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우(三友)트레이딩 理事 7名으로 出帆

1991. 7. 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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犯 76年 大邱 삼우貿易 引受,15次例 增資 (大田(大田)=聯合(聯合))㈜세모의 前身인 삼우(三友)트레이딩株式會社는 現在의 세모 代表인 兪炳彦氏(50)가 지난 76年 大邱(大邱)에서 父親의 親舊가 하던 삼우貿易을 引受하면서 出帆했다.

兪氏는 當時 經營難에 허덕이던 삼우貿易을 父親의 勸誘로 引受한뒤 2年後인 78年 3月 27日 水原地方法院에 自身을 包含해 모두 7名의 理事와 1名의 監査로 構成된 資本金 1億5千萬원의 삼우(三友)트레이딩株式會社 設立登記를 마쳤다.

삼우(三友)트레이딩 設立 當時의 理事陣은 代表理事인 兪氏外에 現 救援派 宣敎部長人 徐和南氏,救援派 總會長을 지낸 大戰(大田) 邊外科 院長인 邊于燮氏,李來訓氏.羅珪淵氏等 7名과 光州 救援派 敎會 責任者 人 J臺 化學科 敎授 趙某氏(感謝)等으로 構成되는 等 大部分 救援派와 聯關돼 있었다.

特히 이들 理事의 緣故地가 兪氏의 故鄕인 大邱(大邱) 1名을 비롯, 大田(大田) 3名과 서울,釜山(釜山), 光州(光州),堤川(堤川)等 各 1名等 全國에 걸쳐 分布돼 있어 私債를 끌어들이기 위한 橋頭堡로 삼기 위해 이같이 構成하지 않았는가 하는 疑惑을 사고 있다.

實際로 몇年 後 理事陣들의 緣故地인 大田.光州 等에서 巨額의 社債等과 關聯된 詐欺事件等이 發生한 點으로 미뤄 初期부터 삼우(三友)트레이딩의 資本金은 社債와 깊은 關係가 있지 않나 하는 疑懼心마저 불러 일으키고 있다.

京畿道 金浦郡 김포면 社우리 200의 3 에 本社를 두었던 三虞(三友)트레이딩의 取扱品目은 纖維類 製造業(絹織.絹絲除外)과 塗料 顔料製造 및 合成樹脂 加工.販賣業, 電子部品 製造.販賣業,縫製玩具 製造業 等으로 縫製玩具等 相當數의 取扱品目이 朴順子氏가 經營하던 五大洋會社로까지 連結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삼우(三友)트레이딩은 지난 78年 携帶用 비누와 튜브비누等 비누製造業을 追加登錄하면서 두次例에 걸쳐 2億 2千萬원으로 資本金을 늘린 뒤 79年 輸出入業務 一切에 關한 事業을 追加하면서 社勢를 擴張해 나갔다.

以後 삼우(三友)트레이딩은 81年 2月 裝飾工藝品 製造業을 追加登錄했으며 徐和南 理事가 81年 3月 辭任하고 손영록 理事가 就任했으며 지난 88年까지 모두 15次例에 걸친 增資를 통해 總資本金 37億원의 會社로 成長했다.

特히 宋氏가 私債를 끌어모으던 81年 10月부터 85年 12月까지 9億원이던 資本金이 8次例의 增資를 통해 35億원으로 늘어난 點等으로 미뤄 宋氏가 삼우(三友)트레이딩과 깊은 關係를 維持한 것으로 推定되고 있다.

삼우(三友)트레이딩은 그 以後 더 以上의 增資없이 89年 2月 漢江遊覽船會社인 歲暮에 合倂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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