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榮德 時代 (1982年 ~ 1983年)
編輯
1981年
12月 29日
, 韓國프로野球 史上 最初의 드래프트에서
박철순
,
선우대英
,
조범현
,
박상열
,
황태환
,
계형철
,
유지훤
,
윤동균
,
김우열
等을 指名했다.
OB 베어스의 韓國프로野球 첫 競技는
3月 28日
MBC 靑龍
과의 競技로
박철순
의 4被安打 2失點(1自責點) 完投勝으로 勝利했다. 前期리그를 28勝 8敗로 1位를 차지하였으며 後期리그에서도 1位를 하여 韓國시리즈 없이 統合優勝을 할 수 있었으나
三星
에 1競技車 2位를 記錄하여 前期리그 1位팀의 資格으로 韓國시리즈에 進出하였다.
1982年 韓國시리즈
에서
三星 라이온즈
를 4勝 1無 1敗로 꺾고 元年優勝을 차지한다. 김유동이
韓國시리즈
6次戰 4-3 狀況에서 9回에 滿壘홈런을 쳐내면서 初代 MVP에 選定되었다.
박철순
이 KBO리그 歷代 最多 連勝인 22連勝을 包含 시즌 24勝을 거두면서 正規리그 MVP에 選定되었으며 當時 16勝이 先發勝이었는데
[1]
그 以後
선동열
(86年 17先發勝),
손민한
(2005年 17先發勝)(선동열과 타이),
류현진
(2006年 18先發勝),
리오스
(2007年 22先發勝)
[2]
에 依해 歷代 正規시즌 最多 先發勝 MVP 記錄이 更新됐다. 이는 非公式이지만 世界 記錄과도 견주어 볼 만한 記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83年 시즌
에는
박종훈
,
限對話
,
장호연
,
정선두
灣을 新人으로 確保했고,
박철순
,
선우대英
,
강철원
等의 主力 投手와
구천서
等의 野獸進度 負傷을 當하면서, 結局 前期리그 6位, 後期리그 5位를 記錄하여 低調한 成跡을 남겼으며 허리 디스크 때문에 苦生해 온
박철순
의 디스크 治療를 周旋해주는 等
[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와 한때 姊妹結緣을 맺었던 탓인지 이 팀이
1948年
부터 스프링캠프 場所로 活用한 플로리다 베로비値 다저타운(現在 홀먼 스타디움)에서 시즌 前 轉地訓鍊 豫定이었지만 美國行 비자를 받기 너무 어려워 臺灣 日本으로 轉地訓鍊 場所를 바꿔
[4]
最初 KBO 海外 轉地訓鍊 팀이 됐고 日本 轉地訓鍊 當時
난카이 호크스
와 演習競技를 치르면서 처음으로 日本 프로 選手들과의 맞對決을
[5]
經驗했다.
그리고
10月 14日
,
金榮德
監督이 成績 不振의 責任을 지고 辭任하였다.
김성근 時代 (1984年 ~ 1988年)
編輯
1984年
, 새 監督으로 投手 코치였던
김성근
이 就任했고, 코치珍島 補强되었다.
[6]
選手도 在日僑胞
최일언
, 洪新車 等을 비롯해 新人
윤석환
,
金鎭煜
,
김광림
等을 確保했다.
[6]
그리고 계형철이 14勝, 박상열 12勝, 장호연이 平均自責點 1位의 成跡을 거두었고, 野手陣에서도 負傷 空白이 메워지며 9連勝으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以後 6連敗에 빠지며 三星에게 前期리그를 내주었고, 後期리그에서도 初盤에는 先頭로 疾走했지만, 8月 15日부터 先頭 자리를 내주었다.
[7]
마지막 두 競技에서 OB는 해태와, 롯데는 三星과 맞붙었는데, 三星은 롯데에게 일부러 敗하면서 OB는 後期리그度 2位에 머물렀다.
[8]
1985年, 前期리그는 2位를 記錄했으나 後期리그는 5位로 마무리했다. 1986年, 플레이오프 進出權이 달린 롯데와의 마지막 競技에서
김형석
의 同點 홈런과 以後 安打로 4-3으로 勝利하며 플레이오프에 進出한다.
[9]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三星에게 2勝 3敗로 敗한다. 1987年, 前期리그 2位로 플레이오프에 進出하게 되지만 해태에 2勝 3敗로 탈락한다. 1988年, 開幕展에서 장호연은 무脫三振
노히트 노런
을 達成한다.
[10]
以後 前期리그 3位, 後期리그 5位를 記錄한다. 시즌 後에 두산 그룹은 優勝을 못한 김성근 監督과 再契約을 하지 않으려 했고, 김성근 監督도 辭任하여
신용균
코치,
최주억
코치,
박상열
投手가 太平洋으로 移籍하게 된다.
[11]
이광환 時代 (1989年 ~ 1991年)
編輯
1989年, 第3代 이광환 監督이 就任했다. 그는 選手들 個個人에 個性과 責任感을 믿고 맡기는 '自律 野球'의 旗幟를 들었으나, 前任監督에게 젖은 古參選手들을 效果的으로 統率하지 못한 데다
[12]
팀컬러의 갑작스러운 變貌를 꾀하려다가 오히려 10連霸, 11連霸를 記錄했고 及其也 將來를 위해 2∼3年生을 主軸으로 한 有望株들이 大擧 起用되자 隱退를 앞둔 古參選手들이 不安을 느끼기 始作하여
[13]
팀워크에 틈새가 생겨 그 해 6月 19日 시즌 中 交替되었다.
[14]
第4代 監督으로는 打擊 인스트럭터였던
[15]
이재우
였다. 그는 1990年 代行 起用되어 1991年 正式으로 監督에 就任했다. 하지만 初盤에 잠깐 1位를 했으나 中盤의 11連霸 뿐 아니라
장호연
의 年俸 再契約
[16]
問題-負傷 等으로 投手陣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했으며 及其也 팀內 左腕 投手이자 에이스이기도 한
구동우
를 選拔-中間-마무리 가리지 않고 投入시켜 最下位로 처지자 그 해 9月 9日 시즌 中에 交替되었다.
[14]
윤동균 時代 (1992年 ~ 1994年)
編輯
1991年, 第5代 監督은 最初의 選手 出身 監督으로
윤동균
이 內定되었고,
[15]
그는 남은 競技를 5割의 勝率을 記錄하며 可能性을 보였다.
[17]
1992年, 本格的인 첫 시즌에 그는
김민호
,
장원진
,
안경현
等의 新銳들을 大擧 拔擢하여 5位까지 順位를 끌어올렸다.
[18]
1993年에는 初盤에는 5位에 머무르다가 9月부터 連勝을 始作해 마지막 競技에서 LG에게 勝利하며 3位로 6年 만에 팀을 포스트 시즌 進出로 이끈다.
[18]
그러나 準플레이오프에서는 오히려 LG에게 1勝 2敗로 탈락한다.
1994年, 先發陣은
김상진
,
권명철
,
姜炳圭
等의 젊은 投手로 構成되었고 불펜에는 마무리
김경원
, 老將 박철순 等이 있었다. 打線에서도 김형석,
김상호
의 中心 打線과 김민호를 中心으로 한 守備陣이 있었다.
[18]
開幕展은 蠶室 쌍방울 前이었는데 이 競技에서는 大統領이 始球를 하고 觀戰했으며 勝利를 거뒀다. 하지만, 다음 날 2次戰에서는 選拔 自願 4名을 投入하고도 敗北한다.
[19]
그리고 5月 中旬부터는 6,7位에 머물렀고 7位를 굳히는 形勢가 되었다.
[19]
이러한 不振의 理由는 장호연이 2勝, 쌍방울에서 트레이드 해 데려온 강길룡이 1승만을 記錄한 것도 있었다.
[19]
그리고 9月 4日, 群山 쌍방울 戰에서 1-2로 敗北하자 윤동균 監督은 '몽둥이를 들겠다'고 했고 選手들은 이를 拒否하자 윤동균 監督이 '맞기 싫은 選手들은 다 짐싸서 서울로 올라가라'라고 하였고 17名의 選手들은 離脫해 서울로 올라갔다.
[20]
[21]
選手들 中 最古參인 박철순은 '尹 監督과 같이 옷을 벗겠다'라고 事態를 撫摩시키려 했다.
[21]
結局 9月 14日, 윤동균 監督은 事態의 責任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고,
[22]
박철순, 김상호, 김형석, 장호연, 강영수 等의 다섯 古參 選手들은 契約을 解止하기로 했다.
[23]
그러나 그들은 팀 戰力의 核心이었기 때문에 不振했던 강영수 만을 太平洋으로 트레이드하는 것으로 事件은 마무리되었다.
[23]
그리고 남은 시즌은 최주억 코치가 監督職을 代行했다.
[24]
김인식
時代 (1995年 ~ 2003年)
編輯
1995年, 第6代 監督인
김인식
이 就任했다. 選手團 離脫 事件을 겪었으나 豫想과 달리 練習生 出身의
김상진
이 3競技 連續
완봉승
[25]
을 包含해 17勝을 올렸고, 이어 권명철이 15勝, 그리고 3年生
李容鎬
와 新人
진필중
은 김경원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
[26]
打線에서는 1番 打者이자
遊擊手
人 練習生 出身 김민호, 高卒 2年生
심정수
는 21홈런으로 奮發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심정수는 初盤에 不振 했음에도 不拘하고 監督의 信任으로 좋은 成跡을 냈다고 한다.
[26]
시즌 構圖는 서울 라이벌인 LG와 OB의 先頭 다툼으로 흘러갔는데, LG가 8月 中旬에 6競技差로 間隔을 벌렸다.
[26]
그러나, 以後 LG가 連敗를 하자 OB는 6連勝, 4連勝을 거두고 9月 10日에는 처음으로 先頭를 奪還한다.
[26]
그리고 마지막 27競技에서 OB는 20勝 7敗를 記錄하면서 LG에 半 競技差로 正規 시즌에서 優勝한다.
[26]
롯데와의 韓國시리즈에서는 7次戰에 롯데에게 4-1로 勝利하며 史上 두 番째 優勝을 거머쥐었다.
[27]
1996年에는 꼴찌 8位로 墜落하여 最下位, 1997年에는 5位를 記錄했다. 1998年, 이 해에는 10年 以上 中心 打線을 지켜오던 김상호, 김형석이 빠지게 된다.
[28]
그 때문에 8月 末까지 꼴지를 記錄했으나 外國人 打者
타이론 우즈
,
金東周
, 심정수의 活躍에 힘입은 시즌 막판 連勝으로 1競技車 4位에 오른다.
[29]
그러나 準플레이오프에서는 LG에 2連敗로 탈락하게 된다.
1999年 1月 5日, 球團 名稱을 旣存의 OB 베어스에서 現在의
두산 베어스
로 바꾼다. 이 해 우즈의 活躍과 3割 20홈런의 金東周, 3割3푼5里의 打率에 31홈런을 친 심정수의 活躍으로 드림리그 1位로 플레이오프에 進出하지만 한화에 4連敗로 탈락한다.
[30]
2000年, 우동수 트리오는 99홈런 308打點을 記錄했으나 現代의 91勝에 밀려 드림리그 成跡은 2位였다.
[31]
플레이오프에서 LG에게 4勝 2敗로 勝利하고 韓國시리즈에 進出하고, 韓國시리즈에서는 1~3次戰을 통틀어 3點 밖에 내지 못했으나 4~6次戰을 모두 쓸어 담는다.
[31]
하지만 7次戰에서
톰 퀸란
에게 連打席 홈런을 맞고 敗北한다.
[31]
2001年, 심정수는 選手協 事態로
심재학
과 트레이드 되었으나 심재학은 그해 3割4푼4里에 24홈런 88打點을 記錄해 심정수의 빈틈을 메운다.
[32]
두산은 相當한 資金力의 三星, 현대에 밀려 3位를 記錄했지만 準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2連勝으로 一蹴한 뒤 플레이오프에서도 現代를 1敗 後 3連勝으로 가볍게 제치고,
[33]
韓國시리즈를 三星과 맞붙는다. 韓國시리즈에서 두산은 갈베스의 球威에 밀려 1次戰을 4-7로 敗한다.
[34]
그러나 다음 날 競技가 雨天 取消가 되자, 活氣를 多少 되찾은 두산은 장원진의 3點홈런으로 9-5로 2次戰을 勝利한다.
[34]
蠶室 3次戰은 亂打戰이었으나 11-9로 勝利한다.
[34]
그리고 4次戰, 두산은 우즈의 2點홈런으로 先取點을 얻었지만 2回初 三星에게 他者 一巡을 許容하여 8點을 내준다. 하지만 3回末, 두산은 김동주의 滿壘홈런, 안경현의 백투백 홈런 等으로 12點을 뽑아내고, 結局 18-11로 勝利한다.
[35]
이날 競技는 歷代 韓國시리즈 한 競技 最多 點數, 最多 安打, 最多 點數差 逆轉 競技였다.
[35]
하지만 5次戰에서는 心機一轉한 三星에게 10點差로 大敗한다.
[35]
그리고 6次戰, 1回初 三星은 2點을 先取했으나 우즈의 150m 홈런으로 3-2로 逆轉시켰고, 다시 三星이 3點을 냈지만 두산은 다시 同點을 만들어낸다.
[35]
[36]
그리고 8回末에 심재학의 얕은 左翼手 플라이에 整數根이 홈으로 들어오며 6-5로 逆轉하기에 이른다.
[36]
그리고 진필중이 마지막 打者
마해영
을 三振으로 잡아내며 세 番째 優勝을 達成한다.
[36]
韓國시리즈 MVP는 시리즈에서만 7홈런을 記錄한 우즈가 차지했는데 三星은 쓸만한 左腕投手 不在를 克服하지 못한
[37]
것이 컸다.
以後 FA, 트레이드로 팀 戰力이 나빠지면서 2002年에는 5位, 2003年에는 7位를 記錄했으며 2003年 시즌이 끝난 後 김인식 監督은 監督職에서 물러난다.
김경문
時代 (2004年 ~ 2011年)
編輯
2003年 末, 두산은 元來 日本에서 코치 硏修를 받던
선동열
을 監督으로 迎入하려고 했다.
[38]
그 때문에 김인식 監督이 스스로 監督에서 물러났다.
[39]
그러나 迎入에 失敗하면서 그 代案으로
김경문
을 監督으로 迎入했다.
[40]
2004年, 두산은 正規시즌 3位로 準플레이오프에 進出, 飢餓에 2連勝하고 플레이오프에서 三星에게 1勝 3敗로 탈락한다. 2005年에는 正規시즌 2位를 記錄해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3連勝하여 韓國시리즈에 進出하지만 三星에게 내리 4連霸를 當하며 準優勝에 머문다. 그 해에는 利川 球場을 竣工해 열었다.
[41]
2006年에는
WBC
에 出戰했던 김동주의 負傷으로
[42]
5位에 머물렀다. 그러나 申告選手 出身의 左打者의 盜壘王
이종욱
을 發掘해냈다.
2007年, 두산은 歷代 正規시즌 MVP 最多 選拔承認
[43]
22先發勝을 거둔
다니엘 리오스
와 12先發勝을 거둔
맷 랜들
의 원투펀치로 正規시즌 2位로 한화와의 플레이오프를 3連勝으로 가볍게 이기고 韓國시리즈에 進出했으나
SK 와이번스
에게 2連勝 뒤 4連敗로 準優勝에 머문다.
[44]
다음 해, 두산은 日本으로 리오스를 떠나 보내고 先發陣에 弱點을 드러냈고 正規 시즌 2位로 韓國시리즈에 進出했으나 1勝 뒤 4連敗로 2年 連續 準優勝에 머문다.
[44]
2009年, 지난 2年과 달리 起亞가 1位를 차지하고 SK가 2位, 두산은 3位를 차지했다. 두산은 準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1敗 뒤 3連勝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左腕 7勝
금민철
과 4勝
후안 세데뇨
가 2連勝을 거두었다.
[45]
하지만 3次戰 10回初, 1死 2壘에서
박재상
의 打毬를 右翼手
정수빈
이 照明塔 때문에 視野가 가려져 놓쳤고, 이를 틈타 雰圍氣 反轉에 成功한 SK가 2連霸 뒤 3連勝을 하면서 두산은 韓國시리즈에 進出하지 못했다.
[45]
2010年, 두산은
켈빈 히메네스
와
김선우
의 원투펀치와 土種 타자 20홈런 5名으로 正規시즌 3位를 記錄했고, 準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2敗뒤 3連勝으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서 三星과 맞붙었다. 1次戰에서
박한이
의 逆轉 홈런으로 敗했으나 2次戰에서
임태훈
이 競技를 마무리하면서 1勝 1敗로 가져갔다. 3次戰, 兩팀은 逆轉과 再逆轉을 反復했으나 結局
임재철
의 同點打와
손시헌
의 끝내기 安打로 勝利했다. 4次戰은 打擊戰으로 三星이 勝利했다. 5次戰에서
박석민
의 끝내기 安打로 두산은 韓國시리즈에 進出하지 못했다.
2011年, 김경문 監督이 契約 마지막해 成績 不振을 理由로 시즌 途中 自進辭退하였다. 8시즌 通算 960競技 512勝 16無 432敗를 記錄한 김경문 監督代身에
金光守
監督代行 이끄는 두산은 4强 進出에 失敗하고 5位로 2011 시즌을 마감하였다.
金鎭煜 時代 (2012年 ~ 2013年)
編輯
2011 시즌 以後
金鎭煜
불펜 코치를 새로운 監督으로 選任하였다. 또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에서 優勝經歷이 있는
이토 쓰토무
를 首席코치로 選任하고 넥센2군에서 投手코치로 있던 정명원도 投手코치로 選任하는 等 코치陣을 改編하였다.
2012年에도
최주환
,
최재훈
,
변진수
,
허경민
等 많은 新人들의 登場으로 第2의 화수분野球를 始作했고
니퍼트
,
노경은
,
이용찬
,
김선우
,
김승회
로 이어지는 先發投手는 國內 最高라는 評價를 받을 程度로 成長했다. 特히 노경은과 이용찬의 活躍이 돋보였는데 生涯 첫 完封, 10勝 等 猛活躍을 펼쳤다. 紅裳삼은 불펜에서 安定된 피칭으로 힘을 보탰다. 反面 打擊에 있어서는
이종욱
,
김현수
,
金東周
,
최준석
等 主戰選手들의 大擧 不振과 負傷 離脫로 最惡의 한 해를 보냈다.
롯데 자이언츠
가 1,2次戰 勝利하고 4次戰을 勝利를 해서 플레이오프 進出에 失敗함에 따라 金鎭煜 監督은 첫시즌을 3位로 마무리지었다.
2013 시즌에는 旣存 首席코치였던
이토 쓰토무
와 불펜 코치였던
고마키 유이치
, 作戰 및 走壘코치였던
김민호
, 배터리 코치였던
고정식
, 2군 打擊코치였던
이명수
等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롭게 首席코치로
황병일
, 作戰 및 走壘코치로
조원우
, 守備코치로
김민재
, 배터리 코치로
강성우
, 2軍 再活 코치로
문동환
, 2군 打擊 코치로
김우열
을 選任하여 코치陣을 大幅 改編하였다. 그리고 두산은 2013年에 페넌트레이스에서 4位로 포스트시즌에 進出하였으며, 準플레이오프에서
넥센 히어로즈
에게 1,2次戰을 모두 내주었으나 3,4,5次戰을 連續으로 이기는 逆스윕을 거두고
플레이오프
에 進出하였다. 以後
LG 트윈스
까지 3勝 1敗로 이기면서,
韓國시리즈
까지 進出하였으나
三星 라이온즈
에게 7次戰까지 가는 接戰 끝에 지면서
韓國시리즈
準優勝을 하게 되었고 2013年 시즌을 2位로 마무리 지었다.
2013 시즌이 終了된 後 두산은 FA로 申請된 選手인
이종욱
,
손시헌
,
최준석
이 各各
NC 다이노스
와
롯데 자이언츠
로 떠났고 2次 指名으로
金相賢
과
임재철
,
이혜천
도 各各
KIA 타이거즈
,
LG 트윈스
,
NC 다이노스
로 보내게 되었다. 그 뒤
윤석민
을
넥센 히어로즈
의
장민석
과 맞트레이드까지 하였고,
2013年
11月 27日에는
金鎭煜
監督을 電擊 更迭하기에 이르자
정명원
投手코치,
김민재
守備코치,
조원우
作戰, 走壘코치가 辭任하였다.
金鎭煜 監督의 更迭로 後任으로는 以前 2군 監督이였던 日本프로野球 日本 出身 海外派
송일수
監督을 新任 監督으로 選任하였다. 그리고 1月 中旬에 首席코치
송재박
, 投手코치
권명철
李 選任되었고 2군 監督자리는 以前 1軍 首席코치였던
황병일
, 2軍 再活코치로
유지훤
, 2군 打擊코치로
강동우
를 임명하면서 코치陣을 電擊 改編하였다. 그러나 繼續되는 投手陣의 不振과 6月 以後 打擊 슬럼프를 겪으며 2位에서 漸漸 下位圈으로 墜落하게 되었고 結局 6位로 시즌을 終了하여 포스트시즌이 挫折되었다.
김태형
時代 (2015年 ~ 2022年)
編輯
2014 시즌 後 송일수 監督이 1年만에 更迭되고 OB 베어스 草創期 3代 砲手 中 한名이던
김태형
이 新任 監督으로 選任되었다.
2015 시즌
을 앞두고,
롯데 자이언츠
에서 活躍했던 左腕 에이스
장원준
을 契約期間 4年과 契約金 40億원, 年俸 10億원 等 總額 84億원에 契約을 締結하여 迎入하였다. 9月初까지만 해도
넥센
에 3競技差로 뒤지는 等, 4位가 有力하였으나 끈질긴 追擊戰 끝에 마지막 競技에서
KIA
를 制壓하며 넥센을 半게임차로 제치고 3位로 準플레이오프에 直行하는데 成功한다.
準플레이오프
4次戰에서
넥센
에 7回까지 2-9로 끌려가면서 敗色이 짙었으나, 7,8,9回 9點을 뽑아내면서 11-9로 逆轉勝,
플레이오프
에 進出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는
NC
를 相對로 3次戰에 2-16으로 大敗하는등 벼랑끝에 몰렸으나, 4,5次戰을 내리 잡아내며
韓國시리즈
에 進出한다.
韓國시리즈
에서는
三星
을 相對로 5次戰에서 13-2 大勝을 거둬 남은 2競技에 相關없이
2001年
以後 14年 만에 通算 4番째 優勝을 차지하였다.
이로써
2015年 韓國시리즈
는 正規시즌 優勝팀이 아닌 팀이 韓國시리즈를 優勝한 4番째 事例가 되었다.
2016 시즌
을 앞두고
김현수
가
볼티모어 오리올스
와 2年 契約을 締結하였다. 外國人 選手 쪽에서는
앤서니 스와잭
,
데이빈슨 로메로
와 契約을 解止하고
마이클 보우덴
,
닉 에반스
를 迎入하였다.
팀의 主軸選手였던
김현수
의 不在로 當初 昨年보다 前歷이 떨어질 것으로 豫想되었으나 前半期 내내 7割 勝率을 넘나들며 화수분 野球의 힘을 다시 한番 보여 주었다. 이에 歷史上 最初로 前半期를 1位로 마치게 된다.
9月 22日
KT 위즈
와의 홈경기에서 9-2 勝을 거둬, 니퍼트(22勝) 보우덴(18勝) 유희관(15勝) 장원준(15勝)으로 先發投手 4名 全員이 15勝 以上을 거두는 歷史上 最初의 記錄을 세웠으며 판타스틱4라는 別名이 붙여졌다.
10月 4日
롯데 자이언츠
와의 홈 最終戰에서의 勝利로
2000年 시즌
현대 유니콘스
가 세웠던 正規리그 最多勝 記錄인 91勝을 넘어섰으며,
10月 8日
2016 시즌
正規리그 最終戰에서
LG 트윈스
에게 勝利함으로써 正規리그 最多勝 記錄을 93勝으로 마감하였다. 2016年 正規리그 最終 成跡은 93勝 1無 50敗 勝率 0.650으로
1995年
시즌 以後 21年만에
韓國시리즈
에 直行하였다.
NC
와의 韓國시리즈에서는 4次戰에서 8-1로 大勝을 거둬 4戰 全勝으로 남은 3競技와 相關없이 21年 만의 統合 優勝, 韓國시리즈 2連霸와 同時에 通算 5番째 優勝을 차지하였다.
2017 시즌
을 앞두고, 팀의 內野手人
이원석
은 契約期間 4年, 契約金 15億원, 年俸 3億원 等 總額 27億원에 契約을 締結하여
三星 라이온즈
로 移籍하였다. 그 後, 補償選手로
警察 野球團
에서 軍服務 中인
이흥련
을 迎入하였다. 또한,
이현승
과
金在鎬
가 팀에 殘留하였고
SK 와이번스
에서 뛰던
김승회
가 5年 만에 復歸하게 되었다. 外國人 選手 쪽에서는
2016시즌
에서 내내 最高의 活躍을 해준
더스틴 니퍼트
,
마이클 보우덴
,
닉 에반스
外人 3名과 再契約에 成功하였다. 하지만 올시즌을 앞두고 主軸選手 8名이 大擧
WBC
代表팀에 差出되는 等, 그 後遺症으로 初盤 不振에 빠졌었지만, 6月 한때 3位까지 上昇勢를 타기도 하였다.
2016年
8月 1日
MBC 스포츠 플러스 單獨 取材에 依해서 審判買收가 처음 擧論되었으며 KBO는 賞罰위를 非公開로 開催하였다.
2017年
7月 2日
에 다시 MBC 스포츠 플러스 探査팀 取材結果
2013年
10月 플레이오프時節 審判 買收 疑惑으로 論難이 일었다.
2017年에는 最終日까지 1位 競爭 끝에 正規시즌을 最終的으로 2位를 記錄하여 플레이오프에 直行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
를 3勝 1敗로 꺾고 韓國시리즈에 進出하였다. 韓國시리즈에서는 正規시즌 1位
KIA 타이거즈
와 맞對決을 펼쳤으나 1次戰을 勝利하고도 以後 내리 4連霸를 當하며 1勝 4敗로 準優勝에 그쳤다.
2018 시즌에는 4月 7日 共同 先頭에 오른 以來 單 한 番도 1位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시즌 끝까지 獨走했고, 結局 2年 만에 다시 한 番 正規시즌 優勝을 차지하였다. 2位
SK 와이번스
와 14.5競技差의 壓倒的인 1位였다. 그러나 정작 韓國시리즈에서는
SK 와이번스
를 맞아 4次戰까지 2勝 2敗로 팽팽히 맞섰지만 以後 5, 6次戰을 모두 敗하면서, 시리즈 2勝 4敗로 2年 連續 準優勝에 머물게 되었다.
2019 시즌을 앞두고, 팀의 主戰 砲手인
양의지
가
NC 다이노스
로 移籍하였다.
그래서 양의지의 代替 捕手로 박세혁이 뛰게 되었다. 또 補償選手로는 NC의 中間繼投를 消化하던
이형범
이 迎入되었고 새 外國人 打者로는 쿠바 出身인
호세 페르난데스
가 迎入되었다.
호세 페르난데스
가 안타 1位와 打率 2位를 記錄하면서 打擊 部分에서 많은 點을 補完해주었다. 2019年 시즌 初盤에는 1,2位를 오고 갔지만 中盤부터는
SK 와이번스
에게 밀리며
키움 히어로즈
과 2,3位를 다투었다.하지만 시즌 後半에는
SK
가 下落勢를 보여 9競技差를 뒤집으며 正規시즌 마지막날에 KBO 最初로 乘車 없는 1位를 爭奪해내었다. 韓國시리즈에서는
키움 히어로즈
에게 4連勝을 하며 3年 만에 팀 通算 6番째 優勝을 차지하였다.
2020 시즌을 앞두고 20勝을 거둔
조쉬 린드블럼
이
밀워키 브루어스
로 移籍하였다. 또한, 2018年에 18勝을 거두며 多勝王에 올랐지만 2019年에는 8勝 9敗로 안좋은 모습을 보여서 再契約이 確實치 않았던
세스 후랭코프
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로 移籍하면서 先發陣에 구멍이 생겼다. 多幸인 點은 이 둘의 大體 資源으로 迎入한
라울 알칸타라
와
크리스 플렉센
이 各各 훌륭한 有望株로 評價받아 왔기 때문에 先發陣의 구멍을 메워줄 것이라고 期待받았다. 다만 둘中 더 많은 關心을 받은
크리스 플렉센
은 잦은 負傷으로 인해 牌넌 트레이스에서는 많은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가을野球에선 2勝 1敗의 好投를 보여주며 그 期待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와 反對로 많은 關心을 일으키지 못했던
라울 알칸타라
는 最高時速 160km/h의 强力한 패스트볼과 威力的인 포크볼로 시즌 20勝을 達成하며 두산이
플레이오프
에 進出하는데 큰 功을 세웠다. 또한 2019年에 이어 재계약한
호세 페르난데스
는 從前 外國人 最多安打를 뛰어넘은 199安打를 記錄하며 두산 打擊에 큰 힘이 되었다. 2020 시즌 以後 두산은 9名의 FA 豫定者가 있어 이들이 몸값을 올리기 위해 많은 活躍을 할 것이라고 期待되었다. 하지만 한화의 18連霸가 두산에 依해 마감되고,10월 1日에는 6位까지 떨어지며 포스트시즌 進出도 안개 속에 가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시즌 最終戰
키움
에게 勝利했으며 때마침
LG
가
SK
에게 敗하면서
NC
와 優勝競爭을 하던
LG
는 4位로, 두산은 劇的으로 3位를 達成하며 디펜딩 챔피언의 面貌를 보여줬다. 以後 포스트시즌에서
LG
에게 準플레이오프에서 2連勝,
KT
에게 3勝1敗로 韓國시리즈에 올라가며 6年 連續 韓國시리즈라는 大記錄을 達成 한다. 하지만
NC
와의 韓國시리즈에서 2勝 4敗로 敗하며 準優勝에 滿足해야했다.
2021年에는 中盤까지는 한때 6~7位를 달리고 있어서 若干 無氣力한 모습을 보였지만 最終戰 가까이 갈 수록 漸漸 氣勢가 올라가서 4位까지 올라갔다. 一旦
KBO 포스트시즌
確定은 지었지만,
SSG 랜더스
와 2競技에서 다 勝利해야 되는데 한 競技만 勝利하고 敗하는 바람에 4位 確定을 짓지는 못했다. 그래서, 最終戰을 앞두고 4位를 確實하게는 가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最終戰을 勝利하거나 最小 비기기만 하면 無條件 4位 確保가 된다. 또한, 最終戰 相對는 最下位
韓華
여서 좀 손쉽게 이길 듯한 팀이었으나 그래도 放心하기엔 이른다. 오히려
韓華
가 이길 지 모르는 狀況이었고, 敗할 詩 같은 時間
SSG
가 勝利하면 4位는
SSG
손아귀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勿論
SSG
가 지면 두산 베어스는 最終戰을 져도 相關없이 4位가 確定짓는다. 實際로
SSG
는 最終戰에서
KT
에게 8代 3으로 悽慘하게 敗하고 있어서 두산 베어스는 굳이
韓華
最終戰 競技를 이기거나 丕基地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두산 베어스는 그럼에도 不拘하고 5:3으로 自力 勝利를 擇하여 4位 確保를 지었다. 以後 두산 베어스는
와일드카드
競技에서
키움
에게는 비록 1次戰에 勝利를 내주어서 不安했지만 2次戰에는 勝利하여 本格的으로
KBO 포스트시즌
에 進出했다. 以後 準플레이오프 競技에서
LG
에게 勝利하고 플레이오프 競技에서
三星
에게 勝利한 後 史上 最初로 7年 連續
2021年 韓國시리즈
進出했다. 하지만
KT
와의 韓國시리즈에서 4戰 全敗를 當하며 準優勝에 滿足해야했다.
2022年에는 두산베어스가 그야말로 恥辱的이고 믿을 수 없는 最惡의 9位로 確定짓고 말았다. 두산베어스가 4月~5月부터 漸漸 敗北로 기울어지더니 以後부터는 제대로 된 競技를 펼치지는 못했다.
SSG 랜더스
를 맞아서
4月 29日
에는 12回末에 끝내기 敗北를 맞고,
6月 22日
에는 10回末에 끝내기 敗北를 當했고, 두산 베어스 最多 記錄인
9月 18日
에는
SSG 랜더스
에게 13大13으로 가다가 끝내 9回末에 끝내기 敗北를 當하는 受侮를 겪었다. 게다가 最下位
한화 이글스
까지도
5月 15日
에는 1:14로 크게 敗하는 等 恥辱的인 위닝시리즈 敗北 經驗도 겪어야 했고,
6月
에도
한화 이글스
에게 2敗를 내주는 위닝시리즈 敗北를 또다시 안겼다.
7月 30日
競技에서도
한화 이글스
에게 1:11로 大敗하는 等 제대로 된 競技를 펼치지 못했다. 以後
두산베어스
는 웬일인지 2022年 내내 제대로 된 競技를 펼치지는 못했으며, 다른 팀에게 거의 洞네북이 될 程度의 敗北 數値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산 베어스는
9月 29日
한화 이글스
를 6:5로 艱辛히 이기긴 했지만 같은 時間
KIA 타이거즈
가
롯데 자이언츠
를 5:4로 이기는 바람에 寄與李 脫落이 確定되고 말았다. 게다가 그 脫落도 亦是 唯一하게
한화 이글스
를 除外하고 다른 팀들보다 第一 먼저 脫落이 確定된 팀이며 以後에도 無氣力한 競技를 보여주면서 9位까지 確定짓고 말았다. 9位는 두산 베어스 野球 史上 最初의 最惡 順位 記錄이었다. 그리고 오재원이
10月 8日
마지막 競技에 隱退式이 펼쳐졌고 김태형 監督도 이番 害를 끝으로 契約이 끝나 隱退했다. 그래서 2023年부터는 두산베어스 監督이 李承燁 監督이 맡기로 했다.
김태형 監督 後任으로 李承燁 監督을 迎入해 2023年 5位를 하며 2年만에 포스트시즌에 進出하였으나 와일드카드決定戰에서 NC다이노스에게 敗하였다.