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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高陽) 소노(消奴) 스카이거너스 - 위키백과(百科),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百科事典) 본문(本文)으로 이동(移動)

고양(高陽) 소노(消奴) 스카이거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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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高陽) 소노(消奴) 스카이거너스
리그 KBL
창단(創團) 1995년(年) (29년(年) 전(前)) ( 1995 ) [1]
역사(歷史) 동양제과 농구단(籠球團)
1995년(年)~1996년(年)
대구(大邱) 동양(東洋) 오리온스
1996년(年)~2003년(年)
대구(大邱) 오리온스
2003년(年)~2011년(年)
고양(高陽) 오리온스
2011년(年)~2015년(年)
고양(高陽) 오리온 오리온스
2015년(年)~2022년(年)
고양(高陽) 캐롯 점(點)퍼스
2022년(年)~2023년(年)
고양(高陽) 데이원 점(點)퍼스
2023년(年)
고양(高陽) 소노(消奴) 스카이거너스
2023년(年)~현재(現在)
경기장(競技場) 고양(高陽) 소노(消奴) 아레나
(수용인원(收容人員): 6,216명(名))
연고지(緣故地) 경기도(京畿道) 고양시(高陽市)
단장(團長) 이기완
감독(監督) 김승기
주장(主張) 정희재
구단주(球團主) 서준혁
웹사이트 skygunners .kbl .or .kr
모기업(某企業) ㈜소노인터내셔널

고양(高陽) 소노(消奴) 스카이거너스 ( Goyang Sono Skygunners )는 대한민국(大韓民國) 경기도(京畿道) 고양시(高陽市) 를 연고(緣故)로 하는 프로 농구단(籠球團) 이다. 경기도(京畿道) 고양시(高陽市) 일산서구(一山西區) 대화동 에 위치(位置)하는 고양(高陽) 소노(消奴) 아레나 를 홈 구장(球場)으로 사용(使用)한다.

역사(歷史) [ 편집(編輯) ]

구단(球團) 역사(歷史) [ 편집(編輯) ]

1994년(年) , 한국(韓國)프로농구연맹(籠球聯盟)에 창단서(窓端緖)를 제출(提出)하면서 시작(始作)된다. 모기업(某企業) 동양제과 의 대지분(垈地分)으로 1995년(年) 3월(月) '동양제과 농구단(籠球團)'을 창단(創團)하고 1995년(年) 10월(月) 에는 농구단(籠球團)의 심볼을 오리온스로 확정(確定)지었으며, 1996년(年) 3월(月) 27일(日) 창단식(創團式)을 갖고 남자(男子) 농구계(籠球界)에 출사표(出師表)를 던졌다. 동양농구단(東洋籠球團)은 27일(日) 후(後) 코리안리그 우승(優勝)이라는 신화(神話)를 기록(記錄)했고, 6개월(個月) 후(後)에는 제(第)77회(回) 전국체육대회(全國體育大會)에서 준우승(準優勝)이라는 쾌거(快擧)를 올렸다. 1997년(年) 프로농구(籠球) 출범(出帆)을 앞두고 1996년(年) 11월(月) 농구열기(籠球熱氣)가 강(剛)한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 를 연고지(緣故地)로 정(定)하였고, 같은 해 12월(月) 27일(日) 10개(個) 구단(球團) 중(中) 가장 먼저 독립법인(獨立法人) 동양(東洋)레포츠 주식회사(株式會社)를 설립(設立), '동양제과 농구단(籠球團)'에서 '대구(大邱) 동양(東洋) 오리온스 프로농구단(籠球團)'으로 개칭(改稱), 프로농구단(籠球團)으로 정식(正式) 출범(出帆)하였다. 2003년(年) 9월(月) 동양그룹 오리온그룹 의 그룹 분리(分離)로 '대구(大邱) 오리온스 농구단(籠球團)'으로 개칭(改稱)하게 되었다. 2011년(年) 에 연고지(緣故地)를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 에서 고양시(高陽市) 로 이전(移轉)하여 '고양(高陽) 오리온스 농구단(籠球團)'으로 교체(交替)하여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過程)에서 잡음(雜音)이 많았고, 이에 대(對)한 부정적(否定的)인 시각(視角)도 많았다. [2] 2015년(年) '고양(高陽) 오리온스'는 '고양(高陽) 오리온 오리온스'로 모기업(某企業) 명(名)을 포함(包含)한 팀명(名)으로 변경(變更)했다. 홈구장은 2010-11 시즌까지 대구실내체육관 에서 열렸고, 연고지(緣故地) 이전(移轉)으로 인(因)해 2011-12 시즌부터 고양체육관(高陽體育館) 에서 경기(競技)가 열리고 있다.

신생(新生)팀 선풍(旋風) [ 편집(編輯) ]

대구(大邱) 오리온스의 모태(母胎)가 된 동양제과 1996년(年) 3월(月)에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 를 연고(軟膏) 학교(學校)로 하여 창단(創團)했다. 창단(創團) 감독(監督)으로는 상무(常務) 농구단(籠球團) 의 감독(監督)이었던 박광호 를 선임(選任)했으며, 김진 코치를 영입(迎入)했다. 또,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 포워드 전희철 [3] , 김병철(金炳哲) [4] 과 김광운 [5] , 허남영 [6] 등(等)을 비롯한 15명(名)의 선수(選手)들을 창단(創團) 멤버로 영입(迎入)하며 기틀을 마련했다. 그 해 4월(月)의 박카스배(杯) 코리안리그 1차(次) 대회(大會)에서 상무(常務) 와 6승(勝) 2패(敗)로 동률(同率)을 이루었으나 승자승(勝者勝) 원칙(原則) 에 따라 창단(創團) 27일(日) 만에 첫 우승(優勝)을 차지했다. 당시(當時) 골밑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던 전희철 은 MVP를 수상(受賞)했고, 동양제과(東洋製菓)의 저력(底力)은 그 해 전국체전(全國體典) 준우승(準優勝)을 거쳐 프로 원년(元年)까지 이어져 우승(優勝) 후보(候補)로 손꼽히기에 이르렸다. 덕분(德分)에 창단(創團) 초기(初期)부터 두터운 팬층(層)을 확보(確保)하며 시즌을 시작(始作)할 수 있었다.

프로 출범(出帆) 초기(初期) 활약(活躍) [ 편집(編輯) ]

프로 원년(元年) 대구(大邱) 동양(東洋) 오리온스 팬들의 기대감(期待感)은 뜨거웠다. 토니 매디슨 [7] 과 로이 해먼즈 [8] , 두 용병(傭兵) 콤비와 전희철-김병철의 토종(土種) 콤비가 갖고 있는 잠재력(潛在力)은 높게 평가(評價)받았다. 시즌 초(初) 단독(單獨) 2위(位)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시즌 중반(中盤) 이후(以後) 기세(氣勢)가 꺾였다. 결국(結局)엔 원년(元年) 1997 시즌에서 11승(勝) 10패(敗)의 성적(成績)으로 4위(位)를 기록(記錄)해 6강(强) 플레이오프에 진출(進出)했고 준 플레이오프에서는 광주(光州) 나산 플라망스 를 4승(勝) 1패(敗)로 완파(完破)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進出)했다. 그러나 4강(强) 플레이오프에서는 그 해 챔피언 자리에 오른 부산(釜山) 기아 엔터프라이즈 에게 패(敗)하였다.

다음 시즌인 1997-98 시즌에도 리바운드 1위(位)를 기록(記錄)한 용병(傭兵) 키넌 조던 [9] -전희철의 더블 포스트와 김병철의 폭발적(暴發的)인 3점(點) 슛에 힘입어 23승(勝) 22패(敗)로 5위(位)를 차지했고, 준 플레이오프에서 원주(原州) 나래 블루버드 를 3승(勝) 2패(敗)로 제치고 2년(年) 연속(連續) 4강(强)에 진출(進出)한다. 이렇듯 전희철 김병철(金炳哲) 은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주축(主軸) 선수(選手)였다. 이러한 점(點)은 또 다른 문제(問題)를 안고 있었는데, 이들의 병역(兵役)이었다. 이 문제(問題)가 이후(以後) 대구(大邱) 동양(東洋) 오리온스의 긴 암흑기(暗黑期)로서 표출(表出)되기 시작(始作)한다.

굴욕적(屈辱的)인 32연패(連霸), 그리고 기나긴 암흑기(暗黑期) [ 편집(編輯) ]

두 시즌 연속(連續) 4강(强)에 진출(進出)하면서 가능성(可能性)을 보인 오리온스의 가장 큰 난제(難題)는 전희철 , 김병철(金炳哲) , 박재일 등(等) 주축(主軸) 선수(選手)들의 병역(兵役) 문제(問題)였다. 이들을 순차적(順次的)으로 입대(入隊)시키며 전력(電力) 누수(漏水)를 최대한(最大限) 줄이는 방안(方案)과 한꺼번에 입대(入隊)시키는 방안(方案)을 놓고 고심(苦心)하던 동양(東洋) 오리온스 박용규 단장(團長)은 주위(周圍)의 조언(助言)을 모두 종합(綜合)해 결정(決定)을 내렸다. 그가 내린 결단(決斷)은 '이왕(已往) 맞을 매, 화끈하게 한 번(番)에 맞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돌아오는 날 '오리온스의 황금기(黃金期)'를 열겠다는 계획(計劃)이었다. 결국(結局) 1997-1998 시즌 종료(終了) 후(後) 전희철 공익근무요원(公益勤務要員) 으로 입대(入隊)했고, 팀에서는 김병철(金炳哲) , 박재일 [10] 을 비롯한 주전급(主戰級) 국내(國內) 선수(選手) 6명(名)을 모두 국군체육부대(國軍體育部隊) 에 입대(入隊)시켰다. 팀의 베스트 5는 외국인(外國人) 선수(選手) 2명(名)과 이적생(移籍生) 이인규, 이훈재 , 정락영 등(等)으로 모두 물갈이되었다. 외국인(外國人) 선수(選手) 선발(先發)에서는 그레그 콜버트 [11] 라는 걸출(傑出)한 선수(選手)를 뽑을 수 있었기에 구단(球團) 관계자(關係者)들이 내심(內心) 최하위권(最下位圈)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期待)했다. 하지만 8경기(競技)를 치를 때까지 득점(得點) 및 리바운드 순위(順位)에서 1·2위(位)를 다투던 그레그 콜버트가 부인(夫人)과의 불화(不和)를 이유(理由)로 돌연(突然) 보따리(褓따리)를 싸 귀국(歸國)하면서 시즌이 꼬이기 시작(始作)했다. 콜버트 대신(代身) 자바리 마일스를 영입(迎入)했지만, 그의 기량(技倆)은 콜버트에 크게 못 미쳤고 이후(以後) 연패(連霸)를 거듭했다. 선수단(選手團)의 사기(士氣)가 크게 떨어지면서 연패(連敗)는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KBL 신기록(新記錄)인 12연패(連霸)와 NBA 기록(記錄)인 25연패(連霸)를 넘어서 결국(結局) 32연패(連敗)에 빠졌고, 결국(結局) 이 연패(連霸) 행진(行進)은 1999년(年) 2월(月) 28일(日) 나산 플라망스 전(戰)에서 겨우 끝낼 수 있었다. 85:66으로 연패(連霸)를 끊은 후(後) 대구실내체육관 은 마치 우승(優勝)이라도 한 분위기(雰圍氣)였고 구장(球場)을 찾은 팬들과 팬클럽 회원(會員)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감격(感激)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남은 경기(競技)에서도 전패(全敗)를 당(當)하며 3승(勝) 42패(敗)로 1998-1999 시즌을 마감했다. [12]

다음 1999-2000 시즌에는 공익근무(公益勤務) 소집(召集)이 해제(解除)되어 복귀(復歸)하는 전희철 , 신인(新人) 드래프트에서 2순위(順位)로 입단(入團)한 조우현 [13] 등(等) 복귀(復歸)하거나 새로이 가세(加勢)하는 선수(選手)들이 있어서 역시(亦是) 시즌 초반(初盤)에 기대감(期待感)을 높였다. 그 밖에도 코칭 스태프와 선수(選手), 프런트가 이전(以前) 시즌의 굴욕(屈辱)을 벗어 던지기 위해 혼연(渾然) 일체(一切)가 되었다. 하지만 시즌 전(前) 기대(期待)했던 신인(新人) 포인트가드 김상우 [14] 가 팔목이 부러지는 부상(負傷)을 입으면서 시즌 내내 포인트가드 부재(不在)로 고생(苦生)하게 된다. 거기다 전희철 이 시즌 초(初) 이마 부상(浮上), 6강(强) 다툼이 한창 치열(熾烈)할 때 발목 부상(負傷)으로 결장(缺場)하고 조우현도 허리 디스크로 시즌 중(中) 15일간(日間) 결장(缺場)한데다 외국인(外國人) 선수(選手) 무스타파 호프 [15] 가 부인(夫人)의 출산(出産)을 이유(理由)로 3경기(競技)를 결장(缺場)하는 등(等) 악재(惡材)들이 겹치며 중하위권(中下位圈)에서 계속(繼續) 맴돌았다. 시즌 막판 6경기(競技)에서 5승(勝) 1패(敗)로 선전(宣傳)하며 치고 올라가는 듯했으나 결국(結局) 6위권(位圈)과 1승(勝) 차이(差異)(20승(勝) 25패(敗))로 8위(位)를 기록(記錄)하며 플레이오프 진출(進出)에 실패(失敗)했다.

2000-01 시즌에는 김병철(金炳哲) 이 복귀(復歸)하고 전희철 등(等)이 건재(健在)하여 4강(强) 전력(戰力)으로 평가(評價)받았으나 9승(勝) 36패(敗)로 다시 꼴찌를 기록(記錄)하면서 참담(慘澹)한 시즌을 보냈다. 그 이유(理由)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于先) 포인트가드의 부재(不在)였다. 원래(元來) 슈팅 가드인(人) 김병철(金炳哲) 이 팀 사정상(事情上) 시즌 내내 포인트가드 역할(役割)을 보면서 제 기량(技倆)을 펼치지 못했다. 이흥배 [16] , 김상우와 같은 기대(期待)했던 신예(新銳) 포인트가드 선수(選手)들의 성장(成長)이 받쳐 주지 못했던 것이 뼈아팠다. 또한 기대(期待) 이하(以下)였던 외국인(外國人) 선수(選手)가 자주 교체(交替)되면서 조직력(組織力)을 정비(整備)할 시간(時間)이 없었다. 와이킹 존스-앨버트 리차드슨-토시로 저머니, 데이먼 플린트-마이클 루이스-토드 버나드 등(等)으로 이어지는 교체(交替) 릴레이는 안 되는 팀의 전형(典型)이었다. 시즌 중(中) 최명룡 감독(監督)이 해임(解任)되고 김진 코치가 감독대행(監督代行)으로 임명(任命)되는 등(等) 갖은 노력(努力)을 했으나 결국(結局)은 10위(位)라는 성적표(成績表)만 안았다. 이런 답답함으로 인하여 오리온스는 2001-2002 시즌을 앞두고 새로 가드 한 명(名)을 지명(指名)하기로 한다. 그리고 오리온스 는 보기와는 다르게 성장(成長)한다

김승현의 합류(合流), 그리고 전성기(全盛期) [ 편집(編輯) ]

감독대행(監督代行)을 맡고 있었던 김진 코치는 시즌 후(後) 정식(正式) 감독(監督)으로 승격(昇格)되었다. '꼴찌의 반란(叛亂)'. 2001-02 시즌 대구(大邱) 동양(東洋) 오리온스에게 따라다니던 호칭(呼稱)이었다. 신인(新人) 드래프트에서 3순위(順位)로 뽑은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출신(出身)의 수퍼 루키 가드 김승현 과 1순위(順位) 용병(傭兵) 마커스 힉스 의 가세(加勢)로 다시 한 번(番) 기대(期待)를 모았던 선수(選手) 구성(構成)이었지만 지난 3년(年)의 길고 긴 부진(不振)은 전문가(專門家)들로 하여금 올해도 기대감(期待感)에서 끝날 것이라는 예측(豫測)을 낳게 하였다. 하지만 시즌 초반(初盤)부터 폭발(暴發)한 김승현과 마커스 힉스의 활약(活躍)은 센세이션 그 자체(自體)였다. 김승현은 178cm의 작은 키에도 불구(不拘)하고 그해 프로농구(籠球) 무대(舞臺) 전체(全體)를 휘저었다. 김승현은 12.2득점(得點), 4.0리바운드, 8.0어시스트, 3.2스틸를 기록(記錄)하면서 어시스트 1위(位), 스틸 1위(位)를 차지했다. 화려(華麗)한 드리블과 패스, 엄청난 스피드로 몇 년간(年間) 이어졌던 동양(東洋) 오리온스의 포인트가드 부재(不在)를 한 번(番)에 해소(解消)해 주었다. 결국(結局) 시즌 MVP와 신인상(新人賞)까지 동시(同時)에 수상(殊常)하였다. 한편(한便), 마커스 힉스는 체격(體格)은 왜소(矮小)했지만 NBA 수준(水準)의 골밑 돌파(突破)와 가공(可恐)할 체공력(滯空力)에서 나오는 블록슛, 리바운드를 갖춰 외국인(外國人) 선수(選手) 드래프트 1순위(順位)다운 실력(實力)을 뽐냈다. 농구(籠球)팬들에게는 한 단계(段階) 수준(水準)이 높아진 농구(籠球)를 보여줬다. 농구(籠球)팬들에게는 보는 즐거움을, 팀에는 승리(勝利)의 기쁨을 동시(同時)에 선사(膳賜)한 것이다. 24.2득점(得點)으로 4위(位), 8.2리바운드, 3.7어시스트, 2.9블록으로 1위(位)를 기록(記錄)하는 등(等) 고른 활약(活躍)으로 외국인(外國人) 선수상(選手賞)을 차지했다.

욕심(欲心)을 버리고 팀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않은 '양철(洋鐵)' 듀오의 변신(變身)도 시즌내내 화제(話題)가 됐다. 초등학교(初等學校)와 대학교(大學校) 동창(同窓)으로 20년(年) 가깝게 우정(友情)을 나눠온 전희철과 김병철은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서로 견제(牽制)한다', '둘의 자존심(自尊心)이 팀을 망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사이였으나 팀 득점(得點)을 책임(責任)져야 한다는 부담감(負擔感)이 무리(無理)한 플레이를 자아 냈고 시즌 전(前) 구단측(球團側)의 일방적(一方的)인 연봉(年俸) 삭감(削減) 통보(通報)를 감수(甘受)하면서 묵묵히(默默히) 부활(復活)을 준비(準備)했다. 농구공(籠球공)을 잡은 이래(以來) 처음 맛보는 '꼴찌' 수모(受侮)는 이들의 자존심(自尊心)에 불을 지폈다. 김진 감독(監督)은 키가 작은 3점(點)슈터 김병철(金炳哲)에게 “수비(守備)가 안되면 출전시키지 않겠다”며 수비(守備)를 강조(强調)했고 골밑보다는 외곽(外郭)을 선호(選好)하던 전희철에게는 골밑 로테이션 수비(守備)의 중책(重責)을 맡겼다. 이들은 '수비(守備)만 하라'는 김진 감독(監督)의 지시(指示)를 충실히(忠實히) 이행(移行)했다. 힉스의 공격(攻擊)패턴이 타(他)팀에게 간파(看破)당하고 체력(體力)이 부쩍 떨어진 3라운드가 되자 김진 감독(監督)은 '출격(出擊) 명령(命令)'을 내렸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김병철과 전희철은 내·외곽에서 득점(得點)을 해 줬고 동양(東洋)은 이들의 든든한 활약(活躍)으로 선두(先頭) 자리를 유지(維持)할 수 있었다. [17]

그 밖에 20순위(順位)로 가장 늦게 뽑힌 라이언 페리맨 이 경기당(競技當) 14.81개(個)의 리바운드로 1위(位)에 오르고 포스트 공격(攻擊)에서 힉스의 부담(負擔)을 덜어주면서 숨은 활약(活躍)을 펼쳐주었고 김진 감독(監督)의 용병술(用兵術), 정태호(鄭泰浩) 단장(丹粧)의 물심양면(物心兩面)적 지원(支援)이 더해지면서 시즌 1위(位)를 기록(記錄)할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4강(强)에서 5차전(次戰), 결승(決勝)에서 7차전(次戰)까지 가는 접전(接戰) 끝에 감격(感激)의 우승(優勝)을 차지하면서 선수단(選手團)과 프런트, 팬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물론(勿論) 지난 3년(年) 간(間)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핵심(核心) 가드 김승현 김진 감독(監督)과 함께 참가(參加)한 2002년(年) 아시안 게임 에서 금메달(金메달)까지 차지하여 병역(兵役)도 해결(解決)했다. 2002년(年) 에는 대구(大邱) 동양(東洋) 오리온스가 우승(優勝)하고 나서 프로야구단(野球團) 삼성(三星) 라이온즈 2002년(年) 한국(韓國)시리즈 에서 우승(優勝)하여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 연고(緣故) 프로 스포츠단(團)들이 많이 우승(優勝)을 차지한 해이기도 하다.

전성기(全盛期), 계속(繼續)된 정상도전(頂上挑戰) [ 편집(編輯) ]

이어진 2002-03 시즌에 앞서 샐러리캡 문제(問題)로 전희철이 전주(全州) KCC 이지스 로 이적(移籍)하고 페리맨도(度) 재계약하지 않고 창원(昌原) LG 세이커스 로 팀을 이동(移動)하면서 우승(優勝) 멤버 중(中) 2명(名)이 빠졌다. 그밖에 전력(電力) 플러스 요인(要因)이 없이 시즌을 맞이하여 우승(優勝) 전력(電力)보다는 4강권(强權)으로 분류(分類)되었다. 새로 뽑은 외국인(外國人) 선수(選手) AJ 롤린스 [18] 도 기대(期待)에 미치지 못해 시즌 중반(中盤) 토시로 저머니 [19] 로 대체(代替)되었지만 김승현과 마르커스 힉스의 콤비플레이가 더욱 무르익어가고 LG에서 영입(迎入)한 박훈근 [20] 이 전희철의 공백(空白)을 잘 메워 주면서 시즌 초(初) 선두권(先頭圈)을 유지(維持)해 나갔다. 하지만 저머니의 부진(不振)과 김승현의 징계(懲戒), 박훈근의 부상(負傷) 등(等) 악재(惡材)가 겹치면서 위기(危機)가 다가왔다. 이 위기(危機)는 김승현의 공백(空白)은 신인(新人) 가드 박지현(朴志玹)이, 박훈근의 공백(空白)은 박재일이 훌륭히 메워 주었고 변함없이(變함없이) 김병철이 내외곽(內外郭)에서 활약(活躍)하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결국(結局)은 2년(年) 연속(連續) 정규(正規)리그 제패(制霸)에 성공(成功)하면서 김병철(金炳哲)(평균(平均) 36분(分) 20초(秒) 출장(出張), 16.9득점(得點), 2.6리바운드, 2.7어시스트, 3점(點)슛 2.5개(個)(3위(位)), 1.6스틸(9위(位)))은 시즌 MVP, 마르커스 힉스(평균(平均) 37분(分) 40초(秒) 출장(出張), 26.1득점(得點)(2위(位)), 8.6리바운드, 4.8어시스트(8위(位)), 3.2블록(1위(位)))는 외국인(外國人) 선수상(選手賞), 김진 감독(監督)은 감독상(監督賞)을 받았다. 하지만 3위(位)였던 원주(原州) TG삼보 엑서스와 맞붙었던 이 해의 KBL 챔피언 결정전(決定戰) 에서 악명(惡名) 높은 '15초(秒) 실종사건(失踪事件)'이 일어난다. 챔피언 결정전(決定戰) 1,2차전(次戰)을 TG 삼보에 내주고 3,4차전(次戰)을 승리(勝利)한채 맞은 5차전(次戰)에서 3차(次) 연장(延長)까지 간 끝에 패배(敗北)하였다. 하지만 경기(競技) 후(後) 이 경기(競技)를 분석(分析)하던 코칭 스태프는 4쿼터 종료(終了) 1분(分) 16초전(秒前) 허재(許載) 의 아웃 오브 바운드로 TG 삼보가 공격(攻擊)을 재개(再開)해 잭슨의 3점(點)슛이 들어가기까지 15초(秒) 동안 전광판(電光板) 시계(時計)가 계속(繼續) 멈춰있었던 계시원(計時員)의 결정적(決定的) 실수(失手)를 발견(發見)했다. 동양(東洋)은 재경기(再競技)를 요청(要請)했고 제정위원회(制定委員會)에서는 이 요청(要請)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6차전(次戰) 당일(當日) 오후(午後) 열린 KBL 김영기 총재(總裁)와 양(兩)팀 단장간(團長間)의 면담(面談)에서 동양(東洋)은 고심(苦心) 끝에 재경기(再競技) 기회(機會)를 포기(抛棄)하기로 결정(決定)을 내렸다. 그대로 재경기(再競技)를 주장(主張)했다가는 TG 삼보가 6차전(次戰) 몰수패(沒數敗)를 선언(宣言)할지도 모르는 상황(狀況)이 됐기 때문이다. 정태호(鄭泰浩) 단장(團長)은 “프로농구(籠球) 발전(發展)이라는 대승적(大乘的)인 차원(次元)에서 제소(提訴)를 취하(取下)한다”며 눈물을 쏟았다. 동양(東洋)은 선수(選手)들의 투혼(鬪魂)이 6,7차전(次戰) 승리(勝利)로 이어지기를 희망(希望)했지만 결국(結局) 숨막히던 승부(勝負)는 6차전(次戰)에서 TG 삼보의 우승(優勝)으로 마무리지어졌다.

2003-04 시즌을 앞두고 모기업(某企業) 동양그룹 이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 으로 분리(分離)되어 대구(大邱) 동양(東洋) 오리온스는 오리온그룹 계열(系列)로 들어감에 따라 '대구(大邱) 오리온스'로 팀명을 바꾸면서 의욕적(意欲的)으로 시작(始作)했다. 오리온스는 2003-04시즌을 32승(勝) 22패(敗), 3위(位)로 마무리했다. 정규(正規)시즌 3연패(連霸) 실패(失敗) 원인(原因)은 두 명(名)의 외국인(外國人) 선수(選手)들이 힉스의 공백(空白)을 잘 메워주지 못했던 것이었다. 김승현, 김병철의 여전(如前)한 활약(活躍)과 50%의 성공률(成功率)로 3점(點)슛 성공률(成功率) 1위(位)에 오르면서 급성장(急成長)한 포워드 박재일 을 위안(慰安)으로 삼으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進出)했다. 그러나 이 해 플레이오프에서 또 다시 오심(誤審)에 눈물을 흘린다. 오리온스와 LG의 6강(强) 플레이오프 3차전(次戰). 오리온스가 67-66으로 앞선 4쿼터 초반(初盤). LG의 공격(攻擊) 때 빅터 토마스가 엔드라인을 완전히(完全히) 벗어나 볼을 패스했지만 주심(主審)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경기(競技)는 계속(繼續)됐고, 오리온스가 76-73으로 앞선 상황(狀況). 레이저가 림을 맞고 나온 볼을 건드려 바스켓에 넣었다. 그러나 심판(審判)은 실린더룰 [21] 을 적용(適用), 득점(得點)을 인정(認定)하지 않았다. 오리온스는 결국(結局) 강동희(姜東熙) 의 3점포(點砲)에 무너지며 4강(强) 플레이오프 진출(進出) 좌절(挫折)이라는 불운(不運)에 울어야 했다. 오심(誤審) 파문(波紋)은 경기(競技)가 끝난 후(後)에도 확산일로(擴散一路)를 치달았다. 김진 감독(監督)은 “조작(造作)이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차라리 내가 심판(審判)을 하겠다”며 반발(反撥)했고, 오리온스는 KBL에 재경기(再競技)와 함께 진상조사(眞相調査)를 요구(要求)했다. 그러나 KBL은 KCC와 LG의 플레이오프 4강(强) 1차전(次戰)이 열리던날 ‘오심(誤審)은 인정(認定)되지만 조작(造作)의 증거(證據)는 없다’며 재경기(再競技) 요구(要求)를 기가(기가)했고, 해당(該當) 심판(審判)에 대(對)한 중징계(重懲戒)만을 내렸다. 정태호(鄭泰浩) 오리온스 단장(團長)은 사퇴(辭退) 발표(發表)라는 배수(背水)의 진(鎭)까지 쳤지만 KBL의 결정(決定)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남는 게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KBL은 과거(過去) 한 차례(次例) 시행착오(施行錯誤)를 겪은 외국인(外國人) 심판제(審判制)를 2004-2005시즌 다시 도입(導入)키로 했다. 또 오심(誤審) 논란(論難)이 끊이지 않았던 실린더룰도 폐지(廢止)되었다.

그 후(後) 2004-05, 2005-06, 2006-07 시즌에서도 김진 감독(監督), 김승현-김병철 체제(體制)는 더욱 공고(鞏固)해지면서 꾸준히 힘을 발휘(發揮)해 서울 삼성(三星) 썬더스 가 9시즌 연속(連續) 진출(進出)하기 전(前)까지 KBL 최다(最多)인 6회(回) 연속(連續) 플레이오프 진출(進出)이라는 기록(記錄)을 달성(達成)한다. 속공(速攻)을 내세우는 빠른 플레이, 3점(點)슛, 덩크슛으로 대변(代辯)되는 화려(華麗)한 농구(籠球)는 대구(大邱) 오리온스의 특징(特徵)으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팬들을 환호(歡呼)하게 만들었다. 이는 KBL 12시즌 통산(通算) 득점(得點) 1위(位)(50,323점(點)), 3점(點)슛 1위(位)(4,686개(個))라는 기록(記錄)이 말해준다. 대구(大邱) 오리온스 자체(自體)로 한국(韓國) 프로농구(籠球)의 흥행(興行)코드로 자리잡았고 포인트가드 김승현, 프로 원년(元年)부터 팀을 한 번(番)도 옮기지 않은 프랜차이즈 스타 김병철도 그 한 축(軸)을 담당(擔當)하고 있다.

2007-08시즌 맞은 위기(危機) [ 편집(編輯) ]

2007-08 시즌을 앞두고 팀의 6년(年) 연속(連續) 플레이오프 진출(進出)을 이끌었던 김진 감독(監督)이 서울 SK 나이츠 로 떠나면서 다시 오리온스는 변화(變化)를 겪는다. 과거(過去) 대한민국(大韓民國) 농구계(農具契)의 슈퍼 스타였고 1997-98 시즌에 창원(昌原) LG 세이커스의 감독(監督)을 역임(歷任)하며 수비(守備) 농구(籠球)로 정규(正規)리그 2위(位)를 이끌었던 이충희 감독(監督)을 영입(迎入)했다. 그리고 신인(新人) 드래프트에서는 전체(全體) 2순위(順位)로 귀화(歸化) 농구선수(籠球選手)인 이동준 을 영입(迎入)하면서 어느 시즌보다 기대감(期待感)을 높였으며 개막(開幕) 2연승(連勝)으로 시작(始作)하였다. 하지만 김승현의 부상(負傷)이 발목을 잡았다. 김승현은 21경기(競技)밖에 출전(出戰)하지 못하며 경기당(競技當) 평균(平均) 6.0 어시스트를 기록(記錄)했다. 그 자리를 신인(新人) 김영수(金映洙) [22] 가 비교적(比較的) 잘 메꿔주었지만 역부족(力不足)이었고 주태수 [23] , 이동준이 포스트에서 제역할을 해주었지만 꾸준하지 못했다. 더욱이 이 둘은 포지션이 겹치는 문제(問題)가 발생(發生)하여 시즌 중(中) 팀의 리빌딩을 위해 주태수는 눈물을 머금고 인천(仁川) 전자랜드 엘리펀츠 로 옮겨갔다. [24] 이충희 감독(監督)도 시즌 초(初) 사임(辭任)하여 김상식 감독(監督) 대행(代行) 체제(體制)로 시즌을 마친 오리온스는 결국(結局) 12승(勝) 42패(敗)로 7년(年) 만에 최하위(最下位)의 수모(受侮)를 겪게 된다. 하지만 신인(新人) 선수(選手)들인 김영수(金映洙), 이동준, 그리고 슈팅가드 김병철의 후계자(後繼者)로 지목(指目)되어 시즌 중(中) 트레이드된 전정규 [25] 의 가능성(可能性)을 본 시즌이었다. 그리고 김승현의 공백시(空白視) 전력(戰力)이 크게 떨어지는 약점(弱點)을 보완(補完)하기 위해서 2008 KBL 신인(新人) 드래프트에서 대학(大學) 포인트가드 최대어(最大魚) 정재홍(鄭在洪) 을 영입(迎入)하는 등(等) 다음 시즌을 더욱 기대(期待)하게 만드는 행보(行步)를 보이게 했다.

계속(繼續)되는 몰락(沒落) [ 편집(編輯) ]

2008-09 시즌 김상식 감독(監督) 체제(體制)로 갔던 오리온스는 김승현이 빠른 시일내(時日內)에 복귀(復歸)하고, 시즌 중반(中盤)에 원주(原州) 동부 프로미(美) 우승(優勝)의 주역(主役)이었던 레지 오코사를 트레이드로 영입(迎入)하여 플레이오프 진출(進出)을 노릴려고 했다. 하지만 김승현이 시즌 아웃을 당(當)하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오코사와의 호흡(呼吸)도 맞지 않아 끝내 김상식 감독(監督)은 사퇴(辭退)한다. 시즌이 끝난 후(後), 대한민국(大韓民國) 농구(籠球) 국가대표(國家代表)팀 감독(監督)과 코치였던 김남기 감독(監督)과 김유택 코치가 취임(就任)하였으나, 김승현이 이면계약(裏面契約)으로 18경기(競技) 출장정지(出場停止) 징계(懲戒)를 받았다. 2010-11 시즌에도 몰락(沒落)이 계속(繼續)되어서 또 다시 10위(位)를 기록(記錄)했다. 이 시즌을 끝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김병철이 은퇴(隱退)했고, 김남기 감독(監督)도 물러났다. 김유택 코치도 팀에서 물러나 모교(母校)의 감독(監督)으로 옮겼다.

대구(大邱)에서 고양(高揚)으로 연고지(緣故地) 이전(以前) [ 편집(編輯) ]

김남기의 후임(後任) 감독(監督)으로 추일승 이 취임(就任)하였다. 2011년(年) 6월(月) 오리온스가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 와 협의(協議)없이 경기도(京畿道) 고양시(高陽市) 로 연고지(緣故地) 이전(移轉)을 강행(强行)하였다. 그로 인해 2011-12 시즌부터는 대구(大邱) 오리온스가 아닌 고양(高陽) 오리온스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 여파(餘波)로 오리온 제품(製品) 불매운동(不買運動)까지 벌이는 등(等) 반발(反撥)을 거세졌다.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 는 KBL에서 오리온스 연고지(緣故地) 이전(以前) 불허(不許)를 신청(申請)할 예정(豫定)이었다. 그런데 최근(最近) KBL이 27일(日)에 열린 이사회(理事會)에서, 오리온스의 연고지(緣故地)를 고양시(高陽市)로의 이전(移轉) 확정(確定)이 승인(承認)됨에 따라, 2011-12시즌부터 팀명을 고양(高陽) 오리온스로 교체(交替)하게 되었다. 연고지(緣故地)를 옮긴 뒤 처음 치른 시즌인 2011-12 시즌에서는 20승(勝) 34패(敗), 8위(位)를 기록(記錄)하였다.

2012-13 시즌 초반(初盤)에 6승(勝) 3패(敗)를 기록(記錄)했으나 그 뒤 레더가 무단이탈(無斷離脫)하는 등(等) 험난(險難)한 행보(行步)를 이어갔다. 하지만 어떻게든 6강(强)에 진출(進出)했고 5위(位)로 시즌을 마감했다. 6강(强) 플레이오프에서 안양(安養) KGC인삼공사(人蔘公社) 에 2패(敗)를 먼저 떠안았던 것을 홈에서 2승(勝)으로 되갚지만, 결국(結局) 4강(强) 티켓을 내주었다.

2015-2016 시즌에 전주(全州) KCC 이지스 를 꺾고 역대(歷代) 2번째(番째) 우승(優勝)을 차지하였고 고양(高陽)에서는 첫우승(優勝)이다.

데이원자산운용(資産運用)에 매각(賣却), 구단(球團) 제명(除名) 사태(事態) [ 편집(編輯) ]

고양(高陽) 소노(消奴)로의 새출발(出發) [ 편집(編輯) ]

역대(歷代) 감독(監督) 연혁(沿革) [ 편집(編輯) ]

순번(順番) 재임(在任) 기간(期間) 이름
1대(代)
1997.2.1 ~ 2000.1.9
대한민국 박광호
2대(代)
2000.1.10 ~ 2001.1.5
대한민국 최명룡
3대(代)
2001.4.1 ~ 2007.4.30
대한민국 김진
4대(大)
2007.5.14 ~ 2007.12.26
대한민국 이충희
5대(大)
2008.6.3 ~ 2009.3.2
대한민국 김상식
6대(大)
2009.4.22 ~ 2011.3.27
대한민국 김남기
7대(代)
2011.3.28 ~ 2020.2.20
대한민국 추일승
8대(代)
2020.4.28 ~ 2022.5
대한민국 강을준
9대(代)
2022.5 ~
대한민국 김승기

우승(優勝) 기록(記錄) [ 편집(編輯) ]

국내(國內) 대회(大會) [ 편집(編輯) ]

리그 [ 편집(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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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選手團) [ 편집(編輯) ]


군입대(軍入隊) 선수(選手)들 [ 편집(編輯) ]

번호(番號) 포지션 이름 데뷔년도(年度) 이적년도(移籍年度) 군(軍) 입대년도(入隊年度)
17 가드 김근호 2017 2018
55 가드 김진유 2016 2019(상무)

응원단(應援團) [ 편집(編輯) ]

응원단장(應援團長) : 서한국

아나운서 : MC이슈

치어리더 : 김한나 정가(政家)예 박신비(朴神秘) 유세리 박성은 천소윤(千少尹) 염세(厭世)빈 유세빈 윤수인 이주은 신혜령

  • 2023-24 시즌부터 에이펙스 커뮤니케이션즈 소속(所屬) KIA 타이거즈 치어리더들이 담당(擔當)한다.

각주(各州) [ 편집(編輯) ]

  1. 데이원의 제명(除名)으로 인해 인수(引受) 대금(代金) 없이 잔존(殘存) 선수(選手), 코칭스태프만 데려가는 해체(解體) 후(後) 재창단(再創團) 절차(節次)를 밟았지만 한국농구연맹(韓國籠球聯盟)에서는 역사(歷史) 단절(斷絶)을 인정(認定)하지 않고 구단(球團) 인수(引受) 후(後) 기존(旣存)의 기록(記錄)과 역사(歷史)를 승계(承繼)한 팀으로 간주(看做)한다.
  2. 추일승 감독(監督) "연고지(緣故地) 이전(以前) 100승(勝), 고양(高陽) 시민(市民)들과 함께 기쁨 누리고파" - news1
  3. http://history.kbl.or.kr/players/contents.asp?player_no=230021&mode=1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4. http://history.kbl.or.kr/players/contents.asp?player_no=230015&mode=1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5. “보관(保管)된 사본(寫本)” . 2007년(年) 12월(月) 17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08년(年) 6월(月) 1일(日)에 확인(確認)함 .  
  6. “보관(保管)된 사본(寫本)” . 2007년(年) 12월(月) 21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08년(年) 6월(月) 1일(日)에 확인(確認)함 .  
  7. http://history.kbl.or.kr/players/contents.asp?player_no=230026&mode=3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8. “보관(保管)된 사본(寫本)” . 2007년(年) 12월(月) 14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08년(年) 6월(月) 1일(日)에 확인(確認)함 .  
  9. “보관(保管)된 사본(寫本)” . 2007년(年) 12월(月) 17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08년(年) 6월(月) 1일(日)에 확인(確認)함 .  
  10. http://history.kbl.or.kr/players/contents.asp?player_no=230044&mode=2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11. http://history.kbl.or.kr/players/contents.asp?player_no=230034&mode=2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12. 《KBL 10년사(年史)》, KBL프로농구연맹(籠球聯盟), 2007, p.78
  13. http://history.kbl.or.kr/players/contents.asp?player_no=230036&mode=1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14. “보관(保管)된 사본(寫本)” . 2007년(年) 11월(月) 10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08년(年) 6월(月) 1일(日)에 확인(確認)함 .  
  15. “보관(保管)된 사본(寫本)” . 2007년(年) 12월(月) 16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08년(年) 6월(月) 1일(日)에 확인(確認)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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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http://orions.co.kr/new_orions/anniversary/review_2002.html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18. “보관(保管)된 사본(寫本)” . 2007년(年) 12월(月) 16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08년(年) 6월(月) 1일(日)에 확인(確認)함 .  
  19. “보관(保管)된 사본(寫本)” . 2007년(年) 12월(月) 21일(日)에 원본(原本) 문서(文書) 에서 보존(保存)된 문서(文書) . 2008년(年) 6월(月) 1일(日)에 확인(確認)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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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http://krdic.naver.com/detail.nhn?kind=newword&docid=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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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933596&
  25. http://history.kbl.or.kr/players/contents.asp?player_no=650023&mode=1 [ 깨진 링크 ( 과거(過去) 내용(內容) 찾기 )]

외부(外部) 링크 [ 편집(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