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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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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飛擊震天雷)
대한민국(大韓民國) 보물(寶物)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와 중완구(中碗口)(국립진주박물관(國立晉州博物館))
지정번호(指定番號) 보물(寶物) 제제(製劑)860호호
( 1986년(年) 3월(月) 14일(日) 지정(指定))
소재지(所在地) 서울특별시(서울特別市) 종로구(鍾路區) 세종로(世宗路) 국립고궁박물관(國立故宮博物館)
제작시기(製作時期) 조선시대(朝鮮時代) 선조(宣祖)
비고(備考) 국립진주박물관(國立晉州博物館) 보관(保管)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날리는 대완구(大碗口)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飛擊震天雷)는 조선(朝鮮) 중기(中期)에 군사목적(軍事目的)으로 사용(使用)된 폭탄(爆彈)으로,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 화포장(火砲匠) 이장손(李長孫)이(李) 처음 발명(發明)하였다.

대완포구(浦口)(大碗砲口)로 발사(發射)하여 5백(百)~6백보(百步)(1보(報)(步)의 사정거리(射程距離)를 가지는 일종(一種)의 시한(時限) 폭탄(爆彈)이다.

둥근 박(朴) 모양(模樣)의 형태(形態)에 표면(表面)은 무쇠로 처리(處理)를 하였으며, 내부(內部)는 화약(火藥) 과 철조각(鐵彫刻)(빙철(鐵)) 등(等)을 장전(裝塡)하게 되어 있어 폭발(爆發) 시(時) 파편(破片)이 튀어나가도록 한 것으로, 지금(只今)의 세열수류탄(細裂手榴彈) (폭발(爆發)할 때에 금속(金屬) 파편(破片)이 사방(四方)으로 날아가서 살상(殺傷) 범위(範圍)를 확대(擴大)하는 수류탄(手榴彈))하고 비슷한 형태(形態)다.

개요(槪要) [ 편집(編輯) ]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는 지름이 21 cm, 둘레가 68cm로 도화선(導火線)을 감는 둥근 나무 그릇과 얇은 철조각(鐵彫刻), 뚜껑 등(等)으로 구성(構成)되어 있다. 주둥이가 넓고 포신(砲身)이 좁은 모양(模樣)으로 생긴 완구(玩具)를 화포(火砲) 로 이용(利用)해 발사(發射)하였다.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에 대(對)해 이서(李曙)(李曙)가 지은 《 화포식(火砲式) 》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解說)하고 있다.

그 체형(體型)은 박(朴)과 같이 둥글고 부리는 네모가 졌으며, 그 부리에는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있다. 내부(內部)에는 도화선(導火線)인 약선(約線)을 감는 목곡(曲)(木谷)이 있고, 또한 목곡(曲)이 들어가는 죽통(竹筒)(竹筒)이 있으며 내부(內部)에는 빙철(鐵)(憑鐵)이(李) 채워진다. 특히(特히) 목곡(曲)은 폭파시간(爆破時間)을 조절(調節)하는 장치(裝置)로서 그 재료(材料)는 단목(單목)(檀木)을 사용(使用)하며, 그 골을 나사모양(螺絲模樣)으로 파서 폭파(爆破)를 빠르게 하려면 열(熱) 고비로, 더디게 하려면 열다섯 고비로 하되, 중약선(中藥線)을 감아 죽통(粥筩)에 넣어 한 끝은 죽통(竹筒) 아래 중심(中心)에 꿰고, 또 한 끝은 죽통(竹筒) 위(位) 개철(個鐵) 밖으로 내되 두 치를 넘지 못하게 하며, 이 때에 죽통(竹筒)과 개철(個鐵) 주위(周圍)에는 홈이 생기지 않도록 종이로 밀봉(密封)한 뒤 화약(火藥)은 허리구멍으로 채워넣고 격목(格目)으로 구멍을 막은 뒤 안구(眼球)에 실어 발사(發射)하되 불꽃을 막으려면 진천뢰(震天雷) 심지(心지)에 불을 붙이고 나서 완구(玩具) 심지(心지)에 불을 붙인다.
 
— 이서(李曙),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

화약(火藥)이 안에서 폭발(暴發)하는 방식(方式)으로 진(陣)을 함락(陷落)시키는 데 가장 좋은 무기(武器)였지만 실전(實戰)에 활용(活用)하는 사람이 없었다가, 1592년(年) 선조(宣祖) 25년(年) 9월(月) 1일(日) 박진(朴振) 이 경주(競走)를 수복(收復)할 때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성(城) 밖에서 발사(發射)하여 큰 효과(效果)를 보았다. 《 선조실록(宣祖實錄) 》에는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성(城) 안으로 쏘자, 이것이 뭔지 몰랐던 적(敵)들이 구경하느라고 서로 밀고 당기며 만지다가 포가 터져서 적장(敵將)을 포함(包含)한 20명(名)이 즉사(卽死)를 하여 이튿날 성(城)을 버리고 서생포로 도망(逃亡)하였다고 기록(記錄)하고 있다. [1]

유산(遺産) [ 편집(編輯) ]

현재(現在)까지 남아 있는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로는 육군박물관(陸軍博物館)에서 보물(寶物)로 지정(指定)한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외(外)에 경남(慶南) 하동군(河東郡) 고전면 고하리 고현성지(地)에서 발굴(發掘)된 유물(遺物)과 진주성지(晋州聖地)에서 발굴(發掘)된 파편(破片), 그리고 전라남도(全羅南道) 장성군(長城郡) 삼서면 석마리에서 발굴(發掘)되어 연세대학교 박물관(博物館)에 소장(所藏)되어 있는 것이 있다.

2018년(年) 11월(月) 15일(日), 호남문화재연구원(湖南文化財硏究院) 은 전북(全北) 고창군(高敞郡) 무장읍성(武裝邑城) 에서 11점(點)의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발견(發見)했다고 밝혔다. [2] [3] 이전(以前)까지 모두 6점(點)의 유물(遺物)이 보고(報告)된 바 있다. [4]

각주(各州) [ 편집(編輯) ]

  1. 〈25년(年), 선수(選手) 26권(卷)〉 . 《 선조실록(宣祖實錄) 》. 1592년(年) 9월(月) 1일(日).  
  2. 박상현 (2018년(年) 11월(月) 15일(日)). “고창(高敞)서 조선시대(朝鮮時代) 시한폭탄(時限爆彈)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11점(點) 발견(發見)” . 《연합뉴스(聯合뉴스)》 (서울). 2018년(年) 11월(月) 15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18년(年) 11월(月) 15일(日)에 확인(確認)함 .  
  3. 백종규 (2018년(年) 11월(月) 15일(日)). “조선(朝鮮)의 귀신폭탄(鬼神爆彈)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무더기로 발견(發見)” . 《YTN》. 2018년(年) 11월(月) 15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18년(年) 11월(月) 15일(日)에 확인(確認)함 .  
  4. 조선우(朝鮮于) (2018년(年) 11월(月) 15일(日)). “조선(朝鮮) 비밀병기(祕密兵器)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고창(高敞)서 대량(大量) 출토(出土)” . 《KBS 뉴스》. 2018년(年) 11월(月) 15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18년(年) 11월(月) 15일(日)에 확인(確認)함 .  

외부(外部) 링크 [ 편집(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