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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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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 안드레아
사도, 순교자(殉敎者)
출생(出生) 1세기(世紀) 초반(初盤)
베싸이다
선종(腺腫) 1세기(世紀) 중반(中盤)
파트라
교파(敎派) 보편교회(普遍敎會)
축일(祝日) 11월(月) 30일(日)
상징(象徵) X자형(字形) 십자(十字) , 복음서(福音書)
수호(守護) 스코틀랜드 , 바베이도스 , 우크라이나 , 러시아 , 그리스 , 키프로스 , 루마니아 , 어부(漁夫), 생선(生鮮) 장수, 밧줄 제작자(製作者)

안드레아 ( 그리스어 : Ανδρ?α? 안드레아스 [ * ] →남자(男子)다운 , 1세기(世紀) 초(初) ~ 기원후(紀元後) 1세기(世紀) 중순(中旬), 말) 또는 안드레 예수 그리스도 열두 사도 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베드로 의 형제(兄弟)이다. 그리스어에서 유래(由來)한 이름으로, ‘사내다움’ 또는 ‘용기(勇氣)’를 뜻한다. 형(兄)과 달리 성실(誠實)하고 온건(穩健)하며 신중한 성격(性格)의 인물(人物)로, 러시아 에 최초(最初)로 복음(福音)을 전파(傳播)했다고 한다. 초대(招待)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總大主敎) 로 훗날(後날) 그리스도교 성인(成人) 으로 여겨지고 있다. 세계교회(世界敎會)가 사용(使用)하는 개정(改正)공동성서정(抒情)과(RCL)에 따르면 사도 성(聖) 안드레아 또는 안드레의 축일(丑日)은 11월(月) 30일(日) 이다. 상징물(象徵物)은 그물과 물고기·X자형(字形) 십자가(十字架)이며, 어부(漁夫)·생선(生鮮)장수· 스코틀랜드 · 러시아 · 우크라이나 의 수호(守護) 성인(成人)이다.

생애(生涯) [ 편집(編輯) ]

안드레아는 요르단강(요르단江) 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갈릴리 호수(湖水)의 북쪽(北쪽) 연안(沿岸)에 있는 베싸이다 라는 지방(地方)에서 요한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형(兄) 베드로 와 제베대오(隊伍)의 두 아들인 야고보 , 요한 과 함께 어부(漁夫)로 살았다. [1] 안드레아는 본래(本來) 세례자(洗禮者) 요한 의 제자(弟子)였으며, 예수 그리스도 가 세례자(洗禮者) 요한으로부터 세례(洗禮)를 받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세례자(洗禮者) 요한은 예수를 가리키며 “이 세상(世上)의 죄(罪)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羊) 이 저기 오십니다” 라고 했다. [2]

이튿날 아침, 안드레아는 요한과 함께 또 지나가는 예수를 보았다. 스승으로부터 예수가 약속(約束)된 구세주(救世主)인 메시아 라는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돌연(突然) 예수에 대(對)한 호기심(好奇心)이 생겨나 그의 뒤를 밟아 계속(繼續)해서 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마침내 예수가 뒤를 돌아보며 자신(自身)에게 무슨 볼일이 있느냐고 질문(質問)하였다. 안드레아와 요한은 “선생님(先生님)이 묵고 계시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는 와서 보라며 그들을 자택(自宅)으로 데리고 가서 그대로 자신(自身)의 제자(弟子)로 간택(揀擇)하였는데, 요한은 "그날 예수와 함께 지냈다"라고 말한다.

마태오의 복음서(福音書) 에서는 예수께서 어업노동자(漁業勞動者)들인(人) 베드로 , 제베대오(隊伍)의 두 아들인 야고보, 요한과 함께 안드레아에게 "나를 따르라. 너희가 사람을 낚는 어부(漁夫)가 되도록 하겠다" [3] 라고 말씀하자(瑕疵),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고 말한다. [4]

사도 가 된 이후(以後) 성서(聖書) 에서 안드레아에 대(對)한 언급(言及)은 세 군데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는 예수를 자기(自己) 집에 모셔 예루살렘 의 멸망(滅亡)과 세계(世界)의 종말(終末)이 언제 일어나는지를 예수에게 질문(質問)한 일이었고, [5] 다른 하나는 예수가 오병이어의 기적(奇跡)을 행(行)하였을 때 그 빵과 물고기를 가진 소년(少年)을 발견(發見)해 예수에게 데리고 왔을 때다. [6] 마지막 하나는 예수가 수난(受難)을 당(當)하기 수일(數日) 전(前) 예수를 만나고자 찾아온 이방인(異邦人)의 요청(要請)을 필립보(褓) 와 함께 예수에게 전구(轉求)를 청(請)했을 때이다. [7]

성령(聖靈)의 강림(降臨) 이후(以後), 안드레아는 다른 사도(使徒)들과 같이 체포(逮捕)되어 감옥(監獄)에 투옥(投獄)되었으나 천사(天使) 의 도움으로 탈옥(脫獄)하여, 이튿날 아침에 곧장 예루살렘 성전(聖殿)으로 가서 다시 복음(福音)을 전파(傳播)하다가 다시 제사장(祭司長)들에게 붙잡혀 법정(法廷)에 끌려나가 심(甚)하게 매질을 당(當)한 뒤 풀려났다.

성(聖) 안드레아상(上), 성(聖) 베드로 대성당(大聖堂)

위경(胃經) ‘사도(使徒) 안드레아의 행전(行纏)’은 비(非)(非)신화화(神話化)하기 어려운 역사적(歷史的) 사전(辭典)을 간직하고 있다. 전승(傳承)에 의(依)하면 안드레아는 그리스 북부(北部) 지방(地方)의 에피루스(Epirus) 등지(等地)에서 선교(宣敎)하였고 자신(自身)의 후계자(後繼者)로 스타키스 주교(主敎)를 임명하였다 한다. 70년(年) 경(警) 로마 황제(皇帝) 네로 의 대대적(大大的)인 그리스도교 박해(迫害)의 영향력(影響力)으로 인해 안드레아는 로마 제국(帝國) 의 속주인(主人) 마케도니아 의 이남(以南) 지역(地域)인 아카이아(오늘날 그리스 전역(轉役))의 주(駐)파트라스 시(市)에서 체포(逮捕)되어 에게오(誤) 총독(總督)에게 심문(審問)을 받고 X자(字) 형태(形態)의 십자가(十字架) 에 못박혀 순교(殉敎)하였다. 안드레아는 자신(自身)이 매달릴 십자가(十字架)로 X자형(字形) 십자가(十字架)를 선택(選擇)한 이유(理由)는 그리스어로 X는 그리스도 라는 단어(單語)의 첫글자(글字)이기 때문이다. 형장(刑場)에 끌려갔을 당시(當時) 안드레아는 십자가(十字架)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兩손)을 높이 쳐들면서 “오, 영광(榮光)의 십자가여(十字架女)! 너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拘束)하신 주님(主님)께서는 지금(只今) 나를 부르시는가! 속히(速히) 나를 이 세상(世上)에서 끌어올려 주님(主님)의 곁으로 가게 해 다오” 하며 기쁨에 넘치는 기도(祈禱)를 바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묘사(描寫)한 그림이나 조각상(彫刻賞)에는 십자가(十字架)를 든 모습이 많다.

십자가(十字架)에 매달린 이틀 동안 안드레아는 계속(繼續)해서 군중(群衆)들을 향(向)해 설교(說敎)를 하였으며, 이를 보다못한 군중(群衆)이 안드레아에게 십자가형(十字架刑) 을 언도(言渡)한 집행관(執行官)에게 안드레아를 십자가(十字架)에서 내려줄 것을 요청(要請)하였다. 집정관(執政官)이 그들의 요청(要請)에 따라 군사(軍士)들에게 시켜 그를 십자가(十字架)에서 내려오게 하였다. 안드레아가 십자가(十字架)에서 내려오자 갑자기 하늘에서 한 줄기의 빛이 내려와 그를 비추었다. 빛은 한동안 그를 감쌌으며 하늘로 다시 올라간 순간(瞬間) 안드레아는 숨을 거두었다.

이후(以後) 안드레아의 유해(遺骸)는 원래(元來) 콘스탄티노폴리스 에 있다가 357년(年) 콘스탄티우스 2세(歲) 의 지시(指示)에 따라 그리스 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후(後) 1208년(年)에 이탈리아 의 아말피에 있는 성(聖) 안드레아 성당(聖堂)로 옮겨졌고, 15세기(世紀) 에는 그의 두개골(頭蓋骨)이 로마 성(聖) 베드로 대성당(大聖堂) 에 옮겨졌다. 그러다가 1964년(年) 9월(月) 교황(敎皇) 바오로 6세(歲) 그리스 정교회(正敎會) 와 화해(和解)를 하고 친교(親交)를 나누기 위해 그의 유해(遺骸)를 다시 파트라이로 보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같이 보기 [ 편집(編輯) ]

각주(各州) [ 편집(編輯) ]

  1. 마르코복음 1:29
  2. 요한복음(요한福音) 1장(張) 29절(節)
  3. 마태복음 4장(張) 18-19절(節)
  4. 마태복음 4장(章) 20절(節)
  5. 마르코복음 13장(章) 3~4절(節)
  6. 요한복음(요한福音) 6장(章) 8~9절(節)
  7. 요한복음(요한福音) 12장(章) 20~22절(節)

외부(外部) 링크 [ 편집(編輯) ]

전임(前任)
(초대(初代)(?))
제(第)1대(代) 비잔티움 주교(主敎)
30년(年) (?) - 38년(年) (?)
후임(後任)
스타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