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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事態’ 大解剖|新東亞

‘황우석 事態’ 大解剖

喇叭 분 言論, ‘오버’韓 政府, 쉬쉬한 專門家들이 幻想 키웠다

  • 이성주 東亞日報 敎育生活部 記者 stein33@donga.com

    入力 2005-12-27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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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狀況이 막바지를 向해 치닫고 있다. 韓國 科學系 最大의 成果라던 論文은 廢棄處分을 앞두고 있고, 혼란스러움은 憤怒로 이어지는 雰圍氣다. ‘國益’과 ‘眞實’, ‘取材倫理’와 ‘硏究倫理’를 넘나들며 激烈하게 進行된 騷動은 누구도 믿기 어려운 結論을 向하고, 堪當할 수 없는 事實이 하나 둘 드러나는 것에 衝擊을 받은 사람들은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氣色이 歷歷하다.그러나 果然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옳을까. 世上을 뒤흔들며 進行된 이 稀代의 事件을 그렇게 흘려버려도 되는 것일까.오랜 期間 關聯 分野를 取材하며 숱한 ‘科學 신드롬’의 明滅을 지켜본 記者가 事態의 처음과 끝, 그 안에 얽혀있는 갖가지 問題의 뿌리를 헤집어보려 펜을 들었다. 筆者 이성주 記者는 1996年부터 2004年까지 ‘東亞日報’에서 健康·醫學分野를 取材했다. 2004年 연세대 保健大學院에서 碩士學位를 받고 1年 동안 美國 존스홉킨스대에서 保健·醫療政策을 硏究했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지난 한 달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였다. 어떤 이는 激忿하고 어떤 이는 슬픔에 젖었다. 兩쪽 모두 목숨을 걸었던 싸움은 勝者와 敗者가 뒤바뀌고 歡呼와 慌忙함이 交叉하는 反轉의 反轉을 거듭해 끝으로 달려간다. 狀況의 끝자락을 지켜보며 筆者의 머리 속에 가장 아프게 떠오르는 이름은 ‘강원래’와 ‘최은진’이다.

    아직 論爭의 소용돌이가 한창이던 11月26日 서울 汝矣島 MBC 社屋 앞에서 열린 ‘황우석 敎授 支持 촛불 集會’. 數十名의 黃 敎授 支持者 가운데 눈에 들어온 것은 事故로 下半身이 痲痹된 ‘클론’의 멤버 강원래氏와 夫人 김송氏였다. 姜氏는 “이렇게 無酌定 批判하는 것은 줄기細胞에 希望을 건 사람에겐 삶을 抛棄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呼訴했다. 사흘 뒤에는 歌手 채연이 自身에게 춤과 舞臺 매너를 가르쳐준 강원래氏를 위해서 줄기細胞 硏究用 卵子를 寄贈하겠다고 밝혔다.

    최은진(10)孃의 寫眞은 數週 前 大部分의 아침 新聞에 同時에 실렸다. 한 살 때 交通事故로 목뼈를 다쳐 가슴 아래쪽이 痲痹된 崔孃은 아버지와 함께 世界줄기細胞허브에 患者 登錄을 하기 위해 서울大病院에 왔다.

    “줄기細胞가 뭔지는 잘 몰라요. 다만 황우석 敎授님이 硏究에 꼭 成功해서 저도 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筆者는 正말 所望했고 只今도 所望한다, 거짓말처럼 그 날이 오기를. 黃 敎授가 開發한 줄기細胞 治療法 德澤으로 강원래氏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拍手치는 夫人 앞에서 채연과 함께 히트曲 ‘쿵따리 샤바라’를 부르는 光景을 보고 싶다. 열 살배기 은진이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와 부둥켜안고, 파킨슨病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10萬 患者가 配偶者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散策하는 光景을, 腦中風으로 7年째 病床에 누워 있는 先輩가 벌떡 일어나 그동안 눈물로 看護한 아내의 손을 꼭 부여잡는 光景을 正말로, 正말로 보고 싶다.

    그러나 現實은 悲劇을 向해 한 발짝씩 다가가는 雰圍氣다. 오로지 黃 敎授를 神(神)으로 알고, 줄기細胞 治療法이라는 希望 하나로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只今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할 말이 있기는 할까.

    이쯤해서 한 가지 告白을 하는 것이 옳겠다. 우리가 記憶하지 못할 뿐, 虛像과 幻想은 처음이 아니다. 一種의 ‘集團 無意識’이었을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간다. 잊고 싶은 것은 自己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채로 잊혀지기 마련이다. 황우석 事態 앞에 그에 못지않은 많은 事例가 있었다. 但只 이番처럼 엄청난 소리를 내며 치닫지 않았을 뿐이다.

    잊혀진 虛像

    1980年代 韓國 言論은 遺傳工學의 發達로 早晩間 食品革命이 到來할 것이며, 農業과 科學의 合奏(合奏)로 호박만한 토마토, 일곱 가지 맛이 나는 과일이 곧 量産될 것이라고 報道했다. 1990年代 遺傳子 治療法이 떠올랐을 때에는 10~20年 안에 萬病을 治療할 것이라는 消息을 傳했고, 21世紀 들어 게놈 프로젝트가 完成되자 無病長壽의 時代를 對備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난 幻想을 심어주기에 充分했다.

    筆者는 부끄럽게도 이 隊列에서 喇叭을 불었다. 1990年代 中盤에는 5~10年 後면 一部 癌(癌)을 治療할 수 있게 된다는 記事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生命의 神祕는 한 겹을 벗기면 두 겹의 수수께끼가 登場할 만큼 奧妙하기만 하다. 人體는 하나의 宇宙(宇宙)여서 사람의 뜻대로, 努力만 하면 뚝딱뚝딱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筆者는 그 點을 수많은 施行錯誤를 겪은 後에야 徐徐히 깨닫게 됐다.

    科學史에서는 1990年代 遺傳子 治療法이 또 하나의 先例(先例)를 남겼다. 當時 遺傳子 治療法은 只今의 줄기細胞와는 比較가 되지 않을 程度로 世界的인 話頭였다. 1991年 美國 國立保健院(NIH)李 첫 治療法을 發表한 以後 故障 난 遺傳子를 除去하거나 다른 遺傳子로 代置해 疾病을 고친다는 槪念은 各國의 科學者들을 사로잡았다. 動物實驗에 이어 臨床試驗도 洑물을 이뤘다.

    그러나 4, 5年 만에 副作用이 續續 나타나자 當時 NIH의 헤럴드 바무스 院長과 科學者들은 會議를 열었다. 그리고 “우리가 傲慢했다. 다시 基礎로 돌아가야 한다”고 結論을 내려야만 했다. 學問的으로 現在의 줄기細胞 硏究는 1990年代 初 遺傳子 治療法보다 훨씬 더 初步的인 段階다. 그러나 ‘황우석 신드롬’이 進行되는 2005年 한해동안에는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2005年 韓國에서 황우석 敎授의 位置는 무엇에 比喩할 수 있을까. 아마도 神(神)과 大統領의 中間쯤이 아니었을까. 國民의 折半이 選擇한 盧武鉉 大統領은 辱할 수 있어도 黃 敎授를 批判하면 賣國奴라는 非難이 쏟아졌다. ‘PD手帖’ 事態 以後 黃 敎授에게는 以前의 ‘앉은뱅이를 벌떡 일어나게 하는 예수’의 이미지에 ‘十字架를 陳 聖者(聖子)’의 이미지까지 겹쳐졌다.

    그 渦中에 이야기되지 않은 것, 이야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밖에도 많다. 只今은 모두 알게 되었지만, 專門家 集團에서는 훨씬 오래 前부터 黃 敎授 烈風에 憂慮의 視線을 보내고 있었다.

    筆者가 지난 1年 동안 美國 존스홉킨스대에서 硏修하며 만난 關聯 硏究所의 韓國人 科學者 大部分은 黃 敎授 烈風에 對해 韓國의 특수한 狀況이 낳은 一種의 ‘해프닝’이 아니냐는 反應을 보였다. 그렇다면 國內 學者들의 意見은 어땠을까. 筆者가 조심스럽게 意見을 求한 大學敎授들의 意見도 大同小異했다. ‘신드롬’을 批判하면 輿論의 몰매를 맞거나 猜忌心 또는 小英雄心에서 비롯된 突出行動으로 보일까 봐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大部分 ‘黃沙 바람’에 對해 憂慮하는 목소리였다. 나서서 입을 열지 않은 이들 모두는, 이 狀況의 責任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傳達하지 못한 筆者 亦是 마찬가지로 責任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都大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언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돌이키고 싶지 않은 狀況이지만 처음부터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作業이 必要하다고 생각한 것은, 앞서의 모든 科學 신드롬처럼 아무런 깨달음 없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황우석 신드롬의 조연자였던 言論에 몸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이 反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미리 무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沈默했던 모든 이들이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 또다시 沈默하지 않기를 祈願하는 希望이다.

    황우석이라는 이름 석字를 들으면 누구나 ‘줄기細胞’를 떠올릴 것이다. 反面 科學者 大多數는 黃 敎授를 ‘줄기細胞 硏究의 大家(大家)’로 부르는 데 同意하지 않는다. 當時 少數의 科學者가 소리쳤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은 眞實이다. 勿論 最近의 波動 以後에도 黃 敎授가 世界 最高 水準의 複製 硏究家이고 줄기細胞 硏究에 불을 지핀 主人公이라는 事實에는 變함이 없다.

    黃 敎授의 硏究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자. 그의 이름은 1990年代 初부터 言論에 오르내린다. 그러다가 1999年 複製 蘇 영롱이를 탄생시키며 ‘스타 科學者’ 班列에 오른 黃 敎授는 2004年 ‘사이언스’에 論文을 發表하면서 複製 硏究家에서 갑자기 줄기細胞 硏究의 代價로 불리기 始作한다. 複製와 줄기細胞라는 크게 다른 分野, 距離가 꽤 있는 分野를 갑자기 건너뛴 믿을 수 없는 跳躍이었지만, 都大體 어떻게 이런 일이 可能한지에 對해서는 아무도 質問을 던지지 않았다.

    代身 노벨賞後援會가 만들어지고, 黃 敎授는 國內의 온갖 賞과 硏究費를 휩쓸었다. 國家 要因(要人)에 該當하는 警護가 이뤄졌을 뿐 아니라 ‘汎(汎) 황우석 師團’의 다른 硏究員도 警護를 받기에 이른다. 黃 敎授가 노벨賞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非專門家들의 主張은 거셌지만, 黃 敎授의 硏究가 노벨賞을 받을 만한 것인지에 對한 科學的인 接近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무엇을 해서 노벨賞을 받을지, 아니면 앞으로 어떤 成果를 거두면 노벨賞을 받을 수 있을지에 對해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노벨賞이었다.

    黃 敎授가 胚芽(胚芽) 複製와 操作에서 世界 最高 水準의 技術者라거나 世界 最高 水準의 팀을 이끄는 首長(首長)이라는 點에 異議를 提起할 사람은 드물다. 世界 最初로 複製羊 돌리를 탄생시킨 英國 로젤린硏究所에서도 黃 博士의 ‘技術力’은 認定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줄기細胞 分野에서는 檢證이 必要했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2005年 11月26日 밤 황우석 敎授의 팬클럽인 ‘아이러브 황우석’ 會員들과 韓國脊髓障礙人協會 會員 200餘 名이 서울 汝矣島 MBC 社屋 앞에서 촛불 集會를 열고 있다.

    黃 敎授는 2003年 서울대 異種(異種)臟器移植事業段과 함께 複製技術의 臨床適用을 推進했다. 그러던 中 서울대病院 문신용 敎授, 미즈메디病院 노성일 理事長과의 對話를 통해 패러다임의 轉換을 맞게 된다. 文 敎授는 國內 細胞治療法 硏究의 總責任者였으며, 盧 理事長은 美國 國立保健院에서 財政支援을 받으며 줄기細胞를 硏究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複製技術과 줄기細胞 硏究의 結合을 試圖하기로 뜻을 모았고, 文 敎授와 노 理事長은 黃 敎授팀에 줄기細胞 硏究에 對한 모든 노하우를 傳受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作品이 그 有名한 2004年 ‘사이언스’地 論文이다. 그리고 不過 十數個月이 지난 뒤, 事實은 ‘複製技術’ 專門家들인 서울大 獸醫學科의 黃 敎授 팀員과 異種臟器移植事業團 所屬 硏究者들이 ‘줄기細胞’의 代價로 불리게 된 것이다. 言論은 이 部分을 그냥 스쳐 지나갔고, 누구도 異議를 提起하지 않았다. 그렇게 ‘合理的 疑心’이라는 첫番째 障壁이 소리없이 무너져내렸다.

    ‘未知의 雪原’은 없다

    黃 敎授는 ‘PD手帖’의 첫 番째 報道 以後 記者會見에서 悲壯한 얼굴로 “아무도 발자국을 찍지 않은 雪原(雪原)을 가는 心情으로 硏究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事實과 距離가 있다. 黃 敎授의 成果는 그동안 여러 사람이 거둔 줄기細胞 硏究 成果가 省略된 채 紹介됐을 뿐, 이미 많은 科學者가 數十年 동안 ‘발자국’을 찍었기 때문이다. 言論이 제대로 事實을 알리지 않은 사이에 많은 사람이 黃 敎授가 줄기細胞 硏究의 幕을 연 사람, 世界 처음으로 胚芽줄기細胞를 抽出한 사람이라고 잘못 알게 됐을 따름이다.

    胚芽줄기細胞의 抽出 및 培養은 黃 敎授팀이 처음 成功한 것이 아니다. 黃 敎授팀은 胚芽줄기細胞 抽出 方法 中 많은 科學者가 禁忌(禁忌)로 삼고 있는 人間胚芽 複製에 依한 줄기細胞 抽出에 成功했다. 그것은 分明 勇氣였지만, 果然 그렇듯 拍手만 받아야 하는 學問的 業績인지는 천천히 省察할 必要가 있었다.

    줄기細胞는 20世紀 中盤 發生學(發生學)李 急速히 發展하면서 理論的으로 注目을 받았다. 그러다가 1961年 美國의 매쿨로흐와 틸 博士가 骨髓(骨髓)에 聖體줄기細胞가 存在한다는 事實을 證明해 ‘사이언스’에 發表했고, 1974年 브록스마이어 博士는 胎줄에 줄기細胞가 있다는 事實을 밝혔다. 에반 博士는 1981年과 1995年 쥐와 원숭이에서 胚芽줄기 細胞주를 抽出했다. 細胞주는 特定 細胞를 죽지 않고 永遠히 살도록 한 ‘不滅化(不滅化) 細胞’다.

    이런 基礎醫學의 成果에 힘입어 1980年代 初 노벨賞 受賞者인 美國의 度널 토머스가 줄기細胞의 하나인 造血모(造血母) 細胞 移植, 卽 骨髓移植으로 白血病 患者들을 治療하면서 줄기細胞 硏究 바람을 일으켰다. 브록스마이어 博士는 胎줄血液 이식법을 開發했다.

    이렇듯 바탕이 다져지자 1998年 무렵에는 胚芽줄기細胞 硏究史에 한 劃을 긋는 硏究結果가 잇따라 나왔다. 當時 美國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敎授는 버려질 運命의 冷凍胚芽에서 人間胚芽 줄기細胞를 抽出했다. 또 존스홉킨스大 존 기어하트 博士는 合法的으로 人工 流産된 胎兒의 未分化 生殖細胞에서 줄기細胞를 抽出하는 데 成功했다.

    그러나 當時 美國 市民이 韓國人처럼 歡呼했을까. 그렇지 않다. 當時 두 敎授의 硏究成果는 激烈한 倫理 論難에 휩싸였다. 結局 줄기細胞를 얻기 위해 胚芽複製를 試圖할 것이고, 胚芽複製는 人間複製로 넘어간다는 批判이 거셌다. 이런 雰圍氣 때문에 卵子(卵子) 核 置換, 卽 胚芽複製를 통한 줄기細胞 抽出은 法的·倫理的 問題와 卵子 確保의 어려움이란 障壁 탓에 누구도 엄두를 못 내는 狀況이었다.

    그러던 2004年, 서울大 文身用·황우석 敎授 팀이 世界에서 처음으로 胚芽複製를 통한 줄기細胞 抽出에 成功했다. 當時 硏究팀은 16名의 女性에게서 242個의 卵子를 抽出했고, 이 가운데 1個에서 줄기細胞를 抽出했다. 나머지 241個의 卵子는 複製過程이나 줄기細胞 抽出過程에서 사라졌다. 黃 敎授 팀은 또 2005年 18名의 女性에게서 185個의 卵子를 寄贈받아 患者의 體細胞를 넣는 方法으로 複製, 11個의 줄기細胞를 抽出하는 데 成功했다고 發表했다.

    이 가운데 世界 매스컴이 注目한 것은 ‘禁忌를 깼다’는 點에서 世上을 놀라게 한 2004年의 硏究였지만, 醫學的으로는 두 番째 硏究 亦是 못지않게 重要한 것이었다. 理論上으로는 患者 自身의 줄기細胞를 患者에게 넣을 때 免疫拒否反應을 確實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줄기細胞를 治療用으로 넣으면 患者의 白血球가 ‘敵(敵)’으로 알고 죽일 確率이 높은데, 그 確率이 顯著히 낮아지는 것이다. 바로 이 2005年 論文의 有效性을 立證할 줄기細胞의 存在 自體가 흔들리면서, 硏究의 信賴性은 瞬息間에 무너져내렸다. 이것이 最近 事態의 本質이다.

    노벨賞의 虛와 實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番 論難이 일기 以前부터 專門家들은 黃 敎授의 硏究 業績에 對해 讚揚 一邊倒로 一貫하는 言論 報道에 拒否感을 보여왔다. 黃 敎授의 硏究 成功은 學問的 創意性 때문이 아니라 ▲倫理的인 是非를 벗어나 複製 硏究를 할 수 있는 環境 ▲卵子를 쉽게 求할 수 있는 環境 ▲硏究員들의 뛰어난 技術 德分인 側面이 剛하다. 事實 體細胞 複製를 利用한 줄기細胞 抽出은 美國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法的으로 禁止된 方法이다. 黃 敎授 本人도 2004年 複製細胞에서 줄기細胞를 抽出하는 데 成功한 것은 ‘젓가락을 使用하는 韓國人의 섬세한 손’ 德分이라고 말한 바 있다. 觀點에 따라서는 스스로를 科學者가 아닌 技術者(technician)로 表現한 말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理由로 2004年 國內에서 黃 敎授 노벨賞 만들기 委員會가 만들어졌을 때 이를 傳해들은 外國의 科學者와 科學專門 記者들은 大部分 疑訝해했다. 노벨賞은 主로 새로운 學說을 세우거나 새 領域의 知識體系를 세운 ‘科學者’에게 돌아간다. 技術人과 科學經營人에게 주어지는 賞이라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노벨賞을 몇 番이나 받았을 것이다. 美國에서 열린 記者會見에서 한 外國記者가 “當身이 노벨賞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韓國人이 보기에는 無禮하기 그지없는 質問을 던져 黃 敎授를 唐慌하게 했던 것은 이같은 脈絡에서다.

    그러나 韓國의 言論은 이를 海外學者들의 稚氣어린 시샘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眞摯하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앞뒤를 알 수 없는 國家主義와, 科學硏究를 人間의 幸福과 福祉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벨賞을 받기 위해 遂行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成果主義에 埋沒되어 合理的인 意見聽取를 抛棄했다. 그렇게 해서 ‘客觀的 批判을 통한 檢證’이라는 두 番째 障壁이 무너져내렸다.

    한 가지 더 생각해볼 問題는 外國의 有力 新聞에 紹介된 硏究라고 해서 無條件 拍手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點이다. 1998年末 경희대 醫大 産婦人科의 이보연 敎授가 人間胚芽 複製에 成功했다고 發表했을 때 世界 言論은 열띤 取材 競爭을 벌인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敎授의 硏究結果를 그해 科學界 10大 뉴스로 選定했다. 그러나 大部分의 韓國 言論은 그때 이 敎授의 硏究結果를 倫理的인 理由를 들어 猛烈히 批判했다.

    경희대醫療院의 한 關係者는 “當時와 只今이 本質的으로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며 “黃 敎授의 ‘輿論 主導 能力’李 相當期間 倫理的 論難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實際로 ‘뉴욕타임스’는 2004年 黃 敎授가 ‘사이언스’에 論文을 發表했을 때 1面에 硏究成果를 報道하면서 “1998年에도 韓國에서는 複製를 試圖했다”고 言及했다.

    科學報道의 原則이 없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國民이 줄기細胞와 黃 敎授에 對해 지나친 期待를 갖게 된 데는 무엇보다 言論의 責任이 크다. 言論人의 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므로 가장 뼈아플 수 있을 것이다. 흔히 韓國 言論의 科學記事는 政治나 社會 記事에서 要求하는 基本事項을 빠뜨리는 잘못을 犯하곤 한다. 이제부터 黃 敎授 事態와 關聯해 그 具體的인 內容을 하나하나 反省해보려고 한다.

    첫째, 다양한 情報와 意見을 提供해 讀者의 論理的 判斷을 돕기보다 미리 定해진 틀에 맞춰 報道하는 傾向이 强하다. 韓國 新聞에서는 外國 言論이 黃 敎授의 硏究 成果를 極讚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實際로 美國 新聞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西歐의 權威 있는 媒體들은 科學的 事實을 차분히 傳達하고 이에 對한 意見을 多角的으로 紹介한다. ‘뉴욕타임스’만 해도 줄기細胞 硏究를 支持하는 유대人 資本이 큰 比重을 차지하는 新聞이지만, 肯定的인 見解와 否定的인 見解가 고루 紹介돼 讀者에게 생각할 수 있는 餘地를 提供한다.

    둘째, 徹底한 取捨選擇에 依해 特定人에게 유리한 情報만 나가는 境遇가 있다. 이제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됐지만, 黃 敎授가 2004年 ‘사이언스’에 論文을 發表했을 때 ‘네이처’는 卵子의 出處에 對해 問題를 提起한 적이 있다. 當時만 해도 韓國 言論에서는 ‘네이처’가 ‘사이언스’에 對한 猜忌心 때문에 이 問題를 提起했다는 式으로 報道했다. 그러나 바로 그 ‘사이언스’가 2005年 黃 敎授의 論文을 揭載할 때 ‘네이처’가 指摘한 問題를 다시 指摘한 것에 對해서는 大部分의 新聞, 放送이 눈을 감았다. 네이처와 사이언스가 論文의 性格이 다르고 서로 競爭하는 關係이지만 한쪽을 猜忌해서 歪曲報道를 한다는 것은 想像하기 어려운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外國 新聞이나 學術誌에서 否定的인 톤으로 쓴 記事가 韓國 言論에서는 ‘業績을 大書特筆했다’는 式으로 治粧됐던 境遇다. 2005年 5月31日子 ‘뉴욕타임스’ 科學面 記事나 ‘네이처’에 실린 黃 敎授 프로필의 原文과, 이를 紹介한 韓國 言論 記事를 對備하면 取捨選擇에 있어 얼마나 偏頗的인지 알 수 있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2005年 12月13日 서울대 노정혜 硏究處長이 記者會見을 열고 황우석 敎授의 論文을 檢證할 調査委員會 構成 計劃을 밝히고 있다.

    韓國 言論에서는 外國 新聞이 黃 敎授의 業績을 1面 머리記事로 重要하게 處理했다고 報道했다. 그러나 當時 1面 머리記事는 新聞의 큰 記事 왼쪽 또는 오른쪽 끝에 한 줄로 늘어뜨린 記事였으며, 美國 新聞은 科學的 硏究結果를 重要하게 處理하는 傳統이 있다. 앞서 말한 慶熙大 이보연 敎授의 硏究結果도 1面에 실렸다. 社會的 論難이 있는 主題에 對해 紹介하고 討論을 誘導하는 것과 韓國의 硏究成果를 부러워하고 極讚하는 것은 다르다. 最近에는 科學技術部가 ‘네이처’의 儀禮的인 統計記事를 ‘稱讚 記事’로 뻥튀기해 報道資料를 돌리고 이를 一部 記者들이 그대로 받아 쓴 境遇도 있다.

    韓國 言論은 한달 假量 進行된 黃 敎授 波動 渦中에도 一方의 主張만을 報道하는 傾向이 剛했다. 韓國科學技術人聯合은 “이 問題는 西歐倫理와 東洋倫理의 衝突이나 美國과 韓國의 줄기細胞 싸움이 아니다”며 “이番 事件을 契機로 우리 硏究界에 倫理 問題에 對한 백신을 投與하고 國際的 水準에 맞는 硏究 過程의 透明性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聲明을 發表했지만 大多數 言論은 外面했다.

    反面 黃 敎授側의 말은 濾過 없이 紙面에 고스란히 실렸다. 代表的인 例가 12月6日子 某 新聞이 報道한 ‘黃 敎授 휘청하는 사이…世界 첫 論文 日에 先手 뺏겨’라는 題目의 記事다. 日本 오사카현립대 硏究팀이 11月16日 國際學術誌에 發表한 論文은 黃 敎授 팀도 準備 中이었는데, ‘PD手帖’의 脅迫取材에 시달리느라 選手를 빼앗겼다는 內容이다. 그러나 이 論文은 이미 5月29日에 提出돼 8月22日 採擇된 것으로 確認됐다. 學術誌 審査過程에 몇 個月이 걸린다는 常識에 따라 論文 提出 및 受諾 날짜를 確認했다면 금세 確認할 수 있던 事案이었다.

    脊椎神經이 끊겨 下半身이 痲痹된 개에게 사람의 줄기細胞를 分化시켜 만든 神經細胞를 注入한 뒤 1年이 지나자 걷지도 못하던 개가 뛰어다닐 程度로 回復됐다는 報道나, 靈長類에 對한 줄기細胞 實驗을 實施해 좋은 結果를 얻고 있다는 報道도 記者가 基本的인 科學常識만 갖추고 있으면 避할 수 있는 誤報였다.

    서울大 바이오長期事業團의 한 敎授는 “動物實驗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아직 倫理委員會를 通過하지 못했는데 어떤 實驗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個 實驗의 境遇 比較群(群)이 있는지, 損傷의 程度가 어느 程度였는지가 實驗의 基本이다. 또 實驗用 원숭이는 現在 檢疫과 感染 與否를 判斷하는 作業이 進行되고 있는데 都大體 어떻게 實驗을 했다는 것인지 궁금할 程度라는 것이다.

    ‘섀튼’이라는 自充手

    셋째, 技士의 基本 要件이 갖춰지지 않은 境遇가 많다. 硏究業績에 對한 評價를 할 때는 제3자에게 묻는 것이 基本이다. 그러나 韓國 言論에서는 該當 論文 共同 硏究者의 코멘트가 버젓이 記事에 나간다. 美國에서 누가 黃 敎授의 硏究를 支持하는지, 그 硏究者가 黃 敎授와 어떤 關係에 있는지 言論은 한番도 注意를 기울인 바가 없다.

    黃 敎授 關聯 記事의 境遇 初盤 내내 피츠버그대의 제럴드 섀튼 敎授의 코멘트가 빠지지 않고 실렸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듯, 섀튼 敎授는 黃 敎授 論文의 共同著者이자 協力者였다. 그러나 ‘줄기細胞의 代가’라는 그의 名聲은 韓國에서만 높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섀튼 博士는 2004年 科技部가 ‘第1回 서울 줄기細胞 심포지엄’에 招請하려다 硏究實跡 未備로 對象에서 除外됐다가 迂餘曲折 끝에 招請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論難이 한창이던 무렵, 섀튼 敎授의 模糊한 態度가 事態를 혼란스럽게 만들자 黃 敎授가 그와 關係를 맺은 것부터 自充手였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넷째, 檢證 또는 追跡 報道가 全無하다. 世界的 治療法을 開發했다는 搖亂한 記事는 넘쳐도 그 治療法이 어떻게 進行되고 있는지에 對한 記事는 찾아보기 힘들다. 黃 敎授와 關聯해서도 1990年代 ‘普通 젖소보다 牛乳를 두 倍假量 많이 만드는 슈퍼젖소 開發 및 普及’ ‘송아지를 두세 마리 낳는 初(超)優良 蘇 開發 等으로 國內 酪農界에 革命’ ‘2004年까지 臟器 移植 때 拒否反應을 일으키지 않는 돼지를 量産할 수 있다’는 굵직한 報道가 이어졌지만 이에 對한 追跡 報道는 하나도 없었다.

    黃 敎授팀이 發表한 2005年 論文에서 DNA 指紋 問題를 찾아낸 地方 國立大의 博士課程 生物學徒는 인터넷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말은 아마 言論에도 그대로 適用할 수 있을 듯 하다. 言論人들은 本然의 任務인 檢證에서 科學者들보다 한참 뒤져 있었다.

    “MBC도 무너뜨리는 巨大한 힘 앞에 누가 나서려고 하겠습니까. 國益을 위해서라면 입 닥치고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至當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科學하는 사람들은 視野가 워낙 좁기 때문에 작은 現象 하나가 비뚤어져 보이면 끝없이 ‘왜? 왜?’를 외치며 덤벼듭니다. 저 亦是 그런 사람 中에 하나입니다.”

    實際的 倫理의 問題

    그렇다고 狀況이 이렇게 되었으므로, 黃 敎授를 批判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無條件 옳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PD手帖’ 論難 以前에도 黃 敎授의 硏究結果를 批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一部 宗敎·科學·哲學界의 批判은 지나치게 原論的이었기 때문에 病魔로 苦痛 받고 呻吟하는 患者와 그 家族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複製는 當爲的 倫理뿐 아니라 實際的 倫理와 부딪치는 分野다. 韓國에서는 關心을 기울이는 사람이 적지만, 事實 複製 過程은 엄청난 犧牲을 必要로 한다. 美國 존스홉킨스대의 한 敎授는 “動物複製를 하다가 머리가 네모난 돼지와 같은, 神이 怒할 程度의 畸形 動物이 繼續 나오는 것을 接하고 끔찍해 硏究를 抛棄했다”고 말한다.

    黃 敎授의 硏究와 關聯해서도 數百 마리 動物 實驗의 失敗 끝에 複製에 成功했다는 記事가 여러 次例 나왔다. 그렇지만 ‘失敗한 動物’이 어떻게 處理되는지에 對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처럼 動物과 人間의 卵子를 쉽게 求하고, 쉽게 複製實驗을 할 수 있는 與件이 果然 바람직한지에 對해서는 深刻한 論議가 必要하다. 最近 硏究結果에 따르면 複製된 動物은 새로운 蛋白質이 생겨 30~70%가 出生 1週日 만에 死亡한다.

    複製硏究의 倫理 問題를 論할 때 論難의 核心은 果然 胚芽가 生命이냐 아니냐에 있다. 많은 이가 發生한 지 14日이 안 된 胚芽는 生命이 아니라고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그 根據는 유대敎 信仰이다. 유대敎 敎理에서는 14日 만에 生命이 完成된다고 본다. 現代 科學者들이 이를 立證하는 過程에서 各種 機關의 基本꼴로 分化하는 ‘元詩選(原始線)’이 생긴다는 主張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美國에서는 科學界의 主導權을 잡고 있는 유대人 科學者들이 主로 胚芽줄기細胞의 科學的 利用을 主張하고 政治·社會的 强者인 基督敎人들은 이에 反對하는 것이다. 美國의 科學系가 黃 敎授의 硏究에 뜨거운 支持를 보냈던 것은 이러한 社會 背景과 關聯이 있다.

    그러나 最近의 硏究成果는 다르다. 遺傳學의 急速한 發達로 受精 後 4時間이면 ‘遺傳子 刻印’(탈(脫)메틸화-재(再)메틸화)이라는 過程을 통해 個人의 遺傳子가 完成된다는 事實이 밝혀졌다. 이러한 硏究結果는 胚芽가 生命이라는 主張에 힘을 싣는다.

    黃 敎授 팀은 2004年 論文에서 卵子 242個 中 1個에서 줄기細胞 抽出에 成功했고, 2005年 論文에서는(현재로서는 根源的 疑心에 到達했지만) 185個 中 11個가 成功했다고 發表했다. 그러나 失敗한 나머지 胚芽에 對한 考察은 찾을 수 없었다. 胚芽複製를 維持해 生命으로 만들면 그대로 複製人間이 되고, 죽으면 生命殺害가 되는 倫理的 問題에 부딪히지만 이에 對한 社會的 苦悶은 거의 없었다.

    事態의 방아쇠

    韓國人의 ‘愛國心’은 이 모든 問題를 뛰어넘는다. 이番 黃 敎授 波動 때 1000名이 넘는 女性이 卵子 寄贈 意思를 밝혔다. 卵子 寄贈者들은 黃 敎授의 硏究室 앞에 진달래 꽃잎을 깔고 ‘黃 敎授가 사뿐히 즈려밟고 오시길’ 祈願했다. ‘I love 황우석’의 會員이라는 金某(47)氏는 未婚인 두 딸과 함께 卵子寄贈 意思를 밝히고 TV에도 出演했다. 金氏는 司會者가 卵子 寄贈에 副作用이 없겠느냐고 묻자 뜻밖에도 “若干의 苦痛 外에 副作用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答했다.

    이 또한 事實이 아니다. 女性이 卵子를 提供하려면 ‘과(過)배란 誘導劑’를 맞으며 苦痛을 堪耐해야 한다. 卵子 採取 때 2週 程度 入院해야 하며 이 過程에서 腹痛과 脫水 等을 同伴하는 卵巢과자극증후군을 甘受해야 한다. 甚하면 呼吸困難으로 숨질 수도 있다. 實際로 지난해 한 不妊 女性이 妊娠을 위해 過排卵 誘導劑를 맞고 腦出血로 死境을 헤맨 적이 있다.

    게다가 過排卵 誘導劑를 맞은 女性은 卵巢癌 發生의 危險이 懸隔히 높아진다는 報告가 있기 때문에 西歐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좀체 卵子를 提供하려 하지 않는다. 西歐 科學界에서 同僚 硏究員의 卵子를 제공받지 못하도록 規定한 것은 ‘默示的 强壓’李 介入될 수 있기 때문이다.

    黃 敎授가 2004年 2月 ‘사이언스’에 論文을 發表했을 때 西歐 科學者들은 黃 敎授팀이 어떻게 그처럼 많은 卵子를 求할 수 있었는지 疑訝해했다. 그들은 卵子를 쉽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美國의 ACT라는 生命工學 會社가 體細胞 硏究를 위해 ‘1人當 4000달러씩 주겠다’며 美國 全域에 廣告를 내고 卵子를 모으려 했지만 겨우 19個밖에 모으지 못한 바 있다.

    當時 ‘네이처’는 黃 敎授팀 硏究에서 卵子의 出處가 의심스럽고 卵子 提供者에게 危險性을 알리지 않았다고 報道했다. ‘네이처’ 記者가 黃 敎授팀의 一圓을 取材했더니 한 硏究員이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은 바람과 韓國에 對한 사랑으로 卵子를 寄贈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黃 敎授側은 問題가 불거지자 “英語가 未熟해서 생긴 誤解”라고 말을 바꿨다. 黃 敎授는 곧 資料를 公開하겠다고 했지만 此日彼日 미뤘고, 마침내 이른바 ‘硏究倫理 問題’로 飛火해 오늘의 事態를 부르는 방아쇠가 된 것이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盧武鉉 大統領 內外가 2005年 10月19日 世界줄기細胞허브 開所式에 參席했다. 왼쪽부터 김근태 保健福祉部 長官, 汚名 科技部 長官, 정운찬 서울대 總長, 성상철 서울대병원長, 盧 大統領 內外, 황우석 世界줄기細胞허브 所長, 섀튼 美 피츠버그大 敎授.

    이와 關聯해 ‘사이언스’는 2005年 5月 黃 敎授의 두 番째 硏究 成果를 揭載할 때, 異例的으로 黃 敎授의 硏究業績을 問題 삼은 스탠퍼드大 밀드레드 조 博士 팀의 論文을 함께 揭載했다. 이 論文에서 조 博士팀은 黃 敎授가 卵子 供與者에게 過排卵 誘導劑의 副作用과 體細胞 複製 줄기細胞가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쓰인다는 點 等을 알리지 않았다고 指摘했다. 조 博士 팀은 또 ▲韓國과 美國 共同硏究이면서 두 나라 中 어느 政府機關의 承認도 받지 않은 點 ▲醫學的 用途로 寄贈된 卵子가 硏究用으로 使用된 點 ▲‘治療用’이라는 用語의 잘못된 使用 等의 倫理的 問題點을 指摘했다. 그러나 當時 國內 主要 新聞과 放送에서는 어느 한 곳도 이 問題를 指摘하지 않았다.

    호들갑과 煽情性

    한동안 國民은 韓國이 줄기細胞 硏究에서 最尖端에 서 있는 것으로 믿었다. 言論은 이를 바탕으로 早晩間 韓國이 엄청난 未來 産業의 先頭走者가 될 것처럼 報道해왔다. 그러나 正確하게 말하면 韓國은 ‘技術’의 領域에 가까운 줄기細胞의 抽出과 培養에서는 世界的 水準이지만 ‘科學’에 더 가까운 줄기細胞 硏究에서는 初步 水準이라는 것이 事實에 가깝다.

    줄기細胞 硏究의 고갱이는, 줄기細胞가 다른 細胞로 바뀌는 것을 막고 특정한 細胞로 分化시켜 일정하게 分裂할 수 있게 하는가에 있다. 이 部分에 對한 韓國의 硏究는 先進國에 한참 뒤져 있다. 게다가 胚芽줄기細胞의 分化 過程에 對해서는 先進國도 아직 初步的인 水準에서만 理解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細胞의 分化와 抑制에 對한 硏究論文은 繼續 發表되고 있으며 이 部分에 對한 硏究는 美國이 先頭주다다. 美國의 캘리포니아 주는 한 해 3000億원을 줄기細胞 硏究에 쓰고 있으며, 하버드大 줄기細胞 硏究所의 基金만 1000億원에 이른다.

    胚芽줄기細胞 硏究의 大家(大家)로는 最近 卵子 없이 胚芽줄기 細胞 生産에 成功한 美國 하버드대의 더글러스 멜턴과 케빈 이건 그리고 조지 데일리, MIT의 루돌프 야니視, 국립보건원의 로널드 맥케이, 슬로언 케터링 癌硏究센터의 로렌스 스투더, 英國 에딘버그代의 오스틴 스미스, 日本 리켄硏究所의 신이치 니시카와, 요시키 社史이, 이스라엘 히브流大의 니審 벤베니스티, 濠洲의 앨런 트라운손과 마틴 페라, 英國 케임브리지大의 로저 피더슨이 있다.

    또 聖體줄기細胞 硏究의 代價로는 美國 스탠퍼드대 어빙 와이스만, 헬렌 블라우, 하버드大 레너드 존, 데이비드 스캐든, 스튜어트 吳킨, 솔크硏究所의 프레드 게이지, 메이요病院의 제프리 프레트, 베일러代의 마거릿 굿델, 인디애나대의 할 브록스마이어, 미시간대의 神 모리슨, 록펠러대의 일레인 後市, 캘리포니아 번햄硏究所의 에반 스나이더, 日本 도쿄대의 아쓰시 미야지마, 게이오대의 히데유키 吳카노, 캐나다 토론토대의 더레크 半데르쿠이, 스웨덴의 올 린드벨, 콜로라도 大義 커트 後리드 等을 들 수 있다.

    關聯硏究에서 頭角을 나타내는 專門家들은 하나같이 ‘테크니션’이라기보다는 細胞 ‘硏究’의 大家들이며, 數十篇에서 數百篇의 論文을 發表해왔다.

    ‘愛國心’의 非合理

    그間 누군가 黃 敎授의 成果에 對해 異議를 提起하면 곧바로 “美國 硏究者들이 共同硏究를 提案할 程度이고, 하버드大-MIT 硏究팀이 서울에 國際줄기細胞銀行을 設置하자고 했다”는 反論이 提起됐다. 이 또한 論理的으로 들여다봐야 할 部分이다.

    돌이켜보건대 美國의 科學者들은 韓國에서 줄기細胞 硏究를 無限定 자유롭게 한다는 데 커다란 關心을 보인 듯하다. 黃 敎授의 名聲이 頂點에 오를 무렵에도, 美國 言論에서는 ‘韓國의 뛰어난 科學者가 훌륭한 業績을 이룬 事實’이 아니라 美國이 줄기細胞 硏究에 對한 規制를 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關心의 對象이었다. 美國 科學者들은 規制 緩和의 當爲性을 主張하며 黃 敎授의 케이스를 利用했다.

    많은 科學者는 美國이 韓國의 豐富한 卵子와 이것을 利用한 줄기細胞株에 關心을 갖고 韓國에 接近한 것이었다고 본다. 結局 그런 狀況이 繼續 進行됐다면 韓國은 ‘卵子 및 줄기細胞 原料 提供處’가 될 可能性이 컸으리라는 意味다. 一部 科學者들은 이러한 現實에 빗대어 黃 敎授의 硏究를 ‘행주大捷’에 比喩했다. 韓國의 女性이 ‘愛國心’으로 武裝하고 健康을 해쳐가며 卵子를 提供했기에 硏究가 成功했고, 이런 일은 大韓民國이 아니고서는 不可能하다는 意味를 담은 比喩다.

    이런 意味에서 지난 한 달 동안 一部 言論이 黃 敎授側 論旨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운 ‘技術流出論’과 ‘國益 損傷론’은 根據가 稀薄했다. 몇몇 言論은 黃 敎授팀의 앞선 技術이 流出될 憂慮가 있으므로 黃 敎授팀이 再檢證을 避해야 하고 美國의 硏究員을 國內에 召喚해야 한다고 强辯했다. 그러나 流出될 技術이 무엇인지는 讀者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黃 敎授팀에서 갖고 있는 抽出技術은 이미 公開된 것이다. 우리는 아직 美國에서 줄기細胞와 關聯한 知識을 배우고 있는 時點이다. 미즈메디病院의 硏究員들도 앞선 美國의 技術을 배우러 간 것이다. 이런 式으로 技術流出을 걱정한다면, 거꾸로 美國의 各種 硏究所에서 밤을 밝히며 硏究에 邁進하고 있는 數千名의 韓國人 科學者는 美國의 技術을 빼낼 念慮가 있기 때문에 韓國으로 보내야 한다는 論理가 可能해진다. 本質的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論理였던 것이다.

    이처럼 非合理的인 主張은 科學者의 世界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現象이다. 科學者가 學術誌에 論文을 發表하는 것은 1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學術誌라는 討論의 마당에서 檢證을 받고 窮極的으로 科學의 發展, 人類의 幸福에 寄與하기 위해서다. 줄기細胞처럼 이제 막 胎動한 分野는 世界 各國 科學者들의 協力이 絶對的으로 必要하다. 濠洲 모나時代의 줄기細胞 分化 硏究 代價인 마틴 페라 敎授는 筆者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줄기細胞 治療法을 만들려면 휴먼 게놈 프로젝트에 맞먹는 努力이 必要하며, 이는 한 사람의 科學者, 한 硏究所, 한 國家에서 이룰 수 없다”고 强調했다.

    卓越한 人間關係 能力

    어디까지가 眞實인지조차 혼란스러운 狀況이 돼버렸지만, 黃 敎授의 硏究成果와 比重이 完全히 虛僞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뛰어난 能力으로 韓國이 줄기細胞 硏究에 ‘選擇과 集中’을 할 수 있는 與件을 造成했고, 이에 따라 많은 科學者가 줄기細胞를 硏究할 마당을 만들었다. 黃 敎授는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다. 每日 子正을 넘겨 活動하고 이른 새벽부터 일했다. 自身은 술 한 盞 입에 대지 않으면서도 술자리에서 子正이 넘도록 拍手를 쳐주고는, 다음날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硏究室로 向했다. 普通 사람은 想像도 못할 힘든 日課를 버텨내곤 했다.

    그는 이를 爲해 各樣各色의 사람을 만났다. 이른바 ‘黃金박쥐’ 모임(황우석 敎授, 金秉準 靑瓦臺 政策室長, 박기영 靑瓦臺 科學技術補佐官, 진대제 情報通信部 長官의 姓을 따서 만든 모임)은 그가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그의 政治的 能力이 얼마나 卓越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紐帶關係로 인해 植物學者 出身인 박기영 補佐官이 2004年 ‘사이언스’ 論文에 著者로 登載된 데 對해 論難이 일기도 했다. 黃 敎授는 李海瓚 國務總理, 汚名 科技部 長官 兼 副總理, 강창희 前 科技部 長官 過度 莫逆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黃 敎授는 記者들에게 誠心誠意껏 對하는 것으로 有名했다. 黃 敎授가 美國에 갔을 때의 일이다. 韓國 記者가 時差를 錯覺해 그곳 視角으로 새벽 3時에 電話를 걸었지만 黃 敎授는 싫은 내色 없이 하나하나 차분히 說明을 했다. 더욱이 그는 끊임없이 ‘特種’을 쏟아놓았기 때문에 어느 記者도 선뜻 그를 批判하는 記事를 쓰려 하지 않았다. 黃 敎授는 言論社 幹部級에서 平記者까지 戰略的 管理를 하는 것으로도 有名했다. 그래서 一部 記者가 批判的 記事를 쓰려고 해도 多數의 목소리에 묻히고 마는 形便이 持續됐다.

    이러한 雰圍氣는 黃 敎授에게 巨大한 힘이 集中되는 結果를 낳아 오히려 負擔을 加重시켰다. 國家의 科學政策과 豫算執行 過程 相當部分이 그의 硏究팀을 中心으로 이뤄졌다 해도 過言이 아니다. 科學界에서는 黃 敎授를 批判하면 ‘왕따’가 된다거나 硏究費 支援이 끊긴다는 말이 公公然히 돌았다. 甚至於 黃 敎授의 硏究를 위해 그가 使用하는 硏究費의 出處를 묻지 말아야 하며 國政監査에서도 免除해야 한다는 말이 아무런 濾過 없이 新聞紙上에 올랐다.

    2005年 國會 國政監査 結果에 따르면 , 科技部는 6月의 最高 科學者로 選定된 黃 敎授에게 30億원을 주면서 靑年 博士들에게 支援해야 할 10億원을 專用(轉用)했다. 이 돈은 博士學位 取得 後 2年 以內 硏究者들 가운데 10名의 젊은 科學者를 選定해 1億원씩 支援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國政監査 資料에 따르면 1998年부터 2005年 10月까지 黃 敎授가 政府에서 받은 硏究費는 確認된 것만 모두 380億원이다. 科學界에서는 黃 敎授팀이 政府 및 民間業體에서 받은 돈을 합치면 500億이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라진 ‘國家의 任務’

    또한 國政監査에서는 黃 敎授팀이 生命倫理法에 따라 保健福祉部의 承認을 받아야 할 人間胚芽 硏究를 하면서 이 節次를 無視하고 硏究費를 받아 쓴 事實, 細胞應用硏究事業團 倫理委員會의 條件附 承認 判定을 無視하고 硏究費를 執行한 일 等이 論難이 되기도 했다.

    ‘황우석 사태’ 大해부

    2005年 12月2日 MBC ‘PD手帖’ 최승호 CP(오른쪽)와 한학수PD가 記者會見을 열고 프로그램을 둘러싼 論難에 對해 立場을 밝히고 있다.

    黃 敎授의 硏究機密을 保護한다는 國家情報院의 行態는 더욱 問題였다. 程度를 넘어섰던 것이다. 韓國生命倫理學會가 黃 敎授의 硏究에 對해 聲明을 發表하자, 當場 國精院側에서는 이 學會 구영모 總務의 所屬 學校인 울산대 醫大 박인숙 學長에게 抗議電話를 해 ‘管理’를 付託하기도 했다. ‘政治權力과 科學의 야릇한 만남’李 낳을 結果를 憂慮할만 했다.

    1996年 英國에서 世界 最初의 體細胞 核移植 複製動物인 양 ‘돌리’ 誕生이 發表되자, 當時 美國의 빌 클린턴 大統領은 卽刻 著名한 生命倫理學者를 委員長으로 하는 國家倫理委員會를 召集했다. 人間複製와 連結될 可能性과 더불어 張差 生命倫理에 미칠 社會的 波長을 憂慮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韓國의 境遇는 달랐다. 黃 敎授의 硏究는 靑瓦臺의 全幅的인 支援과 聲援을 바탕으로 進行됐다. 그 過程에서 ‘엄청난 波長을 일으킬 수 있는 議題를 全 社會가 함께 苦悶하는 作業’을 이끌어야 할 政府의 固有 業務는 어디에서도 痕跡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苦悶을 提起하는 목소리를 政府가 나서서 批判하는 形局이 만들어졌다.

    書頭에서 言及했지만, ‘황우석 事態’의 가장 큰 波長은 그가 불러일으킨 幻想이 直間接的으로 一般人에게 그릇된 믿음을 심어줬다는 點이다. 患者들은 黃 敎授가 ‘魔術 같은 治療法’을 膳賜하기를 期待해왔다. 不治病 患者들이 ‘그때’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며 診療室마다 脊髓障礙人들이 醫師에게 黃 敎授의 治療法이 언제 開發되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胚芽 줄기細胞를 患者에게 投與해 特定疾患을 治療하는 일은 아직 遙遠하다.

    只今까지의 硏究水準을 꼼꼼히 살펴보자. 줄기細胞의 30~70%가 타깃인 臟器(臟器)에 들어가는 데 成功한 몇몇 動物實驗에서조차 該當 動物의 狀態가 一時的으로 좋아지긴 했지만 곧 줄기細胞들이 없어졌다. 더욱이 줄기細胞의 10%가 癌 細胞나 다른 細胞로 바뀌는 問題를 根源的으로 解決하지 못한 狀態이다. 이밖에도 줄기細胞가 어떻게 分化되는지에 對한 硏究도 初期段階이며 實驗室에서 줄기細胞 培養 때 나타나는 染色體 以上의 解決, 줄기細胞의 效果的 移植方法, 移植 細胞의 體內 長期生存方法, 人間 由來의 試藥 및 바탕細胞(줄기細胞를 日程 狀態로 維持하기 위해 必要한 細胞)의 確立 等 풀어야 할 宿題는 너무나 많다.

    理論的으로 줄기細胞를 利用한 治療가 效果를 낼 可能性이 가장 큰 疾病은 파킨슨病이다. 파킨슨病은 다른 神經系 疾患科는 달리 複雜한 神經回路의 損傷에 따른 疾病이 아니라, 主로 도파민이라는 神經傳達 物質을 分泌하는 單一 神經細胞의 損傷에 依해 發生한다. 따라서 이 病은 줄기細胞 治療의 0順位로 꼽혔다.

    그러나 이 또한 難關이 疊疊山中이다. 胎兒의 重腦細胞를 移植한 動物細胞에서 肯定的 反應이 나타났다는 事實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매우 鼓舞的이었지만, 最近 들어 各種 副作用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運動障礙가 回復되지 않거나 새로운 障礙가 나타났고 移植 部位에 다양한 合倂症이 생긴 것이다.

    糖尿病과 一部 心臟病 治療 分野에서도 相當部分 進陟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 分野에서도 어떤 難關이 생길지 모르며, 나머지 長期에서도 治療法이 언제 나올지 누구도 壯談하기 어렵다. 現在로서는 患者에게 投與된 줄기細胞가 곧 癌細胞로 바뀌어 苦痛을 안겨주며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온몸이 痲痹된 사람에게 줄기細胞를 넣어 神經細胞로 分化하게 하면 奇跡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事實은 그렇지 않다. 周圍의 靭帶와 筋肉이 죽었는데 神經細胞만 살아난다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神經細胞는 一般 細胞와 달리 表面에서 軸索突起 하나가 길게 뻗어나 다른 神經細胞나 筋肉組織에 連結돼 있는 形態다. 끊어진 軸索突起를 줄기細胞로 解決하는 것은 現在로서는 方法이 없다. 줄기細胞가 다른 細胞로는 分化하지 않고 痛症을 느끼는 神經시스템만 살리는 쪽으로 分化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苦痛의 소리가 끔찍하지 않은가.

    게다가 最近에는 一部 非良心的인 醫師가 巨額을 받고 脊髓損傷 患者에게 줄기細胞를 投與하고 있다. 動物實驗에서 安全性이 立證되지 않은 治療法을 患者에게 實施하는 것은 後進國에서나 可能한 일이다. 한 벤처企業과 病院이 公募해 肝硬變症 患者에게 聖體줄기細胞를 投與했다가 患者가 다른 治療를 받을 機會를 놓쳐 숨진 事例도 있다. 한 放送局에서 肝硬變症 末期 患者가 줄기細胞 治療를 받고 回復돼 漢拏山을 登攀하는 事例가 報道되자 이를 본 患者들이 全國에서 몰려왔다. 그러나 回復됐다는 患者는 한 달 뒤 숨졌고, 줄기細胞 治療를 받은 40代의 男性은 이 때문에 간 移植 機會를 놓쳐서 結局 숨졌다.

    사람의 몸은 사람이 쉽게 操作할 수 있을 程度로 簡單하지 않다. 科學者들은 人間의 몸에 對해 100萬分의 1도 모른다는 事實을 謙虛히 認定해야 한다. 科學을 위한 樂觀, 科學에 依한 樂觀은 必要하지만 그렇다고 부풀려서도 안 된다. 섣부른 樂觀은 絶望으로 바뀌기 十常이다. 우리가 새로운 事實을 알면 알수록 새로운 問題를 던져주는 것이 科學이다. 하버드대의 멜튼 博士가 卵子 없이 줄기細胞를 만드는 데 成功한 뒤 “이제 始作일 뿐”이라며 過度한 意味 附與를 警戒한 것은 意味深長하다.

    한 줄기細胞 專門家는 黃 敎授의 名聲이 頂點에 있었을 때 “韓國에서 ‘世界 最初’의 榮譽를 위해 脊椎痲痹 患者나 파킨슨病 患者에게 줄기細胞를 投與한 뒤 一時的인 效果가 나면 ‘世界的 英雄’으로 美化했다가, 後날 癌이 發生하거나 副作用이 생기면 모두가 沈默하는 시나리오가 實現되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드롬’이 進行되는 동안 限없이 커진 幻想과 그로 인한 副作用은 只今 그에 一助한 많은 言論과 關係者들에게 責任을 묻고 있다.

    잊혀지는 ‘只今 當場’

    한동안 韓國 科學界에서는 ‘줄기細胞’라는 이름을 달지 않으면 名銜을 내밀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 過程에서 相當數 有望 科學 分野가 關心과 支援의 對象에서 멀어졌다. 醫學만 해도 나노(Nano) 工學의 發展을 바탕으로 하는 나노 醫學, 遺傳子 治療法, 聖體줄기細胞 硏究 等 더욱 발전시켜야 할 分野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여러 分野가 함께 發展해야 難治病 治療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黃 敎授 波動이 否定的으로 치닫는다고 해서 胚芽줄기細胞 硏究를 抛棄해서도 안 된다. 이番 事態가 科學 自體의 不信으로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警戒해야할 狀況이다.

    무엇보다 必要한 것은 言論의 自己省察이다. 于先 지나친 性과 爲主 報道에서 벗어나야 한다. 患者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은 좋지만 그前에 眞實에 對한 探究와 省察이 必要하다. 言論은 科學을 ‘歡呼와 戰鬪’의 領域이 아니라 ‘省察과 討論’의 領域으로 格上시켜야 할 責任이 있다.

    더욱 重要한 것은 파킨슨病이나 脊髓疾患者들이 왜 이렇게 줄기細胞 硏究에 매달리는지에 對한 愛情 어린 接近이다. 患者들이 줄기細胞에 盲目的으로 매달리는 것은 그들이 現實에서 엄청난 苦痛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피눈물은 日常生活에서 當하는 不平等을 解消하고 人間으로서 最小限의 尊嚴性을 인정받고자 하는 欲求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나 言論과 政府가 早晩間 病이 完治될 길이 열릴 것처럼 떠드는 동안 이들이 ‘只今 當場’ 現實에서 겪는 숱한 問題가 視野에서 사라진다.

    분명한 것은 黃 敎授의 硏究가 100% 眞實이었다 해도, 當場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었다는 事實이다. 國內의 한 줄기細胞 硏究學者가 “줄기細胞 硏究는 只今 우리가 熱心히 하면 後孫에게 惠澤을 줄 수 있는 未來의 醫學”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뜻에서 意味深長하다.

    하나의 疾病을 征服하기 위해서는 좋은 論文이 數萬, 數十萬便 쌓여야 한다. 科學의 進步와 疾病征服을 위해서는 科學界, 言論, 社會, 政府가 모두 기다릴 줄 알고, 좀 늦어보여도 바른 길을 가는 姿勢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筆者는 믿는다. 이를 깨닫는 契機가 된다면, 황우석 事態는 充分히 아프지만 意味 있는 授業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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