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古典主義) 음악(音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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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古典主義) 음악(音樂) (古典主義音樂, Classical Music)이란, 음악(音樂) 에서 1750년경(年頃)부터 1810년경(年頃)까지 주로(主로) 오스트리아 을 중심(中心)으로 발전(發展)한 서양음악(西洋音樂) 사조(思潮)를 말한다.

'고전(苦戰)'이라는 말뜻에는 '모범적(模範的) 예술(藝術), 균형적(均衡的) 형식(形式),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理解)되는 성격(性格), 시대초월(時代超越)적 성격(性格)'이(李) 포함(包含)되어 이미 질적(質的)인 가치(價値)를 함축(含蓄)하고 있다. [1] 고전주의(古典主義) 음악(音樂)의 개념(槪念)을 처음으로 사용(使用)한 음악사학(音樂史學) 자(者)는 루트비히 판(版) 베토벤으로 하이든 모차르트 의 음악(音樂)을 독일문학(獨逸文學) 에서의 바이마르 고전주의(古典主義) 를 모델로 삼아 고전적(古典的)이라고 명명하였다. 음악(音樂)에서 '고전(苦戰)(Klassik)' [2] 이라는 개념(槪念)이 처음 나왔을 때는 시대(時代) 개념(槪念)이 아니라,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音樂)과 다른 음악(音樂)을 구별(區別)하는 질적(質的) 개념(槪念)으로 쓰였다. [1] 이들의 교향곡(交響曲)이 1800년(年) 초(初) 음악회장(音樂會長)의 모범적(模範的) 레퍼토리로 고정(固定)되면서, 호프만(E.T.A Hoffmann)과 같은 사람들이 이를 기악음악(器樂音樂)의 절정(絶頂)으로 평가(評價)하였다. [1] 반할(盤割) , 보케리니 , 클레멘티 , 케루비니 , 메율 등(等)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작곡(作曲) 양식(樣式)을 썼으므로, '고전(苦戰)'은 음악사(音樂史)에서 이들 전체(全體)를 통칭(統稱)하는 시대(時代) 개념(槪念)으로 쓰이게 된다. [3]

고전파(古典派) 음악(音樂)은 '자연스러움', '단순성(單純性)', '보편성(普遍性)'을 강조(强調)한 결과(結果)이다. [3] '자연스러움'은 파악(把握)이 어려운 변화(變化)나 이론적(理論的) 딱딱함을 가지고 듣기를 강요(强要)하지 않는, 감정적(感情的)으로 자연스럽게 '같이 느끼게 하는' 방식(方式)을 추구(追求)하게 된다. [3] '단순성(單純性)'의 추구(追求)는 예술(藝術) 음악(音樂)의 출발점(出發點)을 민요적(民謠的)인 것으로 삼게 한다. [3] '보편성(普遍性)'은 세상(世上) 사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세계성(世界性)을 지향(志向)한다. [3] 물론(勿論) 이러한 생각은 초기(初期)에만 강력(强力)하였고, 시간(時間)이 지나면서 약화(弱化)되어 베토벤 과 같이 예술가(藝術家)의 독창성(獨創性)과 작품성(作品性)이 강조(强調)된다. [3]

고전파(古典派) 음악(音樂)의 특징(特徵)으로는 주요(主要) 3화음(和音)을 중심(中心)으로 한 기능(機能) 화성법(和聲法)의 확립(確立), 소나타 형식(形式) 에서의 제(第)1, 제(第)2주제(主題)의 조성(造成)을 으뜸음(으뜸音) 딸림음(딸림音) 과의 관계(關係)에서 파악(把握)하여 두 주제(主題)의 성격적(性格的) 대비(對備)를 갖게 했다는 점(點), 그리고 주제(主題)를 유기적(有機的)으로 전개(展開)하는 ' 주제노작(主題勞作) (主題勞作)'원리(原理)의 확립(確立), 2관편성(編成)의 오케스트라, 소나타 형식(形式)에 바탕을 둔 교향곡(交響曲) , 협주곡(協奏曲) , 실내악곡(室內樂曲), 독주곡(獨奏曲)과같은 악곡형식(樂曲形式)을 낳았다는 점(點) 등(等)을 들 수 있다.

바로크 시대(時代) 와 고전파(古典派) 사이에서 고전파(古典派)에의 디딤돌 구실을 한 시대(時代)를 전(前) 고전파(古典派) (1720-1760경(景))라고 한다. 로코코 음악(音樂)은 18세기(世紀)의 화려(華麗)한 궁정생활(宮廷生活)을 반영(反映)한 것이나 로코코 시대(時代)의 경쾌(輕快)하고 우아(優雅)한 양식(樣式)을 ' 갈랑 양식(樣式) '(gallant style)이라 하며 대위법적(對位法的)인 수법(手法)에서 화성적(和成的) 수법(手法)으로의 이행(履行)을 나타내며 섬세하고 우아(優雅)한 멜로디와 단순(單純)한 형식(形式), 세속적(世俗的)이며 사교적(社交的)인 성격(性格)을 지닌 소곡(小曲) 등(等)을 그 특징(特徵)으로 한다. 이 양식(樣式)을 전형적(典型的)으로 나타낸 것이 18세기(世紀) 중엽(中葉) 프랑스의 클라브시니스트 인(人) 프랑수아 쿠프랭 , 장(張) 필립 라모 , 다캥 등(等)의 작품(作品)이다. 그리고 이 경향(傾向)에서 18세기(世紀) 후기(後期)에 북독일에서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 , 게오르그 벤다 , 요한 요아힘 크반츠 등(等)에 의(依)하여 대표되는 자연스럽고 풍부(豐富)한 감정표출(感情表出)을 지향(志向)한 감정(感情) 과다양식(過多養殖) 이 일어났다.

또 1770년(年)에서 1795년경(年頃) 독일(獨逸)에서 발생(發生)한 헤르더 , 괴테 , 실러 등(等)의 문학운동인(文學運動人) 슈투름 운트 드랑 (질풍노도양식(疾風怒濤樣式))이(李) 음악(音樂)에도 영향(影響)을 미쳐 디나미크 멜로디크 , 관현악법(管絃樂法)에 두드러진 대조적(對照的) 효과(效果)를 주었다. 슈베르트 , 슈타미츠 의 기악곡(器樂曲), 요한 프레데릭 라이히아르트 , 첼터 , 츰시(視)티크 등(等)의 가곡(歌曲)에서 그 예(例)를 볼 수 있다. 빈에서는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바겐자(者)일 등(等)이 교향곡(交響曲)의 악곡구성(樂曲構成) 면(面)에서 기초(基礎)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만하임 에서는 예술(藝術)을 애호(愛好)했던 선제후(選帝侯) 카를 테오도르 의 궁정(宮廷)에서 요한 벤젤 안톤 슈타미츠 , 홀츠바우어 , 리히터 , 카나비히 등(等)이 활발히(活潑히) 활동(活動)하였다.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樂章)에 미뉴에트 를 쓴 4악장(樂章)의 악곡(樂曲) 구성(構成), 제(第)1, 2주제(主題)의 성격적(性格的) 대비(對備), 크레셴도 , 디미누엔도 , 포르테 , 피아노 등(等)의 음량변화(音量變化), 관악기(管樂器)의 중시(重視), 장식법(裝飾法) 등(等)이 고전파(古典派) 음악(音樂)에 대(對)하여 많은 공적(功績)을 남기고 있다. 그 밖에 이탈리아에서는 스카를라티 , 사키니 등(等)의 쳄발로 소나타, 파리에서는 고세크 , 런던에서는 크리스티안 바흐 등(等)이 전기(電氣) 고전파(古典派)에 활약(活躍)한 사람으로 유명(有名)하다.

초기(初期)의 고전파(古典派) [ 편집(編輯) ]

18세기(世紀) 중엽(中葉), 바흐 헨델 에 의(依)하여 완성(完成)된 바로크 시대(時代) 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에 의(依)한 새로운 정점(頂點)이 이룩되기까지인 1720년(年)부터 1780년경(年頃)의 시기(時期)는 전고전파(全高電波) 또는 초기(初期) 고전파(古典派)로 불리며 과도적(過渡的)인 성격(性格)이 뚜렷하게 난다. 고전파(古典派) 음악(音樂)의 발달(發達)은 주로(主로) 기악분야(器樂分野)에서 이루어졌으나, 이 시기(時期)에는 소나타 교향곡(交響曲) 이나 실내악(室內樂) 에서 알레그로 안단테 미뉴에트 알레그로 의 4악장(樂章)으로 된 구성(構成)으로 점차(漸次) 고정(固定)되는 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제(第)1악장(樂章)은 소나타 형식(形式)의 성장(成長)과 함께 비중(比重)이 증대(增大)하였고 제(第)3악장(樂章)에는 바로크 시대(時代)의 춤곡(춤曲) 형식(形式)이었던 미뉴에트 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분야(分野)에서는 종래(從來) 통주저음(通奏低音) 악기(樂器)로 쓰이던 쳄발로 가 없어지고 현악기(絃樂器)를 주체(主體)로 하는 근대적(近代的)인 2관편성(編成)의 형식(形式)이 형성(形成)되었다. 이에 따라 합주기술(合奏技術)이나 음량변화(音量變化), 악기법(樂器法) 등(等)에서 새로운 표현(表現)이 개발(開發)되었다. 건반음악(鍵盤音樂)에서는 쳄발로 클라비코드 보다 피아노 의 사용(使用)이 늘었다. 또한 이 시기(時期)에는 고전주의(古典主義) 음악(音樂)을 형성(形成)하는 세 가지의 기본적(基本的) 표현(表現)이 나타났는데, 첫째로는 음악상(音樂賞)의 로코코 양식(樣式)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갈랑 양식(樣式) (Gallant style), 두 번째(番째)로는 감정(感情) 과다양식(過多養殖) , 세 번째(番째)로는 역시(亦是) 같은 이름의 문학운동(文學運動)에 해당(該當)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슈투름 운트 드랑 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양식(樣式)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만하임, 베를린, 파리, 런던 등(等)에서 널리 자라났다.

빈 고전파(古典派) [ 편집(編輯) ]

전고전파(全高傳播)의 업적(業績)을 바탕으로 하여 빈을 중심(中心)으로 창작활동(創作活動)을 하여 하이든 , 모차르트 , 베토벤 에 의(依)하여 그 절정(絶頂)을 이루었다. 그 특징(特徵)으로는 주요(主要) 3화음(和音)을 중심(中心)으로 하는 기능화성(機能和聲)의 확립(確立), 소나타 형식(形式)에서의 제(第)1주제(主題)와 제(第)2주제(主題)를 조성적, 성격적(性格的)으로 대비(對比)시켜 포착(捕捉)했다는 점(點), 주제(主題) 재료(材料)를 유기적(有機的)으로 전개(展開)시키는 주제노작(主題勞作) 원리(原理)의 확립(確立), 2관편성(編成)에 의(依)한 오케스트레이션의 완성(完成) 등(等)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양식원리(樣式原理)를 바탕으로 하여 이 시기(時期)에는 교향곡(交響曲) 외(外)에 협주곡(協奏曲) , 실내악(室內樂) 도 현저(顯著)한 발전(發展)을 보였다.

지역(地域)으로 본 고전파(古典派) 양식(樣式) [ 편집(編輯) ]

서구음악사(西區音樂史)에서 하나의 신기원(新紀元)을 이룬 고전파(古典派) 양식(樣式)의 발전(發展)을 위해 다양(多樣)하고 활발(活潑)한 움직임을 보인 음악가(音樂家)들을 지역적(地域的)으로 살피면 크게 아래와 같다.

이탈리아 [ 편집(編輯) ]

새로운 고전파(古典派) 양식(養殖)에 주요(主要)한 특징(特徵)으로는 우선(于先) 이탈리아 오페라 나 오페라 심포니아, 합주곡(合奏曲) 및 호모포닉한(韓) 선율(旋律)이나 반주형을 지닌 클라비어 음악(音樂)을 들 수 있다. 특히(特히) 욤멜리(리) (Jommelli, 1714-1774)는 오페라에서의 표정(表情) 풍부(豐富)한 성악양식(聲樂樣式)을 관현악(管絃樂)에 써서 기악분야(器樂分野)에서 새 국면(局面)을 개척(開拓)하였다. 실내악(室內樂)이나 관현악(管絃樂) 분야(分野)에서는 부드럽고 풍부(豐富)한 울림의 페르골레시 (1710-1736)의 선율법(旋律法)이나 소나타 형식(形式)에서 2개(個) 주제(主題)에 대조성(對照性)을 부여(附與)한 사(社)마르티니 (1704-1774), 교향곡(交響曲)의 제(第)1악장(樂章) 형식(形式)에 명확(明確)한 부분구성(部分構成)을 부여(附與)한 카프아 등(等)의 업적(業績)이 있다.

오스트리아 [ 편집(編輯) ]

오스트리아 는 지역적(地域的)으로 이탈리아와 북부(北部) 독일(獨逸)을 잇는 중개점(中開店)에 있어 하이든 이나 모차르트 와 가장 밀접(密接)한 유대(紐帶)를 지니고 있다. 일찍이 1704년(年)에 (1717-1750)이(李) 미뉴에트 를 포함(包含)한 4악장(樂章)으로 된 교향악곡(交響樂曲)을 작곡(作曲)한 바 있고, 그 밖에도 교향곡(交響曲)의 각(各) 구성요소(構成要素)의 충족(充足)을 촉진(促進)시킨 작곡가(作曲家)로서 바겐자(者)일 (1715-77), 가스만 (1729-1774) 등(等)이 있다. 한편(한便) 만하임 에서는 만하임 악파(樂派) 가 활동(活動)하였다.

베를린 [ 편집(編輯) ]

북부(北部) 독일(獨逸) 악파(樂派)가 프리드리히 대왕(大王) 의 궁정(宮廷)을 중심(中心)으로 활약(活躍)하였다. 작곡가(作曲家)로는 우수(優秀)한 클라비어 음악(音樂)을 저술(著述)한 제바스티안 바흐 의 둘째아들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 (1721-1783), 기악곡(器樂曲)의 쿠반츠 (1697-1773)와 그라운 형제(兄弟)(1702/03-1759) 등(等)을 들 수 있다. 보다 젊은 세대(世代)로는 피아노 반주(伴奏)에 의(依)한 가곡(歌曲)을 작곡(作曲)한 슐츠 (1747-1800), 라이하르트 (1752-1814), 첼터 (1758-1832)가 있다.

파리·런던 [ 편집(編輯) ]

프랑스 에선 슈타미츠 의 교향곡(交響曲)이 즐겨 연주(演奏)된 것 외(外)에 고세크 (1734-1829)가 있다.

런던 에서는 일찍부터 시민계급(市民階級)에서 음악회(音樂會)가 개최(開催)되었다. 클라비어 음악(音樂) 및 교향곡(交響曲)의 대표적(代表的) 작곡가(作曲家)로서는 크리스티안 바흐 (1735-1782)가 있다. 또 바흐-아벨 연주회(演奏會)로 알려진 아벨 (1723-1787)도 있다.

고전파(古典派) 시대(時代)의 성악(聲樂) [ 편집(編輯) ]

18세기(世紀)의 오페라 [ 편집(編輯) ]

헨델 은 영국(英國)에 귀화(歸化)한 뒤 영국(英國)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자(代表者)로 간주(看做)되고 있었으나 그는 결코(決코) 개혁자가(改革自家) 아니며 기성(旣成)의 형식(形式)을 활용(活用)하면서 하나의 정점(頂點)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그의 오페라는 아리아 에서 각개(各個)의 기분(氣分)을 순수(純粹)하게 추출(抽出)하여 묘사(描寫)함을 기초(基礎)로 하고 정밀(精密)한 구축적(構築的) 계획(計劃)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탈리아풍(風)의 벨칸토 양식(樣式)과 독일풍(獨逸風)의 힘찬 내면(內面) 묘사(描寫)를 단순(單純)하고 명쾌(明快)한 형식(形式) 속에서 결합(結合)시켜 갔다. 18세기(世紀)의 이탈리아에서는 나폴리파가 바로 오페라 전성기(全盛期)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리아와 레치타티보 의 두 스타일은 분명히(分明히) 분리(分離)되어 레치타티보에서는 극적(劇的)인 전개(展開)가 이루어지며 정서표현(情緖表現)은 아리아에서 나타나 있었다. 그 결과(結果)로 여러 가지 아리아의 형태(形態)가 생겨났으며 아리아가 오페라에서 큰 비중(比重)을 차지하게 되고 작품(作品) 전체(全體)의 구성(構成)에서 균형(均衡)을 잃게 되었다. 또 명인예적(名人豫的)인 기교(技巧)를 가진 가수(歌手)가 환영(歡迎)받아 점차(漸次)로 가수(歌手)의 기교(技巧) 과시(誇示)를 위한 오페라로 변화(變化)해 갔다. 시인(詩人)인 츠에노와 메타스타지오에 의(依)하여 비극적(悲劇的)인 스타일의 오페라에서 코믹한 요소(要素)가 분리(分離)되자 코믹 오페라는 각국(各國)에서 각각(各各) 독자적(獨自的)인 스타일을 이룩해 나갔다. 즉(卽)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剖破) ,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 , 영국(英國)의 발라드 오페라 , 독일(獨逸)의 징슈필 등(等)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가 흔히 있는 일들을 제재(題材)로 하여 단순(單純)하고 알기 쉬운 형식(形式)의 음악(音樂)이 곁들여졌다.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 는 가수만능(歌手萬能)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항(對抗)해 음악(音樂)은 시(詩)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主張)하고 가수(歌手)가 기교(技巧)를 과시(誇示)하거나 필요(必要) 이상(以上)의 음악적(音樂的) 장식(裝飾)을 하는 것을 배제(排除)하며 표현력(表現力)이 풍부(豐富)한 레치타티보나 오케스트라, 또는 코러스 등(等)의 표현력(表現力) 증대(增大) 등(等)으로 단순(單純)하고 자연스런 표현(表現) 속에서 극적(劇的) 효과(效果)를 높이기 위한 시도(試圖)를 했다.

베를린 가곡악파(歌曲樂派) [ 편집(編輯) ]

베를린 가곡악파(歌曲樂派)는 1753년(年) 베를린의 변호사(辯護士)이며 작곡가(作曲家)인 크라우제 의 <송가(頌歌)와 멜로디>로 시작(始作)되었다. 이 곡집(曲集)에는 크반츠나 엠마누엘 바흐 , 그라운들 의 가곡(歌曲)이 포함(包含)되어 있었으며 제(第)1기(基)의 베를린 악파(樂派)에는 프리드리히 대왕(大王) 의 전속(專屬) 음악가(音樂家)들, 즉(卽) 그라운 , 벤다 , 마르푸르크 , 키른베르거 등(等)이 있었다. 크라우제는 단순(單純)한 형식(形式)을 지닌 민요(民謠)를 바탕으로 한 리트 의 창작(創作)을 주장(主張)하였다. 이 시기(時期)의 리트는 독립(獨立)된 클라비어 반주부(伴奏部)를 갖고 있었으나 바흐는 게레르트의 종교시집(宗敎詩集)을 작곡(作曲)하여 우수(優秀)한 작품(作品)을 남겼다. 제(第)2기(期) 베를린 악파(樂派)에서는 슐츠 , 요한 프레데릭 라이히아르트 , 첼터 등(等)이 대표자(代表者)이나 그들은 크로프슈토크 괴테 , 실러 등(等) 당시(當時)의 뛰어난 시(詩)에 곡(曲)을 붙여 리트를 간결(簡潔)한 형식(形式)에 의(依)한 국민적(國民的)인 가곡(歌曲)으로 승화시켰다.

고전파(古典派) 시대(時代)의 기악(器樂) [ 편집(編輯) ]

고전파(古典派)의 소나타 [ 편집(編輯) ]

소나타가 순환형식(循環形式)으로 ' 알레그로 안단테 미뉴에트 알레그로 '의 4악장(樂章)으로 고정(固定)된 것은 약(約) 1770년(年)의 일이다. 이것은 급(級)·완·급(級)의 3악장(樂章)으로 되는 나폴리파의 심포니아파(派)에 바탕을 두고 여기에 마지막부터 두 번째(番째)에 바로크 모음곡(모음曲) 가운데의 미뉴에트가 곁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와 같은 고전파(古典派)의 소나타에서는 제(第)1악장(樂章)이 소나타 형식(形式)을 취(取)하여 소나타의 핵심(核心)을 형성(形成)한다. 제(第)2악장(樂章)은 템포가 완만(緩慢)한 리트 형식(形式) 이며 제(第)3악장(樂章)의 미뉴에트 는 이미 바로크 시대(時代)의 무용(舞踊)의 성격(性格)을 잃고 A-B-A(B는 트리오라 한다)의 3부형식을 취(取)하고 있다. 끝악장(樂章)은 급속(急速)한 템포에 의(依)한 론도 형식(形式)과 소나타 형식(形式)으로서 소나타의 악곡(樂曲) 전체(全體)를 마무리짓는다. 4악장(樂章)으로 된 고전파(古典派) 소나타를 확립(確立)시킨 사람은 교향곡(交響曲) 분야(分野)에서는 만하임 악파(樂派) 슈타미츠 , 오스트리아의 바겐자(者)일 , , 슈레거 , 시타르츠아 등(等)이다. 이에 반(反)하여 베를린 악파(樂派) 는 3악장제(惡狀制)를 고집(固執)하였다. 소나타는 교향곡(交響曲)뿐만 아니라 고전파(古典派)의 실내악(室內樂)이나 클라비어곡(谷)의 조구성(兆構成)이 되기도 했다.

협주곡(協奏曲) [ 편집(編輯) ]

리(리)토르넬로 형식(形式) 은 고전파(古典派)의 시대(時代)가 되면서 점차(漸次)로 소나타 형식(形式)으로 대체(代替)되고 반주인(泮主人) 현악합주도(絃樂合奏度) 관현악(管絃樂) 으로 확대(擴大)되었다. 그러나 한편(한便)에서는 급(級)·완·급(級)의 3악장(樂章) 형식(形式)과 투티 솔로 가 교체(交替)하는 스타일은 바로크 이후(以後)에도 계속(繼續)되고 있다 협주곡(協奏曲)에서의 소나타 형식(形式)의 특징(特徵)으로는 제시부(提示部)에서 처음에 관현악(管絃樂)이 두 주제(主題)를 원래(元來) 그대로 나타내고, 이어 솔로를 주체(主體)로 하여 본래(本來)의 제시(提示)(이번(이番)에는 제(第)2주제(主題)가 딸림조로)가 반복(反復)된다. 또 재현부(再現部)가 끝나고 코다 에 들어가기 전(前)에 관현악(管絃樂)이 쉬고 솔로의 자유(自由)로운 카덴차 가 삽입(揷入)된다.

실내악(室內樂) [ 편집(編輯) ]

실내악(室內樂)은 바로크 시대(時代)의 통주저음(通奏低音) 양식(糧食)이 쇠퇴(衰退)함과 동시(同時)에 종래(從來)의 트리오 소나타 (바이올린2, 첼로와 통주저음(通奏低音) 악기(樂器))를 주체(主體)로 하는 합주체(合奏體)에서 바이올린2·비올라·첼로로 이루어지는 현악(絃樂)4중주(重奏)로 중심(中心)이 바뀌었다. 이 형식(形式)은 하이든 에 의(依)하여 확립(確立)되었다. 모차르트 는 독자적(獨自的)인 색채감각(色彩感覺)이나 피아노의 숙달(熟達)로 오히려 현악(絃樂) 5중주(重奏)나 피아노를 포함(包含)한 중주(重奏)에서 독특(獨特)한 형태(形態)를 띠었다. 그러나 고전파(古典派)의 실내악(室內樂)을 예술적(藝術的) 최고봉(最高峯)으로 이끈 사람은 바로 베토벤 이었다. 그는 후기(後期)의 현악(絃樂)4중주곡(重奏曲)에 소나타 형식(形式)과 함께 변주곡(變奏曲) 이나 푸가 , 코랄 의 수법(手法)까지 흡수(吸收)하여 형식적(形式的) 통일(統一)을 꾀함과 동시(同時)에 형식(形式)을 탈피(脫皮)하여 깊은 주관적(主觀的) 세계(世界)에까지 이르렀다. 이 밖에도 현악(絃樂) 3중주(重奏), 피아노가 있는 실내악(室內樂)에도 뛰어난 업적(業績)을 남겼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 [ 편집(編輯) ]

요제프 하이든 은 18세기(世紀) 후반(後半)의 빈 고전파(古典派)에서 중심(中心) 인물(人物) 중(中)의 한 사람으로 주로(主로) 교향곡(交響曲) 이나 현악(絃樂)4중주곡(重奏曲) 등(等)의 기악형식(器樂形式)의 완성(完成)에 공헌(貢獻)하였다. 또한 만년(晩年)의 2개(個)의 오라토리오 미사곡 에서도 뛰어난 업적(業績)을 볼 수 있다.

모차르트 하이든 보다 24세(歲)나 젊었음에도 불구(不拘)하고 하이든과 어깨를 나란히 할 뿐만 아니라 서로 도움을 필요(必要)로 하는 중요(重要)한 위치(位置)를 차지하였다. 더구나 모차르트는 교향곡(交響曲)이나 현악(絃樂)4중주(重奏) 등(等) 순수기악(純粹器樂) 영역(領域)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악과(器樂科) 성악(聲樂), 종교(宗敎)와 세속(世俗)을 가리지 않고 전작품(前作品) 분야(分野)에 예술적(藝術的) 완성(完成)을 가져왔다. 모차르트는 천재적(天才的)인 피아니스트로서 음악가(音樂家)의 경력(經歷)을 시작(始作)하였으므로 당연히(當然히) 작곡(作曲)도 피아노 분야(分野)에서 시작(始作)되었으며 평생(平生)을 두고 피아노를 사랑하였다. 클라비어 계(契)는 당시(當時) 아직도 낡은 형태(形態)의 건반악기(鍵盤樂器)에서 새로운 피아노로의 과도기(過渡期)였으나 여기서 모차르트는 낡은 스타일을 연상(聯想)시키는 갤런트 양식(樣式) 에서 베토벤적(的)인 강력(强力)한 에너지를 응집(凝集)시킨 작품(作品)까지 폭넓은 표현(表現)을 개척(開拓)하였다. 전통적(傳統的)인 세레나데 디베르티멘토 등(等)의 기회음악(機會音樂) 은 당시(當時) 아직도 왕후귀족(王侯貴族)의 오락(娛樂)으로서 인기(人氣)가 있었으나 모차르트의 초기(初期)에는 이러한 장르에서 훌륭한 작품(作品)이 나왔다. 물론(勿論) 하이든이 철저(徹底)하게 추구(追求)했던 교향곡(交響曲) 이나 실내악(室內樂) 등(等) 순수기악(純粹器樂)의 영역(領域)에도 그는 중요(重要)한 공적(功績)을 남기고 있다. 모차르트는 형식(形式) 면(面)에서의 혁명가(革命家)는 아니었으나 특히(特히) 빈 시대(時代)의 6곡(曲), 그 중(中)에서도 최후(最後)의 3대(大) 교향곡(交響曲)(제(第)39, 40, 41번(番) <주피터>)에서 고전(古典) 교향곡(交響曲)의 완성(完成)을 이끌어 베토벤의 길을 개척(開拓)하였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이와 같은 다채로운 재능(才能)이 유감(遺憾)없이 발휘(發揮)된 장르는 무엇보다도 오페라 의 영역(領域)일 것이다. 그 중(中)에도 빈에 정착(定着)한 후(後) 작곡(作曲)한 < 후궁(後宮)으로부터의 도주(逃走) >에서 < 마술(魔術) 피리 >에 이르는 오페라 부파(剖破) 징슈필 의 계열(系列)에서 폭넓은 인간표현(人間表現)과 깊은 독자적(獨自的) 표현(表現)을 확립(確立)하였다. 대체로(大體로) 예술세계(藝術世界)에서의 창조자(創造者)는 형식(形式)이나 어법(語法) 면(面)에 새로운 경지(境地)를 개척(開拓)하는 급진적(急進的)인 혁명가(革命家)와 이러한 형식(形式)이나 어법(語法)을 적용(適用)하고 순응(順應)하는 곳에서 독창적(獨創的) 정력(精力)을 발휘(發揮)하는, 두 가지의 타입이 있다. 18세기(世紀) 고전파(古典派)의 쌍벽(雙璧)인 하이든이 전자(前者)에 속(屬)한다면 모차르트는 후자(後者)의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

베토벤 은 시대적(時代的)으로는 대체로(大體로) 하이든, 모차르트에 가깝고 그들과 더불어 빈 고전파(古典派)의 3대(大) 거장(巨匠)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한편(한便)으로 그가 낭만파(浪漫派) 시대(時代)의 선구자(先驅者)인 것도 틀림없는 사실(事實)로 일생(一生)을 거의 전속악사(專屬樂士)로만 보낸 하이든이나 봉건적(封建的) 질서(秩序)에서 완전히(完全히) 벗어나지 못한 모차르트에 비(比)하면,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革命) 에 의(依)한 해방적(解放的) 시대(時代)를 배경(背景)으로 하여 활동(活動)하였다. 빈 고전파(古典派)는 베토벤이 이룩한 음악(音樂)의 형식적(形式的) 완성(完成)과 내용(內容)의 숭고(崇高)함 속에서 양식(樣式)의 정점(頂點)을 형성(形成)함과 동시(同時)에 낭만파(浪漫派)의 시대(時代)로 접어들었다.

같이 보기 [ 편집(編輯) ]

각주(各州) [ 편집(編輯) ]

  1. 홍정수 외(外), 1997, p.20.
  2. 미술사(美術史)에서 고전(古典)은 빙켈만 이 고대(古代) 그리스의 미술(美術)을 지칭(指稱)하던 말로써 음악(音樂)에 적용(適用)되었는데, 다른 예술(藝術) 분야(分野)와 달리 음악(音樂)의 고전(古典) 개념(槪念)은 옛 고대(古代)의 규범(規範)을 따르지 않는다. 홍정수 외(外), 1997, p.20.
  3. 홍정수 외(外), 1997, p.21.

참고(參考) 문헌(文獻) [ 편집(編輯) ]

홍정수, 김미옥, 오희숙 (1997). 《두길 서양음악사(西洋音樂史) 2》. 파주(坡州): 나남출판. 89-300-35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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