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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케네 문명(文明) - 위키백과(百科),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百科事典) 본문(本文)으로 이동(移動)

미케네 문명(文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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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케네 문명(文明)의 주요(主要) 지역(地域)

뮈케나이 문명(文明) 또는 미케네 문명(文明) 그리스 남부(南部) 펠로폰네소스반도(半島) 에 있는 북동부(北東部) 아르골리스 미케네 의 유적지(遺跡地)에서 이름을 따온 고대(古代) 그리스 의 문화(文化)를 일컫는다. 아테나이 , 필로스 , 테바이 , 티린스 도 미케네 문명(文明)의 주요(主要) 영역(領域)이었다. 고대(古代) 그리스의 청동기(靑銅器) 시대(時代) 말기(末期)는 호메로스 서사시(敍事詩) 등(等) 고대(古代) 그리스의 문학(文學)과 신화(神話) 가 탄생(誕生)한 시기(時期)이며, 고대(古代) 그리스의 최대(最大) 전성기(全盛期)에 해당(該當)한다.

무역(貿易)의 혜택(惠澤)을 입은 미노스 문명(文明) 과 달리 미케네인(人)들은 전쟁(戰爭)과 무역(貿易)을 통해 발전(發展)했다.

설명(說明) [ 편집(編輯) ]

선형문자(線型文字) B 의 예
미케네의 프레스코

미케네 문명(文明)은 헬라도스 문화(文化) (Helladic culture)가 미노스 문명(文明) 의 영향(影響)으로 발달(發達)하던 3700년(年) 전(前)부터 동부(東部) 지중해(地中海) 에서 청동기(靑銅器) 문명(文明) 이 쇠퇴(衰退)하던 3200년(年) 전(前)까지 번성(蕃盛)했다. 미케네의 멸망(滅亡)은 흔히 도리아인(人) 의 침략(侵略)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 밖에 화산(火山) 분화(分化)로 인한 자연(自然) 재해(災害)나 기후(氣候) 변화(變化) 같은 가설(假說)도 제기(提起)되고 있다.

미케네 문명(文明)의 주요(主要) 도시(都市)는 아르골리스 의 미케네와 티린스, 메세니아 의 필로스, 아티카 의 아테네, 보이오티아 테베 오르코메노스 , 테살리아 이올코스 이다. 크레타 에서 미케네인(人)들은 크노소스 를 정복(征服)했다. 또 전형적(典型的) 가내(家內) 성소(聖召)의 형태(形態)인 레르나 신앙(信仰) 같은 의식(意識)이 치러진 지역(地域)도 있는데, 미케네인(人)들은 일반적(一般的)인 형태(形態)의 신전(神殿) 건물(建物)을 건설(建設)하지 않았다. 미케네의 취락(聚落)은 에페이로스 [1] , 마케도니아 [2] , 에게해(에게海) 의 섬들, 소아시아(小아시아) 해안(海岸), 키프로스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형문자(線型文字) B 로 비문(碑文)이 쓰인 미케네의 유물(遺物)은 심지어(甚至於) 독일(獨逸) [3] 에서도 발견(發見)되며, 조지아 에서 미케네의 검(劍)이 발견(發見)되기도 했다. [4]

미케네 문명(文明)은 귀족(貴族) 전사(戰死) 계급(階級)이 통치(統治)했다. 약(約) 3500년(年) 전(前)에 미케네인(人)들은 미노스 문명(文明) 의 크레타 섬까지 진출(進出)했으며, 미(美)노스 문자(文字)( 선형문자(線型文字) A )를 받아들여 선형문자(線型文字) B 로 발전(發展)시켰다.

미케네인(人)들은 미(美)노스인(人)들을 패배시켰을 뿐 아니라, 그리스 전설(傳說)에 따르면 미케네의 강력(强力)한 적수(敵手)였던 도시국가(都市國家) 트로이아 를 두 번(番)이나 패퇴(敗退)시켰다고 한다. 이 멸망(滅亡)의 증거(證據)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나 그 밖에 신화(神話)에 경도(傾倒)된 사료(飼料)에서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미케네와 트로이아 전쟁(戰爭) 이 실제로(實際로) 일어났는지는 확실(確實)하지 않다. 1876년(年) 독일(獨逸) 고고학자(考古學者) 하인리히 슐리만 은 소아시아(小아시아)( 터키 ) 서부(西部) 히살(히煞)리크 에서 유적(遺跡)을 발굴(發掘)하고, 이 지역(地域)을 트로이아라고 주장(主張)했다. 이 유적(遺跡)은 트로이아에 대(對)한 호메로스의 기록(記錄)과 일치(一致)하지 않는다고 주장(主張)하는 사람도 많지만, [5] 이에 동의(同意)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6]

미케네 귀족(貴族)들은 아치형으로 된 높은 천장(天障)에 크고 둥근 매장실(賣場室)이 있고, 돌로 만든 직선(直線) 통로(通路)가 있는 벌집 무덤 ( tholoi )에 매장(埋葬)됐다. 미케네인(人)들은 이런 무덤에 망자(亡者)와 함께 검(劍)과 같은 여러 무구(舞具)들을 함께 묻었다. 귀족(貴族)들은 황금(黃金) 가면(假面), 관(管), 갑주(甲胄), 보석(寶石) 박힌 무기(武器) 등(等)도 부장품(副葬品)으로 묻었다. 망자(亡者)는 호메로스 의 서사시(敍事詩)에 나오는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처럼 화장(化粧)되어 철기(鐵器) 시대(時代) 식(式)으로 황금(黃金) 항아리(缸아리)에 담긴 것이 아니라 앉은 자세(姿勢)로 묻혔다. 미라 로 매장(埋葬)된 귀족(貴族) 무덤도 있다.

사제(司祭) 계급(階級)은 존재(存在)하지 않았다. 도장(圖章), 반지(半指), 이들의 몸짓을 묘사(描寫)한 봉납(捧納)한 조상(祖上)(彫像)을 통해 신(神)과 숭배자(崇拜者)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조상(祖上)을 보면 숭배자(崇拜者)들은 팔을 접거나 오른팔을 들거나 한 손을 이마에 얹는 자세(姿勢)를 취(取)하고 있다. 신은 예수 가 나타날 때 취(取)하는 자세(姿勢)처럼 두 손을 들거나 팔을 뻗어 무언가를 주거나 받는 모양(模樣)이다. 미케네의 범신전(汎神殿)에는 필로스와 미케네 시대(時代)의 크노소스에서 나온 선형문자(線型文字) B 비문(碑文)이 모여 있다. 몇몇 신(神)의 이름은 올림포스의 신(神)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알 수 없는 것도 많이 있다. 가령(假令), 아레스 신은 별명(別名) 인(人) 에니알리오스 (Enyalios)로 나온다. 아폴론 은 크노소스에서 "PA-JA-WO"(Paian)이라고 나온다. 더 유명(有名)한 것으로는 "A-TA-NA PO-TI-NI-JA"( Athena Potnia , 여신(女神) 아테나), "E-RE-U-TI-JA"( Eileithyia , 나중에는 그저 출산(出産) 때 숭배(崇拜)되던 신(神)이 되었다), 디오뉘소스 , 포세이돈 도 있다. 포세이돈의 경우(境遇) 이미 "지구(地球)를 뒤흔드는 신(神)"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고전기(告傳旗) 그리스에는 전(傳)하지 않는 배우자(配偶者) 포세(布稅)이다(Poseida)와 함께 등장(登場)하기도 한다. 필로스에서는 데메테르 페르세포네 로 보이는 두 여신(女神)이 함께 등장(登場)하기도 한다. 복수(復讐)의 여신(女神) 에리니에스 도 등장(登場)한다.

미케네의 궁정(宮廷) 프레스코 화(禍) [7] 도 발견(發見)됐다. 특히(特히) 필로스, 미케네, 오르코메노스, 테바이, 티린스가 유명(有名)하며, 궁정(宮廷)이 아닌 개인(個人) 소유(所有)의 것도 일부(一部) 있다. 초기(初期) 프레스코 장식(裝飾)은 LH IIA 시기(時期)(약(藥) 3500년(年) 전(前))의 것이다. 키클라데스 의 영향(影響)을 받은 것과 미노아에서 직접(直接) 유래(由來)된 것 모두 미노아 전통(傳統)을 고수(固守)하고 있으며, 경우(境遇)에 따라 장식(裝飾)을 줄이고 자신(自身)들 지역(地域)에 맞는 주제(主題)로 꾸민 것도 있다. 가령(假令), 알현실(現實) 안에 사자(獅子)나 날개 없는 그리핀을 두거나, 복도(複道)에 조상(祖上)을 줄지어 놓거나 하는 식(式)이다. 미노아식(式) 동물(動物) 장식(裝飾)과 달리, 미케네는 자연(自然)에 대(對)해서도 동물(動物)을 묘사(描寫)할 때 오직 인간(人間)에 중점(重點)을 두거나 사냥물로만 나타나고 있다. 황소가 뛰는 프레스코판(版)은 미케네와 티린스에서 발견(發見)된다.

청동기(靑銅器) 시대(時代) 붕괴기(崩壞期) ( Bronze Age collapse : 1206~1150 BC)의 고대(古代) 근동(近洞) 과 고대(古代) 그리스

미케네 문명(文明)은 3180년(年) 무렵에 멸망(滅亡)한다. 수많은 도시(都市)들이 약탈되고 학살(虐殺)의 흔적(痕跡)이 있었다. 이후(以後)에 이 지역(地域)은 역사가(歷史家)들이 그리스 암흑기(暗黑期) 로 부르는 시대(時代)로 넘어가며, 일부(一部) 미케네인(人)들은 아나톨리아 , 다른 그리스 섬들 혹은(或은) 키프로스로 도주(逃走)하기도 했다. 이 시기(時期)에 그리스 인구(人口)는 엄청난 감소(減少)를 겪었으며, 궁정(宮廷)과 관련(關聯)된 제한적(制限的) 문자(文字)도 사라지고 말았다. 역사가(歷史家)들은 전통적(傳統的)으로 이 쇠퇴(衰退)의 원인(原因)을 외부(外部)나 다른 그리스인(人) (이 지역(地域) 주민(住民)을 복속(服屬)시켰다는 도리스인 )의 침략(侵略)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일련(一連)의 지진(地震), 대규모(大規模) 가뭄과 같은 자연(自然) 재해(災害)나 기후(氣候) 변화(變化)와 같은 가설(假說)도 제기(提起)되고 있다.

미술(美術) [ 편집(編輯) ]

미케네의 장례(葬禮) 가면
하인리히 슐리만 은 이것이 "아가멤논의 마스크"라고 주장(主張)했다.

크레타 문명(文明)과 달리 미케네의 경우(境遇)는 전사(戰死)(戰士)인 남자(男子)가 지배적(支配的)이었다. 죽은 사람의 얼굴에 씌운 엷은 금판(金판)(金板)의 <마스크>(미케네의 수갱(垂坑) 분묘(墳墓)에서 발굴(發掘)된 것, 3600년(年) 전(前), 아테네국립미술관(國立美術館) 소장(所長))는 남자(男子)다운 전사(戰士)의 얼굴을 꾸밈 없이 잘 묘사(描寫)한 작품(作品)이다. 수염(鬚髥)이 있는 이 얼굴은, 아직 예술적(藝術的) 숙련(熟鍊)을 거치지 않은 조형(造形)(造形)의 경직성(硬直性)을 보여주나, 그 표정(表情)에는 의지(意志)의 강인성(强靭性), 끈기(끈氣), 결단력(決斷力)이 반영(反映)되어 있다. 마스크는 고대(古代) 예술(藝術)이 대개(大槪) 그렇듯, 장례(葬禮)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죽은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여 혼(魂)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매장(埋葬)된 죽은 사람의 몸을 보존(保存)하고 그 모습을 영속화하기 위(爲)한 것이었다. 얼굴을 사실적(事實的)으로 충실히(忠實히) 나타낸 것은 그 때문이다.

미케네 예술(藝術)의 특색(特色)은 특히(特히) 건축(建築)에 나타나 있다. 미케네 궁전(宮殿)은 크레타 궁전(宮殿)과 달리 관(官)(館)이(李) 아니고 언덕 위에 쌓아 올린 거대(巨大)한 성(城)이다. 미케네나 티린스의 산성(山城)이 대표적(代表的)인 예(例)다. 미케네에는 '사자문'이라고 불리는 성문(城門)이 남아 있다. 그 구조(構造)를 보면, 한 쌍(雙)의 통돌에 문중방(門中枋)(門中枋)을 얹고, 그 위에 두 마리 사자(獅子)를 부조(浮彫)한 삼각형(三角形)의 커다란 석판(石版)이 얹혀 있다. 이 사자문의(死者問議) 안쪽 오른쪽에 있는 수갱분묘(垂坑墳墓) 다섯 기 속에서 슐리만은 무수(無數)한 재보(財寶)를 발견(發見)했다.

성(城) 입구(入口)에서 차례(次例)로 통로(通路)를 더듬어 궁전(宮殿) 깊숙한 곳에 들어가면, 귀중품(貴重品)의 배치(配置)나 구조(構造)에서 미케네인(人) 고유(固有)의 풍습(風習)이 나타난다. 가장 특색(特色)이 있는 것은, 앞뜰을 가진 메가론(megaron)을 채용(採用)한 것이다. 확실히(確實히) 이 메가론은 미케네 문명(文明)의 소유자(所有者)가 인도(印度)유럽어족(語族)임을 말해 주고 있다. 메가론은 그리스어로 '넓은 방(房)'이란 뜻이고, 본래(本來) 원시(遠視) 그리스의 주거(住居) 형태(形態)였다. 소위(所謂) '남자(男子)의 크고 넓은 방(房)'의 평면도(平面圖)는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장방형(長方形)으로서 현관(玄關) 다음에 전실(前室)이 있고, 그 뒤에 커다란 주실(主室)의 있다. 주실 중앙(中央)에는 난로(暖爐)가 비치(備置)돼 있다.

미케네 궁전(宮殿)은, 이와 같이 거주(居住) 건축(建築)의 근본(根本) 형식(形式)에서, 그리스적(的) 특징(特徵)을 나타낸다. 그러나 일반적(一般的)으로 보면, 여기에서도 크레타 미술(美術)에서 강(强)한 영향(影響)을 받았다. 특히(特히) 건축(建築)의 세부(細部)나 내부(內部) 장비(裝備)는 크레타 미술(美術)을 모방(模倣)한 점(點)이 많다. 그들은 기분(氣分)이 좋은 거실(居室)이나 욕탕(浴湯)의 설비(設備)를 갖추고, 그들은 넓은 방(房)을 좋아하는 벽화(壁畫)로 장식(裝飾)했다. 그런 경우(境遇), 회화(繪畫)에서 미케네의 요소(要素)와 크레타의 요소(要素)가 결합(結合)했다고 하겠다. 이러한 벽화(壁畫)의 한 예(例)는 티린스의 성(性)을 장식(裝飾)한 프레스코의 단편(短篇)인 <멧돼지 사냥>(아테네 국립미술관(國立美術館) 소장(所長))이다. 얼핏 보아 크레타풍(風)이라고 판단(判斷)되는 동물(動物)이 경묘(輕妙)한 필치(筆致)로 벽면(壁面)에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프레스코를 주의(注意) 깊게 살펴보면, 얼핏 본 유사성(類似性)에도 크레타 양식(樣式)과 다른 점(點)을 발견(發見)할 수 있다. 멧돼지에게 덤벼들고 있는 개를 보면 한 마리 개가 멧돼지 등(等)에 뛰어들어 물어뜯고 있다. 크레타 미술(美術)에서는 모두가 특수한 의도(意圖)라는 것을 갖지 않아서 여유(餘裕)가 있고 옹색(壅塞)하지 않는 취향(趣向)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개(個)들이 멧돼지를 유일(唯一)한 목표(目標)로 쫓고 있는 식(式)으로, 그림 전체(全體)가 한 방향(方向)을 취(取)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케네 미술(美術)은 크레타인(人)의 유화(油畫)(柔和)하고 미려(美麗)한(韓) 예술(藝術)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고, 아주 늠름(凜凜)한 것으로 양식화(樣式化)한 것이다.

미케네 외(外)에 티린스나 오르코메노스 그 밖의 여러 곳에 산재(散在)하는 지하(地下) 묘실(墓室) 건축(建築)도 미케네 문명(文明)의 한 특색(特色)이다. 이것은 언덕의 경사면(傾斜面)이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쪽으로 긴 통로(通路)를 파내고, 그 막바지에 입구(入口)가 있어, 여기에서부터 지하(地下)의 원추형(圓錐形)의 묘실(墓室)로 통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 묘실(墓室)의 입구(入口)는 각별(各別)히 아름답게 장식(裝飾)한 형적(形跡)(形跡)이 있다. 덧붙인다면, 그리스 왕후(王后)들의 장례식(葬禮式)에서는 개나 말 내지 노예(奴隸)까지도 공물(貢物)로 도살(屠殺)하는 풍습(風習)이 있었다.

각주(各州) [ 편집(編輯) ]

  1. Tandy, p. xii. "Figure 1: Map of Epirus showing the locations of known sites with Mycenaean remains"; Tandy, p. 2. "The strongest evidence for Mycenaean presence in Epirus is found in the coastal zone of the lower Acheron River, which in antiquity emptied into a bay on the Ionian coast known from ancient sources as Glykys Limin (Figure 2-A)."
  2. Aegeobalkan Prehistory - Mycenaean Sites
  3. Bernstein Linear B in Germany {{ Archived 2016년(年) 8월(月) 30일(日) - 웨이백 머신
  4. Boston University - The Historical Society
  5. Burkert, Walter. Greek Religion , p. 121; Meyer, E. RE Suppl. XIV, pp. 813?815.
  6. See sources cited at Homeric Troy .
  7. For a fuller synopsis of Mycenaean frescoes, see the relevant section of Prehistoric Archaeology of the Aegean Archived 2008년(年) 2월(月) 13일(日) - 웨이백 머신 , Dartmouth College .

참고(參考) 문헌(文獻) [ 편집(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