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蜜月에서 大攻勢까지|신동아

蜜月에서 大攻勢까지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daum@donga.com

    入力 2005-04-06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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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南北頂上會談과 노벨平和賞 受賞으로 世界 言論의 脚光乙받았던 김대중 大統領이 執權 後半期에 國內 言論을 向해 稅務調査라는 칼乙꺼내든 理由는 무엇일까. 透明하고 公正한 言論改革을 위한 整地作業일까, 批判的인 言論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일까. 김대중 政權 出帆 直後부터 稅務調査에 이르기까지 言論과의 關係를 追跡해보면….
    밀월에서 대공세까지
    來日 午後 2時에 콰이강의 다리를 爆破한다고 합시다. 그걸 오늘 미리 말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言論社 稅務調査가 延長된 채 進行中이던 5月14日 朴趾源(朴智元) 靑瓦臺 政策企劃首席이 ‘신동아’ 記者에게 한 말이다. “김대중 大統領과 與圈에 對한 民心이 좋지 않은데 무슨 특별한 對策이 있습니까”라는 質問에 朴首席이 “言論이 우리 立場을 說明할 機會를 줘야 말이지요”라고 反問하며 던진 말이다.

    朴首席은 最近 記者와의 通話에서 “當時 콰이강의 다리 爆破라고 한 것은 김정일 委員長의 서울答訪을 의미한 것”이라고 解明했지만, 되돌아보면 爆破라는 뉘앙스는 言論社 稅務調査 結果 發表에 더 걸맞은 表現이었다.

    6月29日 稅務調査 結果에 對한 國稅廳 發表는 한마디로 衝擊的인 것이었다. 中央言論社 23곳의 法人과 大株主에 對한 追徵額은 5056億원. 二重 言論社 및 言論社 出資 法人에 對한 追徵額은 3229億원, 大株主에 對한 追徵額은 1827億원이었다. 國稅廳은 동아일보 朝鮮日報 國民日報의 法人과 使嗾를 租稅犯 處罰法 違反嫌疑로 檢察에 告發하고, 中央日報 한국일보 대한매일의 法人과 當時 代表理事를 告發했다. 稅金을 追徵당하지 않은 言論社는 單 한 곳도 없었으며 言論社들을 ‘不道德한 集團’으로 滿天下에 드러내기에 充分한 規模였다. 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그동안 新聞業界의 慣行이었던 無價紙(無價紙)에 對한 稅金追徵額이 가장 큰 比重을 차지했다는 것.

    國稅廳의 稅務調査 結果 發表에 對해 與野는 卽刻 相反된 反應을 보였다. 民主黨은 國稅廳의 言論社 社主 및 法人에 對한 告發措置가 租稅正義와 正當한 法執行 次元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點을 强調하며 檢察의 嚴正한 搜査를 促求하는 한便, 野黨에 對해서는 ‘政治攻勢’를 中斷할 것을 要求했다. 이에 反해 한나라당은 言論社와 四柱에 對한 告發의 目標價 ‘言論自由 抹殺을 통한 政權再創出’에 있다고 보고 强力 對應해 나간다는 立場을 再確認했다.

    告發當한 言論社들도 各各 事故(社告)를 통해 稅務調査와 關聯한 會社의 立場을 發表했다.



    동아일보사는 ‘讀者 여러분께 드리는 反省과 다짐’이라는 題目으로 “告發對象이 됐다는 自體를 謝過하고 告發 內容 中 合當한 것은 받아들이되 不當한 部分에 對해서는 法的 對應을 하겠다”는 立場을 밝혔다. 동아일보사는 또 “四柱가 取材費를 轉用했다는 發表는 全혀 事實이 아니며 IMF 當時 退職者와 社員들의 激勵金, 會社幹部들의 辦公費로 使用했다”고 解明했다.

    조선일보社는 이番 稅務調査가 “現 政權에 批判的인 言論을 彈壓하려는 政治的인 意圖에서 進行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이 때문에 어떤 壓力에도 屈服하지 않고 堂堂한 言論의 姿勢를 維持할” 것임을 밝혔다.

    중앙일보사는 “調査 結果 一部 드러난 잘못된 慣行은 果敢히 是正하고 내야 할 稅金은 當然히 納付할 것”이라 말하면서도, “政府의 批判的 言論에 對한 掌握意圖에 對해서는 堂堂히 對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東亞 朝鮮 中央 3社의 記者들도 立場을 밝혔다. 가장 먼저 立場을 表明한 것은 조선일보 記者들이었다. 조선일보 記者들은 6月28日 記者總會를 연 지 15分만에 言論彈壓에 맞서 싸운다는 要旨의 聲明書를 採擇해 發表했다. 中央日報 記者들은 聲明書는 發表하지 않았으나 노보를 통해 言論彈壓에 맞서 싸울 것이며 經營陣도 屈服하지 말 것을 促求하는 立場을 보였다.

    한便 동아일보 記者들은 6月29日 部別代表者會議를 갖고 聲明基礎小委를 만든 뒤 7月2日에 記者總會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編輯局·出版局 記者 170名이 모여 열띤 討論을 벌였다. 동아일보 記者들은 自省과 鬪爭의 必要性에 모두 同感하면서도 鬪爭 方向과 先後問題로 論難이 繼續되자 聲明書 採擇을 留保했다.

    年頭 記者會見이 信號彈

    김대중 政府가 言論과의 全面戰을 치르겠다는 信號彈을 쏘아올린 것은 올해 初인 1月11日 靑瓦臺 春秋館 大會見場에서 열린 內外信 年頭記者會見에서였다.

    김대중 大統領은 “國民과 一般 言論인 사이에 言論改革을 要求하는 輿論이 相當히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言論界와 學界, 市民團體, 國會가 모두 合心해서 透明하고 公正한 言論改革을 위한 對策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金大統領은 “言論自由는 只今 史上 最大로 保障돼 있는 만큼 公正報道와 責任있는 批判을 해야 한다”고 强調했다.

    그동안 김대중 大統領은 言論改革에 對해 言論自由에 따른 責任과 自律的인 改革을 强調하는 程度의 發言만 했다. 그런데 具體的으로 言論改革의 主體를 言及하고 對策을 세우라고 注文까지 한 것은 異例的인 일이었다. 이미 言論改革의 밑그림을 그려놓고 公開的으로 指示를 내리는 듯한 印象마저 풍겼다.

    金大統領이 記者會見을 하기 前부터 與圈의 核心人士들은 “言論을 이대로 놔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式의 强性發言을 하기도 했지만 相當數 言論들은 批判的인 論調에 對한 ‘脅迫用’ 程度로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한 言論社 論說委員의 말이다.

    “只今 생각하면 當時 金大統領의 發言은 言論社에 손을 대겠다는 決心이 섰음을 公開的으로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言論社들이 金大統領의 意志를 把握하기 위해 여러 채널을 통해 알아봤지만 그들은 입을 맞춘 듯 宣言的인 意味 外에는 큰 뜻이 없다는 反應을 보였다. 言論社들도 그래서 批判的인 言論에 對해 怯을 주려는 程度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金大統領의 發言은 但只 말에만 머물지 않았다. 2月1日 國稅廳은 新聞 放送 通信社 等 中央言論社 23곳에 對해 定期法人稅 調査를 하겠다고 書面 通報를 한 뒤 2月8日부터 6月28日까지 서울 地方國稅廳 調査局 人力 400名을 投入해 長長 5個月에 걸쳐 大大的인 稅務調査를 벌였다. 單一業種으로는 最大 調査人力이 投入됐고 業種 全體에 對해 進行된 것도 처음이었다는 點 等에서 國稅廳 史上 新記錄을 세웠다.

    그러면 김대중 政府가 그동안 言論關聯 市民團體들과 放送 및 一部 新聞社의 言論改革에 對한 끈질긴 要求에도 별다른 反應을 보이지 않다가 執權 後半期에 들어서야 强度높은 改革프로그램을 作動시키게 된 理由는 무엇일까.

    김대중 大統領은 野黨 總裁 時節 一部 言論이 思想是非를 提起하고 大統領 選擧期間에도 一部 偏頗的 報道를 하는 行態에 對해 相當한 問題意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當時만 해도 言論 全般에 對한 改革보다는 特定 言論에 對한 反感이 剛하게 作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김대중 大統領이 當選된 뒤 政權引受위의 한 關係者는 言論問題에 對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財閥言論의 問題는 所有制限 쪽보다는 公正去來위의 機能을 强化해 系列社에 對한 特惠와 不當去來를 줄여나가고 稅務調査를 徹底히 하는 等 制度的 改革을 하는 한便, 所有와 經營을 分離해 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한便 김대중 大統領 就任 直後인 1998年 3月頃 韓國言論硏究院에서는 ‘韓國新聞産業 危機와 改革’이란 硏究報告書를 통해 新聞改革에 對해 政府가 할 수 있는 政策方向을 提示했다. 이 報告書는 “政府가 非合理的이고 不當한 新聞市場에 對해서는 調整機能을 통해 思想의 自由市場 正常化를 꾀할 수 있는 制度的인 方案을 마련하고 執行해야 한다”며 條件附 政府介入을 注文했다.

    이 報告書는 新聞市場 秩序를 攪亂하는 行爲에 對해서는 ‘獨占規制 및 公正去來에 關한 法律을 適用할 必要가 있다고 强調했다. 또 法人稅, 特消稅 等을 不誠實하게 申告하는 新聞社에 對해서는 國稅廳의 稅務調査를 實施해 그 結果를 公表할 것을 提示했다. 所有構造의 改善과 關聯해서는 財閥企業에 한해 新聞社 持分 所有限度를 2分의 1로 制限하고 있는 現行 定期刊行物 登錄 等에 關한 法律을 改正할 것을 注文했다.

    最近 進行되고 있는 政府 當局의 言論政策을 보면 이 報告書가 注文한 內容과 一致하는 部分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執權 初期에 大統領政策企劃諮問會議에서도 原則的인 言論改革에 關한 政策報告書를 大統領에게 建議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當時 김대중 大統領은 IMF事態를 克服하기 위해 言論의 積極的인 도움이 必要했고 또한 ‘龍飛御天歌’를 부르는 一部 言論과의 蜜月에 젖어 言論改革에 介入할 뜻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代身 金大統領은 自律的인 言論改革을 强調했다.

    與圈의 한 關係者는 “執權初期 大統領政策企劃諮問會議에서 言論改革에 關한 建議書를 올렸으나 이를 無視하고 ‘위스키 앤 캐쉬’政策으로 言論을 길들이려다가 안되니까 뒤늦게 칼을 뺀 것이다. 執權 初期에 原則的인 言論改革을 했더라면 誤解를 받지 않았을 터인데 이제 와서 言論改革을 외치니 誤解받을 수밖에 없다”고 主張했다.

    靑瓦臺 司正에 밝은 한 與黨 重鎭議員도 “言論改革과 關聯, 黨에서는 어떤 役割도 하지 못했어요. 뒤늦게 突擊대로 나선 雰圍氣고 靑瓦臺 公報쪽度 言論改革에 對해서는 어떤 役割도 맡지 못했어요. 아예 나서지 말라는 雰圍氣입니다. 그러면 國稅廳이 스스로 알아서 했다는 것인데 三尺童子라도 믿지 않을 겁니다. 大統領도 버거워 하는 言論들을 相對로 國稅廳이 어떻게 獨斷的으로 일을 벌입니까. 言論改革과 關聯된 일을 大統領에게 報告하거나 大統領의 뜻을 關聯機關이나 사람에게 傳達하는 고리가 있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김대중 政府와 主要 新聞의 蜜月關係는 오래가지 않았다. 김대중 政府가 出帆한지 1年이 채 못되면서부터 政府에 批判的인 記事가 新聞을 裝飾하기 始作했고, 政府에서도 說得이나 解明 次元이라는 形式을 통해 ‘壓力性 協助要請’을 行使했다. 그 過程에서 1999年 6月 中央日報 社主인 홍석현 會長의 拘束事態가 發生했다.

    勿論 이 事態는 財閥企業 稅務調査 次元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홍석현 會長은 보광그룹의 大株主이자 中央日報 四柱라는 兩面性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國稅廳은 보광그룹의 脫稅嫌疑를 調査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中央日報는 김대중 政府가 批判的인 言論을 길들이려는 것이라고 크게 反撥했다.

    當時 한나라당에서는 “高級옷 로비疑惑이나 檢察의 罷業誘導 疑惑으로 執權層의 道德性에 큰 欠집이 나는 等 窮地에 몰리자 言論에 재갈을 물림으로써 突破하려는 게 아니냐”고 疑心했다. 特히 內閣制 問題와 2000年 總選을 앞두고 言論 環境을 유리하게 造成하려는 意圖가 드러난 것이라고 主張했다. 當時 言論界에서는 “大選 當時 中央日報가 이회창 候補를 露骨的으로 편든 데 對한 報復”이라는 視角도 있었다.

    김대중 政府의 對北政策에 對해 批判的이었던 세계일보에 對해서도 稅務調査를 實施했다. 當時 稅務調査에 對해 國稅廳은 “定期調査 次元에서 이뤄지는 것일 뿐 특별한 意味는 없다”는 式으로 簡單하게 說明했다.

    中央日報 社主 拘束의 意味

    그러나 當時 大韓每日 編輯局의 한 幹部가 쓴 칼럼은 批判的인 言論에 對한 김대중 政府의 속마음을 그대로 代辯해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적어도 이땅의 一部 保守言論은 지난 政權 時節 김대중 大統領을 엄청나게 陰害하고 謀陷했다. 그들은 政治인 김대중이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간다고 是非하고, 왼쪽으로 가면 왼쪽에 서있다고 몰아붙였다. 이는 지난 40年間 執權勢力이 造作한 過激 이미지 論理에 馴致되거나 그런 論理를 開發, 傳播해주며 私益(社益)을 챙긴 結果物이다. 特히 지난 數十年間 形成된 支配엘리트層과 保守 旣得權層의 先鋒이 되어온 言論이 野卑한 地域感情 造作을 擴大再生産하면서 好衣好食해왔다. 이들 言論은 그동안 特定地域과 계층적 基盤이 같다는 理由로 地域感情을 助長하며 地域霸權主義를 限껏 즐기는 데 앞장서왔다. 이로 인해 政治인 김대중은 地域感情의 엄청난 被害를 보면서 同時에 反撥心理로 惠澤도 받았던 것이 事實이다. 그런 言論이 只今 政權交替가 되었다고 해도 承服할 理가 없다. 些少한 虛點도 假借없이 欠집을 내야만 直星이 풀리는 것이다. 奸巧한 하이에나보다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이는 政權을 얕잡아본 表現에 다름 아니다. 계층적 基盤이 다르고, 그들이 造作해온 過激 이미지가 아니라 생각보다 물렁해보이고, 權力시스템도 精巧해보이지 않자 더욱 밟아보는 것이다. 그런 言論이 彈壓을 받고 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이 政權에 分明히 말하고자 한다. 그동안 獨裁權力, 腐敗權力에 協力하며 輿論을 歪曲하고, 때로 反民族的 反民主的 言論行態를 밟아온 墮落言論 妓生(妓生)言論에 對해 稅務調査든 不公正去來法이든 주어진 法테두리에서 果敢히 是正해나가야 한다. 굳이 말한다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없는 現政權에게 때묻고 병든 言論을 淸算하는 絶好의 機會가 주어진 것이다.”

    當時 홍석현 會長 拘束과 關聯, 中央日報에 壓力을 行使한 것으로 口舌數에 올랐던 朴趾源 當時 文化관광부 長官은 “政權이 言論을 彈壓하는 것이 아니라 言論이 政權을 彈壓하는 것”이라는 論理를 世界日報 稅務調査에 對해서도 폈고, “國稅廳에서 稅金脫漏 嫌疑가 있거나 오랫동안 調査를 받지 않은 企業에 對해 公平課稅 次元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主張했다.

    김대중 政府와 言論이 對立的인 構圖를 形成하게 된 것은 1999年 5月에 터진 옷로비事件이 決定的이었다. 言論이 連日 옷로비事件을 報道하면서 김태정 當時 法務部長官의 退陣 쪽으로 輿論을 몰아가는 듯하자 金大統領은 “言論이 魔女사냥을 하고 있다”고 激忿했다. 그러나 김태정 法務部長官은 結局 長官職에서 물러났다. 朴趾源 文化관광부長官度 한빛은행 貸出事件과 關聯, 言論에 오르내리다 嫌疑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道義的 責任을 지고 長官職을 내놓았다. 當時 與圈의 한 關係者는 “言論이 輿論몰이를 하면서 大統領이 寵愛하는 側近들을 繼續 落馬시키는데, 言論에 對한 心氣가 便하겠나”는 말을 했다.

    김대중 大統領과 言論의 두 番째 惡緣은 노벨平和賞 受賞 關聯 報道였다.

    “그동안 言論에 繼續 두들겨 맞다가 南北頂上會談이 이뤄지면서 좋은 評價를 받는가 했더니 藥效가 얼마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大統領께서 노벨平和賞을 受賞하게 되니까 言論이 제대로 報道해주리라고 생각했는데 施賞式에 參席하는 것까지 是非를 걸어요. 外國에서는 가는 곳마다 起立拍手를 하는데 國內에서는 新聞들이 起立 삿대질을 해대는 판이니 大統領의 마음이 오죽했겠어요.”

    靑瓦臺 한 關係者의 말이다. 그는 “主要 新聞이 地域感情을 煽動하고 大統領이 推進하는 改革政治에 對해 事事件件 是非를 거는데 미칠 地境이었다”고 덧붙였다.

    與圈 關係者들의 말을 綜合해보면 김대중 大統領은 國內言論의 노벨平和賞 報道에 對해 몹시 섭섭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 ‘言論改革’에 對한 決心을 굳혔다는 觀測이 많다.

    改革政策에 對한 抵抗과 反撥이 擴散되고 大統領과 與黨에 對한 支持度가 떨어질 대로 떨어지자 나름대로 特段의 對策도 必要했던 것으로 보인다.

    “大統領은 改革政策이 失敗하고 大統領과 與黨에 對한 支持度가 떨어진 原因을 批判的인 言論報道 때문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政府가 잘한 것도 제대로 報道해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靑瓦臺內에서도 더 以上 新聞에 期待할 것이 없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言論改革의 正面突破밖에는 方法이 없다고 判斷한 것 같습니다.”

    實際로 김대중 大統領은 1月10日 言論改革 發言 以後 國稅廳 稅務調査나 檢察 調査에 對해 “어떤 外壓도 없으니 法과 原則에 따라 嚴正 處理하라”고 數次例 强調했다.

    김대중 政府 出帆 以後 言論과 關聯된 一連의 過程을 살펴보면 純粹한 動機에서 言論改革의 칼을 뽑았다고는 볼 수 없다. 與圈의 한 關係者는 “言論社가 自律的으로 改革하기를 期待했지만 더 以上 忍耐할 수 없는 狀況에 왔기 때문에 稅務調査를 實施했다”고 하지만 批判的인 言論에 對한 ‘憾情的 앙금’이 있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特히 2001年 2月 시사저널이 公開해, 政街에 波紋을 일으킨 言論改革文件을 보면 東亞 朝鮮 中央 等 빅3에 對한 與圈의 視角을 엿볼 수 있다. 이 文件은 “東亞 朝鮮 中央 等 反與 日刊紙들의 對政府 批判이 危險水位에 到達했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言論改革을 通해 ‘言論 防禦壁’을 構築해야 한다”고 建議하고 있다.

    이 文件은 1999年 10月 暴露된 中央日報 北京特派員 出身인 문일현 記者(當時 休職하고 中國 留學中)가 이종찬 國精院長에게 보낸 言論掌握文件과도 論理的 展開가 一脈相通하는 것인데, 민주당이나 靑瓦臺에서는 大統領에게 報告되지 않은 習作品에 不過하다고 애써 無視했다.

    어쨌든 國稅廳의 稅務調査 結果 發表와 檢察 告發에 對해 與野 政黨과 政治人, 放送社와 新聞社, 메이저新聞社와 마이너新聞社, 市民團體들, 知識人들間에는 言論彈壓이냐 租稅正義냐, 批判言論 죽이기냐 財閥·族閥言論 改革이냐, 政權再創出用이냐 김정일 答訪 事前 정지용이냐, 曲學阿世냐 紅衛兵이냐 等 다양한 舌戰들이 벌어지고 있다. 言論社 稅務調査 發表를 支持하느냐 反對하느냐에 따라 우리 社會가 이념적으로 兩分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野黨인 한나라당은 이番 稅務調査의 性格을 言論彈壓-言論掌握-言論抹殺로 規定하고, 目的은 김정일 答訪 事前 整地-改憲과 政界改編-政權再創出에 있다고 主張한다. 이에 反해 민주당은 이番 稅務調査는 租稅正義를 具現하기 위한 것으로 法 테두리 內에서의 言論改革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主張한다.

    올해 1月에 大統領이 言論改革을 言及했을 때만 해도 與黨인 민주당은 比較的 조용한 便이었다. 當時 與圈은 지난해 12月 靑瓦臺에서 있었던 鄭東泳 波動의 餘韻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狀態였다. 2月初부터 國稅廳 稅務調査를 實施할 때도 民主黨 政治人들은 言論改革에 對한 發言을 自制했다. 다음은 與黨 重鎭議員의 말이다.

    “大統領은 與黨 議員들이 言論改革에 對해 消極的 姿勢를 보이자 相當히 火가 났던 模樣입니다. 最高議員들이 나서달라고 여러番 注文했습니다. 그러나 稅務調査는 行政的인 過程으로 縮小하는 것이 좋지 政治人이 나서면 政治的인 論爭이 돼버리니까 선뜻 나서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與圈 政治人 中 言論에 對해 가장 먼저 砲門을 연 사람은 노무현 當時 海洋水産部長官이었다. 노長官3 올 2月7日 言論社 稅務調査와 關聯, ‘言論과의 戰爭 不辭 發言’에 이어 “組暴的 言論이라는 말에 共感한다”고 말해 波紋을 일으켰다.

    當時 盧長官의 發言은 김대중 大統領의 속내를 읽고 나름대로 計算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 한나라당 總裁가 그 前날 國會 交涉團體 代表演說에서 言論社 稅務査察 卽刻 中斷을 主張하자 이를 맞받아 친 것이다. 그의 發言에 靑瓦臺는 沈默했고 當時 김영환 민주당 代辯人은 “黨과는 無關하다”며 발뺌을 했다.

    한나라당은 盧長官의 發言이 與圈의 集團心理를 드러낸 것이라며 攻擊했다. 言論社의 稅務調査 問題가 政治權으로 飛火되는 瞬間이었다. 以後 노무현 민주당 顧問은 言論戰爭의 ‘前衛隊’ 役割을 맡으며 東亞 朝鮮 中央을 除外한 言論의 단골손님으로 登場한다. 最近에는 김근태 민주당 最高委員이 텔레비전 討論에 나서 言論改革 必要性을 力說하는 論理를 펴 金大統領으로부터 激勵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에서는 박종웅 議員이 各種 討論 프로그램에 나와 言論社 稅務調査의 政略的 性格을 聲討하고 나섰다. 稅務調査에 軍事作戰처럼 大大的인 人力을 投入한 것은 言論改革보다는 批判言論 죽이기 意圖가 있다는 것. 한나라당 홍사덕 議員도 自身의 홈페이지에 言論社 稅務調査의 不當性을 指摘하는 글을 繼續 올려 話題가 되고 있다.

    特히 홍사덕 議員은 KBS 深夜討論에서 言論社 稅務調査가 김정일 答訪 事前鄭芝溶이라는 世間의 所聞을 傳해 定價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稅務調査라는 行政的 行爲가 ‘戰爭不辭’ 發言으로 政治的 싸움으로 飛火되고 다시 ‘김정일 答訪 정지용’이라는 發言으로 번지면서 김대중 政府의 正體性 問題로까지 飛火된 것이다.

    이番 稅務調査의 性格을 좀더 仔細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市民團體들과 一部 新聞과 放送의 役割을 살펴볼 必要가 있다. 이들은 言論改革의 必要性을 讀者들에게 심어주고 共感帶를 擴散시켜 言論改革에 對한 輿論을 喚起시켰다.

    1998年 8月27日 30餘個 言論·市民團體가 모여 出帆한 言論改革市民連帶(언개련)는 첫 事業으로 ‘新聞改革 어떻게 할 것인가’를 主題로 討論會를 開催했다. 이 討論會에서는 新聞의 所有構造를 改革하기 위해 影響力이 큰 新聞일수록 最大株主의 持分限度를 더 嚴格히 規制해야 한다는 意見이 나왔다. 이처럼 言論改革을 志向하는 團體의 出帆에 對해 한겨레新聞과 대한매일은 關心있게 報道한 反面 다른 言論들은 큰 關心을 기울이지 않았다. 언개련은 ▲言論法制 改善運動 ▲收容者 運動 ▲對案媒體 運動 等 3가지 課題를 내걸고 放送法 民主的 改正, 停刊法 改正案 立法請願, 解職言論人 名譽回復特別法 制定 促求 等의 活動을 해왔다.

    언개련의 밀고 당기기

    그러다가 올해 1月11日 金大統領이 年頭記者會見에서 言論改革을 言及하자 언개련은 1月17日 聲明書를 發表, “그동안 市民團體들의 要求를 收斂한 것에 對해 歡迎”은 하면서도 “더以上 言論改革에 介入하지 말라”는 要求를 하기도 했다. 適切한 距離를 維持해달라는 要求였다. 그後에도 언개련은 政府當局이 주춤하는 듯하면 ‘叱責’하고, 自己들의 要求水準에 맞는 措置를 取하면 ‘歡迎’하는 式으로 ‘言論改革의 牽引車’ 役割을 했다.

    한便 한겨레 等 一部言論은 言論權力 시리즈와 칼럼을 통해 東亞·朝鮮·中央日報를 集中攻擊했다. MBC 等 放送도 企劃特輯 等을 통해 東亞·朝鮮·中央日報를 攻擊했다. 言論界는 마치 東亞 朝鮮 中央이라는 陣營과 나머지 陣營으로 兩分되는 듯한 樣相을 보였다. 이러한 言論界의 分裂 現象에 對해 KBS의 한 職員은 “走狗言論과 守舊言論과 들러리言論間의 싸움”으로 表現해 話題가 되기도 했다. 作家 이문열은 ‘政府없는 新聞論’ ‘紅衛兵론’ 等 新聞칼럼을 통해 言論改革에 對해 批判的인 論調를 펼쳤고, 민주당의 추미애 議員은 曲學阿世論으로 이문열氏를 攻擊했다. 以外에도 많은 論客들과 知識人들이 各種 媒體에 稅務調査에 對한 支持와 反對 立場을 밝혔다.

    新聞에 從事하는 한 幹部는 言論改革의 이데올로기的 性格을 다음과 같이 說明했다.

    “그동안 保守陣營은 政治權力을 쥐고 軍과 警察이라는 物理力에 主로 依存했다. 言論은 附隨的인 것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政權이 들어서고 軍과 警察力이 김대중 政權의 손에 들어가자 保守陣營에게 남은 것은 保守言論과 保守野黨 뿐이었다. 그렇게 되자 김대중政權은 서울 江南의 酒類層이 드디어 自己 保護意識을 갖기 始作하고 反DJ情緖가 保守言論을 통해 擴散되는 듯하자 이들 言論을 打擊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南北頂上會談을 성사시키고 노벨平和賞을 受賞해도 支持度가 오르지 않자 言論改革을 決心한 것이다. 結局 兩 陣營이 正面衝突한 것이다. 只今 김대중 政權이 밀어붙이는 方式을 보면 진다는 家庭은 없는 것 같다. 이긴다는 自信이 없었으면 이 問題를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向後 展望은 어떻게 될까. 現職言論人들과 政治權의 展望을 綜合해보면 두가지로 要約된다. 첫째는 言論地形의 變化論이다.

    “現政府의 言論政策 中 하나는 保守言論의 影響力 縮小인데, 無價紙는 國稅廳에서 때리고 强制投入은 公正去來위에서 때렸다. 그동안 保守言論의 影響力은 放送이 따라가지 못할 程度로 莫强했다. 그러나 稅務調査 等으로 앞으로 新聞市場의 파이는 줄어들 것이다. 勿論 마이너 新聞의 파이도 줄어들겠지만 相對的인 比重에서는 메이저가 줄어들고 마이너가 增加할 것이다.”

    둘째는 旣存構圖의 强化論이다.

    “政府가 停刊法을 통해 所有持分을 制限하고 編輯 經營 所有 分離를 해야 하는데 所有持分의 制限은 政府가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違憲의 素地가 있는데다가 한나라당과 保守言論의 힘이 政府보다 세기 때문이다. 結局 言論改革은 失敗하고 旣存構圖를 더 强化시켜 줄 수 있다.”

    그런 意味에서 박인규 경향신문 미디어팀 部長이 지난 4月3日 새言論포럼이 主催한 ‘言論改革의 바람직한 方向과 課題’에서 한 말은 아직도 示唆하는 바가 있다.

    “김대중 政府의 言論改革措置라는 것이 果然 純粹하게 言論改革을 위한 것이냐를 率直하게 봐야 한다. 어떤 政略的인 側面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眞짜 言論改革에 뜻이 있었다면 왜 就任 初에 하지 않고 3年이나 지나서 始作하는가. 1月11日에 김대중 大統領이 言論改革이 必要하다고 말한 後 稅務調査도 하고 公正去來委員會에서도 調査했다. 族閥新聞이라고 하는 데서는 言論彈壓이라고 말하고 한겨레 等에서는 言論改革이라고 하는데, 모두 眞實의 一面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全體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言論改革이냐 彈壓이냐를 가지고 說往說來하는 것보다는 眞正한 言論界의 改革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苦悶해야 한다고 본다. 言論改革의 核心은 言論에 從事하는 사람들이 自身의 良心과 所信에 따라서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外部的이든 內部的이든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規制를 없애는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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