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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防牌) - 나무위키

방패(防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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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獅子) 그림이 그려진 금속제(金屬製) 카이트 실드

1 . 개요(槪要) 2 . 설명(說明) 3 . 역사(歷史)
3.1 . 한국(韓國) 3.2 . 유럽 3.3 . 일본(日本) 3.4 . 현대(現代)
3.4.1 . 군사적(軍事的) 목적(目的) 3.4.2 . 비군사적(非軍事的) 목적(目的)
4 . 사용법(使用法)
4.1 . 방패벽(防牌壁)(Shield Wall)
5 . 형태(形態)
5.1 . 손잡이의 위치(位置) 5.2 . 재질(材質) 5.3 . 그림 및 장식(裝飾)
6 . 종류(種類)
6.1 . 과거(過去) 6.2 . 현대(現代)
7 . 관련(關聯) 어록(語錄) 8 . 언어별(言語別) 명칭(名稱) 9 . 상징(象徵)으로서의 방패(防牌) 문양(文樣) 10 . 가상(假想) 매체(媒體)에서의 등장(登場) 11 . 여담(餘談)

1. 개요(槪要) [편집(編輯)]

전투(戰鬪) 중(中)에 적(敵)의 공격(攻擊)을 막기 위해 드는 병기(倂記) .

의미(意味)의 확장(擴張)으로, 사이언스 픽션 에서 흔히 나오는 방어막(防禦膜) 같은 개념(槪念)을 '방패(防牌)처럼 적(敵)의 공격(攻擊)을 차단(遮斷)한다'는 의미(意味)로서 실드 라고 표현(表現)하기도 한다.

2. 설명(說明) [편집(編輯)]

갑옷(甲옷) 과 달리 방패(防牌)는 적(敵)의 무기(武器) 가 신체(身體)에 닿기 전(前)에 적극적(積極的)으로 차단(遮斷)하는 무구(無垢)로 다른 수동적(受動的)인 방어구(魴魚灸)와는 성격(性格)이 다르다. 방패(防牌)를 적절(適切)하게 활용(活用)하면 검(檢) 이나 둔기(鈍器) , 화살 등(等)의 충격(衝擊)을 더 효과적(效果的)으로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單純히) 갑옷(甲옷)을 입는 것보다 훨씬 안전(安全)하게 전투(戰鬪)할 수 있다.

방패(防牌)는 흔히 방어적(防禦的)인 무기(武器)로 여겨지기 쉬우나 그 견고(堅固)함과 크기를 적절히(適切히) 이용(利用)하면 방패(防牌) 그 자체(自體)만으로도 강력(强力)한 공격력(攻擊力)을 가진 무기(武器)가 될 수 있다. 우선(于先) 방패(防牌)를 수비용(數費用)으로 쓰다가도 필요(必要)한 경우(境遇) 직접(直接) 움직여 묵직한 타격(打擊)을 주는 용도(用途)로 사용(使用)하는 경우(境遇)가 있다. 이는 중세(中世)의 실전(實戰)이나, 현대 경찰(警察)의 진압(鎭壓) 방패(防牌) 활용(活用)에서도 적용(適用)되었다. [1] 예시(例示) 혹은(或은) 방패(防牌)에 검(劍)이나 스파이크 를 달아서 돌격용(突擊用) 방패(防牌)로 사용(使用)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境遇) 그냥 방패(防牌)를 디밀고 몸으로 돌격(突擊)하는 게 곧 공격(攻擊)이다. 영화(映畫) 300이나 트로이를 보면 방패(防牌)를 방어(防禦) 뿐 아니라 공격(攻擊)에도 적극적(積極的)으로 쓰는 액션씬이 잘 나와있다.

무엇보다도, 사용자(使用者)에게 심리적(心理的) 안정감(安靜感)을 주어 대단히 공격적(攻擊的)으로 나설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무기(武器)가 방패(防牌)이다. MMORPG 에서 검방전사(戰士) 가 하는 역할(役割) 때문에 얼핏 수비적(守備的)이고 방어적(防禦的)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겠지만 실제로(實際로)는 그와 정반대(正反對)로, "방어력(防禦力)이 상승(上昇)해서 웬만한 피격(被擊)에는 피해(被害)를 입지 않음" = "상대(相對)의 공격(攻擊)에 위축(萎縮)되지 않고 내가 더욱 공격적(攻擊的)으로 나갈 수 있음"의 등식(等式)이 성립(成立)하는 병기(兵器)다. [2] 단순히(單純히) 생각해봐도 적(敵)이 화살 을 쏜다면 방패(防牌) 없이는 엄폐물(掩蔽物)을 찾기에 급급(汲汲)하겠지만, 타워실드 하나만 있다면 정면(正面)으로 받아내며 돌격(突擊)이 가능(可能)하다. 현대(現代)에서도 주로(主로) 실내전(室內戰)을 치르는 SWAT 가 제일(第一) 선두(先頭)로 나서는 포인트맨은 화력(火力) 끝내주는 기관총(機關銃) 이 아니라, 주로(主로) 방탄(防彈) 방패(防牌)와 권총(拳銃) 을 들고 진입(進入)하는 것도 그런 이유(理由)다. 애초(애初)에 고대(古代) 그리스나 로마 병사(兵士)들, 중세(中世) 기사(記事)들이 창(槍)과 방패(防牌)를 같이 들고 돌격(突擊)했음을, 그리고 그러한 방패(防牌) 든 창병(槍兵)들의 돌격(突擊)의 파괴력(破壞力)이 어느 정도(程度)였는지를 생각해보자. 거기다 아래에도 설명(說明)되지만 제대로 된 갑옷(甲옷)을 갖추기 힘든 가난한 병사(兵士)들이 '나를 한 방(放)에 찌르거나 베어죽일 수 있는 무기(武器)를 든 적'을 상대(相對)할 때 방패(防牌)의 유무(有無) 여부(與否)가 가져오는 심리적(心理的) 영향(影響)은 막대(莫大)했다.

고대(古代) 에는 갑옷(甲옷)보다도 인기(人氣)가 많은 방어구(魴魚灸)가 방패(防牌)였다. 갑옷(甲옷)은 착용자(着用者)의 신체(身體)에 정확히(正確히) 사이즈를 맞춰야 하는 등(等) 손도 많이 가고 재료(材料)도 많이 들어가서 무척 비쌌지만, 방패(防牌)는 좋은 널판지(널板지)나 철판(鐵板) 등(等)을 튼튼하게 다듬어 주는 정도(程度)의 작업(作業)으로도 제구실을 다할 수 있어 충분(充分)한 수량(數量)을 확보(確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드는 방법(方法)이라고 해봤자 넓은 판때기(板때기) 가운데에 손잡이만 달아놓으면 완성(完成)인, 아주 간단(簡單)하게 제작(製作)할 수 있는 방어구(魴魚灸)였다. 그래서 갑옷(甲옷)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가난한 병사(兵士)들이라도 [3] [4] 방패(防牌)만은 갖출 수 있었다. [5] 이런 방패(防牌)의 특징(特徵)과 장점(長點)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군대(軍隊)가 바로 로마군 이다. 공화정(共和政) 시기(時期)의 로마군(軍)은 귀족(貴族)으로 구성(構成)된 지휘관(指揮官)과 대다수(大多數)의 징병(徵兵)된 시민(市民)으로 이루어진 시민군(市民軍)이었기 때문에 전쟁시(戰爭時) 소집(召集)된 시민(市民)은 스스로 무장(武裝)을 갖추어야 했다. 이때 방패(防牌)는 값싸면서도 목숨을 보호(保護)해주고 대강(大綱)의 규격(規格)만 정(定)해놓으면 생산(生産)하기도, 전장(戰場)에서 운용(運用)하기도 편리(便利)하기 때문에 로마군(軍)의 필수장비(必須裝備) 목록(目錄)에서 빠지지 않았다. 물론(勿論) 방패(防牌)와 갑옷(甲옷)을 둘 다 사용(使用)하는 편(便)이 훨씬 생존률(生存率)이 높기 때문에 로마군도(軍度) 제정시대(帝政時代)로 넘어가서 중앙보급(中央普及)이 이루어지기 시작(始作)한 시점(時點)부터 가급적(可及的) (싸구려로 타협(妥協)하는 한(限)이 있더라도) 둘 다 챙기는 방향(方向)으로 보급(普及)이 이루어졌다. 또한, 검투사(劍鬪士) 사이에서도 대부분(大部分)의 검투사(劍鬪士)에게 방패(防牌)를 쥐어준 것도 더 격렬(激烈)한 전투(戰鬪)를 유도(誘導)하기 위함이며, 반대(反對)로 창(槍)과 그물을 사용(使用)하는 검투사(劍鬪士)에겐 방패(防牌)를 쥐어주지 않는 것으로 밸런싱을 했다.

물론(勿論) 다른 무기(武器)나 갑옷(甲옷)이 그러하듯, 방패(防牌)도 장인(丈人) 의 손을 거쳐 제대로 만든 것은 매우 비싸서, 재력(財力)을 갖춘 기사(記事) 계급(階級) 이상(以上)이나 갖출 수 있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6] [7] 물론(勿論) 그렇게 제대로 만든 방패(防牌)는 아이러니하게도 실전용(實戰用)이라기보다는 각종(各種) 귀금속(貴金屬)과 정교(精巧)한 세공(細工)으로 가문(家門)의 문장(文章)을 그려서 성(城)에 장식(裝飾)하는 등(等)의 용도(用途)로 쓰였다. 다른 무기(武器)와 마찬가지로, 방패(防牌) 또한 기본적(基本的)으로 소모품(消耗品) 이기(利器) 때문에 실전용(實戰用) 방패(防牌)는 장식(裝飾)을 최소한(最小限)으로 하고 실용성(實用性)에 중심(中心)을 둔 방패(防牌)를 별도(別途)로 사용(使用)했다.

방패(防牌)의 가치(價値)가 사라진 건(件) 개인화기(個人火器)가 생겨난 후(後)이지만 그 전(前)부터 점차적(漸次的)으로 가치(價値)가 하락(下落)해왔다. 서양사(西洋史)에서 중장보병(步兵)들이 위력(威力)을 떨치던 고대(古代)~중세(中世) 초창기(草創期)에는 육박전(肉薄戰)이 주(主)가 되는 전투(戰鬪) 양상(樣相)을 보였으므로 보병(步兵)에게 방패(防牌)가 가지는 의미(意味)는 지대(至大)하였으나 보병(步兵)의 전술적(戰術的) 한계(限界)가 드러나는 중세기(中世紀)부터 점차(漸次) 쓰이지 않게 되었는데 방패(防牌)를 병용(竝用)하는 보병진(步兵陣)으로는 기병(騎兵)을 막을 수단(手段)이 전무(全無)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병(步兵)에게 방패(防牌)는 궁병(弓兵)들에게 사격각(射擊角)을 제공(提供)하고 보호(保護)하는 바리케이드의 역할(役割)같이 제한적(制限的)으로만 쓰였다. 물론(勿論) 방패(防牌) 자체(自體)의 가치(價値)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서 조선군(朝鮮軍) 팽배(澎湃)수 등(等)과 같이 여러 상황(狀況)에 맞추어 재해석(再解釋) (여러 병과(兵科)의 유기적(有機的) 조합(組合))되고 응용(應用)되는 사례(事例)도 상당히(相當히) 있었지만, 방패(防牌)는 어디까지나 부가적(附加的)인 역할(役割)로 전투(戰鬪)의 주(主)가 되지는 못했다. 또한 중세(中世) 말엽(末葉)에 접어들며 생산력(生産力) 증가(增加)에 힘입어 갑옷(甲옷) 보급률(普及率)이 높아지며 방패(防牌)의 비중(比重)이 낮아졌다. 제철기술(製鐵技術)과 금속생산량(金屬生産量)이 떨어지던 고대(古代)엔 가벼운 갑옷(甲옷)+방패(防牌)+한손무기(武器) 조합(組合)이 많았지만, 제철기술(技術)이 발전(發展)하며 묵직한 장검(長劍) 등(等) 양손병기(兩손倂記), 전신(全身)을 보호(保護)해주는 갑주(甲胄)가 보급(普及)되며 팔 하나가 묶이는 방패(防牌) 선호도(選好度)가 낮아졌고, 아시아식(式) 경번갑(鏡幡甲)이나 유럽식(式) 판금(販禁) 갑옷(甲옷) 쯤 되면 화살이나 가벼운 냉병기(冷病機) 정도(程度)로는 뚫을 수 없게 되었다.(조선 두정갑만 해도 화살이나 검(檢) 정도(程度)론 뚫리지 않는다.) 방패(防牌)가 없이도 우수(優秀)한 방호력(防護力)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더더욱 방패(防牌)를 버리고 양손(兩손)으로 더욱 큰 무기(武器)를 드는 것이 유행(流行)하기도 했다. 결국(結局) 머스켓 등(等) 개인화기(個人火器)가 보급(普及)되며 방패(防牌)는 갑옷(甲옷)과 함께 완전히(完全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래도 민간(民間)에서는 쓰임새가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개인(個人) 호신용(護身用)으로 소드&버클러를 사용(使用)한 것처럼 소형방패(小型防牌)들이 호신용(護身用)이나 결투용(決鬪用)으로 쓰이는 경우(境遇)가 왕왕(往往) 있었다. 지금(只今)도 화기(火氣)를 쓰지 않는 전투(戰鬪)에서는 방패(防牌)가 현역(現役)이다.

그러나 전장(戰場)에선 애저녁에 퇴역(退役)한 방패(防牌)지만 현재(現在)까지도 소수(少數) 운용(運用)되는 등(等) 여전히(如前히) 쓰이고 있는데 이는 접근(接近)을 막는 등(等)의 비위력적(非威力的)이고도 효과적(效果的)인 저지(沮止)에 탁월(卓越)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代表的)으로 시위(示威) 진압용(鎭壓用) 사각방패(死角防牌), 폭도(暴徒) 저지용(沮止用) 원방패(圓防牌) 등(等) 여러가지 비살상(非殺傷) 무기(武器)들과 함께 사법(司法) 기관(機關)에서 쏠쏠하게 사용(使用)되고 있으며 여전히(如前히) 발전(發展)과 개량(改良)을 거듭하고 있다. 실제로(實際로) 이 방패(防牌)들은 적어도 본인(本人)의 몸 정도(程度)는 보호(保護)가 가능(可能)하다.

최근(最近)에는 SWAT 이나 특수부대(特殊部隊)가 실내전(室內戰)에서 방탄방패(防彈防牌)를 운용(運用)하기도 한다. 이 경우(境遇) 냉병기(冷病機) 전투(戰鬪)에서의 적극적(積極的)인 면모(面貌)보다는 아무래도 수동적(受動的)인 면모(面貌)가 강조(强調)된다. 사실상(事實上) 휴대용(携帶用) 벽(壁)인 셈. 작고 한손으로 휴대(携帶)할 수 있는 것들은 보통(普通) 권총탄(拳銃彈) 정도(程度)를 막는데 그친다. 한편(한便) 두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묵직하거나 아예 바퀴가 달린 것들도 있는데, 바디 벙커라고 주로(主로) 불린다. 이런 방패(防牌)들 중(中)에서는 소총탄(小銃彈)을 막아내는 종류(種類)도 있다.

3. 역사(歷史) [편집(編輯)]

3.1. 한국(韓國) [편집(編輯)]

external/cfs7.bl...
안악(安岳) 3호분(號墳) 의 행렬도(行列圖)에 그려진 고구려군(高句麗軍) 의 방패(防牌).
국보275호도기기마인물형뿔잔우...
국보275호도기기마인물형뿔잔좌...
삼국시대 방패2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국보(國寶) 제(第)275호(號) 도기(陶器) 기마인물형(騎馬人物型) 뿔잔(뿔盞) 과 묘사(描寫)된 방패(防牌)를 복원(復元)한 물건(物件), 도자기(陶瓷器)에선 창(窓) [8] 과 방패(防牌), 갑옷(甲옷) 마갑(馬甲) 으로 중무장(重武裝)한 가야(伽倻) 중기병(中企病) 을 묘사(描寫)하고 있다.
조선 방패1
조선 방패5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방패(防牌), 나무로 만든 방패(防牌)에 쇠가죽을 두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오른쪽의 것은 초기(初期)의 방패(防牌)를 복원(復元)한 것으로, 왼쪽의 후기(後記) 방패(防牌)그림과 같았을 것으로 추측(推測)된다.

한국(韓國)의 경우(境遇) 청동기(靑銅器) 시대(時代) 암각화(巖刻畫) 에 방패(防牌)가 묘사(描寫)되며 고구려(高句麗) 고분벽화(古墳壁畫)나 신라(新羅) 가야(伽倻) 기마(騎馬) 토용(土俑)에서 방패(防牌) 모습이 구체적(具體的)으로 나타나기 시작(始作)한다. 고구려(高句麗) 고분벽화(古墳壁畫) 특히(特히) 안악(安岳)3호분(號墳) 행렬도(行列圖)에서는 다양한 형태(形態)의 방패(防牌)가 보이는데, 작은 원형(原形) 방패(防牌), 타원형(楕圓形) 방패(防牌), 위아래가 뾰족하고 긴 직육면체(直六面體) 방패(防牌) 등(等)이 보이며, 방패(防牌)와 함께 창(槍)과 도검(刀劍)을 패용(佩用)하고 있다. 특히(特히) 직육면체(直六面體) 형태(形態)의 방패(防牌)는 일본(日本) 정창원 에 있는 유물(遺物)과 형상(形象)이 비슷하며, 일본(日本)과 교류(交流)가 있던 백제 역시(亦是) 비슷한 방패(防牌)를 사용(使用)하였을 가능성(可能性)이 있다. 정창원의 것은 나무로 만들어 테두리를 철로(鐵路) 둘렀으며, 겉에는 옻칠(옻漆)을 하였다.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자료(資料)가 빈약(貧弱)하지만, 중국(中國) 송나라(宋나라) 사신(使臣) 서긍(徐兢)이 고려(高麗) 를 다녀와서 쓴 기행문(紀行文) 고려도경(高麗圖經)(高麗圖經)에는 수패(水敗)(獸牌)라는 특이(特異)한 방패(防牌)가 묘사(描寫)되어 있다. 나무에 가죽을 덮어서 사자(獅子)를 그려넣고, 방패(防牌) 전면(前面)에 다섯 장(張)의 칼날을 단 뒤 꿩 깃털을 붙여 칼날을 가리고 접근(接近)해오는 적(敵)을 찍어 버렸다고 한다.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데 애들이 갖고 노는 물건(物件) 같아서 화살과 돌을 막지는 못할 것 같다고 썼다.

조선 방패2
▲방패(防牌)의 전면(全面), 방패(防牌)의 가장자리를 쥐는 "엔암스(Enarmes)" 형식(形式)을 취(取)하고 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초기(初期)부터 장방패(長防牌)와 원방패(圓防牌) 를 사용(使用)했다. 장방패(長防牌)는 위(位)는 뾰족하나 아래는 평평(平平)하여 유럽의 파비스처럼 땅위에 세워놓아 사용(使用)했으며 원방패(圓防牌)는 보병(步兵)이 환도(環刀)와 같이 들고 사용(使用)했는데 방패(防牌)를 든 병사(兵士)는 팽배(澎湃)수 라 불리며 전면(前面)에 서서 적(敵) 화살을 막아냈다고 한다. 둘다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테두리에는 철을 둘렀고 전면(前面)에는 주로(主로) 짐승의 그림을 그려넣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以後)에는 명나라(明나라)를 통(通)해 들어온 등패(藤牌) 를 사용(使用)하게 된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에 등패(藤牌) 운용법(運用法)이 잘 나오는데, 휘두르는 칼을 막는데 전혀(全혀) 지장(支障)이 없고 가볍다고 한다. [9] 그러나 이 등패(藤牌)는 가벼워서 타격기(打擊期)에 약(弱)해 곤방(坤方)으로 후려치면 뒤집어져 무력화(無力化)된다고 적혀있다. 사실(事實) 등(等)패수가 쓰이는 원앙진(鴛鴦陣) 자체(自體)가 조합(組合)을 중시(重視)하는지라 조합(組合)만 잘 되면 큰 걱정은 없긴 하다.
유럽에서도 방패(防牌)는 오래전(오래前)부터 사용(使用)되었다. 고대(古代) 그리스의 호(好)플리(理)테스 들은 상체(上體)를 모두 가릴 수 있는 큰 원형(原形) 방패(防牌)(아스피스)를 들었으며, 로마 군단병(群團病)은 크고 직사각형(直四角形)인 스쿠툼 을 사용(使用)했다. 심지어(甚至於) 갑옷(甲옷)을 안걸쳤을 것 같은 소위(少尉) 야만인(野蠻人)들도 방패(防牌)는 대부분(大部分) 사용(使用)했으며 대체로(大體로) 위아래로 긴 타원형(楕圓形)의 방패(防牌)를 애용(愛用)하였다.

갑옷(甲옷)을 입지 않았던 그리스군(軍) 경보병도(警報兵度) ' 경방패병(敗兵) ' 이(理)라 해서 크고 가벼운 방패(防牌)(펠타(打))를 썼는데 이는 사격전(射擊戰)에서 투사체(透射體) 방어용(防禦用)으로, 주로(主로) 가벼운 화살을 막는데 썼다고 한다.

스쿠툼은 로마군(軍)의 주력(主力) 무기(武器)가 글라디우스 에서 스파타 로 바뀌면서 다시 원형(原形)( 파르마 )으로 변(變)했으며, 이는 중세(中世)로 넘어가며 라운드 실드 로 발전(發展)했다. 보통(普通) 방패(防牌)의 손잡이가 정중앙(正中央)에 하나가 달린 센터그립형(型)이 많았는데, 방패(防牌)의 면(面)을 앞으로 내밀고 막기도 하지만 모서리를 앞으로 내밀어서 밀거나 때려서 상대(相對)의 방패(防牌)를 재껴 빈 틈을 만들어서 거기로 창(槍)이나 검(劍)을 쑤셔넣는 전법(戰法)도 사용(使用)했다.

그런데 사실(事實) 라운드 실드를 직접(直接) 들어보면 좌우(左右)로 너무 튀어나오는 경향(傾向)이 있다. 방어(魴魚)는 좋아도 사용자(使用者)의 팔 역시(亦是) 걸리적거리게 된다. 그래서 좌우(左右) 튀어나오는 부위(部位)를 자르고, 아래쪽으로 길게 늘려서 다리를 보호(保護)하게 만든 카이트 실드 의 모양(模樣)으로 변(變)해가고, 손잡이도 센터그립에서 팔목과 손잡이로 지탱(支撐)하는 엔암스 방식(方式)으로 변(變)해간다. 손잡이에 관(關)한 것은 아래쪽에서 자세히(仔細히) 서술(敍述)되어있다. 이 과정(過程)에서 그냥 라운드 실드 자체(自體)를 적당히(適當히) 작게 만든 변종(變種)들도 주류(主流)는 아니었지만 등장(登場)했다.
Shields
13세기(世紀) 경(頃), 이후(以後) 하체(下體)를 보호(保護)해주는 판금제(販禁第) 그리브 같은 방어구(防禦區)가 슬슬 도입(導入)되기 시작(始作)하면서 기사(技士)는 더이상(以上) 다리까지 카이트 실드로 막아줄 필요(必要)가 없어진다. 때문에 방패(防牌)의 크기는 줄어들고 카이트실드에서 다리를 보호(保護)하기 위해 튀어나왔던 아래쪽 부위(部位)도 잘라내는 형태(形態)가 등장(登場)하는데, 이것이 바로 히터 실드 이다. 14세기(世紀)가 되면 카이트 실드는 더이상(以上)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이때에는 방패(防牌)에 문양(文樣)으로 장식(裝飾)하여 개개인(個個人)을 나타내었다. 비단(緋緞) 방패(防牌) 뿐만 아니라 갑옷(甲옷) 위에 걸치는 서(鉏)코트라든지, 투구(投球) 장식(裝飾) 같은 식(式)으로 기사(記事)들은 자신(自身)의 신분(身分)과 정체(正體)를 드러내서 전장(戰場)에서의 전공(專攻)을 뚜렷하게 남들에게 보여 검증(檢證)받고 강(剛)한 인상(印象)을 남기려 했다.

그리고 기마병(騎馬兵)이 전신(全身)에 판금(販禁) 갑옷(甲옷)을 두르게 되면, 이제는 방패(防牌)보다는 양손무기(兩손武器), 특히(特히) 창(槍)을 쓰는게 효과적(效果的)이기 때문에 자연스레(自然스레) 방패(防牌) 사용률(使用率)이 낮아졌다. 물론(勿論) 전장(全長) 한켠에서는 여전히(如前히) 화살 방어용(防禦用) 특히(特히) 한편(한便)으로는 파비스 맨틀리트 같이 설치(設置)해서 투사(透寫) 무기(武器)를 받아내기 위한 용도(用途)의 방패(防牌)가 있었고 [10] , 방어구(魴魚灸)가 부실(不實)한 병력용(兵力龍), 그리고 기마전(騎馬戰) 시(詩)에 조금이라도 더 막아주기 위해서 방패(防牌)를 사용(使用)하기도 했다. 판금(販禁) 갑옷(甲옷)의 절정기(絶頂期)가 되면 기마전용(騎馬專用) 방패(防牌)는 아예 어깨나 팔 같은 부위(部位)에 고정(固定)하는 작은 것만 남는 일도 있었다.

버클러 는 이것과는 조금 궤(櫃)를 달리한다. 일반적(一般的)인 방패(防牌)는 방어력(防禦力)은 좋아도 휴대성(携帶性)은 좋지 않아서 항상(恒常) 갖고 다니기엔 힘들었다. 그래서 일종(一種)의 휴대용(携帶用) 방패(防牌)로 고안(考案)된 것이 버클러다. 주로(主로) 호신용(護身用) 한손검(劍)과 같이 운용(運用)했으며, I.33 같은 중세(中世) 검술(劍術) 서적(書籍)에 이 소드 앤 버클러 검술(劍術)이 잘 묘사(描寫)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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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特異)한 방패(防牌)로 가자면, 탈(脫)호퍼 검술서(劍術書)에서 나오 사람 크기의 거대(巨大)한 방패(防牌)(듀얼링 실드)도 있는데 이건 아예 지면(紙面)에 세로로 세워놓고 한손검(劍)으로 운용(運用)하거나, 양(兩) 손으로 방패(防牌)를 잡고 방패(防牌) 모서리의 뾰죽한 부분(部分)이나 가장자리의 갈고리로 적(籍)을 걸고 당기고 치는 용법(用法)을 지니고 있었다. 이름대로 결투(決鬪)에 특화(特化)된 것이라 전장(前場)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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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普通) 방패(防牌)라고 하면 팔을 가로로 놓았을때 세로로 긴 스타일이 많다. 카이트 실드나 히터 실드가 이런 형상(形象)이다. 팔이 편(便)하도록 약간(若干) 각도(角度)를 더 주는 일은 있지만, 대체로(大體로) 각도(角度)가 꺾인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反對)로, 방패(防牌)가 팔과 평행(平行)한 방향(方向)으로 긴 방패(防牌)도 가끔 있는데 유럽의 경우(境遇) 헝가리식(式) 방패(防牌)가 이런 타입이다. 이 타입의 방패(防牌) 중(中) 큰 것은 팔을 세로로 세웠을때 위쪽 모서리가 목과 얼굴을 보호(保護)할 수 있을 정도(程度)로 기다란 경우(境遇)도 있다.

한편(한便) 방패(防牌)를 들면 무기(武器)를 쓰는 법(法)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서양(西洋) 검술(劍術) 에서는 방패(防牌)를 사용(使用)하는 기법(技法)도 상당히(相當히) 연구(硏究)했다. 소드 앤 버클러 는 방패(防牌) 검술(劍術)의 중요(重要)한 일부분(一部分). 방패(防牌)로 상대(相對)의 공격(攻擊)을 누르는 기법(技法), 상대(相對)의 방패(防牌)를 눌러서 막지 못하게 하는 기법(技法), 그리고 나와 적(敵)의 방패(防牌)를 피(避)해서 공격(攻擊)을 밀어넣는 법(法)이 방패(防牌) 검술(劍術)의 주요(主要) 핵심(核心). 말하자면 맨손 무술(武術)의 전법(戰法), 특히(特히) 그 중(中)에서도 앞손으로 견제(牽制)를 하고 뒷손으로 결정타(決定打)를 넣는 권투(拳鬪) 와 유사(類似)하다. 게임이나 영상매체(映像媒體)에서는 방패(防牌)를 주로(主로) 몸에 붙이고 있지만 검술서적(劍術書籍)에서는 다들 권투선수(拳鬪選手)의 주먹처럼 방패(防牌)와 한손무기(武器)를 함께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형(大型) 방패(防牌), 소형(小型) 방패(防牌)에 검(劍)을 섞어쓸 뿐만 아니라 한손으로 들 수 있는 단창(短槍)과 방패(防牌)를 같이 쓰는 일도 흔히 있다. 당연히(當然히) 도끼나 철퇴도(鐵槌度) 해당(該當)된다. 그림 사료(飼料)만으로 보자면 한손 무기(武器)는 대부분(大部分) 다 방패(防牌)와 무난(無難)하게 사용(使用) 가능(可能)하다.

3.3. 일본(日本) [편집(編輯)]

5세기(世紀) 이전(以前) 조몬 시대(時代) 야(野)요이 시대(時代) 엔 한 손으로 장비(裝備)하는 전형적(典型的)인 방패(防牌)를 사용(使用)했다. 하지만 5세기(世紀)에 일본(日本)에 이 전래(傳來)되어 기병(起兵) 이 등장(登場)하게 되면서 전투양상(戰鬪樣相)이 보병(步兵) 간(間)의 접근전(接近前)에서 기마병(騎馬兵)이 중심(中心)이 되는 전투(戰鬪)로 크게 변화(變化)하게 된다. [11] 마상(馬上)에서 긴 창(槍)이나 활을 사용(使用)하면서 방패(防牌)를 손에 들 수는 없으니 방패(防牌) 역시(亦是) 형태(形態)가 크게 변화(變化)하여 갑옷(甲옷)에 직접(直接) 탈부착(脫附着) 할 수 있게 된다. '소데'라고 불리는 오오요로(五五尿路)이 의 어깨부분(部分)에 평평(平平)한 사각형(四角形) 부분(部分)이 바로 그것으로, 비슷한 유형(類型)의 방패(防牌)로는 유럽의 타지 가 있다. 갑옷(甲옷)의 일부분(一部分)으로 보여 사무라이 들은 방패(防牌)를 쓰지 않는다는 오해(誤解)도 생겨났지만, 형태(形態)가 바뀌었을 뿐 원거리(遠距離) 공격(攻擊)을 방어(防禦)하는 장비(裝備)로서의 방패(防牌)는 시대(時代)를 막론(莫論)하고 꾸준히 쓰인 셈이다.
타케타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대나무 다발 방패(防牌) 타케타바

한 편(篇)으로 화살 등(等)을 막기 위하여 철포(鐵砲) 전래(傳來) 이전(以前)에는 파비스 형태(形態)의 설치형(設置型) 방패(防牌) 카키타테(?盾)를 사용(使用)했고, 철포(鐵砲) 전래(傳來) 이후(以後)에는 대나무 다발을 엮어서 만든 타케타바(竹束)를 사용(使用)했다. 타케타바는 속이 빈 대나무의 가벼움+공간장갑 효과(效果)에 대나무 다발이 벌집구조(構造)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방어력(防禦力)까지 더해져 철포(鐵砲) 탄환(彈丸)을 막아내는데 기존(旣存)의 나무방패(防牌)보다 더 효과(效果)가 좋았는데, 일반적(一般的)인 교전(交戰)거리에서 철포(鐵砲)의 탄환(彈丸)이 관통(貫通)할 수 없었던 경우(境遇)가 대다수(大多數)였다. 동시기(同時期) 아시가루 (말단(末端) 병사(兵士) )는 목제(木製)(이후(以後) 철제(鐵製)로 변경(變更)) 삿갓인 진가사(眞家事)(陣笠)를 방패(防牌) 대용(代用)으로 사용(使用)했다. 버클러나 소형(小型) 방패급(防牌級)에 해당(該當)하는 방패(防牌)가 존재(存在)하긴 했다는 사료(飼料)도 드물게 있으므로 일본(日本)에서 손으로 장비(裝備)하는 방패(防牌)가 완전히(完全히) 배제(排除)된 것은 아니다. 관련(關聯) 자료(資料) 그래서인지 아시가루 중(中)에서는 진가사(眞家事) 2개(個)를 갖고 다니면서 하나는 투구, 다른 하나는 방패(防牌)로 각각(各各) 사용(使用)하기도 했다.

중종(中宗) 조(兆)에 왜구(倭寇) 가 방패(防牌)와 급조(急造)한 차일(遮日)을 설치(設置)해 아군(我軍)의 접근(接近)을 막자, 최임이 녹각목(綠角木)으로 왜구(倭寇)의 접근(接近)을 차단(遮斷)하고 왜구(倭寇)의 방패(防牌)와 급조(急造)한 차일(遮日)을 안동(安東) 아재들의 돌팔매질로 격파(擊破) 한 적이 있지만, 당대(當代)의 평가(評價)에 의(依)하면 안동(安東) 아재들은 석전놀이(石戰놀이)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有名)했으며, 조선(朝鮮)의 석전놀이(石戰놀이)는 그냥 돌을 던지는 것 뿐만 아니라 흉악(凶惡)한 관통력(貫通力)의 줄팔매 는 물론(勿論) 메주만한 크기의 돌을 날리는 망팔매 등(等) 별의 별(別) 흉악(凶惡)한 도구(道具)를 다 동원(動員)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본(日本)의 방패(防牌)가 약(弱)해서 털린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無理)가 있다.

3.4. 현대(現代) [편집(編輯)]

냉병기(冷病機)가 사라진 현대(現代) 전장(前場)에서는 방패(防牌)의 필요성(必要性)이 사실상(事實上) 사라진 것과 다름이 없다. 현대(現代) 돌격소총(突擊小銃)은 꽤나 먼 거리(距離)에서도 상당히(相當히) 뛰어난 관통력(貫通力)을 발휘(發揮)하며 [12] , 포병(砲兵)과 기갑(機甲), 항공(航空) 장비(裝備)가 크게 발전(發展)하여 정규군(正規軍) 간(間)의 전면전(全面戰)에서는 방패(防牌)가 아예 쓸모가 없는 수준(水準)까지 왔다. 애시당초 16세기(世紀)나 17세기(世紀) 화승총(火繩銃)만 되어도 갑옷(甲옷)과 방패(防牌)를 도태시켰는데 현대(現代)라면 말할것도 없다. 소재공학(素材工學)이 발전(發展)했다지만 그건 총기(銃器)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상당(相當)한 면적(面積)에 거의 완벽(完璧)한 방호(防護)를 제공(提供)하는 방패(防牌)를 효율(效率) 좋게 쓸 수 있는 일부(一部) 군(軍),경(警) 조직(組織)에서는 여전히(如前히) 방패(防牌)를 사용(使用)하기도 한다. 대표적(代表的)인 것이 실내전(室內戰)을 위주(爲主)로 하는 경찰특공대(警察特攻隊)나 특수부대(特殊部隊). 상술(詳述)했듯 개활지(開豁地)의 전면전(全面戰)에서는 워낙 방패(防牌)를 무력화(無力化)하는 무기(武器)가 많기 때문에 방패(防牌)의 의미(意味)가 없다. 하지만 실내전(室內戰)에서는 상호간(相互間)의 화력(火力)이 끽해야 산탄총(散彈銃)이나 소총(小銃) 정도(程度)로 제한(制限)되기에 방패(防牌)의 방호력(防護力)이 유의미(有意味)하게 활용(活用)될 수 있다. 또한 실내(室內)의 좁은 공간(空間)이라면 큰 방패(防牌) 하나로 복도(複道) 하나, 방(房) 하나를 막아낼 수도 있게 되므로 구역(區域)을 점거(占據)하기도 훨씬 쉬워진다. 즉(卽) 방패(防牌)가 있으면 적어도 부대원(部隊員)들의 희생(犧牲)을 줄일 수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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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銃彈)을 막아내기 위한 방패(防牌)도 있다. 방탄(防彈) 방패(防牌)(ballistic shield), 혹은(或은) 보디 벙커(body bunker)라고 불리며 한팔로 들 수 있는 가벼운 것은 권총(拳銃) 탄(炭)이나 산탄(散彈) 정도(程度)를 막는 레벨 IIIA 급(級)의 성능(性能)이다. 사용자(使用者)가 휴대(携帶)할 수 있다고 해도 작은 방패(防牌)가 5kg, 큰 방패(防牌)는 10~15kg대(大)의 꽤나 무거운 무게를 가지고 있다. 정규군(正規軍)보다는 대(對)테러부대(部隊) SWAT 등(等) 건물(建物) 내부(內部)로 돌입(突入)해야하는 특수부대(特殊部隊)들이 사용(使用)하는 경우(境遇)가 많으며, 돌입조(突入兆) 선두(先頭)의 포인트맨 이 방탄(防彈) 방패(防牌)로 자신(自身)과 팀원(팀員)을 보호(保護)하면서 돌입(突入)한다. 방패(防牌)에 한 손을 할애(割愛)해야 하기 때문에 포인트맨은 레이저 사이트 를 장착(裝着)한 권총(拳銃) 이나 기관단총(機關短銃) 을 쓰는 것이 일반적(一般的)이다. 시야(視野)를 확보(確保)하기 위해 방탄방패(防彈防牌)에는 방탄유리(防彈琉璃)로 투명(透明)한 창(窓)을 만들어두기도 한다.

소총탄(小銃彈)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있는데, 방탄복(防彈服) 에 삽입(揷入)하는 소총탄(小銃彈) 방어용(防禦用) 방탄판(防彈版)이 그렇듯이 억(億)소리 나게 무겁다. 전신(全身)을 가릴 정도(程度)의 소총탄(小銃彈) 방탄(防彈) 방패(防牌)는 50kg 이 넘어가는 경우(境遇)가 많아, 밑에 바퀴를 장착(裝着)해서 밀고 다니는 경우(境遇)가 대부분(大部分)이다. 하지만 방탄복(防彈服)과 같이 기술(技術)의 발달(發達)로 무게가 매우 가벼워진 소총탄(小銃彈) 방탄(防彈) 방패(防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기(武器)와 함께 들고다니기는 무리(無理)다. 권총(拳銃) 정도(程度)나 함께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程度). 그나마 들만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거의 10kg에 달(達)한다. 더구나 주요(主要) 부위(部位)나 가릴 정도(程度)로 작아서 방패역할(防牌役割)을 제대로 못할 정도(程度).

중세(中世) 기사(騎士)들의 갑옷(甲옷)이 1-2mm였는데 화승총(火繩銃)에 뻥뻥 뚫렸고, 2차대전(次大戰) 탱크를 개조(改造)할 때 1cm 추가장갑(追加掌匣) 장착(裝着)했다 엔진이 터진다고 비명(悲鳴)을 질러대곤 했는데, 소총탄(小銃彈) 방어(防禦)하는 방탄복(防彈服) 플레이트가 15-25mm 쯤 되니, 총탄(銃彈)을 방어(防禦)하는 방패(防牌)는 사람이 운반(運搬)하는 게 불가능(不可能)하다 보면 된다.

이스라엘에서 접었다 펴는 간(肝)이 방탄(防彈) 칸막이 같은 느낌의 군용(軍用) 방탄(防彈) 방패(防牌) 아이디어 상품(商品)을 낸 적이 있지만, 그다지 호응(呼應)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에서 방탄(防彈) 방패(防牌)를 제한적(制限的)으로 시험(試驗)한다는 말도 있지만 감감무소식(감감無消息). 사실(事實) 이런 물건(物件)들은 오래 전(前) 제(第)1차(次) 세계대전(世界大戰) 참호전(塹壕戰) 을 돌파(突破)하기 위한 수많은 몸부림 중(中) 이미 써 본 물건(物件)들이고, 그때도 채택(採擇)되지 않았다.(...)

방패(防牌)는 현대전(戰)에서 전술적(戰術的) 이점(利點)이 전혀(全혀) 없기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이다. 현대전(現代戰)은 병사(兵士) 개인(個人)이든 부대(部隊) 단위(單位)든 '기동력(機動力)'이 굉장히(宏壯히) 중요(重要)한데, 소총탄(小銃彈)을 막을만큼 두꺼운 방탄방패(防彈防牌)는 너무 무거워 기동력(機動力)을 다 잡아먹어버린다는 치명적(致命的)인 약점(弱點)이 있다. 그리고 막을 수 있는 방향(方向)도 한정(限定)되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제한(制限)되기 때문에 오히려 사용자(使用者)에게 장애물(障礙物)이 될 가능성(可能性)이 크다. 경량장갑차(輕量裝甲車)로 소총탄(小銃彈)과 파편(破片)을 충분히(充分히) 막을 수 있고, 기동성(機動性)까지 챙길 수 있으므로 굳이 방패(防牌)를 선택(選擇)할 이유(理由)도 없다. 때문에, 경찰특공대(警察特攻隊) 의 실내진입(室內進入)과 같은 아주 예외적(例外的)인 상황(狀況)에서나 어쩌다 한 번(番) 사용(使用)될 뿐이다.

더구나 현대전장(現代戰腸)은 기동전(機動戰) 뿐 아니라 화력전(火力戰) 으로 패러다임이 바뀐지 오래이다. 소총탄(小銃彈)을 막는 물건(物件)이 있으면 기관총(機關銃) 을 긁어 버리고, 기관총(機關銃)으로 안 되면 유탄(榴彈) 을 쏘아대고, 그것도 안 먹히면 박격포(迫擊砲) 를 쏘거나 본격적(本格的)인 포병사격(砲兵射擊)을 요청(要請) 하거나 전차(戰車) 를 끌고 오고, 그마저도 여의(如意)치 않으면 미사일 을 쏘거나 항공기(航空機)를 동원(動員)해 폭격(爆擊) 을 퍼붓는 일이 자주, 그리고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이런 거창(巨創)한 지원(支援)이 없이 보병전(步兵戰)에서도 기관총(機關銃) 연사(演士)의 위력(威力)이 경장갑차(卿裝甲車)를 파괴(破壞)할 정도(程度)고, 수류탄(手榴彈) 하나 던지면 개인(個人)이 휴대(携帶)하는 방패(防牌)따위 무력화(無力化)된다. 이런 상황(狀況)에서 방패(防牌)를 아무리 힘들게 들고 와 봤자 아무 의미(意味)가 없게 된 것이다. 파편(破片) 등(等)에 대(對)한 방호(防護)를 위(爲)해 포방패(抛防牌) 등(等)의 형태(形態)로 방패(防牌)의 개념(槪念)이 어렴풋하게나마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장갑차(裝甲車)와 같은 중장비(重裝備)에나 붙이는 액세서리 개념(槪念)이라 전통적(傳統的)인 방패(防牌)로 보기는 어렵다. 애초(애初)에 기술(技術)의 발전(發展)으로 화력(火力)이 엄청나게 강(强)해진 현대(現代)에 정면(正面)으로 막기는 최후(最後)의 수단(手段)이고 그 이전(以前)에 회피(回避), 그 이전(以前)에 은폐(隱蔽)를 우선적(優先的)인 방어(防禦) 수단(手段)으로 사용(使用)한다. 요약(要約)하자면 전투(戰鬪)에선 막는 것보단 안 맞는 게 더 좋고, 그보다도 아예 공격(攻擊)을 안 받는 게 제일(第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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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年) 11월(月) 파리 테러 당시(當時) 사망자(死亡者)가 가장 많이 나온 바타클랑 콘서트장(場)에서
27발(發)의 총탄(銃彈)을 막아낸 BRI 의 방탄(防彈) 방패(防牌)
하지만 SWAT이나 대(對)테러부대(部隊) 등(等) 건물(建物)에 돌입(突入)해야 하는 특수부대(特殊部隊)는 방탄(防彈) 방패(防牌)를 절찬리(絶讚裡)에 사용(使用) 중(中)이다. 건물(建物)을 청소(淸掃)하려면 중화기(重火器)를 가져오거나 기갑(機甲), 항공(航空) 병(病)과의 도움을 받아 잔해(殘骸)더미로 만드는 게 최고(最高)지만 그런 방법(方法)을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저런 수단(手段)을 동원(動員)할 수 있어도 정보(情報) 수색(搜索)이나 사살(射殺) 확인(確認)을 위해 사람이 직접(直接) 진입(進入)해야 하는 상황(狀況)도 있는 법(法)이다. 특히(特히) 자국(自國), 우호국(友好國) 도심(都心)에서 작전(作戰)해야 하는 위 조직(組織)들은 거의 100%로 중화기(重火器)는 꿈도 못 꾸고 직접(直接) 진입(進入)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단(一旦) 문(聞)으로 진입(進入)을 해야 하는데, 집 안에서 버티고 있는 적대자(敵對者)는 그러한 좁은 곳에 화력(火力)을 집중(集中)하기 쉽고, 따라서 선두(先頭)에 서는 대원(隊員)이 벌집이 되기 십상(十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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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年) 10월(月) 25일(日) 타이완 합동(合同) 대(對)테러 훈련(訓鍊) 중(中)
방탄(防彈) 방패(防牌)를 들고 콘서트홀로 진입(進入)하는 벽력소조(霹靂塑造), 유안특근대(硫安特近代) 대원(隊員)들
그래서 건물(建物) 내(內)에서 특수부대(特殊部隊)가 작전시(作戰時), 최선두(最先頭)의 포인트맨이 방패(防牌)를 들고 총알(銃알)을 받아내며 전진(前進)하는 동시(同時)에 나머지 대원(隊員)들이 그 뒤로 줄줄이 진입(進入)하는 식(式)으로 방패(防牌)를 사용(使用)한다. 작전(作戰) 시간(時間)이 몇 일(日)씩이나 될 수 있는 야전(野戰)에 비(比)해서 몇 분(分) 이내(以內)로 아주 짧게 끝나므로 방패(防牌)가 무거워도 견딜 만하며, 좁아터진 건물(建物)과 방(房) 내부(內部)에서 총격전(銃擊戰)을 벌여야하는 상황(狀況)에서 방패(防牌)가 본연(本然)의 역할(役割)을 톡톡히 해낸다. 이렇게 실내전(室內戰)에서 사용(使用)하는 방패(防牌)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상체(上體)만 가릴 정도(程度)로 작은 사이즈가 많고, 한 팔로 들고 다른 손으로는 권총(拳銃) 이나 작은 기관단총(機關短銃) 을 들고 운용(運用)한다. 이럼에도 무게가 무거워서 외골격(外骨格) 을 사용(使用)하는 경우(境遇)도 있으며, 상대방(相對方)의 저항(抵抗)이 격렬(激烈)할 것으로 예상(豫想)되는 상황(狀況)이라면 위 BRI처럼 확실(確實)한 방호(防護)를 위해 바퀴달린 바디벙커를 끌고 다니기도 한다.

3.4.2. 비군사적(非軍事的) 목적(目的) [편집(編輯)]

그러나 비 군사적영역(軍事的領域)으로 들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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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特히) 경찰(警察) 시위(示威) 현장(現場)에서 시위대(示威隊)를 방어(防禦)하는 데 사용(使用)하는 진압(鎭壓) 방패(防牌) 는 굉장히(宏壯히) 중요(重要)한 장비(裝備)로 일선(一線)에서 활용(活用)되고 있다. 시위대(示威隊)의 투석(透析)과 둔기(鈍器)를 막아낼 뿐만 아니라, 스크럼으로 방패벽(防牌壁)을 만들어 시위대(示威隊)를 (비공격적(非攻擊的)으로) 차단(遮斷)하고 밀어내고, 상황(狀況)에 따라 포위(包圍)하기 위(爲)한 방어구로(防禦九老)서 이만한 물건(物件)이 없기 때문이다. 한손용과 양손(兩손)용이 있으며, 플라스틱 소재(素材)로 만들어 가볍고 투명(透明)한 방패(防牌)도 많이 쓰이는 편(便). 다만 게임에서의 묘사(描寫)와는 달리 실탄(實彈)에 대(對)한 방탄(防彈) 능력(能力)은 없다. 권총탄(拳銃彈) 한 발도 못 막아낼 정도(程度).. 였으나 일부(一部) 소구경(小口徑) 권총탄(拳銃彈) 정도(程度)는 막을 수 있는 방패(防牌)가 제품(製品)으로 나오긴 했다. 진압(鎭壓) 방패(防牌) 문서(文書) 참조(參照). 다만 전경(前景) 전역자(轉役者) 말에 의(依)하면 신형(新型) 방패(防牌)는 때리는 시위대(示威隊) 보호용(保護用)이지 막는 전경(前景) 보호용(保護用)이 아니라 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호신용(個人護身用) 방패(防牌)도 존재(存在)하며 여전히(如前히) 매우 유효(有效)하게 써먹을 수 있다. 충분히(充分히) 상술(詳述)되었듯 방패(防牌)는 이미 그 자체(自體)로 대단한 공격력(攻擊力)과 방어력(防禦力)을 가진 무기(武器)일뿐더러, 현대인(現代人)은 기본적(基本的)으로 방패(防牌)를 든 상대(相對)와 싸워 본 경험(經驗)이 전무(全無)하다 는 게 핵심(核心) 포인트다. 이는 유도(誘導) 검도(劍道) 등(等) 무술(武術)이나 무기(武器)술을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例外)가 아닌데, 현대(現代) 사회(社會)로 접어들면서 무술(武術)이 살상용(殺傷用) 뿐만 아니라 스포츠로도 변(變)했기 때문에, 냉병기(冷病機) 혹은(或은) 맨몸으로 방패(防牌)를 든 상대(相對)를 상대(相對)하는 기술(技術) 자체(自體)가 스포츠의 영역(領域)에서는 도태(淘汰)되었기 때문이다. [13] 게다가 방패(防牌)는 방어용(防禦用) 도구(道具)라는 인식(認識)이 매우 강(剛)하기 때문에 둔기(鈍器)나 날붙이와 같은 명백(明白)한 공격용(攻擊用) 무기(武器)들에 비(比)해 법적(法的)인 문제(問題)에서도 훨씬 자유롭다는 장점(長點)이 있다.

실제로(實際로) 중국(中國)에서는 평범(平凡)한 회전의자(回轉椅子)로 무장(武裝)(?)한(韓) 남성(男性) 세 명(名)이 칼을 든 은행(銀行) 강도(强盜)를 일방적(一方的)으로 제압(制壓)한 사례(事例)도 있었다. # 의자(椅子)의 쿠션이 가진 방어력(防禦力) 및 손잡이가 주는 압력(壓力) 뿐 아니라, 스파이크와 같은 견제효과(牽制效果)와 긴 리치까지 가진 의자(椅子) 다리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보(步)블비사의(費辭意) 하드쉘 가방 등(等)을 이용(利用)한 호신술(護身術) 등(等)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대략(大略) 이런 식(式) .

그리고 유사시(有事時)에 책상(冊床) 을 엎어서 방패(防牌)로 활용(活用)하거나 의자(椅子) 의 앉는 부분(部分)을 방패(防牌)로 활용(活用)하는 경우(境遇)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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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出處)
서구권(西歐圈) 에서는 나이트스탠드(베드사이드테이블)를 적절(適切)히 개조(改造)한 이런 신박(新박)한 물건(物件)(Self-Defense Decor)을 팔기도 하는 모양(模樣)이다. 이처럼 방패(防牌) 또는 그 대용품(代用品)(손잡이가 달린 판자(板子) 등(等)), 그리고 적절(適切)한 몽둥이 를 손이 빨리 갈 수 있는 곳에 미리 준비(準備)해 두고, [14] 간단(簡單)한 훈련(訓鍊) 및 기초체력(基礎體力)만 꾸준히 갈고 닦아 놓는다면 유사시(有事時) (쌍방(雙方) 모두) 위험부담(危險負擔)을 줄이면서 [15] 침입자(侵入者)를 쫓아내거나 제압(制壓)하는데 충분(充分)하니 참고(參考)해 두도록 하자. 단검(短劍)들고(高) 몰래 기어들어갔는데 고대(古代) 중무장(重武裝) 보병(步兵)이 환영(歡迎)해준다니

4. 사용법(使用法) [편집(編輯)]

일단(一旦) 방패(防牌)를 들면 생각보다 꽤 넓은 범위(範圍)를 방어(防禦)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자(攻擊者)는 방패(防牌)를 부술 수 있는 중병기(重兵器)를 사용(使用)하거나, 방패(防牌) 범위(範圍) 바깥으로 노출(露出)된 머리나 사지 정도(程度)나 공격(攻擊)할 수 있다. 심지어(甚至於) 이것도 숙련(熟鍊)된 방패(防牌) 사용자(使用者)가 적절히(適切히) 대응(對應)하면 기껏해야 다리나 노려봄직 하다. 그리고 방패(防牌)를 들면 심리적(心理的) 안정감(安靜感)이 굉장히(宏壯히) 크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安定的)으로 공세(攻勢)에 나설 수 있다. 방패(防牌) 하나만 들면 초보자(初步者)가 대충 들이대도 적(敵)의 반격(反擊)을 대부분(大部分) 차단(遮斷)할 수 있기 때문에, 겁쟁이(怯쟁이) 용사(勇士) 로 만들어준다고 할 정도(程度). [16] 무엇보다도 방패(防牌)를 들면 보병(步兵) 의 천적(天敵)인 화살, 투창(投槍), 투석등(投石等) 투사무기(透寫武器)에 대(對)한 방호력(防護力)을 제공(提供)해준다, 방패(防牌)가 없다면 이러한 무기(武器)들이 날아오는 족족 몸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다. [17]


중세병기(中世兵器)를 다루는 유튜버 Skallagrim의 강좌영상(講座映像)


Achille Marozzo 의 스파링 동영상(動映像)

영화(映畫)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보다 역동적(力動的)인 장면(場面)을 담아내기 위해서 보다 크고 과장(誇張)된 동작(動作)으로 방패(防牌)와 칼을 휘두르고, 칼과 방패(防牌)가 따로 노는 경향(傾向)이 있지만, 실제로(實際로)는 그렇게 움직이면 몸을 제대로 보호(保護)하지 못한다. 첫번째(番째) 강좌영상(講座映像)에서도 나오지만, 칼로 상대(相對)를 공격(攻擊)할 때도 칼을 쥔 손을 보호(保護)하기 위해 방패(防牌)로 감싸며 공격(攻擊)하고, 칼을 쥔 손보다 방패(防牌)를 쥔 손이 앞서 나가며 손을 보호(保護)한다.
shield two h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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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매체(媒體)에서는 방패(防牌)를 밀착(密着)해서 정면(正面)을 향(向)해 쥐고 있지만, 실제로(實際로)는 정면(正面)에서 봤을 때 살짝 비스듬하게 옆으로 약(約) 45도(度) 정도(程度) 로 틀어서 쥐고 있어야 정면(正面)에서의 공격(攻擊)을 미끄러뜨릴 수 있고 , 자신(自身)의 상반신(上半身)과 특히(特히) 무기(武器)를 쥔 손을 더 많이 보호(保護)하는 것과 동시(同時)에 내뻗기 쉽게 만들어서 상대(相對)를 보다 안전(安全)하게 공격(攻擊)할 수 있다. 때문에 방패벽(防牌壁)을 제외(除外)하면, 방패(防牌)를 정면(正面)으로 쥐는 사용법(使用法)은 되려 전투(戰鬪)에 불리(不利)한데, 실제로(實際로) 대부분(大部分)의 삽화(揷畵)에서 전사(戰士)들은 정면(正面)에서 봤을 때 방패(防牌)를 옆으로 비스듬히 쥐고 있다.

방패(防牌)를 들면 각각(各各) 다른 무기(武器)와 맞붙었을 때 아래와 같은 특징(特徵)이 있다. (방패(防牌)를 가진 쪽은 모두 단(單)(短)병기(倂記)만 들었을 때의 예)
  • 공격자(攻擊者) 장병(將兵) vs 방패(防牌) 단병(單兵)
    투핸디드 소드 , 양손(兩손) 도끼 , 폴암(癌) 같은 무기(武器)는 간격(間隔)으로든 무게 로든 방패(防牌)를 무력화(無力化)시킬 수 있다. 그러나 방패(防牌)-단병(單兵) 조합(組合)의 경우(境遇) 장병기 의 첫 타격(打擊)을 방패(防牌)로 흘리면서 장병(將兵) 간격(間隔) 안으로 뛰어들어가 공격(攻擊)할 수 있다. 따라서 물고 물리는 관계(關係)라 할 수 있다.
  • 공격자(攻擊者) 중(中)(中)병(病) vs 방패(防牌) 단병(單兵)
    무게나 길이가 적당(適當)하고 올레인지로 싸울 수 있는 롱소드 급(級)의 무기(武器)를 말한다. 이런 무기(武器)들은 방패(防牌)가 막아주기 어려운 아래쪽 다리나 방패(防牌) 너머의 머리를 노리면서 밀고 들어오는 방패(防牌)를 피(避)해 적극적(積極的)으로 뒷걸음치며 짤짤이를 하거나, 방패(防牌) 모서리 걸어서 당기기 같은 빈틈 만들기를 하는 것이 주(主) 전략(戰略).
  • 공격자(攻擊者) 단병(單兵) vs 방패(防牌) 단병(單兵)
    그냥 답(答)이 없다. 일단(一旦) 때릴 데가 없다. 방패(防牌)와 간격(間隔)이 동일(同一)하기 때문에 공격(攻擊)을 하는 순간(瞬間) 방패(防牌)에 막히는 동시(同時)에 반격(反擊)을 받는다. 한손 무기(武器)로는 아무래도 질량(質量) 타격(打擊)으로 밀어붙이기도 힘들고, 기술(技術)을 걸려고 해도 방패(防牌)의 공격범위(攻擊範圍) 안이라 기술(技術) 거는 동안에 맞아 죽기 십상(十常). 결국(結局) 단병(單病)이 방패(防牌)를 공략(攻掠)하려면 똑같이 방패(防牌)를 들고 나와서 상대(相對)하는 것이 최적(最適), 또는 머리를 공격(攻擊)하는 것처럼 페인트를 걸어서 상대(相對)가 방패(防牌)를 들어올리게 유도해 방패(防牌)의 시야(視野)를 차단(遮斷)하고 다른 오프닝을 때려야 한다. 다만 방패(防牌) 측(側) 역시(亦是) 이런 것에 익숙한 편(便)이기 때문에 반격(反擊) 받을 공산(公算)이 크다.
  • 방패(防牌) vs 방패(防牌)
    방패(防牌)가 막아주는 몸통의 막대(莫大)한 영역(領域)을 서로 쉽게 치고 들어갈 수 없으니 방패(防牌)가 가려주지 못하는 부위(部位), 대개(大槪) 허리 아래의 허벅지나 몸 아래를 막으면 비게 되는 머리 부위(部位)를 넘겨치려고 온갖 수(數)를 다 쓰게 된다. 방패(防牌)가 활발히(活潑히) 쓰이던 중세(中世) 이전(以前), 혹은(或은) 초기(初期)의 전장(戰場)에서 유골(遺骨)을 찾아 분석(分析)해본 결과(結果) 다리와 머리에 부상(負傷)이 집중(集中)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어느정도(程度) 막을 정도(程度)로 방패(防牌) 숙련(熟鍊)이 쌓인 사람끼리 싸우면, 상대(相對) 방패(防牌) 가장자리를 내 방패(防牌) 모서리로 밀어서 젖혀지도록 빈틈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칼을 쑤셔넣는 식(式)의 고급(高級) 기법(技法)이 등장(登場)한다. 이걸 또 카운터하기 위(爲)해서 방패(防牌)를 밀기 어렵게 모서리를 상대(相對) 방향(方向)으로 내세우다가 쑤셔들어오는 칼과 방패(防牌)를 동시(同時)에 눌러서 공격(攻擊)과 방어(防禦)를 동시(同時)에 봉쇄(封鎖)한다든지 하는 기법등(技法等) 방패(防牌)술에 관(關)해 다루는 것도 초급(初級)부터 상급(上級) 수준(水準)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방법(方法)이 줄줄이 들어간다.

단점(短點)은 방패(防牌)가 본인(本人)의 시야(視野)도 가린다는 것으로, 움츠러들며 주도권(主導權)을 넘기는 게 아니라 방어력(防禦力)을 믿고 밀어버리라는 조언(助言)이 있다. 현대(現代)의 '탱크' 와 유사(類似)한 셈.

4.1. 방패벽(防牌壁)(Shield Wall) [편집(編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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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古代) 그리스 팔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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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古代) 로마 테스투도(偸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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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채널 의 드라마 바이킹스 에서 묘사(描寫)된 바이킹 의 방패벽(防牌壁). 이 방패(防牌)를 담당(擔當)하는 전사(戰士)들을 Svinfylking- 멧돼지 전사(戰士)라는 명칭(名稱)으로 불렀다.

말그대로 보병(步兵)이 방패(防牌)로 벽(壁)을 세워 적(敵)의 공격(攻擊)을 막아내는 전술(戰術)이다. 방패(防牌) 하나 만(萬)으로도 전투력(戰鬪力)에 크게 기여(寄與)하는데, 이것을 체계적(體系的)으로 훈련(訓鍊)하여 여러 병사(兵士)가 같이 들면 그 방어력(防禦力)은 그야말로 성벽(城壁)과 같았다. 동서양(東西洋)을 막론(莫論)하고 커다란 인상(印象)을 남겨주었고, 고대(古代) 그리스시대(時代)의 팔랑크스 나 고대(古代) 로마의 테스투도(偸盜) 전술(戰術)은 역사(歷史)에 이름을 남길 정도(程度)였다. 굳이 몇몇 특정(特定) 문화권(文化圈)에서만 쓰인 게 아니라, 보병(步兵)이 방패(防牌)를 들고 적(敵) 투사무기(透寫武器)에 저항(抵抗)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형성(形成)되는 전술(戰術)이라 고대(古代) 수메르때부터 세계적(世界的)으로 널리 쓰였다. 화살이나 돌, 투창등(投槍等)의 투사무기(透寫武器)로부터 보병(步兵)을 잘 보호(保護)하고, 대열(隊列)도 촘촘하여 압도적(壓倒的)인 힘이 없으면 정면(正面)에서 뚫는 것은 힘들었다.

흔히 알려진 편견(偏見)과 달리 유럽은 서로마의 멸망(滅亡) 이후(以後)에도 한동안 방패벽(防牌壁) 전술(戰術)이 자리 잡았고, 기병(起兵)이 주력(主力)이 되었던 중세(中世)-근세(近世)때도 방패벽(防牌壁) 자체(自體)는 이어져서 바겐부르크 까지 응용(應用)되며 이어졌다.

다만, 방패벽(防牌壁)을 이루면 공통적(共通的)으로 대열(隊列)이 너무 촘촘하여 이동속도(移動速度)가 평상시(平常時)보다 매우 느려져 기동력(機動力)이 떨어졌고, 또 대개(大槪) 대열(隊列)을 구성(構成)하다보면 정면부(正面富)나 왼쪽 측면(側面)에서는 방패(防牌)가 촘촘하지만, 무기(武器)를 쥔 오른쪽이나, 후방(後方)은 방패(防牌)로 보호(保護)되지 않아 투사무기(透寫武器)의 공격(攻擊)에 취약(脆弱)한 면모(面貌)도 보였다. 레카이움 전투(戰鬪) 에서는 아테네 경보병(警報兵)들이 방패(防牌)를 든 스파르타 중보병(重步兵)들을 그렇게 패배(敗北)시키기도(祈禱) 하였다. 물론(勿論) 지휘관(指揮官)이 포진(布陣)을 잘 짰거나, 원진(圓陣)을 짤 경우(境遇) 후방(後方)이나 측면(側面)은 보호(保護)되었고, 또 대열(隊列)이 워낙 촘촘하다보니 기마병(騎馬兵)의 돌격(突擊)으로부터도 강(剛)하게 저항(抵抗)할 수 있었다.

진짜(眞짜) 약점(弱點)은 도리어 장창(長槍)을 든 보병(步兵)을 상대(相對)할 때인데, 투사무기(透寫武器)에는 잘 저항(抵抗)해도, 정면(正面)에서 창병(瘡病) 여럿이 거리의 이점(點)을 두면서 장창(杖瘡)으로 찌르는 것에는 취약(脆弱)하였다. 헬레니즘 시대(時代)에는 단창인(短槍人) 도리(道理)와 큰 방패(防牌)를 든 호(好)플리(理)테스가 이런 이유(理由)로 보조병력(補助兵力)으로 전락(轉落)하고 사리사(舍利史)를 든 마케도니아식(式) 팔랑크스가 보병(步兵) 주력(主力)이 되었고, 고대(古代) 로마시대(時代)에도 비록 로마군(軍)이 승리(勝利)하기는 했지만 큰방패를 든 로마군(軍)은 장창(長槍)을 든 마케도니아군을 상대(相對)로 정면(正面)에서는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세(中世)말~르네상스 초기(初期)의 유럽에서도 같은 이유(理由)로 방패(防牌)를 든 병과(兵科)가 폐지(廢止)되고 창병(槍兵)과 총병(總兵)으로 대체(代替)되었다.

동아시아(東아시아)에서도 오래전(前)부터 방패(防牌)를 든 보병(步兵)이 방패벽(防牌壁)을 이뤄 싸웠는데,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모순(矛盾)일화(化)에서부터 방패(防牌)와 창(槍)을 든 보병(步兵)에 대(對)한 흔적(痕跡)은 여럿이 보이고 한국(韓國)에서도 안악(安岳)3호분(號墳) 행렬도(行列圖)에서 방패(防牌)와 창(槍) 혹은(或은) 검(劍)을 쥔 병사(兵士)들이 눈에 띈다. 특이(特異)하게도 비슷한시(時期)기 유럽에서는 방패(防牌)를 든 보병(步兵)이 폐지(廢止)되는 양상(樣相)이었지만, 명나라(明나라) 때에 중국(中國) 장수(將帥) 척계광 이 고안(考案)해낸 12명(名)의 분대전술(分臺戰術)인 원앙진(鴛鴦陣) 은 방패(防牌)가 없으면 성립(成立)되지 않는 전술(戰術)이었고, 이후(以後)에도 창병(瘡病)이나 아군(我軍) 보호(保護)를 위해 방패(防牌)를 든 병사(兵士)가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이는 당시(當時) 척계광이 상대(相對)한 적(敵)이 남중국(南中國)을 약탈(掠奪)하던 왜구(倭寇)로, 대규모(大規模) 회전(回戰)보다는 수십(數十)~수백단위(數百單位) 소규모(小規模) 보병전(步兵展) 위주(爲主)고 화포(火砲)와 기병(騎兵) 등(等)이 적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방패수(防牌數)의 역할(役割)은 방패(防牌)로 막을 뿐만 아니라 방패(防牌)로 밀쳐서 후방(後方)의 창병(槍兵)이 찌르기 쉽게 돕는 소위(所謂) 넉백까지 담당(擔當)했다. 조선(朝鮮)의 방패(防牌) 전술(戰術)들은 팽배(澎湃)수 등패(藤牌) 항목(項目) 참조(參照).

현대(現代)에는 시위대(示威隊)와 격돌(激突)할때 방패벽(防牌壁)을 사용(使用)하곤 한다.

5. 형태(形態) [편집(編輯)]

5.1. 손잡이의 위치(位置) [편집(編輯)]

히터 실드
엔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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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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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그립과 엔암스를 겸하는 형태(形態).

크게 중앙(中央)에 손잡이가 달린 센터 그립(Center Grip)방식(方式)과 엔암스(Enarmes) 혹은(或은) 스트랩(Strap)방식(方式)이 있다. 센터 그립은 문자(文字) 그대로 방패(防牌) 정중앙(正中央)에 딸랑 손잡이 하나가 달린 방식(方式)이고, 엔암스는 방패(防牌) 가장자리에 손잡이가 있고, 팔목을 잡아주는 띠가 있는 형태(形態)다. 고대(古代) 그리스의 호(號)플리(理)테스나, 중세(中世)의 카이트 실드 , 히터 실드 등(等)은 엔암스 방식(方式)의 손잡이를 취(取)하고 있고, 로마의 스쿠툼 이나, 바이킹의 방패(防牌), 중세(中世)의 버클러 는 모두 센터그립형(型)이다. 센터그립형(型) 방패(防牌)에는 손잡이 부분(部分)을 더 돌출(突出)되고, 덧대어 강화(强化)한 Boss라는 부위(部位)가 있는 경우(境遇)가 많다. 물론(勿論) 엔암스 방식(方式)에도 보스가 달린 경우(境遇)가 많았으나, 장식적(裝飾的)인 역할(役割)이거나, 나중에 사라지기도 하였다.

방패(防牌)의 손잡이 모양(模樣)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莫論)하고 센터그립과 엔암스가 거의 항상(恒常) 병행(竝行) 공존(共存)하였는데, 각각(各各) 장단점(長短點)이 있다. [18]

우선(于先), 센터 그립 은 팔을 뻗는 것에 중점(重點)을 둔 방패(防牌)다. 방패(防牌)를 쥔 손이 방패(防牌)의 정중앙(正中央)에 있어서 상대(相對)의 무기(武器)로부터 손이 확실(確實)하게 보호(保護)되고, 손잡이가 중앙(中央)에 있기 때문에 방패(防牌)로 공격(攻擊)하면, 엔암스보다 먼거리에서 모서리로 상대방(相對方)을 때리기가 수월하다. 방패(防牌)로 상대(相對)를 가격(加擊)할 때 방호면적(防護面積)이 줄어들어 빈틈이 생기지만, 빈틈이 그리 크지는 않다. 손잡이가 하나이기 때문에 손목과 팔꿈치까지 방패(防牌)에 메여있는 엔암스 방식(方式) 보다 더 다양한 각도(角度)로 더 자유(自由)롭게 움직이며 공격(攻擊)과 방어(防禦)를 할 수 있고, 특히(特히) 다방면(多方面)에서 날라오는 화살이나 투사무기(透寫武器)를 막을 때 이점(利點)이 두드러진다. 더불어 엔암스 방식(方式)에 비해 방패(防牌)가 상체(上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투창(投槍)이나 화살이 방패(防牌)를 꿰뚫더라도 바로 부상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근접전(近接戰)에서도 팔을 뻗는 방어(防禦)는 빛을 보는데, 특히(特히) 버클러가 근접전(近接戰)에서의 센터 그립의 특성(特性)을 최대한(最大限) 살리는 방패(防牌). 센터 그립 구조(構造) 상(上) 정권(政權)을 치듯 팔을 쭉 뻗어 상대방(相對方)에게 방패(防牌)를 들이댈 수 있고, 그러면 상대(相對)의 관점(觀點)에서는 원근감(遠近感)의 차이(差異) 및 기하학적(幾何學的)으로 방패(防牌)가 가리는(방해하는) 면적(面積)이 크게 된다.

단점(短點)으로는 첫째, 상대(相對)가 방패(防牌) 가장자리를 타격(打擊)하면 특히(特히) 둥글고 평평(平平)한 방패(防牌)는 뒤집혀져서 빈틈이 노출(露出)된다. 그중(그中) 안쪽으로 뒤집혀서 바깥쪽인 사각(死角) 즉(卽) 신체(身體)의 뒷면(뒷面)이 노출(露出)될 위험(危險)이 크다. 둘째로, 상대(相對)가 방패(防牌) 가장자리를 잡고 비틀면 특히(特히) 크기가 작은 버클러 의 경우(境遇) 방패(防牌)손잡이를 계속(繼續) 쥐고 있으면 손목이 꺾이면서 빈틈이 노출(露出)되거나, 꺾이지 않으려고 손을 놓다가 방패(防牌)를 놓칠 수 있다. 셋째, 오로지 손으로만 쥐기 때문에 팔을 움추리고 방패(防牌)를 몸에 기대어도, 손목이나 손에 피로(疲勞)가 많이가고 오래 들고있기 불편(不便)하며, 그 때문에 방패(防牌)의 크기나 무게 또한 더 무겁게 만들기 힘들다.

엔암스 는 팔을 당기는 것에 중점(重點)을 둔 방패(防牌)다. 팔꿈치와 손 일체(一切)가 방패(防牌)에 메어있어 일단(一旦) 팔만 오므려도 상반신(上半身) 전체(全體)를 이용(利用)하여 방패(防牌)를 지탱(支撐)하기 때문에 손과 팔의 피로감(疲勞感)이 훨씬 덜하다. 덕택(德澤)에 센터그립보다 더 무겁고 큰 방패(防牌)를 들 수있다. 게다가 손으로만 지탱(支撐)하는 센터그립형(型)과 달리 팔 전체(全體)로 방패(防牌)를 지탱(支撐)하기 때문에 상대(相對)의 타격(打擊)에 방패(防牌)가 뒤집힌다거나, 방패(防牌)를 잡고 돌린다고 해도 센터그립형(兄)처럼 쉽게 손목이나 팔이 꺾이지는 않고, 꺾인다고 해도 보다 많은 근육(筋肉)과 관절(關節)이 개입(介入)하기 때문에 저항(抵抗)하기가 더 쉽다.

반대(反對)로 손이 방패(防牌) 가장자리에 있어 센터그립형(型)보다 방패(防牌)를 쥔 손이 다칠 위험(危險)이 크고, 방패(防牌)로 상대(相對)를 가격(加擊)할 때에도 모서리와 방패(防牌)를 쥔 손의 위치(位置)가 그리 멀지 않아, 센터그립처럼 거리의 이점(利點)을 살리면서 때리거나 면(面)을 밀어붙이기 힘들다. 게다가 손으로만 잡는 센터그립과 달리 다양한 각도(角度)로 방패(防牌)를 움직이기 힘들다. 더불어 방패(防牌)를 상체(上體)와 가까이 쥐는데다 손목을 이용(利用)해 방패(防牌)를 같이 쥐기 때문에, 화살이나 투창(投槍)이 방패(防牌)를 꿰뚫을 경우(境遇) 팔과 함께 상체(上體)가 다칠 위험(危險)이 비교적(比較的) 더 크다.

5.2. 재질(材質) [편집(編輯)]

냉병기(冷病機) 시대(時代)에 사용(使用)된 방패(防牌)의 재질(材質)은 주로(主로) 나무였다. 로마군(軍)은 목재조직(木材組織)을 얇게 핀 다음, 가로와 세로로 겹치어 마치 오늘날의 합판(合板)처럼 방패(防牌)를 만들었고, 바이킹은 잘 쪼개지지 않는 참나무속으로 방패(防牌)를 만들기도 하였다. 널빤지를 나란히 놓고 접합(接合)하는 형태(形態)의 경우(境遇), 널빤지 모서리끼리 접(接)하는 각도(角度)가 취약(脆弱)하기 때문에 (뻔히 보이는 이 선(線)을 노리고 후려치면 방패(防牌)가 접히거나 칼이 깊게 박힌다) 널빤지 판(板)을 두 겹 90도(度)로 교차(交叉)하게 겹쳐서 내구성(耐久性)을 보강(補强)했다. 또한 방패(防牌) 겉면(겉面)에 색(色)을 칠(漆)해서 널빤지 경계선(境界線)이 안 보이게 하거나, 널빤지의 각도(角度)와 어긋나는 선(線)을 그어서 상대방(相對方)이 널빤지의 취약점(脆弱點)을 보고 노리기 어렵게 궁리(窮理)했다.

나무 방패(防牌)에는 보통(普通) 방패(防牌) 표면(表面)에 가죽을 덮거나, 손잡이 부분(部分)에 쇠징 모양(模樣)의 보스(boss)를 달거나, 테두리에 질긴 가죽이나 금속(金屬)을 보강(補强)해서 썼다. 가죽을 덮어 보강(補强)한 방패(防牌)는 나무만으로 이루어진 방패(防牌)보다 성능(性能)이 더 뛰어났는데, 나무 방패(防牌)가 단방(單放)에 작살나는 공격(攻擊)을 가죽까지 덮은 방패(防牌)는 탄성(歎聲)있게 튕겨낼 수 있었다. 이는 구조(構造)가 2~3중(中)으로 되어 있는 방탄(防彈) 유리(琉璃) 와 비슷한 원리(原理)다. 내구력(耐久力)이 떨어지는 방패(防牌)는 격렬(激烈)한 전투(戰鬪) 후(後)에는 파괴(破壞)되어서 교체(交替)하였지만, 잘 만들면 여러차례(次例) 거듭 쓸 수도 있었다. 테두리에 금속(金屬)을 다는 경우(境遇)는 방패(防牌) 모서리를 치는 것에 대단히 강(强)한 면모(面貌)를 보이지만, 나무나 가죽일 상대(相對)의 칼이 방패(防牌)에 박혀서 뽑기 어렵게 되므로 이걸로 상대(相對) 무기(武器)를 잡아채는 기술(技術)로 쓸 수도 있으므로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

사하라 이남(以南)의 아프리카 지역(地域)에서는 나무가지로 틀을 짠 다음 코뿔소 가죽 같은 튼튼하고 질긴 동물(動物) 가죽 을 당겨붙여 만든 방패(防牌)-흔히 우리가 아프리카 토착민(土着民)들 하면 생각나는 위아래가 뾰족한 타원형(楕圓形) 방패(防牌)를 사용(使用)했는데, 가죽의 탄력(彈力) 때문에 화살이나 둔기(鈍器)는 물론(勿論) 화승총(火繩銃)까지 튕겨낼 정도(程度)로 방어력(防禦力)이 좋았고 가죽제(製)라 무게도 크기에 비해 가벼웠다. 큰 짐승 가죽을 넓게 벗겨 땅에 고정(固定)하고 나뭇재와 진흙과 햇빛으로 가공(加工)한 뒤 [19] 나무 심재(心材)를 깎아 만든 틀에 씌워 가죽끈으로 묶은 간단(簡單)한 형태(形態)지만 이들은 이걸 들고 사자(獅子)도 잡곤 했다.

금속(金屬) 을 사용(使用)하면 보다 높은 방어효과(防禦效果)를 얻을 수 있겠지만 정작 냉병기(冷病機) 시대(時代)에 금속(金屬) 재질(材質) 방패(防牌)가 사용(使用)되는 경우(境遇)는 그리 흔치 않았다. 일단(一旦) 금속(金屬) 방패(防牌)는 무게때문에 다루기 힘들고 사용자(使用者)가 쉽게 지치는 것이 가장 큰 문제(問題)였다. 특히(特히) 전신(全身)으로 무게를 감당(堪當)할 수 있는 갑옷(甲옷)과는 달리 한 팔로 무게를 버티고 다뤄야 하는 방패(防牌)의 경우(境遇) 무게 증가(增加)는 큰 단점(短點)이었던 것. 게다가 금속(金屬)의 경우(境遇) 나무나 가죽등(等) 다른 소재(素材)보다 가격(價格)이 비싼 경우(境遇)가 많다는 소소(小小)한 문제(問題)도 있었다. 반면(反面) 방어력(防禦力)의 경우(境遇), 방패(防牌)는 어차피(於此彼) 상당(相當)한 두께가 있는 구조물(構造物)이므로 나무나 가죽, 섬유등(纖維等)의 소재(素材)를 사용(使用)하더라도 근력(筋力)에 의존(依存)하는 도검(刀劍)이나 화살등(等)의 냉병기(冷病期)로는 쉽게 관통(貫通)하거나 파괴(破壞)하기 힘든 내구력(耐久力)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점(點)은 당장(當場) 주변(周邊)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목재(木材) 가구(家具) 따위의 나무판도(版圖) 완력(腕力)을 이용(利用)해 휘두르는 도구(道具)는 그리 쉽게 부술 수 없다는 점(點)에서도 쉽게 확인(確認)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순금속제(純金屬第) 방패(防牌)의 대표적(代表的)인 사례(事例)로 손꼽을만한 것은 버클러 정도(程度)인데 이는 딱 냄비 뚜껑만한 크기의 소형(小型) 방패(防牌)로 주무장(州武裝)이기보다는 보조(補助) 무장(武裝), 전쟁터(戰爭터)에서보다는 평상시(平常時)의 호신용(護身用)으로 더 자주 쓰이는 물건(物件)이었다. 그 외(外)에는 고대(古代) 그리스 에서 대형(大型) 청동(靑銅) 방패(防牌)를 사용(使用)했으나 이 역시(亦是) 시대(時代)가 뒤로 갈수록 소형화되는것과 함께 주(週) 재질(材質) 역시(亦是) 청동제(靑銅製) 테를 둘러 보강(補强)한 나무로 변모(變貌)하였고, 르네상스 시대(時代) 유럽이나 오스만 투르크, 한국(韓國)의 삼국시대등(三國時代等)에도 종종(種種) 완전(完全)한 금속제(金屬製) 방패(防牌)가 발견(發見)되기는 하나 역시(亦是) 주로(主로) 사용(使用)되는 수준(水準)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보다는 나무 등(等) 다른 재질(材質)을 금속(金屬) 테나 심으로 보강(補强)한 방패(防牌)가 더 널리 애용(愛用)된 것.

현대(現代)의 진압(鎭壓) 방패(防牌) 폴리카보네이트 로 만든다.

발사(發射) 혹은(或은) 투사(透寫) 무기(武器)를 방어(防禦)할 때는 큰 면(面)으로 막아내나, 근접(近接) 무기(武器)를 막을 때는 방패(防牌)의 끝으로 막는 것이 일반적(一般的)이라서 나무나 가죽 방패(防牌)에 끄트머리 부분(部分)을 금속(金屬)으로 덧대어 방어력(防禦力)을 향상(向上)시킨 방패(防牌)도 많다. 실력(實力)만 좋으면 작은 방패(防牌)를 들고서도 상대(相對)의 공격(攻擊)을 잘 막아낼 수가 있다.

5.3. 그림 및 장식(裝飾) [편집(編輯)]

서양(西洋)에서는 방패(防牌)에 가문(家門)의 문장(文章) 같은 것을 새겨 자신(自身)을 나타내는 경우(境遇)가 꽤 있었다. 혹은(或은) 방패(防牌)에 주술적(呪術的)인 문양(文樣)이나 상징(象徵)을 그려 넣어 병사(兵士)들의 사기(士氣)를 진작(振作)시키도 했으며, 때로는 무서운 모습의 괴물(怪物)이나 맹수(猛獸) 등(等)을 그려 넣어서 적(敵)이 공포(恐怖)를 느끼게 하는 경우(境遇)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神話) 에서 여신(女神) 아테나 가 자신(自身)의 방패(防牌) 아이기스 메두사 머리를 단 것은 오래된 예(例)라고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는 어릴 때 아버지 친구(親舊)의 부탁(付託)으로 나무 방패(防牌)에 무서운 괴물(怪物)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 괴물(怪物)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고어 물을 찍은 것으로 유명(有名)하다. 말 그대로 온갖 동물(動物)을 도축(屠畜)해가며 최대한(最大限) 잔인(殘忍)하게 그렸다 하는데, 현실적(現實的)인 인물화(人物化)를 그리기 위해 시체(屍體) 해부도(解剖刀) 마다하지 않은 그의 열정(熱情)을 표현(表現)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설(說)도 있다. 괴물(怪物) 그림이 아니라 메두사의 머리를 그리기 위해서 뱀 수십(數十)마리를 가져다놓고 관찰(觀察)하면서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餘談)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입장(立場)에서는 방패(防牌)를 든 캐릭터를 그리면 편(便)하다. 그리기 어려운 부위(部位)를 방패(防牌)로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特히) 대형(大型) 카이트 실드 정도(程度) 되면 거의 머리 와 발 정도(程度)만 그려도 되므로 거저먹는 수준(水準)이 된다. 방패(防牌) 표면(表面)에 복잡(複雜)한 문양(文樣)이 그려져 있더라도 사실(事實) 그냥 기존(旣存)에 그려 둔 방패(防牌)에서 복붙(複붙)해버리면 끝나기 때문에 방패(防牌)의 디자인이 난이도(難易度)에 영향(影響)을 거의 주지 않는다. [20] 하지만 방패(防牌)를 드는 자세(姿勢) 등(等)도 잘 고려(考慮)해야 하는데, 어떻게 방패(防牌)를 드는지 생각해서 위치(位置)를 잡아야지 대충 사용자(使用者)를 방패(防牌)로 아무렇게나 덮어버리면 심히(甚히) 어색(語塞)하고 맥(脈)빠지는 모양새(模樣새)가 나올 수 있다.

6. 종류(種類) [편집(編輯)]

6.1. 과거(過去) [편집(編輯)]

6.2. 현대(現代) [편집(編輯)]

7. 관련(關聯) 어록(語錄) [편집(編輯)]

이것은 나의 방패(防牌),
전투(戰鬪)에 나설 때면 방패(防牌)를 드네.
하지만 방패(防牌)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네.
방패(防牌)는 곁에 있는 나의 형제(兄弟)를 지키네.
방패(防牌)는 내가 사는 도시(都市)를 지키네.
절대(絶對) 나의 형제(兄弟)가 방패(防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고,
내가 사는 도시(都市)가 방패(防牌)의 보호(保護)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리.
나는 내 앞에 놓인 방패(防牌)와 함께 죽으리.
적(敵)과 맞서 싸우며.

스티븐 프레스필드(S.Pressfield), "방패(防牌)의 원칙(原則)"(Law of the Shield)
H ταν ? επ? τα?(방패(防牌)를 들고 돌아오거나, 방패(防牌)에 얹혀 돌아오너라) [22]

플루타르코스 , 모랄리아 241 “ 스파르타 어머니의 말들”

8. 언어별(言語別) 명칭(名稱) [편집(編輯)]

언어별(言語別) 명칭(名稱)
Shield
방패(防牌)
盾牌 ( dunpai )
( dun )
( たて )
? ( khien )
?? ( ch?n )
( thu?n )
Щит
Bouclier
Escudo
???

9. 상징(象徵)으로서의 방패(防牌) 문양(文樣) [편집(編輯)]

방패(防牌)의 심상(心象)이 "보호(保護)"에 있기에 그에 관련(關聯)된 경우(境遇) 상징물(象徵物)로서 삼는 경우(境遇)가 많으며, 그밖에 중세(中世) 유럽의 역사적(歷史的) 상징(象徵)으로서 관련(關聯) 매체(媒體)에서도 곧잘 등장(登場)한다.

특히(特히) 유럽에서 방패(防牌)를 가문(家門)의 문장(文章) 으로 삼은 경우(境遇)가 많았으며 이를 연구(硏究)하는 학문(學問) 이 발달(發達)하였기에, 그 영향(影響)으로 오늘날에도 구미권(口味權) 및 그 영향(影響)을 받은 국가(國家)들에서는 유서(由緖)깊은 가문(家門)은 물론(勿論)이거니와 국가(國家) 및 공공기관(公共機關)이나 도시(都市) 등(等)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 , 기업(企業) , 대학교(大學校) 등(等) 여러 단체(團體)에서 문장(文章) 혹은(或은) 방패(防牌)가 들어간 엠블럼 을 사용(使用)하기도 한다. 일례(一例)로 롯데캐슬 의 이전(移轉) 로고는 방패(防牌) 안에 독수리(禿수리)가 들어간 형태(形態)였고 지금(只今)은 독수리(禿수리)의 가슴 부분(部分)에 방패(防牌)가 있는 도안(圖案)이다.

안보(安保) 와 밀접(密接)한 법(法) 집행기관(執行機關)이나 군경조직(軍警組織)의 로고에도 많이 사용(使用)되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 이를테면 수도방위사령부(首都防衛司令部) 는 부대(部隊)마크 뿐 아니라 애칭(愛稱)도 '방패부대(防牌部隊)'다. 미국(美國)에서는 경찰(警察) 등(等) 법(法) 집행기관(執行機關) 대부분(大部分)의 로고에 방패(防牌)나 독수리(禿수리), 별 중(中) 최소한(最小限) 하나는 대부분(大部分) 등장(登場)한다.

경비업체(警備業體)부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업체(開發業體), SSL 개발업체(開發業體)까지 "보안(保安)"이라는 뜻이 있는 거의 모든 분야(分野)에 관련(關聯)한 업체(業體)들이 제품(製品) 이미지나 로고를 방패(防牌)에서 따오므로 그야말로 수많은 방패(防牌)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컴퓨터 보안(保安) 장비(裝備)나 프로그램에서는 보안(保安) 기능(機能)이 작동(作動)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아이콘으로써도 방패(防牌) 로고가 자물쇠 로고와 더불어 널리 사용(使用)된다. Firefox 에서는 TLS 적용(適用) 여부(與否)를 나타내는 아이콘이 방패(防牌) 모양(模樣)이다.

방패(防牌)가 군용(軍用)으로 쓰여온 역사(歷史)를 기반(基盤)으로 방어용(防禦用) 장비(裝備) 위주(爲主)로 개발(開發)/생산(生産)하는 방산업체(防産業體)들도 방패(防牌)를 상징(象徵)으로 쓰는 경우(境遇)가 있다. 보통(普通)은 공격적(攻擊的)인 이미지를 상징(象徵)으로 쓰지만, 좀 더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 다니엘 디펜스처럼 업체명(業體名)부터 "~DEFENCE" 등(等)으로 바꾸거나 방패(防牌)를 이미지화(化)해서 쓰는 경우(境遇)도 많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盤石)이시요 나의 요새시(要塞視)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避)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防牌視)요 나의 구원(救援)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山城)이시로다

시편(詩篇) 18:2
성경(聖經) 에선 하나님 이나 믿음 을 방패(防牌)로 비유(比喩)하기도 한다. 반면(反面) 성령(聖靈)은 방패(防牌)에 대비(對比)되는 검(劍)으로 비유(比喩)된다.

그 외(外)에도 미국(美國)과 한국(韓國)에서는 방패(防牌) 문양(文樣)을 고속도로(高速道路) 의 상징(象徵)으로 쓰며, 방패(防牌) 문양(文樣) 안에 노선번호(路線番號)를 넣는다.
  • NHL
    NHL의 메인 로고가 마치 방패(防牌)처럼 생겼기 때문. 물론(勿論) 공식적(公式的)인 내용(內容)은 아니고 하키팬들이 자율적(自律的)으로 만들어 내었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위(位) 예시(例示)들과 조금 다른 성격(性格)의 상징(象徵)이긴 하지만 중세(中世)를 배경(背景)으로 각(各) 시대별(時代別) 업그레이드 아이콘을 들 수 있겠다. 암흑시대(暗黑時代)의 라운드 실드, 봉건(封建) 시대(時代)의 카이트 실드, 성주(星州) 시대(時代)의 히트 실드에 이르기까지 실제(實際) 시대(時代)에 따른 방패(防牌)의 형태(形態) 변화(變化)를 이미지로서 사용(使用)하였다. 마지막 시대(時代)인 왕정(王政) 시대(時代)는 화려(華麗)한 상징(象徵)과 무늬들이 그려진 대형(大型) 히트 실드가 아이콘으로 사용(使用)되었다.
방패(防牌)/창작물(創作物) 문서(文書) 참조(參照)

11. 여담(餘談) [편집(編輯)]

  • 그리스어로 "? τ?ν ? ?π? τ??"(이(李) 탄 이 에피 타스)는 "방패(防牌)를 들거나 혹은(或은) 방패(防牌)에 얹혀서"라는 뜻인데, "돌아올때는 방패(防牌)를 갖고 돌아오든지 아니면 방패(防牌)에 얹혀서 돌아오거라" 라는 의미(意味)를 갖는 문장(文章)이다. 이는 옛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이 아들들을 전쟁(戰爭)에 내보낼때 해주는 말이었는데, 옛 그리스의 중장보병(步兵)(호(好)플리(理)테)들은 무거운 청동방패(靑銅防牌)를 버리지 않는 이상(以上) 전쟁터(戰爭터)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었으므로, 방패(防牌)를 갖고 집에 돌아온다는 말은 전쟁(戰爭)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즉(卽) 이겼다는 의미(意味)이다. 한편(한便) 방패(防牌)에 얹혀서 온다는 것은 물론(勿論) 시체(屍體)나 중상자(重傷者)로서 돌아온다는 뜻. 문명(文明) 6 스파르타 안건(案件) 이름으로 나오기도 했다.
  • 동(東)로마 제국(帝國) 에서는 '방패(防牌)를 탄다'라는 말이 곧 '황제(皇帝) 제위(帝位)에 오른다/도전한다'라는 뜻으로 사용(使用)되기도 했다고 한다. 반란(叛亂)을 일으킨 장군(將軍)들이 병사(兵士)들의 추대(推戴)를 받아 병사(兵士)들이 지고 있는 방패(防牌)에 타는 것으로 자신(自身)의 제위(帝位)에 대(對)한 야심(野心)을 보여준 것에서 유래(由來)한 것이라고.
[1] 다만 진압방패(鎭壓防牌)의 모서리로 시위자(示威者)를 찍는 행위(行爲)는 과거(過去)에 존재(存在)했으나 지금(只今)은 금지(禁止)돼 있다. 그 대신(代身)에 진압방패(鎭壓防牌)로 후려치는 것은 폭력(暴力)을 쓰는 시위자(示威者) 한정(限定)으론 가능(可能)하다. [2] 물론(勿論) 방호(防護)를 위하여 방패(防牌)를 능숙(能熟)하게 다룰 기술(技術)과 숙련도(熟鍊度)가 전제(前提) 조건(條件)으로 뒤따라야 하겠지만, 피격당할 부위(部位)가 그저 고스란히 노출(露出)된 상태(狀態)와 비교(比較)하면 방패(防牌)를 착용(着用)한 것만으로도 안정감(安定感)이 따른다. 단순히(單純히) 피격(被擊)에 피해(被害)를 입지 않는 걸 떠나서 피격(被擊)을 당(當)해도 적(敵)을 공격(攻擊)할 수 있단 점(點)은 상당(相當)한 이점(利點) 이라 스페인 검술(劍術)의 경우(境遇), 상대(相對)의 무기(武器)를 막을 수단(手段)으로 방패(防牌)는커녕 아무것도 집거나 두를 게 없으면 빈 손을 내놓아서라도 치명상(致命傷)을 피(避)하도록 발전(發展)했을 정도(程度)로 심리(心理)의 영역(領域)에서 상대(相對)의 공격(攻擊)을 받아낼 수단(手段)이 있는 것은 대단히 큰 이점(利點)으로 작용(作用)한다. 이 개념(槪念)이 더 발전(發展)해 아예 온몸을 판금(販禁) 갑옷(甲옷) 및 방패(防牌)와 같은 철갑(鐵甲)으로 두른 중갑기사(重甲記事)로 이어졌고, 이 개념(槪念)이 그대로 계승(繼承)된 현대병기(現代兵器)가 '탱크' 이다. 이런 개념(槪念)은 육상(陸上)에 한정(限定)되는게 아니라서 바다에서도 무시무시한 두께의 떡장갑(掌匣)을 두르고 다닌 전함(戰艦) 도 이와 같은 등식(等式)으로 만들어진 무기(武器)다. 이 개념(槪念)은 최초(最初)의 전함인(戰艦人) 드레드노트급(級) 전함(戰艦)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는데 드레드노트라는 이름은 Dread(두려움, 무서움, 겁(怯), 공포(恐怖))+Nought(없음)의 합성어(合成語)다. [3] 사실(事實) 필요(必要)하다면, 갑옷(甲옷)도 어느 정도(程度) 싼 재질(材質)로 타협(妥協)할 수도 있다. 물론(勿論) 본격적(本格的)인 철갑(鐵甲)의 방어력(防禦力)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가죽, 심지어(甚至於) 종이(한지(韓紙))를 여러 장(張) 덧댄 싸구려 갑옷(甲옷)이라도 입는 것과 안 입고 그냥 맨몸을 드러내는 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공격(攻擊)을 완벽히(完璧히) 못 막는다고 해도, 어느정도(程度) 피해(被害)를 경감(輕減)시켜 줄 수는 있기 때문. 갑옷(甲옷) 항목(項目) 참조(參照). [4] 실제로(實際로)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갑옷(甲옷)이 부족(不足)하여 국경선(國境線)의 병사(兵士)들에게 과거시험(過去試驗) 당시(當時) 썼던 한지(韓紙) 로 제작(製作)한 갑옷(甲옷)을 입히기도 했다. 실제로(實際로) 종이를 여러겹 덧대고 풀을 발라 딱딱하게 만든 갑옷(甲옷)은, 화살 정도(程度)는 거뜬히 막아낸다. [5] 중세시대(中世時代)는 '상비군(常備軍)'의 개념(槪念)이 없었으며, 왕(王)이나 영주가 돈을 주고 고용(雇用)하는 용병(傭兵)이나 휘하(麾下)의 기사(記事)들, 그리고 그들이 다루는 사병(士兵)들이 곧 '군대(軍隊)'에 가까웠다. 그래서 정부(政府) 차원(次元)에서 군대(軍隊)에 통일(統一)된 장구류(腸拘留)를 지급(支給)하는 경우(境遇)는 드물어서, 병사(兵士) 개개인(個個人)이 알아서 장구류(腸拘留)를 장만해야 했다. 따라서 급(急)하게 추가징병(追加徵兵)을 할 때는 방패(防牌)와 같은 가성비(價性比) 좋은 싼 장비(裝備)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6] 특히(特히) 방패(防牌)는 갑옷(甲옷)에 비(比)해 상대적(相對的)으로 평평(平平)하고 넓은 면적(面積)을 가지고 있어서 깃발(旗발)과 함께 전장(戰場)에서 귀족(貴族)들이 본인(本人)의 신분(身分)과 상징(象徵)을 나타내는 수단(手段)으로도 쓰였고, 이 영행(榮幸)을 받아서 대부분(大部分)의 귀족(貴族) 가문(家門) 문장(文章)이나 국장(局長)은 방패(防牌) 모양(模樣)이다. [7] 물론(勿論) 방패(防牌)는 수호의 의미(意味)가 있어서 어느 지역(地域)을 수호(守護)(통치(統治))한다는 의미(意味)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8] 창(窓)은 원래(元來) 저렇게 짧진 않았지만 발견(發見)했을 때 이미 부러져 있었다. [9] 예나 지금(只今)이나 보병(步兵)들은 가벼운게 장땡. [10] 특히(特히) 궁병(弓兵)들 그중(그中)에서도 석궁(石弓)을 들었던 병사(兵士)들이 아예 방패(防牌)를 전담(專擔)하는 병사(兵士)들과 같이 다니는 일이 많았는데 당연히(當然히) 석궁(石弓)은 발사이후(發射以後) 크렝크를 돌리는 시간덕분(時間德分)에 공격(攻擊)에 그대로 노출(露出)이되고 무거운 중갑옷(重甲옷)을 입기에도 사수(死守)라는 특징상(特徵上) 거추장스럽고 불편(不便)할수 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영국(英國)의 장궁병(臟弓兵)들과 프랑스의 석궁병(石弓兵)들은 방패를든 병사(兵士)들과 같이 다녔다고 한다. [11] 일본도(日本刀)에 목숨을 거는 창작물(創作物)의 묘사(描寫)와 달리, 사무라이는 전통적(傳統的)으로 창(槍)과 활을 대단히 중요(重要)한 무장(武裝)으로 여겼다. 사실(事實) 냉병기(冷兵器)를 든 인류(人類) 전체(全體)가 그렇다... [12] 200m에서 10mm 강판(鋼板)을 관통(貫通)하는 수준(水準)이다. 기갑장비(機甲裝備) 장갑재로 쓰이는 균질압연강(均質壓延江)은 아니고 자동차(自動車) 외판(外販)같은 연철강(年鐵鋼) 기준(基準)이다. [13] ARMA 같은 예외(例外)가 있기는 하지만, 이건 원산지(原産地)인 서구권(西歐圈) 에서도 마니악한(摩尼惡漢) 영역(領域)이라 일반인(一般人)이 접(接)할 기회(機會)는 매우 드물다. [14] 그래도 걱정된다면 공사장(工事場) 헬멧 같은 것도 함께 구비(具備)하자. [15] 몽둥이로 꼭 가격(加擊)할 필요(必要)없이, 방패(防牌)로 차근차근 밀어 붙이면서 위협(威脅) 및 대화(對話)(조용히 나갈 것)를 시도(試圖)하는 것으로도 충분(充分)하다. [16] 초창기(草創期) 탱크도 대포(大砲)나 기관총(機關銃) 이전(以前)에 적(敵)의 총탄(銃彈)을 막아주는 장갑(掌匣)이 핵심(核心)이었음을 고려(考慮)하면, 방어력(防禦力)은 곧 공격력(攻擊力)이다 [17] 로마군(軍)은 이걸 역(逆)으로 이용(利用)하여 필(筆)룸 이 방패(防牌)에 꽂히면 무거워져 방패(防牌)를 들 수 없게 만드는 전술(戰術)을 썼다. [18] 다만 현대(現代)의 방패(防牌)들은 엔암스다. 진압(鎭壓) 방패(防牌)의 경우(境遇) 화살이나 투창(投槍)을 맞을 일이 거의 전무(全無)하기 때문이며 방탄(防彈) 방패(防牌)의 경우(境遇) 무겁기도 하고 뚫리는 순간(瞬間) 차라리 팔에 맞고 끝나는 편(便)이 낫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이상(以上) 방패(防牌)를 다채롭게 활용(活用)할 일이 없다. [19] 당연히(當然히) 우기(雨期)에는 못 만든다. [20] 건담(健啖) 시리즈 에서 80년대(年代) 말(末)에 이미 빔 실드의 설정(設定)이 나왔음에도 후속작(後續作)에서 실체형(實體型) 실드를 포기(抛棄)하지 않는 이유(理由)도 이와 관련(關聯)있다. 빔 실드는 실드를 전개(展開)해도 내부(內部)가 다 비치기 때문이다. 프라모델을 팔아야하는 반다이 입장(立場)에선 투명(透明) 플라스틱으로 표현(表現)해야해서 생산비용(生産費用)이 높은데 비해 별로(別로) 인기(人氣)도 없기도 했다. [21] 사실(事實) 정확히(正確히) 말하자면 이 둘은 엄폐물(掩蔽物)에 가까운 방패(防牌)라고 할 수 있다. [22] 스파르타의 격언(格言)으로 “승리(勝利) 또는 죽음”이란 의미(意味). 스파르타군의 방패(防牌)는 무거웠기에 전장(戰場)에서 도망치기 위해서는 방패(防牌)를 버려야만 했다. 즉(卽) 살아서 방패(防牌)를 들고 오든, 패배(敗北)해서 방패(防牌)에 실리(實利)든 상관없으니 도망치지 말고 명예롭게 싸우고 돌아오라는 격언(格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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