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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섹스’를 통한 깨달음의 世界|新東亞

‘요가섹스’를 통한 깨달음의 世界

  • 조현두

    入力 2006-10-25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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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소개="">
    • 産婦人科 專門醫인 조현두氏는 釜山大病院 修鍊의 時節 善意(船醫)로 勤務, 日本 臺灣 필리핀 괌 等地를 돌아다니면서 旅行 遍歷을 始作했다. 91年에는 産婦人科 科長으로 在職하던 馬山聖母病院을 辭職하고 60餘 日間 中東과 유럽地域에서 背囊旅行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96年에 印度 密敎人 탄트라 構圖(求道) 旅行을 다녀왔다. 여기에 紹介하는 글은 그가 印度에서 直接 體驗한 탄트라 隨行 旅行記로 一般人은 좀체 體驗하기 힘든 世界다. 조氏는 요즘도 틈틈이 世界의 古代 遺跡地를 찾아 旅行을 하고 있다.
    [ 第 1 部: 祕密의 古代都市 카쥬라호 ]

    中國을 旅行하는 동안 시골에 있는 한 절에서 나는 큰 衝擊을 받은 일이 있다. 자비롭게 衆生을 내려다보고 있는 大雄殿의 佛像을 비롯해 절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다녔는데, 한 房에 이르니 佛像을 모두 천으로 가려두었다.

    나는 好奇心에 그 천을 벗겨보고는 깜짝 놀랐다. 女子를 껴안고 있는 佛像이 아닌가! 젖가슴을 드러낸 女子는 그 입술로 부처님(佛敎에 對해 門外漢인 筆者로서는 그 佛像이 부처님인지 菩薩인지 修道僧인지는 分明히 알 수 없었음)의 입술을 빨고 있었고, 한 팔은 부처님의 목을 감은 채로 그 엉덩이를 부처님의 ‘重要한 部分’ 위에 얹어놓고서 요동치고 있는 아주 生動感 있는 彫刻像이었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姿勢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首都(修道) 中인 것 같았다. 부처님의 表情과 姿勢는 全혀 섹스를 즐기는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섹스를 멀리서 觀照(觀照)하는 듯했다.

    부처님은 섹스를 통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遂行해 오던 法力(法力)을 試驗하는 것일까. 나는 거기서 뭐라고 形言할 수 없지만 强烈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直接 두 눈으로 目擊한 것을 親舊들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寫眞을 찍었다. 그런데 그때 카메라 불빛을 봤던지 한 스님이 뛰어와서 마구 火를 내며 나를 制止했다. 나는 왜 막느냐며 理由를 물어보았더니 그 스님은 中國말로 뭐라고 소리쳤는데, 오직 알아들을 수 있는 單語는 ‘탄트라’뿐이었다.

    韓國에 돌아온 나는 탄트라라는 말을 百科事典에서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읽어보아도 理解할 수 없는 佛敎用語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病院 일이 바빠 더 以上 탄트라에 對해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또다시 만난 탄트라

    비가 오는 어느날 저녁 退勤 무렵, 病院 應急室에서 나를 急히 찾는 電話가 왔다. 한 外國人이 交通事故로 다쳤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말은 잘 몰라도 곧잘 意思疏通을 하는 나에게 도움을 請한 것이다. 나는 病院 專攻의 時節 善意(船醫)로 勤務하면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經驗이 있었기 때문이다.

    如何間 부랴부랴 應急室로 뛰어가 보니, 患者는 뱃사람으로 봄베이(只今은 뭄바이로 改稱) 出身 印度人이었다. 가슴을 벗겨보니 흰 끈이 어깨에서 허리까지 걸쳐 있기에 “當身은 高貴한 身分 브라만이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苦痛스러운 渦中에도 눈을 번쩍 뜨더니 나의 손을 꽉 잡으며 “Hare Rama Krishna!(라마神이시여, 크리슈나神이시여, 正말 感謝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봄베이 海洋大學을 卒業한 1等航海士 婆伽婆나였다. 그는 다리에 骨折傷을 當했는데 나는 그를 많이 도와주었다. 그도 나에게 神과 깨달음에 對한 이야기를 해주는 等 印度를 理解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婆伽婆나는 젊었을 때 힌두敎의 시바 敎壇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數年間 遂行했다고 한다. 힌두敎에서는 男女의 肉體的 結合, 卽 性的 기쁨을 但只 感覺的인 것으로 보지 않고 實在(實在)하는 神과 一體가 되는 宗敎的 意識으로 승화시킨다고 했다.

    修行者가 數年間 修行을 쌓으면 특별한 宗敎行事 때 信徒들이 모두 祭壇 앞에 모여 香을 피우고 북을 치고 횃불을 돌리는 가운데 特異한 요가 行法(行法)에 따라 男女 結合意識을 치른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서 탄트라에 對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탄트라라는 말은 좁은 意味로 쓰일 때는 섹스를 통해 神과 一致하는 過程으로 得道(得道), 解脫(解脫), 涅槃(涅槃)에 들어갈 수 있는 遂行의 비밀스러운 한 方法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얘기에 아주 興味가 당겼다. 섹스를 통해 解脫할 수 있다면, 섹스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면 구태여 入山(入山)해 庵子나 洞窟에서 20~30年 道를 닦을 必要가 없지 않은가? 나는 婆伽婆나에게 물었다.

    “나와 같이 妻子息이 있는 사람도 그런 祕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좋은 스승을 만나면 可能하지요.”

    婆伽婆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스승(Guru:구루) 한 분을 紹介해주었다. 구루 스와미 사라난다(Guru Swami Sarananda)가 바로 그분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이제 成人(聖人)이 돼 바람같이 다니는데 어제는 히말라야, 오늘은 데칸高原, 來日은 라자스탄에 나타난다고 하니 나는 脈이 빠져버렸다.

    그러자 失望하는 내 모습을 바라본 婆伽婆나가 내 손을 잡으면서 “親舊! 탄트라의 祕密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정글 속의 古代都市 카쥬라호에 가서 一旦 始作해보게!” 하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난 一旦 카쥬라호에 가보기로 決心했다. 그런데 婆伽婆나는 病院에서 에이즈(AIDS) 檢査를 꼭 받으라고 귀띔했다. 에이즈 檢査證이 있어야만 그 비밀스러운 敎壇에 들어갈 수 있고, 그리고 決定的인 瞬間에 한 放 터뜨릴 수 있다는 게 그의 助言이었다….

    정글의 都市 카쥬라호

    96年 어느날, 나는 病院에 長期 休暇를 申請하고 印度로 떠났다. 버스는 引渡의 시골길을 따라 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印度人의 體臭를 맡으며 나는 탄트라의 祕密이 묻혀 있다는 정글 속의 古代都市 카쥬라호로 가고 있던 것이다.

    길가에는 원숭이들이 얼씬거렸고, 마을에서는 소들이 人間의 尊敬과 供養을 받으며 살고 있었고, 힘든 일은 모두 駱駝의 몫으로 돌아가는 異常한 體驗을 하면서 말이다.

    버스 停留場에 내리니 現地人들이 마치 神奇한 動物을 구경하듯 나를 둘러싸고 쳐다본다. 나는 社員까지 가기 위해 오토릭셔(三輪車)를 탔는데 車가 떠났는데도 洞네 어린애들이 한참이나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숲속 길을 한참 달렸는데 온갖 새의 지저귐이 들리고 짐승의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運轉士에게 물어보니 원숭이 무리가 내는 소리라고 했다.

    三輪車가 달리는데 갑자기 소가 길 길 가운데 들어와 떡 버티고 섰다. 運轉士는 깜짝 놀라 必死的으로 브레이크를 잡아 겨우 소 앞에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소는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다.

    運轉士가 가만히 있기에 性質 急한 내가 車에서 내려 소의 엉덩이를 살짝 걷어찼다. 그러나 소는 끄떡도 하지 않고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瞬間 너무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運轉士는 새파랗게 질리며 “아이고, 우리는 이제 죽었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더니 곧장 車에서 뛰어나와 소에게 몇 番이나 큰 절을 하며 손발이 닳도록 容恕를 빌었다. 그러자 소가 천천히 길을 비켜 주었다.

    나는 소의 그 무서운 눈초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소는 걷魚菜機 前에 벌써 도망치는데… 이곳에서는 分明 소가 洞네 어르신이고, 소 亦是 그렇게 行動하고 있었다. 그 소는 外國의 無識한 한 개 같은 놈을 만나 生前 처음 맞아 보았을 것이다.

    印度에서는 動物世界에도 階層이 儼然히 存在한다. 神 아래의 첫째 階層은 소(암소)다. 소는 神들이 타고 다니는 動物로 여겨져 數千年 동안 神聖視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들은 恒常 自然 속에서 思索하고, 人間들이 바치는 飮食을 받아먹고, 또 恒常 지그시 눈을 감고 冥想에 잠겨 있다. 길 中央에 소가 걸어가면 車들은 길가로 被害 徐行해야 한다.

    소 아래 序列로는 人間과 개가 있고, 또 그 아래에 水素와 온갖 動物들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같은 소라고 해도 암소와 水素의 待接은 天壤之差다.

    人道에서 놀란 것은 마을마다 암소들을 爲해 特別히 ‘몸’으로 奉仕하는 物件 크고 健康하고 精力 좋은 水素의 집이 있다는 事實이었다. 암소들이 大自然을 거닐며 思索을 즐기다가 性慾(?)이 發動하면 水素들이 24時間 待機하고 있는 집에 가서 밤새 젊은 水素와 즐기고 나온다는 것이다. 암소들은 언제 어느 때나 水素들에게 性關係를 要求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데 비해, 萬若 (卑賤한) 水素가 지나가는 암소를 올라탈 境遇 그 水素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맞아 죽는다고 한다.

    36가지 섹스 테크닉 描寫한 彫刻像

    나는 카쥬라호에 到着하여 짐을 풀고는 現地 案內人(힌두敎徒)을 求하여 本格的인 探査에 나섰다. 이곳은 요즘 觀光地로 開發돼 많은 外國人이 찾아 온다고 한다.

    칸다理아 마하 데바 寺院! 只今으로부터 1000年 前 달의 新人 찬드라의 子孫 찬델라 王國이 세운 寺院이다.

    이곳은 시바神을 모신 寺院인데, 本堂 안에 시바神의 巨大한 性器(性器) 링가가 모셔져 있고 모두가 이 링가에 敬拜한다. 이 링가 周圍에는 36가지 섹스 테크닉을 描寫한 彫刻像이 있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나는 어두운 法堂 안에서 촛불을 들고 천천히 사랑의 技巧를 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서너 가지의 男女交合 姿勢가 얼마나 貧弱한 知識이었는지 正말이지 實感했다. 어떤 彫刻은 ‘six-nine(6-9)’ 姿勢를 取하고 있었는데 1000年 前에 벌써 이 王國에서는 이런 方法이 盛行하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갑자기 陰散한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졌다. 깊은 塔 속의 法堂 안은 暗黑天地가 돼버렸다. 나는 案內人을 불렀다. 그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져 무서웠다. 겨우 빛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案內人이 기다리고 있었다.

    巨大한 링가 앞에는 낮은 祭壇이 또 있었다.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어보니, 이곳의 젊은 女司祭(女司祭)가 이 낮은 祭壇에 올라와 完全 裸體로 춤을 추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或是 탄트라에 對해 아십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그 힌두敎 信徒는 너무나 반갑게도 그것에 對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人間의 精液은 머리에서 만들어져(사실 精液은 머릿속에 있는 腦下垂體의 刺戟으로 生成된다) 頂수리를 타고 내려와 배꼽에 모여 있다가 男女가 交合할 때 性器를 통하여 放射됩니다. 人間의 精液은 生命의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가 枯渴돼 結局 人間은 죽는 것이죠. 이 에너지를 逆回轉시켜 다시 머리 속으로, 生命의 根源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다면 그때가 바로 解脫의 瞬間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탄트라입니다.”

    “예? 뭐라구요? 그게 正말입니까?”

    나는 놀라서 다그쳐 물었다.

    “1000年 前 이 祭壇에서는 그 성스러운 意識이 行해졌죠. 僧侶들은 북을 쳤고 信者들은 周圍에서 횃불을 돌렸습니다. 雰圍氣가 무르익으면 젊은 女司祭가 이 祭壇에 올라와 춤을 추었습니다. 춤이 絶頂에 이를 때, 女司祭는 이 瞬間을 몇 年이나 기다린 修道者를 데리고 이 祭壇에서 成績(性的) 交合을 가졌습니다. 그것도 單純한 咬合이 아니었고 요가로 오랜 修道 生活을 겪은 사람만이 取할 수 있는 極히 어려운 體型으로 이루어졌죠. 成績으로 월등하게 뛰어난 女司祭의 엉덩이 놀림에 大部分의 修道者는 그 피 같은 生命의 에너지를 헛되이 쏟아버리기 일쑤였죠. 그래서 10年 工夫 南無阿彌陀佛이란 말이 나왔죠.”

    “아 그랬군요. 韓國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李 女司祭의 渾身의 誘惑에도 에너지를 쏟지 않고 女司祭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버텨내면 그 에너지는 머리 끝까지 올라가 그 修行者는 涅槃의 世界, 得道의 世界, 깨달음의 世界로 들어가 부처가 되는 것이죠.”

    藝術이냐? 猥褻이냐?

    나는 그 說明을 듣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난 그 祕密의 실마리를 찾은 거야. 案內人은 나를 그 옆에 있는 데비 者그段베 社員으로 案內해 주었다. 巨大한 塔의 壁面을 裝飾한 男女 咬合像들이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 그 뜨거운 사랑의 熱氣가 느껴질 程度로 赤裸裸했다.

    이것은 시바神의 祭壇에서 벌어지는 性(聖)스러운 性(性)意識의 實際 모습을 彫刻한 것인데 一部가 破壞되었다. 그中에 서서 交合하는 姿勢는 아주 어려운 體位法인데, 女司祭와 修道者 모두 요가를 통한 오랜 修道生活로만 이런 體位가 可能하다.

    女司祭는 허리를 깊이 꺾고 다리를 水平으로 들어 男子를 감았으며, 男子 또한 한쪽 다리로만 均衡을 잡고 있다. 結局 두 男女는 한 다리로만 서 있는 格인데 女司祭의 激烈한 엉덩이 춤으로 서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左右에서 두 執事가 팔을 잡아주고 다리를 들어 올려주어 性意識을 도와주고 있다.

    이 外에도 나는 彫刻들을 볼 때마다 讚歎과 놀라움의 悲鳴을 질렀다. ‘아 이럴 수가! 저, 저런 것까지’ 하고 말이다. 彫刻들은 너무 事實的이고 生動的이어서 都大體 藝術인지 猥褻인지 區別할 수가 없었다. 幻想的이라고밖에 表現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 조각 앞에 서서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案內者의 說明이 必要없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조각이었는데, 案內人은 웃으며 說明해 주었다. 이 彫刻 作品에 題目을 붙인다면 ‘下級兵士들의 하루’쯤 될 것 같은데, 지루한 生活을 하는 兵士들이 끓어오르는 性慾을 참을 수 없어 암당나귀에다 欲求不滿을 解消하는 모습이다. 한 兵士가 암당나귀를 뒤에서 안고 欲求를 解消하는 동안, 오른쪽 뒤에서 기다리는 다른 兵士는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다음 順番人 듯하다.

    그리고 애꿎은 唐나귀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으며, 唐나귀 옆으로는 예쁜 팔찌를 찬 한 女子가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것을 본 양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치고 있다. 또 唐나귀 앞의 한 兵士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物件을 꺼내 自慰行爲를 하고 있다. 그 表情은 마치 부처님의 얼굴처럼 平穩한데, 아마 査定한 直後의 얼굴인 듯하다.

    나는 어설픈 솜씨나마 寫眞을 몇 張 찍었다. 그러면서 案內者에게 “요즘도 저런 탄트라 祕法을 遂行하는 敎團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여러 곳에서 意識을 行하고 있는데 나 같은 外國人은 接近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나는 다시 물어보았다.

    “或是 스와미 사라난다 스승님이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案內者는 그 분에 對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분은 아마 카시(Kashi)에 계실 겁니다. 카시라는 말은 ‘靈的인 빛으로 充滿한 都市’라는 말인데, 흔히 그곳을 바라나시라고 합니다.”

    바라나시(Varanashi)! 그곳은 바로 힌두敎의 聖地가 아닌가.

    ‘카 마수트라(Kamasutra).’ 나는 힌두敎의 聖地 바라나시에 와서 ‘카마수트라’라는 古代 印度의 聖經展(性經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카마는 사랑(sex), 수트라는 技巧(technique)란 뜻인데, 우리 式으로 풀어보면 完全한 사랑 或은 完全한 結婚生活을 위한 섹스 敎科書인 것이다.

    古代 印度人들은 結婚生活에서 性(性)李 차지하는 比重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性에 無知하여 겪는 結婚生活의 挫折이나 破綻을 막고 持續的인 性生活을 통해 夫婦의 사랑과 健康增進에 焦點을 맞춰 지어낸 것이 바로 ‘카마수트라’다.

    나는 江邊에 있는 요가學校에서 카마수트라에 對한 이야기를 듣고 이 훌륭한 經典을 사 보았다. 그中 一部를 紹介하면 다음과 같다.

    ‘성실하고 賢明한 아내는 每日 아침 男便의 健康을 알아보아야 한다. 男便보다 먼저 깨어나 男便의 (팬티 속에 손을 넣어) 睾丸(불알)을 만져 볼지니… 불알이 탱글탱글하고 주름이 까실까실하면 健康하고, 불알이 축 늘어져 있고 뜨뜻하며 땀에 젖어 있으면 異常이 있음을 알아야 할지니라… (中略).’

    産婦人科 醫師인 나도 놀랄 만한 古代 印度들仁義 智慧로운 健康 체크法이 아닐 수 없다. ‘女子의 氣分을 알아내는 便’을 보면 이런 글이 있다.

    ‘女子가 데이트할 때 這番보다 더 예쁘고 華麗한 옷을 입고 나오면 그것은 나에게 더욱 好感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지니 總角들이여 奮發하라….’

    女子들은 男子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입으로 하지 않는다. 예나 只今이나 女子들은 몸 全體로 사랑의 便紙를 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如何間 카마수트라가 健康한 夫婦生活을 위한 經典이라면, 男女의 性生活을 快樂을 넘어서 神과 一體가 되는 宗敎의 境地까지 끌어올린 것이 바로 탄트라다. 卽 快樂을 最高度의 힘으로 高揚시켜 精神的인 에너지로 만드는 遂行法人 것이다.

    섹스에 對한 兩大 學說

    여기서 暫時 섹스 에너지에 對한 兩大 學說을 짚고 넘어가 보자. 古代 中國人들은 世界에서 두 番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性生活과 健康에 對해서 많은 硏究를 해왔다. 中國의 古代 醫學書인 ‘疑心房訪내기(醫心方方內記)’는 東洋을 代表하는 聖經展(性經典)인데, 一般人에게는 性 指針書로 소녀경(素女經)이 더 有名할 것이다.

    나는 부산대학병원 産婦人科 修鍊의 時節 主任敎授의 硏究 ‘소녀경의 現代的 解釋’을 도운 적이 있다. 細細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中國 皇帝들의 必讀書인 소녀경의 主題는 ‘健康=節制 있는 性生活’이었다. 卽 接(接)하되 事情(射精)하지 말라, 즐기되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中國人들은 古代로부터 섹스 에너지(性力), 卽 精液은 限定돼 있다고 믿은 것 같다. 이들을 俗稱 ‘곶감學派’라고 부른다. 人間의 精液은 마치 선반 위에 올려놓은 곶감 두름과 같아서 젊을 때 많이 빼먹으면 늙어서는 빼먹을 것이 없다는 게 이들의 主張이다.

    요즘 TV 人氣 드라마인 朝鮮의 義城(醫聖) 許浚도 그의 著書 ‘東醫寶鑑’에서 人間이 平生 동안 쓸 수 있는 精液의 量은 서 말 서 되뿐이라고 分明히 못박고 있다. 그래서 節制하고 節制하라, 즐기되 事情을 아껴라 하는 것이다. 女子를 數十에서 數百 名씩 거느리고 사는 中國의 皇帝에게 이 말이 該當될 것 같다. 그 많은 女人을 相對로 잘 때마다 射精하면 弱해지고 短命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反對로 西洋에는 全혀 다른 視角을 가진 學派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이른바 ‘샘물學派’라고 부른다. 그들은 人間의 精液은 샘물과 같아서 퍼낼수록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고 본다. 아낀다고 그냥 두면 샘물은 썩는다고 말하고 있다.

    두 學說 모두 說得力이 있기 때문에 나는 中庸을 醉해서 理解하기로 했다. 샘물學派라고 해서 샘물을 마구 퍼내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곶감學派라고 해서 곶감을 絶對 빼먹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두 學派 共히 精液을 規則的으로 適切히 自制하면서 使用하면 健康과 幸福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힘이 없는 老人에게도 섹스는 重要하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처럼 뜨거운 몸부림은 아니더라도 配偶者를 꼬옥 안아준다든지, 사랑한다고 귓속말로 속삭여준다든지, 손 얼굴 귀 等을 만져주는 것도 老人들의 身體·精神 健康에 크게 도움을 준다. 이런 行爲도 넓은 意味의 섹스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 바라나시

    印度人들이 가장 神聖하게 여기는 갠지스江이 흐르는 바라나시. 힌두敎徒들은 갠지스江에서 沐浴을 하면 모든 罪가 씻긴다고 믿으며, 죽어서 化粧한 재를 이 江에 뿌리면 그 靈魂은 바로 天國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每年 數百萬 名의 巡禮者들이 이곳 바라나시로 찾아오며, 江邊에는 죽음을 눈앞에 둔 老人으로 가득하다. 印度人들에게 가장 큰 孝行은 바라나시까지 가는 列車의 片道 티켓을 늙은 父母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 바라나시는 地上 最惡의 都市 캘커타에 못지않게 먼지와 騷音, 混雜과 屍體 타는 냄새로 뒤덮인 都市다. 車先導 信號燈도 없는 거리에는 自轉車와 人力車 사이로 馬車와 乘用車가 지나다닌다.

    또 駱駝꾼, 어슬렁거리는 소들, 소 뒤를 따라다니며 쇠똥을 줍는 人間들, 들것에 실려가는 屍身들, 타다 남은 屍身을 놓고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개와 賤民들, 달려드는 거지들, 지붕 위로 뛰어다니는 원숭이들, 그리고 홀랑 벗고 다니는 修行僧들이 있다. 내 눈에는 마치 地獄처럼 보이는데 그들의 눈에는 더할 수 없이 神聖한 都市라니….

    나는 이곳에서 混沌의 迷宮으로 빠져들었다. 탄트라나 깨달음에 對해 알려고 할수록 더욱 無知(無知)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의 宗敎나 信仰心, 그들이 살아가는 方法에 對해서는 價値觀의 混亂을 招來할 뿐이었다. 내가 여태 자랑하고 싶어하던 것이 여기서는 醜한 惡(惡)일 뿐이고, 내가 平素 至極히 嫌惡하던 것들이 여기서는 至極한 線(善)인 것이다.

    火葬터에는 대나무 끝에 많은 燈불을 달아 두었다. 내가 뭐하는 데 쓰는 것이냐고 물어보니, 밤에 불빛을 내 “神이시여, 제 靈魂이 只今 올라가오니 보살펴주소서”라고 하늘에 信號를 보내는 燈불이라고 한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 바라나시. 밤에 나와보니 火葬터의 날름거리는 불꽃들과 대나무 끝에 매달린 수많은 燈불이 江에 비쳐서 正말로 靈魂들이 춤을 추면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같이 보였다. 나는 갠지스 江邊에서 한 篇의 詩를 지었다.

    ‘갠지스江에서 나는 보았네./ 그들의 靈魂의 깨끗함을/ 나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네./ 온갖 옷과 治粧으로 가려야 하는/ 內 肉身과 惡臭 풍기는 내 靈魂을 알았네./ 나는 무릎 꿇고 祈禱했다네./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주신 그대로/ 이 大地를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나는 다시 떠났다네./ 바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가장 아름답고도 純粹한 그 神을 찾기 위하여/ 내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깨끗한 그 神을 찾는 瞬間/ 나는 깨달음을 얻고 모든 것에서/ 自由로워지리라.’

    江邊의 높은 언덕에서 몇 年 동안 遂行 中인 한 修行僧을 만났다. 그는 西洋人들의 富(富)와 物質主義를 크게 非難했다.

    “마음의 平安도 없이 가진 게 많으며 安樂한 生活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들은 모두 몸의 平安이지 마음의 平安은 아닙니다.”

    그분은 나에게 眞正한 幸福의 열쇠에 對해서 얘기해 주었다.

    “當身의 欲望을 統制하시오. 그리고 自己 修鍊을 繼續하시오. 그러면 當身은 永遠한 기쁨을 얻을 것이오.”

    그 말은 敎會에서 들은 牧師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오. 그리고 늘 祈禱하시오. 그러면 永遠한 기쁨과 永生을 얻을 것이오”와 너무나 비슷한 말이었다. 修行方法은 다르지만 眞理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나에게 또 忠告를 했다.

    “한 집의 家長이 되어 그의 皮膚가 주름지게 되고 그의 머리가 白髮이 되며 그의 子息의 子息을 보게 될 때는 그는 집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그곳에서 집 없이, 불 없이 오직 과일과 나무뿌리만으로 延命하다가 깨달음을 얻어 賢人(賢人)이 될 수 있다.”

    印度人들은 죽을 때 가장 가난하게 죽는 것을 가장 훌륭하다고 여긴다. 甚至於 죽을 때는 빈손으로 죽기 위해 걸친 팬티까지 벗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나 韓國人들은 어떤가. 어떻게 해서든 富者로 죽으려고 한다. 남아 있는 財産을 움켜쥐고는 죽지 않으려고 發狂하다가 大槪 죽는다. 病院에서 患者가 죽으면 서너 名의 子息과 며느리, 親戚들이 財産을 서로 차지하려고 餓鬼처럼 싸우는 것을 數없이 보아왔다. 亡者(亡者)의 屍身은 한쪽으로 나동그라져 있고, 子息들은 멱살을 쥐고 싸우는 꼴이란….

    흔히 印度人들은 가난하고 더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印度人들은 가난하지 않고 더럽지도 않다. 정작 더럽고 가난한 사람은 깨끗한 洋服을 입고 다니는 우리가 아닐까 싶다.

    구루 사라난다를 찾아

    나는 이곳 바라나시에 와서 구루 사라난다(Guru Sarananda)를 熱心히 찾았다. 물어 물어서 힌두敎人만 出入을 許容하는 寺院에 들어가기 위해 시바敎徒처럼 이마에 點을 찍고 가로로 灰漆을 했다.

    寺院의 執事는 나를 스와미 사라난다가 계신다는 넓은 法堂(?)으로 案內해 주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그러나 法堂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그 執事를 붙잡고 “失禮지만 그분이 어디 계신지 詳細히 말을 해주시오” 하니 “그분은 저기 있지 않소. 祭壇 위에 저처럼 꼿꼿이…” 하고 말했다.

    祭壇 위에는 벌거벗고 앉아 있는 銅像 하나가 있었다.

    “아니, 그러면 구루 스와미 社라난다님은 죽었단 말입니까(Is he dead)?”

    “아니오. 그 분은 永遠히 살아 있습니다(No, he is alive forever).”

    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執事는 火가 나 있었다.

    “죽음이란 모든 것의 死滅을 뜻하는 것인데 스승님에게 그런 恥辱的인 말을 하다니, 當身 빨리 나가!”

    나는 쫓겨났다. 죽음이란 우리 같은 俗世 사람에게나 該當되지, 偉大한 成人(聖人)은 神과 같기 때문에 죽음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는 事實 한 가지를 알고서 말이다.

    나는 다음날부터 요가學校에 登錄하여 數十 名이 들어가는 圖章(道場)에서 요가를 배웠다. 虛脫한 心情이 사라지고 나는 차츰 安定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여러 힌두敎人을 만났는데, 그中 한 분이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분은 바라나시 힌두大學의 두바이(Dubay) 博士였다.

    “스와미 사라난다 스승은 몇 年 前에 入籍하셨소. 그분의 首弟子인 묵타난다(Muktananda)가 아직 活動하고 있소. 그 분과 나는 親한 親舊이므로 當身이 꼭 願한다면 紹介狀을 써줄 수 있소. 봄베이에서 汽車로 6時間을 가면 가네스푸리(Ganeshpuri)라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江을 건너면(강에는 다리가 없소), 原住民 왈리族이 사는 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을 지나면 200年 前 그 땅을 占領한 포르투갈人이 세운 城砦가 있소. 그 안에 묵타난다의 아슈람이 있소.”

    아슈람(ashram)은 이른바 聖地(聖地)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 巡禮客을 위한 宿泊施設과 寺院을 갖춘 場所다. 나는 이렇게 對答했다.

    “博士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곳까지 가려면 제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군요.”

    다음날 두바이 博士는 묵타난다의 寫眞을 가져와서 보여주었다. 나는 그 聖人의 寫眞을 보았는데 흠칫 놀랐다. 寫眞 속의 눈길이 너무나 强烈해 내가 빨려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봄베이로 가기로 했다. 印度 旅行은 汽車旅行이다. 高速道路도 없고 飛行機는 큰 都市 몇 군데밖에 連結되지 않는다. 이 大陸의 구석구석을 이어주는 것은 오로지 汽車뿐이다.

    汽車를 타보면 이 社會가 階層社會라는 것을 確實히 알 수 있다. 最上類 王族이 타는 칸부터 最下層 貧民이 타는 칸이 區別돼 있다. 이곳 사람들은 自身이 어느 칸에 타야 하는지 正確히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칸에 타야 할지 몰라 물었다.

    “저는 어느 칸에 타야 합니까?”

    “當身 아버지가 무엇을 했습니까?”

    “아버지가 村에서 農事를 지었는데 저는 醫師입니다.”

    “當身이 醫師인 것은 必要없고 아버지가 農民이니 當身은 農民階層입니다. 코끼리는 코끼리를 낳고 참새는 참새를 낳을 뿐이고 王은 王을 낳고 대장장이는 대장장이를 낳고 農夫는 農夫를 낳을 뿐입니다.”

    할 수 없이 나는 農夫와 醫師의 中間을 擇하여 二等칸 票를 사서 한바탕 죽기 살기로 乘車戰爭을 치르고 나서야 겨우 座席에 앉을 수 있었다.

    車 안은 더욱 衝擊的이다. 짐 싣는 선반까지 人間들로 가득하고 시트 아래에도 人間들로 득실거린다. 이곳에서는 人間 위에 人間 있고 人間 밑에 人間 있다더니 事實이었다….

    맛의 衝擊, 소리의 衝擊, 宗敎의 衝擊, 觸感의 衝擊…. 印度旅行은 衝擊에서 始作하여 衝擊으로 끝난다. 이곳에서는 神을 모신 寺院이나 記念館, 博物館 等 큰 建物에 들어가려면 꼭 신을 벗어야 한다. 어떤 때는 신발을 벗고 1時間 以上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처음에 두꺼운 運動靴를 벗고 洋襪을 벗으니 허옇게 죽어 있는 발을 보고 놀랐다. 물氣 있는 잔디밭을 맨발로 걸으니 처음으로 發議 快感을 느꼈다. 發은 40年 만에야 解放돼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과 향기로운 풀냄새를 맡으며 아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신을 벗는 時間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발과 발가락이 大地와 입맞춤하며 짜릿한 快感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틀이 지나자 발은 뚜렷이 핏氣가 돌고 햇빛에 그을어 빠알갛게 살아나고 있었다. 發이 解放되어 爽快하니 몸 全體가 爽快하다.

    가끔 距離나 마을에서 홀랑 벗고 꽃목걸이만 하고 다니는 修行者를 만나는데, 包莖手術을 하지 않은 性器(性器)를 축 늘어뜨리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참되어 보인다.

    우리 人間들은 언제부터 物件을 가리기 始作했을까. 基督敎 論理에 따르면 太初에 罪를 짓고 난 後부터다. 聖經 創世記 3張7節을 보면, 아담과 이브가 善惡果(善惡果)를 따먹고는 눈이 밝아져서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껴 男子는 두 손으로 物件을 가리고 女子는 한 손으로는 陰部를, 다른 한손으로 젖가슴을 가렸다고 傳한다.

    우리의 罪와 假飾을 가리는 이 옷들. 그런 面에서 보면 홀랑 벗고 香氣나는 꽃만 목에 걸고 다니는 修行僧들은 眞正 그 靈魂이 純粹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나는 봄베이에서 現地人들에게 가네스푸리까지 가는 方法을 물어보었다. 그런데 熱에 열 名 다 對答이 틀리다. 버스가 있다는 사람, 汽車로 가라는 사람, 택시로 가라는 사람, 배를 타고 가라는 사람, 배를 타지 말고 차라리 끝내주는 배(腹)를 타는 곳으로 가자는 사람 等….

    交通便은 그렇다 치고 博士가 말한 왈리族은 어떤 族屬일지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無事히 그 마을을 通過할 수 있을까. 부닥쳐보자. 설마 食人種은 아니겠지.

    骸骨로 물 마시는 왈리族

    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意外로 淳朴하고 信仰心이 두터웠다. 그들은 骸骨 바가지로 물을 떠먹었는데 내가 놀라서 물어보았다.

    “이 骸骨(頭蓋骨)은 나의 尊敬하는 스승의 것이오. 이 스승의 骸骨에 물을 담아 마시면 그분의 靈魂과 智慧까지 물 속에 녹아서 내 몸 깊숙이 들어옵니다. 자 當身도 한番 이 骸骨로 물을 마셔 보시오.”

    그들은 기꺼이 나를 案內해 주었다. 마을과 숲을 지나니 또 江이 나왔다. 아니 이 江에 對해선 두바이 博士의 말이 없었는데… 現地人이 이렇게 말했다.

    “이 江을 건너면 當身이 찾아가려는 아슈람이 나옵니다. 하지만 當身을 배로 건네줄 수는 없습니다. 저쪽 彼岸(彼岸)의 世界와 이쪽 俗世(俗世)의 約束이죠. 저쪽으로 가려면 當身은 모든 것을 이곳에 버리고, 모든 因緣을 끊고 맨손과 맨몸으로 헤엄쳐 건너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甚한 말을 하다니….

    하긴 우리 先祖들은 修道僧이 되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 집을 나와 깊은 山속에 있는 스승을 찾아 俗世와 因緣을 끊는 意味에서 削髮을 했다. 그리고 戒律을 지키며 오로지 한 가지 目的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平生을 精進하지 않았던가. 印度에서는 이런 깊고 넓은 江이 修道者를 위한 좋은 關門이 돼 왔다. 鎭靜 도(道)에 뜻이 있는 사람만이 목숨을 걸고서 이 江을 건너오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건너가자니 江과 未知의 世界에 對한 두려움이 너무 크고, 돌아가자니 여기까지 죽을 苦生하고 온 것이 너무 아까워 決定을 내리지 못하고 煩悶의 밤을 보냈다.

    나는 達磨大師와 그 弟子 身光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達磨大師가 中國 河南(河南)의 嵩山 小林寺의 洞窟에서 面壁(面壁)首都를 하고 있을 때 하루는 身光이라는 중이 構圖를 하러 찾아와 밤새 눈발 날리는 洞窟 밖에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大使는 며칠이고 相對해주지 않았는데 身光은 銳利한 칼로 自身의 한쪽 팔을 잘라 大使 앞에 던지며 “大使님, 構圖를 向한 저의 마음은 이와 같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에 感銘받은 達磨가 비로소 弟子로 받아 주었다고 한다.

    求道의 길은 가시나무 위를 걷는 것처럼 괴롭고 힘들며 오랜 끈氣와 努力이 必要한 일이다. 自身의 모든 것을 犧牲할 覺悟없이 決코 求道의 길에 들어서지 말라는 敎訓이 담긴 이야기인 것이다. 身光은 그 뒤 達磨를 繼承하여 中國 禪宗의 第2組가 된다.

    ‘그래 決心했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리라.’

    다음날 아침, 나는 왈리族의 餞送을 받으며 江을 건넜다. 江물은 따뜻했고 물살도 세지 않았다. 나는 한참 헤엄쳐 가다가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려고 潛水를 했다. 물 속으로 한참 내려갔지만 江바닥에 닿지 않았다. 물이 混濁해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헤엄쳐 물을 건너는데, 江 저便에서 몇몇 사람이 나를 지켜보는 것이 보였다. 江을 건너 修行者들을 만나자 난 合掌을 했다. 그들도 나에게 合掌하고는 나를 아슈람으로 引導해 주었다.

    아슈람 建物 밖에는 銃을 찬 保安要員 7, 8名이 지키고 있었다. 脫走者를 막기 위함인가, 侵入者를 막기 위함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祭壇 위의 黃金 身上

    나는 待機室에서 한참 쉬었는데, 저녁 6時에 구루기타(九漏에 對한 贊미시간) 意識이 있다고 한다. 이곳 執事에게서 흰 가운을 빌려 입었는데, 누구든지 禮拜 聖所(聖所)에서는 알몸 위에 가운 하나만 걸치게 되어 있었다.

    나는 4時쯤 聖所에 들어갔는데 안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祭壇 위에는 黃金으로 빛나는 구루 사라난다의 全身像(全身像)이 있었기 때문이다.

    金덩어리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두 黃金이었다. 身上(神像)의 뒤에는 形形色色 燦爛한 빛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壁面에는 죽 돌아가며 對스승 사라난다와 首弟子인 스승 묵타난다의 寫眞이 붙어 있었고, 寫眞 밑에는 敎理(敎理) 같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찬찬히 吟味하며 읽었다. 原文과 內 어설픈 飜譯은 다음과 같다.

    ▲God and Guru give everything, but man doesn’t know how to take(神과 구루는 모든 것을 주신다. 하지만 人間들은 그것을 받는 方法을 모른다).

    ▲Guru is neither man, nor God, nor individual. he is just Guru, who destroys darkness and gives light(구루는 人間도 神도 아니다. 그는 但只 구루日 뿐. 그는 어둠을 몰아내고 光明을 주신다).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Guru and God. Only God manifests himself in the form of the Guru(神과 구루의 差異는 全혀 없다. 神이 구루의 몸을 빌려 그 自身을 나타내신 것뿐이다).

    ▲God is in your heart. You lost him in your heart. You will find him only in your heart(神은 네 마음 속에 있다. 너는 神을 네 마음 속에서 잃었다. 너는 但只 네 마음 속에 계신 神을 찾아야 한다).

    ▲To receive when the Guru gives, to give when the Guru accepts, to live as the Guru’s entirely. These are the marks of devotion to the Guru(구루가 줄 때에는 받기 위해서, 구루가 願할 때는 바치기 위해서, 穩全히 구루 같이 살기 위해서. 이것들은 九漏에 對한 獻身의 徵標이다).

    ▲To find that Great Ecstasy, we repeat the name of God. The name of God is charged with beauty and energy(最高의 快樂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神의 이름을 繼續 부른다. 아름다움과 精力이 充滿한 神의 이름을).

    나는 그 글들이 주는 靈感(靈感)에 깊이 빠져들어 暫時 나를 잊고 있었는데, 앞門이 열리며 아름다운 仙女(仙女)들이 흰옷을 입고 하늘하늘 들어왔다.

    처음에 나는 仙女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仔細히 보니 仙女가 아니라 아름다운 西洋女子들이 흰 가운을 걸치고 讚頌歌 같은 冊을 들고 줄줄이 들어와 구루 사라난다의 黃金身上에 절하며 敬拜했다.

    다른 門으로는 많은 젊은 男子信徒들이 들어와 男女 따로 나뉘어 祭壇을 보고 앉았다. 파란 눈의 外國人들이 많아 보였다. 이 많은 아름다운 男女들은 都大體 어디서 왔을까. 저 예쁜 女子들은 탄트라의 祭物(祭物)일까. 男女 信徒들은 神의 이름을 부르며 讚美했다.

    “하레 函(Hare Ram ; 오 神이여).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 오 크리슈나 神이여).”

    그래! 바로 그 신었다. 印度人 航海士 婆伽婆나가 내게 말해준 그 神이다. 香을 피우고 북을 치면서 횃불을 돌린다고 내게 말해주었지.

    午後 6時가 되자 조용한 音樂이 흐르더니 누군가가 큰 북을 房의 한가운데로 가져왔다. 上體를 벌거벗은 한 美男 西洋人이 祭壇의 黃金身上 앞에서 3個짜리 횃불을 돌렸다. 또 햇살에 그을려 아주 健康해 보이는 한 靑年이 북을 쳤다. 그 북소리는 마음 속을 울렸고 40年 동안 누워 자던 내 自我(自我)를 깨우는 것 같았다. 조금 있으니 북소리에 맞추어 窓門 밖에서 鐘소리가 들렸는데 그 우렁찬 鐘소리는 내 自我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흰 煙氣가 나는 화톳불을 信徒(信徒)들 사이로 돌리고 내 周圍에서도 돌렸다. 祭壇 앞에서 4個짜리 횃불을 돌렸다. 횃불은 더 크게 불타오르고 북소리와 鐘소리도 漸漸 빨라졌다. 내 心臟도 鐘소리에 맞추어 고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恍惚한 기쁨을 느끼기 始作했다. 祭壇 앞에서는 5個짜리 횃불을 繼續 돌렸다. 북소리와 鐘소리도 횃불이 더 크게 불타 오름에 따라 더욱 빨라지고 내 脈搏도 漸漸 빨라졌다.

    내 마음 속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祭壇 앞에서 7個의 횃불이 돌아갈 때는 내 가슴 속에는 기쁨이 넘쳐 흘렀고 全身이 그 기쁨으로 痙攣을 일으켰다. 한番도 겪어보지 못한 기쁨의 極致感.

    내 옆의 한 信徒가 “빛이 보여요” 했다. 正말 祭壇에서 밝은 빛이 보였다. 뭐라고 表現할 수 없는 그 흰 빛, 난 그 빛을 보고 그만 精神을 잃고 말았다. 牛車, 케차차 牛車, 牛車, 케차차… 信徒들의 熱狂的인 喊聲도 아스라이 멀어졌다….

    몇 時間이나 지났을까. 깨어나 보니 많은 信徒가 그대로 쓰러져 자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잠들지 않은 한 信徒에게 물었다.

    “性(性)意識을 치렀나요?”

    “아니오. 性意識은 아주 특별한 날에만 합니다. 當身은 엑스터시에 到達하더니 그대로 누워 자버리더군요.”

    아마 午前에 江을 건너와 너무 疲困했던 것 같았다.

    탄트라의 道場

    다음날 나는 懇曲히 付託하여 탄트라의 道場(道場; 度를 修鍊하는 곳)에 가볼 수 있었다. 여러 道士가 갖가지 方法으로 修鍊하고 있었다.

    난 漸漸 놀라기 始作했다. 한 道士는 性器(性器)에 천을 감아 몽둥이처럼 만들어 큰 나무에 대고 치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치는지 나뭇가지가 마구 흔들렸다. 저것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내가 醫科大學生日 때 釜山 대신동에서 下宿했는데 그때 옆房에 있는 大學 代表씨름選手가 아침마다 性器에 繃帶를 감아 물이 가득 담긴 드럼桶을 마치 野球방망이로 치듯이 하면서 性器를 鍛鍊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왜 이런 訓鍊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씨름試合 中에 相對方 選手가 急所인 불알을 치거나 꽉 잡아 瞬間的으로 힘을 못쓰게 하는 反則을 가끔 하기 때문에 몸의 다른 部位와 마찬가지로 성기도 鍛鍊한다는 것이다.

    執事는 나를 큰 스승에게 데려갔다. 나는 그분에게 큰 절을 했다. “저는 먼 東邦의 나라 코리아(Korea)에서 스승님의 名聲을 듣고 찾아 왔습니다. 永遠한 구루시여! 탄트라, 그 놀라운 聖曆(性力)을 어떻게 修鍊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懇請했다.

    그분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몸소 修鍊 祕法을 보여 주었다. 나는 너무 놀라 “스, 스승님. 무, 物件이 찌, 찢어지겠습니다” 하고 외쳤다. 하지만 스승은 全혀 힘들어하지 않고 일어났다. 무겁고 큰 甓돌을 4張이나 달고서….

    세상에, 나는 이런 睡蓮은 想像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讀者 여러분은 絶對 따라하지 말라고 忠告한다. 그 구루는 數十年間 修鍊을 통해 鍛鍊된 性器(性器)를 가지고 있었기에 可能했다. 萬若 一般人이 따라하다가는 物件이 찢어져 性不具가 될 수도 있다. 如何間 나는 탄트라가 이렇게 어려운 修鍊人 줄 몰랐다.

    나는 아슈람에 묵는 동안 파란 눈의 수많은 外國人을 지켜보면서 印度의 宗敎가 어떻게 美國과 유럽에서 旋風的인 人氣를 끄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이는 西洋人들이 2000餘 年이나 自身을 支配해 오던 하나님에 食傷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 西洋에서는 神과 人間이 州와 종의 關係로 設定돼 있지만, 印度에서는 人間이 神이자 主人이다. 사람의 몸 內部에는 또 다른 精神的인 實體가 存在하는데 冥想과 修鍊을 통하여 自身 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그 絶對的이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神聖한 神(바로 自身의 元來 모습)을 찾는 것을 重要視한다. 이렇게 自身의 本體(偉大한 靈魂)와 대면하는 것이 곧 깨달음이며 그 깨달음을 통하여 自身도 神과 같은 本來의 모습을 되찾는다고 여긴다.

    나는 맨발로 秋收가 끝난 印度의 大地를 걸었다. 거친 땅에 발바닥이 닿을 때마다 따끔따끔 아팠지만 爽快한 기쁨을 느꼈고 精神은 더없이 맑아졌다. 나는 大地에 앉아 끝없이 보이는 숲과 平原을 바라보면서 冥想에 잠겼다. 나를 낳아주신 大地여! 나를 키워주신 하늘이여! 따스한 垈地(大地)를 느끼니 내 마음 깊은 深淵에 잠들어 있던 自我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거짓과 傲慢과 온갖 虛慾으로 가득 찬 껍데기를 自我(自我)는 비웃다 못해 그냥 無視해 버리고 살았다.

    大地에서 조용히 冥想하니 바람 소리가 들린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땅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난 이제 길을 찾았어. 內面世界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찾은 거야. 그 길 끝에 있는 神聖하고 아름다운 自我를 만나기 위해 난 첫 발을 내디딘 거야.

    나는 탄트라의 祕密을 찾기 위해 好奇心으로 印度를 訪問했다. 그런데 印度의 大地를 걷는 瞬間 그 好奇心은 차츰 敬畏感으로 바뀌었고, 탄트라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8萬6000가지나 되는 수많은 修行 中 하나임을 깨닫았다.

    但只 섹스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다는 幻想을 가졌던 나는 탄트라의 어려운 修鍊過程을 보고나서 抛棄하고 말았다. 事實 나는 탄트라의 深奧한 眞理를 萬分의 一도 理解하지 못하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함부로 탄트라를 말한 것 같다. 이 點 널리 諒解를 求한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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