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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迦誕辰日 燃燈과 老人[淸溪川 옆 寫眞館]|東亞日報

釋迦誕辰日 燃燈과 老人[淸溪川 옆 寫眞館]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5月 11日 1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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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의 百年寫眞 No. 60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家族과 風景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時代입니다. 하지만 寫眞이 넘쳐나는 이 時代에, 우리는 圓形으로 돌아가 그 時節의 寫眞에 담긴 意味와 脈絡을 探究해 보고자 합니다. 寫眞記者가 100年 前 新聞에 실렸던 黑白寫眞을 每週 하나씩 選別하여 紹介하는데, 讀者들의 想像力이 더해짐으로써 寫眞의 意味가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이番 週 百年寫眞이 고른 寫眞은 1924年 5月 11日子 東亞日報 2面에 실린 寫眞입니다.

100年 前 釋迦誕辰日을 앞두고, 갓과 흰 저고리 차림의 老年 男性 4名이 古宮의 담벼락 아래 앉아 있습니다. 두 사람은 寫眞 찍는 사람을 發見하곤 카메라를 凝視하고 있고 두 사람은 無表情하게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슨 事緣인지 살펴보겠습니다.

● 釋迦誕辰日에 어린이에게 새 옷을 입히던 風習이 있었다

老人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보아선 긴 벤치가 있거나 平平한 돌이 있는 듯합니다. 그들의 뒤쪽 虛空에 電報대 굵은 줄을 利用해 5~6個의 物件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寫眞은 紙面의 왼쪽 上段에 실렸는데 紙面의 오른쪽 下段에 關聯 記事가 실려 있습니다. “오늘은 4月 8日 - 家庭에는 複等(福燈)을 달고 寺刹에는 引燈(引燈)을 한다”라는 題目의 記事입니다.

印刷狀態가 좋지 않아 寫眞說明이 正確하게 안 보입니다만 記事를 통해 寫眞의 題目을 類推할 수 있습니다.

◇ 複等(福燈) 걸린 가로(街路)/ 1924年 5月 11日 東亞日報 2面 寫眞


記事 內容은 아래와 같습니다.

1924년 5월 11일 동아일보 2면 하단에 실린 기사
1924年 5月 11日 東亞日報 2面 下段에 실린 記事


〈今日은 4月 8日 - 家庭에는 複等을 달고, 寺刹에는 引燈을 한다〉
오늘 11日은 陰曆으로 4月 8日이니 釋迦世尊이 誕生된 지 제2951회의 誕辰日이다. 해마다 8日이 되면 佛敎와 因緣이 깊은 朝鮮 各 家庭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고운 옷을 지어 입히며 各 商店에서는 複등을 지어 팔고, 子女를 둔 家庭에서는 어린 子女의 壽命(壽命) 長壽(長壽)를 빌기 위하여 引燈(引燈)을 하는데 複等 時勢는 紙燈(紙燈)이면 30前부터 社等(紗燈)이면 1원부터 있다는데, 例年보다는 等(燈)의 産出額이 激增되었다 한다. 市內 覺皇寺(覺皇寺)에서는 낮 12時와 밤 8時부터는 記念 說法이 성대히 열리겠다 하며 其他 市外에 있는 開運寺(開運寺), 神興寺(新興寺), 奉元寺(奉元寺), 華溪寺(華溪寺), 興國寺(興國寺) 等 各 寺刹에서도 낮과 밤을 이어서 引燈과 佛供이 있으리라 하며, 昌德宮에서도 特히 裕陵(裕陵)에는 引燈(引燈)을 하신다더라.

只今은 사라진 覺皇寺를 비롯해 全國 有名 寺刹에서 行事가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이로 만든 燃燈과 緋緞으로 만든 硏等의 價格이 다르다는 것은 아마 只今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佛敎를 믿는 家庭에서는 子女들에게 새 옷을 지어 입히는 風習이 있었다는 새로운 事實도 알게 되었습니다.

記事 內容에서 理解가 안되는 것은, 왜 ‘燃燈’이라는 表現을 쓰지 않고 ‘複等’이라는 用語와 ‘引燈’이라는 用語를 使用했지 하는 點입니다. 인터넷 檢索으로도 두 表現은 別로 나오지 않습니다. 佛敎界의 意見을 물었더니, ‘引燈’이라는 表現은 부처님 앞에 밝히는 等이라는 意味로 只今도 많이 쓰는 表現이라고 합니다. 다만, 複等이라는 表現은 흔하지 않은 表現입니다. <燃燈會의 歷史와 文化콘텐츠>의 著者 이윤수 博士에 따르면, 日帝의 中樞院이 1924年 朝鮮 風習을 調査한 적이 있는데 이 報告書에서 ‘燃燈’의 意味를 當時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說明되어 있다고 합니다. 當時 朝鮮 사람들은 膝下의 子女 數字대로 等을 올리려고 했고, 燈불이 밝으면 좋고 어두우면 좋지 않은 徵兆로 여겨 追加로 떡 等을 올려 韻을 좋게 하려 했다고 합니다. 子女들의 安寧을 祈願하는 意味에서 燃燈이 ‘複等’이라는 表現으로 使用된 理由를 類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幼兒死亡率이 높았던 當時 狀況을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無病 生存을 위해 등을 달았다는 것이 얼마나 懇切한 祈禱였을지 想像이 됩니다. 불을 밝힌다는 行爲를 描寫하는 燃燈(燃燈)보다는, 불을 밝히는 理由인 ‘福을 가져오기 위한다’는 意味에서 ‘複等(福燈)’과 ‘引燈(引燈)’이라는 表現을 썼을 거라는 說明입니다.

● 老人들이 距離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風景은 사라져

부처님 오신 날은 佛敎에서 釋迦牟尼 부처님이 誕生한 것을 記念하는 重要한 날로, 陰曆 4月 8日입니다. 2024年 올 해는 다음週 5月 15日입니다. 佛敎 國家인 考慮에서 蕃盛했던 行事가 儒敎가 中心 思想이었던 朝鮮時代와 日帝 强占期를 거쳐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資料를 찾아보니 國家에서 公休日로 指定한 것은 50年이 채 안됩니다. 1975年부터 빨간 날로 指定되어 있습니다. 한글化 趨勢에 따라 公式 名稱이 2018年 4月 10日 國務會議를 통해 ‘釋迦誕辰日’에서 ‘부처님 오신 날’로 變更되었습니다.

寫眞에서 눈에 띈 點은 寫眞 속 老人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과 關聯해 男性 老人이 包含된 寫眞은 낯선 光景입니다. 왜 낯설다고 느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新聞 寫眞을 찍는 제가 老人을 찍는 境遇는 成功한 뉴스 人物이거나 아니면, 孤獨과 배고픔을 견디는 人物들이 大部分입니다. 탑골 公園 周邊에서 無料 給食을 기다리시거나 廢止를 줍는 모습들 말입니다. 老齡化가 漸漸 甚해지는 우리 周邊에서 흔히 볼 수 있는 老人層이지만 新聞에 실리는 境遇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百年 寫眞 속에서는 老人들이 거리에 하릴없이 앉아 있는 風景입니다. 或是라도 나이든 분들의 日常에 對한 接近을 現代의 우리들 스스로 꺼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反芻해 봅니다. 魅力的인 볼거리가 많은 時代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들 젊고 바쁘게 사는지라 市內에서 休息을 取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맞춤型 休息 空間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市內에서 老人들이 저렇게 앉아 있을 空間은 別로 없습니다. 그러니 100年 前 寫眞처럼, 거리에 나와 쉬고 있는 老人들 寫眞이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高齡化 社會로 가는 우리 社會의 거리 風景도 漸漸 달라지겠죠?

# 오늘 紹介된 百年 寫眞을 통해 우리는 100年 前 부처님 오신 날 風景과 朝鮮 사람들의 日常을 조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寫眞은 우리에게 그 當時 사람들의 삶과 慣習을 생생하게 傳達해 줍니다. 여러분은 寫眞에서 어떤 特異點을 보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共有해 주세요.

변영욱 記者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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