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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活動으로 즐기는 自己主導的 삶|新東亞

다양한 活動으로 즐기는 自己主導的 삶

‘코끼리와 벼룩’ ‘포트폴리오 人生’

  • 金賢美 東亞日報 出版팀長 khmzip@donga.com

    入力 2008-07-04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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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활동으로 즐기는 자기주도적 삶

    ‘코끼리와 벼룩’: 찰스 핸디 지음, 李宗仁 옮김, 1萬원, 생각의나무/ ‘포트폴리오 人生’: 찰스 핸디 지음, 강혜정 옮김, 1萬5000원, 에이지21

    내게는 七旬을 넘긴 두 분의 어머니가 계시다. 한 분은 親庭어머니이고 다른 한 분은 媤어머니다. 두 분은 性格에서 外貌까지 물과 불처럼 다르다. 親庭어머니가 子息들 앞에서 最大限 自身의 목소리를 낮추고 微笑를 잃지 않는 配慮型 스폰서라면, 媤어머니는 집안일, 子息들 일을 陣頭指揮하는 카리스마型 리더다.

    한눈에도 달라 보이는 두 어머니지만 겪을수록 差異보다 共通點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두 분의 公式 學歷은 初等學校 卒業으로 끝났다. 그 時節 抑鬱한 일이지만 가난한 집 長女는 아무리 똑똑해도 上級學校 進學은 焉敢生心이었다. 代身 입에 풀漆하고 나머지 兄弟들이 더 工夫할 수 있도록 生活費를 벌어야 하는 事實上 가장 노릇을 했다. 兄弟들이 모두 大學을 卒業하고 나니 媤宅을 뒷바라지하며 줄줄이 子息을 가르쳐야 하는 義務가 보태졌다.

    둘째, 두 분은 平生 男便 月給封套를 기다리지 않고 自身의 일을 했다. 바느질과 下宿. 남이 알아주지도 않고 職銜도 없는 일이지만 代身 停年도 없었다. 그 일로 子息들을 키우고 집을 마련하고, 살림을 키우고, 餘裕로운 老年까지 準備할 수 있었다.

    셋째, 드니즈 살렘 原作의 演劇 ‘엄마는 五十에 바다를 發見했다’처럼 살았다. 1991年 산울림소극장 舞臺에 올려진 國內 初演을 親庭어머니와 함께 보았다. 五十 平生을 가난 속에 허리가 휘도록 일만 해온 엄마는 딸마저 獨立을 宣言하고 집을 나가자, 나이 五十에 여름休暇를 떠나 바다에서 海水浴을 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즐거움도 暫時 엄마는 病에 걸려 홀로 쓸쓸히 죽고 만다. 그런 엄마에 對한 그리움과 悔恨을 딸의 視線에서 담아낸 演劇이 ‘엄마는 五十에 바다를 發見했다’이다.

    두 어머니의 삶도 演劇 속의 ‘엄마’와 닮았지만 決코 悲劇的인 結末은 아니다. 몸이 弱한 媤어머니는 스포츠마니아人 男便(媤아버지)의 勸誘로 六十 가까운 나이에 골프를 始作했다. 老夫婦가 함께 라운딩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素朴한 바람에서 始作해, 以後 필드는 媤어머니의 剛한 승부욕을 解消해줄 舞臺가 되었다. 라운딩이 끝나면 웬만한 할아버지 골퍼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 媤어머니의 골프 武勇談이 이어진다. 그리고 媤어머니는 六十에 접어들어 運轉免許까지 땄다. 더 以上 運轉技士도 必要 없고 子息들에게 어디까지 데려다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할 일도 없어졌다. 週末에는 高速道路를 내달려 시골집에서 나무를 가꾼다. 直接 運轉대를 잡은 뒤 媤어머니의 삶은 더욱 堂堂해졌다.



    10年 前 “이제 (돈 버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宣言한 親庭어머니는 讀書와 그림에 빠졌다. 박경리의 大河小說 ‘토지’를 두 番 읽고 조정래의 ‘太白山脈’ ‘韓江’ ‘아리랑’을 次例로 讀破하더니, 어린 孫子들을 키우는 동안에는 子女敎育 關聯 冊들을 涉獵하며 敎育理論의 現場 適用에 沒頭했다. 요즘은 그림과 書藝에 빠져 講習 前날에는 집안일을 접고 하루 終日 붓을 잡고 練習하기에 바쁘다.

    失業者와 포트폴리오 人生의 差異

    父母의 遺産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움이 남다른 것도 아니며, 번듯한 職場에 다녀본 적도 없는 두 할머니가 肯定的인 삶을 營爲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世界的인 經營컨설턴트 찰스 핸디의 말을 빌리자면 ‘포트폴리오 人生’에서 成功했기 때문이다. 다음 內容은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생각의나무), ‘포트폴리오 人生’(에이지21) 두 冊에서 要約한 것이다.

    1981年 마흔아홉 生日에 찰스 핸디는 組織을 떠나 自發的인 失業 狀態에 들어갔다. 契約期間이 끝난 것도 아니고 뚜렷한 計劃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試驗 삼아 던진 辭退意思가 덜컥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瞬間 그는 侮辱感을 느꼈고 火도 났다. “任期를 마치기도 前에 보내드리기에는 當身은 우리에게 너무 所重한 사람입니다”라고 대꾸해주기를 期待하지 않았던가. 이 일로 그는 두 가지 所重한 삶의 敎訓을 얻었다고 告白한다. 眞情으로 願치 않는 뭔가를 提案하지 마라. 그리고 稱讚이나 確認을 에둘러 誘導하지 마라. 얻을 게 없다.

    그는 ‘失業者’라는 말 代身 自身이 만든 新造語 ‘포트폴리오 生活者’라고 表現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라고 묻는 著作權 代理人에게 그는 이렇게 說明한다. “프리랜서, 그러니까 獨立 生活者가 되겠다는 겁니다. 全日制 職場이 아니라 다양한 活動으로 삶의 포트폴리오를 構成해서 사는 사람 말입니다. 勿論 執筆을 中心에 두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著作權 代理人은 專業 作家로 成功하는 사람은 100名에 두셋에 不過하다는 現實을 들먹이며 그를 挽留했다. 그는 세인트조지 하우스 學長 時節 윈저城에서 열린 討論會에서 未來社會를 豫測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리를 내주세요. 組織은 젊고 쌩쌩한 親舊들에게 맡기세요. 우리는 생각만큼 組織에 꼭 必要한 存在가 아니랍니다. 大部分은 組織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어요. 歲月 德分에 攄得한 智慧가 젊은 活力을 補充해주리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남에게는 쉽게 했지만 이 말이 부메랑처럼 自身에게 돌아왔을 때 그는 唐慌했다. 포트폴리오 生活者가 되면 너무 좋을 거라고 漠然히 생각했으나 막상 當해보니 기쁘지 않았다. 아직 學校에 다니는 十代 子女가 둘이나 있고, 런던經營大學院에서 時間制 講義를 맡긴 했지만 벌이는 얼마 되지 않고, 空짜로 살고 있는 舍宅은 비워줘야 했다. 무엇보다 더 以上 일을 주는 會社가 없다. 參席해야 하는 會議도, 應答해야 하는 電話와 e메일, 지켜야 할 約束, 目標, 決裁, 마감, 評價도 없다. 日程表는 텅 비어 있었다.

    職銜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가장 힘들었던 것은 正體性의 喪失이었다. 나를 願하는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치 나라는 사람이 存在하지 않는 것 같았다. 正體性의 混亂은 當場 나를 表現해줄 職銜이 없다는 點에서도 나타났다. “너를 어떻게 說明할 생각이야? 마냥 ‘前職 學長’이라고 부를 수도 없잖아.” 한 親舊의 指摘은 날카로웠다. 핸디는 이때의 狀況을 “妙하게 발가벗은 氣分”이라고 說明했다. 組織에서 뛰쳐나온 뒤에도 한동안 ‘敎授’라는 職銜에 執着한 理由도 거기에 있었다. 職業的인 保護膜이 必要했던 것이다. 그때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正鵠을 찔렀다.

    “當身은 이제 敎授로 일하지 않잖아요. 어쨌든 公式的으로 敎授가 아니에요. 나는 恒常 내 이름만으로 充分하다고 생각했는데, 男子들은 왜 이름말고 存在를 說明할 만한 다른 것을 찾는 거죠?”

    그랬다. 經營컨설턴트가 巨創하게 ‘포트폴리오 人生’이라는 用語로 說明하지 않아도 大多數 女子는 이미 포트폴리오 人生을 살고 있었다. 會社와 工場 出勤과는 全혀 다른 世界. 그 世界에서 各自 自己의 時間表와 優先事項을 定하고, 돈을 받는 一과 其他 일을 適切히 섞어서 하고, 會議나 委員會 일로 拘束을 받지 않으며, 多重課業(multi-tasking)李 經營 專門 用語가 아니라 日常의 現實인 世界가 있었다. 아내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現實을 일깨워준다.

    “大部分의 女子들은 多重課業績 삶을 살아왔어요. 當身은 그걸 ‘포트폴리오 人生’이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난 그걸 ‘生活 꾸려나가기’라고 부르겠어요.”

    찰스 핸디는 비로소 그동안 ‘일’에 對해 偏狹하게 規定했음을 깨달았다. 卽 돈을 받고 하는 일만이 眞正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均衡 잡힌 일의 포트폴리오를 짜려면 돈을 버는 것과는 距離가 멀어 일 取扱도 받지 못하지만 人生에 重要한 意味가 있는 일-家庭일, 自願奉仕, 學習-까지 疏忽히 해서는 안 된다.

    人生 全體의 사이클로 볼 때 4가지 類型의 일은 段階마다 다르게 編成된다. 핸디는 自身의 人生에서 30代에는 돈 버는 일이 壓倒的인 比重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勿論 그보다 15年 前에는 工夫하는 일이 全部였을 것이다. 隱退 生活者들은 돈 버는 日課 나머지 일을 맞바꾼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을 抛棄해야만 다른 類型의 일을 始作할 수 있는 것일까? 훌륭한 포트폴리오 人生이란 이 4가지 類型의 일을 모두 包含하면서 適切히 配合하는 것이다.

    全盛期는 짧고 人生은 길다

    나의 두 어머니는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일의 均衡’을 攄得했고 實踐해 왔다. 돈을 버는 일에 목을 매야 했던 靑年期와 壯年期를 넘어서자 두 분은 自身의 일에서 工夫와 餘暇, 奉仕의 比重을 늘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어느 組織의 保護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隱退生活者들이 겪는 所屬感의 喪失도 없다. 돈 버는 일에 邁進해야 했던 젊은 時節부터 抛棄하지 않은 꿈과 熱情이 있었기에 여유로운 삶이 許諾되자마자 正體性의 混亂 없이 바로 ‘그것’을 始作할 수 있었다.

    送別파티에서 찰스 핸디의 同僚가 이런 忠告를 했다. “每日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반드시 할 일이 있어야 하네. 안 그러면 隱退 餘波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實際로 그가 世界的인 石油會社 셸에 入社하던 1950年代에 會社 年金規定은 隱退 後 18個月 동안 年金을 受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大部分의 任員들이 退社하고 18個月 以內에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隱退 後 삶은 18個月이 아니라 20年, 30年 그 以上이 될 수도 있다.

    全盛期는 금세 끝난다. 그래서 누구나 포트폴리오 人生을 準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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