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末期),
제나라(齊나라)
에
안영(晏嬰)
이란 유명(有名)한
재상(宰相)
이 있었다. 어느 해 안영이
초나라(楚나라)
에 사절(使節)로 파견(派遣)되었다. 초나라(楚나라) 영왕은 안영이 재능(才能)에 비해 키가 작고 외모(外貌)가 볼품없음을 비꼬아 말했다.
[1]
"자네 같은 인물(人物)을 사신(使臣)으로 보내는 걸 보면 제나라에는 인재(人材)가 없소?"
안영(晏嬰)의 키가 너무 작은 것을 비웃는 영왕의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泰然)하게 대꾸하였다.
"우리나라는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냅니다.
[2]
"
즉(卽), 초나라(楚나라)를 작은 나라라고 돌려 말한 것이었다.
얼마 있다가, 영왕은 절도죄(竊盜罪)를 저지르고 잡혀가는 제나라(齊나라)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元來) 도둑질을 잘 하오?"
안영이 말했다.
"회남(淮南)의 귤나무(橘나무)를 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죠. 잎사귀는 비슷하지만 열매의 맛은 너무나 다릅니다. 바로 물과 토양(土壤)의 차이(差異) 때문이죠. 저 사람은 제나라(齊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초나라(楚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는 것을 보니 이 나라의 풍토(風土)가 좋지 않은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