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진│My name is…

내 이름은 전혜진(全惠璡). 恩惠 慧에 玉돌 陣을 쓴다.
태어난 날은 1988年 6月 17日生. 서울 올림픽을 했던 해에 태어났는데 어느새 나도 스물한 살, 成人이다.
세 살 터울인 오빠가 있다. 동생이 演藝人인데도 演藝界에 關心은커녕 好奇心도 없다. 얼굴은 俳優 박상민 先輩를 조금 닮았다. 나랑은 안 닮았다는 얘기다.(웃음)
兒童服 모델로 이 世界에 첫 발을 디뎠다. 나는 記憶도 나지 않는데 어릴 때부터 어머니 보고 ‘나 이거 하고 싶다’고 졸랐다고 하더라. 그게 因緣이 되서 兒役 俳優로 活動하게 됐다.
(강)惠政 언니는 SBS <은실이> 때 高等學校 3學年이었는데 그 때부터 演技에 對한 欲心과 熱情이 대단했다. 같이 延期했던 先生님들도 나보고 ‘저 나이 되면 너도 저렇게 해야’한다고 할 程度였다.
한 作品에 들어가면 最大限 다른 作品과 겹치지 않도록 하는 便이다. 드라마 같은 境遇 두 篇을 같이 들어가면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니까. 最近 撮影이 끝난 <블러드 쉐이커>라는 映畫와 <家門의 榮光> 스케줄이 겹치긴 했는데 그래도 映畫는 諒解를 求하기 좀 나으니까.
밤새 撮影을 하고 돌아와도 어머니는 無條件 學校로 보내셨다. 자도 學校 가서 자라고. 나 같으면 하루 쯤 쉬라고 했을 거 같은데.(웃음)
修能이 끝나자 世上이 끝난 것처럼 구는 親舊들에게 助言을 해준 적이 있다.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 中에는 大學을 안 나오고 技術을 익혀 成功한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日本 드라마를 좋아한다. 漫畫的인 캐릭터와 設定이 新鮮하고 좋다. 最近에는 좋아하는 俳優인 아오이 乳牛가 나오는 <오센>과 다케우치 유코의 장님 煙氣 때문에 봤던 <薔薇 없는 꽃집>이 재밌었다.
出演했던 作品 中에서 視聽者로서 가장 재밌게 본 作品은 인정옥 作家님의 <네 멋대로 해라>다. 當時에도 놀랄 만큼 새로운 感覺의 드라마였지만 나중에 내가 나이를 먹고, 戀愛를 하면서 보면 와 닿는 게 더 많을 것 같다.
畫報 타입의 寫眞을 찍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室長님이 畫報를 잘 안 잡아준다.(웃음) 이番에 <10 매거진>에서 찍은 寫眞도 잘 나왔으면 좋겠다.
<家門의 榮光> 現場은 쪽臺本도 없고, 雰圍氣도 正말 좋다. 豕侯 오빠는 예전에 같은 事務室에 있었기 때문에 對하기도 便하고. 리딩 끝나면 豕侯 오빠랑, 呈戱 언니, 현진 氏랑 簡單히 麥酒도 한 盞 하고 그런다.
先生님들과 演技하는 게 率直히 便하다. 그분들은 演技할 때 本人 演技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느낌을 相對方에게 傳達하기 때문에 그걸 받기만 하면 된다.
요즘 본 드라마 中에서는 KBS <그들이 사는 世上>이 正말 最高였다. 特히 지오와 俊英이 헤어지는 場面이 좋았다. 쿨한 척 하지만 같은 空間에서 함께 일하며 서로 얼굴 보고 가슴 아파 하는 狀況이 생각만 해도 正말 아렸다. 처음에는 노희경 作家님 作品인 것도 모르고 좋다고 보다가 나중에 盧 作家님 作品인 걸 알고 ‘亦是’라는 생각이 들었다.
映畫 <레지던트 이블>과 <울트라 바이올렛>에 나왔던 밀라 요보비치 같은 與專社 役割을 憧憬한다. 그런데 내가 바라는 役割을 하려면 할리우드로 進出해야 한다.(웃음) 갱스터 映畫에 出演하고 싶은데 그 文化는 우리나라와는 距離가 머니까. 시켜주면 비처럼 몸 바쳐 할 自身이 있다.(웃음)
旅行契를 만들었다. 映畫 <一旦 뛰어>에 같이 나왔던 懸磬 언니를 비롯해 親한 언니들과 같이 組織했는데 旅行을 떠나려면 아직 훨씬 돈을 많이 모여야 된다. 게다가 요즘은 換率까지 올라서 더 힘들어졌다. 쿠바나 아프리카로 가고 싶지만 언니들은 같이 안 가려고 할 것 같다.

글. 位近憂 (eight@10asia.co.kr)
寫眞. 채기원 (ten@10asia.co.kr)
編輯. 장경진 (three@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