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실현시켜주는 魔法師’ 정연두|新東亞

‘꿈을 실현시켜주는 魔法師’ 정연두

꿈이 現實, 假짜가 眞짜 되는 幸福한 위트

  • 정준모 美術批評家, 高陽文化財團 展示監督 curatorjj@naver.com

    入力 2008-07-04 17:18:0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멀티아티스트 정연두는 普通사람들의 素朴한 꿈을 실현시켜준다. 이를 위한 虛構的 裝置들이 實在보다 더 생생한 實在처럼 자리를 잡지만 觀客에게 일부러 빈틈을 보여주는 餘裕를 즐기기도 한다.
    ‘꿈을 실현시켜주는 마법사’ 정연두

    ▼ 1969年 慶南 晉州 出生<br>▼ 서울대 美大 彫塑科 卒業, 런던大學 골드스미스 칼리지 美術碩士<br>▼ 第2回 상하이비엔날레 아시아유럽文化相, 2007 올해의 作家賞 受賞

    사람은 누구나 希望을 갖고 산다. 希望은 바로 꿈이다. 꿈은 오늘이라는 時間을 來日로 延長시켜주는 힘이자, 來日까지 生命을 維持할 수 있는 根據이고 存在의 理由다. 더구나 民草들에게 꿈은 어렵고 힘들고 버거운 日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源泉이 된다. 來日이 없다면, 그리고 그 來日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사람들은 모두 挫折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希望은 希望으로 그칠 뿐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永永 이뤄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마치 유대民族이 메시아를 기다리듯 그 꿈이 現實로 이뤄지길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정연두(39)는 우리의 아름다운 꿈을 실현시켜주는 魔法師다. 勿論 그가 이뤄주는 꿈의 實現이 恒久的인 것은 아니다. 一時的인 것임에도 정연두를 통해 꿈을 이룬 사람들은 幸福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조차 덩달아 氣分이 좋아진다. 누구에게나 있는 작고 素朴한 ‘꿈’이 暫時 ‘이뤄지는 꿈’李 된다면 ‘꿈’이라도 幸福해질 테니 말이다.

    꿈이 現實이 됐다고 하지만 그것은 想像에 不過할 뿐 아니라 瞬間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정연두는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最善을 다한다. 이런 그를 보면 남의 꿈을 實現해주려는 自身의 꿈을 實現하기 위해 그리도 東奔西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아직 작고 素朴한 아름다운 꿈만을 對象으로 한다. 그래픽 技術이나 尖端裝備를 使用하기보다는 매우 原始的인 아날로그 方式을 利用하기 때문이다. 꿈을 실현시켜주려는 이와 그 꿈을 가진 이가 渾然一體가 되어 땀을 흘리고 나누면서 이뤄내는 꿈이라야 더욱 빛이 나는 法. 그런 點에서 정연두는 힘들고 어려운 로(low) 테크놀로지를 固執하면서 作業하는 멀티아티스트다.



    골드스미스의 ‘넘나들기’

    ‘꿈을 실현시켜주는 마법사’ 정연두

    Wonderland “I want to be a Singer” 2004. 歌手가 꿈인 어린아이의 그림을 그대로 再現했다.

    요즘 世界的으로 株價를 높이는 英國 젊은 作家들을 보면 大部分 골드스미스 大學 出身이다. 생뚱맞게 出身學校를 들먹인 것은 정연두가 그곳 出身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彫塑學科를 나오고 英國 골드스미스대에서 工夫했다.

    그에게 留學過程을 물어보면, 工夫 잘하는 學生들이 大槪 “敎科書 爲主로 工夫하고, 잠은 充分하게 잤다”고 하는 것처럼 “別생각 없이 無酌定 떠났다”고 答한다. 勿論 그의 先輩가 쓴 英國 現代彫刻에 關한 論文이 英國行을 決定하는 動機가 됐지만 特別히 學部專攻人 嘲笑를 더 工夫하고 심화시키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떠났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골드스미스에 들어갔는데, 매우 흥미로웠다고 한다. 嘲笑와 繪畫가 큰 區分 없이 그냥 通用되며 講義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의 美術敎育은 專攻 사이의 넘나들기가 거의 없다. 따라서 自身의 專攻分野 안에서 모든 造形的, 技法的 問題를 解決해야 한다. 反面 이곳에서는 自身이 생각한 것을 表現하기 위해 어떤 方法이나 媒體도 躊躇하지 않고 選擇하고 使用할 수 있어 作業이 수월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寫眞의 機能에 눈뜨기 始作했다. 서울로 돌아와 作品을 發表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寫眞作家라고 稱했다. 하지만 그의 作業은 寫眞에 局限된 것이 아니다. 그의 作業은 結果的으로는 寫眞이라는 媒體를 통해 觀客과 疏通했지만 정작 그는 瞬間을 捕捉, 發見하는 寫眞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直接 만들고 찾아가는, 그리고 그것을 記錄하는 ‘過程’을 더 重視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好奇心에서 出發한 1998年 ‘英雄(HERO)’ 시리즈는 ‘내 사랑 지니’(Bewitched, 2001)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英雄은 언제나 普通사람들이 危機에 處했을 때 忽然히 나타나 惡黨을 물리치고 地球를 求한 後 平常으로 돌아간다. 그는 남의 꿈 이야기만 採集하다 普通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英雄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注油所에서 기름 넣어주는 아르바이트生에게 포뮬라1에서 優勝하는 레이서의 꿈을 실현시켜준다. 아이스크림가게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돈을 모아 南極을 旅行하고 싶어하는 女學生을 사냥 나가는 에스키모 與專社로, 허름한 食堂에서 서빙하는 少年을 高級 中國飮食店 料理師로, 歌手로 만들어준다. 高級 옷가게에서 빨간 코트를 입어보는 아름다운 젊은 女性은 郊外의 넉넉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幸福한 時間을 보내는 엄마가 되게 한다.

    ‘꿈을 실현시켜주는 마법사’ 정연두

    ‘Memories of You’ 2007 果川 國立現代美術館.

    이렇게 寫眞을 통해 自身이 願하는 人物 또는 캐릭터를 延期하게 하고 그 周邊을 完璧하게 裝置함으로써 그들의 꿈이 最大限 實現됐다는 느낌을 준다. 一種의 役割劇이다. 이런 役割 바꾸기를 통해 自身의 꿈이 이뤄진 것처럼 느끼고, 또한 觀客은 그들의 꿈이 實現된 것을 바라보면서 흐뭇해진다.

    그는 이렇게 조금은 幼稚하지만 素朴한 꿈들을 現實感 있는 現場으로 이끌어 간다. 그 祕訣은 그들의 꿈 이야기를 眞摯하게 들어주고 이야기하는 過程에서 섬세한 感情變化까지 읽어내는 것. 이로써 ‘호박’으로 아름다운 ‘馬車’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듯하다.

    빠져들기와 드러냄

    1999年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엘비스 宮中斑點’에서 飮食 퍼포먼스를 선보인 정연두는 신대방동에 있는 한 스포츠댄스 敎習所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事實 사교댄스라는 것이 유럽의 格調 있는 貴族文化인데도 韓國에서는 不倫 또는 바람의 代名詞로 認識됐다.

    하지만 정연두가 사교댄스張에 간 것은 그런 意味 때문은 아니었다. 適當히 歲月의 때가 끼여 배도 나오고 머리도 벗겨진 아저씨와 一字形 또는 D라인 몸매를 어찌할 수 없는 아줌마들에게도 꿈과 浪漫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꿈이란 젊은이만의 專有物은 아니다. 나이와 몸매와는 相關없이 누구나 꿈은 있는 法이다.

    그가 여기서 注目한 것은 꿈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의 드러내기 쉽지 않은 꿈이다. 그들은 若干은 ‘축축한’ 곳으로 認識되는 그곳에서 그들의 健康한 꿈을 드러낸다(‘보라매 댄스홀’, 2001). 볼품없는 몸이지만 그들은 댄스 敎習所에서만큼은 가장 自信滿滿한 젊은이로 돌아간다. 비록 남루하고 꾀죄죄한 服裝이지만 그들은 춤을 추면서 以內 가장 멋진 靑春으로 變貌하는 것이다.

    춤의 三昧境에 빠져들면 그들은 이미 現實의 그들이 아니다. 現實의 自身을 잊고 춤꾼으로서의 役割을 充分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춤을 추면서 감춰둔 感情을 表現하고 삶을 表現한다. 정연두는 그들을 捕捉해 하나의 單位로 패턴化하고 그것을 壁紙로 製作한다. 이렇게 單位化하고 匿名化韓 中年의 춤꾼들은 視覺的인 美術作品으로 還生한다.

    이런 日常化한 삶의 또 다른 패턴을 發見하고 作業한 것이 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日常을 다룬 ‘常綠아파트’(Evergreen Tower, 2001)다. 아파트는 劃一的이고 個性 없는 住居環境이지만 便安하고 私生活이 保障되는 곳이라 韓國 사람들에겐 매우 人氣 있는 住居 形態다. 作家는 千篇一律的인 構造의 아파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觀察하고 記錄한다. 韓國 中産層 32家口의 構成員이 各各 居室에서 家族寫眞을 찍는 形式으로 進行된 이 作品 製作過程은 매우 興味롭다.

    于先 똑같은 構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各其 다르다는 點에서 그렇다. 집집마다 家族과 主婦의 趣向에 따라 家口의 構造와 模樣이 다르다. 配置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람들은 自身의 關心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살고 있음을 確實하게 보여준다. 획일화한 基本틀 속에서도 最大限 自律的으로 自由를 즐기면서 남과는 差別化한 ‘나의 다름’ 卽 個性을 謳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家族寫眞을 撮影할 즈음에는 大部分의 家族들은 傳統的(?)이고 通常的인 寫眞館의 家族寫眞龍 포즈를 取한다. 限껏 正裝을 하고 가지런히 앉거나 선 모습은 그들 家族의 幸福과 和睦을 誇大 包裝한 語塞함이 느껴진다. 남이 보지 않는 自身들만의 空間에서는 自身의 意志와 뜻에 따라 最大限 자유스럽게 살던 사람들이 記錄하고 남에게 보여준다는 次元으로 넘어가면 日常的이고 패턴化한 똑같은 構造로 還元된다는 點이다.

    판타지를 現實로

    ‘내 사랑 지니’(Bewitched, 2001)가 世界 各國을 돌면서 普通사람들의 所望을 실현시키는 프로젝트였다면 ‘원더랜드’(Wonderland, 2004)는 아이들의 天眞爛漫한 꿈을 假想空間이 아닌 現實에서 그대로 실현시키는 作業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의 想像力을 빌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했다. ‘원더랜드’는 아이들의 그림을 土臺로 그들이 指示한 原電에 最大限 가깝게 세트를 세우고 그곳에 靑少年들을 扮裝시켜 어린이들의 판타지를 現實로 再現한다.

    이 作業을 위해 作家는 4個月 가까이 서울의 幼稚園 네 곳에서 美術敎師로 自願奉仕를 했다. 5歲에서 7歲 사이의 어린이들을 觀察하고 對話하면서 그들이 그린 1200個의 드로잉을 蒐集했다. 그中 17個의 드로잉을 골라 그 意味를 解釋하고 그에 맞는 콘티를 짠 後 作業에 突入했다.

    ‘꿈을 실현시켜주는 마법사’ 정연두

    Evergreen Tower, 2001, Multi-Side Projection, 32 Family Portraits.

    于先 어린이들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延期할 靑少年을 募集했다. 作業을 함께 할 學生들을 모을 셈으로 傳單紙를 돌려 60名의 高等學生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必要한 小品과 세트들을 直接 製作하고 場所를 涉外했다. 義湘은 專門 디자이너들과 함께 만들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時間과 돈이 如意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衣裳學을 工夫하는 學生들의 도움으로 解決해야 했다. 그래서 그가 直接 裁縫틀을 밟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左右가 다른 옷소매와 各其 크기가 다른 단추 等 아이들의 거침없는 想像力과 꿈을 좇기에는 버거운 것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의 指示에 忠實하게 따랐으며, 아이들 그림 特有의 比例를 無視하는 態度를 尊重해서 그림에 나타난 比例에 따라 세트를 製作했다. 그리고 그는 매우 原始的인 方法을 動員해서 그들의 꿈을 映畫 속 寫眞 스틸처럼 드라마틱한 寫眞으로 具現한다. 때로 作爲的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人物들에 비해 壓倒的으로 큰 公主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사람 때문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勿論 아이들의 想像力이 언젠가 TV廣告에서 본 듯 조금은 常套的인 판타지에 머물고 있다는 點에서 요즘 아이들의 想像力 貧困을 感知하게 된다. 그런 點에서 아이들 그림에 自身의 생각을 보태 再構成해낸 作家의 感受性이 더 純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것마저 計算에 넣었을 수도 있다.

    ‘원더랜드’는 컴퓨터그래픽 도움 없이 몽타주 技法을 使用하면서 完全히 手作業으로 進行됐다. 이를 寫眞으로 담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까지가 現實이고 판타지인지 區分하기 어렵다. 間或 觀客과 評者들이 그 사이에서 어디가 어딘지 分揀을 못하고 멍하니 서 있게 된다. 或是 作家는 아이들의 그림을 빌려 自身의 어릴 적 판타지를 드러내는 方式을 擇한 게 아닐까 하는 意圖的인 냄새가 나기도 한다.

    ‘원더랜드’는 進化를 繼續해서 ‘로케이션’(Locations, 2007)에 이른다. 從來의 作業이 虛構의 世界 또는 꿈과 판타지의 充實한 再現에 포인트를 뒀다면 ‘로케이션’은 實在하는 存在들이 虛構的 裝置들을 補助한다. 그래서 假짜가 眞짜보다 더 眞짜처럼 보인다.

    그의 ‘로케이션’은 虛構的 裝置들이 더 생생한 實在처럼 자리를 잡는다. 이제 假짜가 眞짜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은 格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可能한 것은 그래픽을 使用하지 않고 판타지가 있는 寫眞, 假想의 이미지와 現實의 이미지가 交叉하는 超現實主義的인 寫眞을 만들겠다는 그의 原則 德分이다. 조금은 無謀하지만 나름 나날이 發達한 트릭技術이 境地에 이른 것이다.

    完璧한 트릭, 그 틈의 餘裕

    ‘꿈을 실현시켜주는 마법사’ 정연두

    Location 19, 2005, 寫眞 印畫

    그는 完璧한 트릭(?)을 使用하면서 틈을 보여주는 餘裕를 즐기기도 한다. 意圖的으로 眞짜 行世를 하는 假짜 風景 또는 自然을 알려주는 힌트로 使用한다. 여기에 人物들은 애써 그 힌트를 無視하고 自然에 沒入한 채로 登場해서 그 힌트를 發見하는 것을 妨害한다. 人物이 보이지 않는 境遇는 人物을 代替하는 어떤 事物, 卽 작은 소나무, 盆栽, 白沙場을 어슬렁거리는 개 같은 것이 登場해서라도 妨害를 繼續한다.

    代表的인 트릭 技法은 ‘로케이션 11’에서 찾아볼 수 있다. 垂直에 가까운 巖壁寫眞 앞에 適當히 만든 假짜 스티로폼 巖壁을 덧붙이고 그 위에 剛한 照明을 때려 完成한 人工美는 自然 그대로에 가깝다. 여기에 近頃의 女性 登攀家와 遠景의 人物은 遠近을 통해 畵面의 깊이를 주는 한便, 앞에 서 있는 女性의 부자연스러움을 相殺시키는 役割을 한다. 하지만 仔細히 보면 畵面 右側 下段에 스티로폼 巖壁을 設置하기 위해 세운 角木들이 눈에 들어온다.

    ‘로케이션 19’는 뉴욕 롱아일랜드에 位置한 워터택시 備置에서 찍었다. 그곳은 本來 工場地帶로 여름에는 시멘트 위에 모래를 깔아 人工海邊을 造成해 일하던 勞動者들이 暫時 짬을 내서 避暑(?)를 떠날 수 있도록 配慮한 ‘짝퉁 海邊’이다. 이런 일은 파리의 센 江邊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제 江가에서 짝퉁 바다를 즐기게 된 셈이다.

    ‘로케이션 1’에선 한 사람이 自然에 醉한 듯 山 頂上에 앉아 깊은 溪谷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붉은 커튼과 마루와 窓틀을 보면 假想의 세트가 分明하다. 게다가 畵面 右側 下段에는 매직 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렇게 그는 寫眞 속 風景이 假짜라는 事實을 모른 척 알려주고 있다.

    ‘로케이션 3’에서 過度하게 노란 銀杏나무 잎은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作家가 色을 漆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剛한 照明을 통해 이런 눈속임 裝置를 僞裝하고자 한다. 여기에 高解像度의 人和를 통해 最大限 假짜의 眞짜火를 試圖한다. 하지만 그의 限界인 假짜가 假짜라는 點을 숨기지 못하는 純眞함 또는 純眞함을 假裝한 告白까지 作品의 完結性을 높이는 裝置가 된다. 그리고 그의 告白을 듣기 위해 觀客은 모두 셜록 홈스가 되는 즐거움을 맞보게 된다.

    그는 이러한 寫眞技法과 裝置技法을 통해 眞짜 같은 假짜를 만들어서 우리의 想像과 希望과 꿈을 이뤄줬다. 이제 그는 自身의 꿈을 이루고자 試圖한다. 2008年 國立現代美術館 ‘올해의 作家’로 選定된 그는 自身의 鄕愁와 追憶을 담은 한 篇의 映畫를 製作한다. 70餘 分에 達하는 眞짜 映畫(?)로 題目은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2008)다. 이 映畫는 映畫와 映畫를 찍는 데 動員된 裝備와 눈속임을 위한 裝置들로 構成되는데 總 6部로 만들어졌다.

    70分짜리 노컷 映畫

    1部는 ‘方案’이고, 2部는 ‘빈 都市의 거리’, 3部는 ‘農村 風景’, 4部 ‘들판’, 5部 ‘숲’, 6部는 ‘雲海(雲海)’다. 이렇게 6個의 큰 덩어리로 나누어진 映畫에서 重要한 것은 編輯이 없이 映畫가 完成됐다는 點이다. 場面과 場面을 이어가기 위해서 普通의 映畫는 흔히 ‘끊어간다.’ 하지만 이 映畫는 카메라가 70分 동안 쉼 없이 돌아가고 그 앞에서 20名의 作業者와 5名의 演技者가 세트를 設置하고 熱心히 延期하는 過程을 담았다. 卽 70分이 한 컷으로 이뤄진 類例없는 映畫가 된 것이다.

    어쩌면 映畫를 한 篇 製作하는 過程을 加減 없이 記錄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라는 게 더 正確할 것이다. 一般的인 映畫에서는 볼 수 없는 다음 神으로 넘어가는 過程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치의 誤差도 없이 映畫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作業者들이 一絲不亂하게 눈속임龍 세트를 設置하는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編輯 없이 날것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꿈이자 幻想인 映畫를 日常으로 만들어버린다.

    ‘꿈을 실현시켜주는 마법사’ 정연두
    정준모

    1957年 서울 出生

    中央大 西洋畫科 卒業, 弘益大 碩士 (美術學)

    第1回 光州비엔날레 專門委員, 國立 現代美術館 學藝硏究室長·德壽宮 美術館長

    現 高陽文化財團 展示監督, 中央大·고려대 講師

    論文 : ‘美術品은 땅인가’ ‘第3의 美學, 새로운 出口’ ‘韓國의 모던이즘, 모더니즘’ 等


    그리하여 정연두는 現實과 非現實이 巧妙하게 交叉하는 眞짜 같은 假짜, 假짜 같은 眞짜를 보여줬고, 다시 이 映畫를 통해 假짜의 眞實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의 이런 態度는 그가 只今까지 다뤄온 꿈과 希望이라는 人間의 熱望과 脈을 같이한다. 그는 作業을 통해 普通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줬을 뿐 아니라 그들의 꿈이 實現되는 過程을 통해 ‘삶의 主人으로서의 自身’을 더욱 더 분명하게 認識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리고 假想의 現實을 具現하는 여러 裝置를 손쉬운 그래픽 技法을 利用하지 않고 高度의 勞動力과 技術을 必要로 하는 手作業 技法을 통해 實現해왔다. 그가 이렇게 일부러 어려운 製作方式을 選擇한 것은 작고 예쁜 꿈을 自身의 防牌로 삼아 살아가는 많은 小市民에 對한 尊敬과 그들과 함께하려는 사랑 때문일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