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풍(學風)은 대체로(大體로) 보수적(保守的)이고 복음주의(福音主義) 노선(路線)을 따르지만, 진보적(進步的)인 신학(神學)을 가르치는 학자(學者)들도 상당수(相當數) 교편(敎鞭)을 잡았다. 한국(韓國)의 다른 개신교(改新敎) 신학교(神學校)들이 교단(敎壇)에 따라 확고(確固)한 신학(神學) 노선(路線)을 따르는 것과 달리, 침신대(神대)는 '신학(神學)의 자유(自由)'를 추구(追求)하는 침례교(浸禮敎) 신학(神學)의 특성상(特性上) 신학교(神學校) 안에 다양한 목소리가 섞였다. 한 학교(學校) 안에 다양한 신학적(神學的) 노선(路線)이 존재(存在)하는 사실(事實)을 두고 근본(根本)이 없다거나 좌파(左派) 신학(神學)이 침투(浸透)했다거나 신학(神學)이 없다고 폄하(貶下)하는 시각(視角)도 있지만, 학교(學校) 내(內)에서는 오히려 특정(特定) 교리(敎理)에 매몰(埋沒)되지 않은 증거(證據)라고 좋게 여긴다.
성경(聖經) 중심(中心)의 신학(神學)을 추구(追求)하는 침례교(浸禮敎)의 특성상(特性上) 칼빈주의(主義)나 알미니안주(按酒)의 중(中) 어느 한쪽 입장(立場)도 강경(强勁)하게 취(取)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수업(授業)에서도 두 진영(陣營)의 신학(神學)을 모두 다루고 있다. 특히(特히) 구원론(救援論)을 두고 하나님의 예정(豫定)을 강조(强調)하는 칼뱅주의와 인간(人間)의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강조(强調)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注意) 사이에서 신학생(神學生) 간(間) 견해(見解) 대립(對立)이 종종(種種) 나타난다. 교단(敎團) 차원(次元)에서 뚜렷하게 정(定)한 교리(敎理)를 강요(强要)하지 않는 침례회 신학교(神學校) 특성상(特性上) 신학생(神學生) 개개인(個個人)이 신학교(神學校) 입학(入學) 전(前)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의 차이(差異) 등(等)으로 인해 논쟁(論爭)이 벌어지고는 한다. '개인(個人)의 성경해석(聖經解釋)의 자유(自由)'를 강조(强調)하다 보니 '교수(敎授)의 성경(聖經) 해석(解釋)도 맞고, 내 성경(聖經) 해석(解釋)도 맞으니 우리는 대등(對等)한 입장(立場)'이라는 스탠스를 취(取)하는 학생(學生)들도 보이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교회(敎會) 일치(一致) 운동(運動)이나 진보적(進步的) 신학(神學)을 소개(紹介)하는 교수(敎授)에게 "교수(敎授)님은 자유주의(自由主義)를 지지(支持)하십니까?"하며 사상검증하려(思想檢證下慮)든다든가, '성경적(聖經的)인 가치(價値)'를 들이대면서 교수(敎授)의 해석(解釋)을 무조건(無條件) 비난(非難)하는 경우(境遇)가 간혹(間或) 있다. 하지만 자신(自身)이 주장(主張)하는 '성경적(聖經的) 가치(價値)'라는 것도 본인(本人)의 해석(解釋)의 영역(領域)에서 나온 것인 만큼 신중(愼重)한 대화(對話)를 요한다.
'자유(自由)'를 중시(重視)하는 침례교(浸禮敎) 신학(神學)의 특성(特性)과 넓은 신학적(神學的) 스펙트럼을 가진 강사(講師)들의 영향(影響)으로, 수강생(受講生)들은 저마다 성향(性向)에 따라 편향(偏向)된 신학(神學) 수업(授業)만을 수강(受講)하고 졸업(卒業)하기 쉽다. 이런 경향(傾向)이 개교회(個敎會) 중심(中心)을 강조(强調)하는 침례교(浸禮敎)의 특성(特性)과 맞물려, 신학생(神學生)들이 목회(牧會) 현장(現場)으로 나갈 때는 같은 교단(敎團)임에도 불구(不拘)하고 성향(性向)이나 신앙관(信仰觀)에서 큰 차이(差異)가 나는 결과(結果)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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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社會福祉學科)ㆍ유아교육과(幼兒敎育科)ㆍ상담심리학과(相談心理學科)ㆍ영어과(英語科)ㆍ교회음악(敎會音樂)과&피아노과는 신학(神學)과&기독교교육학과&청소년학과에 비해 기독교(基督敎) 신앙(信仰)이 약(弱)한 학생(學生)들이 보이고는 한다. 다만, 침례신학대학교(學校)가 일반(一般) 대학교(大學校)와 다른 점(點)은 엄연히(儼然히) 신학교(神學校)이기 때문에 목회자(牧會者) 자녀(子女)들이 많고 교칙(校則) 자체(自體)에 개신교도(改新敎徒), 그것도 이단(異端)이 아니라고 인정(認定)된 교파(敎派)의 신도(信徒)만을 학생(學生)으로 받아들인다는 학칙(學則)을 두었다는 것이다. 보수적(保守的)이고 복음주의적(福音主義的)인 지향(志向)을 가지고 넓은 스펙트럼으로 신학(神學)을 공부(工夫)하려는 학생(學生)들에게는 좋은 선택(選擇)이겠지만, 혹시(或是)라도 보수(保守) 성향(性向)의 개신교인(改新敎人)이 아니라면 한국(韓國)침례신학대학교(學校)에서 공부(工夫)하는 것을 다시 한번(番)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