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宗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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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對中) 종교(宗敎)와 세계(世界) 종교(宗敎)는 왼쪽 위부터 기독교(基督敎) , 이슬람교(이슬람敎) , 힌두교(힌두敎) , 불교(佛敎) , 시크교 , 유대교(유대敎) 이다.

종교(宗敎) (宗敎)는 초월적(超越的), 선험적(先驗的) 또는 영적(靈的)인 존재(存在)에 대(對)한 믿음 을 공유(共有)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信仰) 공동체(共同體)와 그들이 가진 신앙(信仰) 체계(體系) 나 문화적(文化的) 체계(體系)(cultural system)를 말한다. 종교인(宗敎人)들은 주로(主로) 초월(超越) 적(的)인 대상(對象), 세계(世界)에 대(對)한 궁극적(窮極的)인 진실(眞實), 사람은 어떠한 도덕(道德) 을 지키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對)해 각자(各自)의 믿음을 갖고 있다. 종교(宗敎)는 인간(人間)과 비롯한 존재(存在)의 우주적(宇宙的) 질서(秩序)에 대(對)한 나름의 설명(說明)을 제공(提供)하려 하기도 한다. [1]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비롯한 근현대(近現代) 철학(哲學)에서 많은 학자(學者)가 종교(宗敎)를 비이성적(非理性的)인 것으로 비판(批判)하였으나 심리학적(心理學的)으로는 종교(宗敎)가 삶의 불확실성(不確實性)을 줄여주고 심신(心身)의 안정(安定)을 가져다주는 효과(效果)가 있다는 지적(指摘)도 있다. [2] 전근대(前近代) 시절(時節)에도 지배층(支配層) 출신(出身) 사람들은 종교(宗敎)를 이용(利用)할 뿐 딱히 믿지 않았다는 증거(證據)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最近)에는 피지배층(被支配層) 역시(亦是) 진정(眞情)으로 종교(宗敎)를 믿었는가에 대(對)해 의문점(疑問點)이 제기(提起)되고 있다.

종교(宗敎)의 어원 [ 편집(編輯) ]

종교(宗敎)(宗敎)는 본래(本來) 산스크리트어(語) 를 번역(飜譯)한 불교용어(佛敎用語)다. 중국(中國)에 불교(佛敎)를 전래(傳來)할 때 능가경(楞伽經)에 "근본(根本)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意味)인 "시단타(時斷打) 데사나"(Siddhanta Desana)를 종교(宗敎)로 한역(漢譯)한 용어(用語)다. 한편(한便), '신(神)과 인간(人間)을 잇는다.'를 의미하는 영어단어(英語單語) "릴리전"(religion)을 종교(宗敎)로 번역(飜譯)해 지금(只今)에 이른다. 조상신(祖上神)(示)을 모시고 제사(祭祀)하는 종갓집(宗家집)(?)에 사용(使用)하는 '으뜸 종(種)(宗)'에 '가르칠 교(敎)(敎)'를 사용(使用)한다. 즉(卽) '으뜸인 가르침'을 뜻한다.

동양적(東洋的) 어원 [ 편집(編輯) ]

종(種)(宗)은 죽은 내 조상(祖上)(祖上)과 현재(現在) 살아있는 내 성씨(姓氏)(姓氏) 가족(家族)(家族) 전체(全體)를 의미하며 '집'(면(綿), ?)과 '보다' 또는 '살피다'(시, 示)라는 뜻이 결합(結合)한 글자(글字)로 살아서는 부모(父母)가 자녀(子女)들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하고, 죽어서는 부모(父母)가 가족(家族) 문제(問題)를 도와주길 바라는 소망(所望)을 제사(祭祀)로 나타낸다. 말뚝에 제물(祭物)을 걸어 놓으면 죽은 부모(父母) '귀신(鬼神)'(신(新), 神)이 나타난다는 뜻으로, 적장자(嫡長子)(嫡長子)인 종손(宗孫)(宗孫)이 사는 조상(祖上) 제사(祭祀)를 지내는 집을 의미(意味)한다.

교(校)(敎)는 '점괘(占卦)'(효(孝), 爻), '아들'(자, 子), '치다' 또는 '때리다'(복, ?)라는 뜻이 결합(結合)한 글자(글字)로 점친 결과(結果)를 아들에게 때려서 가르친다는 뜻이다. 정확(正確)한 의미(意味)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100% 일치(一致)하는 혈족(血族)(血族)인 대종(大宗)(大宗) 성(性)(姓)의 적장자(嫡長子)(嫡長子)를 중심(中心)으로, 아버지는 일치(一致)하고 어머니 혈통(血統)은 다르지만 한지붕 아래서 시(詩)(豕)돼지 키우면서 함께 사는 가족(家族)(家族)인 수많은 후처(後妻)(後妻) 소종(小宗)(小宗) 씨(氏)(氏) 적장자(嫡長子)(嫡長子) 소종가(小宗家)(小宗家)들이 연합(聯合)한 것이 국가(國家)(國家)이다. 가족(家族)(家族) 문제(問題)를 구성원(構成員)이 함께 논의(論議) 해법(解法) 찾는 과정(過程)에서, 의견(意見)이 충돌(衝突)하고 양쪽(兩쪽) 말이 모두 일리(一理)가 있어 한쪽에 손을 들기 어려울 때, 군대(軍隊) 권력(權力)을 가진 왕(王)이자 조상(祖上) 제사(祭祀)를 모시는 사제(司祭)인 적장자(嫡長子)(嫡長子)가 점친 공정한 결과(結果)를 결정(決定)하면 가족(家族)들이 복종(服從)하며 자기(自己) 부모(父母)를 믿는 신앙(信仰)(神仰)이다.

종(種)(宗)은 가족(家族) 혈통(血統) 계보(系譜)의 중심(中心)인 종손(宗孫)(宗孫), 보통(普通) 종손(宗孫)인 적장자(嫡長子)(嫡長子)가 살고 가족(家族) 전체(全體)가 제사(祭祀)를 지내는 종가(宗家)(宗家), 적장자(嫡長子)(嫡長子)의 적처(嫡妻)(嫡妻)를 의미(意味)하는 종부(宗婦)(宗婦), 성(性)(姓) 혈족(血族)의 원뿌리(元뿌리)를 의미하는 대종(大宗)(大宗), 가족(家族) 성(性)(姓)에서 씨(氏)로 독립(獨立)한 소종(小宗)(小宗) 글자(글字)들 쓰임새에서, 죽은 부모(父母)를 중심(中心)으로 가족(家族) 관계(關係)가 형성(形成)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처(本妻) 큰아들 계보(系譜)를 의미(意味)하는 '정실(情實)'(적(敵), 嫡)을 뜻하는 글자(글字)는 '계집'(녀(女), 女), '밑둥'(적(敵), ?)의 합성(合成)으로, 제(第)(?)라는 글자(글字)는 '임금(賃金)'(제(第), 帝)과,'ㅂ' 모양(模樣)인 제사(祭祀) 그릇을 합친 글자(글字)로, 적장자(嫡長子)(嫡長子)의 성씨(姓氏)(姓氏) 조상(祖上) 제사(祭祀)를 모시는 여자(女子)를 의미(意味)한다.

종교(宗敎)(宗敎)는 가족(家族) 공동체(共同體)인 국가(國家)의 중심(中心)인 왕(王)의 공정(公正)한 가르침이고, 신앙(信仰)(神仰)은 가족(家族)(家族) 성씨(姓氏)(姓氏) 조상(祖上) 죽은 부모(父母)를 믿고 적장자(嫡長子)인 왕(王)의 공정(公正)한 결정(決定)을 따르는 것이다. 종(種)(宗)은 성씨(姓氏) 글자(글字)가 사용(使用)된 상(上)(商)나라 왕실(王室) 자성(自省)(子姓)이(李) 수천년전(數千年前) 상나라(商나라) 때부터 썼고, 많은 대종(大宗) 성씨(姓氏)들이 5천년(千年) 이상(以上) 되었고, 불교(佛敎) 도래(到來)보다 훨씬 이전(以前)부터 사용(使用)하던 개념(槪念)으로 혈연(血緣) 가족(家族)에 대(對)한 믿음이다.

서양적(西洋的) 어원 [ 편집(編輯) ]

유럽어에서 종교(宗敎)(religion)라는 라틴어(語) 어원(語源) "렐리기오(忌惡)"(religio)는 어원적(語源的) 배경(背景)이 두 개(個) 있다.

첫째는 치체(體)로(고전 라틴어(語)로는 '키케로', 교회(敎會)라틴어(語)로는 '치체(體)로', Cicero, 신(神)들의 본성(本性)에 대(對)하여(De Deorum Natura), 2, 28, 72)와 연결(連結)하여 라틴어(語) '렐레고'(relego, 숭배(崇拜)하다)에서 왔다고 한다. '다시, 또'(레, re)와 '읽다'(레고, lego)와 합(合)하여 ‘다시 읽다’, ‘반복(反復) 음미(吟味)하다’, ‘주의(注意)깊이 관찰(觀察)하다’(go over again, consider carefully)의 의미(意味)로 신(神)에게 드리는 예배(禮拜)와 관계(關係)하여 지속적(持續的)으로 살핀다는 뜻이다. 즉(卽) 신(神) 또는 조상(祖上)에 대(對)한 숭배(崇拜)이다.

둘째는 락탄티우스 (Lactantius, Divinae Institutiones, 4, 28)와 연결(連結)하여 '다시, 또'(레, re)가 '묶다' 또는 '잇다'(리가레, ligare)와 합(合)해 ‘다시 묶다’가 되었다는 견해(見解)이다. 교부(交付)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견해(見解)를 따랐다. 즉(卽) 하나님께로 다시 결합(結合)하여(to reconnect) 하나님께 대(對)한 경외(敬畏)(reverence for God, the fear of God)가 되었다. [3]

정의(正義) [ 편집(編輯) ]

종교(宗敎)와 관련(關聯)하여 그 종교(宗敎)에 귀의(歸依)하여 우러나오는 경건(敬虔)한 마음은 종교심(宗敎心) (宗敎心)이나 신심(信心) (信心), 신앙(信仰) (信仰), 불심(不審) (佛心)이라 하며, 종교적(宗敎的) 신앙(信仰)에 따르는 마음가짐은 종교의식(宗敎意識) (宗敎意識)이라 한다. 기독교(基督敎) 에서는 전례(前例) 또는 예전 이라고 부르는 종교(宗敎) 의례(儀禮) (宗敎儀禮)는 종교(宗敎)에서 신앙(信仰)의 대상(對象)을 예배(禮拜)하기 위한 여러 예식(禮式)(Ceremonial: 의식(意識)에서의 성직자(聖職者) 와 청중(聽衆)의 상징적(象徵的)인 행동(行動)과 시각적(視覺的), 청각적(聽覺的)인 상징(象徵))과 순서(順序)(Order: 고정(固定)된 순서(順序)), 의식(意識)(Ritual: 말이나 노래같은 음성(音聲)을 표현(表現)되는 문서화(文書化)된 의식(意識)과 기도문(祈禱文))을 가리키며 종교(宗敎) 의식(意識) (宗敎儀式)이라고도 한다.

종교개혁가(宗敎改革家) 장(章) 칼뱅 은 경건(敬虔)은 종교(宗敎)를 낳는다고 했다. 경건(敬虔)이란 하나님에 대(對)한 경외(敬畏)와 하나님에 대(對)한 사랑이 결합(結合)된 것이라고 한다. 순수(純粹)하며 참된 종교(宗敎)는 하나님에 대(對)한 엄숙(嚴肅)한 두려움과 결합(結合)된 신앙(信仰)이라고 한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자발적(自發的)인 경외(敬畏)를 내포(內包)하며, 성경(聖經)에서 규정(規定)한 예배(禮拜)를 포함(包含)한다.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 1:2:2)

종교(宗敎)에 대(對)한 학자(學者)들의 정의(正義) [ 편집(編輯) ]

종교(宗敎)는 고대(古代)로부터 신(神)과 관계(關係) 속에서 시작(始作)했다. 그러나 현대(現代) 시대(時代)에 종교(宗敎)는 신(神)과 곤련(聯)한 관점(觀點)보다 인간(人間)의 내재적(內在的) 요소(要素) 속에서 종교(宗敎) 본질(本質)을 찾으려고 한다. 학자(學者)들은 종교(宗敎)를 인간(人間)의 지, 정(情), 의, 도덕(道德), 이성(理性) 등(等) 각각(各各) 하나를 강조(强調)하며 설명(說明)한다. [4]

  • 뮬러 - 무한(無限)한 존재(存在)를 지각(知覺)하는 것, 이것이 인간(人間)의 덕성(德性)을 감화(感化)시킨다.
  • 틸레 - 자기(自己)보다 우월(優越)한 존재(存在)를 존경(尊敬)하며, 믿고, 접촉(接觸)을 갈망(渴望)하는 것이다.
  • 타일러 - 영적(靈的) 존재(存在)에 대(對)한 숭배(崇拜)와 신뢰(信賴)이다(the belief in spiritual beings).
  • 듀크하임 - 종교(宗敎)를 성스러운 것들과 관련(關聯)된 믿음과 실천(實踐)의 통합(統合)된 체제(體制)라고 한다(unified system of beliefs and practices relative to sacred things).
  • 볼프 - 의지(意志)의 자유(自由)를 강조(强調)하며 도덕(道德) 종교(宗敎)를 말한다.
  • 칸트 - 의지(意志) 곧 실천(實踐) 이성(理性)에 기초(基礎)를 두고, 종교(宗敎)를 이성(理性)의 한계(限界) 안에 가둔다.
  • 헤겔 - 종교(宗敎)의 자리가 지성(知性) 속에 있다고 본다.
  • 칼 맑스- 종교(宗敎)는 인간(人間)의 발전(發展)에 방해물(妨害物)로 인간(人間)은 스스로가 구원(救援)해야 한다. "종교(宗敎)는 인민(人民)의 아편(阿片)이자 눈물, 한숨"이라는 말(독일(獨逸)-프랑스 연보(年譜), 1844년(年))로 유명(有名)한데, 이는 종교(宗敎)가 인간(人間)이 현실(現實)에서의 고통(苦痛)을 잊을 수 있는 진통제(鎭痛劑)라는 뜻으로 쓴 말이다.
  • 흄 - 종교(宗敎)가 없는 사람은 없다.
  • 슐라이에르마허 - 종교(宗敎)란 무한자(無限者)에 대(對)한 절대(絶對) 의존(依存) 감정(感情)이다.
  • 하(下)르낙(樂) - 도덕적(道德的)인 개념(槪念)을 강조(强調)한다.
  • 리츨 - 인간(人間) 의지(意志)를 강조(强調)함으로써 기독교(基督敎)를 인격적(人格的) 종교(宗敎)로 만든다.
  • 트뤌취 - 인격적(人格的) 확신(確信)이다.
  • 불리(不利)커 - 신적(神的)인 힘, 혹은(或은) 초자연적(超自然的)인 힘이다.
  • 반(半) 더 리우 - 마나(힘)이다.
  • 오토 - 엄청나며, 동시(同時)에 매혹적(魅惑的)인 신비(神祕)의 체험(體驗)이다.
  • 화이트헤드 - 종교(宗敎)란 내적(內的) 요소(要素)들을 정화(淨化)하는 믿음의 힘이다. 종교(宗敎)는 개인(個人)이 자신(自身)의 고독(孤獨)을 다루는 것이다.
  • 스미스 - 종교(宗敎) 대신(代身) 신앙(信仰)으로 본다.
  • 유진(有進) 니다- 최종적(最終的)이거나 최상(最上)의 관심사(關心事)이다.
  • 틸리히 - 궁극적(窮極的) 관심(關心)이다.
  • 벌코프 - “종교(宗敎)는 인간(人間) 생활(生活)에 있어서 가장 깊은 근원(根源)과 접촉(接觸)하고, 인간(人間)의 사상(思想)을 지배(支配)하며 인간(人間)의 감정(感情)을 자극(刺戟)하고 인간(人間)의 행동(行動)을 지도(指導)하는 것”으로 말한다.
  • 윌리엄 제임스 - 물질적(物質的)인 세계(世界)와 보이지 않는 세계(世界)와의 관계(關係)가 종교(宗敎)의 핵심(核心)이다.

비판적(批判的) 관점(觀點) [ 편집(編輯) ]

  • 로버트 피시그 , 리처드 도킨스 - 누군가 망상(妄想)에 시달리면 정신이상(精神異常)이라고 한다. 다수(多數)가 망상(妄想)에 시달리면 종교(宗敎)라고 한다.

종교(宗敎) 기원(起源) 이론(理論)들 [ 편집(編輯) ]

  • 자연(自然) 숭배(崇拜) 이론(理論) - 자연(自然)의 신비(神祕)와 능력(能力)에 대(對)한 숭배(崇拜)에서 왔다.
  • 정령(精靈) 숭배(崇拜) 이론(理論) ? 영(靈)들이나 죽은 조상(祖上)들의 영혼(靈魂)을 숭배(崇拜)하는 것에서 왔다.
  • 심리학적(心理學的) 이론(理論) - 감정적(感情的) 상태(狀態)에서 성장(成長)하였다. 밀러는 종교(宗敎)의 기원(起源)이 경외(京外), 놀라움, 두려움에 대(對)하여 즉각적(卽刻的)인 감정(感情) 반응(反應)이다.
  • 사회적(社會的) 이론(理論) - 사회적(社會的)으로 발생(發生)했다. 듀크하임은 종교(宗敎)가 부족(不足)을 단결(團結)한다고 본다. 고대(古代) 메소포타미아와 수메르 도시(都市) 국가(國家)들의 종교(宗敎)들은 정치적(政治的)인 권력(權力)과 사회(社會), 경제적(經濟的)인 질서(秩序)를 신성(神聖)하게 보았다.
  • 인류학적(人類學的) 이론(理論) - 포에르바하는 잘못된 자기(自己)의 투영(投影)의 과정(過程)에서 발생(發生)한다.
  • 철학적(哲學的) 이론(理論) ? 이성(理性)이나 과학(科學)이나 철학(哲學)에 뒤떨어졌다고 본다.

종교(宗敎)의 공통적(共通的)인 특징(特徵) [ 편집(編輯) ]

일반적(一般的)으로 종교(宗敎)는 아래와 같은 형식(形式)을 가진다. 이단(二段)과 같은 분파적(分派的) 집단(集團)들은 다음의 요소(要素)들을 결여(缺如)하고 왜곡(歪曲)한다.

  • 초자연적(超自然的)인 것을 믿음
  • 현상(現象)과 현실(現實)의 구분(區分)
  • 도덕적(道德的) 법전(法典), 윤리적(倫理的)인 원리(原理)
  • 감정(感情)
  • 기도(祈禱)와 신(神)과의 교통(交通)
  • 세계관(世界觀)을 제공(提供)
  • 삶의 총체적(總體的)인 조직(組織)을 요구(要求)함
  • 사회적(社會的)인 조직체(組織體)
  • 평화(平和)와 복지(福祉)의 내적(內的)인 조화(調和) 혹은(或은) 그 심리적(心理的) 상태(狀態)를 약속(約束)
  • 도래(到來)할 시대(時代)를 가르침

세계(世界)의 종교(宗敎) [ 편집(編輯) ]

인류(人類)의 종교(宗敎) 발전(發展)은 시대(時代)와 평행(平行)하게 흘러왔다. 아직도 고등문화(高等文化) 속에 남은 자연민족(自然民族) 신앙(信仰)은 그 후(後)에 나타난 더 높은 종교(宗敎)에 자연스러운 바탕이 되었다. 마적 외포(外包)(魔的畏怖), 무격적(巫覡的)(巫覡的)인 신빙(信憑)(神憑), 마적 열광(熱狂)과 황홀(恍惚)한 춤과 원시적(原始的) 신비(神祕), 그리고 주술적(呪術的)이고 신성(神聖)한 행사(行事) 등(等)의 감정(感情)을 비롯하여 거기에서 일어나는 정령신앙(精靈信仰)(精靈信仰)이나 죽은 사람에 대(對)한 의례(儀禮)(儀禮), 영혼숭배(靈魂崇拜)와 토테미즘 (totemism), 요술사(妖術師)와 주술사(呪術師), 복술(卜術)· 점술(占術) , 청정(淸淨)(淸淨)과 부정(否定)(不淨), 유치(誘致)한 행위(行爲)나 신성(神聖)한 행위(行爲), 원시적(原始的) 금욕(禁慾), 공희(供犧)(供犧)의 신비(神秘), 주물숭배(呪物崇拜)(呪物崇拜) 등(等)의 표상(表象), 그리고 자연주술(自然呪術)과 모든 자연(自然)의 주적(主敵) 영화(映畫)(呪的靈化) 등(等)의 표상(表象)은 고등(高等) 종교(宗敎) 이전(以前)의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것에서 서서히(徐徐히) 나타난 숭고(崇高)한 신성(神聖), 신(神)들의 숭배(崇拜), 제사제도(祭祀制度), 의례(儀禮)와 신전(神殿)과 제사(祭祀), 신성(神聖)한 집단(集團)과 풍습(風習) 등(等)의 표상(表象)이 있고, 또, 이런 표상(表象)에 속(屬)한 신화(神話), 우주(宇宙)에 관(關)한 계도적(啓導的)(系圖的)인 의례(儀禮)의 우화(寓話)(寓話), 신화적(神話的)인 원시적(原始的) 사변(事變)(思辨) 등(等)이 보여주는 넓은 상상(想像)의 활동세계(活動世界)을 펼친다. 이런 모든 요소(要素)는 서로 매우 다르나 완전히(完全히) 개별적(個別的)이고 관련(關聯) 없이 집합(集合)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로 관련(關聯)하고 집결(集結)하여 하나의 그물처럼 전체(全體)를 이룬다. 어떤 기후(氣候)나 토지(土地)에도 놀랄만큼 서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유사성(類似性)이 참으로 그 근본(根本)에는 통일적(統一的)이고 합일적(合一的)인 인간심리(人間心理) 일반(一般)이 있다는 사실(事實)을 보여준다.

자연적(自然的) 신앙(信仰)의 뒤를 이어 선종교(先宗敎)(先宗敎)라고 부르는 더욱 높은 전이과정(轉移過程)이 있다. 이 전이(轉移)는 서양(西洋), 그 바탕인 그리스 문화(文化)에 나타났다. 기원전(紀元前) 800년(年)부터 500년(年)에 이르는 중요(重要)한 기간(期間)에 신학(神學)이 신화학(神話學)(神話學)에서, 그리고 로고스(logos)가 신화(神話)(mythos)에서 분리(分離)했다. 그리고 신(神)들에 관(關)한 지식(知識)을 뜻했던 신학(神學)은 점차(漸次)로 신(神)에 관(關)한 지식(知識)이 되는 동시(同時)에 형이상학(形而上學) 의 최고점(最高點)이 되었다. 신앙(信仰)은 신(神)을 마적 외포(畏怖)의 영역(領域)에서 나와서 물리학(物理學) 과 신비사상(神祕思想)의 요소(要素)를 결합(結合)한 우주론(宇宙論) 이 되었다. 예컨대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크세노파네스, 아낙사고라스 등(等)의 물리학(物理學)은 모두 우주론적(宇宙論的) 신학(神學)이었다. 이 신학(神學)은 점점(漸漸) 신화적(神話的)인 요소(要素)를 극복(克服)하거나 배제(排除)하고 나아가서는 신(神)들의 세계(世界)를 신적(神的) 이념(理念)(Theion)에 종합(綜合)하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절대자(絶對者)와 신성(神聖)(神性)의 이념(理念)이 되었다. 따라서 신(神)들은 그리스 비극작가(悲劇作家)(悲劇作家)들에게 세계(世界)와 습관(習慣)을 지배(支配)하는 통일적(統一的)인 힘이었으며, 본래(本來) 다신교(多神敎) 적(敵)(多神敎的)인 생각에서만 의의(意義)를 갖던 신(神)이란 표현(表現)은 절대적(絶對的) 신성인 이념(理念)이 되었다.

이것과 동시대적(同時代的)인 평행(平行)은 극동(極東)의 문화(文化)인 속에 있다. 피타고라스 가 교단(敎團)(敎團)을 창시(創始)한 것이 기원전(紀元前) 약(約) 530년(年)이었는데, 중국(中國) 공자(孔子) 는 약(藥) 470년(年)에 죽었고 공자(孔子)와 동시대(同時代)의 선배(先輩)에 노자(路資) (老子)가 있었다. 중국(中國)의 고대사(古代史) 시대(時代)는 이들보다 이전(以前)에 3세기(世紀)가 지나고 있었다. 동양(東洋)의 발전(發展)이 서양(西洋)의 그것과 다른 독자성(獨自性)과 개별성(個別性)을 보여주나 그 차이(差異)는 동일(同一)한 종속(從屬)(種屬) 내(內)의 차이(差異)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中國)에서도 얕은 신화적(神話的) 단계(段階)의 극복(克服)이나 종교(宗敎)의 확연(確然)한 도덕화(道德化)나 절대자(絶對者)에로의 정진(精進)(精進)이 있었다. 공자(孔子)가 합리주의(合理主義)로 흐른 데 비해서 노자(老子)는 '도덕(道德)'으로 기울어졌다. 서양(西洋)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주의적(合理主義的) 유신론(有神論)이 공자(孔子)의 이론(理論)에 필적(匹敵)하고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가 노자(老子)의 도(道)(道) 사상(思想)과 맞먹는다. 노자(老子)나 공자(孔子)는 다 헤라클레이토스나 플라톤에서 인정(認定)되는 내적(內的) 신비(神祕)의 빛을 말했다.

이스라엘 도 이 세기(世紀)에 여호와 의 자연신화(自然神話)를 깨고 유일신(唯一神) 을 찾았다. 엘리야 (Elijah)로부터 제이 이사야 (Isaiah)와 에스겔 (Ezekiel)에 이르는 동안 종족적(種族的) 종교(宗敎)로부터 개인적(個人的)인 주관적(主觀的) 종교(宗敎)에로의 전이(轉移)(轉移)가 있었다. 또한 페르시아 조로아스터 (zoroaster)의 종교개혁(宗敎改革) 준비(準備)와 그 성과(成果)는 기원전(紀元前) 약(約) 800년(年)부터 큐로스왕(王) 시대(時代)에 이르는 기간(期間)에 악마신앙(惡魔信仰)과 다신교(多神敎)의 안개를 걷고 예언자적(豫言者的) 신신앙(神信仰)(神信仰)과 도덕적(道德的) 상반(相反)의 별견(瞥見)(瞥見)과 역사(歷史)의 조만간(早晩間)의 종말(終末)에 관(關)한 순수(純粹)한 종교(宗敎)가 출현(出現)했다.

이 시대(時代)에 평행(平行)해서 고대인도(古代印度) 는 혼돈된 공희(供犧)(供犧)에서 바루나 (Varuna) 신앙(信仰)을 성립시켰다. 더욱이 우파니샤드 경전(經典)의 내용(內容)은 그리스 신학(神學)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또 불타(佛陀) 시대(時代)에 일어난, 일체(一切)의 잡다(雜多)는 감각(感覺)의 가상(假想)(假象)이며 무지(無知)(無知)에 지나지 않지만, 진지(眞智)는 운동(運動)·변화(變化)·성질(性質)(性質) 없이 시공(施工)(時空) 이외(以外)에 '제(第)2자(者)가 없는 유일자(唯一者)(唯一者)' 위에 나타난다는 사변(事變)(思辨)은 크세노파네스나 파르메니데스 제논 의 그것과 일치(一致)한다. 이것들은 모두 종교적(宗敎的) 직관(直觀)에 의(依)한 신비적(神祕的) 몰아(神秘的沒我)의 특유(特有)한 체험(體驗)을 말하는 것이다. 인도(引渡)의 바라문(婆羅門) (婆羅門) 세계(世界)에서 그 사변(事變)(思辨)과 함께 실천적(實踐的) 종교생활(宗敎生活)이 발전(發展)하였다. 높은 관념(觀念)의 발전(發展)보다 높은 종교(宗敎)에 한걸음 다가섰다. 구제(救濟)(救濟)·해방(解放)(解放)·해탈(解脫)(解脫)의 깊은 종교적(宗敎的) 삼매(三昧)(三昧)와 금욕적(禁慾的) 실천(實踐)과 생활태도(生活態度)에서의 세간(世間)(世間)과 자연적(自然的) 존재양식(存在樣式)을 멸시(蔑視)하는 경향(傾向)이 생겼다.

사이비(似而非) 종교(宗敎) [ 편집(編輯) ]

사이비(似而非) 종교(宗敎)란 일반적(一般的)인 종교(宗敎)의 형태(形態)를 가지고 있지만 전통적(傳統的)인 기존(旣存)의 종교적(宗敎的) 내용(內容)을 교주(敎主) 나 특정한 교리(敎理)를 과장(誇張)하여 주관적(主觀的)으로 변형(變形)시킨 형태(形態)이다. 기존(旣存) 종교(宗敎)와 사회(社會)에서 충돌(衝突)을 일으키는 이유(理由)는 가정(家庭)과 사회(社會)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그 단체(團體)에 속(屬)한 신자(信者)들에게 해(害)를 많이 끼치기 때문이다. 사이비(似而非) 종교(宗敎)의 피해(被害)로 생명(生命)을 잃기도 하고 많은 재산(財産)과 가족(家族)을 빼앗기는 사례(事例)가 너무 많아서 사회적(社會的)인 관점(觀點)에서는 법(法)의 의(依)한 엄격(嚴格)한 처벌(處罰)이 요구(要求)된다. 이는 종교(宗敎)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자신(自身)의 사적(私的)인 이득(利得)을 취(取)하는 자(者)들이 이끄는 곳은 사이비(似而非)이기 때문이다. 사이비(似而非)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根本的)(根本的)으로는 아주 다른 것으로 공자(孔子)의 말에서 유래(由來)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이단(二段)이 있다. 이단(異端)(異端)은 자기(自己)가 믿는 이외(以外)의 도(道)(道)를 말한다.

종교(宗敎)와 윤리(倫理) [ 편집(編輯) ]

종교(宗敎)에 명시(明示)된 종교적(宗敎的) 교훈(敎訓) 들은 윤리(倫理) 적(敵) 교훈(敎訓) 과 일치(一致)하는 경우(境遇)가 있다. 그러나 종교적(宗敎的) 교훈(敎訓) 은 반드시 윤리(倫理) 적(敵) 교훈(敎訓) 과 일치(一致)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宗敎)는 윤리(倫理)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한便), 종교적(宗敎的) 교훈(敎訓)이 오히려 폭력적(暴力的)인 것이라고까지 말하기도하나, 좀 더 사실적(事實的)으로는 종교적(宗敎的) 교훈(敎訓)을 곧 윤리적(倫理的) 교훈(敎訓)으로 치환(置換)함과 동시(同時)에 폭력적(暴力的)으로 악용(惡用)하는 사례(事例)가 많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와 같이, 종교적(宗敎的) 교훈(敎訓)과 윤리적(倫理的) 교훈(敎訓)을 운운하여 악용(惡用)하는 사례(事例)가 많기 때문에 종교적(宗敎的) 교훈(敎訓) 자체(自體)가 폭력적(暴力的)이라는 오해(誤解)가 널리 퍼져있고, 종교적(宗敎的) 교훈(敎訓)을 윤리적(倫理的) 교훈(敎訓)으로 곧바로 치환(置換)하는 것이 '본래(本來)의 정의(正義)(定義)를 모른 채 내린 일반화(一般化)의 오류(誤謬) '라하여 일반적(一般的)인 오해(誤解)가 오히려 더 굳혀지고 있는 양상(樣相)을 볼 수 있다 [ 출처(出處) 필요(必要) ] . 니체는 인간(人間)이 만든 모든 법칙(法則)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신(神)은 종교(宗敎)에서 믿는 신(神)이나 인간(人間)을 초월(超越)한 어떤 것이 아니다. 칸트 는 3대(代) 비판서(批判書)에서 신(神)이란 도덕률(道德率) 혹은(或은) 도덕원리(道德原理)일뿐이라고 일축(一蹴)한다. 니체는 원래(元來) 존재(存在)하던 절대(絶對) 법칙(法則)들, 규범(規範)들을 비판(批判)하며 부순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간(人間)을 노예(奴隸)로 만들며, 전통적(傳統的)인 규범(規範)들은 생(生)의 활력(活力)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특히(特히) 기독교(基督敎)의 겸손(謙遜), 순종(純宗), 섬김, 봉사(奉仕)와 같은 가치(價値)들은 단지(但只) 노예(奴隸) 도덕(道德)인 것이다. 종교(宗敎)의 폭력성(暴力性) 혹은(或은) 베타성이 특히(特히) 기독교(基督敎)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主張)이 있다. 기독교(基督敎) 신자(信者)는 대체로(大體로) 기독교(基督敎)만이 진리(眞理)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19세기(世紀)의 문화인류학자(文化人類學者) 프레이저는 기독교(基督敎)가 어떤 신화적(神話的) 발전(發展) 단계(段階)를 거치며 성장(成長)해왔는지 설명(說明)한다. 그의 《 황금가지(黃金가지) 》에 의(依)하면 기독교(基督敎)의 핵심(核心) 주제(主題)인 '살해(殺害)되는 신(神)'은 전세계(全世界) 어디에나 공통적(共通的)으로 존재(存在)하는 주제(主題)라고 주장(主張)한다. 그뿐아니라 기독교(基督敎)가 가진 성찬(盛饌), 세례(洗禮), 예배(禮拜) 개념(槪念) 등(等)도 여러 문화(文化)와 종교(宗敎)에서 유사(類似)한 형태(形態)로 발견(發見)된다고 주장(主張)한다. 휴머니즘의 입장(立場)에서 본다면, 어느 종교(宗敎)라도 전체(全體)에 주체(主體)가 함몰(陷沒)되어서는 안 된다. 무신론(無神論)의 입장(立場)에서, 종교(宗敎)는 단지(但只) 발전(發展)된 신화(神話)일 뿐이며, 거기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意味)를 부여(附與)하는 것이야말로 노예(奴隸)의 길로 보인다. 그래서 현대(現代)의 무신론(無神論) 혹은(或은) 휴머니즘 의 입장(立場)에서는, 인간(人間) 자신(自身)이 그의 주체성(主體性)을 잃지 않고 힘든 순간(瞬間)에 마음의 위안(慰安)을 얻고, 다시 그 주체성(主體性)을 회복(回復)하는 정도(程度)에서만 종교(宗敎)의 역할(役割)은 머물러야 한다고 보며, 더 나아가 종교적(宗敎的) 교훈(敎訓)은 없으며, 그것은 인간(人間) 주체(主體)가 판단(判斷)할 일이라는 것이다.

종교(宗敎) 통계(統計) [ 편집(編輯) ]

경제력(經濟力) [ 편집(編輯) ]

2008년(年) Pew Research Center에 의(依)하면 부유(富裕)한 국가(國家)에 거주(居住)할수록 사람들이 삶에서 종교(宗敎)의 중요성(重要性)을 낮게 보는 경향(傾向)이 있다. [5]

학력(學歷) [ 편집(編輯) ]

2016년(年) 퓨리서치센터 아시아 (35개국(個國)), 유럽 (36개국(個國)), 남아메리카(南아메리카) (30개국(個國)), 중동(中東) 북아프리카(北아프리카) (12개국(個國)), 북아메리카(北아메리카) (2개국(個國)), 아프리카 (36개국(個國)) 등(等)을 대상(對象)으로 유네스코 국제표준교육분류법(國際標準敎育分類法) 자료(資料)와 퓨리서치센터 의 종교별(宗敎別) 인구(人口) 통계(統計) 자료(資料) 등(等)을 종합(綜合)해 발표(發表)한 '세계(世界) 종교(宗敎)와 교육(敎育) 현황(現況)' 보고서(報告書)에 따르면 전세계(全世界) 종교(宗敎) 신자(信者) 중(中) 6억(億)8000만(萬) 명(名)(19%)이(李) 정규(正規) 교육(敎育)을 전혀(全혀) 받지 못했으며 비신자(非信者)가 정규(正規) 교육(敎育) 과정(過程)을 통해 학교(學校)에 다닌 기간(期間)은 평균(平均) 8년(年)6개월(個月)이지만 신자(信者)가 정규(正規) 교육(敎育)을 받은 기간(期間)은 7년(年)6개월(個月)이었다. 종교별(宗敎別)로 정규(正規) 교육기간(敎育期間)은 유대교(유대敎) 가 13년(年) 4개월(個月)로 가장 높고 기독교(基督敎) 9년(年)3개월(個月), 불교(佛敎) 7년(年)11개월(個月), 이슬람교(이슬람敎) 힌두교(힌두敎) 가 각각(各各) 5년(年)7개월(個月)이었으며 미국(美國) 을 비롯한, 이스라엘 , 서유럽(西유럽) 지역(地域)의 신자(信者)들은 정규(正規) 교육(敎育)을 받은 기간(期間)이 긴 반면(反面) 인도(印度) , 네팔 , 방글라데시 등(等)의 신자(信者)들 교육(敎育) 수준(水準)은 낮았다. 미국(美國) 내(內) 신자(信者) 중(中) 대학(大學) 졸업자(卒業者)가 가장 많은 종교(宗敎)는 힌두교(힌두敎) 로 77%로 가장 높았고 다음이 유니테리안 (67%), 유대교(유대敎) (59%), 미국성공회(美國聖公會) (56%), 미국장로교(美國長老敎) 불교(佛敎) (각각(各各) 47%), 연합감리교회 (46%), 무슬림 (39%), 장로교(長老敎) (PCA·33%),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後記聖徒敎會) (33%), 제칠일(第七日) 안식일(安息日) 예수재림교(再臨校) (28%), 오순절교단(五旬節敎團) (13%) 등(等)이었다. [6]

심리(心理) [ 편집(編輯) ]

미국(美國) 컬럼비아대학교(大學校) 정신과(精神科) 미나 와이스먼 교수(敎授) 연구(硏究)팀은 "종교(宗敎)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뇌피질(大腦皮質) 이 더 두껍다."는 연구결과(硏究結果)를 발표(發表)하며 종교(宗敎)가 심리적(心理的) 안정(安定)을 주는 결과(結果)라고 주장(主張)했다. [2]

분류(分類) [ 편집(編輯) ]

세계(世界)의 주요(主要) 종교(宗敎) 분포도(分布圖): 나라에 따라 가장 많은 신자(信者)의 수(數)를 가진 종교(宗敎)를 대표적(代表的)으로 표시(標示)

같이 보기 [ 편집(編輯) ]

참고(參考) 자료(資料) [ 편집(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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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各州) [ 편집(編輯) ]

  1. Clifford Geertz, "Religion as a cultural system".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selected essays, Geertz, Clifford . London: Fontana Press. 1993 pp. 87?125.
  2. [1]
  3. 안명준, <한눈으로 보는 성경적(聖經的) 조직신학(組織神學)> (도서출판(圖書出版) 기쁜날: 2014), 131.
  4. 안명준, <한눈으로 보는 성경적(聖經的) 조직신학(組織神學)> (도서출판(圖書出版) 기쁜날: 2014), 129-130.
  5. “Wealth and Religiousity” . 《Pew Research Center》. 2008년(年) 9월(月) 17일(日) . 2019년(年) 12월(月) 29일(日)에 확인(確認)함 .  
  6. [2]

외부(外部) 링크 [ 편집(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