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單獨]조현민 母親 前遂行記事 "하루를 辱으로 始作"

최동수 記者 2018. 4. 1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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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亮鎬 韓進그룹 會長의 夫人 李明姬 일우財團 理事長의 隨行技士였던 40代 A氏에게 2011年은 惡夢이었다.

A氏는 隨行技士로 일하는 3個月 동안 午前 8時까지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이 理事長의 自宅으로 出勤했다.

A氏는 "運轉을 하지 않을 때는 종로구 구기동 自宅에서 待機하면서 집안일을 도왔는데 그때마다 執事와 함께 辱을 먹었다"며 "이것밖에 못 하느냐며 XXX野라는 暴言을 들었는데 괴로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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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亮鎬 韓進그룹 會長 夫人 李明姬 前記事 "甲질 터질줄 알았다, 辱說이 日常"

“하루를 辱으로 始作해 辱으로 끝났다……”

趙亮鎬 韓進그룹 會長의 夫人 李明姬 일우財團 理事長의 隨行技士였던 40代 A氏에게 2011年은 惡夢이었다. 일을 그만둔 지 7年이 지났지만 記憶은 생생하다.

16日 午後 京畿道 某處에서 A氏를 만났다. 조현민 大韓航空 專務의 ‘물컵 甲질’, ‘辱說 波紋’ 消息을 接했는지 묻자 “언젠가는 甲질 問題가 터질 것으로 豫想했다”고 말했다.

A氏는 2011年 初 인터넷에서 ‘大企業 任員 遂行記事’를 뽑는다는 公告를 보고 일을 始作했다. A氏는 “任員面接을 볼 때까지만 해도 運轉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出勤한 지 하루 만에 衝擊을 받았다”고 말했다.

2012年 7月 30日 午前(現地時刻) 英國 런던 올림픽 當時 런던 엑셀 노스아레나2에서 열린 女子 卓球 單式 豫選戰을 찾은 趙亮鎬 韓進그룹 會長(대한탁구협회腸)과 家族들이 김경아 選手의 競技를 觀覽하고 있다.(맨아래 왼쪽부터 趙亮鎬 韓進그룹 會長, 李明姬 일우財團 理事長, 조현민 大韓航空 旅客마케팅 專務) /寫眞=올림픽寫眞共同取材團


A氏는 隨行技士로 일하는 3個月 동안 午前 8時까지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이 理事長의 自宅으로 出勤했다. A氏가 첫날부터 깜짝 놀란 건 當時 執事로 일하고 있던 B氏에 對한 이 理事長의 言行을 보고 나서다. A氏는 執事 B氏를 ‘恒常 고개를 숙이고 뛰어다니는 사람’으로 記憶했다.

A氏는 “執事가 조금만 늦어도 바로 ‘죽을래 XXX야’, ‘XX놈아 빨리 안 뛰어 와’ 等 辱說이 날라왔기 때문에 執事는 恒常 집에서 걷지 않고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當時 家政婦로 필리핀 女子가 있었는데 아마 (우리말 表現을 正確히 다 알아듣는) 韓國사람이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理事長의 辱說과 暴言은 얼마 되지 않아 A氏에게도 始作됐다. A氏는 “運轉을 하지 않을 때는 종로구 구기동 自宅에서 待機하면서 집안일을 도왔는데 그때마다 執事와 함께 辱을 먹었다”며 “이것밖에 못 하느냐며 XXX野라는 暴言을 들었는데 괴로웠다”고 말했다.

特히 집 앞마당에 있는 花壇에서 일할 때 이 理事長은 銳敏한 反應을 보였다. A氏는 “이 理事長이 꽃을 좋아하고 花壇을 가꾸는 걸 神經 썼다”며 “當時 튤립을 길렀는데 肥料, 機構 等을 나를 때마다 恒常 辱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理事長은 男便인 조 會長이 자리에 없었을 때 목소리가 더 커졌다. A氏는 “조 會長이 같이 있을 때는 執事와 나에게 甚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며 “조 會長이 옆에 없으면 입이 더 거칠었다”고 말했다.

이 理事長의 暴言과 辱說 때문에 A氏는 늘 不安感에 휩싸였다. 運轉하다 길을 잘못 들 때면 식은땀이 흘렀다.

A氏가 더 큰 衝擊을 받은 건 일을 始作한 지 2週日쯤 지나서다. 當時 서울 종로구 구기동 自宅에 午前부터 대한항공 任職員 5~6名이 줄줄이 呼出됐다. 職員들이 居室에 一列로 서자 이 理事長의 辱說이 始作됐다.

A氏는 “當時 불려 온 職員 中 50代로 보이는 職員에게 ‘이따위로 일을 할 거냐’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辱說과 暴言을 했다”며 “物件을 집어 던졌는지 當時 집 안에서 琉璃가 깨지는 소리도 들렸다”고 말했다.

1個月쯤 지났을 때부터 A氏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의 아빠로 家族의 生計를 책임져야 했지만 더는 人間 以下의 取扱을 보고 겪으며 일할 수는 없었다. 結局 A氏는 아내에게 그間의 일을 들려주고 3달 만에 辭職書를 提出했다.

A氏는 이 理事長의 遂行技士를 끝으로 아예 遂行記事 일 自體를 그만뒀다.

A氏는 “遂行記事 일은 鶴을 뗐다”며 “한진그룹 오너 一家의 甲질이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지만 이番 機會에 反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取材陣은 한진그룹에 A氏의 陳述에 對한 立場을 묻자 대한항공 關係者는 “會社와 直接 관계되지 않은 일이라 確認이 어렵다”고 答했다.

최동수 記者 firefl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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