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저면의 다른 법정리와 따로 뚝 떨어져 있는
월경지
인데, 이는
1973년(年)
이곳과 인접(隣接)해 있었던 가현리가 (도농통합(都農統合) 전(前)) 원주시로 편입(編入)되어 나가는 바람에
[2]
이렇게 되었다. 사실(事實) 이미
1937년(年)
사천리
,
1955년(年)
우산리
가 먼저
원주읍(原州邑)→원주시(原州市)
에 편입(編入)되면서, 가현리와는 이어져 있지만 산(山)으로 가로막힌 실질(實質)월경지 상태(狀態)였다. 덕분(德分)에 만종리 주민(住民)은 호저면의 다른 지역(地域)이나 면사무소(面事務所)를 굉장히(宏壯히) 어색(語塞)해하고, 오히려 문(門)막을 가깝게 느끼는 편(便)이다. 예전에는 만종리만을 관할(管轄)하는 호저면사무소(事務所) 만종
출장소(出張所)
도 있었으나, IMF의 구조조정(構造調整)을 맞고
1998년(年)
에 해체(解體).
만종리는
경강선(京江船)
만종역(萬種驛)
과,
영동고속도로(嶺東高速道路)
와
중앙고속도로
가 만나는
만종분기점(晩鐘分岐點)
이 있다. 시내(市內)와 문막읍, 지정면을 잇는 길목이기도 하다. 막말로 만종리는
원주(原州)(시내(市內))도 아니고 문막도(度) 아닌 끼인 동네(洞네)
취급(取扱)이다. 만종리에 있는 유명(有名)한 시설(施設)은
만종역(萬種驛)
, 원주운전면허시험장(原州運轉免許試驗場),
만종분기점(晩鐘分岐點)
외(外)에 만종가구단지(萬種家口團地), 생양골(生養骨) 마을이 있다. 외부인(外部人)은 만종역(萬種役)을, 원주시민(原主市民)은 대부분(大部分) 만종 가구단지(家口團地)를 찾는다.
주민(住民)들은 인접(隣接)한 지정면이나
단계동
으로 편입(編入)을 원(願)하고 있지만, 정책적(政策的)인 면(面)에서 대처(對處)가 미흡(未洽)하다. 옛
원주시(原州市)
확장(擴張) 이전(以前)부터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로 인해 문막이나 우산동, 단계동 쪽 생활권(生活圈)이었다. 다만, 지정면 가곡리, 신평리에 조성(造成) 중(中)인
원주기업도시(原州企業都市)
가 완공(完工)돼 동(東)으로 전환(轉換)될 경우(境遇), 도심(都心)과 기업도시(企業都市)를 잇는 길목이자
경강선(京江船)
개통(開通)으로 원주(原州) 시내(市內)의 관문(關門)으로 역세권(驛勢圈)이 개발(開發)될 만종리도(度) 함께 동(東)으로 전환(轉換)될 가능성(可能性)도 있다. 그러나 농어촌특별전형(農漁村特別銓衡) 등(等) 각종(各種) 혜택(惠澤) 문제(問題)가 있어 현재(現在) 상태(狀態) 그대로 갈 가능성(可能性)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