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饅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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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饅頭)
종류(種類) 만두류(饅頭類) ,
관련(關聯) 나라별(別) 요리(料理) 한국(韓國) 요리(料理) ,
궁중(宮中) 요리(料理)
주(株) 재료(材料) 만두피(饅頭皮),
비슷한 음식(飮食) 교자(餃子) , 만(萬)트 , 모모 , 바오쯔 , 부즈 , 밴새 , 자(者)오쯔 , 훈(勳)툰 , 힌칼리(리)
군만두(군饅頭)

만두(饅頭) (饅頭)는 밀가루 등(等)을 반죽하여 얇게 민 만두피(饅頭皮)에 채소(菜蔬) 고기 등(等)의 를 넣어 빚은 [1] 한국(韓國) 요리(料理)이다. [2] 고려시대(高麗時代)에 중국(中國)에서 전래(傳來)된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3] [4] [5] 여러 가지 방법(方法)으로 조리(調理)할 수 있으며, [1] 한반도(韓半島) 내 지역(地域)마다 여러 가지 종류(種類)의 만두(饅頭)가 있다. [6] 과거(過去) 궁중(宮中) 요리(料理) 에 속(屬)했으나, 이제 슈퍼마켓 이나 음식점(飮食店) , 분식집(粉食집) , 포장마차(布帳馬車) 에서, 또는 길거리 음식(飮食) 으로 흔히 볼 수 있다. [7] 이웃 나라인 중국(中國) 일본(日本) 등(等) 다른 여러 문화권(文化圈)에도 만두(饅頭)와 비슷한 만두류(饅頭類) 요리(料理)가 존재(存在)한다.

이름 유래(由來) [ 편집(編輯) ]

한국어(韓國語) "만두(饅頭)(饅頭)"는 바시키르어 · 키르기스어(語) · 타타르어(語) " 만(萬)트 ( манты )", 아르메니아어(語) " 만(萬)티 ( ????? )", 아제르바이잔어(語) · 튀르키예어 " 만(萬)트 ( mantı )", 우즈베크어 " 만(萬)트 ( manti )", 위구르어(語) " 만타 ( ????? )", 카자흐어 " 만(萬)티 ( м?нт? )", 타지크어(語) " 만투 ( манту )", 파슈토어(語) " 만투 ( ???? )" 등(等) 비단길(緋緞길) 을 따라 중앙아시아(中央아시아) 에 이르는 지역(地域)의 여러 비슷한 음식(飮食)과 같은 어원(語源) 을 공유(共有)한다. [8] [9]

중국어(中國語) " 만터우 ( ?? ; 饅頭 )" 또한 어원(語源)이 같으며, 과거(過去)에는 한국어(韓國語) 만두(饅頭)와 마찬가지로 를 넣어 빚은 음식(飮食)을 뜻했으나, 지금(只今)의 만터우 는 중국(中國)의 자(者)오쯔 딤섬 , 샤오롱바오(誤) 등(等)의 얇은 피가 아닌 소를 채우지 않고 찌거나 구운 찐빵 과 비슷한 음식(飮食)을 뜻한다. [8] [9] [10] [11] [12]

한국(韓國)에서 만두(饅頭)라는 말을 많이 사용(使用)하게 된 시기(時期)는 조선(朝鮮) 후기(後期)에 들어서 부터이다. 만두(饅頭)란 조선(朝鮮) 전기(前期)까지만 해도 주로(主로) 상화(尙火)라고 불리었는데, 청나라(淸나라) 에 의(依)해 병자호란(丙子胡亂) 등(等)을 겪으면서 오랑캐 의 머리라는 만두(饅頭)(蠻頭)와 음(音)이 같은 만두(饅頭)(饅頭)라 부르며 원수(怨讐)들의 머리를 씹어 먹듯이 즐긴다는 의미(意味)로 많이 사용(使用)하게 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굳어진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13]

역사(歷史) [ 편집(編輯) ]

기원(起源) [ 편집(編輯) ]

역사적(歷史的)으로 밀을 가장 먼저 재배(栽培)했던 지역(地域)은 기원전(紀元前) 90세기(世紀) 경(頃) 아나톨리아 반도(半島)이며, 기원전(紀元前) 30세기(世紀) 경(頃) 유프라테스 강(江)과 티그리스 강의(講義) 메소포타미아 문명(文明) 이 대량(大量) 재배(再拜) 한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메소포타미아인(人)들은 밀가루를 물과 반죽한 뒤 뜨거운 돌 위에 넓게 펴서 '닌다'라는 이름의 빵을 만들어 먹었다. 이후(以後) 메소포타미아의 요리책(料理冊)에서 '푀겔헨'이라는 요리(料理)가 발견(發見) 되는데, 이는 닌다 위에 다진 고기를 얹고, 다시 닌다를 얹은 후(後) 익혀 먹는 음식(飮食)이다. 현재(現在) 만두(饅頭)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조리법(調理法)이다.

기원전(紀元前) 550년(年)에 메소포타미아 문명(文明) 자리에 번성(蕃盛)했던 페르시아 제국(帝國)은 사각형(四角形)으로 만든 무발효(無醱酵) 밀반죽 위에 다진 고기와 양념을 속을 채워 먹는 요리(料理)인 '요시파라(爬羅)'라는 요리(料理)를 먹었다. 이 요시파(派)라는 중앙아시아(中央아시아) 지역(地域)에 퍼져 시시바라, 추츠바라, 두시(時)바라, 최츼라 등(等) 다양(多樣)한 만두(饅頭) 조리법(調理法)의 어원(語源)이 된다. 당시(當時) 페르시아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中國)의 한나라(漢나라)와 교역(交易)하고 있었고, 실크로드를 따라 만두(饅頭)가 중국(中國)으로 전래(傳來) 된다. 그 과정(過程)에서 물이 부족(不足)한 중앙(中央)아시아, 중동(中東) 지역(地域)에서는 화덕(火덕)에 굽거나 튀기는 방식(方式)으로 바뀌었다.

중국인(中國人)들은 이 음식(飮食)을 '이민족(異民族)의 밀가루 음식(飮食)'이란 뜻의 후(後)빙(胡餠) 이라고 불렀다. 이 후(後)빙은 시간(時間)이 지나며 중원의 음식(飮食)으로 정착(定着), 중국(中國) 문화(文化)와 융합(融合)을 이루어 현재(現在)의 지엔빙(煎?, 전병(煎餠)), 웨빙(月?, 월병(月餠))이 되었다. 후(後)빙은 중앙아시아(中央아시아)의 굽는 방식(方式)에서 벗어서 물이 풍부(豐富)한 중국(中國) 문화권(文化圈)의 삶고 찌는 조리법(調理法)과 결합(結合)하게 된다. 찌는 방식(方式)은 만터우(饅頭)며, 삶는 방식(方式)은 탕빙(湯?)이라 하였으나, 탕빙은 수제비, 만둣국(饅頭국) 등(等) 다양하게 추정(推定)될 뿐 정확(正確)한 조리법(調理法)이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고사(中國故事) 유래(由來) [ 편집(編輯) ]

나관중(羅貫中)(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三國志演義)》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고사(枯死)(故事)가 실려있다. < 삼국시대(三國時代) 촉(燭)(蜀)나라의 승상(丞相) 제갈공명(諸葛孔明) (諸葛孔明)이(李) 남만(南蠻·지금의 미얀마 부근(附近))을 정벌(征伐)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수(麗水)(濾水)의 풍랑(風浪)이 심(甚)하여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부하(部下) 하나가 남만의 풍속(風俗)에 따라 사람 목을 베어 머리를 수신(修身)(水神)에게 바칠 것을 권(勸)했다. 공명은 적지일지라도 더 이상(以上) 사람의 목숨을 해(害)칠 수는 없다며 밀가루 반죽에 양(羊)과 돼지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처럼 빚어서 바쳤다.>

이 고사(故事)로 인해 만두(饅頭)가 남만인(萬人)의 머리를 뜻하는 ‘만두(饅頭)(蠻頭)에서 유래(由來)했다는 설(說)이 퍼져있으나, 일부(一部) 전문가(專門家)들은 고사(枯死) 자체(自體)가 정사(情事)(正史)에는 나오지 않는 허구(虛構)(虛構)라서 역사적(歷史的) 근거(根據)로 삼기에는 많이 부족(不足)하다고 한다. 삼국시대(三國時代) 이전(以前)인 후한(後漢)(後漢) 시대(時代)에 최식(崔寔)이 지은 《사민월령(四民月令)(四民月令)》에 이미 만두(饅頭)라 할 만한 음식(飮食)이 등장(登場)한다는 점(點)이 이를 뒷받침한다.

타지 전래(傳來) [ 편집(編輯) ]

만두(饅頭)와 유사(類似)한 요리(料理)는 전세계적(全世界的)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각(各) 나라별(別)로 다양한 요리법(料理法)을 가지고 있다. 밀가루 음식(飮食)이 옛 메소포타미아 문명(文明)에서 출발(出發)하면서 만두(饅頭) 유사(類似)한 요리(料理)가 등장(登場)하였고, 이것이 동쪽(東쪽)의 아시아 를 거쳐서 다시 유럽 으로 퍼졌다는 설(說)이 있다. 한반도(韓半島)에는 14세기(世紀)에 원나라(元나라) 를 통해 소개(紹介)되었다고 여겨지거나, 그보다 더 이른 시기(時期)에 중동(中東) 에서 비단길(緋緞길) 을 통해 들어왔다고 보기도 한다.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食品營養學科) 교수(敎授)는 그의 논문(論文) ‘만두(饅頭) 문화(文化)의 역사적(歷史的) 고찰(考察)’을 통해 “ 국수 의 기원(起源)이 실크로드 를 통한 밀가루 의 전래(傳來)에 있듯 만두(饅頭) 역시(亦是)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왔다는 설(說)에 주목(注目)할 필요(必要)가 있다”라고 주장(主張)한다. 실제로(實際로) 실크로드를 중심(中心)으로 만두(饅頭)와 유사(類似)한 요리(料理)가 발견(發見)되고 있으며, 만(萬)띄, 만(萬)트, 만터우, 만두(饅頭) 등(等) 명칭(名稱)과 형태(形態)가 닮아 있다는 점(點)도 있다. 단(單), 일반적(一般的)으로 중앙아시아(中央아시아)의 만두(饅頭) 요리(料理)는 한국(韓國)을 정복(征服)한 몽골 제국(帝國) 에 의(依)해 전파(傳播)되었다고 여겨진다. 사실(事實) 의외로(意外로) 과거(過去)에 지금(只今)과 같은 형태(形態)의 만두(饅頭)와 유사(類似)한 요리(料理)는 세계적(世界的)으로 찾기 어려웠고 거의 대부분(大部分) 나라의 기록(記錄)에도 상당히(相當히) 늦게 등장(登場)한다.

한국(韓國) 에서 언제부터 만두(饅頭)를 먹기 시작(始作)하였는지에 대(對)해서는 여러 가지의 의견(意見)이 있으나 일반적(一般的)으로 고려(高麗) 시대(時代) 후반(後半) 이후(以後)부터로 보고 있다. 고려사(高麗史) 충혜왕조(兆) 에 내주(來週)(內廚)에 들어가서 만두(饅頭)를 훔쳐먹는 자(者)를 처벌(處罰)하였다는 기록(記錄)이 있으며, ‘ 훈몽자회(訓蒙字會) ’,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등(等)에서는 만두(饅頭)를 상화(尙火) 라고 하여 “상화(尙火)는 그 모양(模樣)과 성질(性質)이 한국인(韓國人)의 기호(嗜好)에 맞는 관계(關係)로 한국(韓國) 사신(使臣)이 오면 그들을 접대(接待)하는 데 썼다”고 했다. 고려(高麗) 가요(歌謠) 인 〈 쌍화점(雙花店) 〉에 나오는 상화도 이것을 가리키는데 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린 반죽을 찐 것을 말한다.

한반도(韓半島) 전래(傳來) [ 편집(編輯) ]

가장 오래된 한글 음식(飮食) 서적(書籍)인 " 음식디미방 "( 1670년(年) 경(警))에서는 메밀가루 로 풀을 쑤어서 반죽하고 삶은 와 다진 꿩고기 를 볶아서 소를 넣고 빚어 새옹에 삶아 내었다고 한다. 1800년대(年代)의 " 주찬(走竄) (酒饌)"에는 소 내장인(內臟人) 양(量)과 처녑 그리고 숭어 살을 얇게 저며 소를 넣은 만두(饅頭)가 나온다. 한국(韓國)에서 만두(饅頭)란 말이 처음 기록(記錄)된 것은 " 영접도감(迎接圖鑑) (迎接都監)의궤(儀軌)"(1643년(年))에 나오는데, 명나라(明나라) 에서 온 사신(使臣)을 대접(待接)하기 위하여 특별히(特別히) 만들었다고 하며, 그 후(後)에는 궁중(宮中)의 잔치에도 종종(種種) 차렸다고 한다. 조선(朝鮮)의 조리서인(調理西人) '규합총서(閨閤叢書)'를 보면, 만두피(饅頭皮)는 술을 넣고 발효(醱酵)하여 부풀린 반죽을 쓰고 있다. [13]

한국(韓國)의 만두(饅頭)는 전통적(傳統的)으로 북부(北部) 지방(地方)에서 발전(發展)되어 왔다. 남부(南部) 지방(地方)에서는 만두(饅頭)가 보편적(普遍的)이지 못하였는데, 북부(北部) 지방(地方)에서는 추운 날씨에 메밀과 밀의 재배(栽培)가 보편적(普遍的)이었던 반면(反面), 남부(南部) 지방(地方)에서는 온난(溫暖)한 지역(地域)이라 쌀 위주(爲主)의 농사(農事)가 이루어졌으며 쌀을 이용(利用)한 음식(飮食) 위주(爲主)로 발전(發展)하였다. 그리고 냉장(冷藏) 시설(施設)이 갖춰지지 않았던 옛날에서는 상대적(相對的)으로 온난(溫暖)한 지역(地域)에서 여름 에 속재료인(材料人) 두부(頭部) 돼지고기 가 쉽게 변질(變質)되었던 문제(問題)도 있었다.

북부(北部) 지방(地方)(개성(開城) 이북(以北) 지역(地域))에서는 만두(饅頭)가 명절(名節) 음식(飮食)으로도 취급(取扱)되어 설날 에 만두(饅頭)를 빚는 풍습(風習)이 있으며, 만두(饅頭)를 이용(利用)한 만둣국(饅頭국) 을 만들어 먹는 것이 보편화(普遍化)되어 있다. 개성(開城) 이남(以南) 지역(地域)에서는 만두(饅頭)를 빚는 것과 만둣국(饅頭국) 을 만드는 것에 익숙치 않아 대신(代身) 가래떡 을 이용(利用)한 떡국 을 만들어 먹었다. 북부(北部) 지방(地方)의 만두(饅頭)를 빚고 만둣국(饅頭국)을 만드는 풍습(風習)이 점점(漸漸) 남쪽(南쪽)으로 퍼지면서 남북(南北) 분단(分斷) 이후(以後)에는 중부(中部) 지방(地方) 에서도 설날에 만두(饅頭)를 빚는 경우(境遇)가 있다. 강원도(江原道) 에서는 일찍이 풍습(風習)이 내려와서 설날에 만둣국(饅頭국)을 주로(主로) 먹는다. 경기도(京畿道) 충청도(忠淸道) 일대(一帶)에는 떡과 만두(饅頭)를 같이 넣는 떡만둣국(饅頭국) 을 주로(主로) 먹는다. 반면(反面) 남부(南部) 지방(地方), 특히(特히) 경상도(慶尙道) 지방(地方)은 여전히(如前히) 설날에 만두(饅頭)를 빚는 경우(境遇)가 극히(極히) 드물다.

종류(種類) [ 편집(編輯) ]

찐만두(찐饅頭)
군만두(군饅頭)
물만두(물饅頭)
튀김만두(饅頭)
만둣국(饅頭국)

안에 넣은 소(蘇)에 따라 야채(野菜)만두, 고기만두(고기饅頭), 김치만두(饅頭) 등(等)으로 부르며, 조리법(調理法)에 따라 군만두(군饅頭), 찐만두(찐饅頭), 물만두(물饅頭) 등(等)으로 부른다. 만두피(饅頭皮)를 생선(生鮮) 으로 만든 어만두(魚饅頭) 와 다진 꿩고기 로 빚은 꿩만두(饅頭) 도 있다.

겨울 에는 주로(主로) 만두(饅頭)를 장국(醬국)이나 떡국 에 넣어 먹고, 여름 에는 찐만두인(찐饅頭人) 편수(編修) (네모진 만두(饅頭))나 규아상 ( 해삼(海蔘) 모양(模樣)으로 빚은 만두(饅頭))을 많이 먹는다.

개성(開城) 에서는 경기도(京畿道) 내(內)에서 만두(饅頭)를 빚는 풍습(風習)이 가장 보편화(普遍化)된 곳으로 겨울이 되면 만두(饅頭)를 빚어 곳가(街)에 걸어놓은 채반(채盤)에 저장(貯藏)해 두고 먹었다고 한다. 개성식(個性式) 만두(饅頭)는 경기도식(京畿道式) 만두(饅頭)의 일종(一種)으로 보며 다른 경기도식(京畿道式) 만두(饅頭)에 비해 크기가 좀 더 큰 형태(形態)인 경우(境遇)가 많다. 개성식(個性式) 만두(饅頭)를 빚을 때는 보통(普通) 얇게 펴서 둥글게 한 만두피(饅頭皮)에 소를 넣고 맞붙인다. 개성식(個性式) 만두(饅頭)로는 피라미드 형태(形態)로 빚어서 호박 숙주(宿主) 를 넣어 만든 편수(編修) 라는 만두(饅頭)가 있으며, 애호박 을 적절히(適切히) 잘라 그 단면(斷面)을 십자(十字)로 갈라서 돼지고기 쇠고기 를 채우고 찐 다음 진간장(진간醬) 으로 간을 해서 숟가락으로 먹는 호박선(選) 이라는 만두(饅頭)도 있다.

서울 에서는 개성(個性)과 달리 만두(饅頭)를 빚는 풍습(風習)이 보편화(普遍化)되어 있지 않지만, 서울식(式) 만두(饅頭)가 양반(兩班)들이 즐기는 음식(飮食)이라 다양한 재료(材料)와 형태(形態)를 띠고 있다. 서울식(式) 만두(饅頭)는 대부분(大部分) 반죽을 경단(經斷)만큼 떼어서 둥글게 한 뒤 구멍을 크게 하서 그 안에 소를 넣고 맞붙이되 완전히(完全히) 붙이지 않고 구멍을 조금 만든다. 이는 구멍 안으로 국물이 들어가서 만두(饅頭) 맛을 높이는 이유(理由)에서다. 그리고 조선(朝鮮) 시대(時代) 궁중요리(宮中料理)로 만든 해삼(海蔘) 모양(模樣)으로 빚은 규아상 (또는 미만(未滿)두)이 있다.

평안도(平安道) 식(式) 만두(饅頭)는 두부(豆腐)와 돼지고기와 함께 삶은 숙주나물 을 넣는 것이 보통(普通)이다. 그리고 피 크기가 12 cm가량(假量)으로 속을 충분히(充分히) 채워서 매우 크게 만든다.

한국(韓國)의 만두(饅頭)에서는 밀가루 메밀가루 , 전분(澱粉) 피가 아닌 다른 재료(材料)를 만두피(饅頭皮)로 사용(使用)하는 경우(境遇)도 있다. 대표적(代表的)으로 생선(生鮮)살을 이용(利用)한 어만두(魚饅頭) 가 있으며, 배춧잎 을 이용(利用)한 숭채만두(菘菜饅頭) , 그리고 얇게 저민 전복(顚覆) 을 사용(使用)하기도 한다. 생선(生鮮)살과 전복(顚覆)을 이용(利用)한 만두(饅頭)는 궁중(宮中) 요리(料理) 에도 사용(使用)되며 『이순록(二旬錄)』에는 “인조(仁祖)가 전복만두(顚覆饅頭)를 좋아하였는데 생신(生辰)날에 왕자(王子)가 비(妃)와 함께 동궁(東宮)에서 직접(直接) 만두(饅頭)를 만들어 가지고 새벽에 문안(問安)을 올렸다”는 기록(記錄)이 있다.

이 외(外)에 알려진 만두(饅頭)로 아래와 같다.

오늘날 한국(韓國)에서는 전통적(傳統的)인 만두(饅頭) 외(外)에 중국식(中國式) 만두(饅頭)와 현대(現代)에 들어 탄생(誕生)한 여러 가지 만두(饅頭)도 나오고 있다. 중국집(中國집) 에서 중국식(中國式) 자(者)오쯔 의 영향(影響)을 받은 군만두(군饅頭) 물만두(물饅頭) 가 보편적(普遍的)으로 팔리고 있으며, 일부(一部) 식당(食堂)에서는 짜장면 볶음밥 등(等) 대신(代身) 만두(饅頭) 종류(種類)만 파는 곳도 있다. 길거리 음식(飮食) 으로도 1000~2000원가량(假量)의 고기만두(고기饅頭)와 김치만두(饅頭) 등(等) 여러 가지 만두(饅頭)를 맛볼 수 있다. 냉동(冷凍) 식품(食品) 으로도 여러 가지 만두(饅頭)가 팔리고 있는데, 최근(最近) 거의 대부분(大部分)의 요식업계(料食業界)에서는 직접(直接) 빚는 만두(饅頭)보단 이 냉동(冷凍) 식품(食品)을 사용(使用)하는 경우(境遇)가 많다.

관련(關聯) 사건(事件) [ 편집(編輯) ]

2004년(年) 불량(不良) 만두(饅頭) 파동(波動) [ 편집(編輯) ]

2004년(年) 대한민국(大韓民國) 에서 다수(多數)의 만두(饅頭) 회사(會社)가 불량(不良)한 재료(材料)로 만두(饅頭)를 만들다 적발(摘發)되면서 벌어진 사건(事件)이다. 당시(當時) 언론(言論)은 이를 ‘쓰레기 만두(饅頭)’라 지칭(指稱)하며 크게 보도(報道)했고, 만두(饅頭)가 한동안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쓰레기 만두(饅頭)’란 정확히(正確히) 말하면 ‘쓰레기로 버려져야 할 단무지 자투리가 일부(一部)(30%가량(假量)) 들어가 있는 만두소(饅頭소)로 만든 만두(饅頭)’다. [14] 비록 가공(加工) 과정(過程)에서 불결(不潔)하게 취급(取扱)된 것은 사실(事實)이지만 나중에 인체(人體)에 무해(無害)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불량(不良) 만두(饅頭)를 제조(製造)했다고 의심(疑心)받던 25개(個) 업체(業體)에 대(對)해 무혐의(無嫌疑) 결정(決定)이 내려졌다. 그러나, 언론(言論)의 선정적(煽情的) 보도(報道)로 전(全) 국민(國民)이 만두(饅頭)를 멀리 하고, 파는 먹을 거리를 불신(不信)하게 되었다. 결국(結局) 만두(饅頭) 회사(會社) 사장(社長)이 자살(自殺)까지 하는 등(等) 사건(事件)이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확산(擴散)되었다.

비슷한 음식(飮食) [ 편집(編輯) ]

중국(中國)에는 한국(韓國)의 만두(饅頭)와 유사(類似)한 음식(飮食)으로 자(者)오쯔 (餃子)와 바오쯔 (包子)가 있다. "만두(饅頭)"와 어원(語源)이 같은 만터우 는 과거(過去)에 만두(饅頭)와 유사(類似)하게 소가 든 음식(飮食)을 뜻했으나, 현재(現在)는 소가 들지 않은 찐빵 과 유사(類似)한 음식(飮食)이고, 자오쯔는 피가 얇은 만두(饅頭), 바오쯔는 피가 폭신폭신한 왕만두(王饅頭)와 비슷하다. 일본(日本) 에서는 일본식(日本式) 중국(中國) 요리(料理) 자오쯔를 교자(餃子) ( ギョ?ザ )라 부른다.

중앙아시아(中央아시아) 남아시아(南아시아) , 아랍 세계(世界) , 서양(西洋) 에도 만두(饅頭)와 유사(類似)한 음식(飮食)이 있다. 중앙아시아(中央아시아)의 만(萬)트 는 한국(韓國)의 "만두(饅頭)"와 어원(語源)이 같다. 만(萬)트의 영향(影響)을 받은 이탈리아 파스타 중(中) 하나인 라비올리 도 만두(饅頭)와 비슷한 형태(形態)를 지니고 있다. 폴란드 러시아 에서도 13세기(世紀) 이후(以後)에 몽골 의 영향(影響)을 받은 펠메니 , 피에로기(機) 라는 만두(饅頭) 유사(類似)한 요리(料理)가 있다.

같이 보기 [ 편집(編輯) ]

각주(各州) [ 편집(編輯) ]

  1. “만두(饅頭)” . 《 표준국어대사전(標準國語大辭典) 》. 국립국어원(國立國語院) . 2017년(年) 10월(月) 10일(日)에 확인(確認)함 .  
  2. McWilliams, Mark (2013). 《Wrapped & Stuffed Foods: Proceedings of the Oxford Symposium on Food and Cookery 2012》 (영어(英語)). 235쪽 . 2024년(年) 3월(月) 4일(日)에 확인(確認)함 . ManDu (Korean dumpling), an easily-made and handy-to-eat wrapped food, is ...  
  3. [네이버 지식백과(知識百科)] 만두(饅頭) [饅頭] (한국민족문화대백과(韓國民族文化大百科), 한국학중앙연구원(韓國學中央硏究院)). ...중국(中國)에서 전래(傳來)된 음식(飮食)으로 전래시기(傳來時期)는 정확히(正確히) 알 수 없다. 『고려사(高麗史)』 충혜왕조(兆)에 내주(來週)(內廚)에 들어가서 만두(饅頭)를 훔쳐먹는 자(者)를 처벌(處罰)하였다는 기록(記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高麗時代)에 이미 전래(傳來)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中國)에서는 밀가루를 발효시켜 고기나 채소(菜蔬)로 만든 소를 넣고 찐 것은 만두(饅頭) 또는 포자(胞子)(包子)라 하고, 밀가루로 만든 얇은 껍질에 소를 싸서 끓이거나 기름에 지지거나 찌는 것은 교자(餃子)(餃子)라고 한다. 『고려사(高麗史)』에 기록(記錄)된 만두(饅頭)는 어느 것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없다....(중략).... 조선시대(朝鮮時代) 중엽(中葉)까지도 만두(饅頭)는 상화(尙火)(霜花, 床花)로, 교자(餃子)는 만두(饅頭)로 명칭(名稱)이 바뀌어 전(傳)해져 오다가 지금(只今)은 상화(尙火)라는 음식(飮食)은 사라지고 교자(餃子)만이 만두(饅頭)라는 명칭(名稱)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4. [네이버 지식백과(知識百科)] 만두(饅頭) (우리가 정말(正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飮食) 백(百)가지 1, 초판(初版) 1998., 10쇄(刷) 2011., 한복진, 한복려, 황혜성) .....만두(饅頭)는 원래(元來) 중국(中國) 음식(飮食)으로 한나라(漢나라) 때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중략)...우리나라에는 고려(高麗) 시대(時代)에 들어왔는데 상화(尙火)(霜花)로 발효시킨 찐빵과 비슷한 것이었다. 상화(尙火)는 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린 반죽을 찐 것으로 중국(中國)의 만두(饅頭)를 가리키는 말이다.
  5. [네이버 지식백과(知識百科)] 만두(饅頭) [mandu / Dumplings, 饅頭] (두산백과(百科) 두피(頭皮)디아, 두산백과(百科)).....원래(元來) 만두(饅頭)는 중국(中國) 남만인(萬人)(南蠻人)들의 음식(飮食)이라 한다. 중국(中國)에서는 소를 넣지않고 찐 떡을 만두(饅頭)라고 부르며 소를 넣은 것은 교자(餃子)(餃子) 혹은(或은) 포자(胞子)(包子)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소를 넣은 것만을 만두(饅頭)라고 부른다. 만두(饅頭)는 제갈량(諸葛亮)(諸葛亮)의 남만 정벌(征伐)에 관(關)한 고사(故事)에서 유래(由來)되었다고 한다.....(중략)....한국에는 조선(朝鮮) 영조(英祖) 때의 사람 이익(利益)(李瀷)의 글에 만두(饅頭)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朝鮮) 중기(中期) 이전(以前)에 중국(中國)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6. Gentile, Dan (2014년(年) 2월(月) 28일(日)). “Korean food: The 12 essential dishes you need to know from the North and the South” . 《 Thrillist . 2017년(年) 5월(月) 19일(日)에 확인(確認)함 .  
  7. Goldberg, Lina (2012년(年) 3월(月) 23일(日)). “Asia's 10 greatest street food cities” . 《 CNN . 2012년(年) 4월(月) 11일(日)에 확인(確認)함 .  
  8. Anderson, E. N. (2005). 《Everyone Eats: Understanding Food and Culture》 .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 183 쪽. ISBN   0-8147-0495-6 .  
  9. Millward, James A. (2013). 《The Silk Road : A Very Short Introduction》 . London: Routledge . 62쪽. ISBN   978-0-19-978286-4 .  
  10. James A. Millward (2013년(年) 3월(月) 15일(日)). 《The Silk Road: A Very Short Introduction》 . Oxford University Press. 62?쪽. ISBN   978-0-19-979079-1 .  
  11. Andrew Coe (2009년(年) 7월(月) 16일(日)). 《Chop Suey: A Cultural History of Chinese Food in the United States》 . Oxford University Press. 89?쪽. ISBN   978-0-19-975851-7 .  
  12. 《PPC》 . Prospect Books. 1983. 30쪽.  
  13. 황교익(黃橋益) <한국음식문화박물지(韓國飮食文化博物誌)> 따비 2011년(年) p130
  14. 이재성 (2004년(年) 6월(月) 10일(日)). “언론(言論) 선정보도(選定報道)에 ‘알권리’ 두번(番) 죽었다” . 한겨레신문(新聞) . 2008년(年) 1월(月) 22일(日)에 확인(確認)함 .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참고(參考) 문헌(文獻) [ 편집(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