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部長님에서 搜査妨害者로, 金搜査官에서 詐欺꾼으로|신동아

部長님에서 搜査妨害者로, 金搜査官에서 詐欺꾼으로

‘屛風’ 論難 두 主役 고석과 김대업의 惡緣

  • 글: 組成式 동아일보 新東亞 記者 mairso2@donga.com

    入力 2002-10-04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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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國防部 法務課長 고석 大領과 김대업氏. 兵務非理 搜査責任者와 提報者로 만난 두 사람은 지난 3年 餘 동안 怨讐처럼 지내왔다. 두 사람의 모질고 질긴 惡緣에 얽힌 祕話를 公開한다.
    9月12日 참여연대는 國防部 法務課長 고석 大領을 國防部 檢察團에 告發했다. 公務上 機密 漏泄, 證據 湮滅, 國會 僞證 等의 嫌疑다.

    부장님에서 수사방해자로, 김수사관에서 사기꾼으로

    고석 大領

    참여연대는 告發狀에서 “最近 이정연氏 兵役問題를 둘러싼 攻防過程에서 當時 搜査에 參與했던 檢察官들의 證言을 통해 고석 大領의 搜査妨害·縮小·隱蔽 嫌疑가 追加로 드러났다”고 主張했다. 아울러 “軍檢察은 이 事件을 새롭게 搜査해 고석 大領의 嫌疑 및 軍 內部의 組織的 隱蔽勢力을 分明히 밝히고 그에 相應하는 責任을 물어야 한다”며 軍檢察의 徹底한 搜査를 促求했다.

    참여연대가 고석 大領을 告發한 것은 이番이 두番째다. 참여연대는 1999年 11月 當時 國防部 檢察部長이던 高大領을 職務上 祕密漏泄 및 名譽毁損 嫌疑로 告發한 바 있다. 두 가지 嫌疑 모두 김대업氏와 關聯된 것이다.

    부장님에서 수사방해자로, 김수사관에서 사기꾼으로

    김대업氏

    兵務非理搜査 當時 情報員이자 提報者였던 金氏의 身分은 祕密에 부쳐져 있었다. 그런데 古代令이 이를 被疑者들에게 드러냄으로써 搜査에 支障을 줬다는 것, 이것이 職務上 祕密漏泄 嫌疑에 該當한다. 또 名譽毁損 嫌疑는 當時 金氏로부터 調査를 받던 被疑者들에게 金氏의 前科事實을 公開한 것이다. 이 事件을 맡았던 유경환 檢察官은 起訴 意志가 있었지만 上部의 反對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高大領은 올 3月 無嫌疑 處分됐다.

    市民團體인 참여연대에 依해 두番씩이나 告發當한 고석 大領. 屛風과 關聯해 國會 國防위와 法査委에 證人으로 出席했던 그는 亦是 證人으로 나온 다른 法務官들과 相反된 목소리를 내 눈총을 받기도 했다. 國會 僞證 嫌疑는 바로 이와 關聯된 것이다.



    고석 大領. 그는 果然 참여연대의 主張대로 兵務非理搜査를 妨害했는가. 그와 김대업氏는 어떤 惡緣을 갖고 있는가. 金氏 못지않게 話題의 人物이 된 그의 말은 어디까지 眞實인가.

    古代令이 國會에서 韓美聯合司 法務室長人 이명현 中領 및 1軍司令部 法松課長 유관석 少領과 背馳되는 證言을 하며 對立한 것은 1999年 兵務非理搜査 狀況의 裁判이다. 當時 國防部 首席檢察官으로 1次 軍·檢合同兵務非理搜査 팀長을 맡았던 이명현 中領(當時 少領)은 檢察部長 高大領(當時 中領)李 기무사와 癒着해 兵務非理搜査를 妨害한다고 여겼다.

    李中領에 따르면 高部長의 機務司 癒着嫌疑가 처음 捕捉된 것은 兵務非理搜査의 觸發劑가 된 1998年 5月의 원準位 事件 때다. 李中領의 證言.

    “원準位 事件 當時 機務·憲兵이 連累된 兵務非理가 몇 건 있었다. 어느날 機務司 商社 한 名을 調査하는데 古阜腸이 ‘房(調査室) 좀 치우고 해라’ ‘호텔 가서 하면 안되냐’ 하면서 干涉했다. 그래서 내가 ‘部長은 都大體 檢察部長이요, 機務司 公報室長이요?’ 하고 따졌다. 當時 調査 받은 機務 要員들 中에 司法處理된 사람은 한 名도 없다. 一般 軍人은 500萬원만 받아도 拘束됐는데, 機務 要員은 1000萬원 먹고도 警告만 받았다.”

    李中領은 고석 檢察部長이 機務司側에 搜査情報를 알려주고 있다고 判斷했다. 李中領의 뒤를 이어 兵務非理搜査를 맡은 다른 檢察官들의 判斷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高大領을 信賴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高大領은 왕따당했던 것이다.

    “김대업은 搜査對象”

    이와 關聯해 재미있는 逸話가 있다. 1999年 4月 下旬 고석 大領이 이끌게 될 2次 兵務非理 搜査팀이 發足하기 直前의 일이다. 業務引受引繼를 해야 하는데, 直屬上官인 고석 檢察部長을 못 미더워한 이명현 中領은 李洪基라는 機務 要員에 對한 搜査資料를 따로 챙겨놓고 넘겨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會食 자리에서 슬그머니 李洪基 얘기를 꺼냈다. 檢察官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얘기하면 古阜腸이 設使 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봐줄 수 없으리라고 計算해서였다. 結局 李氏는 高部長에 依해 拘束됐다.

    高大領의 機務司 癒着疑惑을 뒷받침하는 重要한 證據로 꼽히는 것이 1999年 5月 拘束됐던 機務 要員 金○○氏의 陳述書다. 1999年 8月25日 軍檢察 調査室에서 作成한 이 陳述書에서 金氏는 이렇게 主張했다.

    “…監察室長 大領 손○○이 ‘檢察部 고석 部長이 내 後輩인데 그동안 기무사에서 相當한 도움(아마도 進級 및 補職管理를 뜻하는 것으로 解釋됐음)을 준 바 있고 最近에 만나 對話했는데 앞으로 기무사 要員에 對해 더 以上 拘束이 없을 것이다’라는 確約을 받았으니 釜山(金○○氏는 釜山 機務部隊에서 勤務했다)에 내려가 勤務나 熱心히 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기무사의 自尊心이 있는데 檢察部에서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하면서 ‘古阜腸이 앞으로 出世하려면 機務司의 도움 없이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等의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對해 前 機務司 監察室長 손○○氏는 自身은 金○○氏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 없다고 否認한 바 있다. 고석 大領도 마찬가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뛴다. 그렇다면 金氏가 小說을 썼다는 얘기인가.

    2000年 2月 記者는 이 問題와 關聯해 고석 大領에게 質問을 던진 바 있다.

    -古代令이 機務 要員이 關聯된 搜査를 縮小·隱蔽했다는 疑惑이 있다.

    “내가 搜査할 때 機務·憲兵 要員을 가장 많이 집어넣었다. 터무니없는 陰해다. 천용택 國防長官한테 確認하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무사와 癒着했다는 疑惑이 提起됐는데.

    “내가 搜査해 司法處理되지 않은 사람이 있나. 두 달 동안 搜査하며 機務 要員 5名을 拘束하고 8名을 立件했다. 脂肪搜査(各 地方 軍病院에 派遣돼 있는 機務 遙遠 搜査) 해야 한다고 靑瓦臺와 천용택 長官에게 報告書를 올린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提報者(김대업)가 KBS ‘追跡60分’에 ‘檢察部長이 地方搜査 안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그대로 放送됐다.”

    -重要한 情報員인 김대업氏 身分을 露出시킨 것은 搜査妨害 아닌가.

    “어떻게 된 일인지 內部 搜査資料가 밖으로 다 돌아다니더라. 그래서 그 親舊(김대업)를 疑心했다. 2次 搜査할 때 그 親舊가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내가 ‘너 最初에 100件(兵務非理)을 갖다 준다고 約束했는데, 20件만 가져와라. 그러면 너를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안 가져왔다. 그 다음에 5件만 가져오라고 말했는데 亦是 듣지 않았다. 그는 搜査對象이었다. 처음 들어올 때 約束과 달리 自身이 連累된 兵務非理를 다 털어놓지 않은 데다 非違事實이 드러나고 前科者 主題에 搜査官 行世하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다.”

    김대업을 둘러싼 葛藤

    김대업氏는 고석 大領과의 葛藤에 對해 이런 얘기를 들려준 바 있다.

    “나는 특별한 感情이 없었는데 그 사람은 달랐다. 當時 이수석(이명현 首席檢察官) 밑에서 일했던 나는 이수석에게만 모든 걸 報告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調査過程에 어떤 특별한 사람이 連累된 非理가 發見되면 그와 關聯된 資料를 (古阜腸이) 다 가져가버리곤 했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고석 大領은 最近 記者와 電話通話에서 “1999年 4月 어느날 김대업이 搜査官 會議席上에 앉으려 하는 걸 내가 막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뒷날 멱살잡이까지 할 程度로 사이가 나빠진 高大領과 金氏의 葛藤은 初期 兵務非理搜査 展開過程에 重要한 變數로 作用했다. 이명현 中領을 비롯해 2次 搜査 當時 首席檢察官이었던 유관석 少領, 機關(機務·憲兵)要員 搜査를 위해 誕生한 特別搜査팀을 이끌었던 김의형 少領, 男性願 少領 等은 모두 兵務非理搜査에 對한 김대업氏의 熱情과 能力을 認定하는 便이었다.

    反面 고석 大領은 기무사와 마찬가지로 金氏의 搜査參與를 反對했고 그를 詐欺꾼 取扱했다. 아울러 金氏를 감싸는 法務官들을 非難했다. 金氏의 搜査參與와 機務 要員에 對한 搜査方向을 두고 摩擦을 빚었던 두 勢力이 3年이 지난 오늘날 國會와 言論을 통해 다시 맞붙은 것이다.

    고석 大領과 김대업氏가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엔 關係가 좋았다. 이명현 中領의 證言에 따르면 김대업氏에게 ‘金搜査官’이라는 呼稱을 처음 붙여준 이도 高大領이다.

    高大領은 1999年 가을 천용택 國防長官의 承認을 얻어 靑瓦臺에 兵務非理搜査를 위한 軍·檢合同搜査팀 創設을 建議했다. 그때 靑瓦臺에 올린 報告書 草案을 作成한 사람이 바로 金氏다. 이렇게 보면 現 政權 들어 4年 가까이 進行된 兵務非理搜査는 金氏의 ‘손’(靑瓦臺 報告書)에서 始作해 金氏의 ‘입’(屛風)에 依해 마무리돼가고 있는 셈이다.

    고석 大領은 1999年 5月 2次 兵務非理搜査를 始作하며 김대업氏를 搜査팀에서 빼버렸다. 2次 搜査가 막바지에 이른 7月 初旬 高大領은 過去 김대업氏가 連累된 兵務非理事件을 追跡하기도 했다. 金氏가 크게 反撥했음은 勿論이다.

    7月11日 이명현 中領은 조성태 國防長官에게 兵務非理搜査가 隱蔽·縮小됐음을 鎭靜하는, 報告書 形態의 便紙를 썼다. 便紙에서 李中領은 고석 檢察部長의 機務司 癒着疑惑, 機務司의 搜査妨害 嫌疑를 提起하는 한便 김대업氏가 兵務非理搜査에 얼마나 必要한 人物인지 强調했다. 이 便紙에는 또 李中領이 高大領과 金氏의 葛藤을 어떻게 把握하고 있었는지 잘 드러나 있다.

    “제가 留學 準備로 1998年 11月18日 토플試驗을 보기 爲해 1週間의 休暇를 받은 時期에 8月 以後 한番도 김대업氏를 찾지 않았던 고석 檢察部長이 김대업氏를 호텔로 찾아가 ‘같이 일을 해보자. 兵務非理搜査를 도와달라. 곧 靑瓦臺에서 連絡이 있을 것이고 檢·警·郡 合搜部가 設置될 것이다’ 等의 얘기를 하고, ‘國防長官께 다 말씀드렸으니 身分保障을 確實히 할 것이다. 李首席은 遊學가니 搜査에 參與할 수 없다’고 하며 저를 排除하고 自己와 함께 일할 것을 提議했으나, 김대업氏는 ‘이명현 首席檢察官과 이때껏 4個月을 國防部의 아무 支援 없이 苦生하며 일해왔고 繼續 함께하는 데 아무런 問題가 없다’고 拒絶했음.”

    李中領의 便紙 影響이었는지 김대업氏는 그해 7月 下旬 發足된 特別搜査팀에 合流했다. 反面 高大領은 兵務非理搜査 一線에서 물러났다. 조성태 當時 國防長官은 最近 記者와의 電話通話에서 “當時 이명현 少領의 便紙를 읽었으며 搜査팀 內部에 葛藤이 甚한 것 같아 김인종 中將(當時 國防長官 政策補佐官)에게 兵務非理搜査를 積極的으로 챙길 것을 指示했다”고 밝혔다.

    김대업氏는 그해 11月 참여연대를 통해 古代令을 搜査妨害 嫌疑 等으로 告發했다. 석 달 뒤인 2000年 1月 反腐敗國民連帶가 公開한 ‘政治人 리스트’와 關聯해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言論에 오르내렸다. 金氏는 名單을 넘긴 張本人으로 高大領을 꼽았다. 兵務非理 再搜査를 妨害하기 위해 미리 名單을 흘렸다는 것이다. 金氏가 얼마나 高大領을 不信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反面 高大領은 박선기 法務管理官을 疑心했다. 이와 關聯해 當時 古代令이 記者에게 털어놓은 얘기는 얼마 前 國防部에서 벌어졌던 社會指導層 人士들의 兵役 內査資料 論爭과 關聯해 귀기울일 만하다.

    “거기(反腐敗國民連帶 公開 名單)에 있는 政治權 人事의 3分의 1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다. 내가 管理하던 資料에는 그런 이름들이 없었다. 그 資料는 이명현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54名인가로 記憶되는데, 兵務廳에서 任意로 社會關心資源이라고 따로 管理해오던 사람들 中 一部를 뽑아놓은 資料였다. 軍醫官 自白이 確保된 것도 있고 確保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 確保된 것이 20% 未滿이었다. 그나마 大部分 公訴時效가 지난 것이었다.”

    高大領은 이명현 中領이 만든 資料에 이어 自身이 作成했다는 名單에 對해서도 說明했다.

    “김대업 이명현 둘이 하도 縮小·隱蔽니 機務司 外壓이니 하면서 이곳저곳 쑤시고 다닌 바람에 어느날 갑자기 靑瓦臺에서 (兵務非理搜査에 對해) 感謝하겠다는 連絡이 왔다. 그러자 當時 박선기 法務管理官이 ‘우리가 社會關心資源이라고 숨긴 것 없지 않느냐’며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資料를 갖다주면 내가 靑瓦臺 監査팀에게 報告하겠다’고 했다.

    兵役法上 社會關心資源은 國會議員, 演藝人, 體育人인데, 우리가 만든 資料엔 大學敎授가 많았다. 特히 軍醫官들 先輩인 醫科大學 敎授가 많았다. 이들과 中小企業 社長까지 包含시키니까 한 70餘 名 됐다. 그 中 資料가 確保되지 않은 30名 程度는 따로 分類해 法務管理官에게 갖다 줬다. 反腐敗國民連帶 記者會見이 있은 後 法務管理官이 周邊에 ‘反腐敗國民連帶에 넘어간 資料가 우리 資料인 것 같다. 그 資料는 高部長度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當時 反腐敗國民連帶가 누군가로부터 넘겨받은 名單은 모두 세 種類다. 거기에 靑瓦臺 政務首席室과 民政首席室에 傳達됐던 보고서 두 種이 끼여 있었다. 세 種類의 名單은 이명현 中領이 1次 搜査 當時 만든 社會關心資源 名單, 고석 大領이 2次 搜査 때 靑瓦臺 監査에 對備해 만든 社會指導層 名單, 김대업氏가 特別搜査팀 解體 後 作成한 政治人 名單이다.

    서로 決코 願하지 않았던 일이겠지만, 靑瓦臺에 軍·檢合同搜査半 設置를 建議하는 報告書를 作成했던 1998年에 이어 다시 한番 김대업氏와 고석 大領의 ‘共同 作品’이 誕生한 것이다. 反腐敗國民連帶의 記者會見을 契機로 發足된 3次 軍·檢合同兵務非理搜査팀은 겹치는 사람을 빼고 모두 119名(아들 數字)을 調査 對象으로 삼았다.

    지난 8月 政治權과 國防部는 軍檢察의 이정연氏 內査資料 與否에 對해 뜨거운 舌戰을 펼쳤다. 그 渦中에 김대업氏는 고석 大領이 軍檢察 內査資料를 감추고 있다고 主張했다. 高大領은 8月23日 金氏로부터 名譽毁損을 當했다며 10億원의 損害賠償 請求訴訟을 서울地法 西部支院에 냈다. 참으로 모질고 질긴 두 사람의 惡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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