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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과 基督敎 强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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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과 基督敎 强要 [ 編輯 ]

人類 歷史에서 名作들이 人間의 文明에 크게 影響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이다. 그 中에서 올해 韓國敎會가 注目해야 할 作品은 칼빈이 1536年에 最初로 出版한 基督敎綱要이다. 칼빈은 바로 이 冊을 통하여 루터가 始作限 宗敎改革을 完成하는데 하나님의 道具가 되었다. 칼빈의 生涯을 立體的으로 完全하게 理解하기는 쉽지 않지만, 칼빈 自身이 전 一生의 통하여 著述했던 基督敎 强要를 통하여 그가 重要하게 强調했던 것을 陳述하는 것은 칼빈 誕生 500周年이 되는 2009年에 큰 意味가 있다.

칼빈은 基督敎 强要를 통하여 單純히 基督敎의 核心 眞理를 要約하고 敎理化하는 것이 그의 目的이 아니었다. 그의 著作의 動機 속에서는 敬虔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聖經을 바로 理解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이런 그의 目的은 그 삶의 情況에서 나왔다. 自身의 故國은 로마 카톨릭 敎會에 依해 모든 社會가 어두워져서 眞理를 떠나 그리스도의 福音 알지 못했기 때문에 칼빈은 참된 敬虔의 삶을 살지 못한 者들을 돕기 위하여 이 冊을 통하여 自身의 사랑의 외침이 들어 있다. 이 作品에서 칼빈은 하나님을 敬畏하는 智慧를 强調하면서도 自身의 이웃들이 人間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게하는 참된 福音의 眞理를 確信하고 참된 하나님의 百姓들이 社會와 國家를 變革시키기를 바라는 剛한 熱情을 보여준다.

聖經의 사람 [ 編輯 ]

칼빈은 聖經의 사람이었다. 그는 徹底하게 自身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屈服하여 自身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解釋하고 檢證받아 말씀대로 살려고 努力한 偉大한 改革者였다. 이런 그의 眞實된 努力이 바로 基督敎 强要에 잘 나타나 있다.

基督敎 强要의 가장 特徵的인 것은 그의 作品의 每 페이지마다 聖經句節과 聖經本文으로 가득찬 聖經的 作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讀者 序文에서 밝힌 것처럼 聖經을 올바르게 接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基督敎 强要는 聖經을 가리켜 주는 칼빈의 집게 손가락이다. 칼빈은 聖經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權威있게 받아들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解釋한(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聖經만이 神學의 唯一한 原理로 認定하였다. 칼빈의 神學은 바로 聖經에 依해서 태어났다. 聖經이 가는 곳까지만 가며 人間의 限界를 創造主 하나님 앞에서 謙遜하게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칼빈은 1564年 4月 28日 제네바 牧師들에게 告別 時에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榮光을 위하여 聖經을 純粹하게 眞實되게 解釋하도록 말한다.

敎會 共同體를 위한 神學者 [ 編輯 ]

칼빈은 自身의 神學的 活動이 하나님의 敎會 共同의 有益을 위한 것임 말한다. 이런 敎會의 有益은 正當한 方式에 依해 遂行되어야 한다. 로마 카톨릭 敎會처럼 敎會와 聖職者 中心 原理가 아니다. 칼빈은 敬虔의 純粹한 가르침을 가르치고 保存할 것을 當付한다.

오늘날 神學者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敎會에 害를 끼치는 境遇가 많이 있다. 自身의 神學的 前提와 方法을 固執한 나머지, 聖經的 判斷과 敎會의 共同體의 最高善을 考慮하지 않고 過激한 方式으로 自身의 神學 만들기에 汲汲해 있다. 이와는 反對는 칼빈은 强要와 로마書 主席 같은 作業이 하나님의 敎會를 위한 일이라고 告白한다. 그의 神學 活動은 主님의 敎會를 擴張시키고 하나님의 百姓을 돕는 일로 말한다. 칼빈은 이것이 自身의 only prayer라고 한다. 그러나 敎會를 올바르게 有益을 주는 것은 敎會에 無作定 屈服하고 聖職者들에게 盲目的 順從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敬虔의 純粹한 敎理를 가르키고 後代들에게 繼承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福音을 强調한 神學者 [ 編輯 ]

칼빈은 1536年 基督敎 强要의 副題에서 救援의 敎理에 對한 重要性을 보여준다. 칼빈은 基督敎 强要에서 救援의 敎理를 배우는 者들을 돕기 위하여 이 冊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救援이라는 單純한 基督敎의 眞理를 매우 所重하게 言及한다. 바로 칼빈의 强要가 이 目的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헛된 人間의 思想이나 哲學으로 變質되었을 것이다. 1545年版 序文에서 言及한 것처럼 救援의 敎理 안에서 敎育받기를 懇切히 바라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言及한다. 그런데 이런 作業은 所謂 에라스무스와 같은 人文主義者들이 使用한 基督敎 哲學(Christian Philosophy)依해서 遂行될 수 없음을 斷乎히 말한다. 칼빈은 强要 3.7.1에서 哲學者의 方法이란 오직 理性만 依支하고 聖靈에 따르지 않는 것으로 본다. 人文主義者를 脫皮한 칼빈이 이제 말씀의 神學者로서 舊怨 敎理의 重要性을 自身의 冊의 가장 重要한 目的 中에 하나로 言及하며, 바로 이 基督敎 眞理를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自身의 義務임을 보여 준다. 이런 內容은 프랑스 王 프란시스 1世에게 드리는 獻辭에서도 잘 나타난다. 칼빈은 自身의 目的이 宗敎에 熱心을 내는 者들에게 참된 敬虔(veram pietatem)을 이루는 것에 初步的인 基礎를(rudimenta) 傳하고, 그리스도에 對해 주리고 목말라하는 프랑스 兄弟들이 그리스도에 對한 적은 知識도 바로 알고 있는 者가 매우 적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强要를 쓰게 되었다고 그 動機를 말한다. 칼빈은 福音은 모든 믿는 者에게 救援을 주시는 하나님의 能力(롬 1:16)이며, 生命으로 좇아 生命에 이르는 냄새(고후 2:15)였다. 福音은 우리로 敎會의 傳統에 依存하라고 하지 않고 오직 聖經의 中心이신 그리스도에게 順從하라고 한다.

建設的 批判의 사람 [ 編輯 ]

칼빈은 프랑스 王 프란시스 1世에게 드리는 獻辭에서 로마 카톨릭 敎會가 福音을 歪曲하고 하나님의 百姓들을 바르게 引導하지 못하고, 福音을 바르게 믿는 者들을 逼迫하는 것에 對하여 呼訴한다. 이 內容은 많은 分量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칼빈이 眞正한 福音의 敎理를 證據해야 할 理由와 그 福音의 가르침을 따르는 者들을 위하여 辯護하는 信仰告白으로 보여주는 强力한 證據들이다.

그는 聖經을 歪曲시켜 解釋의 誤謬를 만들었던 많은 神學者들을 批判한다. 여기에 제롬을 비롯한 소르본 神學者들을 言及한다. 칼빈이 이들에 對하여 問題 삼는 것은 그들의 解釋의 失手 그 自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自身들의 神學的, 敎理的, 制度的 敎會의 특별한 目的을 위한 解釋을 통하여 自身들의 敎理들을 維持하여 敎會를 腐敗시키고 聖徒들을 바른길로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잘못된 敎父들의 敎理를 自身의 敎理로 採用하는 어리석음을 批判한다. 로마 敎會가 重視하는 것들 가운데 미사, 煉獄, 聖地 巡禮, 聖職者 結婚禁止와 같은 것들은 聖經 말씀을 歪曲하고 主님의 命令에 順從하지 않은 것이라고 剛하게 批判한다. 그러므로 칼빈은 오직 聖經의 말씀대로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들으며, 그의 命令을 所重히 여기고 聖經의 單純性을 混亂하게 하지 말며, 思辨的 神學理論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神學的으로 墮落한 理由는 그들은 聖經의 權威보다 敎會의 權威를 더 높이는데서 나온 것이다. 오직 성경만으로 敎會와 神學을 改革한 칼빈의 意圖가 바로 프란시스 1歲게 보내 獻辭에서 잘 나타난다. 칼빈의 基督敎 强要의 全體的인 內容의 發源은 바로 로마 카톨릭 敎會의 비 聖經的 敎理들과 傳統에 對한 批判에 始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칼빈은 敎父들의 聖經的 主張들에 對해서는 그 權威를 認定하였다. 그러나 聖經만이 그 自身의 神學의 唯一한 源泉이요 規範이요 神學 方法이었다. 이런 觀點에서 칼빈은 敎父들의 傳統的인 主張들도 聖經 本文에 根據한 正確한 主張인 恒常 檢證하여 評價하였다. 自身의 生涯의 마지막 숨을 거두는 瞬間까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 自身을 돌아보며 살았다.

結論 [ 編輯 ]

칼빈은 聖經에 徹底하게 服從한 眞正한 神學者였다. 그는 敎會의 有益과 聖徒들의 靈的인 有益을 위한 그의 熱情은 自身의 몸을 犧牲하면서 까지 聖經의 올바른 가르침을 純粹하게 傳하기 위한 그의 使命임을 보여 주었다. 그의 神學의 特徵은 오직 성경만으로 神學의 活動을 이루었으며, 聖經에 對한 올바른 解釋 方法도 一貫性 있게 그의 삶에서 使用되었다. 그의 神學의 强調는 救援의 敎理임을 빼놓을 없을 것이다. 그가 참된 救援의 福音을 그의 同族들에게 傳播하기 위한 靈的 사랑도 매우 感動的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런 作業이 神學者의 任務라는 것은 칼빈에게는 너무나도 自明한 것이었다.

칼빈은 徹底하게 모든 問題를 하나님 앞에서 認識하였다. 國家의 指導者도 하나님의 榮光을 위해서 奉仕해야 하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罪人이며, 徹底하게 사람이 보는 것과 對照를 시켰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그의 慈悲 外에는 자랑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고후 10: 17-18).

칼빈은 基督敎 强要를 통하여 中世로부터 只今까지 誤謬와 歪曲, 迷信과 偶像崇拜, 人間의 功勞와 聖職者의 聖職 濫用, 敎會와 敎皇의 絶對的 權威를 버리지 않고 漸漸 말씀으로 멀어져 가는 로마 카톨릭 敎會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改革한 自身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깥 링크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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