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오 이신
독기(毒氣)의 종합체(綜合體)이자 원천(源泉).
주인공(主人公)인
이짱
의 캐릭터성(性)부터가 니시오 이신의 모든 작품(作品), 웬만한 모든 작품(作品)들을 통틀어서 비교(比較)해 봐도 가히(可히) 독보적(獨步的)이다.
[10]
쿠나기사(記事) 토모(土毛)
나
제로자키 히토시키
등(等) 캐릭터 한정(限定) 이길 자(者)가 없는
니시오 이신
의 데뷔작(데뷔作) 답게
단(單) 한 명(名)도 빠짐 없이 모든 캐릭터가 매력적(魅力的)이다.
이야기의 진행(進行) 방식(方式)은
추리물(推理物)
의 진행(進行) 방식(方式)을 표방(標榜)하고 있으며 추리물(推理物)로서 충실(充實)하다 못해 헛소리 시리즈만의 미스터리한 분위기(雰圍氣)는 아이덴티티와 다름 없기에 발매(發賣) 당시(當時)에는
신본격파(神本擊破)
추리(推理) 소설(小說)로 분류(分類)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반칙(反則)이라고 생각될 만큼
서술(敍述) 트릭
을 남발(濫發)하여 독자(讀者)들이 속을 수밖에 없고
[11]
복선(伏線)을
라이트 노벨
식(式)으로 애니메이션 장면(場面)에 고증(考證)되게 까는 게 아닌 순수(純粹) 문학(文學)에 가까운 기법(技法)으로 깔기 때문에
[12]
반전(反轉)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대개(大槪) 시원한 사건(事件) 해결(解決)의 느낌보단 뒤통수를 맞은 느낌.
니시오 이신
의 작품(作品)답게 철저(徹底)하게 캐릭터 위주(爲主)로 이야기가 전개(展開)되는데 이는 사실(事實) 니시오 이신만의 특징(特徵)이라기보단 고전(古典) 문학(文學)의 전개(展開) 방식(方式)을 니시오 이신이 현대(現代) 장르 문학(文學)에 그대로 차용(借用)했다고 보는 게 맞다.
[13]
캐릭터 위주(爲主)라
이야기 시리즈
처럼 캐릭터들의 대화(對話)가 주된 진행(進行) 방식(方式)인데 이야기 시리즈가 개그 전반(前半)인 만담(漫談)이라면 여기는 개그가 없진 않으나 이야기의 주제(主題)를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고 단어(單語) 선정(選定)이나 캐릭터들이 생소(生疏)함을 넘어서 신비로워 보여 종잡을 수 없는 대화(對話)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캐릭터의 매력(魅力)에 흠뻑 빠져버린다.
[14]
모노가타리 시리즈
가 캐릭터들에게 애정(愛情)을 느껴서 계속(繼續) 보게 되는 작품(作品)이라면 헛소리 시리즈는 캐릭터들의 매력(魅力)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계속(繼續) 보게 되는 작품(作品).
전체적(全體的)으로 담백한 것도, 중구난방(衆口難防)인 것도 아닌, 표현(表現)하기 애매(曖昧)한
헛소리
같은 분위기(雰圍氣)를 내뿜는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이야기에
소년만화(少年漫畫)
적(的)인 상황(狀況)과 장면(場面)이 적절(適切)하게 연출(演出)된다.
[15]
사람에 따라선 호불호(好不好)가 발생(發生)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理由)는 작품(作品)이 갈수록 중(中)2병(病)스러워져서.
[16]
철저히(徹底히) 처음부터 캐릭터도 시작(始作)하여 캐릭터로 끝나는 캐릭터 위주(爲主)의 소설(小說)이지만, 이 자체(自體)가 취향(趣向)을 타는 영역(領域)이고 후반부(後半部)에는 너무 캐릭터에만 몰려있어서 작품(作品) 자체(自體)의 매력적(魅力的)인 분위기(雰圍氣)가 퇴색(退色)되기도 하고 점차(漸次) 사람에 따라선
뇌절(腦節)
이라고 느낄 수 있는 설정(設定)들이 등장(登場)하여 싫어하는 사람이 다소(多少)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작가(作家) 본인(本人)도 어째서 이게 애니화가(畫家) 되지 않냐며 불평(不平)했던 여러모로 안타까운 비운(悲運)의
수작(酬酌)
.
작품(作品) 자체(自體)가 묘(妙)하게
현실(現實)
적(敵)이다. 본인(本人)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적(敵) 세력(勢力)과 만나는데도 만화(漫畫)처럼 길을 가다가 갑자기 만나 공방(攻防)을 벌이는 게 아니라
핸드폰으로 연락(連絡)하여 시간(時間)을 잡고 약속(約束) 장소(場所)에서 만나 대화(對話)를 한다.
또한 타(他) 만화(漫畫)였으면 타격(打擊)을 받고 벽(壁)에 날라가 박히는 것으로 타격(打擊)의 위력(威力)을 표현(表現)할 텐데 타격(打擊)이 가(加)해지자
그대로 살이 찢겨 내장(內臟)이 흩뿌려졌다.
[17]
한치의 자비(慈悲)도 없다. 최종장(最終腸)이 다가오는 판국(판局)에서 세계관(世界觀) 설명(說明)이나 캐릭터 설명(說明)을 하는 데에도 캐릭터들끼리 집에서 저녁밥을 차려 저녁을 먹으며 세계관(世界觀)에 대(對)한 설명(說明)을 주고 받는다거나 어떤 상황(狀況)에서든 주요(主要) 대화(對話)가 오가는 장소(場所)가 밥을 먹는 곳이라는 점(點)에서 이상(異常)하게 현실적(現實的)이다. 그리고 캐릭터들의 사망률(死亡率)이 자비롭지 않다. 이것도 묘(妙)하게 현실적(現實的)이라 죽을 거 같다 싶으면 그냥 죽는다. 부상(負傷)을 치료(治療)하여 낫거나 열혈(熱血) 바보 캐릭터처럼 부활(復活)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이짱 본인(本人)을 포함(包含)한 모든 캐릭터들의 감정(感情)이 현실적(現實的)이다. 자신(自身)이 알고 있는 걸 함부로 타인(他人)에게 말하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특징(特徵)은 작품(作品)을 보는 독자(讀者)들에게도 잘 알려주지 않는 다는 것.
작품성(作品性)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상당히(相當히) 독창적(獨創的)인 작품(作品)이기 때문에 한 번(番)쯤은 보는 걸 추천(推薦)하는 작품(作品). 매(每) 작품(作品)마다 작품(作品)의 특징(特徵)과 장르, 분위기(雰圍氣)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18]
각(各) 권(卷)마다 호불호(好不好)가 크게 갈려서 모든 작품(作品)을 전부(全部) 만족(滿足)하면서 보기는 힘들지만 시리즈 전체적(全體的)으로도 평가(評價)가 꽤 괜찮은 편(便)이다. 서양(西洋)의 대포(大砲) 서브컬쳐 커뮤니티 사이트 중(中) 하나인
MyAnimeList
에서도 8.6점(點) 내외(內外)의 상당히(相當히) 높은 평가(評價)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