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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원
(
1985년(年)
5월(月) 19일(日)
~
2011년(年)
8월(月) 25일(日)
)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배우(俳優)
이자(利子)
가수(歌手)
이다. 본명(本名)은
정재은
이며, ‘유승민(劉承旼)’, ‘채원’이란 예명(藝名)으로 활동(活動)하기도 했다.
[1]
백제예술대학(藝術大學)
방송연예학과(放送演藝學科)를 나왔으며,
[2]
2002년(年)
KBS
드라마 《
고독(孤獨)
》에 비서(祕書) 역(役)으로 출연(出演)하면서 연기(演技) 활동(活動)을 시작(始作)했다. 2009년(年) 그라비아 화보(畫報)를 발표(發表)하였고, 2010년(年)에는 디지털 싱글을 발매(發賣)하며 가수(歌手)로 변신(變身)을 시도(試圖)했으나 주목(注目)을 받지 못하였다. 2011년(年) 8월(月) 서울 자택(自宅)에서 목을 매 자살(自殺)하였다. 향년(享年) 26세(歲)
1985년(年) 5월(月) 19일(日)
경상남도(慶尙南道)
진해시(현(現)
창원시(昌原市)
진해구(鎭海區)
)
경화동
에서 태어났다.
[3]
어린 시절(時節)부터 음악(音樂), 미술(美術), 문학(文學) 등(等) 다양한 부문(部門)에서 재능(才能)을 보여, 초등학교(初等學校)와 중학교(中學校) 시절(時節) 피아노 콩쿠르, 성악(聲樂) 경연대회(競演大會), 글짓기 및 미술(美術) 대회(大會) 등(等) 각종(各種) 대회(大會)에 나가 입상(入賞)하였다.
[4]
학창시절(學窓時節) 음악(音樂)을 공부(工夫)하며 지휘자(指揮者)나 음대교수(音大敎授), 성악가(聲樂家) 등(等)을 꿈꿨으나 고등학교(高等學校) 3학년(學年)때 우연히(偶然히) 교내(校內) 연극반(演劇班) 공연(公演)을 보고 연기자(演技者)로 진로(進路)를 수정(修正)하였다. 고등학교(高等學校) 졸업(卒業) 무렵부터 약(約) 2년간(年間) 케이블 티브이 VJ로 활동(活動)하였고, 2002년(年)에는 미스 강원(講院) 동계(冬季)올림픽으로 선발(選拔)되었다.
[1]
[4]
2002년(年) KBS 드라마 《
고독(孤獨)
》에서 비서(祕書) 역할(役割)을 맡으며 연기(演技) 활동(活動)을 시작(始作)했으며, 2003년(年) 5월(月) MBC 시트콤 《
논스톱3
》에
최민용
을 짝사랑하는 후배(後輩) 역(役)으로 출연(出演)하기도 하였다.
[4]
이후(以後) 소속사(所屬社)가 문(門)을 닫는 바람에 방황(彷徨)하며 3년여간(年餘間) 혼자서 가수(歌手)가 되려고 노력(努力)하기도 했으나 실패(失敗)하였다.
[4]
2009년(年) ‘망상촬영(妄想撮影)’을 이용(利用)한 그라비아 화보(畫報)를 발표(發表)하였고,
[5]
2010년(年)에는 디지털 싱글 앨범 《Ma! Boy?》를 발표(發表)하며 가수(歌手)로 변신(變身)을 시도(試圖)했으나 주목(注目)을 받지 못하였다.
[6]
2011년(年) 8월(月) 25일(日) 오전(午前) 서울 연희동 자택(自宅)에서 목을 매 숨진채 발견(發見)되었다. 그의 죽음은 한 달 이상(以上)이 지난 10월(月) 8일(日)에야 언론(言論)을 통해 세상(世上)에 알려졌다.
[7]
언론(言論)은 경찰(警察)의 말을 인용(引用) 한채원이 2007년(年)부터 우울증(憂鬱症)으로 약물치료(藥물治療)를 받아왔다고 전(傳)했다.
[6]
경찰(警察)은 “오랫동안 방송(放送) 출연(出演) 기회(機會)가 없던 한씨(韓氏)가 대중(大衆)의 주목(注目)을 받지 못하자 스트레스로 우울증(憂鬱症)을 겪은 것으로 조사(調査)됐다.”며 “그의 일기장(日記帳)에는 ‘죽고 싶다’는 문구(文句)가 많았다.”고 말했다.
[7]
한편(한便), 한 연예계(演藝界) 관계자(關係者)는 “한씨(韓氏)가 연(連)이어 캐스팅에 실패(失敗)한 뒤 몇몇 사람으로부터 특정(特定) 작품(作品)에 배역(配役)을 따줄 테니 투자비(投資費)를 가져오라는 제의(提議)를 받은 것으로 안다. 심지어(甚至於) 8,000만(萬)원의 거액(巨額)을 요구(要求) 받기도 했다.”고 전(傳)했다.
[8]
한채원의 한 지인(知人)은 그녀(그女)가 연예계(演藝界) 관계자(關係者)들에게 사기(詐欺)를 많이 당(當)해 힘들어 했다며, 죽기 한 달 전(前)쯤에도 전화(電話)가 와 ‘세상(世上)에 더 믿을 게 없다.’라며 울었다고 밝혔다.
[9]
한채원은 7월(月) 18일(日) 자신(自身)의 미니홈피에 “정말(正말) 노코멘트하고 싶지만... 이제 그만 아프고 그만 울고 싶어. 세상(世上)에선 돈보다 중요(重要)한 건 많아. 내가 성공(成功)하면 모든 건 해결(解決)되지만... 참...”이라는 글을 남긴 바 있다.
[10]
한국일보(韓國日報)
는 한채원이 화보(畫報) 촬영(撮影), 가수(歌手) 데뷔까지 하는 등(等) 끊임없는 변화(變化)를 시도(試圖)했고, 이름도 세 번(番)이나 바꿨지만 결국(結局) 대중(大衆)의 관심(關心)을 받지 못한 채 무대(舞臺)에서 사라졌다고 평(評)했다.
[8]
출연(出演) 작품(作品)
[
편집(編輯)
]
- 2010년(年) 《Ma! Boy?》 (디지털 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