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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하게 젖은 꽃잎’ 닮은 詩人 김선우|新東亞

‘촉촉하게 젖은 꽃잎’ 닮은 詩人 김선우

“詩心 차올라 온몸 간질거리는 거, 꾹 참는 즐거움을 아세요?”

  • 원재훈 是認 whonjh@empal.com

    入力 2008-07-09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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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우의 詩는 여린 듯 强烈하고 수줍은 듯 官能的이다. 그女의 詩에서 절로 배어나오는 물氣는 어둡고 따뜻한 子宮 속에서 출렁거리는 羊水에 가깝다. 그女의 女性性이 發散하는 새로운 빛은 이 羊水의 豐饒로움에서 비롯된다.
    ‘촉촉하게 젖은 꽃잎’ 닮은 시인 김선우
    詩人 김선우(金宣佑·38)를 만날 날짜를 미리 잡아놓고, 中國으로 一週日間 踏査旅行을 떠났다. 中國 旅行을 함께 할 一行 둘은 큰 旅行가방을 들고 空港에 나타났다. 나는 旅行가방은 따로 準備하지 않았고, 平素 메고 다니던 베낭에 옷 한 벌과 手巾 한 張, 그리고 김선우 詩集 한 卷과 노트, 鉛筆을 담았다.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니 짐이라기보다 가벼운 날개 같았다. 一行 中 하나가 내 가방을 보더니 自己는 暫時 外出을 할 때에도 그것보다는 큰 가방을 든다며 웃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光化門으로 暫時 外出하는 듯했다.

    나는 旅行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어디 가는 게 싫다. 事實은 房에 쇠窓살을 박아놓고 스스로를 監禁하고 싶은 心情이다.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자꾸만 나가서 놀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番 旅行은 安重根 義士의 자취를 찾아가는 踏査旅行이기에 일에 가깝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急한 일들이 밀려 있는데도 勇氣를 냈다.

    마음에 맺힌 시들

    막상 하얼빈行 飛行機를 타자 마음은 무거웠지만, 只今 아니면 또 언제 가보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더라도 짐을 들기 싫어하는 내가 김선우 詩集을 넣은 것은 그女의 詩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女의 詩를 읽으면서 詩를 섬세하게 읽은 지가 오래됐구나 싶었다. 特히 後輩 詩人들의 詩는 어느 사이엔가 내 關心에서 멀어졌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런 내 마음에 김선우의 詩가 몇 篇 쏙쏙 들어왔다.

    土담 아래 飛石치기 할라치면



    악아, 놀던 돌은 제자리에 두거라

    남새밭 매던 할머니

    원추리 꽃 노랗게 高왔더랬습니다.

    뜨건 개숫물 함부로 버리면

    땅속 微物들이 죽는단다

    뒤안길 돌던 하얀 가르마

    햇귀 곱게 남실거렸구요.

    -市 ‘할머니의 뜰’ 中에서

    처음엔 詩를 눈으로만 읽다가 어느 瞬間부터 마음에 맺힌 詩들을 조용히 소리 내어 읽었다. 그女의 詩를 소리 내어 읽으면 氣分이 좋아져 흥얼거리기도 한다. 나는 踏査를 하는 동안에 或是 지루한 時間이 생긴다면 그女의 첫 詩集을 소리 내어 읽어볼 생각이었다.

    하얼빈에 到着해서는 그女의 詩集을 읽지 못했다. 하루 이틀이 바쁘고 고단했다. 하얼빈 日程을 끝내고 다롄으로 가는 밤 列車 안에서야 나는 그女의 詩集을 꺼내들었다. 밤 9時에 汽車를 타서 잠이 들었고, 새벽 2時쯤 깨어 列車 寢臺머리 맡에 있는 작은 等을 밝혔다.

    車窓으로 보이는 밖은 어두웠다. 車窓은 거울이 되어 내 모습을 비춰줬다. 暫時 내 모습을 보았다. 只今 우리는 滿洲 벌판을 지나고 있다. 내 옆에서 잠자던 一行이 말했다. 滿洲 벌판, 저기 어디쯤에서 ‘개장수’들이 말을 타고 달렸을 것이다. 이 汽車길로 安重根 義士가 뤼순으로 押送됐다. 그는 窓밖을 조금 보다가 門을 열고 담배를 피우겠다면서 나갔다. 나는 暫時 安重根 義士 생각을 하다가 김선우의 詩集을 아무 생각 없이 펼쳐들었다.

    옛 愛人이 한밤 電話를 걸어왔습니다.

    自慰를 해본 적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했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벌 나비를 생각해야만 꽃이 봉오리를 열겠니

    되물었지만, 그는 理解하지 못했습니다.

    얼레지…

    - 時 ‘얼레지’ 中에서

    ‘촉촉하게 젖은 꽃잎’ 닮은 시인 김선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시다. 이 詩를 읽으면 나는 사라지고 詩 속에 나오는 벌 나비라는 男性 或은 昆蟲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詩는 내가 좋아하는 시다. 왜냐하면 나의 옛 愛人을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自身과 追憶과 直接 關聯이 있는 詩를 읽다가 그 追憶이 떠오르면, 그 詩는 읽는 이에게 慰安이 된다.

    나는 한때 詩를 쓰면 性急하게 愛人에게 電話를 걸어 읽어주곤 했다. 한밤中이었다. 受話器를 통해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주면 間或 그女는 歎息 어린 한숨을 내뱉곤 했다. 그女는 아마도 딱히 내 詩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戀人이 詩를 읽어주는 그 목소리가 좋아서였을 것이다. 그 瞬間 우리 둘 사이에는 작은 宇宙가 誕生한다. 둥글고 圓滿하고 適當히 어두운 空間이다. 그 空間에서 소리를 내면 共鳴이 일어나 멀리 퍼져나간다. 그때 戀人의 목소리는 마르크스나 레닌의 文章일지라도 달콤하게 들리게 마련이다. 間或 그女의 歎息 소리에 젊은 나는 저절로 勃起됐다.

    나는 ‘물방울의 記憶’이라는 詩를 쓰던 날, 바로 그女에게 電話를 걸어 읽어준 적이 있다. 그女가 내 詩를 들으면서 짧게 呻吟소리를 내자 나는 벌 나비처럼 그女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女의 꽃봉오리는 활짝 열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番은 詩를 읽어주다가 房門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그女의 房으로 달려간 적도 있다. 20年이나 지난 일이다. 아니, 20年이 더 지난 일이다.

    滿洲 벌판을 지나는 中國 列車 寢臺칸에서 누운 姿勢로 詩集을 들고 낮게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 詩集을 덮고 뒤表紙를 보았다. ‘詩힘’ 同人이자 그女의 좋은 先輩인 나희덕 詩人이 뒷말을 썼다. 김선우의 詩를 잘 보고 쓴 詩人의 直觀이 돋보이는 글이다.

    ‘촉촉하게 젖은 꽃잎을 聯想시키는 김선우의 詩는 여린 듯 强烈하고 수줍은 듯 官能的이다. 그女의 詩에서 저절로 배어나오는 물氣란, 젊음의 所産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어둡고 따뜻한 子宮 속에 출렁거리고 있는 羊水에 가깝다. 그女의 女性性이 發散하는 새로운 빛은 이 羊水의 豐饒로움에서 비롯된다. 그 속에 숨쉬고 있는 너무도 많은 누이와 어머니와 老婆들은 各其 胎兒이면서 同時에 産母이고 産婆이기도 하다. 그 둥근 生命들을 産卵하기 위해 그女는 只今 運籌(雲住)에 누워 있다. 곧 물의 살을 찢고 눈부신 가시蓮꽃이 필 것이다.’

    雲住寺 가시蓮꽃

    稀貴하게도 植物 中에서 1屬1種인 가시蓮꽃, 크게는 蓮꽃잎이 2m가 넘기도 한다. 언젠가 全羅道 어디에서 가시蓮꽃을 본 적이 있다. 그 가시蓮꽃은 부처가 이 世上에 와 暫時 앉았다 간 자리처럼 넓고 컸다. 覺醒한 부처의 마음자리는 그 크기와 形態를 斟酌할 수 없는 것이지만 巨大한 가시蓮꽃잎을 보면, 그 자리에서 피어 오른 蓮꽃을 보면 人間의 覺醒이란 저런 것이지 싶을 때가 있다. 蓮꽃잎 中央으로 피어오른 가시蓮꽃은 官能的이면서도 超越的이다. 김선우는 저런 詩를 쓰는구나 싶다. 나는 아주 暫時 그 蓮꽃잎에 맺히는 물방울이 됐다가 떨어졌다. 김선우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가시蓮꽃을 찾아 運籌로 떠난 模樣이다.

    가시蓮꽃을 찾아 單 한 番도 가시蓮꽃 피운 적 없는 雲住寺에 가네 慘酷한 얼굴로 나를 맞는 佛頭, 오늘 나는 스물아홉 살.

    二十四萬七千餘 時間이 나를 通過해갔지만 나의 時間은 늙은 별에 닿지 못하고 내 마음은 무르팍을 向해 種種 詐欺를 치네 엎어져도 무르팍이 깨지지 않는 무서운 날들이 輓歌도 없이 흘러가네

    運籌에 올라, 오를수록 깊어지는 골짝, 꿈꾸는 와불을 보네 오늘 나는 열아홉살,

    잘못 울린 닭 울음에 서둘러 昇天해버린, 石工의 정과 망치 티끌로 吃語졌네 거기 일어나 앉지 못하고 와불로 누운 男女가 있어 출렁, 南道 땅에 東海 봄 바다 물 밀려오네

    참 따뜻하구나, 물속에 잠겨 곧 피가 돌겠구나

    걷지 못하는 부처님 귀에 대고 속삭였네 달리多쿰, 달리多쿰! 누가 내 귀에 대고 少女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하였지만

    -市 ‘雲住에 눕다’ 中에서

    時 몇 篇을 읽고 詩集을 펴서 얼굴을 가리고 다시 잠을 請했다. 그날 나에게 滿洲 벌판은 보이지 않았다. 但只 어둠뿐이었다. 그 터널과 같은 어둠 속에서 夜間列車는 나를 限없이 먼 곳으로 데리고 가는 空間이었다. 잠결에 덜거덩거리는 汽車 바퀴 소리는 ‘일어나라, 일어나라’라는 幻聽으로 들리기도 했다. 滿洲 벌판을 달리는 뚜거덕거리는 말 발자국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선잠이 들자 寢臺가 棺처럼 느껴지면서 몸이 무거워졌다. 이대로 어디론가 갔으면 싶었다. 이대로 그냥 어디론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어디론가… 하다가 까마득히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머물고 싶지 떠나고 싶지 않았다.

    꾀꼬리버섯

    ‘촉촉하게 젖은 꽃잎’ 닮은 시인 김선우
    中國 旅行을 마치고 서울에 到着해서 하루 쉬고, 土曜日 午前 11時30分에 망원동 所在 커피하우스 ‘感’에서 그女를 만났다. 커피 香이 좋은 집이다. 젊은 主人이 갓 볶아낸 커피는 망원동 地理에 어두워 駐車할 空間을 찾아 헤매다 짜증난 氣分을 喚起시켰다. 그女는 조금 늦게 나타났다. 約束時間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활짝 웃었다. 이미 몇 盞의 커피를 마셔 몸에 스며든 카페인 탓인지 氣分이 좋았다.

    그동안 사람들에게서 그女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握手를 하는데 全혀 語塞하지 않았다. 첫印象이 무척 善하고 눈망울이 크고 맑았다. 于先 只今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그女는 왠지 한군데 머물러 있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只今은 龍仁에 살고 있어요. 아는 先輩가 暫時 비운 집에 머물고 있지요. 그 先輩가 돌아오면 다시 春川이나 原州 같은 곳으로 가려고요.”

    그女는 작은 都市들을 좋아한다. 斟酌한 대로 亦是 遊牧民이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는 게 좋다면서 自己 집을 갖는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럼 當然히 짐도 적으리라 斟酌해본다. 遊牧民들이 철마다 居處를 옮기기 위해 집을 만들지 않듯, 스님들이 바랑 하나 메고 雲水衲子의 길을 떠나듯, 그女 亦是 작은 가방 하나에 自己 짐을 다 꾸릴지도 모를 일이다.

    길 위에서 詩를 노래하는 詩人들이 있다. 世上의 모든 聖者는 길 위에서 죽었다. 그들에게 집은 暫時 머물다 가는 房일 뿐이다. 그女의 첫 番째 房인 幼年時節이 궁금했다. 詩人이 태어나고 成長한 곳은 江原道 江陵이다. 山과 바다, 달과 물방울이 그곳에 있었다. 그女의 音聲이 물방울처럼 톡톡 터지면서 좁은 커피하우스가 향기로워진다. 그래 그女의 모습은 새벽이슬에 젖은 꽃잎 같다.

    “山과 바다를 맨발로 다니면서 어린 時節을 보냈어요. 아이들과 깨 벗고(옷 벗고) 마구 쏘다녔지요.”

    태어난 곳은 江陵 外郭에 있는 ‘당두마을’이다. 엄마가 시집올 때 正말 숟가락, 젓가락밖에 없었던 가난하고 疏外된 마을이었다. 하지만 어린 선우에게는 어머니의 子宮처럼 充滿한 空間이었다. 당두집 草家 지붕이 조금씩 함석집 지붕으로 變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女는 成長한다.

    山에서 놀다가 自轉車를 타고 가까운 바다로 나가 놀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를 살피면서 비가 올지 안 올지를 豫感했고, 비가 온 다음날에는 山에 올라가 버섯을 따서 먹기도 했다. 꾀꼬리버섯을 따서 먹었다고 하는데 그 버섯이 어떤 버섯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辭典을 찾아보니 美國과 유럽에서 널리 流通되는 有名한 버섯이었다. 그 꾀꼬리버섯을 어린 時節에 칼국수에 넣어 먹었는데 맛있다고 일러줬다.

    官能的인 詩語

    電氣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幼年時節을 보낸 어떤 小說家는 콘크리트 壁에서 온갖 環境 호르몬에 시달리면서 學院으로만 轉轉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삶의 耐性이 생길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뼈가 굵어지고 살이 올라오는 그 時期에 흙이나 바다에서 풍겨오는 훅한 냄새를 맡으면서, 山에 올라가 비 온 다음날 고개를 내민 꾀꼬리버섯을 뜯어 칼국수에 넣어 먹으면서, 사람은 이렇게 자라야 되는 거 아닌가. 山과 바다와 달과 물방울 속에서 말이다.

    只今 우리들은 닭고기, 쇠고기 桶조림처럼 자라고 있다. 하루 終日 닭欌 속에 갇혀서 밤에도 낮인 줄 알고 白熱燈 아래에서 부지런히 飼料만 먹는 食用 닭들. 마당에 돌아다니는 벌레 한番 쪼아보지 못하고 超高速으로 자란 닭들은 다리도 날개도 못 쓰고 바로 고기가 되어버린다. 쇠고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고기를 먹는다. 병든 쇠고기, 닭고기를 먹고 몸이 병드는 건 둘째 問題인지도 모른다.

    더 深刻한 問題는 우리의 靈魂이 그렇게 飼育당하고,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다는 點이다. 靈魂이 병든 고깃덩어리가 되는 世上에서 詩人은 百科事典에나 나오는 存在가 되어버린다. 時局이 이래서인지 나는 김선우가 조근조근 이어가는 어린 時節 이야기를 集中해서 들었다. 그곳은 우리가 서둘러 돌아가야 할 곳이다.

    “그렇게 어린 時節을 보내고 初等學校 2學年 무렵, 당두집에서 江陵 市內에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移徙를 갔어요. 移徙하던 날, 트럭 하나가 앞장을 서고, 엄마는 함지박을 이고 이불을 지고, 우리 姊妹들은 집안의 작은 物件 하나씩 들고 또랑또랑 엄마 뒤를 따랐지요. 移徙를 가서 보니 기와집이었어요. 마당에 厚朴나무와 石榴나무가 있었어요. 그저 平凡한 작은 기와집이었는데, 엄마는 무척 幸福해하셨지요. 하지만 제겐 江陵이라는 都市, 卽 市內와는 가까워졌지만 山에서는 멀어졌다는 剝奪感이 생겼어요.”

    ‘촉촉하게 젖은 꽃잎’ 닮은 시인 김선우
    당두마을에서 교동마을로 移徙를 가는 風景이다. 김선우는 이 집을 ‘교동집’이라고 불렀다. 교동집에서 高等學校를 卒業할 때까지 있었다. 初딩 時節부터 高딩 時節까지 지냈으니 교동집은 詩人에게는 매우 重要한 空間이다. 김선우 詩에 나오는 엄마, 할머니, 女人들은 이 교동집에 있는 厚朴나무, 石榴나무와 같은 存在다.

    大膽하고 官能的인 詩語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女가 高校時節부터는 조금 自由奔放한 文學少女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슬쩍 文學을 일찍 始作했느냐고 물었다. 나와 내 親舊들은 高校時節에 조금 早熟하게 놀았으니까, 그리고 그 時節의 文學少女들度 조금은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그女는 學校와 집에 線을 그어놓고 그 線을 넘어가지 않는 模範生이었다.

    집 近處 男子高等學校 앞 鄕校에 오래된 銀杏나무가 있었다. 온통 男學生들의 무거운 視線을 받으면서 그 길을 지나가곤 했는데, 日曜日처럼 學生들이 없는 날이면 그 銀杏나무를 보러갔다. 그리고 亦是 自轉車를 타고 가서 본 鏡浦 난설헌 生家와 鏡浦 바다 그리고 眼目 바다를 이야기했다. 眼目 바다는 꼭 한番 가보세요 라고. 眼目 바다에 간다면 오랜만에 詩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까,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든다고 詩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女는 문득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只今은 自身의 熱烈한 支持者인 아버지는 그 時節엔 김선우가 文學을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模範生으로 지낸 高等學校 時節에 唯一한 傷處가 있어요. 願하는 學校에 進學하지 못한 거지요. 아빠가 初等學校 校長先生님이셨는데, 우리 일곱 아이를 데리고 힘드셨을 거예요. 只今에야 理解되지만 學費 때문에 國立大 師範大學 아니면 進學不可라는 아빠 말씀에 처음으로 제가 反旗를 들었어요.”

    오줌 멀리 보내기

    ‘女子가 中·高等學校 先生으로 살면 最高의 人生이다’라는 아버지의 생각은 18歲 김선우의 가슴에 큰 傷處로 남았다. 그리고 兄弟가 모두 일곱이라는 말, 딸이 여섯이고 막내가 아들이라는 末, 大學 進學 問題를 包含한 집안의 모든 精誠은 막내인 아들에게 쏠린다는 말, 거기엔 事緣이 있었다. 큰오빠가 中學校 때 事故死를 當하자 딸만 셋인 어머니는 아들을 낳으려 했다. 그리고 김선우를 낳았다. 胎夢과 産母의 걸음걸이 等等 何如間 김선우는 當然히 아들인 줄 알고 태어났다. 自身의 胎生 이야기를 그女는 詩로 노래했다.

    오빠가 죽지 않았으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겠지요? 어린 내가 묻고 늙은 내가 물끄러미 죽은 나를 바라본다 내 몸속의 날갯짓들을 살려내려고 햇살이, 봄 햇살이 자꾸 내 가슴을 간질러 오빠가 죽은 해 아버지가 심었다는 늙은 복숭아나무가 자꾸 津물을 흘린다 봄 뱀이 둥치 아래 허물을 벗어놓고 사라지고 아픈 가지 끝에서 虎狼거미가 거미줄을 뽑고 如前히 나는 발과 다리가 시리지만, 햇살 알레르기를 앓는 붉은 斑點 몇 낱이 내 가슴에 蓮꽃을 피웠다 엄마가 다시 태어나려는지 꽃 진 자리가 換腸하게 가렵고, 늙은 복숭아나무의 시름, 그 다디단 津물 옆을 벌들이 난다.

    - 時 ‘다디단 津물’ 中에서

    그女의 이름 亦是 線숙이나 선예가 아닌 선우다. 人物 檢索을 해보면 男子가 수두룩하다. 김선우는 집안에서 男子로 태어났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女는 女子로 태어났고, 遊牧民이 됐고, 詩人이 됐다.

    只今이야 지나간 옛이야기가 됐지만, 집안에 代를 이어야 할 男子가 꼭 必要하던 時節, 김선우에게는 그것이 傷處로 남은 模樣이다. 그래서인지 그女는 男子처럼 자랐다고 했다. 男子아이처럼 옷 입고, 百日 寫眞, 돌 寫眞을 찍었다. 男子아이들과 ‘깨 벗고’ 놀았다.

    “아주 어릴 적 男子아이들과 노는데, 애들이 서서 오줌 멀리 보내기 놀이를 하더라고요. 저도 따라 하려고 하는데 시켜 주질 않아서, 洞네 감나무 아래에 가서 오줌 멀리 보내기를 練習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멀리 나가지는 않고 속옷이 다 젖어서 그걸 숨기고 했던 記憶이 나네요. 속상했어요.”

    나는 ‘鮮于氏, 요즘에는 오줌 방울 튈까봐 便器에 앉아서 小便 보는 男子도 많아요’ 하려다가 말았다. 그렇다면 이 模範生을 詩人으로 만든 사람이 있지 않나 싶었다. 詩人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긴 하지만, 곁에 있음으로써 文學의 門을 열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感性的으로 銳敏한 成長期에 멘토 같은 學校 先輩나, 讀書狂인 언니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둘째언니의 出家

    김선우와 이야기를 第一 많이 나눈 사람은 열한 살 差異가 나는 둘째언니였다. 大學進學 問題로 아버지와 갈등할 때, 둘째언니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女는 김선우가 高等學校 3學年 때 ‘出家’를 했다. 내가 ‘詩集’을 갔느냐고 물어보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니요. 山으로 出嫁했다고요. 스님이 됐다고요”라고 했다.

    나는 왜 女子가 出家하면 시집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男子라면 當然히 山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나 亦是 男性 中心의 思考方式에 절어 있구나 싶었다. 아이고 이 事態를 어떻게 收拾해야 하나 싶은데 그女는 빙긋 웃으면서 둘째언니 이야기를 繼續했다. 어머니는 佛子이긴 하지만 子息이 出嫁하는 걸 挽留했다. 하지만 김선우는 어릴 적부터 宗敎的인 氣質이 多分했던 언니의 出家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學僧이 되어 只今도 山 속에서 工夫하는 언니는 幸福하게 살고 있다.

    김선우는 結局 아버지 뜻대로 春川에 있는 國立강원대학교 師範大學에 進學한다.

    “그때 山으로 올라간 둘째언니가 있었으면 제게 큰 힘이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니는 分明히 저를 應援했을 거예요.”

    둘째언니가 文學徒였다. 詩와 戱曲을 쓰던 文學도. 언니의 冊을 통해 冊을 읽기 始作했고, 高校時節에 그女는 讀書狂이었다. 그때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만났다고 했다. 내 親舊들 中에는 高校時節에 읽은 讀書量으로 只今을 버티는 親舊가 많다.

    그女 亦是 그 時節에 冊을 엄청 읽은 模樣이다. 讀書를 통해 만난 수많은 靈魂이 자연스럽게 그女의 앞길을 열었을 것이다. 그女는 비록 눈치 채지 못했을지라도, 김선우라는 꽃잎을 촉촉하게 적셨을 것이다. 김선우 詩集을 읽다 보면 드문드문 나타나는 佛敎 이야기들은 둘째언니와 無關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冊, 卽 좋은 靈魂을 만나고 나면 가슴이 젖어 저절로 배어나오는 ‘거시기’가 있다. 그게 詩가 되기도 小說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詩人이 될 거라는 具體的인 생각은 하지 못했다. 市는 大學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왜 詩를 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詩를 發表한 記憶은 나요.”

    꿈꿀 수 있는 世上

    그女는 大學時節을 ‘極左 빨갱이’로 살았다. 동기는 偶然히 보게 된 1980年 光州 寫眞. 寫眞 한 張이 그女를 거리로 내몰았다. 어린 時節 黨두동, 少女時節 교동 집에서 形成된 自然親和的인 世界觀은 極甚한 龜裂을 맞게 된다. 世上은 비가 오고 나면 버섯이 피는 自然스러운 世上이 아니었다. 그곳은 온갖 暴力과 더러운 欲望으로 가득 찬, 부숴버려야 할 對象이었다. 그女는 生의 벌桶을 건드려버린 것이다. 터진 벌桶에서 튀어나온 벌떼가 그女의 여린 皮膚에 鍼을 꽂았다. 둘째언니가 出嫁를 했듯, 그女 亦是 現實 世界를 救하기 위해 거리에 나가 口號를 외치며 나름의 生을 熱心히 산다.

    “한 世界가 完全히 박살난 거지요. 내가 알고 싶어하는 世界 以外에 또 다른 世界의 殘酷함을 보고 말았어요.”

    大學엔 ‘純粹文學’ 동아리만 있었다. 그래서 그女는 文藝運動 동아리를 만들어서 街두時를 쓰기 始作했다. 運動圈 詩人이 된 것이다.

    “그 時節 저는 두 個의 詩 世界를 가지고 있었어요. 하나는 거리에서 쓴 街頭視, 하나는 조용히 內面으로 沈潛한 뭐랄까, ‘日記帳 時’라고나 할까요. 저에게 詩를 發表하도록 도와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純粹文學 동아리 親舊들이었어요. 그들은 저희들의 詩를 보고 그게 詩냐, 運動家냐, 文學性이라곤 全혀 찾아볼 수 없다. 뭐 이런 論旨의 批判을 한 거지요. 그래서 제가 그래, 文學性이라는 게 뭔지 보여주마라는 생각으로 學內 文學賞에 應募했어요. 文學賞이니까 文學性이 있는 作品이 뽑힐 거잖아요. 學內 文學賞이었지만 道內에 있는 다른 大學에서도 應募할 수 있는 規模의 賞이었기에 公正性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時 ‘검불을 태우며’로 當選되고, 그女의 意圖대로 街두時가 아닌 文學性이 있는 詩(?)를 쓴다는 걸 보여줬다. 只今 되돌아보면 퍽 유머스러운 場面이다. 文學性이란 무엇인가. 集會時, 街두時가 됐건 勞動解放市價 됐건, 抒情詩가 됐건 詩는 이러한 잣대로 잴 수 없는 깊이와 높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보다 大學生 김선우에게 다가온 것은 그 詩를 보고 學生들이 보내 온 팬레터였다. 自身의 詩를 읽는 讀者가 있다는 事實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땐 누가 넌 뭐가 되고 싶니, 라고 물어보면 그냥 ‘좋은 사람’이라고만 했어요. 좀 바보스러웠지요. 具體的인 職業에 對한 생각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都大體 人間이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根本的인 質問을 하게 되었어요. 卒業을 하고 나서도 世上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었고, 또다시 아프고, 그래서 사는 게 힘들어서 내가 正말 꿈꿀 수 있는 世上을 만들고 싶다, 그게 없다면 내 生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詩人이 되려고 했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拒否한다면’

    暴雪注意報 내린 正初에

    大關嶺 옛길 오른다

    記憶의 斷層들이 피어올리는

    各樣各色의 얼음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

    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 -

    싸아하게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僞裝 쓸개

    十二指腸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컥 올라온다

    至毒히 뜨거워진다는 건

    氷點에 到達하고 있다는 것

    붉게 言 山茱萸 열매 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론 換腸할 무언가 그리워져

    正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氷河의 大關嶺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市 ‘大關嶺 옛길’ 專門

    1996年 ‘創作과 批評’ 겨울號에 이 詩 以外에 10篇의 詩를 같이 發表하고 그女는 詩人이 됐다. 職業이 생긴 것이다. 至毒하게 뜨거워져 氷點에 到達한 그女의 詩世界는 이미 그女의 詩를 기다리던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좋은 反應을 얻었다. 첫 詩集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拒否한다면’을 出發로 ‘桃花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세 卷의 詩集을 냈고, 2004年 現代文學賞을 받았다. 登壇한 지 10年이 지나도록 3卷의 詩集을 냈으니 作家로서 寡作(寡作)이다. 하지만 이 세 卷의 詩集은 곁에 두고 있으면 氣分이 좋아지는 좋은 詩集이다. 詩人이 되고 나서 그女의 人生은 어떤 變化가 있었을까.

    “于先은 市價 혼란스럽던 나를 救했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詩를 쓰면서 傷處를 治癒할 수 있었고, 때마침 適切한 時期였어요. 詩를 쓰면서 내 몸과 自我가 함께 成熟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幸福했어요. 첫 詩集을 내고 나서 좋은 말도 많이 들었고요. 그리고 原稿料 있잖아요. 첫 原稿料를 받아들고 놀랐어요. 그때부터 消費에 對한 欲望을 줄이면서 조금 적은 돈으로 살려고 해요. 남 하는 거 다 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사는 거지요. 그런 헛된 欲望에서만 벗어나도 사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건 아니잖아요.”

    登壇하고 나서부터 그女는 詩人으로 自給自足하면서 살고 있다. 大學을 卒業하고 結婚도 하지 않았으니 自己 먹을 건 自己가 챙겨야 되는데, 아무리 消費를 줄여도 김선우같이 예쁜 女子가 특별한 職業 없이 3卷의 詩集으로 10年을 살 수는 없는 일.

    “小說을 한番 써보라”

    그女는 新聞 連載를 비롯한 散文을 썼다. ‘물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事物들’ ‘우리, 사랑할래요?’ ‘내 입에 들어온 雪糖 같은 키스들’을 비롯해 제법 많은 散文을 썼고, 제법 팔았다. 讀者는 그女를 詩와 더불어 散文을 잘 쓰는 作家로 認識하고 있다. 그女의 散文精神은 詩人의 餘暇가 아니다. 그女의 散文은 詩와는 또 다른 魅力이 뚝뚝 떨어진다. 呼吸이 깊고 정갈하면서 할 말 다하는 능청스러움도 있고, 官能的이면서 때론 너무나 여리고 섬세한 感覺이 읽는 이를 놀라게 한다.

    어느 날, 小說家 조세희 先生이 新聞에 실린 그女의 짧은 글을 보고 電話를 했다.

    “이 글을 쓴 詩人이 누군지 궁금해. 만나서 한番 이야기하고 싶네.”

    文段 大先輩이자, ‘난쏘공’의 作家 조세희의 電話를 받고 가슴 설레지 않을 後輩가 어디 있을까. 그女 亦是 너무나 기쁜 일이었지만 숫氣도 없어, 電話 받고 달랑 달려갈 配布가 없었다. 어찌어찌 하다가 電話를 받은 지 3年 만에 조세희 先生을 뵙게 됐다.

    그 자리에서 조세희 先生은 김선우 詩人에게 “小說을 한番 써보라”고 했다. 그女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詩人에게 小說이라니… 제 詩集이 別로였나요?”라고 걱정스럽게 말하자 조세희 先生은 그런 意味가 아니라, 이 사람이 小說을 쓰면 뭔가가 나올 것 같아서 그런다고 말했다. 그리고 좋은 詩人이면서 좋은 小說家가 되는 일도 可能하다고 德談을 던졌다. 筆者가 듣기에 叡智力이 빛나는 말씀이다. 筆者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女는 3番째 詩集을 내고 나서는 바깥에 詩 發表하는 일을 自制하고 있다.

    “詩集을 내고 나서 印度에 3番째 旅行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詩人으로서 한 고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날이 갑자기 漠漠해지더군요. 3番째 詩集은 詩人으로 登壇한 지 10年이 되던 해에 出版했는데, 이제는 내게 餘裕가 必要하다는 自省을 한 거지요. 그동안 詩 請託이 오면 詩를 쓰고, 發表하고, 發表한 詩를 모아서 詩集을 내고 하는 일들이 形式의 틀에 갇혀 있어 답답했거든요. 그래서 當分間은 可能하면 詩 쓰는 時間을 줄이고 있어요. 그런데도 詩를 쓰고 싶은 마음이 차올라 온몸이 간질간질할 때가 있는데 꾹 참아요. 그 참는 時間도 幸福하고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느낀 것인데, 그女 周圍에는 妙한 緊張이 흐르고 있었다. 그 緊張感이 周圍의 空氣를 新鮮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緊張感을 터뜨리면서 그女는 말했다. 詩를 쓰고 싶은 마음과 참고 있는 마음이 서로 잡아당기고 있는 팽팽한 고무줄 같다. 그 時間 위를 그女는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다. 마음속에 詩想이 떠올라도 그 마음을 꾹 누르고 있으니 오히려 漸漸 더 詩를 쓰고 싶은 마음이 懇切하다. 보고 싶은 사람 못 보게 하면 換腸하는 거와 같은 理致다. 그女는 요즘 이런 느낌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뭔가 개운치 않다. 김선우가 但只 그러한 느낌만을 즐길 것 같지는 않다.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詩를 쓰지 않은 時間에 뭘 한 것일까. 그女가 말했다.

    “長篇小說 原稿를 실천문학사에 넘기고 只今 題目을 定하는 中이에요.”

    그럼 그렇지, 그女는 그間 長篇小說을 썼다. 그리고 그 原稿를 只今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建物 위層에 있는 實踐文學史에 넘겼다. 아하, 그렇구나 長篇小說을 썼구나. 뭔가 답답하던 가슴이 툭 터졌다. 어떤 動機가 있었을까. 그女는 淡淡하게 말해줬다.

    現代舞踊家 崔承喜

    그女가 쓴 어른들을 위한 童話인 ‘바리公主’를 읽고 한 映畫社에서 現代 舞踊家 최승희에 對한 시나리오 作業을 付託했다. 平素 최승희에 關心이 있었던 그女는 시나리오 作業을 했다. 平壤까지 가서 최승희에 對한 取材를 해 시나리오를 써서 넘겼다. 그런데 막상 시나리오를 쓰고 나니, 이 物件을 小說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는 文學的인 想像力이 制限될 수밖에 없기에 마음이 답답했다. 그 마음을 小說로 풀어낸 것이다. 시나리오 作業을 통해 이미 小說을 쓰기 위한 모든 準備는 끝난 狀態. 그女는 沈着하게 한 卷의 長篇小說을 썼고, ‘詩힘’ 同人이자 實踐文學史 編輯長인 손택수 詩人과의 因緣으로 小說을 실천문학사에 넘기게 된 것이다.

    나는 그女의 ‘바리公主’를 읽고 나서 그女가 小說을 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내가 期待했던 것보다 좀 늦게 作品이 나온 셈이다. 그女와 小說 題目에 對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눴다. 그女에게는 첫 長篇이니 한便으로는 緊張될 법하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그女는 문득, 아주 重要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 長篇小說을 쓰는 동안, 앞으로 쓰고 싶은 長篇小說이 3卷 程度 제 몸으로 들어왔어요.”

    이런, 그렇다면 이 長篇小說은 이제 그女 小說의 始發點인 셈이다. 이야기를 하다 궁금한 마음에 小說의 첫 文章이 뭐냐고 물었다. 그女는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조금 있으면 冊으로 읽을 수 있는데 뭘 그리 서두르나 싶었다.

    2011年은 舞踊家 최승희의 誕生 100周年이 되는 해다. 日帝 强占期에 태어나 6·25戰爭, 越北, 北韓 舞踊藝術가, 그리고 肅淸. 이미 日帝 强占期에 世界的인 舞踊家로 이름을 남긴 최승희는 우리 藝術家 中에서 獨步的인 位置에 있다. 그女에 對한 다양한 冊이 이미 出刊되었고 앞으로도 出版될 것이다. 그中에서 김선우의 小說이 우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女는 淡淡하게 말했다.

    “최승희는 어떤 意味에서든 그냥 사라질 수 없는 人物이에요.”

    몸속에 잠든 小說

    며칠 後 小說 題目이 ‘나는 춤이다’로 定해졌다는 連絡이 왔다. 6月 下旬頃에는 그女의 小說冊도 世上을 向해 던져질 것이다. 김선우는 自身의 몸속에 잠든 小說을 깨워 世上으로 내보냈다. 김선우에게 詩란 무엇인가, 小說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代身 이 詩를 引用한다.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時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專門

    그女의 文學은 꽃 피우는 일이다. 처음부터 그女 일이었다는 듯, 뜨겁고 아득하다. 김선우와 長時間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마시듯, 커피를 마셨다. 몸이 나른하고 正말 낮술에 醉한 것 같다. 中間에 돼지고기를 조금 먹기는 했지만 배는 부르지 않았다. 이제 時間이 되어 그女는 실천문학사로 올라가야 하고, 나는 地下駐車場으로 내려가야 한다. 내가 커피에 醉한 것 같아서인지 그女는 나를 배웅해주었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女子의 등을 보고 그女의 이름을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이야기를 마치고 헤어지는 길에 暫時 그女가 내 앞에서 걸어간다. 문득 “김선우!”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르지 않았다. 그女는 잘 가라고 人事를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실천문학사로 올라갔다.

    우물처럼 동그란 눈瞳子

    ‘촉촉하게 젖은 꽃잎’ 닮은 시인 김선우
    원재훈

    1961年 서울 出生

    중앙대 文藝創作科 大學院 卒業

    1988年 ‘世界의 文學’에 時 ‘恐龍時代’로 登壇

    詩集 ‘딸기’, 小說 ‘바다와 커피’, 散文集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來日이다’ 等


    그女와 이야기를 나눈 커피 집으로 다시 간다. 뭔가 떨어뜨린 거 같아서다. 내가 뭘 떨어뜨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周圍를 두리번거린다. 아무것도 없다. 나는 조금 前까지 이곳에서 그女와 이야기를 나눴다. 커피를 10盞 程度는 마셨나 보다. 케냐, 더치, 萬델링, 여러 種類의 커피를 다向하게 마셨다.

    한참 커피에 빠져 있을 때, 내가 로스팅韓 커피를 試飮하느라 낮술에 醉하듯, 커피에 醉해 初저녁에 뻗어버린 적이 있다. 문득 그 時節이 떠올랐다. 그 時節에 나는 커피에 關한 小說을 쓰고 있었다.

    椅子에 다시 앉아 김선우가 앉았던 자리를 본다. 김선우의 동그란 눈瞳子는 우물 같았다. 사람을 마주 본다는 거, 特히 눈瞳子를 바로 보고 이야기한다는 거, 참 오랜만이다. 난 이야기를 나눌 때, 普通 그 사람의 눈瞳子 조금 아래를 보고 이야기한다. 그게 便하다. 그런데 처음 만난 김선우와는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했다. 눈瞳子, 커피, 山, 바다, 고갯길, 그리고 김선우, 時, 커피, 향기로운 土曜日 午後였다. 일어나 걸어가는데 ‘내 다리뼈로 퉁소를 만들어줘’라는 김선우의 詩 句節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나지막히 슬픈 피리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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