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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常한 檢査 林恩貞]③ "나의 法은 같이 눈물 흘리고 慰勞하는 存在" ::::: 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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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常한 檢査 林恩貞]③ "나의 法은 같이 눈물 흘리고 慰勞하는 存在"

"오늘 내가 特히 銳敏해하는 性暴力 事件 裁判이 있었다. 6時間에 걸친 證人訊問, 異例的으로 法廷은 고요하다. 法廷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手話로 이 世上을 向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憤怒에, 그 絶望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 어렸을 적부터 持續되어온 짓밟힘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도 있고, 끓어오르는 憤怒에 齒를 떠는 아이들도 있고."

"눈물을 말리며 그 손짓을, 그 몸짓을, 그 아우聲을 본다. 辯護士들이 證人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내가 막을 수가 없다. 그들은 그들의 本分을 다하는 것일 텐데, 어찌 막을 수가 있을까. 被害者들 代身 世上을 向해 울부짖어 주는 것. 이들 代身 싸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들에게 이 世上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希望을 주는 것. 辯護士들이 被告人을 위해 當然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나 亦是 내가 해야 할 일을 當然히 해야겠지."

"해야만 할 일이다" <繼續 가보겠습니다> p.25

[김규종 MC]
크게 어떤 삶의 意味를 確認하신 宏壯히 意味 있는 자리였을 텐데. 어떤 사람들은 林 檢査께서 이番에 펴內申 冊에 나와 있는 內容이 正말 다 事實이냐, 아니면 若干의 誇張이나 어떤 劇的인 事件들이 美化된 거 아니냐 이런 분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임은정 檢事]
冊을 처음, 原稿를 쓰고 여러 番 推敲를 했는데 原稿 쓸 때 너무 고통스러웠던 게 뭐였냐면 제가 안 힘든 게 아니잖아요? 內部 告發者가 얼마나 힘들어요? 너무 힘들잖아요?

이게 저는 檢察 實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史草에 該當하는 備忘錄, 日記, 檢査 揭示板에 썼던 것들, 國家 賠償 訴訟이나 아니면 懲戒 取消 訴訟에 對한 資料가 어마무시하니까, 이걸 쓰면서 實名이 大擧 많이 나오고요. 事實上 實名들도 많잖아요? 우리 檢事들은 이게 누구인지를 다 알아요.

그때 部長이 이 性이면 누군가 보면 한 名이 特定되는 狀況이니까, 몽땅 失明이라고 생각하셔야 하는 狀況이니까, 이 사람들이 問題 提起를 할 수 있어서 저는 다 覺悟하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例컨대 여기 冊에도 金雄 檢事, 國會議員도 나오는데 이렇게 민·형사를 걸 豫想을 해야 되니까, 備忘錄에 金雄 先輩와 2016年인가요? 7月인가? 그때 對話를 備忘錄을 뒤져서, 그 文句에 토씨가 바뀌면 訴訟에서 證明을 해야 되니까 그거를 찾아서 하고 檢事들이 댓글에 뭐라고 非難했는가를 찾아서 다시 보니까 너무 苦痛스러워서, 傷處를.

그래서 자꾸 울컥울컥해서 草稿 쓸 때는 되게 고통스러웠어요. 이거는 제가 민·형사 覺悟하고, 뭐가 事實인지 따져보자고 하는 檢察 實錄이니까 그런 自負心은 있습니다.

[김근우 MC]
앞서서 無罪 求刑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만 저도 나름대로 몇 年 記者 나부랭이로 일을 하면서 檢察이 無罪를 求刑하는 것 自體도 한 番도 본 적이 없습니다만 논고 같은 境遇에도 事實은 좀 딱딱한 境遇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 돼서, 事實 判決文도 마찬가지입니다만 法曹界에 쓰는 單語들이 大部分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林 部長님께서 쓰신 논고 같은 境遇에는 人間에 對한 憐憫과 또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런 얘기들이 많은데 事實 이렇게 쓰시는 檢事님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거죠?

[임은정 檢事]
論告는, 法廷에서 구두로 이루어지는 論告는 어떻게 하는지 다른 檢事들은 몰라요. 各自 自己 基準으로 하는 건데 제가 쉬는 時間에 裁判 休廷할 때 다른 房 가거나 記錄에서 봤던 論告는 저 같은 類型이 없는 것은, 率直히 저도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法廷에 被告人과 傍聽해 주시고 있는 被告人 家族, 被害者와 被害者 家族, 境遇에 따라서는 殺人 事件이나 致死 事件들이 있으니까 靈魂에 바치는 제 慰勞와 忠告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 나름의 努力으로 제가 사람에게 法律 文章 말고, 法律 모르시는 분들이 太半이잖아요? 法曹人들이 앉아 있는 거 아니니까 들으시는 사람이, 判事한테 맞추는 게 아니라, 判事한테도 맞춰야 하지만 모든 特히 被告人은 들어야 하고, 被害者는 들어야 하고, 누구한테 말할 것인가에 若干 焦點을 두면 그걸 勘案해서 쓰는 게 檢事의 道理이고 禮儀라고 생각합니다.

[김규종 MC]
冊에서 한 句節을, 한 文章을 제가 引用을 해보겠습니다. 林 檢査가 쓴 冊에 이런 內容이 나옵니다. 司法은 個人의 良心을 깨우고 이 時代와 우리 社會의 따뜻한 正義를 일깨워 社會的 弱者들의 依支處가 되고 希望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쓰셨는데 우리들이 一般的으로 생각할 때 司法은 冷靜하고 차갑고 苛酷하고 絶對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對象이라고 생각하는데 林 檢査가 생각하는 司法은 따뜻한 正義를 具現하는 機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임은정 檢事]
그런 自負心이 없으면 제가 檢査를 못 했겠죠? 그 法律이라는 것 自體가 人間을 다루는 學問이기 때문에 人間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거라서 人間과 함께 憤怒하고 人間과 함께 아파하고 人間과 함께 苦痛받는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體溫이 사람化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體溫이 당기는 거고요. 그렇다면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이 慰勞해 주고 다독이는 손길이 되고 잡아주는 손길이 되고 그런 게 제가 아는 法입니다.

그러니까 딱딱한 法이라고 하면 나쁜 法曹人을 만났다 乃至는 不親切한 法曹人을 만났다, 이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규종 MC]
그런데 一般的인 檢査上은 임은정 檢査가 생각하시는 그런 檢査上과는 距離가 宏壯히 멀어 보이는데. 그 點에 對해서는 檢事들 內部에서 어떤 對話나 어떤 反省의 그런 幾微 같은 건 있는지 모르겠어요?

[임은정 檢事]
그게 檢事들이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 不親切해지잖아요? 제가 예전에 大學 後輩가, 下宿집 後輩가 너무 배가 아파서, 結果는 盲腸炎이었는데, 應急室에 갔을 때 제가 醫師들을 보면서 決心했는데, 應急室 醫師들은 患者들이 다 應急室에서 亂離가 나잖아요? 막 짜증을 내는 거예요. 그런데 正말 疲困해 보이는 그들을 보면서 理解는 하면서 그런데 내 親舊, 내 後輩가 只今 苦痛받고 있는데 醫師가 보니까 말도 안 나오는데 너무 苦痛받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내가 언젠가 法曹人 되면 나는 안 저래야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일이 너무 많으면 짜증이 나요. 그러면 不親切해져요. 그러니까 이게 檢事들이 不親切한 사람도 있고요, 그리고 正말 일이 너무 많아서 메말라지는 境遇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이런저런 것으로, 나쁜 사람들도 있고, 重複되는 것 같습니다.

[김근우 MC]
事實 記者로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저도 事件, 事故 現場을 나가보면 건건이 제가 하나하나 다 共感을 해서 100% 沒入을 하게 되면 제 스스로의 멘탈이 좀 힘든 境遇들이 있더라고요?

事實은 檢事로 일을 하시면서도 많은 여러 사람이 메말라 간다고 아까 말씀을 해 주셨는데 좀 이런 部分도 影響이 있지 않겠습니까?

[임은정 檢事]
그러니까 제가 論告文은 제가 자랑할 만한, 熱心히 한 것들을 뽑은 거잖아요? 제 冊을 보셨으니까 알겠지만 저한테 揭示板에 글 쓰지 말라고 몰 配當을, 일로 괴롭히니까 한 달에 550件씩 줄 때는 不親切해져요. 電話 안 받지. "面談 좀 하고 싶습니다", 面會할 時間 없어요. 한 달에 550件인데 어떻게 面會를 해요? 안 되죠. "調査해 달라", 調査할 時間 없어요. 記錄 보고 罰金 매기기가 바쁘거든요?

그런 點에서는 配當 構造가 잘못인데, 이 사람들이 國民 人權 하면서 이 한 건 한 件의 무게와 苦痛을 헤아리지 않고 가벼운 刑事部 事件, 저 檢事 엿 먹어야지 이러면서 주는, 이렇게 되면 그 檢事가 엿 먹는 게 아니라 當事者가 엿 먹는 건데, 윗사람들은 거기에 對한 配慮가 亦是 메마른, 나쁜 사람들이 위로 잘 가니까, 그런 거라서 제가 不親切할 때도 많았고요. 그러니까 그런 部分에 對해서는 저도 늘 부끄러운데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이 한 건 한 件도 重要하지만 構造를 바꾸지 않으면 저도 다 親切할 수도 없고 이런 問題에 對해서 늘 苦悶하려고 하기 때문에 제가 揭示板 鬪爭을 始作한 거예요.

[김근우 MC]
그 構造에 對한 內容이 結局은 檢察 改革 비슷한, 그런 쪽 關聯된 內容들이 많을 것 같은데, 事實은 앞서서도 한番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마는 事實上 實名으로 쓴 冊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쪽 業界, 法曹界 또는 檢察 쪽에 있는 분들이 보면 假名으로 쓰건 匿名으로 쓰건 대충 누군지 다 알 수 있다는 말씀이신데, 事實은 저희 立場에서는 이걸 出刊하시고 나서 조금 더 곤란해지시지는 않을까, 若干 걱정도 되고, 워낙 그동안 여러 가지 平地風波를 겪어 오셨기 때문에 괜찮으시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좀 되는데 이런 部分은 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임은정 檢事]
覺悟하고 쓴 거고요. 우리 檢察은 제가 느끼기에 無罪를 두려워하는 組織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던지기 起訴를 한 番씩 하는 것을, 예컨대 過去史에서도 PD手帖 事件은 無罪 날 줄 알면서 起訴를 强行하라고 하는 組織이니까, 찍히면 몰아가기 搜査라든지 털어보자 이렇게, 地球 끝까지 찾겠다, 이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內部 告發者로 제가 10年 동안 點心時間, 中食 時間도 발발 떨었었으니까 그런 것에 對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고 覺悟는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前에 辯護士님들과 原稿를 出版하기 前에 이미 辯護士님들과 좀 相議를 조금 했었고요. 하게 되면 오히려 잘 됐다, 무엇이 事實인지 따져보자, 그래서 備忘錄이라든지 이런 걸로 對照하면서 한 거니까. 問題가 되더라도 海溢은 밀려올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海溢은 밀려왔으니까. 海溢이 밀려와도 저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으니까 떠밀려가지 않고 꿋꿋하게 지키면서 무엇이 事實인지 따져볼 생각입니다.

[김규종 MC]
只今 林 檢査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제가 相當히 놀랍다고 생각되는 게 檢事이고 部長檢事인데, 事件이 생기니까 辯護士하고 相議를 했다, 이건 저로서는 宏壯히···

[임은정 檢事]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요. 이게 自己 事件이 되면 客觀化가 덜 되잖아요? 그런 問題이기 때문에 제가 민·형사 하게 되면 저도 제가 裁判을, 公益 申告한 것도 여러 건 있고 國家 賠償 訴訟 等等 等 해서 여러 가지, 한 6個 程度가 이것저것 公搜處라든지 繫留 中인데, 제가 제 일도 해야 되기 때문에 辯護士님들을 다 選任했어요. 辯護士費로 많이 드리지도 못하면서 등골이 빠지고 있는 狀況이고요.

여러 名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智慧를 찾는 게 좋고요. 다음에 이렇게 크로스 체크를 해야 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것과 辯護士들이 攻擊 포인트가 다르니까 크로스 체크하는 次元에서 좀 여러 名이랑 議論해 보면서. 그리고 萬一 하게 되면 作戰 計劃의 하나인데 그렇게 準備는 하고 있습니다. 단단히 準備하지 않으면, 나름 저한테는 巨大한 組織과의 싸움이잖아요?

[김규종 MC]
有備無患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아까 말씀하신 2012年 12月 18日 날짜를 特定하셨는데, 그 날짜가 임은정 檢事 人生에서 가장 實質的인 轉換點이라고 우리들이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임은정 檢事]
實質的인 轉換點이라기보다 저를 試驗했고요. 제가 無罪 求刑을 할 수 있을지 저도 잘 몰랐잖아요? 正말 眞짜 無罪 求刑을 할까 봐 무서웠고 안 할까 봐도 무서웠거든요? 미쳐버리겠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알면 안 되잖아요? 막을 거니까.

一週日 동안 '해야 해' '해야 해' 하면서, 그런데 떠는 걸 들키지는 않아야 하는데 그 瞬間이 너무너무 괴로웠었는데 轉換點이라기보다는 '아, 내가 주제넘지만 나를 이겨냈다', 恐怖를 이겨냈다는 그런 點에서 그다음부터는 힘들긴 힘들어도 그때만큼 무섭지는 않아요. 그때는 죽을 줄 알았는데 안 죽네? 이런 거죠. 그러니까 해볼 만하다? 그러니까 견딜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도와주러 사람들이 오고 있다. 이런 느낌이 있어서···

[김규종 MC]
그러니까 10年 前의 林恩貞하고 2012年 12月 18日 以後의 林恩貞은 全혀 다른 사람이 된 거군요, 그러면?

[임은정 檢事]
그렇죠. 그리고 그때는 제가 한 60年 뒤에 無罪, 그러니까 제 抑鬱함이 밝혀질 줄 알았어요.

[김근우 MC]
60年을 보고 계셨어요?

[임은정 檢事]
그 理由가 뭐냐 하면 윤길중 事件이 60年 뒤에 無罪 난 거거든요? 제 생각으로는 死六臣, 生六臣처럼 數百 年 뒤에 되면 너무 抑鬱할 것 같고, 그런데 살아生前에 못 볼 수도 있어서, 그러니까 살아生前에 바뀔 거야라고 하면 失望하면 죽을 때 너무 슬프잖아요? 그래서 죽을 때 슬프지 않기 위해서 죽으면서 三日葬 무덤, 管 안에 들어가기 前에는 抑鬱함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고 죽으려고 제가 한 60年 잡았는데요.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바뀌는 걸 제가 봐서 이게 勝利의 DNA가 저한테 새겨지더라고요. 견디면 바뀌어, 나는 견딜 수 있어, 이런 自負心이 저를 繼續 견디게 하는 거 같아요.

윤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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