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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요]故 朴大統領 屍身檢案 김병수前國軍病院長|東亞日報

[그땐 그랬지요]故 朴大統領 屍身檢案 김병수前國軍病院長

  • 入力 1996年 10月 25日 20時 48分


「權基太記者」 10月26日은 韓國現代史에서 쉽게 지워질 수 없는 날이다. 特히 김병수 서울보건전문대학腸(61)은 그 날, 79年 10月26日을 잊을 수 없다. 國軍서울지구병원 應急手術臺 위에 하얀 천으로 덮여 누워 있던 屍身. 그것은 自身이 5年餘동안 靑瓦臺 醫務室張으로 心血을 기울여 모셨던 분. 2時間 前에 피격당한대통령의맥박없는육신이었다. 『傳喝을 받고 應急室로 뛰어가니 武裝한 中央情報部 要員들이 屍身의 얼굴을 半만 보여주더군요. 이미 絶命한 狀態로 銃傷을 입은 얼굴이 부어 있어 설마 大統領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病院長인데도 莫無可奈로 막는 중정要員들을 說得해 屍身의 가슴을 살펴본 後에야 大統領임을 알았다. 平素 治療해주던 斑點을 確認한 것. 屍身을 엑스레이로 撮影할 때는 가슴에 박혔던 彈丸 하나가 와이셔츠에 걸려 있다가 떨어져 내렸다. 『며칠 뒤 保安司 西氷庫 分室에서 取調당하던 김재규를 檢診하고 오면서 서울市廳 앞에 걸린 大統領의 커다란 근영을 보았습니다. 모시던 分의 屍身을 檢案하고 狙擊者의 健康을 檢診하다니 말할 수 없는 悲哀가 몰려왔습니다』 그는 메스를 잡을 意欲을 잃어 버렸다. 80年 環境處 次長으로 拔擢되어 轉役하고 保社部 次官을 거쳤다. 83年 醫大敎授로 옮겼다가 몇番 자리를 옮긴 끝에 94年 서울보건專門大에 자리잡았다. 그는 61年 서울대醫大 卒業後 空軍 軍醫官을 志望했다. 美國留學과 서울대醫大 大學院 硏修 等을 거쳐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診療部長으로 일하게 됐다. 『陸英修女史가 돌아가신 後 靑瓦臺 醫務室張으로 派遣되어 朴正熙大統領과의 因緣이 始作됐습니다. 제가 지켜본 그분은 寡默하고 斷乎하지만 바탕이 仁慈한 분이셨죠.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番은 肛門이 막혀 태어난 아기가 돈이 없어 手術을 못한다는 記事를 읽고는 제게 아무도 몰래 手術해줄 것을 指示하셨어요. 紙匣을 털어 寸志도 내놓으시더군요』 그래서 그는 朴大統領을 못잊어 한다. 해마다 10月末이면 講義를 하다가도 낮게 내려앉은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 보는 일이 잦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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