得權을 깰 수 없어요.”



    “旣得權 깨려면 權力 集中돼야”

    中國共産黨의 集團指導 體制 및 權力承繼 시스템은 장쩌민, 후진타오 體制를 거치면서 制度化, 規範化했습니다만 11月 中國共産黨 18次 全國代表者大會를 통해 시진핑 主席으로의 權力 集中이 더욱 講和하리라는 展望이 많습니다. ‘포스트 시진핑’ 候補群 中 하나이던 쑨정차이(孫政才) 前 충칭市 黨書記가 7月 24日 解任돼 調査를 받는 것도 이 같은 展望에 힘을 실었습니다. 시 主席이 10年 任期를 遂行한 장쩌민, 후진타오와 다른 길을 걸으리라는 分析도 提起됩니다.
    “시진핑이 다른 길을 圖謀한다는 것은 西歐的 視角일 뿐입니다. 후진타오 時節이 너무 弱했어요. 10年을 浪費했다고까지 하거든요. 中國은 풀어야 할 問題가 泰山 같습니다. 金融改革 等 難題가 山積했습니다. 只今과 같은 體制가 아니었으면 軍 改革 못 해냅니다.

    후진타오는 꿈에도 생각 못한 軍 改革을 해냈잖아요. 集團指導 體制는 總體的으로 變한 게 없어요. 다만 같은 體制 안에서 후진타오 때 너무 弱化된 總祕書의 權力이 强化된 것이죠. 어떤 面에서는 너무 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긴 한데 큰 틀에서는 集團指導 體制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다 얘기하기는 어려운데 그사이 別의別 일이 다 있었습니다. 內部에서 破裂音이 난 적도 있어요. 權力鬪爭이 장난이 아닙니다. 中國에는 歷史的으로 謀略, 權謀術數가 많았어요. 이番에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只今 狀況을 理解하려면 이 같은 背景을 봐야 합니다. 다시 强調하건대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리더십의 確立일 뿐 權力을 위한 權力 集中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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