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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블레어, ‘英國版 힐러리’ 될까?|신동아

셰리 블레어, ‘英國版 힐러리’ 될까?

‘自敍傳 政治’로 몸값 올리기…

  • 성기영 新東亞 英國 通信員 sung.kiyoung@gmail.com

    入力 2008-07-09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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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니 블레어 前 英國 總理의 夫人 셰리 블레어는 힐러리 클린턴 못지않은 經歷을 지녔다. 어려운 環境을 克服하고 辯護士로 成功했을 뿐 아니라 바람氣 많은 男便을 둔 힐러리와 달리 團欒한 家庭도 꾸렸다. 그가 最近 自敍傳을 出刊했다. 여기에서 그의 政治的 野心을 엿보는 눈길이 많다. 露骨的으로 自身의 私生活을 드러내고, 右派로 變한 고든 브라운 玄 總理를 批判한 것은 向後 政治的 발板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視角이다.
    셰리 블레어, ‘영국판 힐러리’ 될까?
    男便인 빌 클린턴 前 大統領의 뒤를 이어 44代 美國 大統領을 노렸던 民主黨 大選候補 힐러리의 挑戰은 一旦 挫折로 끝났다. 그러나 結果에 關係없이 自然人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이 보여준 政治的 野心과 挑戰은 大統領 夫人이라는 役割에 새로운 이미지를 불어넣기에 充分했다. 힐러리가 보여준, 大統領 夫人이자 職業女性으로서의 役割 모델은 슈퍼모델 出身 歌手로 프랑스 엘리제궁의 안主人이 된 카를라 브루니로 이어졌다.

    儒敎的 傳統이 支配해온 아시아 國家들도 例外가 아니다. 最近 마잉주(馬英九) 臺灣 新任 總統의 夫人 藷芋메이稱(周美靑)의 退職 問題를 둘러싸고 論難이 빚어졌을 때도 臺灣 有權者들은 ‘總統 夫人이 되더라도 다니던 職場을 그만둘 必要가 없다’는 데 더 많은 票를 던졌다.

    政治的 野心을 가진 職業女性들 亦是 大統領 周邊의 助演에 滿足하지 않고 直接 主演으로 拔擢되려고 나서는 境遇가 늘어날 展望이다. 스스로의 政治的 비전으로 正面勝負를 거는, ‘第2의 힐러리’를 目標로 뛰는 퍼스트레이디가 더 많이 생겨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 代表的 人物이 지난해까지 10年間 英國 勞動黨 政府를 이끈 토니 블레어 總理의 夫人 셰리 블레어 女史다. 셰리는 政治的 履歷이나 大衆的 知名度에서 ‘第2의 힐러리’라 해도 遜色이 없을 만한 潛在能力을 갖췄다.

    힐러리보다 못할 것 없다?

    셰리는 여러 面에서 힐러리와 比較된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젊은 나이에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셰리가 다우닝가 10番地 總理公館에 入城한 것은 43歲가 되던 해였다. 클린턴이 就任했을 때 함께 白堊館에 入城한 힐러리도 45歲에 不過했다.



    두 사람 모두 外向的이고 積極的인 性格을 지녔으며 言論과 大衆의 視線을 끌 만한 美貌의 所有者라는 데에도 別 異見이 없다. 豪宕하게 웃고 大衆 앞에서 自信感 있는 제스처를 쓴다는 點에서도 닮았다. 더욱이 ‘政治的 野心이 큰 有名 辯護士 出身’이라는 共通點에 이르면 世界 言論들이 셰리에게 ‘英國의 힐러리’ ‘第2의 힐러리’라는 別名을 붙인 것도 지나치지 않다.

    게다가 셰리는 힐러리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따뜻한 어머니’ 이미지도 갖고 있다. 힐러리는 바람둥이 男便의 外道 때문에 和睦한 家庭을 이끄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얻는 데는 失敗했다. 이에 비해 셰리는 블레어 總理를 뒷바라지하면서도 4男妹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냈다. 가끔씩 뜨개질로 子女들의 옷을 만들어 입히는 場面이 公開되기도 했다. 그래서 셰리는 ‘英國 女性들을 가장 스트레스 받게 하는 女性’이라는 말도 들었다. 高額 年俸의 辯護士 業務와 子女 養育 두 가지 모두 完璧하게 해내 職業과 家庭 사이에서 苦悶하는 많은 女性에게 劣等感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토니 블레어의 現職 總理 時節부터 이렇게 言論의 照明을 받던 셰리가 다우닝가 10番地를 떠난 지 1年이 채 안 돼 最近 自敍傳을 펴냈다. 題目은 ‘나 自身을 말한다(Speaking for Myself)’. 셰리는 이 冊에서 블레어와의 結婚 生活, 아이들과의 關係 等 私生活은 勿論 勞動黨 內 政治力學, 特히 블레어가 물러나기 直前까지 葛藤을 빚은 고든 브라운 玄 總理와의 權力暗鬪 祕話 等을 仔細하게 털어놓았다.

    ‘自敍傳 政治’

    現職 總理 夫人 때부터 튀는 行動으로 言論의 關心을 끈 셰리가 400쪽이 넘는 두꺼운 自敍傳을 펴냈으니 身邊雜記에 熱狂하는 英國 新聞들이 이를 그냥 놓아둘 理 없다. ‘더 타임스’와 ‘더 선’ 이 連載에 나섰고 公營放送인 BBC 라디오도 며칠에 걸쳐 自敍傳 內容을 그대로 紹介하는 特輯 프로그램을 放送할 程度였다.

    그러나 이 自敍傳에 對한 英國 言論들의 總體的 評價는 그리 好意的이지 않다. 特히 酷評의 對象이 된 것은 讀者의 興味를 刺戟하기 위한 直說的 描寫와 表現. ‘스코틀랜드 旅行길에 避妊道具를 챙기지 않아 마흔다섯에 막내아들을 가졌다’거나 ‘그날 以後 男便 토니를 더 잘 알게 됐다’는 等의 에로틱한 表現들이 口舌에 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書評欄에서 ‘셰리 블레어가 政治的 暴露를 豫告해놓고서는 정작 性的인 暗示를 통해 冊을 팔려고 한다’고 非難을 퍼부었다.

    셰리 블레어, ‘영국판 힐러리’ 될까?

    前 總理 토니 블레어(오른쪽)와 玄 總理 고든 브라운(왼쪽)은 政治的으로 자주 對立했다.

    煽情的 報道를 일삼아온 타블로이드 新聞 ‘더 미러’조차 셰리를 ‘돈에 굶주린 女子’로 描寫했다. 이 新聞은 過去 셰리가 總理室에 對한 言論의 煽情的 報道를 問題 삼으며 私生活 保護를 내세운 일을 擧論하며 ‘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自身이 내세운 原則을 언제든 抛棄할 수 있는 人物’이라는 式으로 非難의 水位를 높였다.

    이른바 ‘自敍傳 政治’를 통해 過去 自身의 政治的 보스를 批判하거나 權力 舞臺 뒤便의 祕話를 暴露함으로써 莫大한 收入을 챙기는 慣行은 美國, 英國 할 것 없이 現代 政治에서 一般的 現象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욱이 英國에는 이들 뉴스메이커에게 莫大한 現札을 안겨주며 新聞連載를 誘惑하는 巨大한 미디어産業이 存在하고 있어 自敍傳 政治’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英國 言論들은 셰리가 이 冊 販賣를 통해 大略 100萬파운드(藥 20億원)假量의 輸入은 無難히 거둬들일 것으로 내다본다. 이렇게 되면 블레어 夫婦는 總理室을 떠난 後 두 사람의 自敍傳 出刊만으로도 數十億원의 收入을 올리며 現役 時節에 버금가는 富와 名譽를 누릴 판이다.

    “거짓말쟁이!” 發言 波紋

    勿論 셰리의 自敍傳 出刊 目的이 돈뿐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셰리가 意圖한 ‘自敍傳 政治’는 冊 出刊 및 販賣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始作됐다는 얘기다. 셰리는 이 冊에서 고든 브라운 總理와 그의 夫人 사라 브라운을 直接 擧論하며 듣기 거북한 말들을 濾過 없이 쏟아내 이러한 解釋에 더욱 무게를 싣고 있다.

    토니 블레어 前 總理와 고든 브라운 玄 總理 사이의 政治的 暗鬪와 葛藤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1993年 勞動黨 黨首이던 존 스미스의 急逝로 인해 그의 後繼者를 決定하기 위한 黨內 權力鬪爭에서부터 지난해 블레어 總理의 辭退 時機를 둘러싼 힘겨루기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政治的 고빗길마다 勞動黨 指導部 構成을 둘러싸고 熾烈한 幕後 競爭을 벌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暗鬪에서 브라운에 對한 攻擊의 先鋒에 선 것이 블레어 本人이 아니라 夫人 셰리였다는 事實이다. 英國 有權者들은 2006年 여름 勞動黨 全黨大會에서 브라운을 向해 直擊彈을 날린 셰리의 ‘거짓말쟁이’ 發言 波紋을 잊지 않고 있다. 當時 全黨大會는 이미 任期 中 退陣을 約束한 블레어가 勞動黨首 資格으로 參席하는 마지막 全黨大會였다. 當然히 勞動黨 支持者들은 勿論 政治權 全般의 關心은 블레어가 언제 브라운에게 總理 자리를 물려줄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言論들은 너나 할 것 없이 側近들의 입을 빌려 블레어-브라운 不和說을 競爭的으로 報道하고, 두 사람은 그때마다 이를 否認하는 發言을 되풀이하던 狀況이었다.

    블레어 總理가 演說에서 브라운과의 不和說을 剛한 語調로 否認하며 브라운 長官의 人品과 能力을 限껏 치켜세우고 있을 때였다. 이런 雰圍氣에 찬물을 끼얹은 게 바로 셰리였다.객석에서 演說을 듣고 있던 셰리가 “거짓말쟁이!”라며 혼잣말처럼 비아냥거린 것이 禍根이었다. 셰리가 無心코 내뱉은 이 말은 마침 옆에 있던 블룸버그 通信 記者의 귀에 들어갔고, 이 發言은 다음날 아침 大部分 新聞의 1面 머리記事를 裝飾했다.

    全黨大會를 통해 블레어-브라운 不和說이 수그러들기를 期待했던 勞動黨 指導部는 발칵 뒤집혔다. 셰리가 發言 內容을 否認했지만 블룸버그가 急히 打電한 이 記事의 波長을 잠재우기에는 이미 늦었다. 公營放送 BBC도 ‘거짓말쟁이’ 發言을 들은 블룸버그 通信 記者를 生放送 中에 인터뷰하며 법석을 떨었다.

    “집에 들어올 생각 마세요”

    누구보다 커다란 困境에 빠진 사람은 블레어 總理였다. 블레어는 問題의 發言 다음날, 當時 財務長官이던 브라운의 執務室 兼 公館이 總理 公館 바로 옆에 있는 點을 빗대 “적어도 마누라가 옆집 男子와 눈맞아 逃亡가는 일은 없게 됐다”는 弄談으로 波紋의 擴散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失墜된 이미지를 回復하기에는 力不足이었다.

    이런 前歷이 있는 셰리가 自敍傳에서 또 한番 브라운 總理 陣營에 對해 안 좋은 感情을 드러낸 것을 놓고 意圖的인 메시지가 담긴 것 아니냐는 疑心의 눈초리가 쏠리고 있다. 셰리는 自敍傳에서 1993年 블레어와 브라운의 次期 競爭에 얽힌 逸話를 생생하게 풀어놓았다. 當時 두 사람은 이른바 ‘그라니타(런던 北部의 한 레스토랑) 會同’을 통해 談判을 짓고 블레어가 먼저 勞動黨首를 맡은 뒤 브라운이 차기를 保障받는 構圖에 合意했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셰리는 自敍傳에서 이 會同은 두 사람의 密約을 어떤 方式으로 세련되게 黨 內外에 알릴 것인지를 論議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權力承繼에 關한 合意는 이미 몇 週 前에 끝났다고 暴露했다. 그뿐만 아니라 블레어가 브라운과 談判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前, 自身이 男便에게 “다음 總選까지만 黨首職을 맡고 넘겨주기로 合意한다면 집에 돌아올 생각을 마라”고 威脅한 事實도 털어놓았다. 셰리의 ‘안房政治’가 먹혀든 것일까. 블레어 總理는 結局 10年 넘게 權座에서 내려오지 않고 브라운 陣營을 애태우다가 지난해에야 마지못한 듯 黨 代表職을 넘겨줬다.

    셰리 블레어, ‘영국판 힐러리’ 될까?

    셰리는 自敍傳에서 男便인 토니 블레어를 擁護하기에 바빴다.

    블레어가 當時 約束을 履行하는 過程 또한 簡單치 않았다. 블레어 陣營은 이라크戰 參戰으로 墜落하는 人氣에도 不拘하고 브라운의 大衆性 不足 等을 理由로 黨內 競選을 要求하면서 ‘브라운 흔들기’에 나섰다. 當事者들의 否認에도 不拘하고 브라운보다 젊고 斬新한 이미지를 가진 競選候補들의 이름이 言論에 오르내리며 브라운 陣營의 憤怒를 增幅시켰다.

    迂餘曲折 끝에 10年 前 合意를 履行한 데 對해서도 셰리는 自敍傳에서 男便을 辯護하는 데만 汲汲했다. 브라운 總理 側이 當時 블레어의 公共改革 프로그램을 履行하는 데 좀 더 積極的이었더라면 훨씬 빨리 總理職을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흔들어댄 것이다.

    수렁에 빠진 勞動黨과 브라운

    셰리는 自身과 對照的으로 다소곳한 이미지를 가진 브라운 總理의 夫人 사라 브라운에 對해 言及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셰리는 사라가 브라운 總理 就任 以後 이미지 메이킹 팀의 도움을 받아 人氣가 높아졌다며 過去 사라의 ‘촌스러운’ 이미지를 慇懃히 浮刻시켰다. 브라운 總理 就任 以後 블레어 時節보다 總理 夫人에 對한 補佐陣 數를 늘렸다는 不滿도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사라 브라운의 人氣가 올라간 것은 이未知 專門家들이 덧漆해놓은 ‘化粧발’ 때문이라는 嫉妬心을 드러낸 것이다.

    勞動黨 主流 陣營에서는 셰리의 自敍傳 內容에 對해 不便한 心氣를 감추지 않고 있다. ‘돈만 노리는 보잘것없는 冊’에서부터 ‘셰리 블레어는 앞으로 勞動黨 內에서조차 ‘王따’ 當할 身世’라는 評價까지 非難 一色이다.

    브라운 總理 本人은 이 冊을 出刊한 時點에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난 5月初 地方選擧에서 勞動黨이 拙戰을 치르자 셰리가 오는 10月 펴낼 豫定이던 自敍傳을 부랴부랴 앞당겨 出刊했다는 說이 播多하다. 萬一 事實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選擧 結果와 黨內 批判으로 困境에 빠진 브라운 總理에게 決定打를 먹이기 위한 意圖가 엿보인다.

    勞動黨 左派, ‘右傾化 브라운’에 反旗

    勞動黨은 5月初 地方選擧에서 3選에 挑戰하는 貫祿의 런던市場 켄 리빙스턴이 保守黨의 新銳 政治人 보리스 존슨에게 苦杯를 마시는 等 慘敗를 면치 못했다. 얼마 後 치러진 補闕選擧에서도 傳統 强勢 地域을 모두 保守黨에 내주는 바람에 黨內에서는 ‘總理 交替論’李 고개를 들고 次期 黨首 候補者들이 擧論되는 等 極甚한 內訌을 겪은 바 있다.

    지난해 總理 就任 以後 ‘브라운 效果’라는 말이 나올 程度로 支持率이 가파르게 上昇했지만 不過 몇 달 만에 이렇듯 수렁에 빠진 것이다. 블레어 政府에서 副總理를 지낸 존 프레스콧과 블레어의 最側近으로 勞動黨의 財政 問題를 事實上 책임져온 존 레비 議員 等이 잇달아 回顧錄을 펴내 브라운 總理를 困境에 빠뜨린 것도 이 무렵이다.

    브라운을 四面楚歌로 몰아넣은 事件은 블레어 側近뿐 아니라 黨內 左派 그룹에서도 비롯됐다. 最近 勞動黨內 左派 그룹은 브라운 總理 陣營의 外交 및 經濟政策 全般에 對해 批判의 목소리를 높이며 壓迫作戰을 驅使해왔다. 特히 브라운 總理가 얼마前 내놓은 所得稅 改編案이 貧困層 有權者들이 勞動黨을 外面하는 結果를 招來했다며 攻擊 水位를 높였다. 所得稅 改編案에 對한 黨 안팎의 非難에 直面한 브라운 總理 側은 부랴부랴 補完策을 내놓고 黨內 反對派들을 다독거렸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는 分析이 支配的이었다.

    政治的 野心을 가진 前職 總理의 夫人이 自敍傳을 통해 現職 總理의 過去事를 들춰내며 ‘아픈 곳’을 다시 한 番 건드린 것은 바로 이렇게 黨內 葛藤이 頂點에 達한 時點이었다. 事情이 이렇다 보니 自敍傳 出刊의 背景과 意圖를 둘러싸고 區區한 解釋이 나올 만도 하다.

    勿論 셰리는 이런 疑惑을 否認하고 있다. 셰리는 自敍傳에서도 自身이 브라운 總理의 執權으로 勞動黨 支持率이 떨어지고 經濟狀況이 惡化됐다는 世間의 視角에 同意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블레어 前 總理가 브라운 玄 總理와 如前히 緊密하게 協助하고 있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고든 브라운과 셰리 블레어의 舊怨(舊怨)을 아는 사람들은 셰리의 이러한 說明을 額面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의 視角으로 보면 平素 블레어에 비해 左派的 性向을 보여온 셰리가 自敍傳 出刊을 통해 브라운 總理의 右傾化를 批判하면서 左派 그룹의 組織化 움직임에 힘을 실어준 것이 아니냐는 풀이가 可能하다. 좀더 積極的으로 解釋하면 이라크戰 反戰(反戰) 輿論과 브라운 總理의 經濟對應 未熟 等을 내걸고 最近 政治的 목소리를 더욱 높이기 始作한 勞動黨 內 强勁 左派 그룹에 셰리가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程度까지는 아니라도 셰리가 前職 總理의 夫人이라는 旣得權을 등에 업고 브라운과 對立角을 세워 支持率 下落勢인 勞動黨의 ‘救援投手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效果 程度는 充分히 거뒀을 듯하다.

    “나는 社會主義者예요”

    셰리 블레어, ‘영국판 힐러리’ 될까?

    團欒한 블레어 家族.

    이러한 分析을 뒷받침하듯 셰리는 自敍傳 出刊 以後 여러 인터뷰에서 自身이 勞動黨과 因緣을 맺은 16歲 때 以後로 繼續 社會主義的 所信을 維持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事實 셰리는 지난 15年 동안 英國에서 言論의 注目을 가장 많이 받은 人物이면서도 가장 알려진 게 없는 人物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가디언’地 記者는 “25年 동안 셰리와 알고 지내왔지만 인터뷰는 이番이 처음”이라고 밝힐 程度다.

    그런데 이番에는 作心한 듯 各種 인터뷰에 懸案은 勿論 私生活에 對한 얘기까지 털어놓았다. ‘가디언’ 인터뷰에서 自身을 如前히 社會主義者로 생각하고 있다는 所信을 밝힌 셰리는 ‘더 타임스’ 인터뷰에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總理가 寶石商에서 (公務員 膳物 樹齡 許容額을 넘는) 값비싼 목걸이를 사주겠다고 해서 겨우 拒絶했다는 逸話도 털어놓았다. 그런가 하면 英國 王室 一部 構成員들과의 不和는 勿論, 이라크 侵攻을 非難하는 國民의 輿論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總理室에서 自身이 妊娠 中 流産했다는 消息을 發表했다는 事實도 公開했다.

    前職 總理 夫人이 이런 시시콜콜한 內容까지 까발리고 나선 데 對해 輿論은 그다지 好意的이지 않다. 돈 欲心 많고 신중치 못하며 浪費癖마저 있는 셰리 블레어의 나쁜 이미지만 더 굳혔다는 指摘도 나왔다. 하지만 셰리가 自敍傳을 통해 브라운 總理를 더욱 困境에 빠뜨림으로써 政治 舞臺에 데뷔하려는 意欲을 剛하게 드러냈다는 視角도 있다.

    그동안 셰리 블레어가 어느 女性 政治人 못지않은 政治志向的 行步를 보인 點을 勘案하면 이런 分析도 說得力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政治 性向을 理解하려면 出生 및 成長 背景부터 들여다볼 必要가 있다. 블레어와 結婚하기 前 셰리 부스라는 이름을 가졌던 그는 結婚 後에도 한동안 處女 時節 本名을 固執한 것으로도 有名하다. 그는 토니 블레어가 中産階級의 裕福한 家庭 出身인 것과는 달리 港口都市 리버풀의 勞動階級 出身이다.

    男便과의 差別化 戰略

    셰리의 아버지 토니 부스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映畫에서 리버풀의 바보 役을 맡아 有名해진 俳優다. 술 좋아하고 閑良 氣質이 넘쳤던 아버지 토니 부스는 셰리를 낳은 뒤 딸을 버리고 다른 女子와 살림을 차렸다. 勿論 當時 中下層 階級 英國人들이 大部分 그러했듯 토니 부스 亦是 平生 勞動黨員이라는 政治的 타이틀을 버리지 않았다.

    게다가 셰리의 外할아버지 亦是 炭鑛에서 곡괭이질을 하던 鑛夫 出身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셰리 블레어는 勞動階級 出身의 家庭에서 태어나 偏母 膝下에서 어렵게 자라난 뒤 自己 分野에서 當代 最高의 法律家가 된 立志傳的 人物이다.

    이러한 집안 來歷이 말해 주듯 셰리의 政治的 遺傳子는 그가 社會主義를 接하기 始作한 1960年代 初 以後 그대로 維持되어 왔다고 봐도 된다. ‘第3의 길’을 내세우며 旣存 勞動黨의 이념적 座標를 中道를 向해 큰 幅으로 이동시킨 토니 블레어와는 政治的 出發點과 指向點에서 큰 差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16歲부터 勞動黨員’임을 내세워온 셰리는 이番 自敍傳을 통해 ‘男便은 男便이고, 나는 나’라는 差別化 戰略을 豫告한 셈이다.

    젊은 時節부터 두 사람을 잘 알고 지내온 이들은 토니 블레어보다 셰리가 더 큰 政治的 野心을 갖고 있었다고 傳한다. 두 사람은 같은 辯護士 事務室에 勤務하면서 가까워졌는데, 當時 토니 블레어가 셰리의 歡心을 얻기 위해 勞動黨員이 됐다는 所聞도 있다. 人權과 勞動法 分野에서 높은 名聲을 얻었고 王室 辯護士 資格까지 갖춘 셰리가 辯護士로서도 더 앞서 있었음은 블레어 總理도 이미 認定한 바 있다.

    政治舞臺 데뷔와 關聯해서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結婚 3年 後인 1983年 總選 當時 서로 다른 地域區에 同時 出馬했다. 當時 두 사람 周邊에서는 누가 먼저 國會議員이 되든 相對便이 平生 財政的 後援을 떠안기로 約束했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當時 選擧에서 토니 블레어가 當選되고 셰리가 落選한 것은 셰리가 政治舞臺 위가 아닌 舞臺 뒤의 人生을 始作하는 契機가 된다.

    블레어 執權期 10年 내내 男便의 그늘에 가려 있던 셰리의 政治的 野心이 다시 꿈틀거리기 始作한 것은 지난해 블레어가 브라운에게 總理 자리를 물려주고 난 뒤부터다. 셰리는 다우닝가 10番地 總理 公館을 떠나는 날, 그동안 自身을 괴롭혀온 記者들 앞에서 “앞으로 絶對로 보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弄談을 던지는 餘裕를 보였다.

    그러나 實際로는 退任 直前 BBC의 特輯 다큐멘터리 取材에 應해 總理室 私生活을 公開하는 等 獨自的 이미지 構築 作業에 나섰다. 10萬파운드(藥 2億원)나 되는 豫算을 쏟아부은 이 프로그램을 위해 셰리는 아프리카 巡訪에 BBC의 有名 앵커를 帶同하는 等 각별한 關心을 보였다는 後聞이다. 總理室 안主人 노릇을 하는 동안 私生活 保護를 내세워 言論에 神經質的 反應을 보이던 것을 떠올리면 破格的 變身이다.

    누드모델로도 活動

    셰리는 王室 辯護士까지 지낸 法曹人답게 對人關係에서 신중한 態度를 維持하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토니 블레어 亦是 貴族的 文化와 民主主義 秩序가 共存하는 英國의 主流 社會에 對해 拒否感을 드러내는 等 리버럴한 性向을 보여왔지만 程度 以上의 線을 넘지는 않았다. 그런 面에서 셰리가 토니 블레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셰리는 修習辯護士 時節 누드모델로 活動한 前歷도 있다.

    BBC의 政治擔當 記者이자 토크쇼 進行者인 존 소펠이 펴낸 토니 블레어 傳記를 보면 셰리의 直線的 性格을 잘 보여주는 逸話들이 눈에 띈다.

    토니 블레어의 地域區에서 勞動黨首 就任 祝賀 리셉션이 열렸을 때의 일이다. 한 地方議員이 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다음 總選에서 勞動黨이 勝利해 토니가 總理室에 入城하게 되면 夫人께선 辯護士 일을 그만두셔야겠군요.”

    次期 總理가 有力해진 토니 블레어의 夫人에게 듣기 좋으라고 던진 德談이었지만 셰리는 그의 말허리를 끊고 쏘아붙였다.

    “토니가 總理가 되면 내가 辯護士를 그만둬야 되는 理由를 한 가지만 대보시겠어요?”

    셰리는 一介 辯護士라고 보기 힘들 만큼 言論과의 接觸에도 積極的이었다. 1995年 王室 辯護士가 된 直後에는 有名 政治人들이 가장 出演하고 싶어하는 프로그램의 하나인 BBC의 ‘투데이’에 혼자 出演해 周邊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勞動黨首였던 토니 블레어 亦是 放送이 나간 뒤에야 夫人의 인터뷰 消息을 傳해 듣고 氣怯을 한 것으로 傳해진다.

    決勝點의 힐러리, 出發線의 셰리

    이렇듯 勞動黨 家庭에서 태어나고 자란 成長環境, 開放的이고 社交的인 性格, 그리고 勞動黨의 黨內 葛藤과 브라운 總理의 人氣下落 等이 맞물려 셰리가 나름의 政治的 進路를 摸索하는 것 아니냐는 推測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하나, 셰리가 個性 있는 美貌로 有權者의 關心을 끌 만한 ‘비주얼’을 갖췄다는 點도 看過하기 어려운 要因이다. 셰리는 오목한 褐色 눈에 광대뼈가 조금 튀어나온 귀여운 外貌의 所有者. 只今은 얼굴에 주름이 늘어 예전보단 못하지만 젊은 時節의 셰리는 人形 같은 美貌를 자랑하기에 不足함이 없었다. 表情이 豐富해 權威와 더불어 知的인 雰圍氣를 한꺼번에 풍긴다는 얘기도 듣는다.

    힐러리 클린턴과 셰리 블레어는 클린턴-블레어 頂上會談 等 國際外交 舞臺에서 個人的으로도 여러 次例 만남을 가진 바 있다. 클린턴 夫婦가 블레어 夫婦를 캠프 데이비드 別莊으로 불러 저녁食事를 즐겼는가 하면 白堊館 國賓晩餐에 함께 參席하기도 했다. 當時 힐러리는 셰리에게 “女流 名詞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래도 辱을 먹고 저래도 辱을 먹게 돼 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外貌에 神經 쓰지 않고 수수한 옷차림으로 나타나면 ‘誠意가 없다’고 손가락질하고, 專屬 美容師라도 두게 되면 ‘허영기로 가득 찼다’고 非難한다는 것이다.

    힐러리가 비슷한 커리어와 政治的 野心을 지닌 셰리에게 政治舞臺 데뷔와 關聯해 어떤 助言을 해줬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힐러리가 國內 政治에서 目標했던 決勝點에 到着할 즈음 셰리는 徐徐히 出發線을 向해 다가가고 있다는 事實만으로도 興味津津한 볼거리임에 틀림없다. 민주당 競選 以後 政治 人生의 2幕을 새로 始作하게 될 힐러리나 舞臺 데뷔를 暗中摸索 中인 셰리나 그런 面에서 앞으로도 ‘닮은 꼴’ 行進을 이어나갈 公算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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