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음악(音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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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음악(音樂) 아랍어(아랍語) 를 주로(主로) 쓰는 아랍 지역(地域)의 전통음악(傳統音樂)을 말한다. 넓게 보면 이슬람 음악(音樂)과 같은 뜻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좁게 보면 터키·페르시아 등(等)의 음악(音樂)과 구별(區別)하여 아라비아 반도(半島) (사우디아라비아)의 음악(音樂)을 뜻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이웃인 이라크·시리아·요르단·레바논·이스라엘 등(等) 각국(各國)의 아랍인(人) 음악(音樂)도 포함(包含)한다. 이슬람 교도(敎徒)의 음악적(音樂的) 영향(影響)은 중세(中世) 유럽·근세(近世) 이후(以後)의 인도(印度)·동남아시아(東南아시아)·에티오피아·수단(手段) 등(等)에까지 미쳤으며, 기독교(基督敎) 및 불교(佛敎)의 문명(文明) 속에서 자란 음악(音樂)과 함께 세계(世界)의 3대(大) 음악권(音樂圈)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류트 는 아랍 지역(地域)에서 전파(傳播)되었다. 1568년도(年度)에 만들어진 그림.

역사(歷史) [ 편집(編輯) ]

이슬람 이전(以前) [ 편집(編輯) ]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국(敎國) 창립(創立)(622)까지의 자연숭배(自然崇拜)나 우상숭배(偶像崇拜)를 했던 무명시대(無名時代)(無明時代)에도 아랍 음악(音樂)은 물론(勿論) 있었다. 유목생활(遊牧生活) 가운데서 원시적(原始的)인 노동(勞動)의 노래나 제전음악(祭典音樂)(祭典音樂)이(李) 발생(發生)했으나, 일찍부터 선진(先進) 문명지인(文明知人) 예멘, 악숨,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나바트, 이집트, 로마 등(等)의 직간접적(直間接的) 영향(影響)을 받았다. 이어 헤자스 지방(地方)(홍해(紅海)와 마주한 반도(半島) 북서부(北西部))을 중심(中心)으로 상업(商業)이 번성(蕃盛)하여 대상(對象)(隊商)의 활동(活動)이 융성(隆盛)해짐에 따라 노래(후다)가 발생(發生)했다. 2, 3세기(世紀)에 왕국(王國)이 남북(南北)에 건립(建立), 궁정(宮廷)에서 직업(職業) 음악가(音樂家)나 무희(舞姬)(舞姬)가 활동(活動)하고, 또한 악기(樂器) 하나로 각지(各地)를 돌아다니는 음유시인(吟遊詩人)(吟遊詩人)이(李) 중요(重要)한 구실을 하기 시작(始作)하였다. 따라서 후세(後世)의 아랍 음악인(音樂人)은 이 시대(時代)에 나타나기 시작(始作)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랍인(人)이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까지 번짐과 동시(同時)에 성지(聖地)(聖地)를 쫓겨난 유태인(猶太人)이 반도(半島)의 서해안(西海岸)에 남하(南下)하여 헤브라이 음악(音樂)이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사산조(朝) 페르시아(3-7세기(世紀))의 음악(音樂)도 크게 채택(採擇)되었다. 나슈브(戀歌), 라사(哀歌), 카시그(讚歌) 등(等)의 시(詩)(詩)가 생겨났으며, 시인(詩人)이 작시(作詩)·작곡(作曲)을 겸하였다.

이슬람 시대(時代) [ 편집(編輯) ]

622년(年)의 무함마드의 헤지라(메디나 聖遷) 이후(以後)의 이슬람 시대(時代)는 사라센 제국(帝國) 시대(時代)와 그 이후(以後)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음악사적(音樂私的)으로 다시 세분(細分)하면 정통(正統) 칼리프 시대(時代)(622-661), 옴미아드조(兆) 시대(時代)(661-750)의 융성기(隆盛期), 아바스조(兆) 시대(時代)(750-1258)의 거의 전반기(前半期)에 해당(該當)하는 전성기(全盛期)와 그 후반기(後半期)부터 현대(現代)에 이르는 정체기(停滯期)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융성기(隆盛期) [ 편집(編輯) ]

이슬람교(이슬람敎)에서는 음악(音樂)을 금제(禁制)(禁制)의 하나로 삼기 때문에 종교음악(宗敎音樂)은 끝내 생겨나지 못했다. 그러나 세속음악(世俗音樂)은 궁정(宮廷)·귀족(貴族)·부호(富豪) 등(等)의 보호(保護) 아래 교의상(敎義上)의 반대(反對)에도 불구(不拘)하고 여전히(如前히) 성행(盛行)하였다. 무함마드의 한 아내는 가희(歌姬) 출신(出身)이었으며, 아랍의 대표적(代表的) 악기(樂器)가 된 우드('ud)의 보급(普及)이 시작(始作)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우마(牛馬)위야 조(兆)에 와서는 이슬람 제국(帝國)이 건설(建設)되자 수도(首都)를 메디나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옮겨 페르시아나 비잔틴과 교섭(交涉)이 많아졌다. 그리하여 헬레니즘 문화(文化)를 연구(硏究)하고 재해석(再解釋)하여, 그리스의 과학(科學)이나 예술(藝術)이 시리아어(語)나 아랍어(아랍語)로 번역(飜譯)되어 과학적(科學的)인 음악이론(音樂理論)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다른 동양음악(東洋音樂)에서는 볼 수 없는 아랍 음악(音樂)의 특징(特徵)이 되었으며, 궁정(宮廷)의 할렘이 융성(隆盛)해지고 가희나 음악가(音樂家)의 사회적(社會的) 지위(地位)가 향상(向上), 일종(一種)의 계급(階級)을 형성(形成)하여 귀족(貴族) 및 부호(符號)와 유대(紐帶)를 맺었다. 일찍부터 음악이론(音樂理論)서도 저술(著述)되고 그리스어에 따라 음악(音樂)을 무시(無視)키(Musigi)라고 부르기 시작(始作)하였다.

전성기(全盛期) [ 편집(編輯) ]

다음의 압바스조(兆) 500년(年) 동안의 음악(音樂)의 전성기(全盛期)는 처음 100년간(年間)이라고 하겠으며, 한편(한便)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서 750년(年) 동안 융성(隆盛)했던 안달루스의 우마(牛馬)위야 조(條)에서는 초기(初期) 250년(年) 동안이 이슬람 음악(音樂)의 전성기(全盛期)였다. 압바스조(條)는 바그다드로 수도(首都)를 옮겨 공전(空前)의 대도시(大都市)를 만들었으며, 당시(當時)의 당나라(唐나라) 수도(首都) 장안(長安)(長安)이나 비잔틴의 수도(首都) 콘스탄티노플 및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와 함께 세계(世界)의 4대(代) 문화(文化) 중심지(中心地)가 되었다. 과학(科學)과 예술(藝術)이 궁정(宮廷) 귀족(貴族)의 보호(保護)를 받게 되었으며 특히(特히) <아라비안나이트>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제(第)5대왕(代王) 하룬 알-라쉬드(재위 786-809)의 호화(豪華)로운 궁정생활(宮廷生活) 속에는 음악(音樂)과 무용(舞踊)이 중요(重要)한 구실을 다하였다. 이 황금기(黃金期)에 음악학교(音樂學校)가 설립(設立)되어 많은 이론가(理論家)와 음악가(音樂家)가 배출(輩出)되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잘잘(Zal Zal)은 새로운 아랍 음계(音階)를 발견(發見), 그것이 오늘날 아랍 음악(音樂)의 최대(最大) 특징(特徵)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스하(下)크 알 마우실리는 <노래의 서(書), (Kitabal Aghani)>를 저술(著述)하였으며, 알 킨디(al-Kindi, 873년경(年頃). 류트의 4현과 리듬적(的) 선법(旋法)에 대(對)해 우주론적(宇宙論的) 입장(立場)에서 설명(說明))는 <음악(音樂)의 서>를 저술(著述)하였다. 후자(後者)는 현존(現存)하는 최고(最高)(最古)의 아랍 음악(音樂)서의 하나가 되었으며 또한 시르야브는 코르도바로 옮겨 코르도바 학파(學派)의 다수(多數) 명인(名人)(名人)이나 학자(學者)를 육성(育成)하였다.

정체기(停滯期) [ 편집(編輯) ]

10세기(世紀) 이후(以後)의 동쪽(東쪽) 바그다드의 칼리프, 11세기(世紀) 이후(以後)의 서쪽(西쪽) 파티마 조의(弔意) 칼리프는 이슬람 음악(音樂)의 정체기(停滯期)를 맞았으나 이 동안에도 이론가(理論家)를 배출(排出)하여, 특히(特히) 음계이론(音階理論)의 연구(硏究)로는 뛰어난 것이 많았다. 10세기경(世紀頃)에 나타난 라바브(rabab)가 보급(普及)된 것도 이 시대(時代)이며 풍압(風壓)(風壓) 오르간과 수압(水壓)(水壓) 오르간이 아랍에서 발달(發達), 유럽에 보급(普及)되어 오르간의 역사(歷史)에 큰 구실을 한 것도 이 시대(時代)였다. 1258년(年) 몽골의 바그다드 파괴(破壞)와 11-13세기(世紀)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支配), 계속(繼續)되는 오스만 투르크 및 티무르의 통치(統治)를 받아 서아시아(西아시아)의 이슬람권(이슬람圈)이 분열(分裂)하기 시작(始作)하자 터키나 페르시아는 독자적(獨自的)인 색채(色彩)를 띠기 시작(始作)하여 아랍 본토(本土)의 음악(音樂)과는 이미 그 본질(本質)이 다른 국민음악(國民音樂)을 형성(形成)하기 시작(始作)하였다. 한편(한便) 서아프리카(西아프리카) 북쪽(北쪽) 해안(海岸) 등(等)도 이슬람 음악권(音樂圈)으로 들어갔으며 또한 북방(北方)의 카프카스 지역(地域)과 멀리 동남부(東南部)의 인도(印度) 북부(北部)나 동인도(東印度) 제도(諸島)에도 이슬람교도(이슬람敎徒)의 손으로 이슬람 음악(音樂)이 보급(普及)되기 시작(始作)하였던 것이다.

키타브 알 아가니 [ 편집(編輯) ]

키타브 알 아가니(Kitab al-Aghani)라는, 노래의 서로 번역(飜譯)되는 이 책(冊)은 10세기(世紀)에 이스하(下)크 알 마우실리(實利)가 저술(著述). 이 책(冊)에는 시인(詩人)과 가수(歌手)들에 관(關)한 전기(電氣)(傳記)가 실려 있으며 궁정(宮廷)에서 연주(演奏)되는 음악(音樂)에 관(關)한 기록(記錄)도 있다. 또한 의식적(意識的)인 기교(技巧)의 성장(成長)과 확실(確實)한 여러 가지 형식적(形式的) 규약(規約)과 함께 궁정음악(宮廷音樂)은 대중음악(大衆音樂)과 유리(遊離)된 상태(狀態)에서 시작(始作)되어야만 한다고 지적(指摘)했다. 아랍족의 문화사(文化社)로서 단정적(斷定的)으로 평가(評價)할 수 없을 정도(程度)의 중요성(重要性)을 지닌다.

악리(樂理) 연구(硏究) [ 편집(編輯) ]

아랍인(人)의 악리(樂理) 연구(硏究)가 결실(結實)을 맺은 것은 코르도바였으며, 그리스적(的)·아랍적(的)인 이론(理論)이 여기서 완성(完成)을 보아 중세(中世) 유럽인(人)은 코르도바로부터 배우는 바가 많았으며 중세(中世) 음악(音樂)에의 영향(影響), 특히(特히) 세속음악(世俗音樂)에의 자극(刺戟)이 컸다. 이론가(理論家)의 제(第)1인자(人者)인 알리 알 이스파하니(Ali al-Isfahani)를 비롯하여 음악(音樂) 이론가(理論價), 철학자(哲學者) 및 과학자(科學者)로 유명(有名)한 알 파라비(Al-Farabi)의 저서(著書)인 음악(音樂)의 대서(大暑)(大書) (Kitab al-Musiqi al-Kabir)>가 현존(現存)하여, 최근(最近)에 프랑스인(人) 엘랑제르에 의(依)해 프랑스어(프랑스語)로 번역(飜譯) 출판(出版)되기도 했다. 또한 동양(東洋)의 다른 여러 나라와 현저(顯著)하게 다른 점(點)은 과학적(科學的)인 음악(音樂) 이론(理論)이 그리스로부터 들어와 발전(發展)했다는 점(點)이다. 음악이론(音樂理論)은 예술(藝術)로서라기보다 과학적(科學的)인 음악이론(音樂理論)으로서 발달(發達)한 점(點)이 중국(中國)과 흡사(恰似)하며 아랍의 우드('ud), 중국(中國)의 율관(律官)(律管)은 그리스의 모노코드(monochord)와 똑같은 기능(機能)을 발휘(發揮)하였다. 근세(近世) 인도(印度)의 음악이론(音樂理論), 특히(特히) 음계론(音階論) 및 리듬론(論)의 발달(發達)도 이슬람의 영향(影響)에 의(依)하는 점(點)이 많았다. 우드를 비롯한 현악기(絃樂器)에 음(陰)의 수리론(受理論)(數理論)을 반영(反映)하여 척도(尺度)(尺度)가 새겨져 있다는 점(點)도 진귀(珍貴)하다. 음률(音律)은 옛날에는 9율(律)(九律)이었다고 전(傳)해지나 그 기원(起源)에 대(對)해서는 알 수 없다. 9율(律)은 4도(度) 음정(音程)을 차례(次例)로 겹쳐 얻은 음정(音程)을 1옥타브 안에 배열(配列)시킨 것이다.

선법(旋法) [ 편집(編輯) ]

아랍 특유(特有)의 전통(傳統)에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요소(要素)가 가미(加味)되는 가운데, 특히(特히) 우마(牛馬)위야 시기(時期)(Ummayad, 661-750)에서는 8개(個)의 온음계(온音階)적 선법(旋法) 조직(組織)의 발생(發生)을 볼 수 있다. 음정구조(音程構造) 면(面)에서 이 8개(個)의 온음계(온音階)적 선법(旋法)은 유럽의 교회(敎會) 선법(旋法)과 유사(類似)하다. 비록 그 유사성(類似性)이 선율적(旋律的)인 데까지 뻗쳤는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조직(組織)은 이샤끄 알 마우실리(實利)(Ishaq al-Mawsili, 850년(年) 사망(死亡)), 가수(歌手)들·작곡가(作曲家) 및 류트의 명인(名人) 등(等)에서 그 선법(旋法) 조직(組織)에 관(關)한 훌륭한 점(點)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류트 명인(名人)들은 라이벌 학파(學派)가 제창(提唱)한 새 양식(樣式)(주로(主로) 페르시아에서 발생(發生)한 것들)에 대(對)해서 그 조직(組織)을 유지(維持)해 왔다. 이스하(下)크 알 마우실리(實利)의 제자(弟子)인 지르야브(Ziryab)도 에스파냐에서 같은 명성(名聲)을 얻었는데 그는 우드('ud, lute)에 다섯 번째(番째)의 현(現)(絃)을 가(加)함으로써 인정(認定)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當時)엔 고전적(古典的)인 악기(樂器)가 퍽 인기(人氣)였다. 특히(特히) 이스하(下)크 알 마우실리(實利)와 그의 문하생(門下生)들의 노력(努力)에도 불구(不拘)하고 9세기(世紀)와 10세기(世紀) 동안에 발생(發生)한 양식(樣式)으로 생각되는 여러 가지 새로운 양식(樣式)들 중(中)에서 오늘날까지 도입(導入)되어 남아 있는 기초(基礎) 이론(理論)인 순전히(純全히) 3/4 음정(音程)의 온음계(온音階)적(온음(온音)과 반음(半音)) 선법조직(旋法組織)은 큰 영향력(影響力)을 미쳤다. 이로 인(因)해서 오랜 음조직(陰組織)이 없어지게 되고 다수(多數)의 새로운 선법(旋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3세기(世紀)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30종(種)의 선법(旋法)이 만들어졌는데, 그 대부분(大部分)이 3/4 음정(音程)을 포함(包含)하고 있다. 그것이 중동(中東)의 예술음악(藝術音樂)에 특징적(特徵的)인 면(面)을 남겼다. 또한 13세기(世紀)-16세기(世紀)에 걸친 저명(著名)한 음악이론가(音樂理論家)들, 특히(特히) 사피(斜皮) 앗 딘 알 우르마위(Safi al-Din al-Urmawi), 꾸트브 앗 딘 쉬라지(Qutb al-Din Shirazi), 압(壓)드 알 까디르('Abd al-Qadir), 알 라지끼(al-Ladhiqi) 등(等)은 옥타브 스케일로서 이 선법(旋法)을 정의(定義)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當時)에 사용(使用)되었던 음표(音標) 및 음악(音樂)을 분석(分析)하는 방법(方法)을 통해 보면, 분명히(分明히) 당시(當時)의 선법(旋法)이란 것이 보통(普通) 4도(度), 때로는 3도(度)(중간(中間) 3도(度) 혹은(或은) 장(腸) 3도(度)) 혹은(或은) 5도(度)를 잇는 작은 단위(單位)가 한정(限定)된 수(數)의 결합(結合)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妥當)하다. 그 선법(旋法)(Shadd, awaz, 후(後)에 마캄이라 부르게 됨)은 음정(音程)이 단순(單純)하게 연속(連續)해서 변형(變形)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大體로) 자주 나타나는 어떤 일정한 선율형(旋律型)을 지님으로써, 두 개(個) 혹은(或은) 뚜렷한 형(刑)으로 그 특징(特徵)이 있는 몇 개(個)의 단위(單位)가 일정한 법칙(法則)에 따라 융합(融合)되는 것이 보통(普通)이다. 또한 전체적(全體的)으로 첫음(音)과 마침음의 위치(位置)가 선법(旋法)으로 말미암아 정(定)해진다. 즉(卽) 마침음이 되는 으뜸음(으뜸音)(아래옥타브음(音))을 가지고 윗단위(單位) 선율적(旋律的) 가능성(可能性)을 탐색(探索)하기도 하고 아랫단위의 선율적(旋律的) 가능성(可能性)을 탐색(探索)하기도 하는데 흔히 쓰이는 선율형(旋律型)은 위 옥타브의 음(音)으로 시작(始作)되게끔 구성(構成)되었다. 탐색(探索) 과정(過程)에(특히 연주자(演奏者)의 기교(技巧)를 테스트하도록 짜여진 경과구(經過句)에서) 더 많은 단위(單位)를 간결(簡潔)하게 도입(導入)할 수도 있는데 조바꿈(調바꿈)이 매우 오묘(奧妙)한 효과(效果)를 준다.

마캄 [ 편집(編輯) ]

마캄(maqam)은 아랍·터키·페르시아의 음악(音樂) 용어(用語)이다. 본래(本來)는 아랍어(아랍語)로 7-8세기경(世紀頃)에 아랍에 들어온 여러 나라의 선법(旋法)을 일컫는 명칭(名稱)에 불과(不過)했으나 아랍 음악(音樂) 이론(理論)의 발달(發達)에 따라 그것을 음계(音階)의 체계(體系)로 집약(集約), 정리(整理)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순전히(純全히) 음계(音階)의 뜻으로, 또는 마침음의 위치(位置)에 의(依)한 선법(旋法)의 뜻으로도 해석(解釋)되었는가 하면, 전통적(傳統的)인 선율형(旋律型)을 가리키는 의미(意味)로도 해석(解釋)되어 현재(現在) 아랍 국가(國家)들 내부(內部)에서도 지역(地域)마다 다른 마캄의 집약체계(集約體系)를 가지고 있다.

리듬 [ 편집(編輯) ]

리듬을 정의(定義)하는 데 있어서 대부분(大部分)의 아랍 음악인(音樂人)들은 관습(慣習)에 의(依)한 불가분(不可分)의 기본적(基本的)인 시간(時間) 단위(單位)를 설정(設定)한다. 거기에서 이론상(理論上)의 선율(旋律) 주기(週期)를 도출(導出)하는데, 각(各) 주기(週期)는 시간(時間) 단위(單位)의 정(定)해진 수(數)로 이루어지며 그 주기(週期) 안에서 센박(센拍), 여린박(여린拍), 그리고 쉼을 잘 배치(配置)해 놓음으로써 식별(識別)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주기(週期)는 길이가 같더라도 극히(極히) 명확(明確)하다.알 타(他)킬 알 아우알알 타(他)킬 알 타 니연주(演奏)에서는 몇 개(個)의 쉼표(쉼標)가 들어갈 수 있지만 기본적(基本的)인 패턴은 그대로 유지(維持)되어야 한다. 선율(旋律) 기법(技法)의 발전(發展)과 더불어 리듬형(型)의 수(數)도 9세기(世紀)의 8개(個)에서 16세기(世紀)에는 20개(個) 이상(以上)으로 증가(增加)했다. 후자(後者)의 20여개(餘個) 중(中)에는 페르시아인(人)과 터키인에 의(依)하여 만들어진 것도 몇 개(個) 포함(包含)되어 있으며, 한편(한便) 수피(樹皮)(Sufi) 교파(敎派)의 의식(意識) 가운데 포함(包含)되었던 아크사(社)크(aksak) 댄스 리듬도 채택(採擇)된 것이 몇 개(個) 있다. 양식상(樣式上)의 의미(意味)를 갖는 '무거운' 리듬과 '가벼운' 리듬의 차이점(差異點)이 옛날에는 퍽 강(强)했다. 몇 개(個)의 리듬 주기(週期)는 굉장히(宏壯히) 큰 시간(時間) 단위(單位)의 수(數)를 포함(包含)하는 관계(關係)로(작으면 24, 크면 200까지) 많이 쓰이지 못했다. 일반적(一般的)으로 하나의 리듬 주기는 한 악곡(樂曲)에만 쓰여진다. 한때 압(壓)드 알 까디르('Abd al-Qadir, ~1435)는 수개(數個)의 리듬이 도입(導入)되거나 두 개(個)의 리듬이 그 안에서 동시(同時)에 사용(使用)되는 형식(形式)을 시도(試圖)한 바 있다.

형식(形式) [ 편집(編輯) ]

9세기(世紀) 또는 이미 이슬람 이전(以前)에 있었던 것으로 몇몇 장르로 나뉘는 수많은 형식(形式)이 인정(認定)됐다. 그러나 애석(哀惜)하게도 당시(當時) 사용(使用)되던 몇 개(個)의 기법적(技法的)인 용어(用語)들에 대(對)한 의미(意味)는 확실히(確實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중(中) 몇 개(個)는 시구(始球)(보통(普通) 운율(韻律))와 노래 사이에 구조적(構造的)인 상호(相互) 관련성(關聯性)이 있었던 것을 암시(暗示)하지만 시적(詩的) 운율(韻律)과 같은 이름을 지닌 리듬 주기(週期) 사이에는 확실(確實)하게 어떤 관련성(關聯性)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뒤늦게 아브드 알 카아디르는 형식(形式)에 대(對)한 유익(有益)한 설명(說明)을 하였다. 한 형식(形式)과 그 외(外) 형식(形式)들을 구별(區別)하여 언급(言及)했는데 그 외(外) 형식(形式)들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악곡(樂曲)에 가사(歌詞)가 있거나 없거나, 가사(歌詞)가 있다면 그 독창부(獨唱部)가 아랍어(語)이건 페르시아어(語)이건, 또는 그 악곡(樂曲)에 악기(樂器)의 전주(前週)(前奏)의 여부(與否), 형식(形式) 자체(自體)가 무소절(無小節)(無小節)인지 혹은(或은) 하나(혹은 그 이상(以上))의 리듬 주기(週期)를 갖는지, 후렴(後斂)이 있는지 없는지 등(等)이다. 그가 지적(指摘)한 형식(形式)들 중(中) 가장 중요(重要)한 형식(形式)은 바시트(basit)와 나쉬드 알 아랍(Nashid al-'arab)이다.

바시트 [ 편집(編輯) ]

바시트(basit)는 압(壓)드 알 까디르의 형식이론(形式理論) 중(中)에서 가장 중요(重要)한 것으로, 이것은 주어진 세 개(個)의 리듬 중(中)에서 그 중(中) 하나에 아랍어(아랍語)로 된 독창부(獨唱部)가 있으며 악기(樂器)의 전주(全州)가 뒤따른다.

나쉬드 알 아랍 [ 편집(編輯) ]

나쉬드 알 아랍(Nashid al-'arab)에서는 4개(個)의 아랍 운율(韻律)이 노래되는데, 둘째와 셋째가 성악곡(聲樂曲)으로 연창(연窓)(演唱)되는 동안에 첫째와 셋째는 자유로운 리듬으로 불린다.

나우바 [ 편집(編輯) ]

나우바(nawba)는 가장 복합성(複合性)을 띤 형식(形式)인데, 이것은 4악장(樂章)의 모음곡(모음曲)이다. 제(第)1악장(樂章)(qawl)과 제(第)4악장(樂章)(furubasht)은 바시트(basit)를 닮도록 되어 있다. 제(第)2악장(樂章)(ghazal)은 페르시아의 독창곡(獨唱曲)이며, 제(第)3악장(樂章)(tarana)은 아랍이나 페르시아의 4행시(行詩)(ruba'i)의 곡(曲)인데, 바시트로서 동일(同一)한 리드믹한(韓) 한계(限界)를 벗어나지 못한다. 같은 선율적(旋律的)이고 리듬적(的)인 선법(旋法)은 4악장(樂章) 모두에 쓰일 수 있으며 각(各) 악장(樂章)은 악기(樂器)의 도입(導入)으로 시작(始作)될 수 있다.

현대(現代)의 아랍음악(音樂) [ 편집(編輯) ]

16-19세기(世紀)의 대부분(大部分)의 아랍 세계(世界)는 오스만 제국(帝國) 에 지배(支配)되었다. 이 때는 정치적(政治的) 내지(乃至) 문화적(文化的)으로 쇠퇴기(衰退期)라고 할 수 있다. 궁정(宮廷)에 의존(依存)했던 예술(藝術) 음악(音樂)은 터키의 고전음악(古典音樂)에 많은 영향(影響)을 입었지만 터키음악(音樂) 역시(亦是) 아랍과 페르시아의 전통(傳統)에 힘입은 바 컸기 때문에 큰 변화(變化)를 초래(招來)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16세기(世紀)까지의 선법(旋法)과 리듬은 20세기(世紀) 예술(藝術) 음악(音樂)에 적용(適用)할 수 있다. 현대(現代)의 마캄(maqam)은 중세(中世)의 그것보다는 다소(多少) 복잡(複雜)해졌으나 구조(構造) 면(面)에서는 근본적(根本的)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특히(特히) 이집트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지역(地域)의 극히(極히) 중요(重要)한 기악적(器樂的) 형식(形式)은 타크심(甚)(taqsim)과 바쉬라프(bashraf)이다.

타크심(甚) [ 편집(編輯) ]

타크심(甚)(taqsim)은 무소절(小節)의 즉흥곡(卽興曲). 보통(普通) 여기에는 독창(獨唱)이 자주 나타나지만, 일단(一旦)의 악기(樂器) 주자(走者)들은 마캄을 계속(繼續)하도록 돌아가면서 연주(演奏)한다. 선율악기(旋律樂器)가 내는 악구(惡口) 반복(反復) 저음(低音)의 악구(惡口)에 의(依)해 리듬주기(週期)를 나타내는 가운데 하나의 변형(變形)인 타크심(甚)의 소절(小節) 형식(形式)도 보인다.

바시라프 [ 편집(編輯) ]

바시라프(bashraf)는 주로(主로) 단절(斷絶)(單節)을 포함(包含)하는 간주곡(間奏曲)에 의(依)해 분리(分離)되는 같은 길이(khana)의 4악절(樂節)로 구성(構成)되는 소절(小節) 형식(形式)인데, 간주곡(間奏曲)은 앙상블로 연주(演奏)되며 각(各) 악절(樂節)은 여러 독창자(獨唱者)에 의존(依存)한다.

아랍음악(音樂)의 주요(主要) 악기(樂器) [ 편집(編輯) ]

역사적(歷史的) 관계(關係)로나 풍토(風土)의 근사성(近似性)으로 보아 아랍 악기(樂器)는 인도(印度)의 영향(影響)을 많이 받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랍 특유(特有)의 우드('ud), 라바브(rabab), 나카라(naqqara)를 중심(中心)으로 하는 악기편성(樂器編成)은 인도(印度) 고유(固有)의 비나(v na), 사랑기(s rangi), 타블라 바야(tabla-bahya)를 위주(爲主)로 하는 인도(印度)의 악기(樂器) 편성(編成)과 엄격히(嚴格히) 구별(區別)되어야 하며, 또한 과학적(科學的)인 악기(樂器)가 악리상(樂理上)(樂理上)으로도 나타나 있다는 점(點)에서 동양(東洋)에서는 그 유례(類例)가 없다고 하겠다.

우드 [ 편집(編輯) ]

우드('ud)는 아랍 특유(特有)의 나우바(nawba)를 연주할 때 사용(使用)되는 발현악기(撥絃樂器)(撥絃樂器)로서, 보통(普通) 5현(絃) 구조(構造)로 되어 있다. 최저현 이외(以外)는 모두 겹줄이며, G-A-d-g-e의 순열(順列)로 맞춘다. 그러나 현(玄)의 수효(數爻)는 4현(縣)에서 6현(縣)까지 있으며, 조현법(調絃法)(調絃法)도 4도(度)를 기본(基本)으로 한다. 최고(最高)·최저현에서는 여러 가지 음정(音程)이 되고, 그 종류(種類)가 많다. 연주할 때는 새의 날개깃으로 만돌린처럼 퉁긴다. 원래(元來) 페르시아에 기원(起源)을 둔 이 악기(樂器)는 10세기(世紀) 이후(以後), 아랍 음악(音樂)에서는 중요시(重要視)되어 왔고, 고래(古來)의 이론서(理論書)의 대부분(大部分)이 이 악기(樂器)를 기초(基礎)로 음계이론(音階理論)을 고찰(考察)하고 있으며, 페르시아의 음악(音樂)뿐만 아니라 12세기(世紀) 이후(以後)의 남유럽(南유럽)(특히(特히) 에스파냐)이나 동유럽(東유럽)에서 여러 가지로 변형(變形)되어 사용(使用)되었다.

라바브 [ 편집(編輯) ]

라바브(rabab)는 아랍의 찰현악기(擦絃樂器)(擦絃樂器)로서 우드와 같이 아랍의 대표적(代表的)인 악기(樂器). 이 악기(樂器)는 아랍에서 페르시아와 터키로 전(傳)해졌으나, 거기서는 케만체라고 불리고, 그 형태(形態)도 많이 변(變)하였다. 인도네시아나 타이에도 아랍의 라바브와 흡사(恰似)한 형태(形態)의 악기(樂器)가 전(傳)해졌고, 중국(中國)의 호궁(胡弓)(胡弓)이나 몽고(蒙古)의 마두금(馬頭琴)(馬頭琴) 등(等)도 같은 계통(系統)의 악기(樂器)이다.

카눈 [ 편집(編輯) ]

카눈(qanun)은 아랍·터키의 고전음악(古典音樂)에 사용(使用)되는 치터족(族)(Zither族)의 발현악기(撥絃樂器)이다. 엷은 상자(箱子) 표면(表面)에 78개(個)의 양장(洋裝)(羊腸) 또는 나일론 현(絃)을 매고 좌우(左右) 집게손가락에 끼운 골무로 연주(演奏)한다. 아랍 음악사(音樂史)를 통해 가장 중요시(重要視)되는 우드 다음가는 현악기(絃樂器)로 치며, 현(玄)의 왼쪽에 달린 장치(裝置)에 의(依)해 미소(微笑)한 음정(音程)의 조절(調節)이 가능(可能)하여 많은 마캄에 조현(朝見)(組絃)하여 연주할 수 있다.

딴부르 [ 편집(編輯) ]

딴부르(tanbr)는 서아시아(西아시아) 및 동유럽(東유럽)에서 사용(使用)되는 긴 넥(棹)을 가진 류트족(族)(lute族)의 발현악기(撥絃樂器)이다. 지방(地方)에 따라 형태(形態)나 주법(州法)에 얼마쯤의 차이(差異)가 있으며, 종류(種類)가 많은데 대부분(大部分) 긴 넥에 17-26 정도(程度)의 플렛이 있고, 3-6개(個)의 현(絃)을 나무껍질이나 새의 죽지, 뿔조각(彫刻), 플라스틱 등(等)의 골무(플렉트럼)로 퉁기는데, 주로(主로) 무도(無挑)나 노래의 반주(伴奏)에 사용(使用)된다.

나카라 [ 편집(編輯) ]

나카라(naqqara)는 음높이(音높이)를 달리하는 2개조(個組)의 솥형(型) 북이며, 이란 등(等) 아랍 여러 나라에서 보게 된다. 대형(大型)의 것은 말 위에 달게 되며, 그것이 팀파니로 되었다.

다(多)라부카 [ 편집(編輯) ]

다(多)라부카(darabuka)는 꽃병(꽃甁) 형태(形態)의 나무 또는 흙으로 만들어진 통(桶)(胴)의 단피고(單被告)(單皮鼓)로서, 왼쪽에 끼고 오른손으로 친다. 이것이 타이로 건너와서 톤이라든가 타프 등(等)으로 불리고 있다.

타르 [ 편집(編輯) ]

타르(tar)는 이집트, 시리아 등(等)의 대형(大型) 단피고(單被告)(單皮鼓)이거나 방울 없는 탬버린의 대형(大型)북이다. 그러나 타르는 북(北)의 의미(意味)로서 널리 쓰이며 방울 달린 탬버린으로 불린다. 또 이란의 타르는 현악기(絃樂器)의 이름으로도 되어 있다.

다프 [ 편집(編輯) ]

다프(daff) 또는 데프(deff)는 히브리어로는 토프(tof)라고도 불려서 유래(由來)가 깊은 악기(樂器)이다. 탬버린의 별칭(別稱)이다.

나이 [ 편집(編輯) ]

아랍에서는 피리를 흔히 나이(nay) 또는 네이(ney)라고도 부르며, 갈대피리도(度) 사나이, 스루나이, 그리고 중국(中國)서는 소오나 등(等)으로 불리며 동방(洞房)으로 전파(傳播)되어 왔다.

같이 보기 [ 편집(編輯) ]

참고(參考) 문헌(文獻) [ 편집(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