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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時間이 줄지어 선 땅끝 世上|新東亞

옛 時間이 줄지어 선 땅끝 世上

全南 海南

  • 최학│우송대 韓國語學科 敎授 hakbong5@hanmail.net

    入力 2013-01-21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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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茫茫大海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더 나아갈 데 없는 곳이 ‘땅끝’이다. 壁에 걸린 地圖를 쳐다보며 지리 感覺을 익혔던 이들에게 全羅南道 海南의 땅끝마을은 그 느낌만으로도 아득하고 가파르다. 금세 모든 것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今方이라도 波濤에 잠겨들 것 같은…. 그러나 그 끝자리 물가에 서서 온몸 가득 海風을 맞아본 이들은 안다. 뻥하니 가슴 뚫리는 듯 환하게 다가드는 解放感을, 새로운 局面이 안겨주는 까닭 모를 넉넉함을. 그래서 ‘끝은 始作의 또 다른 이름’이란 말조차 쉽게 共感하게 되는 것이다.

    땅끝에

    왔습니다



    살아온 날들도



    함께 왔습니다.



    저녁

    波濤소리에

    冬柏꽃 집니다

    -고은 時 ‘땅끝’ 專門

    끝은 結局 時間의 마무리인 만큼 모든 끝남에는 過去의 時間이 包含돼 있다. 따라서 끝남에는 그동안 지녀온 時間을 한꺼번에 霧散시키는 에너지 같은 悲壯美가 따라붙게 마련이다. 落花의 애잔한 몸짓, 저녁놀의 光輝 같은 것이 곧 그 마지막의 어여쁨이다.

    땅끝에 왔다고 조용히, 그리고 淡淡하게 말하는 詩의 말 속에 곧바로 ‘살아온 날들’이 들어앉는 까닭도 例外는 아니다. 無數한 感情과 經驗으로 點綴된 過去 時間이 ‘나’의 끝자리에 同行했음을 새삼 確認하는 것 以上이 아니다. 過去 어느 때는 熱情과 憤怒, 悔恨과 歡喜로 命名됐을 그것들이 여기서는 先生님의 惹端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줄지어 선다. 그 痛切한 刹那의 絶望 或은 빛남은 이내 冬柏꽃의 落花로 갈무리된다. 3年 8行의 至極히 刊出한 言語로 構成된 詩지만 이 짧고 簡明함 속에 宇宙의 秩序가 자리 잡으며 提議(祭儀)의 勁健함까지 加擔한다.

    이렇듯 땅끝마을은 그 이름값과 그에 어울리는 風光을 곁들여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思惟의 時空間을 提供해 준다. 예전에는 荒凉하기만 하던 바닷가에 이제는 집들이 들어서고 防波堤며 現代的인 船着場까지 차려졌지만 맑고 閑暇한 風情까지 變한 건 아니다. 特히 船着場을 조금 비켜난 空터에서 마주하는 바다 風景은 여느 海邊에서나 쉬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밀려오는 물결과 다투듯 장난치듯 가지가지 形象의 巖石이 堵列해 있는 海岸을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면 비린내 풍기는 숲 냄새가 嗅覺을 刺戟한다. 빛과 그늘이 소리 없이 騷亂을 떠는 이 길에서도 나뭇잎 사이로 출렁이는 바다가 보이며 明朗한 새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이는 모노레일카의 乘車場까지 이어진다.

    아름다운 죽음의 庭園

    海南 旅行은 뭍에서부터 바다로 가서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땅끝마을에서 始作해 뭍으로 거슬러 오르는 것이 낫다. 그 아득하고 가파른 땅의 意味를 새삼 도드라지게 깨칠 수 있다는 點에서 그렇다.

    땅끝을 넘어오면 소나무 防風林이 모래밭을 에워싸고 있는 송호리 海邊이 나타난다. 겨울철에 더 맑고 눈부신 바닷가를 거닐다가 다시 邑內를 向하다보면 들판 너머로 銳利한 山峯들이 키를 낮추고 있는 山줄기를 보게 된다. 달마산 燕麥이다. 불꽃 形象의 山줄기라고 했던가. 南方 佛敎 到來의 傳說을 품은 미황사가 이 山기슭에 앉아 있다. 長興 보림사와 함께 南녘의 예쁜 절間으로 이름이 높지만 응달마다 殘雪이 쌓인 이 겨울날엔 人跡마저 뜸하다.

    突兀하면서도 氣品 있는 一柱門을 지나 層階를 오르면 절집의 지붕이 나타나고 그 너머로 달마산 바위 봉우리들이 蒼空을 등지고 선 風光이 한눈에 잡힌다. 숨을 몰아쉬며 절 마당에 서면 그 風景이 穩全한 屛風 그림이 되어 드넓게 展開된다. 彈性은 이쯤에서 절로 나오는데, 이는 절집을 등지며 돌아서는 때도 마찬가지다. 山을 올라오면서도 보지 못했던 바다가 절 마당에서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이다. 이름난 절집치고 明堂 아닌 데 앉은 절집이 없지만, 門外漢이 보더라도 美黃寺 절집은 名當 吉地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느낌이다. 法堂이 부처님 앉은 데라면 불꽃 形象의 뒷山은 自然의 光背(光背)가 되며 森羅萬象이 前面에 俯伏하는 形局이 되는 것이다. 자리가 좋다보니 절을 찾은 이의 마음까지 훤칠해진다.

    아는 이는 알지만, 아름다운 美黃寺 境內에서도 大雄寶殿 오른쪽에 있는 숲길이 가장 魅力的이다. 이 숲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冬柏나무와 소나무로 가득 차 어느 때든 아늑하고 淸凉한 느낌을 준다. 다른 季節에는 野生花가 흐드러지게 피어나지만 겨우내 또한 푸른 山竹이 있어 寂寂하지 않다. 일부러 深呼吸을 하며 10餘 分 緩慢한 숲길을 걷다보면 옛 禪師들을 기리는 不渡와 碑石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不渡밭에 이르게 된다.

    고만고만한 不渡와 碑石들이 歲月의 이끼를 덮어쓴 채 무리를 지어 있는 이곳에 서면 마치 아름다운 죽음의 庭園에 들어온 느낌마저 든다. 이미 오래前에 寂滅의 世上에 든 이들도, 또 머잖아 그 世上으로 옮겨가야 할 이들도 地上의 이런 바람소리와 햇살, 바다냄새와 새소리를 咫尺에 두다보면 그렇게 寂寂하지만은 않을 터라 여기는 것도 이런 자리에서 가져보는 괜한 想念이다.

    榧子나무 푸른 빗줄기

    孤山 尹善道를 떠올리면 ‘지국총, 지국총, 지국총…’ 나룻배 젓는 소리가 들린다. 이 또한 敎育의 힘이다. 많은 學生의 골머리를 때리긴 했지만 學窓 때 强制로나마 옛날 詩 工夫를 했기에 이런 聯想도 可能한 것이 아닐까.

    頭輪山으로 가기 前, 邑內에서 療飢를 하고 가까운 尹善道 遺跡地부터 들르기로 한다. 나로서도 10餘 年 만에 다시 한 걸음인데 그 사이 前에 없던 唯物觀 建物이 마을 맨 앞에 서 있다. 銀色 스틸과 大型 琉璃窓을 끼워 現代式 構造와 韓屋 樣式을 섞은 唯物觀 外觀부터 獨特한데 內部 構造도 재미있다. 展示室이 딸린 地下層에서도 햇빛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깥 잔디밭과 連結시킨 通路도 퍽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用途를 十分 지키면서도 周邊 雰圍氣에 突發하지 않는 이런 配慮에서 우리나라 現代 建築家들의 眼目을 斟酌할 수 있다.

    綠雨堂(綠雨堂) 앞, 500年 守令의 銀杏나무가 그대로다! 비록 헐벗은 가지들뿐이지만 威容은 變함이 없다. 크고 오래된 나무는 單純한 나무가 아니다. 예부터 반가 班村의 自存과 威勢를 이들 古木巨獸가 象徵해왔기 때문이다. 萬若 이 銀杏나무가 없다면 綠雨堂의 氣品인들 穩全할 수 있을까.

    덕음산을 뒤로한 녹우당은 마을의 가장 안쪽에 앉아 있다. 앞은 드넓은 논밭이다. 尹善道가 直接 심었다는 榧子나무들이 집을 護衛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榧子나무가 쏴 소리 내며 흔들렸는데 이 소리가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 같다고 해서 綠雨堂이라고 했단다. 소리에 色을 입히고 形象으로 바꾼 絶妙함에도 옛사람의 멋이 있다.

    여러 채의 祠堂과 舍廊채, 안채, 行廊채 等으로 構成된 尹善道 古宅 中에서도 舍廊채인 녹우당은 가장 특별한 집으로 일컬어진다. 이 집은 孝宗 賃金이 王世子 時節 스승이었던 尹善道를 위해 水原에 지어주었던 것을 尹善道가 82歲 되던 해 只今의 자리로 옮긴 來歷을 갖고 있다. 仔細히 보면, 기와지붕이 겹으로 돼 있는 집채가 있는가 하면 처마까지 二重으로 된 집도 있는 이 마을의 高價들은 南道 特有의 輕快함을 지니면서도 本來의 堂堂함을 잃지 않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海南에서 海南 尹氏의 基盤을 닦은 人物은 尹善道의 高祖夫人 魚樵隱(漁樵隱) 尹孝貞(尹孝貞)이다. 그는 海南의 이웃인 康津에 살았는데 當代 拒否이던 海南 哨戒 鄭氏 정호장(鄭戶長)의 외동딸과 結婚, 정호장의 財産을 물려받고 一躍 巨富가 됐다. 그 뒤 海南 渡江 金氏의 땅이었던 이곳 연동리 마을로 移住해 왔다고 한다.

    海南을 찾는 이는 꼭 들른다는 尹善道 古宅. 사람들은 왜 이곳을 찾고 또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돌아가는 것일까. 어린 時節 敎科書에서 만났던 人物이 살았던 곳에서 갖는 文化的 感興이 각별해서? 富와 名譽를 두루 주었다는 明堂의 地氣를 살피기 위해? 아니면 옛집들이 풍기는 時間의 냄새와 雰圍氣가 좋아서? 이런 質問은 곧 나 自身한테로 돌려지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스스로 答하기를 保留한다. 땅끝의 궁벽진 고을에 이런 人文的 遺産이 保存돼오고 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旅館이며 食堂과 賣店들이 있는 集團 施設區域에서 大興寺 절間까지 가는 길은 꽤나 멀다. 겨울철엔 이곳을 來往하는 車便도 없다. 그러나 우거진 숲이 터널을 이루고 溪谷 물이 따라 흐르는 이 길은 즐겨 걸음을 나선 이들에겐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길이 된다. 예전에 있던 便宜施設이 罪 撤去됐는데 遺書 깊은 기와채 旅館 유선장이 예전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열린 大門으로 들어가 花壇이 있는 마당을 한 바퀴 돌아본다. 햇빛을 받고 있는 醬독臺뿐만 아니라 臺돌에 얹힌 손들의 신발까지 정다워 보인다. 旅館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大興寺 一柱門을 만난다. 울퉁불퉁한 頭輪山 봉우리들도 멀리 쳐다보인다.

    溪谷 따라 걷는 숲 터널

    都大體 어느 느티나무가 그런 못된 버릇을 가졌고, 그런 가슴앓이로 속까지 텅 비었단 말인가. 一柱門으로 가기 前, 어느 詩人이 일러준 대로 개울가의 古木들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그런데 피按蹻 아래쪽 유선장 旅館 담牆을 감고 도는 개울 兩옆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한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 기둥에 횅하니 구멍이 나 있는 模樣도 마찬가지다. 마침내 나무들을 둘러보던 내가 푸푸, 웃고 만다. ‘자발없는 觀淫症’을 가진 者는 개울가 느티나무가 아니라 굳이 그것을 찾으려는 나 自身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下 무더운 한여름 밤 네댓 아낙 놀러 나왔지.

    大興寺 피按蹻(彼岸橋) 밑 으늑한 개울가의, 말추렴 반지빠른 마흔 뒷줄 아낙들이 푸우 푸 멱을 감았지. 유선장 감고 도는 가재 물목 돌팍 위에 웃통이며 속옷이며 훌훌 벗어 던져놓고 멱 감았지, 멱을 감았어. 미어질 듯 豐滿한 샅이며 臀部 이리 움찔 저리 움찔, 출렁거리는 앞가슴을 홀라당 드러내고 멱을 감았지. 접시形 젖가슴에 圓뿔꼴 留防하며 半球形 사랑의 鐘 감긴 달빛 풀어내고 물장구 첨벙첨벙 멱 감는 아낙네들 곁눈질하던 저 느티나무, 아니 볼 것 훔쳐다 본 자발없는 觀淫症 느티나무. 벌거숭이 女人네들 속살 몰래 보기 送球하여 아으! 타는 가슴 쓸어내리다, 千年토록 쓸어내리다,

    횅허니 도둑맞은 드키 속이 저리 비었대.

    - 윤금초 時 ‘大興寺 속 빈 느티나무는’ 專門

    에로티시즘 云云을 떠나서 詩가 재미나서 잘 읽힌다. 느티나무를 陰險한 老人네로 擬人化한 手法이 그럴싸할 뿐만 아니라 멱 감는 女人네 그림이 卓越하다. 허나 느티나무 處地에선 抑鬱하기 짝이 없다. 歲月 때문에, 病蟲害로 인해 속이 뚫렸건만 人間 女便네들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다니 이런 몹쓸! 그리고 궁금症은 따로 있다. 왜 何必이면 大興寺 절門 앞 느티나무란 말인가?

    최학

    1950年 慶北 慶山 出生

    고려대 國文科 및 大學院 卒業

    1970年 경향신문 新春文藝 小說 當選

    創作集 ‘暫時 머무는 땅’ ‘食口들의 歲月’ 等

    長篇小說 ‘西北風’ ‘안개울음’ ‘彌勒을 기다리며’ ‘和談明月’ 等


    무슨 話頭(話頭)라도 되는 양, 절 마당을 걸을 때도, 頭輪山 봉우리를 쳐다보면서도, 추운 날 푸른 잎을 꼿꼿이 세운 芭蕉 잎을 보면서도 문득문득 그 質問을 해보았는데 結局 돌아온 내 答辯은 에라이,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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