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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公共哲學과 社會正義|新東亞

韓國의 公共哲學과 社會正義

송호근 서울대 社會學科 敎授

  • 入力 2011-11-23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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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明博 政府의 歷史的 召命은 社會 民主化다. 社會 民主化는 곧 社會正義 實現이다. 그래야 國民所得 2萬달러 時代를 넘어갈 수 있다. 先進國에선 1萬달러 時代에 겪었던 社會 民主化의 陣痛을 우리는 뒤늦게 치르고 있다. 超人主義와 같은 安哲秀 現象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社會正義가 實現되려면 個人의 義務와 市民的 美德, 公共善이라는 公共哲學이 定立돼야 한다. 韓國 社會學界의 巨頭 송호근 敎授의 講演은 10月28日 午後 7時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편집자>
    한국의 공공철학과 사회정의
    엊그제(10月26日, 서울市長 補闕選擧日) 여러분께서 經驗을 하셨겠지만, 마음속에서 ‘正義가 果然 뭘까. 내가 票를 찍어서 社會正義를 세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저는 率直히 말씀드리면 한참 苦悶하다가 午後 6時쯤에 硏究室을 나설 때까지도 決心을 못 했습니다. 참 苦悶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누가 韓國 社會를 이끌어가는 게 맞는지 苦悶을 많이 했는데 딜레마에 빠졌어요. 다 長短點이 있고. 그래서 7時50分에 投票場으로 들어갔습니다. 門을 닫는 瞬間 제가 찍고 나왔는데 젊은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판勢는 斟酌했습니다. 大綱 이렇게 되겠구나 하고.

    저는 事實은요, 個人的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제가 베이비붐 世代의 初入에 있는데요. 베이비붐 世代가 韓國 社會의 權力과 財産을 大部分 掌握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젊은 世代에 餘裕 空間을 주지 못할까. 餘裕 있는 삶을 주지 못할까. 相當히 괴로웠습니다.

    維新時代가 막 始作될 때 제가 大學에 들어갔거든요. 그때 朴元淳 市場도 같이 들어갔어요, 社會系列에. 朴 市長은 그해 5月에 除籍됐는데, 왜 除籍이 됐는지도 모를 거예요. 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데모行列 맨 뒤에 있었거든요, 제가. 이 데모를 따라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親舊하고 討論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討論하는 사이에 데모대가 다 나가버렸어요. 朴 市長은 그때 아마 寫眞이 찍혔던 거 같아요. 그래서 除籍된 겁니다.

    그렇게 젊은 時節을 보냈고 1980年代 初에는 大韓民國을 위해 靑春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나의 未來가 아니라 韓國 社會의 未來를 위해서 내가 뭘 해야 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職業을 擇할 것인가. 또는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質問이 아니었어요. 내가 江南에 가서 땅을 살까 말까. 이게 아니었거든요. 먹는 거에도 關心이 없었고요, 이른바 出世하는 것도 關心이 없었습니다. 그냥 韓國 社會를 위해서 내 靑春을 바치겠다. 그렇게 1980年代, 90年代를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7時50分에 投票하면서 누구를 찍을 건지 망설였는데 뒤에서 젊은이 눈길이 느껴지더라고요. 빨리 좀 비켜 달라. 내가 膺懲하기 위해 投票場에 왔는데 왜 當身이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느냐. 이런 느낌이 막 들더라고요. 自愧感이 들었습니다. 내가 베이비붐 世代를 이끄는 사람 中에 한 사람으로 젊은 사람들한테 왜 길을 못 내줬는지 참 괴로웠습니다. 바로 이 問題가 韓國 社會가 풀어야 할 核心 問題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아요. 그런 意味에서 그 問題를 包含해서 제가 只今 얘기하고자 하는 社會正義는 包括的 槪念이죠. 같이 가는 社會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價値를 共有할 것인가.

    只今까지 보건대 이 共有의 價値를 저희 베이비붐 世代가 만들어내지 못한 게 事實이에요. 서로 다툼이 일어날 때 되돌아 서서 여기서 다시 出發합시다, 우리 이건 合意했으니까 여기부터 다시 出發합시다, 라고 했을 때 우리 베이비붐 世代 안에서도 相當한 龜裂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造船은 世界 最高의 問議 나라

    우리나라는 文(文)의 傳統이 世界的으로 剛한 나라입니다. 造船은 世界 最高의 問議 나라입니다. 門은 무시무시한 人格이고 存在고 名分이고 正統性이에요. 知識과 權力이, 學問과 權力이 하나 된 나라로서, 그걸 知識 國家라고 하면 이런 知識國家가 世界 歷史에 없어요. 이건 朝鮮의 獨自的인 特性입니다.

    그래서 士大夫(士大夫)의 나라라고 얘기하잖아요. 社(士)는 들어가는 사죠. 들어가면 사고 나오면 代父(大夫)다. 나오라는 말은 벼슬하라는 얘기예요. 들어가서 工夫하고 나와서 벼슬하고 統治하고 統治하다가 모자란 게 있으면 다시 들어가서 工夫하는 거예요.

    大韓民國이 全 世界에서 大學進學率이 가장 높다고 하잖아요. 83%까지 됩니다. 이런 現象은 일어날 수가 없거든요. 說明해봐라, 이거 어떻게 된 거냐? 우리나라 사람 DNA 속에 그냥 배우고자 하는 欲心이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틀리진 않아요. 그런데 배우고자 하는 DNA를 生物學的으로 찾을 수 없잖아요. 事實은 歷史的으로 有增(遺贈)된 겁니다. 文科 權力, 知識의 統治가 되는 나라機 때문에 저절로 우리는 敎育에 投資를 하죠. 스스로 배우고자 努力을 많이 합니다. 그런 部分은 自己 自身에 對한 統治이기도 하고 社會에 對한 統治이기도 하죠.

    사는 兩班이라는 뜻이 아니고 朝鮮의 精神 속에 저런 人格體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 얘기입니다. 사는 그래서 恒常 正義를 말해요. 이게 이제 고통스럽죠. 예전부터 社會正義를 찾는 社의 努力, 知識人의 努力 또는 市民의 努力이 줄곧 있어왔음에도 왜 우리에게는 共有할 수 있는 價値가 적은지에 對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러분, 아마 마이클 샌델의 ‘定義란 무엇인가’ 같은 冊을 보셨을 겁니다. 그 冊에 結論이 없어요. 왜냐하면 해야 될 얘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래요. 社會正義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서 始作해서 只今까지도 論議되는 槪念이에요. 論爭이 되고 있는 槪念이에요.

    牛眠山 事態와 市民의 美德

    제가 오늘 드리는 말씀의 核心은 當身과 내가 안 싸우고 共有할 수 있는 公共哲學의 價値觀이 매우 狹小하다, 이게 첫 番째입니다. 最近에 自由民主主義와 民主主義 論爭을 보고 참 답답했어요. 自由民主主義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民主主義를 主張하느냐? 이거 說明하려면 複雜해지죠. 事實 別로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自由民主主義냐, 民主主義냐를 두고 合意할 수 있는 地境까지 온 거예요. 龜裂性-當身은 저쪽에 있고 난 여기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 對立性과 龜裂性이라는 어떻게 보면 참 些少하기 짝이 없는 그 龜裂性이 韓國 社會에 많이 생겼어요. 이게 지난 한 世紀 동안 우리가 精神없이 달려오면서 남겨놨던 足跡입니다. 이 足跡 속에 크게 보면 젊은 사람들의 憤怒가 들어있어요.

    公共哲學이 무엇인가? 그걸 찾아내야 社會正義 쪽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公共哲學은 좀 狹小하지요. 그래서 只今 우리가 어떤 모습인지를 제가 探索해보려 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定義란 무엇인가’가 韓國에서 70萬部나 팔렸다고 그러더라고요. 宏壯히 複雜한데 이 冊 안 봐도 됩니다. 제가 要約해드릴게요. 샌델이 말이죠, 하버드대학 클래스에 一週日에 한 番씩 들어가 열두 番 講義합니다. 그런데 열한 番까지는 繼續 定義란 무엇인지 헷갈리게 만들어요. 이런 狀況에서 무엇이 正義인지 判斷해봐라. 그러면 討論을 하잖아요. 맨 마지막에 이 兩班이 自己 意見을 살짝 보여줬어요.

    바로 이 얘기하려고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冊을 쓴 거죠. 그게 세 가지예요. 個人의 自由, 인디비주얼 프리덤(Individual Freedom). 그 다음이 시빅 버추(Civic Virtue). 市民의 道德이라고 해야 될지 美德이라고 해야 될지. 市民이 되는 法이에요. 세 番째는 公共性, 여기선 제가 共同體라 表現했는데, 公益에 關聯된 겁니다. 問題는 이 세 가지를 이루기가 全 世界 先進國도 어렵다는 얘기죠. 제가 美國에 가보니까 過去 한 30年 前, 20年 前에 比해서 民心이 宏壯히 洶洶해졌어요. 公益 槪念도 相對的으로 옅어졌고요. 참 市民이 되는 法, 이게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韓國 社會에서는 開化期까지도 市民이 形成돼 있지 않았어요. 李承晩 政府 以後 市民이 생겨났죠. 그런데 그 市民이 시빅 버추라는 道德性을 갖고 있느냐? 道德性이란 한마디로 얘기하면 他人에 對한 配慮예요. 나하고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對한 關心입니다. 그게 커지면 共同體가 되지요. 그게 發展하면 公益이 됩니다.

    제가 서초동에 사는데, 이런 얘기하면 쫓겨날지 모르겠어요. 서초동 우면산에 올라가 돌을 던지면 博士가 맞는다고 해요. 公式統計에 따르면 大韓民國에서 博士가 가장 많이 사는 마을이 서초동입니다. 그런데 지난番에 牛眠山 事態가 났을 때 시빅 버追加 作動했느냐. 山沙汰가 나서 마을을 덮었잖아요. 그때 마을住民들이 自治組織을 만들어 그것을 解決하려는 努力을 보였던가. 첫날 아무도 못 봤어요. 代身 軍隊가 왔어요. 둘째 날도 없었어요. 셋째 날 婦女會가 꾸려지기 始作했어요. 그러고도 보름이 지났는데 婦女會뿐이었어요. 大韓民國에서 敎育水準이 가장 높은 데서 시빅 버追加 作動하지 않았던 거예요.

    大學入試制度의 社會正義

    서울대학교는 庭園의 一部를 機會均等 次元에서 뽑아요. 極貧者와 少年少女家長을 뽑는 게 機會均等이에요. 그러면 敎授會議 할 때요, 反對가 甚해요. 늘리자고 하는 건 主로 社會學科 敎授들이고 反對하는 건 主로 理工大 쪽이에요. 왜냐 하면 水災가 必要하다는 거죠. 物理化學이나 高等數學을 가르치는데 理解를 못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도 그 아이들을 데려다가 附加價値를 높이면 社會正義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러니까 正義가 부딪치고 있어요. 入學制度가 잘 안 바뀌는 理由가 거기 있습니다.

    登錄金 支援도 그래요. 所得水準의 몇 %부터 할지에 對해 討論하면 아마 오늘 밤새워야 될 걸요. 밑에서 70%까지 자르자. 이게 民主黨에서 올리는 안이고, 한나라당은 50%까지 하자는 거지요. 그 50%도 所得水準에 따라 差等으로 支給하자고. 民主黨은 無條件 다 주자는 거고. 여기에 社會正義 槪念이 正確하게 對立돼 있어요. 어떻게, 뭘 定할 것인가? 모든 社會的인 政策과 社會的 行動에 다 들어 있어요.

    學歷, 性差別을 어디까지 許容할 것인가. 只今 政府에서 高等學校 卒業者를 뽑으라고 企業에 勸告하고 있어요. 그래서 高卒 就業者가 늘었습니다. 제가 直接 들은 얘기인데, 어떤 CEO가 ‘좋아, 내가 그럼 高等學校 卒業者를 찾으러 한番 가보겠다’ 해서 第一 괜찮은 高等學校를 訪問했습니다. 마이스터高랍니다. 찾아가 面接을 해봤는데 뽑기가 참 어렵더래요. 그럼 期待水準을 좀 낮춰 뽑을 수 없느냐? 참 어렵다는 거예요. 이게 現實이거든요. 社會正義 槪念이 부딪치고 있는 거죠.

    社會正義 槪念의 한가운데에 있는 게 大學入試 制度입니다. 말하자면 이게 흐트러지면 情의 槪念이 흐트러지거나 이게 變하면 情의 槪念이 變할 겁니다. 그래서 잘 안 變하고 있어요. 그동안 차츰 變해온 것도 事實은 奇跡과 같은 일이죠.

    高等考試와 醫藥分業

    大學入試와 더불어 韓國 社會의 正義를 가늠하는 重要한 指標가 高等考試예요. 行政·司法·外務考試입니다. 이게 變하면 韓國 社會의 正義는 變할 것입니다. 그런데 只今까지 자리 잡고 있어요. 왜냐 하면 過去試驗 傳統 때문에 그래요. 朝鮮時代의 過去 制度가 500年 동안 施行됐습니다. 아마 全 世界에서 朝鮮만큼 試驗을 통해 管理를 뽑았던 나라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官吏가 世界的으로 有能해요. 우리는 管理者 辱을 하지만, 전 世界 官僚의 水準을 보면 韓國의 官僚가 아마 으뜸이거나 두 番째 될 겁니다. 美國에서는 官僚를 세컨드 클래스라고 해요. 퍼스트 클래스는 뭐냐? 그건 CEO, 고용주예요. 비즈니스맨.

    醫藥分業 背景에도 社會正義 槪念이 도사리고 있었죠. 藥을 藥師가 팔아야 될까, 아니면 病院에서 팔아야 될까. 너무 골치 아픈 內容이에요. 우리나라는 그냥 칼로 자르듯이 이쪽으로 떼줬는데 그것 때문에 全國 醫師들이 罷業에 突入하고 紅疫을 치렀어요. 以後 藥은 藥師가 팔고 醫師는 診療만 하라는 게 情의 槪念으로 定着돼 있습니다.

    寄與入學? 우리나라는 寄與入學 許容하면 政權이 뒤집힐 거예요. 그만큼 重要한 問題입니다. 民亂이 일어날 거예요. 그런데 美國 大學에서는 普遍的인 일이에요. 그들은 學生들의 家門을 把握하고 있어요. 제가 하버드大學校 1學年들 志願書를 보니까 이런 게 있더라고요. 쭉 적어놓고 나서 當身은 다음에 列擧하는 라스트네임-패밀리죠-중에 屬합니까? 그래서 무슨 이름인가 봤더니 1番이 케네디 家門이에요. 케네디 家門이 하버드대에 줄곧 寄附를 해왔거든요. 그러니까 그 寄附에 對한 공으로 케네디 家門 學生에게 특별한 機會를 주는 거예요. 거기에 對해서 아무도 反對할 수 없어요. 다 그렇게 생각해요.

    美國은 無償醫療? 千萬의 말씀! 아직도 돈 無知無知 많이 내야 醫療惠澤을 받을 수 있어요. 우리 學校에 이상묵이라는 敎授가 있습니다. 韓國의 스티븐 호킹이라는 분이지요. 그분이 40代 中盤에 弟子와 함께 美國에 硏究하러 갔다가 交通事故를 當했어요. 車가 完全히 뒤집혔어요. 弟子는 죽었어요, 그 자리에서. 이 兩班은 病院으로 옮겨져 겨우 살았습니다. 그런데 不幸하게도 목만 움직이고 나머지는 全部 痲痹가 됐어요. 病院에서 석 달 있었어요. 學校에서 이분을 모시고 오려고 하자 病院費를 내라고 했어요. 想像을 超越한 金額이었죠. 10億이에요, 10億. 그걸 어떻게 내요? 結局 辯護士가 가서 病院費 깎아서 모셔왔지요. 그래서 只今 講義하고 있거든요. 이게 美國이에요. 英國은 完全히 다르죠. 英國은 完全히 無償醫療니까요. 無償醫療에다가 無償敎育, 富者 增稅.

    마음의 習慣

    그러니까 政治體制에 따라서 社會正義 槪念이 다른 겁니다. 게다가 習俗에 따라 달라요. 習俗은 우리 慣習으로 마음의 習慣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政治體制는 複雜하니까 다 접어두고 主로 習俗에 對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면 韓國人의 마음習慣이 뭐냐? 이거를 잘 들여다봐야 社會正義, 또는 우리가 다 共有할 수 있는 公共哲學을 가질 수 있겠죠. MB 政府에서 公共社會를 이렇게 定義해놨어요. 責任지는 사람, 行動 機會, 弱者 配慮, 差別 없는 社會. 누가 反對를 하겠어요? 5가지 政策과 8個의 課題가 있습니다. 우리 皮膚에 와 닿는 重要한 改革事項들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如前히 社會正義에 對해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5個 議題와 8個 課題가 實現됐더라도 그것은 氷山의 一角에 不過하거든요. 앞으로 不平等을 生産해낼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마음의 習慣에 이게 가득 있어요. 商道(常道), 通의(通義), 慣習, 道德, 常識. 저걸 감싸 안는 너와 나의 價値觀의 差異를 確認해봐야 합니다. 참 어려운 얘기죠. 이게 바로 公共哲學이에요. 많은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 大韓民國이 나아가야 할 바에 對해 아무도 否定하지 않는 그 價値, 바로 이게 마음의 習慣입니다. 社會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걸 解決했을 때 그 基準이 좋다, 그 程度면 나도 가겠다, 라고 하는 바로 그것!

    爭點이 되는 問題를 簡單하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첫째로 公正性에는 警戒地帶가 있어요. 그 말은 國民所得이 增大함에 따라, 例컨대 國民所得 1萬달러 時代에 解決돼야 될 問題가 우리나라는 2萬달러 時代에 불거져 나왔다는 뜻입니다. 英國의 대처나 美國의 레이건, 프랑스의 미테랑, 獨逸의 콜이 在任할 때가 大體로 1萬달러 時節이에요. 그 時節에 이런 問題를 解決했어요.

    分配鬪爭이나 制度의 整備가 일어난 時點이 大槪 6000달러에서 1萬달러 사이입니다. 1萬달러 水準에서 大槪 制度를 만들어놓고 2萬달러, 3萬달러로 줄달음쳐 올라갔던 게 先進國의 經驗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게 2萬달러 近處에서 터져 나오고 있어요. 노무현 政府 때부터 只今까지 1萬5000~2萬달러에서 터져나오고 있어요.

    無償給食이라든지 半값 登錄金 問題도 그래요. 經濟的인 파이가 있기 때문에 當然히 分配가 爭點이 될 때가 됐다는 거죠. 先進國은 그 問題들을 解決하면서 넘어왔어요. 우리가 그 問題들을 解決하지 않고 3萬달러, 4萬달러까지 가는 건 참 어렵다고 判斷합니다. 왜냐하면 過去에 1萬달러나 1萬5000달러까지 올라왔을 때는 經濟動力만으로 韓國 社會가 發展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只今은 社會制度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經濟動力이 생겨나기 어려운 時代로 접어들었어요.

    韓國이 OECD 10個 國家의 平均을 上廻하는 分野가 딱 2個 있는데 바로 사이언스와 테크놀로지죠. 이 두 가지가 앞으로 저런 相對的인 優位를 維持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느냐? 敎育制度가 뒷받침 안 되면 안 돼요. 요즈음 理工系 敎授들이 한숨을 푹푹 쉬고 있어요. 왜 그러냐? 學生들이 안 와요. 1970年代, 80年代 學校는 말이죠. 電子工學科, 遺傳工學과, 生物工學科 이런 데로 몰려 그 힘으로 只今 버티고 있는 거예요. 줄기細胞? 다 그때 들어갔던 學生들이 버티고 있잖아요. 그런데 只今은 안 와요. 開店休業은 아니지만 優秀한 學生들이 全部 빠져나가요. 全部 어디로 가느냐? 行試나 外試, 斜視 아니면 大企業으로 빠져나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이언스와 테크놀로지 優位를 維持하려면 그쪽 學科에 特惠를 줘라. 제가 가장 염려스러운 게 우리 서울大學 學生이 말이죠, 아주 똑똑한 學生들이 다 뭐하느냐? 다 法大나 醫大 가요. 아주 괴로워 죽겠어요. 이렇게 쏠리는 現象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分散이 안 되거든요. 大韓民國에서 法曹人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大學, 말할 것도 없이 法科大學이에요. 둘째가 어딘 줄 아세요? 社會科學大學 같죠? 아니에요. 工大예요, 工大. 이 事實을 아는 사람 드물어요. 테크놀로지가 下落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工大 學生들, 저는 果敢하게 軍隊 特惠 줘야 한다고 봅니다. 防衛産業體 가서 한 2年만 있어라. 그런데 그거는 市民의 社會正義 槪念에 비추어서 絶對로 容納되지 않죠. 왜 너만 그러냐? 요즈음 ‘나歌手’ 人氣 좋잖아요. 그런데 너만 歌手냐? 나도 歌手다. 이런 사람들이 只今 到處에서 생겨나고 있잖아요. 노래房이 只今 完全 大박 났죠. 나도 歌手다. 韓國의 情의 槪念이 조금 바뀌어야 이런 問題를 解決할 수 있어요. 이게 다 社會制度입니다. 이제는 社會制度가 經濟制度예요. 制度가 改善되지 않으면 韓國이 앞으로 2萬달러, 3萬달러 時代로 가는 데 걸림돌이 많습니다.

    李明博 政府의 歷史的 疏明이 뭐냐? 지난 6月25日 大統領 앞에서 얘기하려니까 참 緊張되더라고요. 宏壯히 操心스럽게 내가 얘기했어요. 20年 동안 政治 民主化 됐으니까 앞으로는 社會 民主化가 이뤄져야 합니다. 社會正義라는 槪念이 세워지고 잘하는 데를 끌어주고 못하는 데를 밀어주는 制度를 만들어내야 앞으로 經濟가 發展합니다. 뒤에서 制度를 만들어 經濟動力을 生産할 아이디어를 한番 짜주십시오.

    韓民族은 雜種强勢

    事實 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참 어려운 얘기죠. 지난 3年 半 동안 社會領域에서의 民主化와 正義 問題가 제대로 解決되지 않았기 때문에 엊그제 같은 投票現象이 일어난 거거든요. 이른바 市民 蜂起죠. 우리나라 政治 歷史에서 執權與黨과 市民運動이 맞붙은 적이 없어요. 그야말로 初有의 事件입니다. 그리고 市民運動이 이겼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果然 政黨 組織처럼 日常化될 건가. 아니면, 正말 柔軟하고 流動的으로 市民의 意思를 收斂하는 새로운 組織으로 維持될 것인가? 그게 焦點입니다. 政黨政治化 되면 아마 똑같은 政治의 陷穽에 빠질 可能性이 많아요. 어떻게 할 거냐? 市民運動이 政治의 陷穽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問題 참 어려울 거예요.

    그러면 韓國은 어떤 習性을 갖고 있는가? 人類學的, 社會學的 觀察이 必要해요. 어떻게 살아왔는지 觀察하지 않으면 잘 들여다볼 수가 없거든요. 제가 보기에도 韓半島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 獨特한 民族이에요. 單一民族이 아닙니다. 單一民族은 開化期 때 만들어진 거고요, 우리 韓半島에 살고 있는 人種이 몇 個냐? 누구는 45個라고 하고요. 훨씬 더 過激한 분은 251個 人種으로 얘기해요. 只今부터 1萬 年 前으로 한番 돌아가보자고요. 1萬 年 前에 原始人이었을 때 아직까지 凍土에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해가 뜨잖아요. 그러면 本能的으로 해 뜨는 쪽으로 移動하게 돼요. 그러면 西쪽에 있는 사람들이 東쪽으로 올 거 아니에요. 東쪽으로 몇 千 年에 걸쳐 오겠죠. 그러다가 따뜻한 데를 찾아서 南쪽으로 移動해요. 數千 年에 걸쳐서 東쪽으로 移動하다가 南쪽으로 移動했는데 第一 마지막에 到達한 곳이 어디냐? 韓半島예요. 無條件 내려와서 겹겹이 쌓여서 數千 年을 살아 왔어요. 이게 只今 韓民族이에요. 그래서 故鄕이 다 다릅니다.

    單一民族이라는 槪念은 申采浩 先生이 만들어냈어요. 왜냐하면 하나로 뭉쳐야 되니까. 그런데 實際로 宏壯히 많은 人種이 섞여 있습니다. 雜種强勢예요. 그래서 머리가 無知하게 좋아요. 그런데 競爭密度가 全 世界에서 아마 넘버 1 아니면 2예요. 그래서 恒常 緊張하고 살아요. 緊張하고 살기 때문에 이노베이션을 자꾸 해내는 거라고요. 거기다가 바깥에 4個 强大國이 虎視眈眈 노려왔잖아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인가? 韓國은 內部에서 政治的인 葛藤도 많고 社會的인 葛藤도 많지만 事實은 危機 때 쫙 뭉치는 理由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DNA가 그걸 시키고 있어요. 文化的인 經驗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樂觀的으로 생각해요.

    ‘家門의 榮光을 빛내주겠니’

    우리의 習俗이 뭐냐? 日本과 한番 比較해보세요. 日本하고는 너무나 다르죠. 日本에 가보면 그렇잖아요. 너무 깨끗하고 너무 조용하고 秩序整然하고. 사람들이 禮儀 바르고. 너무 놀라운 건 지난番 쓰나미 때였어요. 自己 家族이 다 떠내려갔는데 리포터가 가서 카메라를 딱 들이대니까 ‘잠깐 기다리십시오’ 하더니 몸 매무새를 딱 갖추고 꿇어앉은 다음에 인터뷰에 應하잖아요. 눈물도 안 흘리고. 우리 같으면 어떨까요. 只今 말이야, 때가 어느 때인데 카메라를! 亂離가 났을 거예요.

    우리는 우리를 主張하는데 宏壯히 剛합니다. 우리를 主張하고 드러내고 있어요. 그런데 日本은 감추잖아요. 아무튼 바깥에 對해 他人에 對해 이웃에 對해 禮儀라고 해야 되죠, 廉恥를 딱 차립니다. 요게 日本사람이에요. 제가 좋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데 問題가 참 많아요. 日本이 왜 그러냐. 日本人은 共同體와 義理를 重視합니다. 애가 태어나 平生 듣는 얘기가, ‘남한테 弊 끼치지 마라’예요. 우리나라 아기가 듣는 얘기는 ‘家門의 榮光을 빛내주겠니’ 뭐 이런 거 아니겠어요? 사내 大丈夫는 좋은데, 남과 더불어 어떻게 살 것인가? 여기에 對해서 關心이 없잖아요. 이게 제가 보기에 日本 社會와 韓國 社會 習俗의 가장 基本的인 差異예요.

    ‘菊花와 칼’이라는 冊을 쓴 루스 베네딕트가 ‘기리’(義理)와 ‘機務’(義務)의 限界를 얘기했어요. 日本 社會에서는 기리와 機務가 늘 부딪쳐요. 기리는 合理的이든 不合理的이든 運命的으로 엮인 사람에게 忠誠을 바치는 겁니다. 그리고 背信하지 않습니다. 機務란 뭐냐? 當身, 이거 잘못됐습니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能力을 의미해요. 그렇게 얘기하는 氣質을 의미해요. 그런데 日本 사람들은 機務에 無知하게 弱합니다. 우리는 反對죠.

    이 무시무시한 共同體의 힘이 日本 經濟를 만들어냈어요. 도요타가 그렇고 소니가 그래요. 1980年代 中後半까지 말이죠. 그야말로 共同體 精神으로 만든 게 日本 經濟입니다. 그런데 이 經濟構造가 1990年代부터 뭘로 轉換하느냐? 個人的인 自己로 轉換했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스티브 잡스를 봐야 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日本은 안 나와요. 日本은 이 下모니잖아요. 하모니를 끌고 가는 게 바로 義理精神이에요. 꿈쩍도 안 하고 協演을 해서 ‘不良 제로’ 物件을 生産해냈는데, 只今은 그런 時代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日本 經濟가 저렇게 된 거예요. 日本 經濟가 엄청 크니까 그렇게 쉽게 下剛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下降할 수 있는 要素는 많이 갖고 있어요.

    權利와 이기(利己), 私益(私益)

    그런데 韓國은 個人이 主張하는 時代로 轉換했기 때문에 只今 그런대로 命脈을 維持해가고 있어요. 朝鮮時代에 王이 擧動을 하면, 漢陽 市民이 다 나와 꽹과리 치고 놀고 노래하고, 엿장수, 물장수 다 나와요. 저기 昌德宮에서부터 始作해서 안국동으로 해서 鍾路 거리로 해서 景福宮 앞으로 가요. 가마를 타고. 臣僚들이 뒤따르고 都承旨가 따라 나와요. 그런데 그야말로 하루 終日 걸립니다. 王 앞에 엎드려 民願 提起하는 사람이 많아서지요.

    우리나라의 傳統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傳統은 主張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許容해요. 日本은 어떠냐? 日本은 쇼군이 行次할 때 우리처럼 꽹과리 치고 고개 들고 한마디 했다가는 바로 목이 날아갑니다. 全部 엎드려 있어요. 어느 날 쇼군이 行次를 하는데, 한 사람이 뛰어들었어요. 아뢰옵기 惶悚하오나, 日本말로 그랬어요. 사무라이가 목을 치려는 瞬間 쇼군이 ‘奇特하다. 한番 들어보자’고 했어요. 그 內容은 안 傳해지고 있어요. 사무라이들이 그놈을 잡아 審問을 했답니다. 그런 일이 日本 歷史에서 딱 한 건 나옵니다. 어디서 왔는고? 그랬더니, “壬辰倭亂 때 잡혀온 朝鮮人의 後裔입니다.”

    마이클 샌델이 얘기한 社會正義는 義務, 美德, 公共善이에요. 韓國人의 마음 習慣은 反對쪽에 있어요. 權利와 이기(利己), 私益(私益). 이 反對쪽으로 20世紀를 달려왔어요. 1987年 民主化 以後 이게 훨씬 剛해졌어요. 누구나 權利主張을 하기 始作했어요. 내가 民主化된 이 社會에서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는 안 물어보고 내가 그동안 잃어버린 게 뭐냐만 묻는 거죠. 勞動者들은 賃金 잃어버렸다고 賃金 鬪爭을 해요. 中産層은 財産增殖 싸움에 本格的으로 뛰어들었어요. 내가 中産層으로서 社會의 가장 重要한 軸으로서 어떤 말과 行動을 할지에 對해서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敎育 投資하는 데 정신없어요, 이 優秀한 人力들이.

    韓國은 民主共和國이에요. 民主는 自由를 의미하고 共和國은 共和政을 의미해요. 自由主義라는 件 個人의 인디비주얼 프리덤에 焦點을 둔 理念이에요. 自由主義 理念 속 共同體 秩序를 强調하는 理念입니다. 美國 民主黨이 이쪽입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勞動組合을 統合해 勞動者의 權利를 强調하고 마이너리티를 受容하고 保護해줍니다. 이게 自由主義, 리버럴리즘입니다. 美國의 리버럴리즘은 進步 性向을 갖고 있습니다. 自由主義의 基本은 個人의 自由입니다.

    社會的 資本

    反面 共和主義란 個人의 自由도 좋지만 秩序를 좀 强調하는 便입니다. 秩序와 公共善과 規制. 韓國에서는 只今 自由主義와 共和主義 이 두 가지가 衝突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풀어줘야 돼요. 例를 들어볼까요? 얼마 前에 미네르바 事件 있었죠? 잡고 보니까 大學을 나오지 않고 獨學을 한 30代 靑年이에요. 그런데 政府에서는 이 사람이 公共秩序를 어지럽혔다며 拘束했어요. 그랬더니 네티즌들이 “그건 表現의 自由인데 왜 잡아가냐? 그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든 인터넷市場에서 解決할 問題다. 잡지 마라”고 反對했죠. 이게 個人主義죠. 自由主義. 反面 “그런 거짓情報로 金融事故를 일으키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國家의 秩序를 지켜야 된다”고 主張하면 共和主義입니다. 두 가지가 부딪쳤어요.

    結局 알다시피 大法院까지 올라갔어요. 2010年 11月에 미네르바는 無罪라는 判決이 나왔죠. 個人主義 손을 들어줬습니다. 大法院 判決에 問題가 많다는 主張도 可能합니다. 問題는 뭐냐 하면 그런 일이 法의 손을 빌려야 解決이 된다는 事實이에요. 여기에 對한 方法論을 社會學者들이 만들어냈어요. 그게 바로 소셜 캐피털(Social Capital)이에요. 좀 抽象的인 槪念이죠. 社會的 資本이 이 두 가지의 矛盾을 묶어낼 수 있는 거예요.

    個人의 自由에 焦點을 맞추면 무슨 問題가 생기느냐? 흔히 얘기하면 프리 라이드(Free Ride)가 생겨요. 無賃乘車. 無賃乘車가 자주 일어나는 社會는 發展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뭔가 해줘야 돼요. 누구나 다 保護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너 自由다, 너 마음대로 해. 이거는 無賃乘車를 막아낼 수 없는 거예요. 아주 有名한 얘기가 있습니다. 트래지디 오브 더 커먼스(Tragedy of the Commence), 公有地의 悲劇입니다. 어떤 牧草地가 있어요, 땅은 限定돼 있어요. 牧童은 10名이고. 家畜에게 풀을 뜯게 해야 돼요. 터가 限定돼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論議하지 않은 채 많이 풀어 많이 뜯어 먹게 하는 놈이 最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얼마 안 가서 牧草地가 망가졌어요.

    遊牧民은 移動할 수 있죠. 몽골人들은 다 뜯어 먹고 나면 移動해요. 資源이 無限定하면 可能해요. 그러나 韓半島는 資源이 그렇게 안 되죠. 이런 境遇에 인디비주얼 프리덤에 無限定 맡기면 그런 現象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어떻게 할 거냐? 共和主義에 물어봤어요. 共和主義의 答은 規制예요. 그래서 이런 팁이 可能하더라고. 프리덤은 레귤레이션(regulation). 規制가 바로 自由의 바로 前提 條件입니다. 이건 뭐 有名한 얘기인데, 이게 共和主義의 主張입니다.

    그런데 問題는 規制費用이 많이 들어요. 規制費用을 堪當 못합니다. 우리나라에 監査院이 導入된 後 監視와 規制를 많이 하잖아요. 그럼 監査院은 누가 監視하느냐? 우리나라에선 言論이 監視했어요. 言論이 監視를 해서 不正을 잡아낸 거 아니에요? 그럼 言論의 不正은 누가 잡아내느냐? 잡아내기 참 어려워요. 여기 言論 맞죠? 言論은 不正을 잘 안 합니다만 言論의 不正은 누가 잡아내요? 잡아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플라톤의 質問

    그래서 이런 問題가 생겨요. 거버너(governor·統治者)는 누가 去番(govern·統治)할 것인가? 이건 플라톤의 質問입니다. 이 質問을 아직도 解決하지 못한 게 人類社會입니다. 거버너를 누가 去番할 것이냐? 아무도 못 풀었어요. 2011年까지 모든 社會科學에서 플라톤의 質問에 對한 最善의 答이라고 나온 게 소셜 캐피털이라는 거예요. 社會的 資本이 뭐냐? 社會的 資本을 解決해라. 그러면 自由主義와 共和主義의 衝突 問題가 풀린다. 社會的 資本이란 이런 거예요. 아주 單純합니다. 아까 얘기한 시빅 버추인데, 밑에서부터 市民參與 行爲(Civic Engagement)가 이루어지면 公論場이 活性化되고 公論場이 活性化되면 그 價値를 代辯하는 敎養 市民層이 생겨나는 거죠. 이 敎養市民 層이 소셜 캐피털을 擴散시키는 主導層이에요.

    우리나라에 事實은 이게 不足해요. 不足할 뿐만 아니라 너무 脆弱하다는 얘기입니다. 敎養市民은 뭐냐? 敎養市民이란 아까 얘기했듯이 시빅 버錘를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나보다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倫理에 關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한番 돌이켜보세요. 正말 常識的인 얘기죠. 이에 對해 大學 다닐 때는 苦悶을 해요. 大學門을 나서는 瞬間 한 番도 苦悶해본 적이 없어요. 한 番도 그 命題에 따라서 行動해본 記憶이 別로 없어요. 이게 韓國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參與를 잘 안하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곧 말씀드리겠지만, 參與를 잘 안하기 때문에 公論場이 그냥 縮小되고 없어져요. 公論場이 뭘 의미하냐?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하는 걸 의미합니다.

    只今 이런 것도 公論場이에요. 제가 一方的으로 講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討論하는 게 公論場이에요. 제가 오늘 얘기를 많이 해서 罪悚합니다만, 이 公論章에서 只今처럼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共通的인 爭點을 가지고 論議해야 됩니다. 이게 公論場이에요. 서로 아는 사람끼리 모여서 얘기하면 아무 所用이 없어요. 例를 들어서 同窓會?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요. 그런 데 나가서 公的인 얘기해봐야 아무 所用이 없습니다. 누가 한쪽으로 가면 다 그쪽으로 가버려요. 딴소리 하면 바로 攻擊받죠. 야, 그거 必要 없다. 그러면 너는 집에 가라. 왕따 돼요.

    市民 없는 市民運動

    同窓會, 鄕友會, 同門會, 宗親會 이런데 있잖아요? 이런 데 아무리 많이 가봐야 아무 所用도 없어요. 왜 그러냐면 意見이 같은 사람만 골라서 불러요. 그건 市民參與와 상관없어요. 市民參與란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서 모르는 問題를 討論해야 돼요, 이게 公論場이에요. 그로부터 저 사람의 處地를 理解하게 되거든요. 저 사람이 都大體 왜 저런 얘기를 하는지 理解하게 돼요. 그런데 유럽에는 저 시스템을 아주 오래前부터 稼動했고 只今도 稼動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없어요.

    簡單히 말씀드리겠습니다. 韓國 사람들이 얼마나 市民活動에 參與하는가. 제가 2009年까지의 資料를 보니까 男子가 40% 조금 넘게 하고 女性이 그보다 조금 덜 합니다. 어떤 團體를 다니느냐, 물어봤더니 親睦社交 團體가 많아요. 宗親會, 同鄕會, 同門會 이런 거죠. 여기 가면 恒常 즐겁잖아요. 넌 아직도 예쁘구나. 너는 어떻게 아직도 고우냐? 너는 누구 찍을래? 意見이 다 一致해요, 거기 가면. 조금 다른 얘기했다가는, 넌 그동안 그렇게 變했니? 複雜해지지요. 그 다음에 宗敎團體가 있고요. 그 다음이 TV, 스포츠, 레저….

    市民社會團體 參與率은 10% 未滿이에요.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서 共通 爭點을 얘기하는 比率은 10%라는 거예요. 아마 大學校 때는 저런 參與率이 높다가 漸漸 낮아지고 50代, 60代가 되면 아예 낄 생각을 안 하죠. 아이고, 사는 것도 귀찮은데 거기 가서 뭘 하냐고 말이죠. 버릇없는 애들하고 앉아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안 가죠. 이게 大韓民國의 現實이고 서울共和國의 現實입니다.

    제가 그래서 新聞에 이렇게 썼어요. 朴元淳 市長에게 市民團體 出身이라고 하는데 元來 市民團體의 槪念은 달라요. 全國的 會員을 갖고 모든 階層을 다 끌어안는 그런 組織이에요. 그런데 韓國은 專門家 集團이 아니라 理念 組織이 많아요. 理念組織으로 市民活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市民 없는 市民團體이고, 市民 없는 市民運動이에요. 그래서 모든 市民이 市民運動에 參與해 한番 討論을 해봐야 합니다. 여러 團體에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博士들이 몰려 사는 瑞草洞 마을에 큰 事件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아요. 이거는 社會基盤이 허약하다는 뜻이에요. 저처럼 關心을 갖고 參與를 하는지 안 하는지 살펴보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이러니 소셜 캐피털이 안 생기죠. 이것을 뭉뚱그려놓는 게 바로 敎養市民이죠.

    그러니까 적어도 한두 군데 또는 두세 군데쯤 모르는 市民團體에 나가야 합니다. 獨逸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政府에서 有給休暇를 줘요. 1年에 적어도 一週日은 當身이 願하는 組織이나 機關에 가서 討論을 하고 오라고 보냅니다. 公式的으로 制度化돼 있어요. 이게 市民 敎育이거든요.

    敎養市民과 中産層

    그래서 敎養市民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 얘기한 宗敎, 敎育, 産業, 地方自治 이런 것들의 中心이 되는 勢力을 의미해요. 우리가 말하는 中産層을 의미합니다. 中産層은 社會에 對해 어떤 慧眼을 갖기보다는 어떤 組織이나 團體에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機會를 늘려야 해요. 이게 이른바 社會資本이고요, 이게 信賴高 시빅 버추예요. 抽象的인 얘기죠.

    그런데 이 抽象的인 게 決코 抽象的인 게 아닙니다. 獨逸과 스웨덴 이런 데는요. 國家政策으로 施行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모여 얘기를 하도록 職場에서 내보내고 있어요. 이걸 돈을 다 주고 보내고 있어요. 그러니까 總理들이 말이죠. 스웨덴에서 總理가 마을 組織에 가서 直接 住民들과 얘기하는 모습을 中繼放送하거든요.

    朝鮮은 어땠나? 제가 單純하게 硏究해보니까 朝鮮에선 敎養市民이 생기질 않았어요. 생길 수가 없었어요. 開化期에는 말이죠. 公論場이 생겼는데 매우 어려웠어요. 세 가지 通路를 통해 百姓이 緊密하게 敎養市民으로 옮겨갔습니다. 그게 宗敎文藝 政策입니다. 宗敎는 儒敎에 對敵하면서 뭔가 막 밀고 나왔어요. 儒敎가 徐徐히 무너졌어요, 宗敎로서의 儒敎예요.

    1896年에 비숍 女史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비숍 女史가 쓴 冊이 ‘韓國과 이웃나라’입니다. 只今 100年이 지나고 읽어봐도 너무나 맞는 얘기가 많아요. 비숍이 말이죠, 濟物浦에 들어와 많은 데를 돌아다녔어요. 여기 西大門 都城에 到着해 漢陽을 한番 구경했는데, 첫 質問이 이거였어요. 500年 都邑地에 宗敎施設이 하나도 없다. 이거 어떻게 된 거냐? 答이 뭐겠어요? 이 사람 日本에 있다가 왔거든요. 유럽에 가면 聖堂이 많죠, 敎會도 많잖아요. 日本에 갔더니 紳士가 있죠. 洞네마다 다 祠堂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와봤더니 宗敎施設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宗敎 없이 어떻게 500年을 버텼느냐? 이걸 물었대요. 비숍은 그걸 몰랐어요. 왕이 大司祭(大司祭)이고 百姓이-한양에 12萬 加護가 있었는데-소사제라는 事實을 몰랐어요. 12萬 加護에 宗敎施設이 있었던 거예요. 조그만 民家 안에 自己 祖上의 位牌가 모셔져 있었어요. 그 位牌에 절을 하면서 다녔죠. 이게 儒敎입니다.

    12萬 加護에 있는 宗敎施設

    그런데 이 儒敎가 19世紀 初부터 徐徐히 형해화되면서 무너지기 始作했어요. 왜? 外部에서 여러 形態의 理念과 宗敎가 들어왔어요. 第一 먼저 들어온 게 天主驕잖아요. 天主敎는 그야말로 제가 보기에는 韓國 社會를 세우는 데 엄청난 役割을 했어요. 지난 100年 동안 1萬5000名의 信者가 죽었습니다. 1793年부터 1866年까지예요. 그러니까 大院君이 5000名을 죽일 때까지. 그야말로 全 世界에 類例없는 어마어마한 迫害事件이에요. 이게 天主敎 迫害社예요, 이게 무서운 얘기입니다. 왜 그랬냐? 儒敎라고 하는 宗敎에 對敵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데 天主敎人들은 儒敎에 對敵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다만 받아들였을 뿐이에요. 잡혀가서도 ‘나는 儒敎人’이라고 했죠. 나는 天主를 믿습니다만 내가 儒敎를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天主敎와 부딪치면서 드디어 儒敎가 內部에서 徐徐히 무너지기 始作해요. 天主敎는 儒敎 法이었던 하늘의 理致를 千株(天主)로 바꿨어요. 遷都(天道)를. 天道는 性理學이잖아요. 薦度라는 性理學의 極點을 天主라는 人格體로 바꿔버린 거예요. 아주 簡單하게. 今方 바뀝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고 ‘天主實義’에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天主實義’에 많은 얘기가 나와요. 이로부터 宗敎的인 共同體가 생겨나면서 儒敎의 對蹠點을 만들기 始作했어요. 文藝도 그렇고 政治도 그렇습니다. 文藝는 漢文 文法에 對해 國文文法을 말하기 始作했어요. 國文小說이 나오면서 드디어 ‘아, 個人이 可能하구나’를 알기 始作했어요. 옛날 18世紀, 17世紀 사람이 許筠의 ‘洪吉童傳’을 읽어보면, ‘야, 나도 洪吉童이 될 수 있구나.’ 이런 거를 내면화하는 거예요. 이걸 通해서 人民이 世上 밖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敎養市民으로 轉換해야 하는데 驕昻市民으로 轉換하는 努力은 엄청 많이 했어요. 自發的 結社體라는 걸 만들었어요. 自發的 結社體는 아까 얘기한 市民團體입니다. 제가 調査해보니까 1894年부터 1909年까지 市民團體를 400個 程度 만들었어요. 서울市內에 400個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건 大韓民國 歷史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건 歷史學者들이 發見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11月 中旬에 나올 冊에 이 얘기를 했어요. 市民이 생겼다, 이거예요. 어떤 通路를 통해서? 宗敎와 文藝와 政治 抵抗을 통해서 생겨난 거죠. 그런데 저 市民이 敎養市民이 될 機會를 잃어버렸어요. 1910年에 日本이 들어오면서 團體가 다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1987年까지 저런 狀態로 왔습니다.

    ‘나도 洪吉童이 될 수 있구나’

    그래서 얘기하지 않는 狀態, 討論하지 않는 狀態로 前震했어요. 1910年에 무너진 後 光復 直後 조금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가서 1987年에 急增해요. 이 社會를 붙들고 있는, 이른바 自由民主主義를 내면화하고 어디서 문득 무슨 問題가 일어나도 그걸 受容할 수 있는 그런 敎養市民이 생겨난 지 25年밖에 안 됐어요. 그리고 아주 脆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問題가 複雜해지기 始作해요. 그리고 이런 問題가 發生합니다. 갑자기 왜 安哲秀냐? 中産層 마음속에 말이죠. 또는 젊은 層 마음속에 우리가 어떤 價値를 志向해왔고 우린 어디에 놓여 있다고 하는 리플렉션(reflection·反英)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마음속이 只今 비어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 超人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 사람이 超人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超人의 象徵을 씌워버린 사람이에요. 若干의 資質과 能力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期待와 象徵을 씌워서 超人을 만들었죠. 그리고 그를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러나 그 象徵을 받아들이고 부름에 應하는 사람에게는 危險要素가 無知하게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 비어 있는 마음을 채워줘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채워줘요? 뭔가 失望하면 거기에 對한 非難이 쏟아질 텐데. 이게 지난 25年 동안의 問題예요. 그래서 제가 이분을 批判하는 게 아니고 아무튼 超人처럼 나타났으니까 저도 어떻게 될지 끝이 궁금해요. 어떻게 行動하실 건지 關心이 많습니다. 能力도 대단하시고 이미지도 좋잖아요.

    이제 結論을 내리겠습니다. 제가 主張하는 바는 이겁니다. 韓國의 公共哲學을 어떻게 하느냐? 自由民主主義 또는 自由主義의 歷史가 西洋에 비해 日淺하죠. 正말 짧습니다, 짧아요. 둘째는 이 自由民主主義를 主導해나갈 中心階層이 弱하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只今 그걸 빨리 만들어내야 해요. 만들어내야 하는 데 時間이 오래 걸려요. 왜냐하면 獨逸의 境遇는 1840年代부터 생겨서 只今까지 왔습니다. 美國은 1800年代 初盤에 생겨서 只今까지 왔습니다. 한 200年 걸렸지요. 이걸 우리는 빠른 時間 內에 定立해야 합니다. 公共哲學이 定立될 때 社會正義가 實現됩니다. 社會正義가 實現되면 經濟正義가 實現되고 우리의 國家 水準은 한 段階 더 跳躍할 겁니다. 感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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