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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週) (행정(行政) 구역(區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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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週) (州) 또는 속주(屬州) (屬州)는 지방(脂肪) 행정(行政) 구역(區域) 의 일종(一種)이다.

동양(東洋) [ 편집(編輯) ]

유래(由來) [ 편집(編輯) ]

동양(東洋)에서 주는 전설적(傳說的)으로 하(下) 우왕(禑王) (禹王)이(李) 전국(全國)에 설치(設置)했다는 9개(個)의 주(週) 에서 유래(由來)했다.

서경(書經) 》에 따르면, 그 9개(個) 주(州)는 익주 (冀州)? 연주(連奏) (?州)? 청주(淸州) (?州)? 서주(西周) (徐州)? 예주(醴酒) (豫州)? 형주 (荊州)? 양주(洋酒) (揚州)? 옹주(翁主) (雍州)? 양주(洋酒) (梁州)이다. 단(單) 《 주례(主禮) 》 등(等)의 기록(記錄)에 따라 다른 이름이 전(傳)한다.

중국(中國) [ 편집(編輯) ]

확실(確實)한 것은 주나라(周나라) 때에 전국(全國)의 2500여개(餘個)의 마을을 州라고 부른데서 유래(由來)한다고 한다.

후한(後漢) 시대(時代)에 군현제(郡縣制) 에 따른 전국(全國)의 행정체계(行政體系)를 주(州), 군(郡), 현(縣)의 3단계(段階)로 나누면서 전국(全國)을 13주(週) 로 나눠 자사(自社)(刺史)를 파견(派遣)했다. 위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를 거쳐 주(州)의 수(數)가 증가(增加)해 수나라(隋나라) 시대(時代)에 전국(全國)의 주(州)가 241개(個)에 이르렀고 규모(規模)도 군(軍)과 별(別) 차이(差異)가 없었기 때문에 수양제(隋煬帝) 는 군(君)을 폐지(廢止)하고 주(州)와 현(縣)의 2로만 운용(運用)했다. 당나라시대(唐나라時代)에 주(州) 위에 가 설치(設置)되어 다시 3급제(及第)로 이루어졌다. 977년(年)에 북송(北送) 태조(太祖) 는 주(株)를 중앙직할(中央直轄)로 운용(運用)하게 했다. 당대(當代)에 주는 300곳, 북송시대(北宋時代)에 250개(個)였다. 명대(名臺)에 200곳까지 줄었다가 청나라(淸나라) 말(末)에 226주(州)가 있었다. 주(州) 제도(制度)는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의 성립(成立) 후(後) 폐지(廢止)되었고 이후(以後) 광저우 , 항저우 등(等), 도시(都市) 이름에 들어가는 명칭(名稱)으로 남아 있고 몇 소수민족(少數民族) 자치체(自治體)에 "자치주(自治州)"라는 명칭(名稱)이 들어 있기는 하다. 당초(當初)에 지금(只今)의 성(性) 정도(程度)의 위상(位相)을 지니고 있던 주(州)는, 굳이 현행(現行) 중국(中國)의 행정법(行政法)에 따르면, 지급시(支給時) 등(等)의 지급행정구(支給行政區) 정도(程度)의 위치(位置)에 속(屬)한다.

한국(韓國) [ 편집(編輯) ]

한국(韓國)에서 주는 249년(年) 신라(新羅) 첨(諂)해 이사금(尼斯今) 대(臺)에 사벌국(沙伐國) 을 정벌(征伐)해 그 고지(高地)에 사벌주(沙伐州) 를 설치(設置)한 데서 기인(起因)한다. 백제와 고구려(高句麗)는 주(株)를 설치(設置)한 기사(記事)는 없지만, 같은 성질(性質)의 행정체제(行政體制)로 각각(各各) 5방(放)(方), 5부(部) 제가 있었다. 이시기(時期)의 주는 행정구역(行政區域)이라기보다는 동(東)로마 제국(帝國) 군관구제(軍管區制) (軍管區制, Thema)와 같은 성질(性質)의 것으로 지방군단(地方群團)인 정(情) (停)과 일체(一切)(一體)였다. 초기(初期)에 주는 사벌주(沙伐州) 한 곳이었고, 전국적(全國的)인 주의(注意) 설치(設置)는 이루어지지 않아 나머지는 군(郡)과 현(縣)만 있었던 듯하다. 505년(年) 실직주(悉直州) 의 설치(設置)를 시작(始作)으로 주의(注意) 증치(增置)가 이루어지기 시작(始作)해 실직주(悉直州)가. 비열(卑劣)홀주(主), 달홀주(週), 등(等)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동해안(東海岸) 일대(一帶)를 떠돌다가 최종적(最終的)으로 하슬라에 정착(定着)해 하서주(河西州) 가 되었고, 한강(漢江) 유역(流域)에서 백제가 고구려(高句麗)로부터 탈환(奪還)한 영역(領域)을 신라(新羅)가 탈취(奪取)해 설치(設置)한 신주(新株)(新州)도 북한산주, 남천주 등(等)으로 계속(繼續) 한강(漢江) 일대(一帶)를 떠돌다 최종적(最終的)으로 한산주(漢山州) 가 되었다. 그외(外) 창녕(昌寧) 일대(一帶)에 있던 완산주(完山州)(完山州:통일후(統一後)의 완산주(完山州) 와는 다른 곳이다.)는 백제군(百濟軍)의 침공(侵攻)으로 압량(壓良)까지 쫓겨났다가 통일후(統一後) 합천(陜川)에 정착(定着)해 대야주가 된 뒤 통일후(統一後) 강주(講主) 가 되었고 최초(最初)의 주인(主人) 사벌주도(沙伐州度) 일시(一時) 김천(金泉)으로 이전(移轉)해 감문주(甘文州), 다시 구미(龜尾)의 일선주(日船主)를 거쳐 통일후(統一後) 도로(道路) 상주(尙州)로 이전(移轉)해 상주(尙州)(尙州)가 되기도 하는 등(等) 통일시기(統一時機)까지 증치(增置)와 이전(移轉)이 거듭되었다.신라는 통일(統一) 전(前)인 544년(年)에서 685년(年)까지 중앙(中央)인 서라벌(徐羅伐)에 대당(臺當)(大幢)과 별도(別途)로 전국(全國)의 6주정(酒酊)을 두었는데 사벌주(沙伐州)에 상주정(上州停)(上州停), 한산주(漢山州)에 신주정(新州停)(新州停,또는 南川停), 비열(卑劣)홀 주가(株價) 이동(移動)해 온 춘천(春川)의 우수정(牛首停)(牛首停), 실직주(悉直州)의 실직정(悉直停)(悉直停 또는 河西停), 창녕(昌寧) 완산주(完山州)의 하주정(下州停)(下州停)이(李) 그것이었다.

신라(新羅)가 고구려(高句麗)와 백제를 멸(滅)하고 당나라(唐나라)를 쫓아내 삼국통일(三國統一)을 완수(完遂)한 뒤에 다시 주의(注意) 정비(整備)및 증치(增置)가 이루어졌고 이 무렵부터 주(晝)와 정(情)(停)은 분리(分離)되어 주는 군(軍)(郡)을 통할(統轄)하는 지금(只今)의 도(道)(道)와 같은 광역행정구역(廣域行政區域)이 되었다. 이후(以後)에 익히 알려진 신라(新羅)의 9주(州) 5소경(小京) 체제(體制)가 이루어졌고 선덕왕 대(臺)에 준주(樽酒)(準州)성격(性格)의 패강진 이 평양(平壤)에 설치(設置)되기도 해 사실상(事實上) 10주체제(駐體制)가 이루어졌다. 주의(注意) 성격(性格)이 변(變)하자 장관(長官)도 군사령관(軍司令官)인 군주(君主)(軍主)에서 661년(年) 문무왕 1년(年)에 총관(摠管)(摠管), 785년(年) 원성왕 1년(年)에 도독(都督)(都督)으로 바뀌어갔다. 도독(都督)은 급찬(級飡)(級飡:9관(棺)위)에서 이찬(伊飡)(伊飡:2관(棺)위)사이의 중앙정부관리(中央政府管理)가 파견(派遣)되었고 밑에 주조(州助) ·주보(週報)(州補)나 장사(長史) 또는 사마(司馬)등(等)의 관리(管理)를 부리면서 행정권(行政權), 사법권(司法權), 징병권(徵兵卷) 등(等)을 왕(王)에게서 위임(委任)받아 강력(强力)한 권력(權力)을 휘둘렀고 하서군왕(王) 김주원 과 같이 지방호족세력(地方豪族勢力) 형성(形成)에 중요(重要)한 역할(役割)을 하기도 했다.

신라(新羅) 하대(下臺)에서 후삼국(後三國) 시기(時期)에 신라(新羅)의 행정체제(行政體制)가 붕괴(崩壞)되면서 주(州) 체제(體制)는 혼란스러워졌다. 후백제(後百濟)의 경우(境遇)는 견훤(甄萱) 의 왕자(王子)들이 후백제(後百濟) 영역(領域)의 주(州) 도독(都督)으로 임명(任命)되어 파견(派遣)되는 등(等) 신라(新羅)의 9주(週) 체제(體制)를 자국(自國) 영역내(領域內)의 4~5개(個) 주(株)들에 대(對)해 유지(維持)한 듯 한데 고려(高麗)의 경우(境遇)는 지배하(支配下)에 들어오거나 통일전쟁(統一戰爭) 중(中)에 협력(協力)한 호족(豪族)이나 지방(地方)의 급(級)을 높여줘 주가(株價) 증치(增置)되었고 이에 신라시대(新羅時代)의 광역행정구역(廣域行政區域)으로서의 주의(注意) 성격(性格)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졌다. 가령(假令) 지금(只今)의 안동시(安東市) 풍산읍 풍천면 은 원래(元來) 하지현(下枝縣)=>영안현(永安縣)(永安縣)에서 일거(一擧)에 순주(順州)로 승격(昇格)되었다가 다시 풍산현(豐山縣)(豊山縣)으로 강등(降等) 당(當)하기도 했다.

고려(高麗)의 후삼국(後三國) 통일(統一) 후(後)에도 지방(地方)은 지역호족(地域豪族)들에 의(依)해 지방자치제(地方自治制)가 유지(維持)되어 중앙(中央)은 과세(課稅)(課稅) 외(外)에 달리 지배력(支配力)을 행사(行使)할 수 없어서 지방(地方)에 난립(亂立)해 있는 주(州)들의 정리(整理)조차 이루지지 못했다. 중앙정부(中央政府)가 다시 지방행정체제(地方行政體制)를 정비(整備)한 것은 지방(地方)의 12개(個) 도시(都市)를 주로(主로) 설정(設定)하고 이에 목사(牧師)를 파견(派遣)하는 것으로 출장소(出張所) 격(格)인 12목(牧) 을 설치(設置)하면서 지방행정(地方行政)의 중심(中心)으로 삼으면서부터로 이로부터 주는 이전(以前)과 같은 광역행정구역(廣域行政區域)이 아니라 웬만한 중대형도시(中大型都市)에 설치(設置)된 행정구역(行政區域) 명칭(名稱)이 되었고 장관(長官)도 목사(牧師)(牧使)로 바뀌었다.

고려(高麗) 초기(初期)의 12목(牧)은 양주(洋酒)(楊州)·광주(廣州)(廣州)·충주(忠州)(忠州)·청주(淸州)(淸州)·공주(公州)(公州)·진주(眞珠)(晋州)·상주(尙州)(尙州)·전주(全州)(全州)·나주(羅州)(羅州)·승주(僧主)(昇州)·해주(海州)(海州)·황주(黃州)(黃州)이고 그외(外)에 128개(個) 주(州)가 있었지만 이후(以後) 대부분(大部分) 군(郡)이나 현(縣)으로 격하(格下)되었고 살아남은 주나 군(軍)으로 격하(格下)된 58개(個) 지역(地域)에 지사(知事)(知事)가 파견(派遣)되었다. 1018년(年)에 목은 일시(一時) 8개(個)로 감소(減少)하기도 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20개(個)의 목이 설정(設定)되고 나머지 주(株)에서 군(郡), 현(縣)으로 떨어진 지역중(地域中) 여전히(如前히) 지명(指名)에 州라는 명칭(名稱)이 들어간 지역(地域)은 일괄(一括) 이름을 山이나 川으로 개명(改名)하라는 칙령(勅令)이 내려저 이전(移轉)에 주였던 지역(地域)들의 이름이 바뀌었다. 가령(假令)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는 인주(仁州)군(軍)이었다가 지금(只今)의 이름인 인천군 (仁川郡)으로 개명(改名)하기도 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 경기도(京畿道)에 여주(驪州) ·파주(坡州) ·양주(洋酒)의 3목(牧), 충청도(忠淸道)에 충추(忠醜) ·청주(淸州) ·공주(公州) ·홍주의(紅紬衣) 4목(牧), 경상도(慶尙道)에 상주(尙州) ·진주(晉州) ·성주(城主)의 3목(牧), 전라도(全羅道)에 나주(羅州) ·제주(濟州) ·광주(光州) ·능주(綾州:화순군(和順郡) 능주면)의 4목(牧), 황해도(黃海道)에 황주(黃州) ·해주(海州)의 2목(牧), 함경도(咸鏡道)에 길주(吉州), 평안도(平安道)에 안주(按酒) ·정주의 2목(牧) 등(等)을 두었다. 1895년(年)의 갑오개혁시(甲午改革視) 전국(全國)의 주(州),군(軍),현(玄)을 일괄(一括) 군(軍)郡으로 일원화(一元化)하는 조치(措置)가 있은 뒤 주(州)와 목은 군(軍)으로 모두 강등(降等)되었고 이후(以後) 중국(中國)과 마찬가지로 지명(指名)으로서만 남게 되었다.

일본(日本) [ 편집(編輯) ]

헤이안 시대이래(時代以來) 지방행정단위인(地方行政單位人) 구니(拘泥) (?)를 한두개(個)씩 묶어 당나라식(唐나라式)으로 별칭(別稱)처럼 한자(字)씩 딴 뒤 주자(走者)를 붙여서 O州라고 불렀다. 그래서 州자(字)가 ?자(者)와 동훈이자가(自家) 되기도 했다. OO주라고 부를 경우(境遇) 가령(假令) 지금(只今)의 도쿄도인(都人) 무사시국(無事時局) (武??)은 武자(字)를 따서 신라(新羅)의 무진주(武珍州)처럼 부슈(武州)라고 부르기도 하고 엣추국 (越中?), 에치고국(故國) (越後?), 에치젠국(國) (越前?) 세나라를 묶어 엣슈(越州)라고 부르기도 했다. 규슈 (九州)라는 이름도 이 지역(地域)의 9개(個) 나라에서 유래(由來)했다.

메이지 유신(維新) 때 주도적(主導的)인 역할(役割)을 했던 야마구치 현(縣)의 죠슈 번(番) (長州藩)의 이름도 그 지역(地域)의 나가토국(國) (長門?)을 초(超)슈(長州)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서양(西洋) [ 편집(編輯) ]

미국(美國) 등(等)의 서양국가(西洋國家)의 상급(上級) 행정단위(行政單位)의 명칭(名稱)을 번역(飜譯)하는 과정(過程)에서 '州'로 번역(飜譯)한 데에서 시작(始作)된 것으로, 동양(東洋)의 주(株)(州)와는 직접적(直接的)인 연관(聯關)이 없다.

유래(由來) [ 편집(編輯) ]

서양(西洋)의 주는 로마제국(帝國)의 속주(屬州) (屬州, 라틴어(語) : Provincia)에서 기원(祈願)했다. 로마공화국(共和國)이 이탈리아를 통일(統一)한 뒤 반도(半島) 밖의 지역(地域)을 지배(支配)하면서 속주(屬州)를 설치(設置)해 공화국(共和國)이 제국(帝國)으로 이행(履行)하기까지 갈리아와 히스파이나. 아프리카와 그리스 등지(等地)에 대략(大略) 18개(個) 정도(程度)의 속주(屬州)를 설치(設置)했다. 이시기(時期)까지 설치(設置)된 속주(屬州)를 원로원(元老院) 속주(屬州)라 하여 원로원(元老院)의 관할하(管轄下)에 있었고 제정시대(帝政時代) 이후(以後)에 설치(設置)된 속주(屬州)는 황제속주(皇帝屬州)라 하여 황제(皇帝) 직할(直轄)에 들어갔다. 속주의(注意) 총독(總督)은 원로원(元老院) 의원중(議員中)에 법무관(法務官)이나 전직(前職) 집정관(執政官)이 1년(年)을 임기로 파견(派遣)되었고 속주의(注意) 지배(支配)를 의(依)해 속주법(走法)(屬州法:lex provinciae)이(李) 만들어졌다. 속주민(住民)은 총독(總督)의 재임기간(在任期間)동안에는 총독(總督)을 고소(告訴)할 수 없지만 임기(任期)가 끝나면 재임기간(在任期間)의 잘못등(等)으로 고소(告訴)할 권리(權利)가 있었다. 제국(帝國)의 말기(末期)에는 국방상(國防相)의 이유(理由)로 속주의(注意) 분할(分割) 난립(亂立)이 이루어져 그 수(數)가 급증(急增)했다.

현재(現在) [ 편집(編輯) ]

서양(西洋)의 주는 미국(美國),독일(獨逸), 스위스와 같이 연방제(聯邦制) 하(下)에서 연방(聯邦)의 탈퇴(脫退)나 기타 외교권(外交權) 등(等)은 금지(禁止)되어 있지만 그외(外)에 준 국가(國家)로서의 위치(位置)와 권리(權利)를 지닌다.

  • 미국(美國)의 주(州) (state)-미국(美國)은 독립당시(獨立當時) 동부(東部)의 13주(株)를 시작(始作)으로 현재(現在) 50개(個)의 주(州)가 미(美) 합중국(合衆國)을 이룬다. 미국(美國)의 주는 주지사(州知事)를 정점(頂點)으로 연방정부(聯邦政府)와 같은 정부체제(政府體制)를 유지(維持)하고 심지어(甚至於) 주(州) 방위군(防衛軍)이라는 제한적(制限的)인 군사권도(軍事權度) 가지고 있다. 중국(中國)의 설치(設置)된 특별행정구(特別行政區)와의 차이(差異)는 중국(中國)의 특별행정구(特別行政區)는 군사(軍士)는 중국(中國)의 방위군(防衛軍)을 쓰는 사실상(事實上) 속령국가(屬領國家) 취급(取扱)을 받는 다면 미국(美國)의 주는 사실상(事實上) 미합중국의 대통령(大統領)에 외교(外交)를 대신(代身) 맡기는 걸 제외(除外)하면 아예 별개(別個)의 국가(國家)라고 봐도 무방(無妨)하다.
  • 독일(獨逸)의 주(週) (Land)-독일(獨逸)은 란트(Land)라고 불리는 16개(個)의 연방주(聯邦州)가 있는데 독일제국(獨逸帝國) 시대(時代)의 소국(小國)들이 1차(次) 대전(大戰) 이후(以後) 통폐합(統廢合)해 생겨난 것들로 그중(그中)에 고대(古代) 왕국(王國)에서 시작(始作)된 바이에른주(바이에른州) 나 한자동맹(同盟) 소속(所屬) 시(時)였던 브레멘주 등(等)은 역사(歷史)가 깊은 지역(地域)들이다. 과거(過去) 서독(西獨) 에 속(屬)했던 11개(個)의 구(舊) 연방주(聯邦州)와 구(區) 동독(東獨) 소속(所屬)의 5개(個)의 신(新) 연방(聯邦) 주(週)로 구분(區分)된다.
  • 스위스의 주(株) (Kanton)-스위스의 칸톤 [1] 은 20개(個)의 (온존(溫存)한)주와 6개(個)의 반주(伴奏)(半州)로 이루어져 있다. 반주(伴奏)는 본디(本디) 하나의 주(主), 또는 소국(小國)(小國)이었으나 종교(宗敎), 정치적(政治的)인 입장차(立場差)로 갈라진 주(株)들을 말하는데 바젤슈타트주(週) 바젤란트주 가 대표적(代表的)이다. 반주제(反主題)는 현재(現在) 폐지(廢止)되어서 각기(各其) 독립(獨立)된 칸톤으로 간주(看做)된다. 1978년(年)에는 베른주 의 북부(北部)가 분리독립(分離獨立)해 쥐라주 가 되었다. 1648년(年)에 오스트리아에서 독립(獨立)한 이후(以後) 1848년(年)에 현재(現在)의 헬베티아 연방(聯邦) 공화국(共和國)이 성립(成立)되기 전(前)까지 스위스는 소국(小國)들의 느슨한 국가(國家) 연맹체(聯盟體)였다. 각(各) 소국(小國)들은 연방(聯邦)이 성립(成立)된 이후(以後) 주(週)(州)로 전환(轉換) 된 후(後)에도 외교권(外交權)과 군사권(軍事權)을 제외(除外)하고 완전(完全)한 독립(獨立)을 누리면서 고유(固有)의 정치체제(政治體制)와 법체제(法體制)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甚至於) 1999년(年)의 국민투표(國民投票)로 가결(可決)된 개정(改正)된 연방(聯邦) 헌법(憲法)의 내용(內容) 중(中)에는 각(各) 칸톤이 외국(外國)과 직접(直接) 협정(協定)을 체결(締結)하거나 국제(國際) 교섭(交涉)에 참여(參與)하는 등(等) 외교권(外交權)까지 인정받게 되었다. 최근(最近)까지 8개(個)의 주(株)에서 란트슈게마인데 (Landsgemeinde)라는 직접(直接)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이루어졌지만 지금(只今)은 두개주(個州)에서만 직접민주제(直接民主制)가 행(行)해지고 있다. 칸톤 밑에는 코뮨이 있으며, 그 구조(構造)는 주(州)마다 다르다. 또 국민(國民)은 코뮨의 여러 결정(決定)에 참가(參加)할 의무(義務)가 있다. 스위스의 정치제도(政治制度)는 코뮨 및 칸톤의 자치(自治)를 첫째로 하고 그 위에 연방(聯邦)이 결성(結成)되어 있으므로 ‘밑에서 위로’의 조직(組織)인 셈이다.
  • 프랑스 , 이탈리아 -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공통적(共通的)으로 region또는 regione으로 부르는데 이는 로마제국(帝國)의 초대황제(初代皇帝)인 아우구스투스 가 로마제국(帝國)의 본토인(本土人) 이탈리아 반도지역(半島地域)의 행정구역(行政區域)을 구획(區劃)한데서 기인(起因)한다. 이 시기(時期)에 정(定)해진 이탈리아의 주(株) 행정구획(行政區劃)은 현재(現在) 이탈리아의 행정체제(行政體制)의 기반(基盤)이 되었다. 여담(餘談)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皇帝)는 로마시의 구(舊)(區)체제(體制)도 만들었는데 그 구(具)의 이름마저도 region이었다.
  • 캐나다 - 캐나다의 주(週)는 로마제국(帝國)처럼 프로빈스(province)라고 부르는 10개(個)의 주(株)州와 아직 공식주로(公式主로) 인정받지 못한 3개(個)의 준주(樽酒)(準州, territory)가 있다. 이는 모두 미국(美國)의 연방제(聯邦制)에서 따온 것이다. 준주(樽酒)는 다른 주(株)와는 달리 연방정부(聯邦政府)의 관할하(管轄下)에 있어서 중앙(中央) 정부(政府)에 의(依)해 임명(任命), 파견(派遣)된 관료(官僚)와 자체적(自體的)으로 선출(選出)된 평의회(評議會)가 협력(協力)하여 통치(統治)한다. 여타(餘他) 정규(正規) 주의(注意) 운용(運用)은 영국(英國) 국왕(國王)에 의(依)해 임명(任命)된 캐나다 총독(總督)이 임명(任命), 파견(派遣)된 부총독(副總督)이 명목상(名目上)으로 파견(派遣)되고 주(州) 지사(知事)를 주(朱) 총리(總理)로 부르는 것등(等)을 빼고는 미국(美國)의 주(株)들과 하등(何等) 다를 것이 없으며 각(各) 주(州)의 이해조정(利害調停)이 중앙정부(中央政府)의 중요(重要) 정치(政治) 현안(懸案)이 되기도 한다. 그 중(中) 퀘벡주(퀘벡州) 는 영국계(英國系)가 대부분(大部分)인 여타(餘他) 주(株)들과는 달리 주민(住民)들이 프랑스 인(人)이 주(主)를 이루어서 분리독립(分離獨立)이 기도(企圖)되고 있다.

같이 보기 [ 편집(編輯) ]

각주(各州) [ 편집(編輯) ]

  1. 프랑스에도 칸톤이 행정체계상(行政體系上)으로 존재(存在)하는데 그 경우(境遇) 읍(邑), 면정도(面程度)에 해당(該當)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