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小說家 박완서의 作品世界|東亞日報

小說家 박완서의 作品世界

  • 東亞日報
  • 入力 2011年 1月 22日 12時 35分


코멘트
“글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掩襲하는 自廢의 誘惑으로부터 나를 求하고, 내가 사는 世上에 對한 關心과 愛情을 지속시켜 주었다.” 生前의 박완서 氏는 글쓰기가 自身의 人生을 지속시키는 힘이 되었다고 밝혔다. 八旬을 앞뒀던 지난해에는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氣力이 남아 있어서 幸福하다”면서 散文集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1931年 個性의 外郭 地域인 京畿 凱風에서 태어난 故人은 1950年 韓國戰爭이 勃發 當時 서울대 國文科를 中退했다. “그해의 나이인 스무 살에 靈魂의 成長이 멈췄다”는 그는 1·4後退 當時의 酷毒한 추위를 잊을 수 없다면서 같은 民族이 서로 銃을 겨눠야 했던 悲劇의 無慈悲함을 聲討하곤 했다.

그의 登壇은 두고두고 話題였다. 1970年 여성동아 長篇小說 懸賞公募에 ‘羅牧(裸木)’李 當選되었을 때 그는 다섯 아이를 둔 40歲의 專業主婦였다. 美軍 肖像畫部에서 함께 勤務했던 朴壽根 畫伯에 對한 追憶을 바탕으로 쓴 이 小說은 只今까지도 讀者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박완서 氏의 作品世界는 戰爭의 傷處와 家族의 問題, 小市民 意識 等 다양한 主題를 아우른다. 戰爭을 겪으면서 글로 그 時代를 證言하겠다는 생각이 作家의 길로 이끌었다고 告白한 그는 平生 時代의 아픔과 庶民들의 삶의 哀歡을 그렸다. 사람과 自然에 對한 한없는 사랑을 드러내며, 때로는 資本主義가 만든 荒廢한 人間性을 痛烈히 批判했다. 特히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서 있는 女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等의 作品에서 男性中心主義에 挑戰하고 抵抗하는 女性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女性 問題에 敏感한 關心을 보였다. 評論家 황도경 氏는 “戰爭과 分斷으로 인해 일그러진 個個人들의 삶의 肖像, 都市文明 社會의 不毛性과 그 안에서의 虛僞的이고 物神主義的인 삶의 樣態, 권태롭고 無氣力한 小市民의 日常, 억눌린 女性 現實, 죽음과의 對面과 克服 等 그女의 文學이 담아낸 世界는 實로 놀랄 만큼 다양하다”고 評했다. 言語의 彫琢度 卓越해서 ‘엄마의 말뚝2’가 李箱文學賞을 받았을 當時 審査委員들로부터 ‘流麗한 文體와 빈틈없는 言語 驅使는 可히 天衣無縫’이라는 評을 받았을 程度였다.

登壇은 늦었지만 作品 活動은 旺盛했다. ‘휘청거리는 午後’ ‘서 있는 女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山이 正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弄談’ ‘그 男子네 집’ 等의 長篇을 냈으며, 小說集 ‘엄마의 말뚝’ ‘꽃을 찾아서’ ‘저문 날의 揷畵’ ‘너무도 쓸쓸한 當身’ ‘親切한 伏羲氏’ 等을 펴냈다. 이밖에 ‘나 어릴 적에’ ‘이 世上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부숭이의 땅힘’ ‘보시니 참 좋았다’ 等의 童話集을 發表하기도 했다. 그의 作品들은 다양한 讀者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으며 여러 篇이 TV드라마로 옮겨졌다.

따뜻한 視線으로 世上을 감싸는 散文集도 여러 卷 出刊했다. 男便과 외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을 담은 ‘한말씀만 하소서’ ‘어른노릇 사람노릇’ 뿐 아니라 ‘세 가지 所願’ ‘꼴찌에게 보내는 喝采’ ‘女子와 男子가 있는 風景’ ‘살아 있는 날의 所望’ ‘나는 왜 작은 일에만 憤慨하는가’ ‘豆腐’ ‘호미’ 等이 있으며 지난해 7月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김지영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