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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候補, 李仁濟·朴槿惠 共同代表?|新東亞

정몽준 候補, 李仁濟·朴槿惠 共同代表?

  • 추승호 < 연합뉴스="" 정치부="" 기자=""> chu@yna.co.kr

    入力 2004-09-07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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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3 地方選擧가 한나라당 壓勝, 민주당과 자민련의 慘敗로 幕을 내리면서 主要 政黨 바깥에 存在하는 이른바 ‘第3勢力’의 向後 行步에 關心이 모아지고 있다.‘정치 9段’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總裁, 박근혜(朴槿惠) 한국미래연합 代表, 이인제(李仁濟) 민주당 前 常任顧問, ‘월드컵 스타’ 정몽준(鄭夢準) 議員 等 第3勢力의 向後 行步를 점쳐본다.
    ”忠淸道가 結局 우리를 버렸다. 忠淸道는 結局 핫바지인가.”

    3期 地方選擧 開票結果의 輪廓이 드러난 6月13日 午後 9時 자민련 麻布黨舍 地下講堂에 마련된 投開票 狀況室에서 터져나온 歎息이다. 김종필 總裁는 이날 午後 狀況室에 있다가 放送社 出口調査 放送 直前 狀況室을 빠져나와, 정상천(鄭相千) 中央選擧對策委員長과 함께 5層 總裁室에서 放送을 지켜봤다. 敗北를 豫感한 金總裁가 寫眞記者들에게 초라한 表情을 들키지 않기 위해 짜낸 꾀였다.

    危機의 JP

    金總裁는 地方選擧戰 中盤 以後부터 忠淸道民을 ‘兄弟 姊妹’로 바꿔 부르고 ‘忠淸道 핫바지論’을 再등장시키는 等 忠淸圈을 死守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結局 自身의 政治的 土臺인 忠淸圈 掌握力에 相當한 打擊을 입고 말았다. 1961年 5·16 쿠데타에 參與, ‘政權의 2人者’로 政治에 入門한 以後 最大 危機를 맞은 것이다.

    40餘 年 政治歷程에서 그는 여러次例 危機를 겪었다. 1980年 新軍部에 依해 216億원을 蓄財한 權力型 不正蓄財者 1號로 烙印 찍혀 美國에서 流浪한 적도 있었고, 1990年 3黨 合黨 後 김영삼(金泳三) 大統領 側近들과의 權力鬪爭에 밀려 민자당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政治力의 根源인 ‘忠淸道 掌握力’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番에는 그것이 무너져 내리면서 엄청난 衝擊을 받았다. 삼손의 ‘머리카락’李 잘려 나간 셈이라고나 할까. 2000年 4·13 總選 慘敗에 연이은 ‘스트레이트’를 맞은 셈인데다, 76歲의 高齡이라는 點도 큰 負擔이 아닐 수 없다.



    4·13 總選 때 “西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겠다”고 했고, 이番 地方選擧 때는 “나보고 늙었다고 하는데 精神的으로는 靑年이나 다름없다. 두고봐라. 나는 쉽게 죽지 않는다”고 公言했으나 選擧 結果는 그런 말들을 無色하게 만들었다. 이제 金總裁는 自身을 겨냥한 責任論과 所屬議員의 連鎖 脫黨 對策을 苦心해야 하는 身世로 轉落했다. 민주당처럼 자민련에서도 刷新要求가 고개를 들 可能性도 있다. 그동안 黨內에서는 衰殘한 金總裁에 對한 懷疑論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議員은 地方選擧 直前 私席에서 “地方選擧에서 지면 金總裁의 2線 後退를 要求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露骨的으로 金總裁에 反旗를 들었다. 그동안 脫黨說이 꾸준히 나돌던 L議員은 “民心이 確認된 만큼 모든 것을 原點에서 再檢討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深刻한 狀況이 벌어질 것”이라며 “早晩間 議員들과 모임을 갖고 黨의 進路에 對해 論議하겠다”고 말했다.

    黨內 刷新要求를 消化할 만한 能力이 없다는 게 자민련의 苦悶거리다. 金總裁가 當場 2線으로 물러나도 黨을 代表하고 大選에 나설 만한 人物을 찾기 어렵다. 政界改編만이 ‘살 길’인 狀況에서 金總裁 以外에는 政界改編에 對應할 만한 마땅한 카리스마도 없는 實情이다. ‘포스트 JP’를 내세우고 있는 심대평(沈大平) 忠南知事가 있지만 現職인 만큼 黨 總裁를 맡기에는 適切치 않다.

    4者連帶 뒤 2線 後退

    結局 자민련이 選擇할 수 있는 方案으로는 金總裁로 하여금 그동안 내걸었던 李仁濟 朴槿惠 정몽준 議員을 連結하는 ‘4字 連帶’를 積極 推進하도록 하고, 이것이 成事될 境遇 金總裁가 2線으로 後退하는 方案이 有力하게 擧論되고 있다. 金總裁는 그間 累次 “內閣制와 汎保守 連帶를 代身 실현시킬 만한 人物이 있다면 밀어줄 수 있다”고 밝혀왔던 만큼 連帶 成事 後 2線後退를 받아들일 可能性이 높다는 觀測이다.

    黨 一角에서는 월드컵으로 急浮上한 정몽준 議員을 大選候補로 내세우고 박근혜 議員과 이인제 議員이 共同代表를 맡는 形式의 新黨 創黨이 가장 理想的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하지만 4者連帶가 쉽지만은 않다는 指摘도 있다. 于先 對象者 모두 大選出馬를 꿈꾸고 있어, 候補 單一化와 系派別 持分 等 利害關係를 調整해 한데 묶어내는 일이 普通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作業은 年長者이자 大選出馬 欲心이 없는 金總裁가 맡아야 할 텐데, 그의 位相이 墜落한 狀況에서 調停役割을 果然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懷疑的이라는 것.

    金總裁를 따라 新黨에 參與할 議員들이 얼마나 될지도 4字 連帶의 成敗를 결정짓는 關鍵이다. 이番 地方選擧 敗北로 자민련 議員들의 集團 脫黨이 憂慮되고 있는 狀況에서 4字 連帶의 나머지 構成員들이 金總裁를 排除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자민련 議員 中 一部는 이미 地方選擧 前부터 “내 地域區에 내가 만든 地方選擧 候補가 있는 만큼 地方選擧 때까지는 選擧運動에 專念하고 選擧 後에 政界改編 過程을 봐가며 去就를 決定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민련 L議員은 選擧 直後 “4字 連帶는 同牀異夢에 不過하며 나는 아직도 한나라당과의 連帶를 念頭에 두고 있다”고 말해 脫黨 可能性을 示唆했다. J議員은 “國會議員들은 12月 大選보다는 來後年 17代 總選에 關心이 있다”며 “서둘러 去就를 決定할 必要는 없다. 민주당의 變化 等 政界改編 狀況을 지켜보며 차분히 決斷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結局 議員들은 節次를 제대로 밟고 名分을 蓄積한 뒤 適切한 時點을 골라 脫黨해야 ‘철새 政治人’이란 辱을 덜 먹을 수 있다고 判斷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도 민주당 박용호(朴容琥) 議員의 議員職 喪失로 힘 안들이고 院內 過半數(在籍 議員 263名 中 所屬議員 132名)를 確保했고 地方選擧 大勝 後 ‘낮은 姿勢’를 强調하고 있는 만큼 굳이 자민련 人士 迎入을 試圖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當場 자민련 議員들의 脫黨이 벌어질 可能性은 낮아 보인다.

    이와 關聯, 政街에서는 ‘미니 總選’으로 불리는 8·8 再補選이 자민련 議員의 脫黨 決行時期가 될 것이란 觀測이 많다. 하지만 個別的으로 去就를 選擇해봤자 ‘남의 집 살이’ 身世를 벗어나기 어려운 만큼 金總裁를 끝까지 따라가자는 목소리도 黨內에서 나오고 있다. ‘政治 9段’ 金總裁가 動物的인 感覺으로 結局 ‘될 곳을 찾아 갈 것’이라는 얘기다.

    金總裁는 이회창 한나라당 大統領 候補에 對해 毒舌을 퍼부으면서도 私席에서는 가끔 그 속내를 斟酌케 하는 發言을 한다. “이회창은 너무 속이 좁다” “우리와 같이 일을 하고 그 結果도 나누면 좋을 것을, 혼자 다 가지려 한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요만큼도 없다”는 말들이 그것이다. 家庭에 家庭을 더한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政治權 一角에서는 한나라당이 金總裁에게 명예롭게 政界를 隱退할 수 있는 名分을 주고 자민련을 吸收하는 ‘大妥協’이 大選 直前 이뤄질 수 있다는 所聞도 있다.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代表도 이番 地方選擧에서 打擊을 입었다. 10名의 候補를 냈지만 單 한 名의 當選者도 만들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創黨 한 달도 안돼 地方選擧를 치른 만큼 이를 根據로 朴代表의 政治力을 評價하는 것은 無理다. 特히 大選出馬 宣言도 하지 않은 朴代表와 정몽준 議員이 모두 大選候補 3字對決 輿論調査에서 支持率이 10% 以上인 點도 눈여겨 봐야 한다는 指摘이다. 하지만 當場은 地方選擧 敗北가 朴代表에게 다른 政治勢力과의 連帶를 促進하는 要因으로 作用할 것이란 分析이다.

    朴代表는 한국미래연합 創黨을 準備하면서 이미 “政治的 理念을 함께 하는 분이라면 누구에게든 門을 열어두고 있다”며 連帶 意志를 分明히 밝혔다. 지난 2月末 한나라당 脫黨 當時 “旣存 政治人들과는 接觸하지 않을 方針”이라고 한 데서 方向을 轉換한 것. 이런 方向轉換은 ‘旣成 政治에 때 묻지 않은 改革 政治’를 標榜하던 朴代表가 創黨 作業을 하면서 ‘세’없는 政治의 限界를 實感했기 때문일 것이다.

    朴代表가 連帶 條件으로 擧論한 政治的 理念은 ‘市場經濟’와 ‘自由民主主義’ 그리고 ‘改革’으로 要約된다. 미래연합은 政綱政策에서 黨權·大權 分離와 集團指導體制 導入, 大統領 重任制와 情·副統領制 導入, 議員總會 權限 擴大, 上向式 公薦制, 黨 財政 透明化, 國民參與競選制를 통한 大選候補 選出, 中央黨 機能 縮小 等을 밝혔다.

    이런 이념적 條件에 符合하는 1次 파트너는 李仁濟·정몽준 議員이란 게 政界의 分析. 김종필 總裁의 境遇 保守性에서는 櫃를 같이하지만 ‘改革’이라는 條件에는 맞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朴代表가 親姻戚인 金總裁에게 살갑게 對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問題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朴代表는 “김종필 자민련 總裁와 만날 計劃이 있느냐”는 質問에는 “具體的인 計劃은 없지만 新黨을 創黨하게 된 만큼 누구든 자유롭게 만날 것”이라고 밝혀 어느 程度 餘地는 남겨놓고 있다. 또 朴代表가 “한 政治勢力으로부터 大統領은 外交와 國防을 맡고 總理는 內閣을 責任지는 方案을 提案 받았다. 우리에게 맞는 權力構造를 摸索한다는 次元에서 깊이 생각해볼 것”이라며 內閣制 要素를 加味한 責任總理制에 關心을 보인 것도 金總裁와의 連帶可能性을 排除할 수 없는 根據다.

    李仁濟·朴槿惠 接近中

    朴代表는 정몽준 議員과도 아직 政治的 接觸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5日 俗離山 法住寺에서 열린 回向大法會에 參席, 鄭議員과 나란히 앉아 談笑를 나눈 것이 全部다. 反面 朴代表와 이인제 議員은 이미 連帶 論議를 進行中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衆論이다. 朴代表는 “이인제 前 常任顧問과는 맞는 것이 꽤 있는 것 같다”며 “그분과 具體的으로 얘기한 것은 없지만 言論을 통해 그분의 政策 같은 것을 들어 보면 그렇다”고 말해, 連帶 可能性을 示唆했다. 또 두 사람은 5月28日 汝矣島 63빌딩에서 會同, 大統領選擧와 國會議員選擧, 地方選擧를 한해에 모두 치르기 위해 早速히 改憲을 해야 한다는 데 意見을 모았다. 會同 後 두 사람은 “거의 每年 選擧를 치르는 것은 國力浪費이며 이로 인한 國論分裂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4年에 한番씩 모든 選擧를 同時에 치르는 것이 國家經營에 效率的일 것이라는 데 見解를 같이했다”고 밝혔다.

    朴代表는 “우리나라 經濟와 社會分野, 政治 權力構造 問題 等에 對해 새로운 政治가 切實히 必要하다는 데 共感하는 部分이 많았고, 特히 南北問題와 統一觀 等에 對해 생각이 같은 部分이 많았다”고 말했다. 李議員도 “앞으로 자주 만나 政治發展을 위해 힘을 모으고 같이 努力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李議員은 김종필 總裁와 ‘動向’이란 것을 媒介로 親密感을 表示하고 있어 朴代表와 이의원 間의 接近이 朴代表와 김종필 總裁 間의 連帶에도 肯定的으로 作用할 수 있을 것이란 豫想도 나오고 있다.

    이인제 민주당 前 常任顧問은 한달 새 ‘有力 大選走者’에서 ‘平黨員’으로 身分이 바뀐 悲運의 主人公이다. 2月初만 해도 민주당 大選候補 자리는 그에게 ‘떼어 논 堂上’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닥친 ‘노풍(盧風)’은 그의 무게 있고 心志 있는 이미지를 구겨버렸다.

    競選 直前 노무현 候補의 네거티브 戰略을 批判하던 李議員은 노풍이 불어닥치자 自身도 네거티브 戰略을 選擇함으로써 이미지에 큰 傷處를 입었다. 1997年 15代 大選 때 신한국당 大選候補 競選에 不服한 前歷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只今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進退兩難에 빠져 있다.

    4月17日 競選抛棄 宣言 後 對外活動을 完全히 中斷한 李議員이 政治 行步의 첫 手段으로 삼은 것은 자민련 김종필 總裁와의 골프會同. 地方選擧 때 忠淸圈 死守라는 切迫한 目標意識에 사로잡혀 있던 金總裁는 同鄕 出身인 李議員의 不幸에서 ‘機會’를 感知했다. 金總裁는 李議員의 서울大 法大 先輩이자 ‘소피아 考試院’ 同窓인 김학원 總務의 仲裁로 李議員과 5月3日 골프 라운딩을 함께 했다. 李議員은 그 자리에서 記者들에게 “(地方選擧에서) 金總裁를 여러가지 方法으로 돕겠다”고 公言했고 이는 ‘IJP連帶’의 始發이 됐다.

    IJP連帶의 고리는 바로 ‘忠淸圈 次期盟主’다. 李議員이 金總裁 側에 加擔하는 代身 金總裁는 ‘포스트JP’ 자리를 그에 준다는 시나리오다. 嶺湖南이 제各其 머릿數로 밀어붙이며 執權의 유리한 基盤을 마련하는 狀況에서, 忠淸圈도 團結해야만 나름의 利益을 保護할 수 있다는 認識의 共有도 한몫 했다.

    하지만 이의원 側 一角에선 “金 總裁와 자민련의 舊殼을 덮어쓸 境遇 오히려 大權에서 永永 멀어질 수도 있다”고 憂慮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反面 “노무현과 한화갑(韓和甲)의 민주당에서는 더 以上 李議員의 役割이 없는 만큼 忠淸圈 盟主로서 政治的 位相을 維持하다 政治權 變動을 틈타 再起의 機會를 봐야 한다”는 意見도 맞서고 있다.

    李議員은 6·13 地方選擧에서 민주당뿐 아니라 자민련도 支援함으로써 ‘IJP連帶’ 카드를 놓지 않았다. 李議員의 向後 行步는 民主黨 狀況, 特히 그가 이끌던 忠淸圈 議員들의 움직임과 密接한 關係가 있다. IJP連帶든 뭐든 政治的 連帶에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前提가 必須的이기 때문이다. 이런 點에서 李議員의 競選 落馬와 地方選擧 慘敗로 搖動치는 民主黨內 忠淸圈은 오히려 李議員에게 連帶의 與件을 성숙시키는 要因으로 作用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忠淸圈 議員들은 現在 脫黨 可能性까지 念頭에 두며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民主黨 忠淸圈의 媒婆인 송석찬(宋錫贊) 議員은 “이番 選擧는 民主黨 看板을 내리라는 警告다. 지난 國民競選에 나왔던 사람들은 이미 黨員과 國民의 審判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第 3勢力을 中心으로 國民的 新黨을 創黨해야 한다”며 “萬若 候補와 指導部가 자리에 戀戀한다면 월드컵 直後 엄청난 抵抗에 直面할 것”이라고 警告했다. 宋議員은 地方選擧 前에도 민주당의 忠淸 京畿 議員들이 脫黨, 자민련과 합쳐 ‘中部圈 新黨’을 創黨해야 한다고 主張한 바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이인제 空白’으로 民主黨 忠淸圈이 事實上 潰滅했다는 데 起因한다. 2004年 17代 總選이 個人的 最大 關心事인 議員들에게 “이대로 가다가는 落選이 불보듯 뻔하다”는 危機意識이 澎湃해진 것이다. 이의원 側은 그러나 政治的 連帶를 성사시킨다고 하더라도 李議員이 이番 大選에서 候補로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第3 候補群’의 한 名으로 擧論되는 정몽준 議員은 國民의 念願인 史上 첫 월드컵 16强 進出을 이뤄내고 2002 한·日월드컵을 成功的으로 開催함으로써 大選 街道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觀測이다. 鄭議員은 大選候補 出馬 與否를 묻는 質問에 그동안 “월드컵이 끝나면 大選에 直接 出馬할지, 아니면 누구를 支援할지 等을 자유롭게 얘기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정몽준 影響力 JP 보다 클 것”

    이제 월드컵이 치러진 以上 鄭議員은 안개 속 行步를 끝내고 早晩間 政治的 構想의 方向을 直·間接的으로 드러낼 것으로 展望된다. 鄭議員은 6月5日, 5·18 光州民主化運動 精神을 기리기 위한 地域民 蹴球大會와 ‘정몽준을 생각하는 우리들’이라는 모임에서 “16强 進出에 戀戀하지 말고 사나이답게 確實히 大權挑戰 宣言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質問을 받고, “그런 얘기를 種種 듣고 있다”며 出馬 可能性을 示唆했다. 그는 그러나 “出馬할지 與否는 여러분들과 相議해 決定하겠다”며 明確한 答辯을 避했다. 이어 그는 “올初 KBS 월드컵 成功 新年音樂會에서 大統領께서 자리에 앉자마자 ‘좋은 꿈 꾸었냐’고 물어왔다. 나는 16强 進出의 꿈을 꾸었냐는 말씀으로 理解했으나 周邊 사람들은 ‘더 큰일을 할 꿈을 꾸었냐’는 뜻으로 물어본 것이라고 얘기해, 다시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월드컵을 媒介로 한 鄭議員의 政治的 潛在力은 5月28日 한나라당 최병렬 議員의 發言에서 잘 나타난다. 崔議員은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16强에 進出하면 鄭議員의 立地가 달라질 것이고, 8强에 오를 땐 爆發力이 있을 것”이라며 “그가 大選出馬를 宣言할 境遇 豫期치 못한 結果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鄭議員은 이미 創黨準備까지 完了한 狀態로 안다”며 “鄭議員은 자민련 김종필 總裁나 민주당 이인제, 미래연합 박근혜 代表보다 影響力이 클 것”이라고 主張했다. 崔議員의 말대로 鄭議員은 지난해 新黨 創黨에 相當한 意欲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鄭醫員 캠프에선 新黨 創黨을 위한 具體的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等 創黨方案을 多角度로 檢討했다는 後聞이다.

    그러나 只今은 獨自 創黨 못잖게 地方選擧 後 政治權 地殼變動을 念頭에 둔 ‘連帶’에도 關心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境遇 이른바 ‘IJP 連帶勢力’李 有力한 파트너로 浮刻된다. 자민련 김종필 總裁와 민주당 이인제 前 常任顧問,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代表도 鄭議員과의 提携 可能性을 열어놓고 있다. 特히 ‘박근혜-정몽준 組合’은 政治權에서 가장 有力하게 내다보는 제3후보 시나리오로 꼽힌다.

    最近 민주당 一角에서도 鄭 議員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始作했다. 主로 민주당 非主流 및 中部圈 議員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 목소리는, 노무현 候補가 選擧 敗北의 責任을 지고 勇退한다는 前提下에 월드컵 16强 進出을 達成한 鄭議員과 未來聯合 朴代表 等을 網羅하는 政界改編을 이뤄야 한다는 것으로 要約된다. 特히 釜山地域 一部 地區黨 委員長들은 6月4日 모임에서 “盧候補 代身 정몽준 議員을 迎入해야 한다”는 論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鄭議員은 이미 大選 行步에 나설 수 있도록 事前整地 作業을 곳곳에서 進行하고 있다. 노무현 候補를 만들어낸 ‘노사모’와 類似한 性格의 인터넷 팬클럽 ‘MJ 러브’가 本格的인 活動을 豫告하고 있다. ‘MJ’는 정몽준 議員의 英文 이니셜. ‘MJ 러브’는 鄭議員을 支持하는 10餘 個 인터넷 팬클럽을 統合, 單一 사이버 勢力化를 圖謀하고 있는 것으로 傳해졌다.

    鄭議員이 最近 自身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政治 經濟 統一 外交 安保 等 全 分野를 網羅하는 ‘政策補佐 인턴’을 募集하는 것도 耳目을 끌고 있다. 5月20日부터 始作한 募集에 20代 後半~30代 初盤 專門家들의 問議가 殺到하고 있다. 鄭議員은 월드컵 뒤 懇談會 等을 통해 이들로부터 政策 諮問을 받을 豫定이다.

    아울러 鄭議員은 後援會(會長 이홍구 前總理) 組織 擴大에도 拍車를 加하고 있다. 市內 光化門에 後援會 事務室을 열어 會員 募集에 積極 나섰다. 鄭醫員 陣營의 한 關係者는 “월드컵 烈風이 불면서 後援會 加入 願書를 100張씩 무더기로 받아가는 事例가 늘고 있다”고 傳했다. 地方選擧가 끝나고 월드컵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바야흐로 第3勢力들의 몸과 마음도 바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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