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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의 運命을 바꾼 金玉均 暗殺 事件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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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肢가 잘린 채 楊花津 白沙場에 널브러져 있는 屍體 寫眞. 殘忍하지만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寫眞 속 屍體의 主人公은 甲申政變을 일으킨 金玉均이다. 開化派의 主役 金玉均은 이렇게 悽慘한 죽음을 맞이했다. 罪惡 中에 最高 罪惡이라 할 수 있는 '逆賊질'을 두려워하지 않은 金玉均의 몸에 세 發의 彈丸을 박은 張本人은, 우리에게 너무 낯선 存在, 홍종우다.

왜 죽였는가

ⓒ 푸른역사
洪鍾宇는 흥미로운 人物이다. 保守派라는 旣存 評價와 달리 그는 西歐 思想을 몸소 體驗하고자 했다. 그가 韓國人 最初로 프랑스에 발을 디딘 理由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洪鍾宇는 그곳에서 <춘향전>과 <심청전> 等 우리 古典을 프랑스語로 飜譯하는 일에 從事한다. 朝鮮의 歷史와 文化를 西歐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프랑스의 著名人士들과 交流하면서 先進 西歐 思想도 體得했다.

金玉均과 洪鍾宇는 말이 잘 통했다. 洪鍾宇가 近代 思想에 博識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料理 솜씨도 어찌나 氣가 막혔던지 金玉均의 日本 親舊들 입맛까지 당길 程度였다. 金玉均은 홍종우를 完全히 自己 사람으로 생각했다. 洪鍾宇는 그만큼 暗殺 意圖를 徹底히 숨기고 僞裝 接近에 完璧하게 成功했다. 者, 洪鍾宇는 이렇게 해서 金玉均을 상하이로 꼬여냈고 擧事를 '깨끗이' 處理했다. 그리고 自身이 왜 金玉均을 除去했는지 淸國 側 警察署에서 堂堂하게 辯論하고 있다.

"나는 朝鮮의 官員이고, 金玉均은 나라의 逆賊이다. 金玉均의 生存은 東洋 三國의 平和를 깨뜨릴 憂慮가 있다."

이 말에 따르면 金玉均 暗殺은 첫째로, 公務다. 御命을 받든 것이다. 重要한 건 둘째 理由다. 여기에 核心이 있다. 旣存 學界의 評價처럼 自身의 富貴榮華를 위해서 金玉均을 除去했다는 說明은 어딘가 不足해 보인다. 洪鍾宇는 朝鮮이 主體가 되는 近代化를 構想했다. 더 나아가 東洋 三國이 共同 繁榮하는 길을 摸索했다. 日本에 全的으로 依支해 政變을 일으킨 金玉均의 近代化 方向에는 同調할 수 없다는 것이다.

三國의 歷史를 뒤흔든 暗殺 事件

金玉均 暗殺 計劃을 미리 感知한 쪽은 日本 政府였다. 그러나 暗殺을 애써 沮止하지 않았다. 한때 金玉均을 近代化의 先驅者 云云하며 全幅的으로 支援한 日本이었지만, 金玉均이 政變에 失敗하고 刺客에게 쫓기는 몸이 되자 찬밥 對하듯 했다. 그런데 金玉均이 상하이에서 암살당하자 日本 政府와 言論은 一齊히 호들갑을 떨기 始作했다. 마치 암살당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처럼 그를 哀悼하고, 義捐金을 모으고, 屍體 收拾 問題를 協議하는 等 재빠르게 움직였다. 왜 그랬을까?

한便 朝鮮은 金玉均 暗殺이 國家의 傾斜라고 큰 意味를 附與했다. 洪鍾宇가 돌아오자 高宗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았다는 逸話가 있을 程度였다. 洪鍾宇는 單番에 實力派 皇室 官僚로 浮上한다. 그로서는 프랑스에서 외롭게 工夫하며 朝鮮을 近代 國家로 발돋움시키겠다는 決然한 意志를 實行에 옮길 좋은 機會였을 것이다. 果然 金玉均 暗殺은 朝鮮의 警査였을까?

상하이에서 暗殺 事件이 일어난 것은 淸에 不幸이었다. 日本은 金玉均은 日本人이나 다름없고, 日本 旅館에서 事件이 일어난 만큼 事件 管轄은 日本에 있다고 主張했다. 暗殺을 放置한 淸國 政府를 猛非難했다. 그러나 淸은 洪鍾宇의 身元을 確認한 다음 朝鮮 政府의 要求 대로 홍종우와 김옥균 屍身을 朝鮮에 넘겼다. 이것으로 事件은 순조롭게 마무리된 것일까?

朝鮮과 청은 日本의 속내를 꿰뚫지 못했다. 萬國公法과 같은 허울 좋은 世界 共存論을 盲信한 나머지 帝國主義가 浸透하리라는 豫想은 미처 하지 못했다. 朝鮮 侵略, 나아가 大陸 侵略의 機會를 虎視眈眈 노리던 日本에게 金玉均 暗殺 事件은 대단한 好材였다. 金玉均 暗殺 事件은 長期的으로는 朝鮮 合倂, 當場에는 靑果 戰爭을 벌일 수 있는 기막힌 名分이 되었다. 決定的으로 그해 東學農民革命이 일어나 淸과 日本은 正面으로 부딪친다. 이것이 바로 淸日戰爭이다.

世界主義와 國際主義의 對立을 넘어서

著者는 金玉均의 思想을 世界主義, 洪鍾宇의 思想을 國際主義로 分析하면서 두 思想이 接點을 찾지 못하고 正面衝突해 同伴 沒落한 것에 對해 큰 아쉬움을 吐露한다. 事實 仔細히 살펴보면 두 사람이 꿈꾼 朝鮮의 未來에는 큰 差異가 없다. 目標에 到達하는 具體的 方案이 다를 뿐이었다.

國家나 民族을 超越해 全 人類의 共存을 꿈꾼 世界主義者 金玉均은 日本의 本質을 把握하지 못한 채 그들의 힘에 依存하고 말았고, 洪鍾宇는 主體的 近代化를 위해 努力했지만 帝國主義를 克服할 現實的 對案을 提示하지 못했다. 政敵 暗殺이라는 '賞살(相殺)'을 넘어 '相生(相生)'의 길을 摸索했다면 적어도 大韓帝國 時期에 人材難으로 國家 經營이 삐걱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著者는 指摘한다.

두 世界觀의 衝突 問題는 우리 時代에도 如前히 풀어야 할 宿題라는 點에서 이 暗殺 事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韓半島를 둘러싼 國際 情勢는 그때나 只今이나 緊張 狀態다. 多樣한 생각을 가진 社會 構成員이 끝없는 對立으로 치닫고, 서로 敵對할 때 歷史는 우리에게 또 어떤 試鍊을 던져줄지 冊을 읽으며 생각해볼 問題다.

덧붙이는 글 | 진봉철 記者는 도서출판 푸른역사에 근무하는 편집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金玉均을 쏘았다 - 朝鮮의 運命을 바꾼 金玉均 暗殺事件

조재곤 지음, 푸른역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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